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28
3장 몬스터 뮤직의 아티스트들
김우진은 얼마 전 종편 방송국의 어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장시간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다.
아이즈 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프로듀서로서 인터뷰에 임한 것이었다.
가수를 꿈꾸며 연습생이 되었지만 데뷔에 실패했던 이야기, 그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철강 회사에서 일을 했던 이야기, 그러다가 작곡 대회에서 대상을 타며 화려하게 작곡가로 데뷔했던 이야기 등을 진행자의 질문에 맞추어 들려주었다.
‘예전에는 음악을 귀로 듣는 것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감정에 감상자가 이입할 수 있으면 좋은 음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가수의 매력이 중요해졌고, 나머지 모든 건 그 매력에서 파생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음악을 귀로 즐기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자기가 어떤 가수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고 있어요. 제가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것도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음악적인 가치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GH 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에피아라는 걸그룹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한참 동안이나 에피아 칭찬을 늘어놓았다. 타 회사의 상품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니, 인터뷰 분위기는 계속 훈훈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클래스에 4명의 프로듀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 4명에 김우진 씨도 포함되는 건가요?’
‘아, 네. 저도…… 하하.’
‘충분히 그럴 만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4명 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몬스터 뮤직의 박영민 씨예요.’
‘아…… 그분.’
내 얘기가 덜컥 나와 버렸다.
‘그분이 지금까지 앨범을 세 장 내셨는데요, 매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어떻게 말하면 이걸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대중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계신다고 해야 하나…… 음악하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는 걸 결과물로 보여주세요.’
‘대중적인 감각이 좋은 거군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가 아주 세밀하게 배치되어 있는 겁니다. 가수를 보는 눈도 좋으신 것 같고…… 매번 신곡이 나올 때마다 깜짝 놀라요.’
‘그럼 아까 언급하신 포포 씨와 비교하신다면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그건 어려운 질문인데…….’
포포라는 사람은 GH 엔터테인먼트의 수석 프로듀서이다. 본명은 밝혀진 것이 없고 포포라는 가명으로 앨범을 제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놓는 결과물은 비슷해요. 하지만 GH 엔터는 업계 최고의 회사인데 반해 몬스터 뮤직은 그 정도가 아니잖아요. 조심스러운 얘기이긴 하지만,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같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 박영민 프로듀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럼 현시점에서 국내 최고의 프로듀서는 박영민 씨라는 말씀인가요?’
‘둘 중에서 누가 더 나은가를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구요, 최고라면…… 아마도 제가 아닐까요? 하하.’
* * *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클래스에 있는 네 명의 프로듀서.
거기에 나를 꼽아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네 명을 거론하는 경우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정상급 프로듀서라고 하면 두 명 정도가 언급되곤 했다. GH 엔터테인먼트의 ‘포포’와 우리 회사의 뚱땡이 프로듀서. 이 정도였다.
김우진의 경우는 음악계에서 아는 사람들만 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케이스는 아니었다.
반면 인혁이는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를 볼 때에는 화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지명도에 있어서는 가장 높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력으로 줄을 세우는 건 애초에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인지도로 줄을 세운다면 그렇게 두 명이 선두에 꼽힌다는 것이었다. 포포와 김인혁.
그런데 포포의 경우는 인혁이처럼 방송을 통해 다수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수의 관계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포포의 본명을 알지 못했고, 나이와 성별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신비주의. 말하자면 그런 거였다.
하지만 GH 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는 앨범에는 모두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얼마 전 데뷔한 걸그룹 에피아의 경우도 앨범 프로듀싱을 포포가 했고 전곡을 포포가 작사․작곡했다.
때문에 포포를 둘러싼 소문은 여러 가지였다. 개인이 아니라 팀이라는 소문. 대중음악을 하기에는 자신의 고귀한 예술적인 정신이 버틸 수 없어서 그런 가명으로 창작 활동을 한다는 소문. 60대 할아버지라는 것부터 10대 여성이라는 얘기까지. 심지어는 대중들의 취향을 분석해서 해답을 내놓는 인공지능이라는 터무니 없는 얘기도.
그러한 소문들이 퍼지며 인지도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박영민 본부장님은 네 명을 꼽는다면 누굴 선택하실 건가요?”
“당연히 김우진 실장님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저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구요.”
“하하. 그렇죠.”
“저희 회사의 김인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녀석 요즘에는 주춤하지만 곧 자기 실력을 보여줄 거예요.”
“그분도 대단하시죠.”
“지금 보이그룹 만들고 있거든요.”
“아아, 네.”
초등학생처럼 이런 유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김우진과 나였다.
너는 대단하고 나도 대단해. 이건 우리 둘만 되는 거야. 마치 이런 개그 대사처럼.
“그럼 그렇게 세 명?”
“아뇨. 포포 씨도 포함해야겠죠?”
“그렇긴 하죠.”
“그럼 포포 씨까지 네 명.”
“제 생각이랑 똑같은데요?”
포포는 자기 색깔이 강한 프로듀서였다.
하지만 자기 색깔이 강하다 보니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을 만한 음악을 만든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대중성을 쫓아 음악을 찾아다닐 때 그 끝에는 인혁이와 김우진의 이름만이 있었다.
요리를 예로 든다면, 우리는 요리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라면, 햄버거 등의 음식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포포는 쌀국수 같은 조금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서 고집스럽게 그것 하나만 만들어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독특한 향신료가 쓰인 그런 음식을 근사하게 포장할 줄 알았다.
구매력이 높은 층을 집중 공략하고,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와 비주얼을 조합할 줄 알았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변화를 가장 먼저 이해한 프로듀서라는 평이 있기도 했다.
이번 에피아만 봐도 그랬다. 멤버들이 모여 있는 사진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만들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이미지의 팀을 조합한 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그리고 특유의 향신료가 들어가 있는 개성 넘치는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먹혔다.
그런 점 때문인지 포포 한 명이 팔아 대는 음악이 나머지 셋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판매량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머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람, 팔아 대는 스킬은 인정해 줘야 돼요. 처음에는 운으로 몇 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벌써 10년이 넘었잖아요.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죠.”
“김 실장님은 그 사람 만나본 적 있으세요?”
“아뇨. 저도 없죠. 그 회사 사람들도 잘 모른다잖아요.”
그렇게 팔리는 음악을 잘 만드는 포포는, 소속 가수가 두 명뿐이었던 GH 엔터테인먼트를 정상의 위치로 올려주었다. 현재 GH 엔터는 4대 기획사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규모가 큰 회사였다.
“다들 자기 방식이 있는 거고 자기 색깔이 있는 거겠죠.”
내가 김우진 실장을 만난 것은 드라마 제작을 위한 미팅 때문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최인환 선배의 곡을 완성해서, 그걸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 음악 감독도 곡을 마음에 들어했다. 감정선이 충분히 살아 있어서 극의 어느 파트에 넣어도 연출을 하기 쉬울 것이라고 평했다.
드라마 제작은 이미 스타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우 섭외도 마쳤고 촬영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섭외된 배우 중에는 걸그룹 플라지아의 수아라는 멤버가 있었다. 플라지아의 비주얼 라인이었던 그녀가 이번에 배우로 전향한 것이었다.
김우진은 그것 때문에 방송국을 찾았고,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별로 친한 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막상 이런 곳에서 만나니 이상할 정도로 반가웠다.
우리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럼 새로운 팀은 2년 뒤에 데뷔시킬 거라고요?”
“네. 공교롭게도 김 실장님의 팀이랑 비슷하게 데뷔하겠어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김우진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명으로 구성하실 거죠?”
“다섯 명에서 여섯 명 정도요. 그런데 아직 세 명밖에 못 구했습니다. 아직 리쿠르팅 중이에요.”
김우진은 일곱 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저희는 데뷔 반년 전 즈음부터 윤곽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때까지는 계속 경쟁입니다. 이번엔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연습생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시키고 있어요.”
그러면서 김우진은 이런 제안을 나에게 해왔다.
“그럼 내년 즈음 해서 다 같이 만나는 건 어떨까요?”
“만나요?”
“박영민 본부장님의 팀 멤버들과 제 팀 멤버들이요. 아마 같은 시기에 활동하게 될 거 같으니까 서로 인사를 시켜주고 경쟁심도 부추겨주고 하는 거죠.”
내가 키운 애들과 네가 키운 애들을 비교해 보자는 얘기로 들렸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이런 말을 해버렸다.
“그러지 말고 각자 키우고 있는 애들을 함께 방송에 내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데뷔 전에 말이에요. 요즘 데뷔 과정을 방송에 내보내는 일이 종종 있잖아요.”
“방송으로요?”
“두 팀을 경쟁시키는 겁니다. 누가 다음 세대의 스타가 될 것인가? 이런 주제인 거죠. 서바이벌 포맷을 가져와서, 양 팀에게 미션을 내리고 시청자 점수를 포함해서 비교를 해보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멤버가 교체될 수도 있고, 때로는 주목을 받는 멤버가 나올 수도 있겠죠.”
“글쎄요.”
그러자 그는 내 말을 깊게 생각해 보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지만 쉽게 대답하진 않았다. 아직은 체급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재미있긴 하겠네요.”
“진짜 스코어는 그때부터 카운트하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빙긋 웃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 * *
“진짜예요? 떡볶이 처음 먹어보는 거예요?”
지민이가 물었다. 은설이는 ‘그게 왜?’ 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영민과 김우진이, 각자 키우는 팀을 걸고 대결을 해보자는 얘길 나누고 있을 때, 박영민의 아이들은 분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언니. 그러면 떡볶이가 뭔 줄은 알고 있었어요?”
“사진은 본 적이 있어.”
부잣집 따님, 아니, 그냥 부잣집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부잣집의 따님인 은설이는 처음 먹어보는 떡볶이가 신기한지 이쑤시개로 계속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너 열여덟 살이라면서? 그런데 18년 동안 떡볶이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게 말이 돼?”
채아가 다그치듯 물었다.
“진짠데.”
“그래. 너희 부모님이 극성이셔서 그런 걸 입에 못 대게 했다고 치자고. 그래도 길거리에 널린 게 떡볶이인데 그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우리 동네엔 진짜 없어.”
“아무리 부촌이라도 그렇지. 너 혹시 외국 살다가 왔니?”
“아니.”
“그래도 어떻게 떡볶이를 모를 수 있어.”
“나 진짜 본 적이 없는데.”
채아는 자기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아이 집안이 보통 집안은 아니니까. 앞으로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자꾸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너 혹시 라면은 아니?”
“어. 알아.”
“오! 라면은 알아? 그럼 먹어 봤겠지?”
“아니.”
“안 먹어 봤어?”
은설이는 대답 대신 끄덕끄덕.
하지만 라면은 알고 있었다. TV를 보면 자주 나오는 음식이라서.
“아, 잠깐만. 우리 혹시 막 잡혀가는 거 아니야? 갑자기 무서운 사람들이 집으로 쳐들어와서 ‘왜 우리 아가씨에게 그런 음식을 먹인 겁니까?’ 하면서 나를 잡아가고…….”
“그럴 일 없어!”
그러면서도 은설이는 하나씩 떡볶이를 입에 넣어보고 있었다. 먹을 만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화 언니도 이런 거 먹겠지?”
“그 사람은 왜?”
“그냥.”
“당연히 먹겠지. 사람인데.”
비츠걸스에게, 특히 한연화에게 푹 빠져 버려서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몬스터 뮤직으로 들어온 아이였다.
“그 언니는 별명이 독종이래. 어쩌면 이런 건 입에 대지 않을지도.”
두 언니가 떠드는 사이, 지민이는 남은 떡볶이를 마구 입안으로 넣고 있었다.
어쨌든 박영민의 아이들은 현재 세 명.
신채아. 20세. 메인 보컬
유은설. 18세. 포지션은 아직 없지만 비주얼만큼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외모.
이지민. 16세. 아마도 메인 댄서?
그리고 박영민이 팀에 넣으려고 하지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아이, 심예음. 20세.
현재는 이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상하고 있었다.
* * *
예전에는 가수들이 1년에서 2년 주기로 앨범을 발표하곤 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아이돌 그룹이 그렇다.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기간은 3개월 정도. 그리고 곧바로 새 앨범을 내곤 했다.
이렇게 해서 1년 동안 3장 정도의 앨범을 발매한다. 같은 해에 컴백쇼를 세 번 하는 것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3년에서 4년 정도 되는 아이돌 그룹의 짧은 전성기 동안 최대한 많이 뽑아 먹기 위해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비츠걸스의 경우도 미니 2집 활동이 석 달째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앨범을 빠르게 내고 신곡으로 팬들에게 다가가야 할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몬스터 뮤직의 여건상 당장 그렇게 할 순 없었고, 일단은 다음 타자에게 바톤을 넘겨줘야 했다.
“어떠냐?”
“잠깐만. 좀 더 들어보고.”
집중해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인혁이는 자꾸만 보챘다. 빨리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듯했다.
빅픽쳐의 데뷔 앨범에는 네 곡을 수록하기로 했다. 그중 인혁이가 작업에 참여한 곡은 두 곡뿐이었다. 그리고 그 두 곡도 다른 작곡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다.
인혁이가 프로듀싱한 앨범은 지금까지 서른 장이 넘었다. 그리고 수록된 곡들의 절반 이상이 김인혁의 단독 작곡이었다.
왕성한 창작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곡을 쓰는 기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난 앨범, 유아연의 9집부터 작업 방식이 바뀌었다. 단독으로 곡을 만드는 일은 사라져 버렸다. 이 녀석의 이름 옆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곡 괜찮네.”
“그래? 내 눈치 볼 거 없이 솔직하게 얘기해 줘도 돼.”
“아니야. 첫 느낌도 괜찮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만한 사운드야. 괜찮게 잘 빠졌어.”
나는 그렇게 말해줬다.
내가 작업에 참여할 것이 아니면 좋은 소리만 해주기로 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붙잡고 뜯어고치는 것이 편했다.
“타이틀은 두 번째 곡으로 하려고 하는데.”
“좋은 선택이네.”
그렇다고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네 곡의 공통점은 배민이 곡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 녀석의 창작 능력을 마케팅에 활용하겠다고 하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배민은 곡을 맛있게 쓸 줄 아는 녀석이다. 개성 넘치는 사운드 속에서 그 녀석이 어느 파트를 어떻게 작업했는지도 잘 들렸다. 그리고 거기에 김인혁의 능숙함이 얹혀지니 곡의 완성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좀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말해줘. 따끔하게 말해줘도 괜찮다고.”
인혁이는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비츠걸스의 담당을 인계받으면서, 그리고 지난 송캠프에 참여했을 때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함께 작업을 할 때마다 느꼈다.
이 녀석은 곡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곡 작업을 두려워하는 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나를 불러서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확신이 없는 것이다.
“아냐. 정말 괜찮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곡이야.”
“그렇지? 야, 이거 작업하느라고 며칠 동안 밤을 샜다.”
하지만 이 녀석은 좀처럼 자기 속마음을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행동에서 드러나는 감정도 그때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항상 태연한 사람인 줄 알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 녀석하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고, 내 눈에는 보이는 게 있었다.
“인혁아.”
“어?”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냐?”
무언가 이 녀석의 멘탈을 흔들어놓은 게 있었을 것이다. 이게 내 추측이었다.
“갑자기 그건 뭔 얘기야?”
창작을 하는 사람이 갑자기 감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최근에 작업한 걸 보면 그런 케이스는 아닌 듯했다. 아마도 외부의 요인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츠걸스의 프로듀서에서 도망치듯이 빠져 버린 뒤 나에게 넘긴 것이나, 유아연과의 작업에서도 움츠리는 듯 자기 영역을 좁히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무언가 있을 거라고 추측되었다.
“꼭 어디서 무슨 소리 듣고 온 사람 같아서 하는 말이야.”
“내가?”
“그래.”
“내가 소리를 듣긴 뭘 들었다는 얘기야.”
“아니면 됐고.”
“그런 거 없어.”
하지만 이 녀석은 여전히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김우진이라는 사람 알지? 아이즈 컴퍼니에 있는 프로듀서.”
“누군진 알지.”
“그 사람이 저번에 방송에 나왔더라고. 거기서 이런 말을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정상급 프로듀서가 네 명 있다고 하더라.”
“유치하게 무슨…… 그런데 그 네 명이 누구래?”
“누구일 거 같아?”
“네가 요즘 잘나가니까 너 있었을 거고, 에피아 요즘 잘나가니까 포포도 꼽았을 것 같고…… 나도 있었으려나.”
“어. 너도 4명 중 한 명이야.”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야? 설마 자기 자신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한 인간이네.”
녀석은 마인 부우처럼 눈을 동그랗게 구기며 웃었다.
“그 얘기는 왜? 우리 회사 사람이 둘이나 있다고?”
“그것보다, 우리 대표이사 기 좀 살려주려고.”
“나?”
“누구한테 뭔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냐.”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래도 이날은 조금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게 아니고…… 나 이제 제작은 여기까지 하려고.”
“왜?”
“지겨워.”
지겹다니.
“빅픽쳐가 내 마지막 작품이야. 전부터 제작은 그만두고 싶었는데 배민혁 때문에 계속 붙잡고 있었던 거야. 그 녀석은 꼭 내 손으로 키워서 무대에 올리고 싶었어.”
“옆에서 보기에도 그 친구한테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지긴 했지.”
“재능 있는 녀석이야. 이름도 나하고 비슷하고.”
그러면서 인혁이는 모니터 구석에 작곡 참여자로 메모된 배민혁의 이름 위로 커서를 가져다 대고 마우스를 툭툭 클릭했다.
“회사에 정상급 프로듀서가 한 명 더 있으니까 나는 빠져도 되잖아. 난 전무님 따라다니면서 그쪽 일을 배우려고 한다. 이제 그럴 단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나머지는 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얼마 전 유아연 건에 대해서 얘기를 했을 때에도 이 녀석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흔쾌히 수락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 해주면 돼. 이제 이 회사의 음악은 네가 전부 담당하게 되는 거야. 그럴 만한 능력이 너한테 있으니까.”
* * *
보이그룹 빅픽쳐는 5인조로 편성되어 데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앨범 레코딩을 마치고 최종 작업에 들어갔다. 내가 비츠걸스를 챙기고 있는 사이, 이쪽도 꽤 치열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데뷔 쇼케이스는 팬들을 모아놓고 화려하게 시작하겠다고 한다.
자기가 공들여 키운 멤버들인 만큼, 김인혁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빅픽쳐 멤버들을 몇 번이나 데리고 나왔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멤버별 소개 영상을 제작해서 몬스터 뮤직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하나씩 공개하고 있었다.
아직 데뷔하기 전이었지만 SNS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벌써부터 팔로워가 꽤 붙어 있었다.
데뷔까지 디데이는 14일. 빅픽쳐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며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본부장님. 이것 좀 결재해 주세요.”
“책상 위에 두세요.”
“좀 급한 거라서…….”
“바로 해드려야 돼요?”
내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일이 아니니 내가 하는 거라곤 결재란에 서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내가 마냥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빅픽쳐 다음으로 곧바로 비츠걸스 신곡이 나와야 하니까 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환이 형의 노래가 들어간 드라마를 지켜보기도 했고.
곡 작업을 하고 방송을 모니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뚜렷하게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방향을 잡아내는 일이니 한 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유아연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 앨범을 맡게 되었지만, 내리막을 걷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 되살려 놓을지. 머릿속에는 이 생각뿐이었다.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퍼포먼스를 담고 있는 무대를 계속 찾아봤다.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았던 전성기 시절의 모습도 빼놓지 않고서.
음악 무대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모습까지 모두 찾아보았다. 그 시절 대중들에게 노출되었던 그녀의 이미지와 지금의 유아연을 비교하며 어디서부터 잡아가는 것이 좋을지 찾아보기도 했다.
-안 그래요. 사람들이 저랑 같이 일하기 싫어해요.
-아니, 유아연 씨하고 일하기 싫어한다고요? 최고의 가수랑 일하는 건데요?
-제가 좀 까다로워요. 저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걸 그냥 지켜보지 않거든요. 다른 회사 사람이면 그냥 참고 넘어갈 때도 있는데 같은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화가 막 끓어오른다고 해야 할까요.
-완벽한 걸 추구하시나 봐요.
-그런 면이 좀 있어요. 가수는 무대에서 완벽하게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서포트하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서포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가장 잘나가고 있을 때의 발언이었다. 사실 그대로 얘기한 것이긴 한데, 이때는 워낙 잘나갈 때라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완벽주의자’라는 이미지로 보여질 뿐 아무도 이걸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매니저도 자주 바꿔요. 최선을 다해서 가수를 서포트하지 않으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아연 씨만큼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주변 사람에게는 어떤가요?
-물론 제 주위에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죠. 앨범 만들어주시는 프로듀서님도 그렇고…… 존경스러운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 앞에서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죠.
-서운한 사람들 많겠는데요.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저 사람한테는 다정하고 나한테는 맨날 화를 내는 거야? 이런 말 하는 사람 없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니까요. 팬들에게는 항상 최고의 무대를 보여줘야 되고, 그럴 수 없다면 무대에 오를 수 없는 거예요.
그러자 엠씨는 이렇게 물어봤다.
-기 쎄다는 말 자주 듣지 않으세요?
-자주 듣죠.
-그렇죠?
-여자가 조금만 당당해지면 그렇게 말하잖아요. 기 쎄다고. 순종적이지 않다는 말이잖아요, 그거.
-에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전 처음부터 그랬어요. 데뷔했을 때부터.
이때가 스무 살 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었다.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그때.
연화와 다은이가 지금 딱 이 나이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느낌이 달랐다.
그렇게 사무실 내 책상 앞에서, 영상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헤드폰을 뒤집어쓴 채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것이었다.
“어?”
“선배님. 저 보고 계셨네요.”
유아연이었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비어 있는 의자를 끌고 와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바닐라처럼 달콤한 향이 가깝게 다가와 코끝을 자극했다.
“이런 거 보면서 영감을 얻으시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와, 근데 나 이때 진짜 어렸었다. 피부 봐.”
그녀는 책상 위로 엎어져서 모니터 쪽으로 다가갔다.
“제가 옆에 있으면 방해돼요?”
“아니.”
“괜찮은 거죠?”
“옛날 모습하고 지금을 바로 옆에서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래요?”
그러면서 유아연은 내 쪽을 돌아봤다.
열심히 관리를 한 덕분인지 스물일곱 살의 유아연과 스무 살의 그녀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7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세한 변화. 눈빛이나 웃는 모습 등은 세월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7년 동안 쌓여온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의 얼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몇 시에 끝나요? 끝나고 같이 술 마실래요?”
“안 돼. 할 일이 많아. 내일 출근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고.”
“재미없게 사시네요.”
“앨범 작업 끝나면 시간 내볼게.”
“그냥 해본 말이에요. 저 차 가지고 왔어요. 저도 오늘 술 못 마셔요.”
“차는 왜?”
“매니저들 다 바쁘잖아요.”
빅픽쳐는 1팀이 담당하기로 했다. 지금 1팀 인원들은 전부 그쪽으로 가 있었다.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되긴 했지만.”
유아연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그런지 직원들의 시선이 이따금 이곳을 향하곤 했다. 경계를 하는 건지, 아니면 호기심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눈빛들이 이곳을 훑고 지나갔다.
“저 그러면 밑에 내려가서 애들 좀 보고 들어갈게요.”
“그래.”
유아연은 스물일곱 살답게 미소를 지은 뒤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모니터 속에서는 스무 살의 그녀가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다른 것인가, 아니면 바라보고 있는 곳이 서로 다른 것인가. 일단은 그 차이를 알아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 * *
핫이슈의 ‘나를 가져봐’라는 곡을 연습한 뒤에 비츠걸스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졌다.
대선배와 함께한 소감이 어떤지?
“언니들 진짜 최고예요.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하시는지. 저 이거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다은이는 무난하게 답변을 마쳤다. 엄지손가락까지 척 올리며 유난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선배님들만큼 되지가 않았어요. 흉내 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오묘해져요. 선배님들이 계속 잘돼서 지금까지 활동하셨다면 우리나라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훌륭한 팀이 되셨을 텐데. 그 점이 참 안타까워요.”
연화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랬더니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비츠걸스는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지?
“열심히 해야죠. 저는 저희 팀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어요. 선배님들이 이번에 모이신 것처럼, 각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뒤에도 모여서 함께 음악할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연화는 평소의 말투 그대로 또박또박 천천히 대답했다.
하지만 대기실로 돌아온 뒤에는 분위기가 싸늘했다.
“한연화. 너 일루 와봐.”
핫이슈의 멤버 한 명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연화를 불렀다.
“너 아까 결혼 얘기한 거, 나 멕이는 거니?”
“네?”
“나 이혼한 거 우스워 보여?”
“아뇨. 그게 아니라…….”
“요즘 잘나가니까 나 같은 건 네 발밑으로 보이는 거지?”
“죄송합니다.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연화는 깍지 낀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멤버도 언짢은 듯한 얼굴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말을 조심해서 해야지. 우리가 계속 잘돼서 지금까지 활동했으면 좋았겠다고? 그게 안 됐으니까 이런 데 나온 거잖아. 너 상황 파악이 좀 안 되는 것 같다.”
“죄송합니다.”
연화는 사색이 되어버린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랐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인해서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리더를 맡고 있는 선하가 다급하게 나와서 함께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두 멤버도 그 뒤에 서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하지만 나 이 방송 못 하겠어. 피디한테 말해서 못 하겠다고 할 테니까 다른 팀 구해서 해봐. 애들이 요즘 잘나간다고 싸가지가 없잖아.”
“죄송합니다.”
“너네 요즘 맨날 1위 하고, 팬들이 지겹게 따라다니는 거 알아. 그럴수록 겸손해질 줄 알아야지. 잘나가니까 세상 다 얻은 것 같아? 오늘 일 말고도 촬영 내내 싸가지 없는 거 계속 참아준 건 아니? 하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하잖아.”
“죄송합니다.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너희 영민이가 만든 팀이라면서? 저번에 못 봤어? 영민이 걔 우리한테 동생 같은 애야. 그런데 너희가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되지.”
그렇게 얼음 같은 분위기를 남겨두고 핫이슈 멤버 네 명은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피디한테 가서 더 이상 방송을 못 하겠다고 말하겠다는 것이었다.
시대를 달리하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두 팀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쪽은 요즘 가장 핫한 걸그룹이고 다른 한쪽은 실패했던 팀이었다. 실패한 쪽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비츠걸스만 남아 있는 대기실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스탭들도 가만히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기만 했다.
“어떡하지?”
승연이가 침묵을 깨보려고 했지만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화는 일어서 있는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훌쩍이는 소리도 없이 뜨거운 눈물이 연화의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많이 화나신 것 같아.”
“진짜로 안 하신다고 하면 어떡해?”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를 해서.”
하지만 입술까지 부르르 떨면서 울고 있는 연화가 안쓰러웠는지 남은 멤버들은 뒤에서 안아주기도 하고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같이 가자. 죄송하다고 다시 사과드리는 거야.”
“언니들 안 좋은 일 있으셨는지 아까 오실 때부터 표정은 안 좋으셨어.”
“그래도 이거 이상해요. 어제까지 진짜 자상하셨는데.”
결국 방송국 로비에서 분을 삼키고 있는 대선배님들 앞으로 데뷔 2년 차의 걸그룹 멤버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선배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너무 생각 없이 말을 해서…….”
훌쩍이는 소리에 목소리가 먹힐 정도로 연화는 격하게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밝은 조명이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반짝이게 비추고 있었다.
“아…… 나 이거 진짜 더 이상 못 하겠어.”
이혼했다고 따지던 멤버가 갑자기 연화에게 다가가더니 덥석 안아주었다.
“미안해. 이거 몰카였어.”
참고 있던 스탭들이 그제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핫이슈의 다른 멤버들도 우르르 나와서 아이들을 껴안아주었다.
“진짜 미안해. 이렇게 하라고 시키더라고.”
비츠걸스의 네 명은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 하게 있다가, 사태를 파악하고서야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대성통곡을 하는 듯 엉엉 우는 것이었다.
“거봐. 나 아까부터 이거 이상했다니까.”
다은이도 그런 소릴 하면서 놀란 가슴을 두드리며 울음을 삼켰다.
“여기서 끊으면 어떡해요? 애들 로비에서 춤추는 거까지 시켜야 되는데.”
“저 진짜 더 못 하겠어요. 애기 같은 애가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더 해요.”
“사죄의 의미로 춤추는 것까진 담아내야 하는데.”
그러면서 카메라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연화의 모습을 원샷으로 잡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괴로운 듯이 눈가를 찡그리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 * *
“저기서. 핫이슈 누나들 나가고 너희들만 남았을 때 있잖아. 다은이가 나한테 톡 보내더라고. 잘 보면 쟤, 핸드폰 손에 들고 막 누르고 있어.”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연화는 영상을 앞으로 돌리며 그 부분을 확인했다.
“저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어요. 다른 사람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와서요.”
“갑자기 ‘쌤. 어떡해요? 대형사고 터졌어요.’ 이렇게 톡이 오는데, 아 그거구나 눈치를 채고 일부러 답장 안 하고 있었지.”
“그럼 선생님은 알고 계셨어요?”
“어.”
“진짜 너무해요.”
비츠걸스에게는 모처럼 휴일이 주어졌다. 그것도 이틀 동안이나.
그 어떤 스케줄도 잡지 않았고, 숙소를 벗어나서 어딜 다녀와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
원래는 이틀 동안 뭘 하는지 회사에 보고하기로 했지만, 네 명 모두 어디 가서 사고 칠 애들은 아니니까 자유롭게 풀어주자고 했다.
애들에게 있어서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가져보는 휴가였다. 고작 이틀밖에 쉬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잠깐 일어난 일이기는 했어요. 아마도 10분 정도…… 그런데 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어쩌면 트라우마가 남을지도 몰라요.”
“저 누나가 쎄게 말하긴 했더라.”
“그런데 선생님까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럼 저런 걸 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는 얘기잖아요.”
“아니야. 내용까진 모르고 있었지. ‘가볍게 몰카 한 번 할 겁니다’라고 하길래, 크게 신경 쓰진 않은 거야. 꼬투리 잡을 말이 없었는지 얘기 나오고 한참 동안 안 하길래 잊어버리기도 했고.”
“그래도 저 진짜 충격받았어요. 저 날 이후 잠을 설친다니까요.”
연화는 그때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어제저녁.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애들은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활기를 보여주며 뿔뿔이 흩어졌다.
집에 가서 엄마 보고 싶다는 다은이는 선하와 함께 정 팀장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고, 동생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승연이는 김민태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하지만 연화는 회사에 남았다. 마침내 여유가 생겼으니 그동안 밀렸던 연습을 실컷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제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보컬 트레이닝 시간을 잡아줄 수 없냐고 했다. 제자가 열성적으로 나오니 나도 흔쾌히 허락했다.
“잊어버려. 지금까지 힘든 일 다 이겨냈으면서 이런 일에 약해지면 어떡해. 예전에 그 무서운 차성우 선생님의 폭언도 견뎌냈잖아.”
“그거랑 달라요.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기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질 거고, 저는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찍혀서 매장당할 거고…… 10년 동안 연습하고 데뷔 이후에 고생한 것들…… 그렇게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말 한마디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앞이 캄캄했다구요.”
그래도 일은 잘 풀렸다.
만약 그 상황에서 ‘저 사람 왜 저러는 거야?’ 또는 ‘내가 아까 말한 게 그렇게 실수한 거야?’ 하는 식으로 투덜댔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고, 그 방송은 호평을 받았다. 2집 활동 내내 신비로운 이미지를 고수하던 애들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사람들은 호감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듯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풀렸어요. 방송 끝나고 그 언니가 계속 안아주면서 달래주기도 했고…… 저 우는 짤방 퍼지는 거 보니까 나름대로 웃기기도 해요.”
‘요즘 듣보돌 클라스.jpg’가 돌아다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걸그룹 몰카 레전드’ 또는 ‘오열하는 연화.jpg’가 마구 퍼지고 있었다. 별 내용 없었지만 관련 기사도 쏟아졌다.
어쨌든 그때와는 위상이 달라졌다.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들 눈가에 그늘을 달고 다닐 만큼 지쳐 있었지만 충분히 쉬게 해줄 수도 없었다. 이틀 동안 휴식을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틀 뒤에는 베트남으로 출국. 또 한 차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만 들어가. 외국 가면 또 힘들어질 텐데.”
“괜찮아요. 전 이게 좋아요. 실컷 연습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베트남 차트에서는 비츠걸스의 이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K-POP 열기는 아주 뜨거웠다. 가장 전문적인 음악 채널로 인정 받고 있는 NCT에서는 따로 K-POP 차트를 만들어놓았을 정도다. 그리고 우리 애들은 거기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베트남 쪽으로는 아무런 홍보가 없었다. 우리는 단지 유튜브에 비츠걸스 컨텐츠를 꾸준히 업데이트했을 뿐이고, 그곳의 K-POP 팬들은 스스로 우리 애들을 찾아주었다.
한국의 아이돌 음악방송을 주목하고 있었고, 봐 달라고 하지 않아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의 아이들 그룹을 찾아 나섰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비츠걸스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거의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그 때문에 비츠걸스 네 명을 비롯해서 매니저들, 그리고 대머리 이사님과 실무진까지 함께 베트남에 가기로 했다. 상황을 파악한 뒤 몬스터 뮤직의 베트남 법인까지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 회사에서 월드 스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 저 들어갈게요…… 어?”
채아가 나에게 인사를 하려고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연화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는 얼굴을 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전에도 연습생들에게 그래왔듯이, 채아는 따로 남겨서 개인 레슨을 해주었다. 요즘은 채아를 발전시키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제대로 인사 못 했지? 여기는 비츠걸스의 연화, 그리고 이쪽은 이번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채아.”
그러고 보니 얘네들은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이는 동갑. 그리고 회사 짬으로 보면 연화가 선배지만, 데뷔 연차로 보면 채아가 먼저 했으니.
“혹시 프론트 페이지에서……?”
“네. 맞아요.”
“기억나요.”
게다가 둘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두 분 말씀 나누시는데 제가 방해한 것 같네요. 선생님, 저 들어가 볼게요. 내일 뵈어요.”
“그래.”
타이트한 느낌을 주는 케이블 스웨터와 피트진, 그리고 방금 샤워를 했는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던 머리는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채아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꾸벅 인사를 했다.
“우리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거예요?”
“어.”
“아아…….”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레슨해 주시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래. 너하고 다은이한테 해줬던 것처럼.”
그러더니 연화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좋겠네요.”
이제 연화의 발성을 점검하기 위해서 연습실로 향하고 있는 동안 채아에게서 톡이 왔다.
[선생님. 저 오늘 못데려다 주시죠?] [나 끝나려면 멀었어.]전에 레슨이 늦게 끝난 적이 있어서 채아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기다릴까요? 혼자 가기 싫어서] [오늘은 그냥 들어가. 한참 뒤에 끝날 거야.] [아직 그분이랑 같이 있어요?] [어.] [알았어요.]“혹시 아까 그분……?”
“어, 맞아.”
“왜요?”
“그냥…… 이제 들어가겠다고 인사하는 거지.”
“인사는 아까 했잖아요.”
늦은 밤과는 어울리지 않는 연화의 또렷한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 오랜만에 네 목소리나 들어보자. 이제 진짜 얼마 만이냐.”
어쩐지 양쪽에서 날라오는 화살이 모두 나를 향하는 것 같아서 나는 유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연습실 C. 우리는 보컬 레슨을 위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 * *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드라마를 완전히 몰입해서 보고 있어요. 주인공이 나인 것 같고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겁니다. 그러다가 음악이 쫙 깔리는데…… 그 음악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냥 딱 제 심정을 노래하고 있어요. 음악 자체가요.
공중파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좋은 OST는 드라마의 감동을 배로 만들어준다고 하죠. 아마 요즘 이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극에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너무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오늘 그 주인공을 모셨습니다. 아름다운 미성,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 최인환 씨의 무대입니다.
진행자가 사라진 무대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드라마 ‘서툴지만 사랑합니다’의 메인 테마곡 ‘좋은 사람’.
그리고 하얀 코트를 근사하게 걸치고 있는 최인환 선배가 무대 위로 나타났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무대를 채워주었다.
청명한 피아노 사운드 위로 최인환 선배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중파 무대에 오른 것일 테지만 그다지 긴장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단독으로 작곡하고, 음악팀과 함께 가사를 만들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제목은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어두운 과거를 지워 버리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을 가사로 담아보았다.
드라마의 메인 테마곡의 경우 네임밸류가 있는 가수에게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 케이스가 되어버렸다.
음악 감독은 이 곡 말고 다른 어떤 곡도 드라마의 메인 테마를 차지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결국 이 드라마의 노래는 최인환 선배의 목소리가 차지할 수 있었다.
음원 성적은 아주 좋았다. 드라마의 흥행이 괜찮은 만큼 곡에 대한 주목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대부분의 차트에서 5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인환 선배는 이날 무대에서 두 곡을 불렀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진행자와 대화를 하는 것도 무난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시는 분이 지금까지 무명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런 말에 가볍게 웃어주는 것에도 멋이 깃들어 있었다.
인환이 형의 첫 번째 방송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 * *
홍보팀장은 문서 한 장을 내밀어주었다. SNS와 포털 등에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긁어모은 것이었다.
-뜰 가수는 결국 뜨네요.
-절절한 보이스가 너무 좋아요ㅠㅠ
-노래 진짜 너무 좋다. 새벽 감성 폭발
이렇게 좋은 반응이 있기도 했고.
-지금 나오는 최인환이라는 사람. 프레디 머큐리랑 목소리가 비슷한데?
└어딜 감히 프레디 머큐리랑ㅋㅋㅋ
└잘 들어보세요. 진짜 비슷해요.
-퀸 보컬이랑 좀 비슷한 느낌
└님. 퀸 안 들어봤죠?
이런 반응에는 가벼운 논란이 있기도 했다.
-저렇게 나이 많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
-드라마에서 노래 들었을 땐 많아야 30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음
안 좋은 반응을 추리면 이 정도.
어쨌든 양호한 편이었다. 일단 반응이 있다는 것부터가 긍정적인 신호였다. 아무리 공중파 방송에 나왔어도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지 않는 가수들이 많은 걸 감안하면.
“이제 노를 저어야죠. 물이 들어왔으니까요.”
어느덧 인환이 형은 몬스터 뮤직의 상품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륵 같은 존재이기는 했지만.
“이분 개인사는 계속 숨기실 거예요?”
“숨기는 게 아닙니다. 굳이 가수의 개인사를 공개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제가 장담해요. 여기서 동정표를 얻으면 확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홍보팀장과 매니저 정 팀장, 그리고 내가 함께하고 있는 자리. 나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내가 죽었다는 건 좀 약한 감이 있어요. 이건 드문 일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죽었다는 건 얘기가 다릅니다.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이 내용을 노출하면 분명히 반응이 올 거예요.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후속곡으로 죽은 아이를 추모하는 곡을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건 너무 나갔습니다.”
“저도 최인환 씨 좋아해요. 그분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분 생활도 안정적으로 될 거 아니에요. 세상으로 나가기 싫었지만 딸을 키워야 해서 억지로 나온 거라면서요. 그럼 그렇게 힘들었던 날을 보상해 줄 만큼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겁니다. 이번에 확실한 히트곡 하나를 만들어주면 그걸로 그분은 생계 걱정은 덜어버릴 수 있는 거잖아요. 어린 딸도 생각을 해줘야죠.”
하지만 나는 반대의 의견을 고수했다. 그런 것 없이, 단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방송에 나올 정도의 가수가 되었다. 차트 성적도 좋고 섭외도 꽤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죽은 아이를 추모하는 곡…… 이건 절대 안 됩니다. 대중들의 생각은 다양해요. 반발하는 사람도 분명히 나올 겁니다. 에릭 클랩튼이 을 발표했을 때 마냥 반응이 좋았을 것 같아요? 전혀 안 그랬습니다. 죽은 아들 팔아서 돈 벌려고 한다는 비난도 있었어요.”
“그건 소수의 의견이겠죠.”
“소수의 의견이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그게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최인환 선배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에요. 그런 얘기를 듣고 멀쩡하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개인사를 노출한 결과가 돈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였다. 인환이 형이 스스로 원해서, 자기 입으로 직접 한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적어도 타인을 통해서 알려지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알았어요. 본부장님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홍보팀장은 그렇게 자기 의견을 굽혔다. 그 대신.
“그러면 본부장님에 관한 특집 기사를 낼까요?”
“저요? 무슨 기사를 내시려고요?”
“이번 이 박영민 프로듀서의 곡이라는 내용을 강조하는 거죠. 비츠걸스의 프로듀서, 황유미의 프로듀서, 그리고 이번에는 최인환의 프로듀서. 세 번 모두 성공했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어때요, 이건?”
“음…….”
부담되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회사의 프로듀서 또한 상품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것…… 이건 장기적으로 봐도 괜찮은 일이었다. 그게 나라서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죽은 아이를 추모하는 곡을 내자는 것…… 알아요. 문제 있다는 거요. 그만큼 저도 최인환 씨를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개인사를 노출하는 게 싫으시다면 다른 방법을 접근을 해보자는 거죠.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선택한 가수’ 저는 이것도 괜찮은 방법 같은데요?”
이런 방법이 통할 수 있다면 2년 뒤에 내가 내보낼 새로운 팀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요, 뭐. 그 정도는 괜찮을 듯합니다.”
“그런데 본부장님. 전에 작곡하는 건 어렵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번 곡은 깔끔하게 잘 쓰셨는데요?”
“처음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는데 계속 시도해 보니까 이렇게 만들어지네요.”
다른 작곡가가 만든 곡을 편곡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부분부분 새롭게 만들어 보는 일을 계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곡 작업을 하는 것에 능숙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든 수많은 곡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것을 선택하는 일.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곡을 쓰실 건가요?”
“그럼요. 만들어둔 것이 꽤 있어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이번 곡이 시장에서 통하는 걸 보면서, 내가 만든 곡도 잘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들어보고 싶어요.”
“곧 나올 겁니다.”
어제저녁, 새로운 곡 하나를 완성했다.
마구 뒤엉켜서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실타래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처럼 만족스러운 곡이었다.
“누구 곡인데요?”
“유아연이요. 이번에 싱글을 하나 낼 겁니다.”
* * *
손동하 사장은 박영민이 입사하기 전부터 회사 경영에서는 물러날 뜻을 내비쳤다.
어차피 김인혁이 주도권을 잡은 이후 전무와 함께 회사를 끌고 나갔으므로 자신의 역할은 이미 축소되어 있었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예를 들면 손 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김인혁이 캔슬하는 등의 일이.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김인혁의 입장에서는 손 사장이 추진하는 것이 즉흥적이었고 전혀 절차에 따르지 않는 것들이었기에, 회사의 안정을 위해서는 총대를 메고 쓴소리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언짢아진 손 사장을 전무가 달래고, 전무의 말에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이해를 하면서도 자신이 겉돌고 있다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순 없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회사는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하는 판단이 그 결정을 도왔다.
“박영민이 만든 곡 들어봤어? 난 요즘 맨날 그것만 들어.”
손 사장과 전무가 모처럼 식사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들어보기는 했지. 그 드라마도 보고 있으니까.”
“기가 막힌 곡이야. 인환이를 완전히 살려냈어. 이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한창때라도 어려운 일이었고, 인혁이도 이 정도는 안 돼.”
전무는 국수를 입안으로 잔뜩 넣었다. 후루룩 하는 소리가 그 말에 대한 대답이라도 된다는 듯이.
“곡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알 거야. 우리는 창작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방을 하고 있는 거야. 언젠가 들었던 음악에 자기 색깔이 더해져서 새로운 곡이 나오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야.”
“그렇다고 하더군.”
“발라드는 특히 그래. 코드 보이싱도 정형화된 공식 같은 것이 있고, 악기를 사용하는 것도 몇 가지가 정해져 있어. 그 안에서 만드는 거야. 언제가 들었던 것을 참고하거나, 아니면 무의식중에 그런 걸 따라 하거나.”
손 사장이 일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전무는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분야에 있어서 자신이 아는 것이 얼마 없기도 했고, 마주 앉은 사람이 한때 이 분야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영민 걔가 만든 걸 들어보니까 그런 느낌이 없어. 어디서 뭘 듣고 쓴 건지 가늠할 수가 없는 거야. 내가 그 친구 이력을 살펴봤는데 곡 작업을 열심히 했다는 내용은 없었어. 그러니까 그게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 배운 게 없고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니까, 남을 참고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거야. 그냥 자기 영감대로 새롭게 쓰는 거지.”
손 사장의 칭찬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 곡을 인환이가 부르니까 먹힌 거야. 드라마가 잘되고 안 되고는 상관없어. 드라마는 단지 곡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이지.”
“글쎄. 나는 그렇게 분석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니까.”
“다른 프로듀서들 머리 위에서 놀고 있어. 자기가 감각적으로 아는 거야. 이 곡은 시장에서 통한다. 그리고 얼마만큼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니고 걔 머릿속에선 이런 계산이 확실하게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야.”
“그 친구 능력이야 의심할 필요가 없긴 하지.”
“오래 갈 거야. 인혁이는 가끔 무리할 때가 있어서 삐끗하기도 했지만, 박영민은 그런 게 없어. 확실한 무기를 먼저 챙기고, 그 무기를 연마해서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 파악하는 거야. 자기 감각으로. 이런 건 오래 가.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손 사장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인혁이한테 다 맡길 순 없어. 나는 불안해.”
“알아. 당장 그럴 순 없잖아.”
“아니. 형이 빠진 뒤에도 마찬가지야. 인혁이한테는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까 박영민을 그렇게 하자는 거 아냐. 하지만 전에도 말했잖아. 영민이는 이제 회사에 들어온 지 딱 1년 됐어.”
조직 안에서는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그 개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하나의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전무는 그런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 말은 1년 전에도 똑같이 했던 말이다.
회사를 김인혁 중심으로 개편하려고 해도, 김인혁을 따르는 사람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인혁은 당시 방송가에서도 잘나가고 있는 프로듀서였고 그 능력에 있어서도 의심할 이유가 없었지만, 회사 안에서는 노골적으로 1팀장과 마찰이 있는 등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 말이 당사자에게도 들어갔고 그때부터 김인혁은 회사 내에서 자기 사람을 만드는 것에, 그리고 새로 영입하는 인물도 자신의 지인들로 채워 넣으려고 애를 썼다.
박영민을 회사로 데리고 온 것도, 전임 트레이너 차성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를 단칼에 잘라 버리고 그 자리에 박영민을 앉힌 것도 그런 계산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시각을 반대로 비추어야 한다니.
“알았어. 생각해 볼게.”
그리고 이번에는 몬스터의 여왕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것까지 지켜본 뒤에 판단을 내려도 늦진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이 조직에 몸담았던 기간을 문제 삼기보다는 그가 이 조직 자체를 살려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 * *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유독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정도 심리적인 고민이 올 때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해온 건가? 잘못 생각해왔던 걸까?’ 하는 의문이 갑작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음악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다른 일을 하는 게 옳았던 걸까? 하는 식으로.
그리고 그런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돌이키기 어려운 시점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 경우에는 새로운 기획사에 들어가서 다시 한번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그것마저 무산되었을 때 그랬다.
그 당시 내 상황을 보면 후회를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나이는 20대 중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연습생이 되었기에 대학은 가지 않았다. 학력은 고졸.
군대도 아직 가지 않았다. 군대를 갔다 오면 20대 후반.
음악 쪽에서 커리어를 쌓은 것은 반짝 히트한 곡 하나가 전부.
그렇다면 당연히 후회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을 가라고 했던 어른들 얘기가 맞았구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군대를 빨리 갔다 왔다면 사정이 달랐을 텐데.’
‘아니…… 애초에 음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면.’
그리고 그러한 후회들은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는 건 늦었겠지?’
음악을 하는 사람 중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실패를 거듭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을 했더라도 아직 아쉬움이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
지나서 보면 별것 아니기도 하다.
그 위기를 넘기고 계속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늦지 않았다며 과감하게 다른 쪽으로 진로를 틀어서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이 나이에는 늦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인생을 더 경험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철없는 투정 같아 보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내가 이번에 만든 신곡은 그런 감성을 담고 있었다.
* * *
“하긴 그렇네요. 김인혁 이사님이 저한테 그런 얘길 했을 때가, 딱 지금의 제 나이였어요.”
유아연은 시큼한 레몬에이드를 빨대로 쭉 빨아들인 뒤 그런 얘길 했다.
저게 시큼하다는 걸 알고 있는 이유는 내 손에도 들려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레몬에이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와서 나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녀로서는 대단한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궁금하잖아요. 솔직히 누군지 몰랐어요. 김인혁? 누구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때는 완전히 무명이실 때니까. 그런데 예전에 가수를 하셨고, 이제는 작곡에 전념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궁금해지지 않나요? 가수였다면 무슨 곡을 불렀고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그렇죠?”
또다시 ‘그렇죠?’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본 거야?”
“김인혁이라고 검색을 해도 나오는 게 없었어요. 거짓말하는 건가? 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봤죠. 전 그때 진짜 심각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인기 가수는 하나도 없는 기획사에 들어와서 제 인생을 여기에 맡기려고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아직 중학생이었어요. 그럼 확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거잖아요. 무조건 이 프로듀서님을 믿고 따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 만한 사람인지 따져봐야 하는 거죠.”
그러다가 누군가 포보이스에 관한 것을 알려주었고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송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박영민? 노래는 이 사람이 잘하네. 파트도 혼자서 다 차지하고 있고.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때 선배님을 처음 본 거죠.”
“그때가 내 전성기였지.”
그런 말을 내뱉었더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버렸다.
“전성기는 지금 아니에요?”
“가수로서 전성기 말이야.”
“아…… 하여튼 처음 봤을 때는 그랬어요. 그러다가 곡이 좋은 걸 알게 되었고, 그 곡을 뚱뚱한 그 프로듀서님이 만들었다고 하니까 그제야 수긍이 갔던 거예요. 하지만 김인혁 이사님은 제가 그걸 보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앞에서 얘기도 못 하게 했어요. 지금이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때가 딱 지금의 제 나이였을 테니.”
인혁이에게도 그런 후회는 여러 번 왔었다고 한다.
유아연이 말하는 그 시기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뚜렷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과연 이 길이 내 길인가 하고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래. 잘 이해했어. 그런 감성이야.”
아마도 유아연이 지금 겪고 있는 것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앨범이 실패하면 은퇴할 거예요.
각오치고는 너무 비장했다. 게다가 은퇴를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가수가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열여섯 살에 했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하고는 달리 오랫동안 정상에 있었던 가수지만 이 시점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작곡도 잘하시는데요? 오늘 처음 들어본 거지만 곡이 참 좋아요. 스타일이 독특하고, 입에 잘 붙어요.”
“이걸 싱글로 낼 거야.”
“일단 싱글로 내보고 반응을 보겠다는 거죠? 잘 풀리면 다음 앨범을 이런 스타일로 가겠다는…….”
“아니, 그것보다는 마음이 급해졌어.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서.”
“그래요? 밖에서 볼 때는 차분하게 진행하시는 것 같았는데.”
“확실하니까 그래. 너도 놀랄 거야. 이번 곡은 확실하게 성공해.”
그 말을 듣더니 유아연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이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래서 곡에 대한 해석을 들려줬던 거야.”
“주저앉고 있는 사람을 위한 곡이라 이거죠?”
“그런 게 아니야.”
비츠걸스는 떠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목소리.
황유미는 비록 실패를 경험했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노래하고 싶어하는, 묵직한 중심을 가지고 있는 목소리.
인환이 형은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많은 것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마인드에 절실함이 더해진 목소리.
그렇다면 유아연은…….
“네가 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되는 거야. 그걸 찾아내면 10년 동안 쌓아왔던 걸 폭발시킬 수 있어. 이건 그 이유를 찾기 위한 곡이야.”
템포가 느린 댄스곡이었다.
전반적인 사운드는 어둡지만 멜로디는 클래시컬한 느낌을 품고 있었다. 풍부한 표현력이 있어야 곡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요정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가요계에 등장하여 10년 동안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가수. 그런 가수가 아니라면 부를 수 없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방황했던 나의 오래전과 맞물려 영감을 주었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트랙이 채워졌다. 그게 지난밤이었다. 완성된 곡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랄 정도로 내 감각이 전율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수. 그와 비슷한 것을 겪었기에 같은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작곡가.
이 둘이 시너지를 낸다면 다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곡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하루에 두 시간씩 나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할 거야. 흐트러진 소리를 바로 잡아놓을 거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소리가 있다면 그걸 모조리 깨워 버리는 거야. 그렇게 충분히 트레이닝을 마친 후 레코딩에 들어갈 예정이야.”
“알았어요.”
“이번에는 엄하게 할 거니까 원망하진 마.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니까.”
* * *
유아연과 그렇게 미팅을 가진 것으로 다음 활동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렸다. 싱글을 발표하고 그 곡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그녀의 매니저인 1팀장에게도 전화를 걸어서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저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본부장님은 진심이었나 봐요.
“무슨 말이죠?”
-잘 안 되는 가수만 골라서 살려놓는다는 얘기요.
“아…….”
-아연이 힘 빠진 건 제가 제일 잘 압니다. 특히 다음 앨범은 많이 힘들 거라고 봤어요. 하지만 본부장님이 맡으신다면 그런 예상이 빗나갈 것 같기도 하네요.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말해줬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이렇게 자신감이 있어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최근 인환이 형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 고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걸 내가 만든 곡으로 해냈더니 그 성취감은 남달랐다.
-본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대가 됩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오히려 이쪽이 더 걱정이에요. 뚱뚱한 그 양반이 회심의 카드로 내보내는 애들이라는데, 과연 생각한 것만큼 성과가 있을지…….
최근 빅픽쳐는 데뷔가 결정되면서, 신인개발팀의 손을 떠나 매니지먼트팀으로 옮겨졌다. 담당은 1팀장이었다.
“그 팀도 잘될 겁니다.”
유난히 나에게 부드러워진 1팀장과는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이 사람의 말대로 지금까지 실패가 없긴 했구나 하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아무리 프로듀서가 기반을 잘 닦아놓아도, 아티스트들이 그걸 망쳐 버리는 일도 자주 일어나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일이 없었다.
비츠걸스는 네 명 모두 그 흔한 구설수 하나 없이 착실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고, 유미도 어디 가서 안 좋은 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만하면 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없어?”
“없는데요.”
“아니, 그게 왜 없어?”
“공란으로 되어 있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이날 저녁, 내 자리 바로 옆에 있는 신인개발팀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무슨 일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신인팀장은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내 눈치를 살피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은이 보호자 연락처가 없어서요.”
갑자기 다은이의 보호자 연락처를?
“그게 왜요?”
“다은이가 오늘 숙소로 복귀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연락을 해보려고 하는데 연락처가 없어요.”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이 녀석 또 지각이야? 하는 생각이었지만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가벼운 일은 아닌 듯했다.
“아, 맞다. 다은이는 사장님이 직접 계약했잖아요.”
신인팀의 직원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없는 거야?”
“사장님이 직접 계약서 들고 가서 데리고 왔어요.”
“아. 진짜 사장님은 하필…….”
김인혁이 손 사장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자기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그것도 깔끔하게 매듭지어 놓질 않는다.
계약 당시 다은이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직접 계약할 수 없고 부모님을 통해 계약을 처리해야 했다.
이 경우 부모님의 신상 정보 및 연락처도 계약서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손 사장은 덜컥 서명만 받은 것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다은이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쟤를 데려와야 돼!’라면서 혼자 찾아가 급하게 계약했던 거라고.
“좀 늦는 걸 수 있으니까 제가 무슨 일인지 파악해 볼게요.”
그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정 팀장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정 팀장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세 명은 일찌감치 숙소로 복귀했는데 다은이만 안 왔습니다.
사정을 물어보니 그렇게 대답했다.
“원래 몇 시까지 오라고 했었는데요?”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자길 찾지 말라고 문자를 남겼어요.
“뭐라구요?”
갑자기 땅바닥이 푹 꺼져 버린 것만 같은 절망감이 나를 에워쌌다.
“제가 전화해 볼게요.”
-소용없습니다. 전화 꺼 놨어요.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저께, 연화에게 들었던 말이 오버랩되었다.
악플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고.
죽고 싶다는 말도 이따금 했다고 한다.
“부모님 전화번호는 없어도, 집 주소는 있겠죠?”
만약 그것까지 없다면 나도 손 사장을 원망할 것 같았다.
“예. 주소는 있습니다.”
“알았어요. 내가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본부장님이 가시려구요?”
“가야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다은이 집으로 가서, 데리고 올게요.”
연화의 말을 들었을 때 당장 다은이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모처럼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베트남 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그때 대화를 나눠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했다.
* * *
-전화를 받으세요. 너무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구요.
이 말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혁이의 전화를 받아도 그런 데 가서 보컬 트레이너를 할 마음은 없다고 잘라 말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인생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다은이.
몬스터 뮤직에 내가 없었다면 다은이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어요. 김다은은 데뷔조에 합류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넘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중 하나라도 삐끗했으면 김다은은 데뷔하지 않기로 결정 내렸을 거예요. 그리고 몬스터 뮤직에서는 그렇게 열의가 없는 연습생을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퇴출시켰겠죠. 가수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언젠가 꿈을 꾸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뒤늦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고쳐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몬스터 뮤직에서는 김다은을 가수로 키우기 위해 자본을 투자했어요.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실패한 투자 모델입니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가수를 하려고 해도 쉽게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투자를 해도 그걸 거부하고 도망가 버렸던 전적이 걸림돌로 작용할 거예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김다은이 데뷔조에 합류하게 된 것은 당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어요. 당신을 통해 노래하고 싶다는 열정을 다시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가수가 되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그런 열정은 되살아나지 않았을 것이고,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꿈도 접어버렸을 겁니다.”
나는 반발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선생을 통해 노래하는 즐거움을 깨달았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김다은에게 있어서 당신 같은 보컬 선생은 또 없잖아요. 소리에 대한 특별한 이해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선생은 거의 없으며, 김다은이 그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성격적으로도 잘 맞는 선생은 드물어요. 왜 김다은이 당신을 그렇게 따랐는지 생각해 보세요. 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연락을 하는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으면서 안이하게 지나쳐 버린 사실이었다.
‘비츠걸스와 황유미 모두가 그렇습니다. 당신이 없었으면 비츠걸스는 1집 내고 실패한 팀이 되었겠죠. 게다가 하필 그때 어두운 손길이 그 아이들을 향했어요.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알 수는 없지만 결코 희망적인 것은 없었을 겁니다. 10대의 인생 모두를 바쳤던 아이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을 겁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속단할 순 없지만.
‘김다은은 당신이 가수로 만든 겁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 노래하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 * *
이렇게 멀었나?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회사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어서야 다은이의 집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이 동네 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그것도 나는 차를 가지고 온 것인데 매번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걸 생각하면.
“지금 단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본부장님이 고생 많으십니다.
“전화는 아직 꺼져 있네요.”
-아까부터 계속 그랬어요.
“바로 올라갈 겁니다. 다은이하고 얘기하고 있으면 전화 못 받을 수 있으니까 기다려 주세요. 얘기 끝나면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예.
아파트 단지 안은 조용했다.
단지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잔뜩 몰려와 있는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오는 내내 그 생각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끔찍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과연 다은이가 여기에 있을 것인지, 혹시 부모님도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 버린 건 아닌지, 그 점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다니지 않는 한 바깥에 있다면 금방 발각될 것이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걸그룹의 멤버니까.
공동현관 앞에서, 호출을 하기에 앞서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 봤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다은이 부모님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오는 내내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지만 막상 이 앞에 서니 머리가 하얘졌다.
“어? 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은아.”
“쌤 거기서 뭐해요?”
여기까지 운전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 줄 모른다.
그리고 다은이가 어떤 얘기를 꺼낼지 예상을 해보기도 했다. 지금 얘가 어떤 심리 상태이며 나를 보고 어떤 말을 하게 될 건지.
그런데 차마 ‘거기서 뭐해요?’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위아래 모두 회색 츄리닝을 입고 있었고, 모자까지 푹 눌러 썼다. 그래도 센스는 있었다. 평소처럼 선글라스를 쓰면 ‘나 연예인입니다’ 하고 알리는 꼴이 되니까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요즘 들어 다은이를 가장 많이 봤던 곳은 길거리에 널려 있는 이동통신사의 광고 사진에서였다.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모습이 눈에 익어 있었는데 저런 꼴을 보고 있으니 얘가 스무 살이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입학한 대학생. 딱 그런 모습이었다.
“저 잡아 오라고 회사에서 보냈어요? 아니다. 쌤은 이제 누가 보내고 할 위치가 아니니까 스스로 오셨겠구나.”
“너는 거기서 뭐하는 건데?”
“저요? 전 그냥 산책.”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다은이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구름이 많은 날이어서 유난히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마저 다은이의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모자의 챙이 까만 그림자로 가리고 있었다.
“돌아가자.”
“저 데리고 가시려고요?”
“그럼 내가 왜 왔겠니?”
* * *
다은이의 부모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셨는지 급하게 과일과 음료수를 차려주셨다.
다은이가 일부러 복귀하지 않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나도 마침 지나가는 길어서 차를 태워주려고 들렀다고 했다.
거실에는 다은이가 케이팝보이스에서 우승했을 때의 사진이 커다란 액자와 함께 걸려 있었다.
꽃다발을 한 손에 들고서, 그리고 반대쪽 손에는 우승 상금이 자랑스럽게 적혀 있는 판을 들고 있었다.
얼떨떨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얘가 평소에도 선생님 얘기를 그렇게나 많이 해요.”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부모님이었다. 두 분 모두 그랬다. 아버지의 얼굴은 다은이와 영락없는 붕어빵이었다.
“쌤. 이제 가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세 가족은 뜨거운 포옹을 한참 동안 나누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방송 나가서 항상 웃고. 인사도 잘하고 다녀야 돼.”
“알았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엄마한테 꼭 문자 보내야 돼. 숙소로 보내줄게.”
“알았다니까.”
아쉬움이 짙은 만큼 인사는 길어졌다.
차에 탄 후 다은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직까지 모자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시선은 창밖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정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데려가고 있다고 말을 했더니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한테는 네가 직접 연락해.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다.”
“벌써 했어요.”
“언제?”
“아까 방에 들어갔을 때요.”
자정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려는지 창가로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안 오려고 했어?”
“가야죠. 내일 베트남 간다는데 안 갈 순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랬던 거야?”
“…….”
대답은 없었다. 내내 창가를 향해 있던 비틀고 있던 몸을 바로 잡으며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쓸 때까지도 다은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왔었다면 어디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현관 앞에서 쌤이 어리버리하게 있는 걸 보니까 왜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거 어떻게 누르는지 몰랐던 거죠? 호수 누른 다음에 호출 버튼 누르면 되는 건데.”
“알아. 그걸 모르겠냐.”
“몰랐잖아요. 한참 쳐다보고 있던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어서 얘를 숙소 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속도를 올릴 순 없었다.
“쌤, 그런데 그거 다 잊어버렸죠?”
“응?”
“가수 되는 꿈을 포기한 대신 다른 사람을 가수로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요. 가장 먼저 저를 가수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그걸 잊어버릴 리가 있나.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건데.
“늦은 밤까지 저 레슨해 주고 그랬잖아요. 저 진짜 열심히 했었어요. 쌤은 모르겠지만.”
“내가 왜 모르겠어. 매일 나아지고 있는 걸 바로 옆에서 듣고 있었잖아.”
“그렇게 정성을 쏟아서 가르쳐주시더니…… 이제는 저 완전히 찬밥 됐잖아요. 저는 어디서 뭐 하는지 관심도 없고 다른 사람들만 챙겨주고.”
“그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요? 제가 가수가 되면 자기가 성공한 것처럼 기뻐하겠다고 했으면서.”
“…….”
“저 그것 때문에 안 돌아가려고 했어요. 찬밥 된 게 너무 서러워서.”
“그게 정말이야?”
“제가 말하면 무시해 버리고, 연화가 말하면 대번에 들어주고.”
진짜 서운했던 건가?
“아니, 그런데 쌤. 제가 지금 농담하는 건 아시는 거죠?”
“어……? 그래. 알지.”
“농담이에요, 농담.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거 같잖아요.”
그러면서 다은이는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린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고…… 사람들이 전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팀으로 활동하고 있을 땐 언니들이랑 연화한테 위로를 받으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까 생각하는 게 달라지는 거예요. 어쩌면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해주었다.
네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지 않냐는 그런 말과 함께.
“저 싫어하는 사람 많아요. 저보고 관심받고 싶어서 안달 난 것 같대요. 전혀 안 그런데. 진짜로 완전히 반대인데.”
다은이는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쏘아 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다른 멤버들이랑 떨어져 있으니까 진짜로 생각이 달라져요. 저 때문에 다른 세 명이 먹지 않아도 되는 욕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요. 그냥 제가 사라져 주면 비츠걸스는 더 잘되지 않을까 하고…….”
이번에 방송 스케줄이 많이 잡히면서 대중들에게 노출도가 가장 커진 멤버는 당연히 다은이였다.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의 수도 다은이가 가장 많았고, 주말 예능을 비롯해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때문에 주목도가 가장 높았고,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악플 또한 다은이에게 날아오는 것이 가장 많았다.
방송 프로그램의 기존 시청자들이 뉴 페이스에 대한 경계심까지 더해져서 비판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회사에서도 이 내용을 알고 있기에 심각한 정도에 따라 고소를 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우선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 줄이자. 그게 낫겠지?”
“…….”
“거기서 오는 반응으로 네 마음이 흔들린다면 안 하는 게 나아.”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저희 팀한테 안 좋은 거잖아요.”
“그걸 아는 사람이 오늘 이러는 거야? 방송 몇 개 억지로 더 나가는 거보다 네가 마음 붙잡고 계속 노래하는 게 더 중요해. 프로그램에선 빠진다고 할 거고, 그러면 너를 향한 가시 돋친 시선도 줄어들게 될 거야.”
“정말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은 그저 욕하고 싶은 거야. 네가 미운 게 아니라. 네가 보이지 않으면 화살은 다른 곳을 향할 거야.”
다은이의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는 것. 이 정도는 내 권한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전에 들었던 생각인데…….
“그러면 시간 좀 남을 테니까 선생님하고 레슨 다시 할까?”
“어? 진짜요?”
“나는 네가 무대에서 노래하길 바란다고 했지, 예능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은 없어. 그런 건 그만두고 노래를 하는 것에 더 집중해 보자.”
“바쁘시잖아요.”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어.”
-김다은에게 있어서 당신 같은 보컬 선생은 또 없잖아요.
“아 참…… 연화도 같이하자. 괜찮겠지?”
“네.”
그 녀석을 안 부르면 뒤에서 또 어떤 마음을 품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데 아까 있잖아요. 쌤이 엄마 아빠랑 얘기하고 있을 때. 방 안에 들어가서 폰을 다시 켰는데 연락이 엄청 와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연화한테 톡이 온 것만 열 개가 넘었어요. 그것도 전부 장문으로.”
“무슨 내용이었는데?”
“그건 말해줄 수 없죠. 개인적인 내용이라서…… 암튼 그거 보고 좀 울었어요. 제가 이러고 있는 게 잘못하고 있는 거구나 그런 걸 알게 됐구요.”
숙소에 도착하니 나머지 멤버들은 아직 깨어 있었다. 선하는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으이그!’ 하고 소리를 높였고, 승연이는 꼭 안아주며 반겨주었다.
소란은 이렇게 끝났다.
이 아이들은 내일부터 새로운 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해외에 있는 팬들을 향해 떠나야 한다.
아직 해결된 것은 없고 다은이의 마음이 안정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숙소 안에서 밝게 웃는 모습이 그나마 발걸음을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가수가 되었기에……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 않니?’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아직 그런 것을 묻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 * *
애들의 소식은 하나의 스케줄이 끝날 때마다 회사에 즉각 보고되었다. 쇼케이스와 팬미팅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베트남은 한류의 중심이 되었다고 하지만 의외로 공연장이나 기반 시설 등이 부족해서, 당초 예상했던 것에 비해서는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그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비츠걸스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회사에서 유아연과 다음 싱글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혼자서 작곡을 한 곡이고, 가사는 아연이와 내가 함께 썼다.
제목은 .
이 곡은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줄 것이다.
* * *
Midnight Dance. 한밤의 댄스. 이건 유아연이 제목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제가 좀 야행성이라서요. 자정 넘어가면 몸에 활력이 생기고 춤도 잘 돼요. 그래서 밤에 연습 많이 하죠.”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가사는 함께 썼지만 초안을 유아연이 가지고 왔고, 그걸 멜로디에 맞추어서 내가 수정했다.
지분으로 보면 유아연이 80퍼센트, 내가 20퍼센트 정도.(이러한 지분은 실제로 저작권을 등록할 때도 명시를 한다. 그래서 저작권 수익을 지분에 맞추어 나눠 가지는 것이다.)
가사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나는 밤이 되면 춤을 추고 싶은 본능이 깨어나고, 때로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춤에 빠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도 함께 이 밤을 불태워 보자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선배님이 저한테 요구하는 감성이 어떤 건지 이제는 좀 이해가 돼요. 거기에 덧붙여서 이번 안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걸 보여줄 생각이에요.”
나는 음악을 담당하고 있기에 안무 쪽으로는 전문적으로 잘 안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서 하고 있는 일이니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안무 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춤이라는 것은 그 댄서가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 확연하게 보인다고 한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누군가에게 춤을 배워서 그 춤을 외워서 출 수 있는 단계. 어떠한 동작을 소화해낼 수 있고, 그걸 무대에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돌 멤버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그러한 동작에 멋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단계. 소위 말해서 춤선이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아이돌 중에서도 춤 좀 출 줄 안다고 할 수 있는 수준. 각 팀에서 메인 댄서를 맡고 있는 정도는 되어야 이 수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가 끝은 아니다.
자기가 무엇을 추고 있고 이 춤으로 무얼 표현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단계. 춤에 감정을 불어 넣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가요계를 통틀어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정상급 댄서들만이 가능한 경지이다.
“곡이 정말 어려워요. 늘어지는 템포만큼 여백이 많아서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나와 버리잖아요. 춤도 마찬가지예요. 빠른 템포에서 숨길 수 있는 것조차 그대로 보여줘야 하니 안무를 짜는 게 쉽지 않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 모든 기량을 여기에 쏟아붓는 걸로…….”
노래도 그렇긴 하다. 아무리 톤이 좋고 성량과 테크닉이 좋아도, 나이 어린 사람이 표현하는 것과 수십 년 노래를 해온 사람이 표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랑에 대해 노래를 한다고 해도 다은이가 부르는 사랑과, 인환이 형이 부르는 사랑은 그 깊이에 있어서 전혀 다를 테니까.
그런데 댄서들이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연륜과 깊이의 차이는 노래보다 댄스 쪽이 더 크다는 것이다.
열다섯 살의 춤과 스무 살의 춤은 전혀 다르고, 스물다섯 살의 춤은 또 다른 경지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열여섯 살 때부터 온갖 무대 위에서 춤을 춰온 유아연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최고의 여솔이면서 최고의 춤꾼 중 하나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댄서는 여덟 명을 쓰고 싶어요. 제 양옆으로 네 명씩. 그리고 남자 댄서 중에서 하나를 파트너로 정해서 저하고 호흡을 맞춰 보고 싶어요. 괜찮겠죠?”
그리고 베테랑답게 단순히 곡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벌써 구상하고 있었다.
“이 노래가 원래 그런 거잖아요. 한밤중에 춤을 춘다는 것…… 그러니까 섹스잖아요. 내가 춤을 추는 것으로 당신을 유혹하겠다? 아니면 우리 함께 춤을 추듯 서로의 몸을 즐겨보자는 그런 느낌으로? 그렇죠?”
곡을 쓴 원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아연이와 호흡을 맞추어 볼수록 분위기는 그런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은밀한 유혹. 이런 쪽으로.
“남자 댄서 한 명을 파트너로 두고, 제가 그를 유혹하는 퍼포먼스를 구상하는 것이죠.”
“그런데 노골적으로 섹시한 건 위험해. 지난 두 번의 앨범에서 그걸 시도했다가 실패했잖아.”
“그래요. 안다구요! 저도 그래서 다른 이미지로 가려고 하는 거잖아요.”
요즘 내 앞에서 성질이 많이 죽기는 했지만 이렇게 의견이 충돌할 때면 예전처럼 발끈하는 모습이 나오곤 했다. 이번에도 가시 돋친 목소리가 내 귀를 찔러왔다.
“…….”
그러면 나는 말없이 빤히 아연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니, 화낸 건 아니에요. 저도 그 부분은 인지하고 있어요.”
“나 이거 하지 말까?”
“미안해요.”
“곡 써서 줬으니까 그냥 여기까지만 할까?”
“아니에요.”
다시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몸에 밴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순 없을 것이다. 자기가 혼자서 이 회사를 지탱해 왔다는 자부심,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
때로는 그 자존심이 지나쳐서 안하무인 하게 보이기도 했다.
“나도 이번에 잘해보고 싶어. 네가 건재하다는 걸 이 곡으로 증명하고 싶은 거야.”
“알아요.”
그래도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공로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퍼포먼스는 괜찮은 것 같아. 너무 노골적이지 않도록 수위를 잘 조절해 보자고.”
보컬은 이제 레코딩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완성되어 있었다.
시간이 꽤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유아연이 이 곡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래전, 천재 소녀라고 불렸던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내가 요구하고 있는 느낌을 금방 이해하고, 레슨 중에도 발전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개인 연습도 얼마나 성실하게 하던지 다음 날 레슨 때면 전혀 다른 목소리로 돌아오곤 했다.
전에는 없었던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해야 하나.
레슨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목소리에 흠뻑 취할 정도로 매력적인 톤이 만들어졌다.
계속 옆에 두고 싶을 정도였다. 이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 * *
신입 연습생들이 비츠걸스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회사 소속 가수 중에서 아연이와 더불어 스타라고 할 수 있는 팀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슨 중에 비츠걸스에 대해 묻는 애들도 많았다. 왜 회사에서 볼 수 없어요? 저희도 만날 수 있어요? 실제로 보면 어때요? 평소 성격도 방송하고 비슷해요? 등등.
한창 활동 중이라서 회사에 들릴 일이 없는 것이지, 나중에 앨범 준비를 하는 시기가 오면 자주 볼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해 줬다. 그러면 다들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짓곤 했다.
그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비츠걸스에 대해 묻는 사람은 유은설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채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연화에게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같았다.
은설이의 경우는 팬이기 때문에 그랬다. 얘기를 들어보니 팬카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홈마스터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그들이 제작한 굿즈를 대량으로 구매한 적도 있다고 한다.
곧 있으면 비츠걸스의 공식 팬클럽이 만들어지는데, 만약 자기가 이곳의 연습생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거기에 가입했을 거라는 말도 한 적이 있었다.
채아도 거의 은설이에 준할 정도로 연화에게 강한 관심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관심의 종류는 전혀 달랐다.
“지난번에 말이에요. 제가 인사드리려고 사무실 올라갔을 때. 그날 한연화 씨하고 같이 일하신 거예요?”
“일이라기보다는…… 연화가 연습하는 걸 도와주고 있었던 거야.”
“연습이요? 사무실에 계셨잖아요.”
“그때는 연습하기 전이었지. 네가 인사하고 내려간 다음에 우리도 곧바로 연습실로 내려갔어.”
그날 일을 말하는 듯했다. 갑자기 돌아가는 길에 차를 태워 달라고 하길래 좀 이상하다 싶긴 했었다.
“원래 그렇게 늦은 시간에 레슨하세요?”
“걔도 바쁘고 나도 바쁘고 그러니까 둘이 시간 맞추면 항상 그렇게 됐어.”
그랬더니 채아는 “음…….” 하고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좀 특별한 분이죠? 선생님에게 있어서도요.”
그렇게 묻고는 내 대답을 빤히 기다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건지,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했다.
“특별한 거? 글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요, 그게…….”
채아가 연화를 신경 쓰고 있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은근히 그런 티를 내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은설이처럼 대놓고 물어보는 일은 절대 없었고, 어쩌다가 연화 얘기가 나오면 거기에 은근히 끼어들어서 한두 마디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지만 지금 대화 주제가 그거니까 참여하는 거임’ 이런 식으로.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한 건 아님’ 이런 태도로.
그렇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설픈 느낌이 없지 않아서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이 녀석, 연화한테 경쟁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사실 내가 연화를 담당한 건 얼마 안 됐어. 데뷔하기 한 달 전에 맡기 시작했거든.”
“그랬어요? 저는 아주 오래된 줄 알았어요.”
“그래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했으니까 레슨의 강도도 가장 높았어. 독종이라는 별명처럼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게 될 때까지 연습을 해서 나타나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정말 재미있었지.”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연습 많이 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연화는 좀 특별한 케이스야. 어릴 때부터 연습 벌레였어. 성대에 무리가 올까 봐 보컬 연습은 시간을 제한할 정도였거든. 하지만 연습량이 많은 것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남들보다 피로가 오는 것도 적은 것 같아. 너무 연습을 많이 하길래 새벽까지 내가 옆에서 지켜본 적도 있었어. 성대가 제대로 접촉하지 않으면 바로 연습을 중지시키려고. 그런데 그런 일이 없더라고.”
“새벽까지…… 진짜로 늦은 시간을 좋아하시네요.”
연화와 채아, 두 사람은 현재 회사의 메인 아티스트와 연습생의 관계지만 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에잇돌즈에 출연했을 때에는 동등한 입장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프론트 페이지는 2년 동안 활동해온 팀이었고, 비츠걸스는 막 데뷔해서 이제 곡 하나가 알려지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두 팀의 위치도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암이 갈린 것은 3라운드였다. 각 팀에서 한 명씩 나와서 솔로 무대를 보여주는 것.
두 사람은 각자의 팀을 대표해서 그 무대에 올라갔다.
연화는 매력적인 비주얼을 뽐내며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그걸 통해서 비츠걸스는 보다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활동 내역을 되짚어 봐도 바로 그때가 상승 지점이었다.
연화의 훌륭한 퍼포먼스가 팀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비츠걸스는 따라잡을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 버렸고, 프론트 페이지는 바닥을 헤매다가 결국 해체되어 버렸다.
같은 날 같은 무대에 올랐지만 두 사람이 얻게 된 결과는 그 차이가 극명했던 것이다.
“그럼 저도 새벽까지 연습하면 안 돼요?”
“무리하면 안 된다니까.”
“시도해 보고 싶어요.”
“채아 너는 안 돼. 방금 들었을 때에도 성대가 피곤한 게 느껴졌어. 오늘은 여기까지야.”
그래도 경쟁심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패배감에 휩싸여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번 해보면 안 돼요?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소리가 울리는 동안 네 몸의 구석구석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시킬지.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못하게 한 뒤 레슨을 끝내 버렸다.
서운하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보였기에, 달래주기 위해서 탕비실로 데리고 와 레몬티를 한 잔 타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차를 목으로 넘기며 채아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저잖아요. 제가 마음에 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으면서…….”
삐쭉 입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서 서운함이 가득 느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게 달랐고, 특히 이 나잇대의 여자아이들은 그런 면이 더욱 강했다.
채아의 경우라면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심이 강했다. 그걸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길 원하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팀의 메인 보컬로 너를 낙점한 거잖아. 난 정말로 고민도 없이 너를 선택했어.”
“모르겠어요. 제가 볼 때는 한연화 씨를 더 아끼시는 것 같아요.”
“더 아끼고, 덜 아끼고 그런 게 어딨어.”
머그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차가웠다.
“각자 매력이 다른 거야. 가지고 있는 재능도 달라. 누가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너무 비교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만의 장점을 발전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라고.”
에잇돌즈의 3라운드 무대. 이미 그때부터 나는 채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약 그때 채아의 선곡이 달랐다면, 트레이닝과 무대 구성에 좀 더 고급 인력이 투입됐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츠걸스를 담당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동시에 그 재능을 나에게 데려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동등했던 입장, 그다음에는 벌어져 버린 처지, 하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 앞도 알 수 없는 게 이 바닥이라고 하니까.
* * *
플로우(Flow) 엔터테인먼트는 배우 세 명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였다.
그중에서 최은영은 수많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정상급 배우였다.
플로우 엔터의 사장과 최은영은 원래 대형 기획사에서 매니저와 소속 배우로 있었지만, 최은영의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추어 플로우 엔터를 설립하고 독립한 것이었다.
이후 플로우 사장은 두 명의 배우를 더 영입해서 3년 동안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최은영이 다른 곳으로 이적할 뜻을 내비치자 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그녀가 사라지면 회사를 유지시킬 이유가 없었다.
몬스터 뮤직과의 합병 이야기는 작년부터 나오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내가 몬스터에 들어올 즈음부터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손동하 사장이 물러나고 김인혁이 그 자리로 올라가는 것, 그리고 플로우 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 등도 그 무렵부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영민 본부장님, 아니, 이제 이사님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플로우 엔터 사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첫인상이 뭐랄까…… 좀 괴짜 같다고 해야 하나.
머리를 안 감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저렇게 꾸민 건지, 방금 베개를 베고 누웠다가 일어난 것처럼 옆 머리는 푹 눌려 있었고 윗머리는 삐쭉 치솟아 있었다.
그리고 마치 돋보기를 쓰고 있는 것 같은 두툼한 렌즈의 안경 때문에,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보였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저희 회사에서 앞으로 배우 쪽 매니지먼트를 담당할 김종성 팀장님입니다.”
한때 기획사를 이끌었지만 결국 실패해 버린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회사를 합치는 문제는 이미 논의가 끝났기 때문에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었고, 이날은 인사를 하기 위해 만난 것이었다. 정확히는 파인애플 사장이었다가 이제는 우리 회사에서 배우 매니저를 맡게 된 김종성 씨를 인사시키기 위해서.
“본부장님 요즘 바쁘시죠? 가만 보면 회사에서 본부장님 혼자서 일하는 것 같아요. 어딜 가나 본부장님 이름이 다 있더라고.”
그러면서 그는 소리를 크게 내며 웃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을 때는 렌즈가 확대하고 있는 두 눈이 정말 튀어나올 것처럼 무섭게 보였다.
어쨌든 플로우 엔터테인먼트는 그대로 유지한 채 몬스터 뮤직의 신사옥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다만 몬스터 뮤직에서 플로우의 지분 90퍼센트를 취득했다. 사실상 우리가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몬스터 뮤직에는 매력 있는 여가수들이 참 많아요. 같이 일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요. 최은영 씨하고는 요즘 어떠세요? 안 좋게 결별했다는 얘기도 좀 있던데요.”
예의를 차릴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김종성 씨와 플로우 사장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그 내용은 완전히 반대였다.
비록 성공시키진 못했지만 소속 가수와의 관계는 이상적이라고 할 만큼 좋았던 김종성 씨와.
소속 배우를 높은 클래스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게 지원했지만 재계약에 실패해서 사업이 기울어져 버린 플로우 사장은 전혀 반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회사가 배우 한 사람에게 의지할 정도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음에도 왜 그 배우를 놓쳐 버린 것인지.
“처음부터 그렇게 아픈 곳을 쿡 찌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거 너무 무서운데요. 하하.”
“그냥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은영이하고는 뭐…… 계약 연장 관련해서는 이미 얘기가 충분히 오갔기 때문에 좋고 안 좋고 할 것도 없어요. 제가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커버린 거죠. 그래서 큰 회사에 가겠다고 하는 것이니…… 특별히 안 좋을 건 없고, 저는 좀 서운하다는 정도?”
“그렇군요.”
“연락은 잘 안 합니다. 시간이 좀 필요하죠. 아무튼 걱정하시는 그런 건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같은 연예계라고 해도 배우 쪽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 가수 쪽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예 근본부터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가수라면 자신의 네임밸류만큼이나 회사의 크기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배우 쪽은 그 반대였다.
배우는 활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 회사라는 배경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최은영 정도의 탑급 배우라면 1인 기획사에 있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이건 설득력이 없는 말이었다.
“따지려는 게 아니고 정말로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제가 최은영 씨 팬이었거든요. 그리고 별문제 없을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여쭤본 거죠.”
“그렇죠, 뭐. 여기 있으면 한 배를 타고 있을 때도 있고, 그러다가 등 돌리고 쳐다도 안 볼 때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처럼 싸우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뜻이 맞으면 또다시 손을 잡을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럼에도 이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배우 쪽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플로우 사장이 가지고 있는 인맥, 그리고 사업 수완, 매니지먼트 노하우 등등. 음악 쪽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기에 우리는 이 사람을 통해 배울 필요가 있었다.
김종성 씨를 여기에 투입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혼자서 파인애플을 이끌고 온 의지력이라면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몬스터 뮤직에서는 음악만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드라마나 영화 쪽은 제가 꽉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플로우 엔터 입장에서는 동아줄을 잡은 것이었다. 주력 배우의 이탈로 회사가 휘청거릴 위기였지만 몬스터에서 구제해 준 셈이었다.
그것도 우리 비츠걸스 애들이 벌어온 돈으로. 그러니 내가 깐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아저씨하고 둘이 다니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러네.”
1팀 직원들은 모두 빅픽쳐에 붙어 있었기에 유아연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1팀장이 직접 현장을 뛰고 있었다.
“옛날에는 맨날 이렇게 둘이 다녔었는데.”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음악이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가 발매된 지 이틀이 지났다.
누군가는 그동안 쌓아왔던 것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속에서 억지로 시간을 견디고 있었지만 그런 건 티도 나지 않았다.
이번 곡이 잘되지 않으면 은퇴하겠다는 결심 또한 그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걸 모른다.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유아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나는 늘 이곳에 있었고, 이번에도 이곳에서 당신들을 만납니다’라는 듯이.
는 음원으로 출시되자마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역시 유아연이네!
대중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론 팬들은 8집과 9집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음악 또한 예전만큼 못했고, 그래서 2년 동안 암흑기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고 주시하고 있는 팬들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여성 솔로 가수가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이 매력적인 음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박영민 이 양반 진짜 대단해. 곡 나온 거 듣자마자 어? 하고 놀랐다니까. 딱 그거야. 예전에 네 전성기 때 느낌.”
“음악이 그때랑 비슷하다는 거예요?”
“아니, 음악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너한테서 느껴지는 에너지 뭐 그런 거. 이번에는 다르겠구나. 이건 되겠구나. 그런 느낌 있잖아.”
유아연 본인도 그런 걸 체감하고 있었다. 그저께 음악이 세상에 공개된 뒤 대중들의 반응을 봐도 그랬다. 마치 얼어붙어 있었던 겨울을 깨고 따뜻한 봄비를 세상으로 내려보낸 듯한 느낌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고 어딜 가도 곡 좋다는 반응이 많아. 차트에서도 3일째 1위지?”
“그렇죠.”
“대단한 사람이야. 실패가 없어. 손대는 것마다 전부 성공시키니까. 그 사람이 너 맡겠다는 얘기 들었을 때부터 이번에는 제대로 되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기더라고.”
1팀장은 그게 자기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처음에는 싫어하지 않으셨어요?”
“싫어해? 내가?”
“박영민 본부장님을요.”
“아…… 그때? 그땐 몰랐으니까. 나는 김 이사가 우리 쪽 견제하려고 꽂아 넣은 줄 알고…… 그런데 아연아. 네가 느끼기에는 어때?”
“뭐가요?”
“박영민하고 김인혁 비교하면? 음악 만드는 능력 말이야.”
박영민하고 김인혁을 비교…… 유아연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
“아저씨.”
“응?”
“전에도 그랬어요? 상급자를 그렇게 이름만 막 부르시진 않았던 것 같은데.”
또박또박. 마치 쏘아 대듯 날카롭게 내뱉는 목소리를 들으니 1팀장은 피식 웃음이 나와 버렸다. 또 시작됐구나.
“차이점이 좀 있죠. 김 이사님은 자신의 틀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마음껏 음악을 만들어내는 식이라면, 박영민 선배님은 어디로 튈질 몰라요. 솔직히 제가 보기엔 천재 같아요.”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예전에 봤을 때에는 감각이 참 좋은 사람이구나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전혀 달라졌어요. 같이 작업을 해보니까 느껴져요. 작곡을 하는 것에도 자신감이 있고, 곡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요. 곡 작업 하면서 음악에 대해서는 제가 한 마디도 못 꺼냈다니까요.”
그러자 1팀장은 조금 다른 이야기로 화답했다.
“절대 적으로 두어선 안 되는 사람이야. 절대로.”
하지만 유아연은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흘려들었다. 대신 기지개를 쭉 켜며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진짜 옛날 생각 나네요. 맨날 이렇게 아저씨랑 붙어 다녔었는데.”
“별별 일이 다 있었지.”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거예요? 이번에는 이렇게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다음 앨범 활동 때는 제대로 해야죠.”
이번 싱글 활동이 끝나면, 박영민과 함께 정규 10집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그때는 매니저들이 여럿 붙어 있어야 할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사람 더 뽑아야지.”
“저한테는 똘똘한 사람 붙여 주세요. 자꾸 사람 바꾸면 아저씨도 피곤하실 거 아니에요.”
“똘똘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 있어야 붙여 주지.”
“아니면 교육을 제대로 시켜서 보내주세요.”
예전에는 그랬었다.
이 회사의 중심은 자기니까 아무나 붙여 주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 댄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는지 이제는 이런 말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도 그런 노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도 하고,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내기도 하고……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럴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이날 아침에도 그랬다.
스타일리스트가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이게 뭐냐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소리가 높아졌겠지만, 오늘은 적당히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그 대신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몰라서 그랬다면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박영민 선배님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이제 안 그런다니까. 그때는 내가 오해를 해서.”
“그분 아니었으면 제가 지금 이 차에 타고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었다.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지만 가요계의 선배이자 이번 앨범을 담당하게 된 프로듀서에게는 넌지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잘 안 되면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의 조력자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