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
4장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걸그룹 탑티어는 3파전이었다. 플라지아, 올유어걸, 그리고 지금은 해체를 해버린 또 하나의 팀까지 해서 세 팀.
셋 중에서는 플라지아가 가장 앞서 있었지만, 수상 실적이나 음반 판매량, 콘서트 동원 능력 등을 비교해 보면 나머지 둘도 함께 묶이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올유어걸의 경우는 활동 시기가 겹치며 몇 차례 플라지아를 꺾은 적이 있어서 두 팀을 라이벌로 묶는다고 해도 이의를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스캔들에 대처하는 것에서 두 팀은 명암을 달리했다.
플라지아는 새로운 멤버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고, 언론 플레이도 최대한 자제했으며, 컴백곡의 퀄리티도 높아서 문제없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면 올유어걸의 경우는.
-수연이 걔는 원래부터 남자들하고 지저분하게 어울려 놀던 애라서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던 멤버였고, 반대로 나머지 다섯 명은 너무 모범적이고 착해서 심심할 정도였다.
라는 내용으로 노골적인 언플을 계속 해대는 통에 이미지만 더욱 깎아 먹었다.
그러다가 수연이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
“올유어걸은 이번에 컴백한대요.”
아마도 그쪽도 활동을 이어나가긴 힘들 거라고 봤는데 다시 나온다고 한다.
“컴백 방송으로 잡은 게 ‘8 Dols’예요. 우리 애들이 나가는 그거요.”
탑 티어의 걸그룹은 참가하지 않을 거라고 봤지만 거물이 여기에 끼어든다는 것이었다.
여덟 개의 걸그룹이 경쟁을 하는 그 무대에, 한때 탑을 찍었던 올유어걸이 참가!
그러니까 내가 말했던 게 이런 거다.
‘어차피 우승은 올유어걸.’
이렇게 정해진 거나 다름없잖아.
노골적인 언플과 메인 보컬의 자살로 팬들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멤버들을 향해 욕을 퍼붓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회사를 욕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였지만.
“시청률은 올라갈 테니 우리 애들의 홍보 효과는 좋겠네요.”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렇기도 했다.
올유어걸 외에 나머지 일곱 팀도 정해졌다.
우리가 그중 한 자리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네 팀은 우리와 데뷔 시기가 비슷한 신인 팀들, 그리고 남은 두 팀은 활동한 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 팬덤이 견고하지 못한 팀들이었다.
어차피 우승은 정해져 있다고 해도…… 우리의 목표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
8주 동안 애들의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 * *
애들을 모아놓고 설명해 줬다. 이런 이런 프로그램에 너희들이 나가게 됐다고.
그랬더니 네 명 모두 얼굴에 ‘헉!’이라고 써 붙인 것 같았다.
“와…… 그러면 못해도 두 주는 나가는 거네요? 첫방 때 떨어져도.”
“벌써 떨어질 생각을 하냐.”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제일 신인일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다고 말해줬다. 여덟 팀 중 다섯 팀이 신인이라고.
“그리고 이 다섯 팀 중에 우리가 제일 앞서 있어. 나머지 네 팀은 차트 진입도 못 한 팀들이거든.”
한 방에 위로 치솟아버리지 못했을 뿐이지 비츠걸스는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차트에서는 60위권을 계속 유지 중이었고, 라디오와 방송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있었다.
행사도 가끔 나가는 편이었는데, 벌써부터 우리 애들을 겨냥한 대포 카메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팬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 팀장은 스케줄을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다음 주에 사전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녹화가 시작되고, 첫 번째 라운드의 미션을 받은 후 2주 동안 연습을 한다. 그리고 경연 무대.
“너희들 연습할 때 카메라가 계속 따라다닐 거야. 이게 뭘 뜻하는지 알지? 내가 가이드 정해서 알려줄 테니까 카메라 있는 걸 항상 의식하고 있어. 그리고 연화랑 다은이는 녹화 들어가기 전까지 말 좀 놓고. 몇 달째 둘이 그리고 있는 거 더 이상은 못 봐준다.”
정 팀장은 다그치듯 말했고.
“그럼 이제부터 연화 씨한테 반말해야 돼요?”
“당연히 그래야지.”
“전 이게 편했는데.”
며칠 전, 우리 애들이 유미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고 난 뒤, 유미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주로 애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유미가 했던 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넷 다 너무 착하고 귀여워요. 잘 될 것 같아요.’ 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막내 라인 두 명은 아직도 그러고 있잖아, 라고 했더니.
‘에이,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 둘 다 착해요. 여우 같은 애들이면 저러고 있지도 않거든요.’
그러면서 들려준 얘기가 있었다.
‘연화는 이 회사에 10년 있었잖아요. 어지간한 실무직원들도 몬스터 경력은 걔보다 짧아요. 연습생이라고 해도 회사 돌아가는 것에 빠삭하고 간부들하고도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언제 한 번이라도 걔가 영악하게 굴었던 적이 있었나요? 못된 애 같았으면 다은이를 나쁜 년 만든 다음에 전부 다 자기편 만들었을 텐데. 알아서 나가떨어지라고.’
듣고 보면 그렇기도 했다. 데뷔 직전 한바탕 언성을 높인 이후에는 딱히 부딪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멀리할 뿐.
‘그런 거 보면 애가 착하지 않아요? 방송 전에 기다리고 있는 거 보니까 낯가림 심한 애기들이 얌전히 앉아 있는 것 같았다구요. 놀리려다 말았죠.’
한 번 놀려보지, 라고 말을 했었지만 애들이 순수해 보여서 못 그랬다는 얘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여기서 못 살아남으면 너희는 딱 여기까지인 거야. 더 이상 기대할 건 없다는 얘기지.”
“헉! 매니저 팀장님 진짜 무섭게 말씀하신다.”
“그게 현실이야. 아니라는 걸 보여줘 봐.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다면 말이야.”
* * *
“영민아. 이거 받아라.”
사전 인터뷰가 있는 날. 정 팀장은 나도 함께 가자고 해서 외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디에게 인사도 할 겸 해서 같이 가자고.
“명함이네요. 제 거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앞으로 이거 써.”
본부장은 반짝반짝한 대머리를 빛내며 내 손에 명함 상자를 쥐여 주었다.
뜬금없이 명함이 왜 나왔나 싶었는데 거기에 써 있는 걸 보니까.
몬스터 뮤직
A&R 사업부/프로듀서
박영민 실장
“저 실장이에요?”
“대외 업무 볼 때는 이거 쓰라는 거야.”
“아…….”
전에는 직급 없이 ‘보컬 트레이너 박영민’ 이게 전부였는데.
“오늘 방송국 간다면서? 명함 이걸로 돌려.”
“알았어요. 이렇게 자꾸 챙겨주시면 저 감동하는데.”
“그리고 이번 달부터는 급여도 실장급으로 나간다.”
“예?”
“전무님 지시야. 너 아주 전무님 눈에 제대로 들어갔더라.”
“하하…… 이것 참.”
그러면 얼마를 받는 거지?
방송국 갈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두뇌가 현실적으로 변해 버렸다. 실장이면 팀장보다 더 높은 거니까 기본급만 해도…….
“인센티브는 이번 분기 끝나고 받으니까 좀 기다리고 있어.”
거기에다 인센티브까지 더하면…… 나 드디어 부자가 되는 걸까.
이런 사실은 직원들 모두가 전해 들었는지 저마다 찾아와서 한마디씩 했다.
“오오! 박 실장님. 승진턱 언제 쏘실 거예요?”
“나는 영민 선생님이라는 말이 입에 딱 붙었는데.”
“박 실장님. 축하합니다!”
이러다 보니 외근 한 번 나가는 길에 온갖 축하와 환송을 받으며 떠나게 되었다. 그냥 피디한테 인사하려고 가는 것뿐인데.
-야. 박영민 실장.
게다가 김인혁 이 녀석도 전화를 걸어와서 나를 이렇게 부른다.
“어휴, 너까지 그렇게 부르니까 낯간지럽다.”
-축하한다.
“네 덕분이지 뭐.”
정말로 이 녀석 덕분이다.
학원 망해서 속상해 있던 나에게 이 회사로 들어와달라고 했고, 지금 프로듀싱을 하기까지의 발판을 만들어준 장본인이니까.
-너 지금 나가는 길이지?
“어.”
-내 차 타고 가자.
“어?”
-나랑 같이 가자고.
* * *
“너도 거기서 일 볼 거 있는 거야?”
“아니. 박영민 실장을 혼자 보내기가 좀 그래서.”
“웬일이냐. 나를 다 챙겨주고.”
“널 챙기는 게 아니고 회사 챙기는 건데.”
이 녀석의 럭셔리한 세단을 타고 가니 몸은 편안했다.
정 팀장은 애들 데리고 먼저 떠나버렸고, 하는 수 없이 지하철 타고 가려고 했었는데.
“나는 인사만 하고 돌아올 거니까, 올 때는 애들하고 같이 와.”
“그래.”
내가 비츠걸스의 프로듀서를 맡게 된 이후, 이 녀석과는 마주하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 나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버렸다고 여기진 않을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파트를 모조리 가져가서 내가 혼자 불렀던 그때.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너무 어렸다.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해야 했었지.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내가 먼저 다가가서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를 이 회사로 데리고 와준 고마운 녀석, 그리고 15년 동안 친구로 지낸 녀석.
언제 거기서 또 치킨 먹자, 하고 말을 건넸더니 녀석은 마인 부우처럼 활짝 웃으며 좋아하더군.
굴러온 돌이라고 생각한 건 나 혼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바쁘지?”
“내가 아무리 바빠도 박영민 실장만큼 바쁘겠냐.”
“야, 그렇게 좀 그만 불러라. 아직은 듣기 거북해.”
“알았습니다. 실장님.”
녀석은 비츠걸스의 초반 부진으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풀이 죽어 있었다가, 요즘에는 마음고생을 어느 정도로 덜어낸 듯 보였다.
“애들은 좀 어때? 점점 상승세 타는 것 같던데?”
“여전하지. 이번 프로그램에도 다들 의욕적이야.”
“어휴, 나는 골치 아파 죽겠다.”
“왜?”
“골 때리는 녀석이 한 명 있어.”
골 때리는 녀석이란 이번에 인혁이가 키우고 있는 보이그룹의 멤버를 말하는 것이었다.
앓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럭저럭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밝은 모습이더군.
“야, 이것 좀 먹을래?”
“뭔데?”
“아침에 회사 오면서 사둔 건데.”
그런데 그것보다는 얼마 전부터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무척 신난 듯 보였다.
독신남들, 특히 노총각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로 나간 지 몇 주 되었다.
그전까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시작해서, 여러 음악 버라이어티의 판정단 같은 걸로 방송에 얼굴을 내밀더니, 이번에는 아예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평소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치킨이야.”
그러면서 녀석은 무언가를 부스럭부스럭하더니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었다.
“아침에 샀으면 다 식었을 거 아냐.”
“너겟이야. 식어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구.”
하나를 꺼내더니 입에 넣고 우물우물, 나한테도 권하겠다는 듯이 봉지를 내 쪽으로 넘긴다.
인혁이는 그 방송에서 요즘 화제였다. 아니, 정확히는 인혁이의 어머니께서.
그 프로그램은 아들의 일상을 어머니의 시점에서 관찰한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어머니가 방송에도 출연한다. 그래서인지 ‘저 새끼 또 처먹네 또 처먹어.’ 라는 어머니의 구수한 말이 이 녀석 분량의 웃음 포인트였다.
“야, 혹시 여기 차 안에 카메라 있는 거 아니지?”
“아 그거? 없지 당연히. 근데 너도 보는구나.”
“가끔.”
“그거 다 컨셉이야, 컨셉.”
그래도 만약 차 안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또 그런 말이 들렸을 것이다.
‘또 처먹네 또 처먹어. 저 돼지 새끼 저러니 여자가 없지.’
“안 먹을 거야?”
“몇 개 먹었어.”
“그럼 남은 거 줘.”
녀석은 핸들을 잡은 채로 다시 우물우물. 그렇게 우리는 방송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갔더니 애들 얼굴이 환했다. 애들은 인혁이와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하더니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간식거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다리면서 이것 좀 먹어.”
“고맙습니다!”
로드 매니저가 비닐봉지를 얼른 받아들고서 테이블 위에 쏟아놓았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진짜 넓어요!”
승연이는 방방 뛰어다닐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무려 단독 대기실!
이제까지 통대기실 신세였던 우리 애들이 처음으로 단독 대기실을 쓰게 되었다.
서열로 치면 여덟 개의 팀 중에서 네 번째.
비츠걸스보다 나중에 데뷔한 팀들, 그리고 조금 먼저 데뷔했지만 전혀 인기가 없는 팀들이 그 뒤로 배정되었다.
“숨이 확 트이는 것 같아. 지금까지 옆에 팀들 신경 쓰여서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거 보세요. 바닥에 자리 깔고 누워도 되겠어요.”
대기실은 모두 여섯 개. 그중 다섯 개는 단독 대기실이고 나머지 통대기실 안에 세 개의 팀이 모여 있어야 했다.
현재는 연차순, 인기순으로 대기실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계속 여기에 있으려면 너희들이 열심히 해야 돼.”
한창 들떠 있는 애들 사이로 로드 매니저가 초 치듯이 말했다.
“첫 번째 경연 끝나면 순위별로 대기실이 바뀔 거야.”
“알고 있다구요.”
1위부터 4위까지는 단독 대기실, 5위부터 7위까지 통대기실, 8위는 짐 싸서 돌아가야 하고, 나머지 단독 대기실은 새로 합류하는 팀에게 주어진다.
“긴장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애들 밝아서 참 좋네.”
인혁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테이블 앞에 털썩 앉아서 자기가 사가지고 온 과자를 뜯고 있었다.
너네 엄마가 이거 보시면 또 한 마디 하시겠다. 저 새끼 또 처먹네 또 처먹어.
멤버들은 번갈아가며 메이크업을 고치고 있었다. 오늘은 프로필을 찍고 사전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그 인터뷰 내용은 그대로 영상으로 따이며, 방송 분량에도 포함된다고 했다.
정 팀장은 예상 질문을 몇 개 추려서 모범 답안과 함께 미리 정리해 두었다고 한다. 애들은 그 문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김 이사님은 요즘 방송하시더니 얼굴 좋아지셨어요.”
정 팀장이 인혁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어휴, 말도 마. 괜히 그거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만 받고 있어. 나 진짜 이미지 좋았었는데 그거 한 뒤로는 참…….”
“재미있던데요.”
“요즘 막 악플에 시달린다니까. 돼지 새끼니 뭐니 하면서.”
“그래도 인간적인 모습이 보기 좋던데요.”
“억지로 하는 거지. 이따금 우리 애들 등장시켜서 홍보도 하려고 하고…….”
그리고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했더니 살며시 문이 열리면서…….
“안녕하세요! 화이트써클입니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들어오더니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발랄한 게더 스커트와 소매 없는 빨간 터틀넥 셔츠를 입고 있는 애들은 대기실 안을 바라보며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 네.”
“뭐해? 너희도 인사해야지.”
누구한테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우리 애들은 잠시 벙찐 얼굴을 하더니, 그 애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비츠걸스입니다.”
“네. 선배님.”
벌써 선배 취급을 받는 건가. 데뷔한 지 몇 달이나 됐다고.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화이트써클이라는 애들은 원래 우리 애들이 자주 하던 말을 주문처럼 외치고 있었다.
“애들 노는데 너무 막강한 팀이 나오신 거 아닙니까?”
자신을 VA 엔터테인먼트의 팀장이라고 밝힌 사람은, 경상도 억양이 강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저희가 막강하긴요.”
“비츠걸스라면 완전 실력파 그룹이잖아요. 보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아이고, 여기 김인혁 프로듀서님도 오셨네. 반갑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악수를 마친 그는 애들을 데리고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악수를 하면서 처음으로 실장 명함을 건네주었고.
“너희들도 좀 이따가 대기실 쭉 돌면서 인사해야 된다.”
“네.”
“몇 달 선배라고 앞에서 으스대지 말고.”
“저흰 안 그래요.”
이 바닥에서 다른 아이돌 그룹과의 관계라면 동료이자 경쟁자, 그런데 이 방송에서는 경쟁자라는 것이 더욱 두드러진다. 너 아니면 내가 탈락하니까.
이거야 원. 팀들끼리 막 기싸움하고 그러는 건 아닐지 몰라.
* * *
첫 음악 방송에서 플라지아를 만나 한바탕 조롱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씩씩 화가 난 얼굴로 ‘저희 꼭 성공할 거예요.’ 하며 투지 어린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행여나 오늘도 그런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올유어걸이라는 그 팀. 한때 플라지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었는데. 걔네들도 그렇게 싸가지 없으려나.
피디를 만나기 위해 인혁이와 함께 방송국 로비를 걷고 있었는데 우리 애들이 보였다.
타이밍 한 번 딱 좋다. 마침 올유어걸 애들하고 함께 있네.
“인혁아. 잠깐만.”
“왜?”
“우리 애들 좀 보고 가게.”
그런데 방금 막 인사를 나눈 것 같았지만, 갑자기 그쪽 멤버 한 명이 다은이와 팔짱을 꼭 낀 채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여자애들 무리가 우르르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 애들이 끌려가는 모양새로.
“애들 왜?”
“아냐.”
바쁘신 김인혁 이사는 얼른 피디와 인사를 한 뒤 떠나야겠다기에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저기 끼어든다고 뭘 할 것도 아니고. ‘너희들 우리 애들한테 왜 그러냐.’ 뭐 이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알아서 잘하겠지.
* * *
“아이구, 김 이사님. 요즘 방송 열심히 하시대요.”
“그냥 재미로 하는 거예요. 안 그래도 창피해 죽겠는데…… 피디님은 처음부터 기선 제압하고 들어가시네.”
“왜요? 보기 좋던데요.”
“할 일 없어서 하는 거죠, 뭐. 그리고 여기는 우리 회사 프로듀서, 박영민 실장입니다.”
두 번째로 내 실장 명함을 건네는 건 이 방송국의 피디, 에잇돌스를 연출할 사람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몬스터에 걸출한 프로듀서가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인상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나이는 아마도 50대 정도? 그리고 ‘나 엄청 인자함’이라고 써 붙인 듯한 얼굴. 상대방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모습. 게다가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어쩐지 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미지.
“좋은 그룹을 기획하셨고, 또 이렇게 미천한 프로그램에 보내주시기까지 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손을 꽉 붙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대화는 이 프로그램에 관한 것을 피디가 소개해 주는 것으로 흘러갔다.
요즘 아이돌들은 회사에서 엄격한 트레이닝을 받고 나와서 개개인의 실력이 훌륭한데, 너무 자극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다 보니까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족한 것 같다고.
그래서 그런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에잇돌스를 기획했다는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 박영민 실장이 음악만 할 줄 알지, 다른 건 잘 몰라요. 피디님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저희가 도움을 받아야지요.”
끝까지 공손한 태도. 나이가 한참 많으신 분이 이러니 나도 허리가 바짝 숙여졌다.
그런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편집실을 나왔다.
“사람 괜찮지?”
“훌륭한 분 같던데.”
“같이 있으면 존경심이 절로 드는 분이야. 대중음악의 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는 책임감이 있으신 분이거든. 그래서 나도 이참에 얼굴이나 한 번 더 비추려고 따라온 거지, 뭐.”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곤 했지만, 이 녀석의 퉁퉁한 몸집이 이렇게 듬직하게 느껴지는 건 이번이 처음 같았다.
“하지만 조심해. 그래도 방송은 방송이야. 우리 애들을 어떻게 뽑아낼지는 알 수가 없거든. 정 팀장이 똘똘해서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
“난 이만 가볼 테니 이따 회사에서 보자. 야, 그리고 이제 돈 좀 모일 텐데 차부터 하나 사. 몬스터의 프로듀서가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게 뭐냐. 가오 떨어지게.”
“그래. 알았다.”
“그럼 수고해라.”
* * *
“자, 여기요. 우리 앨범.”
“와! 저희는 앨범 없어요.”
“아직 안 나왔어요?”
“나중에 나오겠죠. 그런데 언니 이거 진짜 이쁘게 나오셨다.”
다은이는 앨범 재킷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 안의 내용도.
CD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포토북, 스티커, 포토 카드, 이 정도면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로 내용이 알찼다.
올유어걸의 대기실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쳐서 인사를 했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반가워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비츠걸스 네 명의 손을 붙잡고 자기들 대기실로 데리고 왔다.
이번 앨범을 건네주기 위해서.
“저희 거 지난 앨범도 받으시지 않았어요?”
“맞아요! 그랬었죠.”
친구 수연이를 통해서. ‘이번에 우리 앨범 나온 거야.’ 하는 말과 함께.
그런데 다은이도 그렇고 올유어걸의 멤버들도 그렇고, 아차 하는 눈빛이 스쳐 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애써 감추고 있는 아픔을 들추어내기 싫어서.
“맞아요. 지난 앨범들도 전부 근사했어요. 헤헤…….”
다은이는 억지로 웃었다.
“여기서 골라 가지세요. 이번에 앨범이 두 가지로 나왔거든요. A 버전, B 버전. 재킷만 다르고 안에 내용은 똑같아요.”
비츠걸스의 다른 세 멤버들에게도 자기들 앨범을 건네주었다.
그걸 받는 사람들은 조금 무안해하며 서로를 바라봤는데.
‘이 사람들은 다르지 않아?’
‘맞아. 완전 달라.’
하는 눈빛이 교차했다.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기실로 끌고 가서 노래시키고 춤 시키며 조롱하던 사람들과.
“여기서 언니들 맨날 1위 할 거 같아요. 제일 인기 많으시니까.”
다은이는 은근히 사교성이 좋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고 업계 선배들이지만, 마치 오랜만에 친한 언니들을 만난 것처럼 그 사이로 끼어들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1위 힘들걸요.”
“왜요? 팬들 얼마나 많은데.”
“연령별로 고르게 뽑아서 평가단을 구성한다고 하잖아요. 저희 팬들이 여기 방청하겠다고 지원해도 다 안 뽑힐 걸요. 그리고 퍼포먼스만 보면 비츠걸스가 저희보다 훨씬 잘해요. 저희는…….”
메인 보컬이 없어져서…… 라고 하려다 다시 말을 삼켰다. 모처럼 반가운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아, 그런데. 이따 인터뷰할 때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무슨 말이요?”
“인기가 많아서 그 팀이 1위 할 거 같다. 이런 말이요.”
“엥? 그럼 안 되는 거예요?”
“그거 편집돼서 이상하게 나갈 수 있어요. 실력은 우리가 더 좋지만 인기는 저쪽이 높으니 저기가 1위 하겠지, 하는 식으로요.”
“아…….”
“다른 말들하고 막 섞어서 그런 뉘앙스로 만들 수 있거든요. 편집으로 사람 한 명 바보 만드는 거 여기선 그냥 해버려요.”
“와…… 그렇구나. 역시 방송 많이 해보셔서 잘 아세요. 최고예요!”
다은이는 엄지까지 치켜올렸다.
그런 말이 오간 후에.
힘내요. 열심히 하세요. 우리 재미있게 경쟁해 봐요. 하는 훈훈한 인사를 끝으로 비츠걸스는 대기실을 떠났다.
하지만.
남겨진 다섯 명의 멤버들은 조금 전의 풋풋한 미소를 잃어버린 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올유어걸의 스탭들도 그런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쟤…… 닮았어. 수연이랑.”
누군가 그런 얘길 꺼내니, 참았던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뭐가 닮아. 노래는 수연이보다 더 잘할걸.”
“훨씬 잘하지. 라이브하는 거 보니까 엄청나더라.”
“아니, 그게 아니라, 분위기가…… 말하는 거. 표정. 그런 게.”
“…….”
그러자 그 말에는 모두 공감을 하는지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헤헤 하는 거 봤어?”
“어. 나 소름 끼쳤어. 똑같아. 둘이.”
그리고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가,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는지 애꿎은 입술만 꾹 다물고 있는 멤버도 있었다.
“잘되면 좋겠다. 계속 같이하면 좋겠어.”
“나중에 우리 스케줄 없을 때 같이 밥 먹자고 그러자.”
“오! 그래, 그래.”
회사에서는 빠진 자리에 멤버를 보강하려고 했지만 기존 멤버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래서 남은 다섯 명이서 활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컴백 무대에서, 빠진 멤버와 너무나 닮은 친구를 만나 이들은 어쩐지 위로와 같은 것을 받은 듯했다.
* * *
하품을 하다가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정말이다. 과장이 아니라.
하품했던 걸 일일이 세지는 않았지만 오늘만 100번은 넘지 않았을까.
“그럴 때 보면 진짜 아저씨 같아요.”
“놀리지 마. 나 이틀 밤을 꼴딱 새웠다고.”
“알아요. 고생하시는 거.”
새벽 한 시 반. 작업실 구석.
야행성이라는 핑계로 귀신처럼 새벽에 깨어 있던 작곡가들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작업실 안에는 유미와 나, 단둘이었다.
“자, 들어보고 빨리 결정하자.”
이윽고 작업실의 빵빵한 스피커로 데모곡이 울려 퍼졌다.
유미는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고, 나는 아주 잠깐 주어진 그 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정말로 이틀 동안은 밤을 꼴딱 새웠다. 유미의 이번 앨범에 들어갈 곡을 픽스하느라고.
첫 번째 솔로 앨범. 네 곡이 수록되는 미니 앨범 형식으로 발매하기로 했다.
두 곡은 이미 발표했던 곡으로, 그리고 신곡 두 곡을 합쳐서.
“저는 잘 모르겠어요.”
“별로야?”
“아뇨. 전 그냥 박 팀장님이, 아니, 박 실장님이 시키는 대로 부를게요.”
내가 선택한 두 곡을 들은 유미는 그런 소감을 들려주었다.
“제 목소리가 입혀진 게 아니고, 허밍으로 가이드가 붙여진 거라서 느낌이 잘 안 오네요. 그런데 제 느낌이 뭐가 중요해요. 박 실장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전 그렇게 해주시면 좋겠어요.”
새로 선택한 두 곡은 잔잔한 어쿠스틱 사운드 하나, 그리고 다른 곡들에 비해 조금 빠르게 느껴지는 미드 템포의 R&B 발라드 하나, 이렇게 두 가지였다.
지난 며칠 동안 미친 듯이 들었던 곡 중에서 고른 것이었다. 하나는 네임드 작곡가의 작품, 또 하나는 올해 초 열렸던 우리 회사 송캠프에서 탈락했던 곡을 다듬은 것이었다.
곡의 퀄리티는 내가 자신할 수 있는 정도였다. 유미의 목소리가 입혀진 버전을 상상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곡이 재생되었다.
강력한 대중성을 갖춘 곡들이다. 내 감각이 엄지를 번쩍 들어주었다.
“문제는 레코딩 시간이 별로 없어. 다음 주까지 두 곡 모두 완성해야 돼.”
“아…… 급하게 해야 되네요.”
“곧 있으면 우리 회사 여왕님께서 스튜디오를 통째로 사용한다고 하시니까.”
어이없는 얘기라서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밤을 새운 건 그 때문이었다.
유아연은 자기가 레코딩하는 기간 동안은 다른 누구도 스튜디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노크 소리라도 한 번 들리면 그렇게나 짜증을 낸다고.
그것도 그나마 자기가 프로듀싱에 참여하겠다고 판을 엎어버려서 이 만큼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거지, 애초의 계획대로 갔다면 지금 스튜디오는 접근 금지 구역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다음 주에는 비츠걸스 신곡 녹음해야 되고…….”
“벌써 신곡 내요?”
“미션 중에 그런 게 있대. 신곡을 발표해서 경연하는 무대.”
그저께 피디를 만났더니 그런 말을 넌지시 해주는 것이었다.
신곡으로 서로 경쟁하는 회차가 하나 있을 거라고.
우리야 뭐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니 반길 만한 일이었다.
“아, 그거요. 우리 애들은 잘하고 있죠?”
“인터뷰까지 했는데 무난하게 잘한 것 같더라.”
사진 인터뷰 영상을 따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멤버 네 명이 다 같이 인터뷰하고, 한 명씩 개별 인터뷰를 하고. 그러는 동안 정 팀장이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데 별로 문제되는 발언은 없어서 무난하게 넘어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유미야. 너하고 유아연 씨하고 동갑이지?”
“맞아요. 동갑. 하지만 그분이 저보다는 한참 선배님이시죠. 예전에 저도 팀으로 활동할 때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함부로 쳐다보기도 어려웠어요. 대스타라는 아우라가 엄청나서.”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 하지만 가요계 이력은 비교가 되질 않는다.
한 명은 진흙 같은 밑바닥에 묻혀 있다가 간신히 뚫고 올라와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화려하고 찬란한 정상에서 언제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교가 안 된다. 이력이나, 그리고 성격이나.
“그러고 보니까…… 정 실장님. 셋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거 아니에요?”
“셋이? 아…… 맞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황유미는 두 곡을 마무리해서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비츠걸스는 한 곡을 더 해서 데뷔 앨범을 발매한다. 그리고 유아연은 정규 9집 앨범을 내놓는 것이다.
경쟁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시차를 두기로 했지만 활동이 겹치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왕님을 위해서 내가 맡은 가수들의 활동을 미뤄 버릴 수는 없다. 이제 막 위로 치솟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애들이 더 높은 곳으로…….
“그럼 이렇게 두 곡으로 간다. 내일부터 바로 트레이닝 들어갈 거니까 연습해 와.”
“알았어요. 기대하세요.”
“난 여기서 좀 잘 테니까 먼저 들어가. 지금 눈 감으면 바로 곯아떨어질 것 같아.”
“재워줘요?”
“됐어.”
“저 토닥토닥 잘해주는데.”
“됐다고!”
* * *
다은이와 연화는 크롭티와 레깅스를 입은 채로 연습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서.
하지만 둘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다른 누구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조용히, 심지어는 고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다.
그러던 중 힐끗 다은이가 연화 쪽으로 눈길을 돌릴 듯 말 듯 바라보다가
“연화야.”
갑작스러운 반말에 화들짝 놀란 건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연화가 다은이와 눈을 맞추었다.
“어?”
“너는 빨간색이 좋아, 파란색이 좋아?”
“……?”
뭐지? 하고 다은이를 바라보던 연화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꾹 깨물더니.
“난 파란색.”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다은이는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한다.
그러더니 다시 침묵.
말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너는……?”
“나? 난 빨간색.”
“아…….”
“어디서 들었는데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뭐 먹을 때 딱 배부를 때까지만 먹고, 빨간색 좋아하는 사람은 배 터지는 거도 모르고 계속 먹는대.”
“아…….”
“그런데 모르겠어. 이거 어디서 들었더라. 내가 지어낸 건가.”
다은이는 연습실 천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 버렸다.
* * *
“저게 뭐야?”
“야. 너네들 초딩이냐?”
“아우, 썰렁해. 나 썰렁해서 팔에 소름 돋았어.”
몬스터 뮤직의 휴게실. 우리는 모처럼 모여서 TV를 보고 있었다.
에잇돌스의 첫 방송.
비츠걸스의 첫 단독 분량은 다은이와 연화의 투샷이었다.
“설마…… 우리 분량 이걸로 끝일까?”
“에이, 또 나오겠지. 설마…….”
방송은 크게 세 곳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촬영했다. 스튜디오, 콘서트홀, 그리고 각 회사의 연습실.
스튜디오의 세트장에선 출연하는 걸그룹들과 MC가 경연 진행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경연 결과에 대해 통보를 받는다.
콘서트홀에서는 여덟 개의 팀이 공연을 하는 실황이 녹화된다.
그리고 각 회사의 연습실에서는 멤버들의 연습 과정과 일상적인 모습이 촬영되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연습실 하나를 잡고 몇 개의 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다. CCTV도 아니고…… 하루 종일 돌아가는 카메라가 천장과 측면에 몇 대씩.
특히 연습실 중앙에서 마치 쏘아보고 있듯이 자리를 잡고 있는 커다란 ENG 카메라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아니, 언니. 이런 거 궁금하지 않아요? 무슨 색깔 좋아하는지. 그리고 잘 보세요. 얘도 저한테 ‘너는?’ 이라고 물어봤잖아요. 이런 건 원래 궁금한 거예요.”
“아, 그래. 알았어.”
“다은이 화났나 봐. 그만 놀려.”
하지만 방송을 보고 있는 애들은 유난히 신이 나 있었다.
방송 초반, 여덟 개의 팀을 인터뷰하며 ‘1위를 할 것 같은 그룹은?’ 이라는 질문이 오갔는데, 무려 세 개의 팀이 비츠걸스를 꼽았던 것이다.
-그 팀 라이브 진짜 잘해요.
-넷 다 솔로로 나와도 성공했을 사람들이잖아요.
-우리하곤 급이 다른 것 같아요.
거기에 이런 찬사까지 덧붙여서.
그것 때문인지 애들 얼굴에는 저마다 미소가 보기 좋게 걸쳐 있었다.
첫 번째 경연은 따로 준비할 것이 없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곡을 준비해서 무대에 오른다는 것.
-여러분들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 팀인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현재 활동하는 곡으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MC는 무서운 엄포라도 놓겠다는 듯이 무거운 톤으로 말했고, 적절한 편집을 통해서 대단한 사실이 알려지는 것처럼 포장되기도 했지만 아마도 참가한 팀들은 새삼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아마도 파일럿 프로그램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경연 아이템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
“오오! 우리 또 나온다.”
그리고 방송은 여덟 개의 팀이 연습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스튜디오 씬은 대본이 있었지만 이건 있는 그대로 촬영되었다. 카메라가 설치된 연습실에서 애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내어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다.
우리 애들의 경우는 선하의 리드에 맞추어 곡을 연습하는 모습과 경연에 참가하는 애들의 심정이 드러난 대화가 롱테이크로 잡혔고, 또 하나는 방금 봤던 다은이와 연화의 투샷.
연습실에서 촬영된 분량은 이렇게 두 개가 전부였다.
“아니, 잠깐만…… 이렇게 방송 끝난다고? 왜 나는 안 나와?”
“선생님이요?”
정말로 방송이 끝나고 있었다. 에잇돌스 1회차가 이렇게 끝나고 있다고.
화면에는 여덟 팀의 프로필 영상이 빠르게 지나가고, 방송 종료를 알리겠다는 듯이 광고로 넘어가 버렸다.
“선생님이 왜 나와요?”
“너네들 봤잖아. 다른 팀들은 보컬 트레이너도 화면에 잡혔어.”
매일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카메라가 설치된 연습실을 들어갈 때마다 한참 동안 거울을 보고 들어가는 등, 또한 애들을 가르칠 때에도 유난히 자상한 말투를 쓰는 등등, 정말로 애썼는데.
“선생님 진짜 재미없었다니까요.”
“맞아. 뜬금없는 아재 개그.”
“카메라 의식한 거 너무 티 났어요.”
무려 일주일 동안 신경을 썼던 게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다.
“쌤, 옛날에 예능 나간 적 있었다더니 다 뻥인가 봐.”
“15년 전이라잖아.”
“15년이 아니라 12년 전이라니까! 야, 그리고 너희들 방송 다 봤으면 빨리 들어가서 연습해. 내일이 경연인데 이러고 있을 거야?”
“오늘은 쉬라면서요.”
“그래도 한 번 맞춰보긴 해야 될 거 아냐!”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방송에 나온 애들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막내 라인 두 명의 대화도 다른 팀들의 일상 씬과 섞여 들어가서 그저 엉뚱한 애들처럼 보일 뿐이었고.
다른 팀들도 무난한 모습만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래 가지고 시청률은 잘 나올지…….
하지만 중요한 건 경연이다. 일정은 본방 다음 날 바로 콘서트홀에서 진행된다.
여기서 여덟 팀의 빛과 그림자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객석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공연장이었다.
작은 소극장 정도의 분위기가 아닐까 했지만 크레인과 지미집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모습을 보니 방송 무대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우리 애들은 새벽부터 리허설을 하며 공연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객석 사이로 보이는 우리 로드 매니저는 벌써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애들은요?”
“방금 카메라 리허설 끝내고 메이크업 고치고 있어요.”
다른 팀들도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FD는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무대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다.
“우리 애들이 다섯 번째랍니다.”
“그래요?”
무대 순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서열 순이었다. 비츠걸스는 여덟 팀 중 네 번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꼬맹이들 모인 곳에서는 그래도 중간은 간다는 것인지.
“제가 도울 일은 뭐 없을까요?”
“박 실장님이요? 에이, 그냥 편하게 계세요.”
내가 애들을 따라다니고 있는 건 담당 프로듀서의 자격이었다.
특별한 미션을 내려주면 선곡과 편곡에 관여하는 것으로 서포트해 주려고 있는 것이지만 아직은 내가 개입할 만한 일이 없었다.
“다음 경연부터는 박 실장님이 활약이 중요해요. 편곡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무대 퀄리티가 달라지잖아요.”
다음 주부터는 편곡이 필요해질 텐데. 아이템이 신선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마도 참가 팀들끼리 서로 곡 바꿔 부르기? 아니면 오래전 음악을 재해석해서 부르기 등등. 이런 게 있지 않을까 예상하며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다.
“다음 경연부터라니,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당연히 패스하는 걸로 생각하시네.”
농담 삼아 그렇게 말했더니
“그렇기도 한데…… 저희 애들이 월등히 잘해요. 정말입니다. 아까 드라이 리허설 때부터 쭉 지켜봤는데 우리 애들만큼 하는 팀이 없어요.”
당연하지. 얼마나 혹독하게 연습시켰는데.
“느낌이 좋습니다. 애들 눈빛도 평소와 달라요.”
어쩐지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너무 들뜨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긴장되지도 않는. 적당히 기대감으로 설렐 수 있는 분위기였다.
* * *
저녁이 될 때까지 리허설이 반복되었고, 바깥이 캄캄해진 뒤에야 객석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웅성대는 소리가 공연장에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명이 모두 꺼지자 그마저도 사라졌다.
잠시 후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서 MC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차례 박수 연습을 했던 청중들은 금세 공연장을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로 채워주었다.
MC의 멘트가 한 참 이어진 후.
“그럼 첫 번째 팀을 소개하겠습니다!”
경연이 시작되었다.
대기실이 음악으로 채워지자 애들은 기대에 가득 찬 모습으로 다른 팀들의 무대를 모니터했다.
고개를 까닥까닥, 어깨를 흔들흔들하며 리듬을 타기도 하고.
대기실에도 카메라가 몇 대 설치되어 있었다. 리액션을 잡아야 하니까.
“잘한다.”
“와…… 역시.”
가끔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하는 게 흠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모니터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장의 느낌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객석의 열렬한 반응이 귀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전달되는 모니터 영상은 1번 카메라가 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무대를 정면에서 잡아내고 있는 1번 카메라 오직 이것만.
“맨날 처음에 하다가 이렇게 기다리니까 너무 떨려요.”
“그치?”
음악 방송 때는 신인이라는 이유로 첫 무대나 그다음 무대에 오르곤 했었지만 이제는 다른 팀들의 무대를 지나친 후에야 순서가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도 방송물을 좀 먹었다고 벌벌 떠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다음이니까 나가서 대기하고 있어.”
“네.”
“평소 하던 만큼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그리고 애들은 나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 * *
“그러면 이제 다섯 번째 무대입니다. 무서운 실력파 걸그룹.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환상의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는 팀. 비츠걸스입니다!”
MC의 기운찬 목소리가 사라지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배드 보이의 인트로가 시작되었다.
안무의 동선이 갖추어지고, 곧이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그리고 조금은 정적인 듯한 관객들의 호응.
음향 장비는 다른 음악 방송 무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방송으로 나갈 때에는 차이가 꽤 있을 것이다. 믹싱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하기로 했으니까.
아이돌 위주의 음방이라면 현장감을 살리는 쪽으로 믹싱이 들어갔다.
꺅꺅 소리를 질러 대는 객석의 반응을 생생하게 잡아서 하나의 트랙으로 살리고, 최대한 공간감을 더해서 음방 특유의 질감을 뽑아낸다.
하지만 에잇돌스의 피디는 그런 방식을 전혀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가수의 목소리를 높은 품질로 잡아내고, 그것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것에 치중한다.
적당한 보정을 거치기야 하겠지만, 가수의 실력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 애들에게 메리트가 있는 방식이다. 다른 어떤 팀의 메인 보컬과 비교해도 가창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괴물 보컬 두 명이 경쟁하듯이 실력을 쏟아내는 팀이니까.
“수고했어.”
공연을 마치고 온 애들의 얼굴은 밝았다. 성취감으로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무대였다. 내가 가르치는 애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얘네들은 연습 때보다 라이브 무대에서 100퍼센트 이상을 발휘하곤 한다. 라이브 체질이라고 해야 하나.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애들 할 때 객석 호응도 더 뜨겁지 않았어요?”
확실히 그랬다.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음악을 즐겼던, 진짜 라이브 무대였다.
* * *
여덟 팀의 공연이 끝나고 청중 평가단의 투표가 집계되었다.
참가 팀들은 결과 발표를 위해 다 같이 무대에 올라갔다. 물론 우리 애들도.
여덟 개의 아이돌 그룹이 우르르 나와 서 있으니 무대가 비좁아 보일 정도였다.
“오늘 500분의 청중 평가단께서 자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명당 세 팀에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그러면 이제부터 그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드디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매니저들과 함께, 그리고 하루 종일 수고해 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함께, 우리는 모니터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걸 정말 좋아한다. 순위를 발표하는 시간.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알려줄 듯 말듯 시간을 끄는 MC,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참가자들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그 감정에 이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
순위는 1위부터 순서대로 발표한다고 한다. 호명된 팀들은 축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가고, 마지막에는 6, 7, 8위만을 남겨둔 채 탈락자를 발표한다고 했다.
내 나름대로는 이미 여덟 팀들의 순위를 매겨놓고 있었다.
내기라도 하듯이 정 팀장에게 그걸 말해주며 얼마나 맞출 수 있는지 지켜보자고 했었는데…….
하지만 그 무엇도 확신할 순 없었다. 어떻게 될지는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쥔 손에 땀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저기, 박 실장님.”
그 순간 FD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찾는다.
“예?”
“피디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지금요?”
“예.”
“저 이거 봐야 되는데.”
“급하게 전달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나 진짜 이거 보고 있어야 되는데. 이런 거 보는 재미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찾아본단 말이야.
하지만 피디가 부르니 거절할 순 없었고,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홀의 부조정실.
커다란 창을 통해 공연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쪽 벽에는 각 카메라들이 촬영하고 있는 영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스탭들은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른 채 녹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고, 비츠걸스 오늘 공연했던 음원이요. 이거 모레까지 마스터링 가능할까요?”
“모레요? 그건 좀 벅찬데요.”
“아니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라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겨우 이런 얘길 하려고 날 부른 건가.
나는 조정실로 송출되는 영상을 힐끗거리며 순위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공연장을 쾅쾅 울리는 MC의 목소리도 여기서는 모기만 한 소리로 들려올 뿐이었다.
긴장감을 느끼며 발표를 보고 싶었는데.
“비츠걸스가 오늘 1위 했으니까 라이브한 음원을 홍보에 활용하고 싶어서요.”
“어……? 1위 했어요?”
“예. 오늘은 비츠걸스가 1위입니다. 압도적이었어요.”
아…… 이렇게 결과를 듣고 싶진 않았는데.
“480표가 넘었던데? 김 과장, 오늘 비츠걸스 몇 표였지?”
“487표요.”
“예. 그렇답니다. 열세 명 빼고는 전부 비츠걸스에게 표를 준 거죠.”
“그렇군요.”
그렇게 되었다.
힐끗 보니 우리 애들은 무대에서 방방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객석의 박수 소리가 여기까지 밀려 들어왔다.
* * *
1위부터 4위까지가 신인 팀이었다.
그리고 이변이라면 이변일 수 있겠는데, 가장 오래 활동해왔고 팬들의 지지도 가장 두터운 올유어걸이 7위로 간신히 탈락을 면했다.
탈락을 한 팀은 올해 3년 차 걸그룹이자, 참가 팀 중에서는 두 번째로 팬덤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에이지아’라는 팀.
청중 평가단을 랜덤으로 뽑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우려했던 팬덤의 몰표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경연의 내용이 너무 뻔했어요.”
예상한 그대로였다. 에잇돌스에 참가한 다른 팀의 곡을 부르기. 쉽게 말해 서로 곡 바꿔 부르기.
파일럿 프로그램의 한계인 것인지, 아이디어는 그다지 촘촘하지 않았다.
“박 실장님이 실력 발휘 좀 하셔야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날 하루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두 가지 발생했는데
하나는 방송이 너무 재미없다는 것.
본방을 봤더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음향 쪽은 수준이 높았다. 피디가 자신만만하게 말한 대로 콘서트 실황을 듣는 것 마냥 퀄리티가 높았다.
“좀 늘어지는 분위기네요.”
함께 본방을 모니터하고 있는 정 팀장의 생각도 같았다.
“음악이 좀 다양해야 듣는 맛이 있는 건데, 비슷비슷한 색깔의 팀이 연이어 나오니까 계속 듣고 있기가 힘든 것 같아요. 제가 객석 쪽을 계속 지켜봤었는데 괜히 우리 애들이 1위 한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50대 관객들은 하품만 뻑뻑 하시다가 우리 애들 나올 때 그나마 집중하더라고요.”
순위 발표하는 과정만 그럭저럭 편집을 잘해 보는 맛이 있었지만, 그 밖에는 집중도가 흐트러질 정도로 맥이 빠지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올유어걸의 컴백 무대라는 것 때문에 시청률은 1.5퍼센트를 기록하며 그나마 선방.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첫 방부터 조작하는 거 봐라.
-진짜 믿고 볼 프로그램 하나 없네. 또 조작이냐?
-서바이벌 프로그램 = 주작. 이건 공식인 듯.
-첫판부터 장난질이냐?
인터넷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딴 허접한 무대를 했던 팀은 86표를 받아서 다음 라운드 진출하고, 얘네보다 훨씬 잘했던 팀은 51표를 받아서 탈락.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면 한번 보고 평가해 보세요.
논란은 7위를 했던 올유어걸과 8위로 탈락했던 에이지아의 무대를 비교한 것이었다.
라이브 도중 음정이 계속 흔들리고, 안무도 틀리는 등 무대의 완성도를 보면 심하게 부족했던 올유어걸은 살아남고.
다른 팀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에이지아는 탈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걸 비교하기 좋게 편집에서 유튜브에 올려놓은 영상은 벌써 조회 수가 백만을 넘기고 있었다.
-빼박 주작이네. 올유어걸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개표수 주작했구만.
-뻔히 보이지 않나요? 첫 방송에서 7위로 간신히 살아남았다가 점점 올라가서 마지막에 1위 하는 스토리. 이거 소속사에서 돈 먹인 거 같네요.
-제작진들 머리가 나쁜가? 이 시국에?
지난 스캔들 이후 비호감 이미지가 생겨버린 올유어걸과, 오래 활동해왔기에 결코 적지 않은 에이지아의 팬덤, 이러한 점들이 부딪히며 실검 순위를 모조리 차지해 버릴 정도로 인터넷에선 논란거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