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
5장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노래
방송국 측에서는 곧바로 해명문을 내놓았다.
[저희 프로그램은 조작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500명의 청중 평가단은 각각의 티켓 번호를 가진 채 입장하며, 해당 티켓 번호가 어느 팀에 투표했는지 집계하여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오직 청중 평가단의 투표 점수만을 반영하여 순위를 정하므로 저희 프로그램에는 조작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올유어걸의 팬덤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험한 일을 겪은 후 간신히 컴백했는데, 곧바로 조작 논란이라니. 그들은 열정적으로 인터넷 배틀에 임했다.
그리고 해명문 덕분인지 승부의 추는 올유어걸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박 실장님.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정 팀장이 물었다. 그 또한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저희요? 딱히 대응할 거 있나요?”
“소속사에서 돈 먹였다는 얘기가 아무렇지 않게 나돌고 있어요.”
“괜찮아요. 저희 얘기가 아니잖아요.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저도 계속 찾아보고 있지만 저희 얘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공정성 자체에 물음표가 붙게 되면 우리 애들의 성과 또한 의심받겠죠.”
정 팀장의 생각은 이러했다. 프로그램 하나가 더러운 것으로 낙인 찍혀 버리면, 거기에 출연했던 우리 애들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제가 아까 부탁한 건 어떻게 됐나요?”
“엠알 제거 버전 영상으로 올리는 거요?”
“예. 그거 신경 좀 써주세요. 압도적인 실력으로 1위 했다는 건 알릴 필요가 있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런 것뿐.
“그리고 참, 다음 경연에서 할 노래 골랐습니다.”
“아…… 그거 곡 바꿔 부르기요?”
“우리는 올유어걸의 곡을 할 거예요.”
“예?”
논란의 중심에 있는 그 팀의 곡으로.
“아까 피디한테 전화해서 그 팀 걸로 한다고 말했어요. 겹칠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그쪽 곡을 하겠다는 팀은 없었나 봐요.”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요? 지금 그쪽 팬덤은 단단히 화가 나 있는데요.”
그렇기야 하지만.
“우리 애들이 부르기에 딱 좋은 곡이 있어요.”
“그래요? 박 실장님 선구안은 제가 무조건 믿는 편이지만…….”
그리고 올유어걸의 팬덤이 이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고 하니 눈도장을 찍어보겠다는 얄팍한 계산도 들어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거 있잖아요. 정말 신기한데요.”
“…….?”
“박 실장님이 순위 예측하신 거요. 1위부터 8위까지 딱 그거대로 나왔어요.”
“사람들 보는 눈이야 비슷하잖아요.”
“제가 예측한 건 다 틀렸는데요?”
사실…… 500명의 선택이 그대로 이루어질지 처음에는 미심쩍었지만 점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것, 내 감각이 판단한 대중성.
500명의 선택도 그 안에 속해 있는 것이다.
“와, 그런데 이 댓글은 세게 먹이는데요? 판정단의 투표는 공정하다고 쳐도, 그럼 그 판정단 500명을 어떻게 뽑았는지 공개하래요. 거기에 부정이 있었는지 누가 아냐고.”
“에이지아 팬덤에서 그러는 거겠죠.”
그리고 여덟 번의 무대를 보고 느낀 것은, 에이지아가 가장 못했다는 것.
노래는 조금 잘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력이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런 요소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에이지아 팬덤에서 이 난리를 치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이 방송 끝날 때까지 계속 물어뜯고 있지는 않겠죠.”
에이지아라는 팀은 오래 못 갈 것이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대중성을 보면 그 수명이 다해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올유어걸이 퍼포먼스의 내용으로는 형편없었지만 그보다는 더 매력적이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처럼, 일부분만 딱 떼어놓고 비교하면 좀 더 노래를 잘한 쪽에 점수를 주겠지만.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면 설명하기 더 쉽겠는데…… 하여튼 내 감각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점수는 문제없었어. 프로그램은 공정하게 결과를 내려준 거야.
86점과 51점. 딱 그 정도였다. 내 감각으로 느낀 것이.
* * *
아이즈 컴퍼니의 김우진 실장은 언제나 그랬듯이 깔끔하게 슈트를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네이비 블루. 조금 변화를 주었다. 새로운 기분을 내기 위해서.
회의를 앞두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수군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직원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시끄러웠다.
“무슨 일인데?”
“방송 조작했다고 또 난리인데요?”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물으니 에잇돌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거. 어제 보려다가 놓친 건데.”
플라지아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올유어걸이 컴백하는 프로그램.
늦은 시간까지 방송국 피디들에게 붙들려 있었더니 방송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었다.
“그거 조작이래?”
“모르겠어요. 누구 말이 맞는지.”
“알았어. 그건 이따 파악해 볼 테니까 우선 다들 회의 들어와.”
“예.”
김우진 실장은 예정되어 있었던 회의를 곧바로 진행했다. 플라지아와 관련된 각 부서 팀장급들이 모이는 회의였다.
주로 논의된 내용은 다음 분기의 활동 계획.
그리고 그 내용은 놀랍게도 멤버들의 개별 활동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연기로, 누구는 예능, 또 누구는 솔로 활동.
“그리고 얘네 셋은 유닛으로 묶을 거야.”
김우진 실장의 브리핑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직원들은 점점 의아한 얼굴로 변해갔다.
팀 활동은 없다. 계획에 잡혀 있지 않은 것이다.
“저기 실장님 이건 전혀 없었던 얘기 아닙니까?”
누군가 물어보자 김우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맞아. 다음 분기에 플라지아는 팀으로 활동하지 않을 거야.”
“예?”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직원들.
하지만 이미 며칠 전에 임원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었다.
어제 방송국 피디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애들을 각각 방송에 꽂아 넣기 위해서.
비주얼이 되고 연기 레슨을 꾸준히 받아왔던 애들은 드라마부터 집어넣기로 했다. 그중 한 명은 벌써 주연급 캐스팅이 논의되고 있었다.
예능에서 활약한 적이 있었던 멤버는 신규 예능 프로그램의 패널로, 그리고 메인 보컬은 솔로로.
“저기, 실장님. 그럼 이제까지의 계획과 너무 다른 것 아닙니까?”
“그렇게 결정됐어.”
“미국 진출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캔슬됐어.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고 다들 부른 거야. 그쪽 업체로는 오늘 중으로 공문 발송해.”
이 또한 임원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었다. 정확히는 이 모든 내용이 김우진에 의해 발의된 것들이었다.
현시점의 시장 상황과 향후 가능성 등을 검토한 자료를 임원들에게 보여주었고, 계획했던 대로 미국 시장으로 진출할 경우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그들을 설득했다.
풍선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풍선.
불기 전에는 그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어떤 모양일지, 그저 경험과 감각에 의해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바람이 들어가고 단단했던 고무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면, 쭈글쭈글했던 그림이 반듯하게 펴지며 그 모습을 드러낸다.
플라지아라는 풍선에 그려져 있던 그림은, 처음에는 근사해 보였지만 부풀어 올라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점점 추악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구성도 형편없었다. 여기서 바람을 더 불어 넣다간 터질 것이다. 결국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얘하고 얘는 2팀에서 관리하고, 수아는 연기할 거니까 사업부를 변경할 거고, 나머지는 3팀에서. 알겠지?”
그리고 팬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매니지먼트 쪽에서 팬클럽 간부들을 만나는 것으로 결정했다. 활동을 접는 것이 아니니, 이 정도면 간부만 설득해도 반발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새 팀을 만들 거야.”
“예?”
“이번 기수 연습생 오디션은 내가 참관할 거니까 일정 정해지는 대로 나한테 보고해.”
“알겠습니다.”
역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실패한 건 아니다. 이 회사에 속해 있는 이상 기회는 늘 열려 있다.
4년 동안, 그래도 정상권에서 충분히 활동했다. 그런 성과가 있었기에 임원들 또한 그의 말에 귀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 * *
자리로 돌아온 김우진은 다른 일을 제쳐 두고 어제 보지 못했던 방송을 찾아보았다.
에잇돌스.
올유어걸이 컴백을 하는 무대. 하지만 이제는 플라지아가 팀으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전에는 그 팀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걔네가 탈락했어야 했는데 조작으로 살아남았다고?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보컬이 빠졌어도 뿜어내는 아우라가 있는 팀인데.’
일단 그는 백지 상태에서 루머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영상을 감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 하나의 신경 쓰이는 팀이 있었다. 박영민이 손을 댄 걸그룹.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 받은 느낌이 아주 신선했기에.
김우진은 헤드폰을 쓰고 방송을 천천히 살펴봤다.
다른 회사에서 내놓은 걸그룹들을.
‘오! 대단한데?’
포문을 열었던 신인 팀부터 그의 귀를 만족시켰다.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라면 이런 프로그램에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소속사에서도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내보낸 것일 텐데.
하지만 이건 예상을 웃도는 사운드였다.
어쩌면 올유어걸이 실력에서 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은 회사에서 열심히도 트레이닝을 시켰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팀은 보컬이 괜찮은데?’
세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오른 ‘프론트 페이지’라는 팀. 거기 메인 보컬의 가창력이 김우진의 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훑었다.
‘우리 회사 오디션은 안 본 건가? 봤다면 내가 놓쳤을 리 없는데.’
이제 새로운 팀을 기획하려고 하기 때문인지, 그런 생각이 아쉬움으로 이어졌다. 이 정도의 보컬이 있다면 팀 구성이 훨씬 쉬워진다.
그다음으로는 문제의 에이지아.
팬덤이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팀. 그래서 플라지아가 활동할 때에도 가급적이면 에이지아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피하곤 했었다.
하지만 너무 극성스러워서 그 안에서도 분열이 상당했고, 그 결과 에이지아는 높은 곳으로 올라오질 못했다.
‘소리를 잘 내지른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아니지.’
에이지아의 무대를 보며 김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안무는 리듬을 타지 못하고 있고, 의상도 컨셉에 맞질 않았다. 얼핏 들으면 고음이 쭉쭉 올라가는 것처럼 들리곤 했지만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곡도 별로고, 그걸 표현하는 아티스트의 기량도 엇갈리고 있고.
500점이 만점이라고? 그럼 얘네들은 50점 정도.
그러나 그 뒤에 이어서 나온 비츠걸스는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그 애들이 나올 때부터 김우진은 자세를 고쳐 앉을 정도로 집중해서 감상했다.
배드 보이. 괜찮은 곡이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플라지아 정도 되는 팀이 불렀다면 연간 차트 1위를 노려볼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곡이었다.
물론 플라지아의 실력으로는 그 곡을 소화하지 못하겠지만.
‘뭐야? 전보다 더 나아졌잖아?’
무대를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을 정도로 김우진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사운드, 그걸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멤버들.
자기도 모르게 김우진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점수를 매긴다면…… 500점. 정말이었다. 만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팀이 이 정도의 그루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새로운 팀을 런칭한다면, 그때에는 비츠걸스가 2, 3년 차에 접어들었을 시점인데.
부딪히게 된다. 그렇기에 방금 본 무대는 그에게 위압감과 같은 것을 전달하기도 했다.
새로운 팀을 만들어보고 싶은 것은, 여기서부터 자극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이걸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감으로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역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그걸 만들어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뭐가 조작이라는 거야?’
마지막 순서에 오른 올유어걸을 보고 생각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올유어걸이 메인 보컬의 이탈로 예전만 못하다지만 탈락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 대형 기회사가 선별한 각 멤버들의 매력, 그리고 3년 차 가수들이 보여주는 능숙한 매너.
물론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여섯 명 중에 한 명이 빠진 것임에도 중간을 받치고 있는 허리가 무너져 버린 것처럼 균형이 맞지 않는 무대였다.
그래도 점수를 매긴다면…… 500점 만점에 90점 정도? 잘하면 100점까지도.
에이지아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팬덤을 빼고 보더라도, 그렇게 다양한 연령층에서 두 곡을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올유어걸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될 것이다.
고음을 내지르고 군무가 칼같이 맞아떨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두 팀이 보여주는 매력 혹은 대중성이라고 하는 것에서 차이가 확연하니까.
하지만 이걸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김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걸 구별할 수 있고, 이런 걸 비교해서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 자기밖에 없을 것이라고.
‘나와 같은 수준의 제작자가 또 있다면 얘기가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큰 연예 기획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아티스트들을 접하며 익혀온 경험과 감각은 아마도 자신만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커피 한 잔. 핫초코 한 잔. 스푼으로 세심하게 젓고 있었더니 뒤에서 다은이가 한마디 했다.
“쌤. 이게 진짜 얼마 만이에요?”
한창 보컬 레슨할 때에는 자주 타줬었는데. 활동이 바쁘다 보니 그럴 시간도 없어졌다.
“커피 같은 그런 거요. 진짜 이상해요. 뜨거운 물에 가루 넣어서 타는 것뿐인데, 사람마다 맛이 달라요. 쌤이 타준 거랑 제가 타는 거랑 맛이 완전 다른 거 아세요?”
레슨하다가 좀 피곤하다 싶을 때면 애들을 탕비실에 데리고 오곤 했다. 차 한 잔씩 마시면서 숨을 고를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진짜 신기한 게요. 컵라면도 그래요. 선까지 물 넣어서 4분 기다리는 건데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요. 아, 그러고 보니까 컵라면 먹은 지 진짜 오래됐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데 얘네 둘은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연화는 커피를 다 타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너무 조용해서 연습실로 돌아간 건가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본 적도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얘는 커피를 다 탈 때까지 열 마디도 넘게 한다. 피곤해서 좀 쉬려고 여기 온 건데 더 피곤해질 때도 있었지.
“자, 마셔.”
“고맙습니다!”
그러더니 아뜨뜨 하면서 잘도 마신다.
다은이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다지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서 의욕을 내비치지 않았고, 데뷔 팀에 합류한 이후에는 연습실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면서 몇 분씩 지각을 반복했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고 있다는 듯이.
그런데 막상 데뷔를 한 뒤에는 달라졌다. 두 눈이 초롱초롱하고 의욕이 가득 충전되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팀으로 함께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재미있어?”
“진짜예요. 숙소 생활도 진짜 재미있어요. 아…… 내가 단체 생활 체질이었다니.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됐어요.”
핫초코를 한 모금씩 홀짝이던 다은이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의자 아래에서 두 발은 그네를 타고 있듯이 흔들흔들, 얘랑 있으면 늘 이렇다.
“언니들이 잘 챙겨줘요. 제가 그런 말 했거든요? 저 여기 와서 언니들 생긴 게 너무 좋다구요. 전 언니 없거든요. 그랬더니 승연이 언니가 제 얼굴을 두 손으로 잡더니 막 흔드는 거예요. 자기도 동생 생겨서 좋다고.”
얘랑 둘이 있으면 늘 그랬듯이 분위기는 밝았다. 이렇게 맞은편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얘기는…….
나는 헛기침을 억지로 하며, 말을 꺼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경연에 할 곡 정했어.”
“뭔데요?”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이 곡 말고는 고를 수가 없었어. 딱 너희들 하기에 좋은 곡이거든.”
“……?”
“Unpretty라는 곡이 있는데.”
“아! 알아요. 그 곡.”
올유어걸의 대표 곡 중 하나. 그 해 연간 차트에서 8위를 차지할 정도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노래.
메인 보컬 수연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파트 분량에서도 수연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그녀를 위한 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그 곡 진짜 잘 알아요. 제 친구가 부른 곡이거든요.”
조작 논란의 연루된 팀이라는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쪽 팬덤이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더라도.
그것보다는 다은이의 의견이 걱정되었다. 팀에 잘 적응하고 있는 애가 이것 때문에 흐트러지면 어쩌나 하고.
“가사도 다 외우고 있어요. 맨날 들었거든요.”
몬스터의 연습생으로 처음 들어왔던 2년 전에는, 다은이 또한 아주 의욕 넘치는 아이였다고 한다.
언제 데뷔할 수 있는지 재촉하듯이 자주 물어보곤 했고, 회사 직원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월말 평가 때마다 최선을 다해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친구가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그리고 온갖 비난이 그 친구에 향하게 되었을 때부터 의기소침한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친구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갈피를 못 잡는 모습까지 보여주곤 했었지.
“이 곡으로 갈까?”
“예? 지금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네 의견은 어떤가 해서.”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프로듀서께서 정해주셔야죠.”
아무렇지 않은 듯 핫초코를 후후 불며 식히고 있었지만, 동요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와…… 이제 저희가 그 정도로 큰 건가요? 프로듀서가 가수한테 막 의견을 물어보고 있어.”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정해 놨다. 곡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다은이의 반응을 보고……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결정을 바꾸려고 했지만.
“그럼 이걸로 간다.”
“네.”
“그 팀 메인 보컬이 불렀던 파트는 둘로 나눌 거야. 너하고 연화하고 나누어서 부르는 거지.”
“아, 그렇죠. 그래야겠죠.”
“편곡이 많이 들어갈 거야. 반복되는 부분도 늘어나고.”
“네.”
이 곡을 들었을 때 ‘우리 애들이 이걸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화려한 신스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분위기, 소녀적인 감성이 두드러지는 모티브에 얹혀진 박력 넘치는 멜로디 라인의 조화. 듣는 순간 이 곡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연이라는 아이도 훌륭한 가창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다은이와 연화가 부른다면 보다 근사한 소리가 만들어질 것 같아서.
“마저 마시고 들어가. 나는 일이 좀 있어서.”
“하여간 바쁘셔요.”
“나한테 쉬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냐.”
“한 잔 더 타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네가 타 먹어.”
“맛이 다르다니까요. 진짜, 눈 감고 먹어도 딱 맞출 수 있어요. 쌤이 타준 거랑 내가 탄 거.”
* * *
“너무 좋은 곡이라서 선택했습니다. 곡의 느낌을 잘 표현한 올유어걸 멤버들에 대한 존경심도 담겨 있는 선곡입니다. 저는 저희 애들이 올유어걸처럼 좋은 팀이 되길 바라거든요.”
이만하면 괜찮은 대답 아닌가?
“저……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다시 해야 돼요?”
“너무 긴장하신 것 같아요. 좀 더 자연스럽게…… 평소에 말하듯이 편하게…… 힘드시면 좀 쉬었다 할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더니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어휴, 손수건 흠뻑 젖은 것 좀 봐. 메이크업한 거 다 지워졌겠네.
“선생님. 너무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되게 이상해요. 막 조커 같아.”
“쌤. 방송해 봤다는 거 다 뻥이었어.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인터뷰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에는 내 인터뷰도 따겠다고 했다. 팀의 제작자이자 이번 곡 편곡자로, 왜 이 곡을 선택했는지 간략하게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간만에 헤어 디자이너가 만져준 머리와, 내가 봐도 어색한 분칠을 하고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데 이게 참.
“너무 좋은 곡이라서 선택했습니다. 곡의 느낌으로 잘 표현한…… 앗, 죄송합니다. 말이 좀 꼬였어요.”
“네. 다시!”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그것도 애들 보는 앞에서.
“그러지 마시고 조금 쉬었다 하죠. 억지로 하려고 하면 계속 안 돼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쉬겠습니다.”
“카메라 꺼지니까 다시 말씀 잘하시네. 그렇게 하시면 되는 거예요.”
“아, 예.”
차가운 물을 쭉 들이켜고, 숨도 크게 내쉬어 보고.
이게 왜 이렇게 안 되지?
그리고 내 옆에선 ‘후후후’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다은이와 승연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됐습니다. 다시 해볼게요.”
자리에 앉고 사인이 떨어지자 카메라 불이 들어왔다.
“너무 좋은 곡이라서 선택했습니다…….”
좋다. 이번에는 느낌이 괜찮았다.
“그래요? 가장 인기 많은 팀에 대한 도전장이 아니구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트리뷰트 앨범 내는 뮤지션들이 전부 도전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곡이 너무 좋아서 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아직까지도 괜찮다. 계속 중간에 끊어버리더니 이번엔 가만 놔두고 있어.
“그런데 비츠걸스의 김다은과 올유어걸의 장수연은 친한 친구 사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혹시 장수연의 죽음이 이번 곡을 선택한 계기가 된 건 아닌가요?”
헉!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속으로.
질문 한 번 세게 들어오는군.
“그런 의미도 없다곤 할 수 없어요. 그분은 아주 훌륭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가수였으니까요. 추모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럼 박영민 프로듀서님이 보시기엔 두 보컬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나요?”
맙소사. 당신들 그런 질문 했다간 욕먹어. 안 그래도 그쪽 팬덤은 단단히 화가 나 있는데.
“비교할 수 없죠. 둘은 다른 색깔의 보컬이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은 들을 수 없는 그분의 목소리가 좀 더 그립기는 합니다.”
대답을 하는 동안 시선이 자꾸 다은이 쪽으로 향하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이런 질문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얘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
“좋습니다! 여기까지 하죠.”
“질문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적절하게 편집하겠습니다. 그리고 답변 잘하셨는데요, 뭘.”
칭찬하듯이 말하는군. 만약 물어 뜯기기 좋은 대답을 했다면 그걸 대놓고 내세울 거면서.
“오오! 쌤. 이번에는 방송 좀 해본 사람 티가 났어요.”
다은이는 내 곁으로 와서 내 팔을 잡아 흔들며 그런 말을 했다.
이 녀석…….
“다음은 멤버들 인터뷰 갈게요. 리더부터 합니다. 자리 잡아주세요.”
* * *
우리 애들은 그래도 어디 가서 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처신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약간 오해를 사곤 하는 멤버가 한 명 있기는 했다.
“지난번에는 아주 높은 득표수로 1위를 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생각하니? 또 1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뇨.”
선하는 이번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단 두 글자의 답변 만을 내뱉었다.
“다시! 이름이 뭐라고 했지? 선하? 그래, 선하야. 지금 답변을 나한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청자들한테 전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해보자구. 그러면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수 없잖아? 시청자들에게 네 느낌을 표현하는 거야. 그리고 팬들에게.”
“예.”
“그렇게 짧게 답변하지 말고 좀 더 길게…… 네 생각을 말로 표현해 보는 거야. 그럼 다시 해보자.”
같은 질문이 다시 들어갔다.
“또 1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뇨. 못 할 것 같아요.”
“다시!”
선하는 뭐랄까…… 상당히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말만 저렇게 하는 게 아니라 표정까지도 그렇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고 언제나 무표정.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넷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녀석이, 그리고 키도 제일 큰 녀석이 툭툭 내뱉듯이 말을 하니, 얘가 지금 나한테 불쾌하다는 건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선하는 메인 댄서 포지션이라서 보컬 레슨을 해주는 비중도 적었고.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있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차가워 보여. 너 리더라고 너네 팀에서 애들 막 잡는 거 아니니?”
작가가 농담을 하듯이 그렇게 물어봤다.
“아니에요. 우리 언니 진짜 착해요.”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거지? 말 잘못하면 숙소 가서 막 얻어맞고.”
“진짜 아닌데.”
“농담이야, 농담. 얘는 또 너무 진지하네.”
그리고 한참 이어진 끝에 인터뷰를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선하는 나름대로 길게 대답을 했던 것이다.
“아뇨. 못 할 것 같아요. 다른 팀들이 너무 잘해서요.”
이 대답을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 * *
“월간 차트 2위!”
나를 보자마자 이런 말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다가오는 사람은 몬스터 뮤직에서 공연사업을 맡고 있는 분. 어쩌다 몇 번 마주쳤을 뿐인데 오늘은 유난히 반가운 척을 하는 것이었다.
“박 실장님. 대단해요.”
“대단하긴요. 유미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건데요.”
황유미의 ‘그리고 다시 사랑’은 이번 달 가온 월간 차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겸손하시네. 그게 다 프로듀서가 능력 있어서 그런 거죠.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할 수 있으면 나는 왜 아직 이 모양이에요? 나도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
하지만 겸손해서 그런 게 아니다. 진심이었다. 유미의 재능이 그 위치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공을 돌리자면, 유미의 그런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손동하 사장이 대단한 것이겠지.
“망해가는 걸그룹도 살리는 중이라면서요?”
“망해간다뇨.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전무님이 아주 난리였는데 박 실장이 그걸 잠재웠다고 하던데요.”
비츠걸스는 서서히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차트에서도 조금 올라갔고, 팬클럽 회원 수도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
“부장님. 제가 겸손한 게 아니구요, 원래 그렇게 올라갈 애들이었습니다.”
몬스터 뮤직이 선별한 연습생 중에서도 재능이 특출난 네 명.
나는 그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을 뿐이다. 그 애들을 픽업하고, 여기까지 키워낸 이 회사가 대단한 것이겠지.
“올해 우리 회사 프로듀서 중에서 박영민 실장만큼 성과를 낸 사람이 없는 거 알아요? 나는 다른 회사에서 데려갈까 봐 겁나. 갑자기 회사 옮긴다고 하면 나 진짜 실망할 거예요.”
그런 말에는 적당히 웃으면서 네,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이걸로 된 건가? 나는 비록 가수가 되는 것에 실패했지만, 다른 누군가를 가수로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끼겠다고 다짐했던 것.
그럼 나는 해낸 건가? 나를 대신해서 발라드 가수 한 명을 성공시키고, 걸그룹 한 팀을 키워낸 건가?
당연한 이치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생각에는 도무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능력을 얻게 된 당신은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욕심이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될 거예요. 그런 성급한 욕심이 당신의 앞길을 막을까 봐 제한을 걸겠습니다. 그 능력은 네 명의 아이들을 위해서 먼저 사용하세요.’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라웠다.
네 명의 아이들을 먼저 위하라는 말. 그래, 아직은 부족하다. 우리 애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니까.
“그거……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시는 거. 그건 잘 되고 있어요?”
“그럭저럭 괜찮게 하고 있습니다.”
“박영민 실장이 붙잡고 있는 거니까 당연히 잘 되겠죠.”
그리고 두 번째 경연도 마쳤다. 결과는 퍽 만족스러웠다.
“우리 딸도 노래 잘하는데 박영민 실장한테 배우라고 해볼까. 혹시 가수 새롭게 키워보고 싶은 생각 없어요?”
“따님이요? 몇 살인데요?”
“다섯 살이요.”
“…….”
“노래 진짜 잘해요. 그 조그마한 녀석이 아연이 곡도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
* * *
“또 1위 했어요?”
“그렇게 됐어요.”
“연속 1등이네요. 축하해요.”
“축하는 우리 애들이 받아야죠.”
“그 애들을 키워내셨으니 선배님도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놀랍게도 유아연이었다.
다섯 살짜리 애기도 따라 하려고 한다는 그 대스타.
“그리고 선배님 카메라 좀 받으시던데요? 말씀도 잘하시고.”
말을 잘하긴. 인터뷰 때는 주절주절 계속 떠들게 하더니 방송에는 딱 한 마디 나오더구만. 눈에 힘줘서 보고 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로.
“그 프로그램, 은근히 재미있어서 계속 모니터하고 있어요.”
아무튼 오늘로 세 번째 레슨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이렇지 않았다. 자기 제안을 거절했다는 앙금이 남아 있는 건지 ‘그래, 네가 얼마나 가르치는지 한번 지켜보자’라는 듯이 뻣뻣한 태도로 연습실에 들어왔었다.
레슨을 받는 내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혹은 노려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그러다가 두 번째 레슨에선 눈가의 독기가 조금 풀어지더니, 세 번째인 오늘은 ‘이 여자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알고 보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어, 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건 보면 여전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잡담은 그만하고 레슨 계속합시다.”
“그래요.”
그럼에도 이 사람의 보컬 레슨을 자처한 것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유미는 말할 것도 없이 호소력 짙은 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다은이도 도대체 재능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훌륭한 가창력을 보여주곤 했지만.
유아연의 경우는 그 깊이에서 다른 사람들과 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최고의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목소리.
그런 소리를 눈앞에서 들으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다듬을 때마다 전율이 일어나곤 했다. 그 덕분에 내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발음이 변할 때마다 밸런스가 무너지잖아요. 아래에서 힘을 조금만 더 잡아보죠.”
그리고 아아아아아, 에에에에에, 성대를 안정적으로 접촉하기 위해 스케일 연습하는 걸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목소리에 내 마음이 사르륵 풀려 버리곤 했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서 톤이 얇아지거든요? 제가 연습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다음 시간까지 잡아 오세요.”
“또 마법을 부리시는 건가요?”
“마법이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져서요.”
처음에는 사람이 좀 변덕스러운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저는 저한테 일어나는 아주 미세한 변화도 분명하게 캐치하거든요. 선배님한테 레슨을 받은 이후로 안정적인 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럼 다행이구요.”
하지만 아직도 아쉬운 것은.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에 비해 대중성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이.
이제 작별을 고하듯이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걸 바로 잡아보기 위해 나도 노력을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조금은 무리를 해서 변화를 주어야 할지, 아니면 차라리 지금 나아가는 방향으로 더욱 깊은 소리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아직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아…… 이거 정말 괜찮은데요? 말씀하신 대로 하니까 힘을 빼고도 소리가 단단하게 만들어지네요.”
그녀는 그런 작은 일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유난히 밝게 웃고 있었다.
* * *
목소리가 손에 잡힐 것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어제 들었던 것처럼 생기 있는 소리가 다은이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진짜 미안. 내일 약속 못 지키겠어. 갑자기 스케줄이 생겨서.
-괜찮아. 다른 날 보면 되지.
-미안해.
-괜찮다니까. 근데 있잖아. 나 네가 부른 거 듣고 있다.
-어떤 거?
-이번 곡.
-아.
-진짜 이번 곡 완전 좋아.
-나 그거 레코딩할 때 죽는 줄
-왜?
-오늘도 널 기다리고 있어 여기 있잖아. 이 부분 천 번은 부른 듯.
-진짜?
-나 오늘 그거 불렀는데. 네가 천 번 불렀다는 그거.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눈을 꾹 감고 있었지만, 다은이는 잠이 오질 않았다.
아니, 목소리가 아니었나. 톡으로 대화한 거였나.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것이 되었든 지금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속으로 눌러 담아야 했다. 들어줄 사람이 없어져서.
나 오늘 그 노래를 불렀어. 나도 가수가 되었거든. 밤이 새도록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unpretty를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입가에 남아 있는 진한 초콜릿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 곡 다시는 듣기 싫었는데, 아니, 꼭 불러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이날 다은이는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리움을 가리고 있었지만, 무대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누우니 감정들이 물줄기처럼 터질 듯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빨리 자야 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런데 그 순간 방이 환하게 밝혀졌다.
“어……?”
어느새 연화가 일어서 있었다. 뒤덮고 있던 이불을 내리고 다은이는 퉁퉁 부은 눈으로 연화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부터 둘이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가깝게 좀 지내라고. 하지만 스케줄이 바빠서 매번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뻗어버렸다.
“몇 시야?”
“세 시 반.”
연화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다은이의 이불 옆으로 크리넥스 한 통을 툭 내려놓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깼지?”
“아니. 나도 안 자고 있었어.”
다은이는 티슈 몇 장을 붙잡고 팽 팽 코를 풀어 댔다.
“진짜 미안해. 나 화장실 가서 울게. 계속 자.”
“나가지 마.”
“…….”
“언니들 깨.”
“아…….”
바깥은 고요했다. 마치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니 시뻘건 눈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다. 미안해. 들릴 듯 말듯 내뱉고는 불을 껐다.
방 안이 적막해지니 이번에는 연화의 생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울음 소리가 자꾸 가로막고 있었던 생각.
연화가 잠을 못 이루고 있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참가 팀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미션.
‘다음 경연은 조금 특별한 내용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참여하시는 건 아닙니다. 팀당 한 명씩. 참가 팀에서 한 명을 대표로 정해주세요. 다음 경연은 팀 대표 혼자서 무대를 꾸미게 됩니다.’
한 마디로 메인 보컬들의 전쟁.
그게 다음 경연의 내용이었다.
그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리 팀에서는 누가 나가게 될 것인지.
팀 프로필에서는 자신이 메인 보컬로 되어 있었지만, 이 팀에서 누구의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가를 얘기한다면 선택은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될 것이다.
같은 팀을 하면서, 바로 옆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이 있었다.
게다가 오늘, 같은 파트를 번갈아 불렀던 곡에서 그게 더욱 두드러졌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 계속 연습하면 저런 감성을 가질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는 건지.
그 때문에 연화는 잠들 수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제 내려놔. 지금까지 열심히 했어. 너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잖아. 이제 그쪽은 포기해. 그런 말들이 귓가를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 * *
-박 실장님. 오늘 3시까지 결정해서 제출하라네요.
정영수 팀장은 오늘도 바쁘다. 얼굴 볼 틈이 없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건지 내비게이션 소리가 목소리에 섞여서 들려왔다.
“그거요? 오늘까지였어요?”
-네. 3시까지. 그런데 결정은 하셨어요?
우리 팀에서는 누구를 내보낼지. 그걸 말하는 것이었다.
-왜 하필 이런 컨텐츠로 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무대가 꽉 채워지지 않은 느낌인데 솔로 공연이라니. 게다가 우리 팀에서는…….
우리 팀은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긴 하지.
-결정하기 힘드시겠지만 박 실장님께서 수고해 주세요. 저는 박 실장님 결정을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이미 결정했어요.”
-아, 그래요?
“별로 고민할 일도 아니어서…… 전 오늘까지인 줄도 몰랐습니다. 녹화 있던 그 날 곧바로 말해주고 왔거든요. 우리 팀에서 한 명 내보낸다면 선택지는 당연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애들 반발이 있을까 봐.
“제가 잘 설득해야죠.”
-혹시나 해서 그런데, 누구 선택하신 거예요?
* * *
“커피 마실래?”
“아뇨. 괜찮아요.”
그러면서 연화는 종이컵으로 정수기 물을 받았다. 내가 해주려고 했는데.
“저는 그냥 물 마실게요.”
“그래.”
커피 받아내는 동안, 연화는 잠자코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연습실에서의 뜨거웠던 열기를 가라앉히겠다는 듯이 연화는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숙소는 언제 옮기기로 했어?”
“다음 주 화요일이요.”
“다음 주? 당장 옮겨도 모자랄 판에 다음 주는…… 하여튼 우리 회사는 대처가 늦어.”
며칠 전 애들의 숙소 앞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이른 새벽, 방송 스케줄이 있어서 출발하려는 애들 앞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아니, 나타난 건 아니고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지.
“그냥…… 사진 찍는 거였대요. 잡고 보니까 손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었어요.”
“그냥 사진 찍는 게 어딨어? 너도 참…….”
“전 괜찮아요. 그런 것도 저희에 대한 관심이잖아요.”
“그래도 팬하고 사생은 구분해야지.”
요즘 인지도가 오르고 있다고 벌써 사생이 붙는 건지……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원래 듣보돌한테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붙는대요. 그러면서 팬층이 넓어지는 거겠죠.”
“듣보돌이라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너희들 나중에는…….”
사람 많은 곳은 제대로 다닐 수도 없을 정도가 될 거다.
아마도 유아연 이상으로.
“예?”
“아니야.”
“얼마 전에 제 사진이 막 돌아다닌 적이 있었어요.”
“그래?”
“제목이 ‘요즘 듣보돌 클라스’라고.”
아, 그거 본 적이 있다. 별로 안 유명한 마이너 아이돌이지만 비주얼이 역대급이라면서 연화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 회사 홍보팀에서는 그것도 기회라면서 그 사진 밑에 비츠걸스라는 이름을 크게 박아서 다시 뿌렸고.
“그래서 별로 기분 나쁜 말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쉽게 생각하진 마. 사생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어?”
꼰대 같은 소리가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활동했을 때 얘기해 줄까? 그때 우리도 넷이서 숙소 생활하고 있었거든. 방은 참 넓었어. 남자 네 명이 대자로 누워도 넉넉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인데, 한참 자고 있을 때 누가 나를 툭툭 치는 것 같은 거야. 가끔 자다가 나한테 굴러오는 멤버가 있어서 또 그런가 하고 밀어내려고 했는데.”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눈을 딱 뜨니까, 처음 보는 여자가 내 팔을 베고 누운 채로 코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거야.”
“진짜요?”
“처음엔 무섭지도 않았어. 잠결이라서 이게 뭐지? 하는 마음이었지. 그 사람은 내가 깬 걸 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나랑 계속 눈을 맞추고 있었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지.”
연화는 우와-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 켜고 멤버들 다 일어났는데도 안 나가더라고.”
“선생님이 제일 인기 많으셨나 봐요?”
“내가?”
“넷 중에서 선생님 팔을 베고 누운 거잖아요.”
“아…… 내가 메인 보컬이었거든. 그 팀은 메보가 완전히 중심인 팀이라서.”
이거 말고도 할 얘기는 많았다. 아, 하긴 나도 그때 듣보돌이라서 듣보돌 킬러가 붙었던 건가.
“그렇다고 내가 제일 인기 많았던 건 아니고…… 그것도 두 번째 곡 폭망하고 행사 돌 때까지는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니, 나중에는 그마저도 없어지더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지금 뭐하고 살려나. 서른은 넘었을 텐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여튼 조심하라는 거야. 기가 막히게 알아내서 집 안으로 들어온다고. 너네 숙소 매니저까지 해봤자 여자 다섯 명인데…… 변태 같은 남자 새끼라도 들어오면.”
끔찍하다. 그래서 빨리 숙소를 옮겨야 하는데.
“그거 있잖아. 현관문 안에서 걸어놓는 거. 그거 꼭 하고 자.”
“네.”
그리고 방범창 같은 것도 좀 해놓고 그래야 하는데.
“선생님.”
“어?”
“저한테 하실 말씀 있어서 부르신 거 아니에요?”
“아, 맞아. 그래.”
중요한 말을 해야 했는데. 애들 걱정에 그만 잊고 있었다.
“다음 주 경연 있잖아. 그 얘기 좀 하려고.”
“네.”
“누굴 내보낼지 결정은 이미 내렸어. 하지만 한 명만 무대에 서는 거니까 서운해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른 거야.”
“괜찮아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왔어요.”
“그래.”
* * *
다은이를 처음 봤을 때 정말 놀라웠다. 이 회사에서 만난 거 말고, 그 애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던 걸 봤을 때.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마이크를 배 위에 얹혀둔 채로, 심사위원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나올 때부터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열일곱 살. 가수를 꿈꾸고 있기에 여기에 나온 것이라고 간략하게 소개를 마친 다은이는 노래를 시작했다.
예선 영상이라 제대로 무대를 갖춘 곳은 아니었다. 반주도 없이 생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첫 소절부터 헉! 하게 만들더니, 노래가 끝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스크린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쭉 뻗고 있었다. 너야 너. 우승은 너라고.
“우리 팀 대표로는 연화 네가 나가자.”
이 회사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귀가 예민해졌을 때에도 다은이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재능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얘는 반드시 훌륭한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 시작을 나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제가요? 다은 씨가 아니고요?”
“너를 내보낼 거야. 그렇게 결정했어.”
“저보고 서운해하지 말라면서요?”
“서운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부른 거라고. 너 말고 나머지 세 명을.”
“…….”
“아까 세 명 따로 불러서 얘기했어. 그것 때문이 이렇게 시간이 늦은 거야. 내 결정이 너네 팀워크를 깨뜨리면 안 되니까.”
웃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고.
단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꾹 깨물고 있는 아랫입술.
“왜 저를 선택하신 건데요?”
“혼자서 무대를 채워야 하는 거야. 너희 팀 네 명은 모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고 각자 잘하는 것이 있지만, 혼자 무대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래서 별로 고민도 안 했어. 피디가 나한테 그 내용을 전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했으니까.”
다은이의 재능에 감탄하는 시간을 거쳐 나에게 또 다른 능력이 주어졌을 때.
그 시점부터 연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할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목소리.
안무를 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매력.
그리고 무엇보다, 연화는 무대 위에서 유난히 빛나는 타입이었다.
네 명이 함께하고 있음에도 그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단지 예쁘게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들로 가득했다.
“선생님.”
“……?”
“저한테 미안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미안해서?”
“지난번 연습실에서 그 사건 때문에…….”
“아, 그거.”
데뷔하기 직전. 다은이가 연습에 지각하고, 거기에 한마디 하는 연화를 내가 나무랐던 그 일.
연습실을 나온 후에도 안무 트레이너에게 한 소리 들었었다. 애들 앞이라서 나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한 명의 편을 들면 그게 갈등을 더 부추긴다는 얘기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모를까. 욱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튀어나가 버린 것이지.
“설마 내가 그런 일로 너를 선택했겠냐.”
그리고 연화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그 뒤로 연화와 마주할 때마다 이 아이의 감정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대했다.
“열심히 해왔잖아. 10년 동안. 그래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네가 10년 동안 노력해온 것이 무대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
“대신 나하고 연습 좀 많이 해야 돼. 곡도 이미 정했는데, 그걸 소화하려면 발성을 다시 점검해 봐야겠어. 좀 어려운 곡이거든.”
유아연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늘 감탄하곤 했다. 요즘 들어 부쩍 그 시절 영상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대중성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는 너무나 뛰어난 아티스트라서.
하지만 그런 내 기준에 있어서도, 지금의 연화가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다은 씨는 뭐라고 했어요?”
“아까 불렀을 때?”
“네.”
“걔하고는 별로 얘기도 안 했어. 네가 나갈 거라고 하니까 좋아하더라고. 자기는 쉴 수 있게 됐다고.”
그랬더니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로 환하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승연이하고는 한참 떠들었지. 걔는 내가 한마디 하면 자기는 열 마디 하는 스타일이라서…… 걔 숙소에서도 그러니?”
그러자 아직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승연이는 밝아서 좋아.”
하지만, 정작 메인 보컬이 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픈 건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 어디 가서 가창력으로는 부족하단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텐데 지금은 두 동생 때문에 자기 파트를 챙기기도 어려우니.
“그때 연습실에서 그랬던 건…… 사과도 제대로 못 했네. 계속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다은이의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그 전날 늦은 시간까지 우리 둘이서 한 얘기가 있는데 그걸 하루 만에 어기는 걸 보고서 화가 좀 났던 거야. 그렇다고 네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고…….”
“괜찮아요.”
“그럼 내일부터 네 솔로 무대를 연습하기 시작할 거야. 따로 시간 좀 빼자고.”
“네.”
* * *
애들을 돌려보내고 나니 자정이 넘었다. 지하철은 벌써 끊겼고, 또 택시나 타야겠다.
어서 차를 사든지 해야지, 이러다간 버는 돈을 전부 택시 값으로 날려 버릴 기세였다.
그렇게 걷고 있던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개념 없이? 라는 생각으로 꺼내어보니 액정에는 마인 부우라는 글자가 자랑스럽게 떠 있었다.
-영민아. 너 아직 회사냐?
“아니. 퇴근 중.”
-너 내일부터 시간 좀 되겠어?
“뭐하게?”
-시간 좀 되냐고.
“나 요즘 바빠.”
-바쁜 건 아는데, 시간 좀 내봐. 내일부터 3일 동안.
생각해 보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이 녀석한테 바쁘다는 말을 하고 있어. 전에는 완전히 반대였는데.
-너 방송에 좀 나가자.
“뭐?”
-나랑 같이.
“너 설마…….”
-내가 요즘 하는 거 있잖아. 거기서 친구 좀 데려오래.
“그래서 나보고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라고? 너희 어머님 나오시는 그거?”
-그래.
내가 할 일이라면…… 애들 연습시키는 것, 유미 레코딩, 비츠걸스 신곡 준비.
시간을 만들려면 될 것 같기는 했다. 이 녀석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가 없지.
“알았어. 그런데 거기 나가서 뭐하면 되는 거야?”
-그건 내일 알려줄게.
그런 얘기였다. 요즘 일복이 생긴 건지. 자꾸 나한테 일이 들어온다.
전화를 끊고 이제 그만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또 핸드폰이 울렸다. 부우인가 싶어서 얼른 꺼내어 봤는데
[김우진 실장]이 사람은 또 왜?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이 업계는 새벽은 돼야지 이제 좀 늦은 시간인가 하고 생각한다. 자정 정도는 대낮인 줄 알아.
-내일 식사 좀 같이하실 수 있으신가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