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6
2장 몬스터 뮤직 A&R 본부장
몬스터 뮤직 같은 작은 곳에 사업 본부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을 리는 없었다. 여러 직무에 문어발처럼 얽혀 있는 직원들의 구조상 그런 구분이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었다.
팀도 마찬가지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오가기도 한다.
‘팀원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팀장인 거야.’ 실제로 구성원이 없지만 명분상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실장에서 본부장으로 승진? 그렇기에 사실 이건 승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차장으로 올라가는 식의 직위 상승은 승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A&R 사업본부의 본부장.
말하자면 상징적인 의미였다.
‘이제 몬스터 뮤직은 이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라는 선언과 같은 일이었다.
결재 체계와 업무 지시 라인이 변경된다는 것. 한 마디로 몬스터 뮤직에서 음악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은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였다.
비슷한 걸로는 ‘이사’라는 직위도 있다.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직 상장되지 않은 몬스터 뮤직에서 이사라는 직위 또한 그저 상징적인 것에 불과했다.
“영민아!”
“안녕하세요.”
“아이고 영민이란다. 본부장!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어제까지 본부장이었던 대머리 아저씨는 오늘부로 이사가 되었다.
“아침에 공고 보고 놀랐지?”
놀랐다니. 전무와 충분히 상의가 된 내용이었고, 어제도 한참 통화를 나누었다.
“본부장님, 아니, 이사님.”
“그래.”
축하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직책만 이사일 뿐 권한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그렇다고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순 없었다.
“앞으로 이사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내가 무슨.”
“저는 아직 모르는 게 많잖아요.”
이 회사에 들어온 지 8개월 차. 아직은 구석구석 모든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게 많아서 좋은 거야. 네 방식대로 끌고 나가 봐. 전무님이 원하시는 게 바로 그거야. 우리는 변화가 필요한 거니까 예전 방식에 따를 필요는 없어.”
마치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듯한 미소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어제 전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하필이면 이 대머리 아저씨와 저녁을 함께한 직후였다.
-자네 생각은 어때?
어떻게 좌천시킬 것인지……. 그걸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영민아. 하지만 모든 직원들이 너를 축하하지는 않을 거다. 사람 열 명이 모여 있으면 그 속마음도 열 가지가 있는 거잖아. 분명히 너를 향해 빨간 등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야.”
대머리 이사님은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그리고 목소리를 조용히 낮추며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 휘둘리지 마. 네가 우리 회사에 온 지 8개월 됐지? 그 8개월 동안 이루어놓은 건 우리가 8년 동안 해낸 것보다 더 값진 것이었어. 일에 있어서 네 앞에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거야. 나도, 인혁이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내 등에 손을 얹혀진 그의 손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업무는 축소되었고 좌천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연봉은 오히려 올랐다.
전무의 질문에 대해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해 줘야 하고, 그래야만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고.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한 보상이 없으면 그 조직은 무너질 것이다.
누구보다 전무가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걸 나에게 물어본 것은 최종적으로 나를 떠본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영민아. 잘 해보자!”
곧이어 시작된 회의에서 나는 가운데 앉아 유난히 많은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각 부서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변경된 업무의 체계가 잡힐 때까지는 나의 승인 없이 단독 행동을 금한다고 말했다.
특히 앨범 제작에 있어서는 나와 충분히 논의할 것을 부탁했다.
“이 회사를 여기까지 이끌고 오신 분들에게는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했던 일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두 개의 앨범을 제작했다.’ 이것뿐입니다. 지금까지 몬스터 뮤직이 해냈던 수많은 실적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일일 겁니다.”
하지만 현재 가온 차트에서 주간 앨범 순위 1위와 2위는 내가 제작한 앨범들이다.
“황유미와 비츠걸스의 성공적인 데뷔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것 이상의 성과를 일 년 내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 * *
승진 공고의 또 다른 두 명은 신입 매니저들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대리로 진급시킨 것이다.
다른 부서도 그렇긴 하지만 매니저들은 특별히 대우해 줄 필요가 있었다.
신입 매니저가 입사하면 다른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여느 신입 사원처럼 열정이 머리끝까지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누구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회사에서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한 젊은 인재를 보면서.
‘이번엔?’
‘난 두 달 본다.’
‘두 달이나? 내 생각엔 3일.’
‘에이, 그래도 3일은 너무하지 않어?’
‘지난번에 그 사람도 그랬잖아. 못해도 한 달은 버틸 거라고 봤던 사람. 근데 어떻게 됐냐? 그다음 날 못하겠다고 문자 한 통 보내고 잠적해 버렸지.’
정말이다. 신입 매니저가 올 때마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예상하곤 했다.
놀리는 것이 아니다.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다.
이번에는 제발 석 달은 버텨주기를……. 하지만 석 달은커녕 한 달을 버티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잠잘 시간은 고사하고 자기 시간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자기만의 시간을 1분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버려야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반년이나 버틴 두 명을 승진시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1팀에서 한 명, 3팀에서 한 명, 그렇게 로드 매니저 두 명을 대리로 승진시키고 격려금까지 전달했다.
‘지금 버틴 것만큼 한 번만 더 버텨주세요’라는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버티고 버텨서 우리 회사 매니저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매니지먼트 1팀장이 다가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본부장님.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나이는 나하고 동갑이라고 했지만 고된 일을 하기 때문인지 겉모습은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와이셔츠를 찢어버릴 듯이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대체 운동은 언제 하는 건지.
“박 실장님이 본부장으로 승진하셨으니, 이제야 마음 놓고 회사에 나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했다.
“저는 박 실장님, 다른 회사 가실 거라고 봤거든요.”
“제가요?”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형 기획사에서 안 잡아갈 리 없잖아요. 박 실장님이 손만 대면 차트에서 지붕을 뚫는데 말이죠.”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정말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실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불안해하고 있었죠. 저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잡아야 되는데. 그렇다고 이 회사에서 경력 8개월인 직원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진 않을 것 같았으니까요. 사실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잖아요. 아무리 작은 회사라고 해도.”
옆으로 찢어진 두 눈이 너무나 작아서 도무지 눈빛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웃고 있으니, 눈동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겁니다. 이제야 회사에 마음 놓고 나올 수 있겠어요. 다른 곳으로 가시지 않을 테고, 계속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실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음악을 잘 만들어주시면, 우리처럼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한결 편해져요. 앞으로 일할 맛 좀 나겠습니다. 축하드려요.”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진다. 그가 나에게 전달하고 있는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감정을 포장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 그의 등 뒤에서 나를 겨냥하고 있는 적대심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이런 것에 둔한 편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 아주 많이.
* * *
비츠걸스의 스케줄은 예고되었던 대로 도무지 쉴 수 있는 시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듯했다.
팬사인회, 각종 라디오 방송 출연, 케이블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
지상파 방송국에서도 섭외 온 것이 꽤 있다고 하는데 정 팀장은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지상파의 주말 예능에 나가 분량을 확보하면 순식간에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인지도를 대폭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연말 가요제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한 자리라도 따내기 위해선 방송국 사이의 눈치를 여간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A&R 파트에서는 한 장의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보이그룹 한 팀의 기획을 마무리하는 일이 있었다.
보이그룹의 경우는 김인혁에게 일임되어 있었고 가급적 나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도움을 원하면 언제든지 함께할 생각이 있었지만, 굳이 손을 뻗어오지 않는데 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은 이 회사에 나를 꽂아준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내가 프로듀싱을 맡기로 한 앨범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아티스트는 최인환. 올해 마흔세 살인 솔로 보컬리스트.
“최인환 선배님? 저는 몬스터 뮤직의 박영민이라고 합니다.”
-아아, 박영민 실장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첫 통화였다. 목소리는 밝아 보였다.
“말씀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선배님의 이번 앨범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최인환 선배는 지금까지 세 장의 앨범을 발매한 가수였다. 올해 마흔세 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초라한 활동이었다.
데뷔가 늦기는 했다. 스물일곱 살에 데뷔. 그것도 손동하 사장에게 픽업되지 않았다면 영영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목소리였다.
원래는 작곡가를 꿈꾸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던 손동하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데모 테입을 보냈는데, 정작 손 사장이 매료된 것은 데모에 가이드로 입혀진 최인환의 목소리였다.
-작곡도 잘하지만 자네는 노래를 불러야 돼.
생계가 어려워 최후의 발악이라고 생각하고 손동하에게 데모를 보냈던 최인환은, 고민 없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손동하 사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선배님. 이번 앨범 작업을 위해서 미팅을 가졌으면 하는데요. 어떠세요? 회사로 오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갈까요?”
-당연히 제가 가야죠.
“어려우시면 제 쪽에서 찾아뵐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괜찮아요.”
소문을 듣기로는, 최인환 선배는 몇 년째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내 쪽에서 배려해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제 앨범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미안한데, 여기까지 오시게 할 순 없어요.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최인환 선배의 가창력은,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처럼 맑은 미성, 음과 음 사이에 수없이 존재하는 피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정확하게 박자를 찍지 않고 오로지 느낌에만 의지해서 기가 막히게 리듬을 타는 감각 등등.
대중들에게 유명한 가수는 아니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보컬 트레이닝을 할 때에도 자주 거론되는 이름이다.
‘목소리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지 감정을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거야. 이건 그러니까…….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최인환을 들어봐.’
이런 식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저는 내일 하루 종일 회사에 있을 거니까 편한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하지만 세 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히트곡은 하나도 없었다.
첫 앨범의 경우 손동하 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준 것이기에 음악의 완성도는 뛰어났다. 내가 듣기에도 충분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앨범을 발표하자마자 대마초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고 그대로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텀을 두고 발매한 두 번째 앨범은 소속사의 지원이 없었기에 제대로 활동해 보질 못했고.
몬스터 뮤직에서 발매한 세 번째 앨범은 완숙미에 이른 최인환의 보컬이 인상적인 명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를 동시에 잃은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 그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집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로 6년이 지났다. 6년 만에 그는 앨범을 내겠다고 돌연 회사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선배님. 혹시……. 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박영민 실장님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정말로 기억하는 걸까.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너무나 맑은 목소리로 들려온 그 말이 내 가슴 속에 깊은 여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억해요. 박영민 실장님이 포보이스로 활동하셨던 그때……. 우리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 * *
애들에게 핸드폰이 돌아갔을 때 우리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멤버 네 명, 나, 정 팀장, 로드 매니저 두 명, 이렇게 일곱 명이 있는 방이었다.
그런데 대화가 별로 없었다.
-오늘 수고했고, 몇 시간 못 자겠지만 그래도 들어가서 눈 좀 붙이다가 나와.
-네.
이게 이틀 전의 대화. 그 뒤로 한 마디도 대화가 없었다. 심지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화를 읽지 않았는지 2라는 숫자가 대화 끝마다 붙어 있었다.
바쁘니까.
조금만 시간이 나면 기대어 자고 싶을 테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기들 네 명만 있는 방 따로 팠을 걸요.”
그저께 대리로 승진한 로드 매니저가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아……. 그래요?”
“우리하고 같이 있는 건 불편하다는 거죠.”
“불편해요? 뭐가 불편하다고.”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창구도 있어야 하잖아요.”
“맨날 붙어 다니면서 무슨…….”
“이동하는 중에 지들끼리 핸드폰 보면서 시끄러워요. 말하는 거 보니까 댓글 반응 같은 거 퍼와서 자기들 단톡방에 공유하고 그러나 봐요.”
하긴, 그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팀워크가 굳건해지면 좋은 일이고.
그런데 왜 이렇게 서운하냐.
“제 얘긴 안 해요?”
“박 실장님, 아니, 본부장님 얘기요?”
“…….”
“안 하는 것 같던데요.”
안 하는구나.
“그런데 애들 팀워크는 요즘 어때요?”
“괜찮죠. 화기애애해요.”
“연화하고 다은이도요?’
“뭐 아주 가까워 보이진 않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네요.”
정말로 그랬다. 내가 보기에도 둘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심성이 나쁜 애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하루 종일 붙어 다니고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니까.
하지만 이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단체 생활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한창 예민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애들인데.
팀워크가 좋아 보이는 것에는, 그리고 불협화음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두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팀이 잘되고 있으니까.
잘되고 있으니 지나쳐 버린 흔적을 돌아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있을 테니 마음속에 불순한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삐끗해서 내리막을 걷거나, 아니면 넷 중 한두 명만 위로 치솟아버리면 조용히 숨어 있던 그 불순한 것이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아이들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모든 것은 관리자의 재량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좀 더 능숙한 관리자가 있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갈등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선물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팀장님께서 따로 보관하고 계세요.”
“그 뒤로는 온 거 없죠?”
“아직 없습니다.”
* * *
최인환 선배가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였다.
색이 바랜 감색 코트를 입고 있는 것과, 구두가 조금 낡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저 수수한 용모였다.
‘폐인처럼 살고 있다’라고 알려진 것에 비하면 의외의 모습이었다.
“박영민 실장님.”
그는 나를 곧바로 알아보고는 내 자리로 찾아왔다.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모아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이 말을 하고 있었다.
‘최인환이다.’, ‘저 사람 아직 살아 있네.’, ‘웬일로 저 사람이 여기에 온 거야?’ 등등.
“선배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그를 데리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박 실장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자리에 앉은 그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그럽니까? 제 앨범을 내주시겠다는 분인데.”
커피를 권했더니 안 그래도 잠자는 게 고역이라면서 카페인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박 실장님이 올해 몇 살이죠?”
“서른다섯입니다.”
“서른다섯……. 벌써 그렇게 됐네요. 우리가 예전에 만났을 때, 박 실장님 나이가 스물셋? 스물넷? 그 정도였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랬었죠.”
아마도 나는 스물넷이었을 것이다. 최인환 선배는 그 당시 30대 초반, 나하고는 여덟 살 차이 나니까 서른두 살.
나는 포보이스가 망하고 멤버들 계약까지 끝나갈 무렵이었고, 최인환 선배는 2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던 때였다.
둘 다 급으로 따지면 바닥을 기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무대에 자주 서곤 했다. 잘해봐야 차비와 밥값 정도 나오는 그런 무대에.
“그때…….”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허접한 행사에서는 대기실이 갖추어졌을 리 없고, 그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은 늘 함께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친해져서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고.
‘내가 사람 됐지. 그 사람 덕분에.’
광인이라고 불리던 이미지와는 달리, 그때에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짧고 굵게 살겠다고 대마초까지 스스럼없이 했던 최인환 선배는 아내를 만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다음 다음 달이 예정일이야.
-정말이에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아들.
-축하해요!
-큰일이야. 나 닮으면 안 되는데.
-왜요? 형 닮았으면 노래 잘하겠죠.
사람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애기 분윳값 벌어야 한다면서 아무리 작은 행사 무대라도 열심히 노래를 하는 모습에 늘 감명을 받곤 했다.
“예? 박 실장님. 말씀하세요.”
“아니……. 앨범 얘기 좀 해보죠.”
도무지 안부를 물을 수 없었다. 형수님 잘 계시죠? 애기는 잘 크고 있죠? 아무 일 없었다면 이런 말이 오갔을 텐데.
* * *
“일곱 살이요?”
“그래요.”
“내년에 학교 들어가요. 진짜 요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둘째가 있었다. 이건 나도 모르고 있었다.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딸.”
“아…….”
“그런데 얘는 엄마 얼굴도 제대로 몰라. 젖 떼기 전에 엄마가 죽어버려서. 하하.”
뒷머리를 긁으며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처량해 보였다.
“내년엔 이 녀석 학교 들어가니까 돈 벌어야죠. 창피하지만 그래서 얼굴 내밀었습니다. 저 돈 벌어야 돼요. 그래서 노래하려는 거예요.”
6년 전, 첫째 아이와 아이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3집 앨범이 막 발매된 직후였다.
최인환은 그 후 잠적하여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물으니, 사고 때문에 받은 돈이 있어서 그걸 쓰며 살았다고 한다. 보험금인지 합의금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돈으로 간신히 생활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선배님. 곡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써두신 거 있으세요?”
“없죠. 저 곡 안 쓴 지 오래됐어요.”
“그럼 어떤 방향으로 가볼까요? 생각해 두신 거라도?”
“없어요. 부르라는 거 부르겠습니다.”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한마디로 더미 앨범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가수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행사 등의 무대에 오르는 것이고, 이런 행사에 캐스팅되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캐스팅 담당자는 아무렇게나 가수를 섭외하지 않는다.
-최인환? 그 사람 노래 참 잘하지. 그래, 이번에 그 사람 부르자.
이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행사에 캐스팅할 가수를 고르기 위해선 리스트가 작성되는데, 이 리스트에 오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해당 연도에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다.
발표한 앨범이 있고, 신곡이 있는 가수. 이 조건이 있어야만 학교나 기업 등의 행사에 섭외될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정말 아무 생각 없습니다. 몇 곡이라도 상관없어요. 부르라는 거 부르고, 하라는 거 하겠습니다.”
그래서 행사에 캐스팅되기 위해서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발매하는 앨범을 더미 앨범이라고 한다. 혹은 계약 조건에 몇 장의 앨범을 내야 한다고 명시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내는 것이나.
투자금을 받아서 제작비만 몇억 하는 고퀄리티의 앨범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리스트에 올라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무대에 서는 것이 목적인 셈이다.
“제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오겠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그럼 말씀 마친 후에 연습실 들러서 톤을 점검해 보고요, 곡을 제가 골라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고 있는 선배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눈이 죽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영혼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영민아. 노래에 영혼을 담지 않으면 관객들이 대번에 눈치챈다. 이 무대를 끝으로 인생을 마쳐도 된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해야 되는 거야. 인마, 형은 맨날 그렇게 무대에 오르고 있어.
이런 소릴 했던 꼰대 아저씨는, 그리고 힘든 시기에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음악적인 열정을 다졌던 그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 *
이따금 애들에게 메시지가 오곤 했다.
뭐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단톡방에는 절대 안 불러주겠지만, 그래도 나하고 개인톡은 가끔씩 하곤 했다.
프로듀서이자 보컬 트레이너라는 위치 때문일까. 그렇게 나에게 도착하는 메시지에는 애들의 애환 같은 것이 묻어 있곤 했다.
[쌤. 저 잘하고 있는 거겠죠?] [당연하지.] [확실하게 얘기해 주세요. 다은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래. 잘하고 있어.] [아뇨. 이름까지 불러서. 제대로요.] [그래. 다은아. 잘하고 있어.] [ㅇㅋ 됐어요ㅋㅋ]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연화의 경우는 가끔씩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생님. 활동하는 중에도 보컬 레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 스케줄 때문에 그럴 수 없잖아. 그리고 무대에서 계속 라이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쉴 때는 쉬어줘야 해.]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흐트러질까 봐 걱정돼요. 선생님한테 점검을 받고 싶은데.] [시간 나면 너희 리허설 할 때 한 번 가볼게.] [시간 내시기 힘들잖아요. 이제는 본부장이 되셔서 더 바빠지실 거면서.]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얘길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방송 나오는 건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여서.
주변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행복하겠지만, 그러한 이면에는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이제는 아무렇게나 바깥을 돌아다닐 수도 없게 되었고, 언제 찍혔는지도 모르는 사진들이 깔끔하게 보정되어 인터넷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자신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 자신을 바라보면서 힘을 내는 사람들. 가벼운 손짓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들.
그 중심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본부장님. 메모 남겨놓은 것 있습니다.”
“아, 예.”
“부재중 전화가 있었습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니 연락처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본부장이 된 이후로 이따금 모르는 사람의 연락을 받을 일이 종종 생겼다.
거래하는 업체에서 인사차, 프리랜서 작곡가들도 연락을 주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광고 전화까지.
하도 연락이 많이 와서 부재 시 다른 직원이 전화를 받으면 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어디 소속인지 밝히지 않고 달랑 이름과 전화번호만 남겨져 있길래 굳이 전화를 걸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좀.
이렇게 소속을 밝히지 않은 채 남겨진 메모는 없었는데.
그래서 걸어봤다. 도대체 누군가 싶어서.
-반갑습니다. 김성준 본부장님.
젊은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모습.
‘김성준 본부장님은 이제 이사님이 되셨구요, 저는 이번에 새로 본부장이 된 박영민입니다.’ 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지만.
뒷목을 얼려 버릴 듯한 쎄한 느낌이 들어,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말
-선물을 왜 안 받아주십니까? 서운합니다. 하하.
나는 다시 메모지를 확인했다.
처음 보는 이름. 처음 보는 연락처.
“누구십니까? 소속을 밝혀주시고 말씀하시죠.”
-만나서 얘기했으면 합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라는 거죠?”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지만 시선은 사무실 사람들에게로 옮겨졌다. 누가 나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이 통화 내용을 듣고 있지는 않은지.
“어디 소속인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만큼 제가 대담하지는 못합니다.”
상대는 우리 애들의 바뀐 숙소를 알고 있을 만큼의 정보력이 있지만, 이 회사의 본부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
머리를 굴려봤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만나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은 김성준 본부장님과 저 외에 다른 사람은 이 사실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관련해서도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부담 없이 시간을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 * *
보컬 트레이너였을 때는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었다.
그때에는 3개월 임시직이라는 제한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홉 명의 아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오직 그것만 신경 쓰면 충분했다.
프로듀싱을 맡게 된 후에는 신경 써야 할 것이 조금 늘어났다.
음악이 만들어진 이후에 대해서, 이 음악이 세상으로 나가 버린 이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했다.
결과를 살펴봐야 했고, 이것이 어떻게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도 머리에 넣고 있어야 했다.
A&R 본부장이 된 이후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 눈에 담고 있어야 했다.
“본부장님. 여기 요청하신 자료 가지고 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기본적인 장부부터 예상 매출액을 산정한 것까지.
쭉 훑어보면 회사 돌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시점에서는 비츠걸스가 몬스터 뮤직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앨범과 각종 굿즈까지 포함해서 매출액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유아연이었다. 차트에서는 차이가 벌어졌다지만 오가는 돈의 크기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두 가지 메인 상품의 경우에는 판매되는 액수가 현저하게 컸지만, 투자에 대비해서 보면 유미의 경우도 만만치 않았다. 이익률로만 보면 유미 쪽이 가장 컸다.
반면 최인환 선배의 경우는 예상 매출액이 크지 않았고 예상 이익률 또한 적었다.
몬스터 뮤직이 분류하고 있는 등급에서 최인환 선배와 같은 급의 케이스를 적용해서 계산한 것이었다.
어렵게 돌려 말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몬스터 뮤직의 본부장이 최인환에게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주아주 비효율적인 행위라는 것이었다.
물론 회사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숫자로 표현된 자료를 가까이 두고 있으니, 그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회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 어느 정도의 상품인지.
전에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면 이제는 회사를 회전시키는 숫자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돌아가는 돈의 액수를 보면, 나는 최인환 선배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다음 분기에 런칭하기로 예정된 보이그룹이 훨씬 중요했다.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매출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비츠걸스의 초동 판매량이 3만 장을 넘어 성공적이었다고 여기는 반면.
같은 티어의 보이그룹 초동 판매는 10만 장을 훌쩍 넘는다. 3배가 넘는 액수이다.
잘 키운 걸그룹 하나, 열 보이그룹 안 부럽다……. 라는 말은 이 시장에서 있을 수 없었다.
만약 다음 분기에 데뷔하는 보이그룹이 비츠걸스만큼만 성공적인 데뷔를 한다면.
몬스터 뮤직은 완전히 다른 회사로 탈바꿈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저기, 본부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최인환 씨 앨범 제작하신다면서요?”
“예.”
“본부장님께서 직접 하시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이런 말씀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본부장님께서는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람 또한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직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고, 본부장님. 이러다가 최인환 씨도 1등 만드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허황된 목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왜요? 본부장님이라면 가능하실 것 같은데요.”
이렇게 듣기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의 얘기를 귀에 담아야 하고, 누구를 멀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누가 내 편에 있어줄 것인지.
예를 들어 1팀장 같은 경우는.
“최인환 씨는 저희 팀에서 못 맡습니다. 2팀에서 관리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1팀은 소위 말해서 이 회사 가수 중 잘나가는 사람들 선별적으로 관리, 그리고 2팀은 손동하 사장 시절부터 함께해온, 철 지난 가수들을 관리. 이렇게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 팀장의 3팀.
“물론 본부장님이 원하시면 저희 팀에서 맡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그만한 성적이 나와줘야겠지만요.”
“그래요?”
“본부장님이 맡으신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로 흥미 있게 보고 있습니다. 과연 본부장님이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지 말입니다.”
내가 그에게 받았던 느낌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 *
그리고 저녁이 되었고,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가니 고즈넉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목이 가득 채워진 마당을 가로지르니 기와가 얹혀진 한옥이 보였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처마가 받히고 있었고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등불이 아늑한 분위기로 아래를 밝히고 있었다.
전 본부장의 이름을 대니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 남자가 나와서 나를 안내했다. 약속 시간 20분 전. 아직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목을 축이면서 세팅된 테이블을 지켜보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밝은 미소, 정겹게 나누는 악수, 바둑의 포석을 두듯 빈 공간으로 인사말이 채워지고 있었다.
나하고 비슷한 또래였다. 웃음과 웃음 사이에 가끔씩 드러나는 메마른 눈빛이 유난히 거슬리는 남자였다.
건네받은 명함은 무슨 프로덕션의 실장. 명함만 봐서는 뭘 하는 회사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는 내 명함을 보더니 그제야 이름이 달라진 걸 알아본 듯했다. 잠시 눈을 찌푸리다가 다시 표정을 바꾸었다.
“회장님께서 서운해하십니다. 선물 고르시는 데에만 이틀이 걸렸어요.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 받질 않으시니 얼마나 서운해하시는지 모릅니다.”
“선물에 목적이 실려서 도착했는데 그걸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목적이라뇨. 그런 거 없습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뒤로 물러설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의문의 선물이 도착한 것이었고 그걸 보관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책임을 추궁받을 일도 없었다.
‘너무 비싼 선물이 도착해서 이걸 돌려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실무자 선에서 판단 가능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상대가 제시하는 목적까지 알게 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대개 은밀한 제안의 경우, 제안을 하는 쪽은 그것이 실무자 선에서 해결되길 바란다. 소속된 연예인에게 스폰서가 붙어 있는 걸 모르고 있는 대표도 더러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연예인과 직접 접촉하거나, 아니면 매니저를 통해서.
한 시간에 걸친 포석을 마치고 돌들이 중앙을 향해 활로를 찾아가고 있을 무렵, 상대는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본부장님도 섭섭하지 않게 대우해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생각 없어요.”
심지어 그는 아주 노골적이었다.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금액까지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 애들은 무척 바빠서 그렇게 시간을 낼 수도 없어요. 응원해 주시겠다면 멀리서 계속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누가 보면 제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는 줄 알겠습니다.”
“투자를 하실 거면 정식 절차를 밟아서 해주세요. 보내주신 선물은 명함에 적혀 있는 주소로 반송하겠습니다.”
“아이고, 본부장님. 생각보다 꽉 막혀 있는 분이시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 * *
-그래서요? 그냥 나오신 거예요?
“계속 거기 앉아 있을 순 없었죠. 그런데 정 팀장님. 이거 경비 처리 안 되죠? 제가 먹은 거 제가 내고 나왔는데.”
-알아볼게요.
“그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카드 긁는데 금액 찍힌 거 보고 아찔했다니까요. 배라도 제대로 채우고 나올걸…….”
시동을 걸어놓고, 차는 출발시키지 못한 채 정 팀장부터 찾았다.
-그런데……. 녹음은 제대로 해두셨죠?
“하긴 했는데……. 별 내용은 없어요. 회장이라는 사람이 후원을 하고 싶다, 뭐 이런 얘기였는데. 하지만 애들을 따로 보고 싶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리고 후원할 거면 공식적으로 해야지, 저한테만 따로 연락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비츠걸스의 입덕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연화의 독보적인 비주얼, 그리고 또 하나는 선하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퍼포먼스였다.
팔과 다리가 길고 아름답게 뻗어 있었고, 몸매의 균형 또한 무척 좋아서 언제나 춤선이 이쁘게 나왔다.
내로라하는 춤꾼들도 선하의 춤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냥 안무를 외워서 보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잘 알고 모든 동작에 감정을 불어넣어 보여준다면서.
게다가 배드 보이에서 네버마인드로 이어지면서 선하의 동작에서 관능적인 부분이 유난히 강조되기도 했다. 팀에서 섹시 어필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연화하고 선화를 따로 만나고 싶대요.”
-뭐라구요?
“격려하는 의미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합니다.”
-그건 뭐, 대놓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런 게 아니라곤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만남을 가질 때마다 나에게도…….
“주소 보내드릴 테니까 그건 얼른 치워 버리죠.”
-알겠습니다.
정 팀장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만약 정 팀장이 나에게 상의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일을 처리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을 하든지 나에게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면.
하지만 정 팀장은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의견을 구했다.
“정 팀장님. 그리고 말씀 들으셨겠지만 제가 최인환 씨 앨범을 맡기로 했습니다.”
-예. 알고 있어요.
“매니지는 정 팀장님 팀에서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알겠습니다. 모레 즈음에 사무실 들릴 거니까 미팅 좀 해보죠.
“어떻게 보세요? 이번 최인환 씨 앨범.”
-예? 앨범이요?
“정 팀장님 의견 좀 들어보고 싶어서요.”
-저요? 글쎄요……. 결과물이 나오지도 않은 걸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네요. 음악에 대해서는 박 실장님이, 아니 본부장님이 잘해주실 테니, 저는 이쪽에서 제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차를 몰고 나오며 어느 정도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조직 생활을 하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정도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 * *
그렇게 내가 정 팀장을 신뢰하고 있듯이, 누군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면.
나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 고생했어.
“제가 잘 처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야. 잘했어.
전무의 굵은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아연이한테도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골치 아팠어. 담당자가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해서 말이야.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 아무 일 없었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중요한 건 우리 회사의 가치야. 우리가 음악 장사를 할 수 있는 건 몬스터 뮤직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 바닥에선 단 한 번의 실수가 그 가치를 제로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필요가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자네가 최인환의 앨범을 손대는 것 같은데. 이게 사실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본부장이 되기 전부터, 이미 다음 분기 계획을 잡으면서 결정된 사항이었다.
-나하고 약속을 했었지. 자네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해주면 그것을 결과로 말해주겠다고.
“예. 믿어주신 만큼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훈수를 둬도 되겠나? 나는 꼼수를 좋아하지 않아. 약자의 꼼수는 곧 악수로 이어지는 법이야.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전무가 이처럼 자신의 우려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어. 실수도 할 수 있지. 사람인 이상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야. 하지만 나는 변명을 들어줄 여유가 없어. 잘해보자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