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
3장 내가 실수를 한 건가
오래전, 나도 연습생이었던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4인조 보컬 그룹을 데뷔시키려고 기획하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데뷔 멤버로 뽑혀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회사였다. 몬뮤처럼 연습생 트레이닝에 체계가 잡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직원들이 마구잡이로 캐스팅해 온 애들을 모아서 팀을 만들었고, 이따금 회사의 꼰대들이 연습하고 있는 중에 찾아와 폭언과 폭행으로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키고…… 뭐 그 시절 소규모 연예 기획사라면 다 그렇기는 했지만.
그래도 프로듀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자기 머릿속에 구상한 대로 우리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연습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이 캄캄한 동굴의 끝이 비로소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 데뷔를 한다는 것. 우리의 이름을 가지고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시련마저 지난 추억으로 넘길 수 있을 만큼 나는 그 당시 기대와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이뤄낸 것 같은 그런 기분.
내 목소리가 드디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다는, 너무나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아니, 선생님! 이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불협화음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김인혁 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데뷔곡이 정해지고 이 곡에 대해 지도를 받기 위해 연습실 바닥에 둥글게 앉아 있었던 그때.
“왜 저한테는 그런 파트만 주시는 겁니까? 왜 싸비는 다 영민이가 부르는 거예요?”
“너 이 새끼…….”
김인혁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내질렀고 언제나 호통을 치던 프로듀서는 오히려 당황한 듯 말을 삼키는 것이었다.
“제가 이런 거 부르려고 여기서 연습생 생활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예?”
그러자 프로듀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썩!
뺨을 때리는 소리가 연습실 공간을 공허하게 울렸다.
“이 새끼가 요즘 좀 풀어주니까.”
다시 한번 철썩!
“오냐. 네가 나한테 불만이 있었다 이거냐.”
뺨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인혁은 차마 프로듀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전부 엎드려뻗쳐!”
그의 고함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바닥에 엎드렸고
“너네 데뷔하기 싫지?”
“아닙니다!”
“내가 만만하다 이거지?”
“아닙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해주니까 아주 이것들이 배가 불렀네.”
“죄송합니다!”
지금 이랬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랬다.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규모가 큰 곳은 얘기가 다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곳처럼 작은 곳은 연예 기획사인지 조폭들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얼차려를 받는 건 우리의 일상이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겪은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오늘도 또 이러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프로듀서가 우리를 심하게 굴렸기 때문은 아니다.
이제까지 둘도 없는 친구처럼 느껴지던 녀석이었지만 욕심이 강하고, 또한 나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
비록 소속사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사이라지만 동갑인 데다가 함께 고생을 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유난히 가깝게 지냈던 이 녀석이…….
그전에는 까맣게 몰랐다.
팀에서 내 포지션은 메인 보컬.
김인혁보다 내 음역대가 더 높았기에 나는 언제나 곡의 후렴을 독차지했다. 가장 돋보일 수 있는 파트는 내 몫이었다.
하지만 김인혁은 내 파트를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도 노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니, 정말로 잘한다. 이 녀석 또한 가끔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좋은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스포트라이트를 나에게 양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뒤로 레코딩을 마치고 데뷔를 했고, 그러는 동안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갈등이 다시 드러난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녀석은 마음속에 계속 그 일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여전히 살가웠지만.
후속곡이 정해졌을 때 다시 한번 녀석은 후렴을 자기가 부르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고, 하지만 이 팀의 메인 보컬은 나라는 이유로 하이라이트는 또다시 나에게 배정되었다. 그때부터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가장 돋보이는 파트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
정확히 말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는 녀석. 후속곡이 폭망하고 행사를 돌아다니게 되었을 무렵, 녀석은 하루 종일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있을 정도로 우리 둘의 관계는 점점 냉각되고 있었다.
라이벌.
그래. 말하자면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이때는 내가 이 녀석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당시 포보이스는 가창력을 앞세운 실력파 그룹으로 포장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주목을 받는 것은 내가 맡고 있었던 포지션이었다.
팀의 메인 보컬. 그 반면 김인혁은 리더라는 포지션, 그러니까 대중들에게 어필을 하기에는 부족한 위치였다.
팀이 해체된 후, 작곡가로 전향한 김인혁이 처음으로 곡을 팔았을 때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해체된 후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 아니 활동할 때도 서먹해졌으니 그야말로 몇 년 만에 서로 대화를 해보는 것이었다.
잘 지내냐고, 나는 요즘 곡을 쓰고 있다고, 평범한 안부 전화였다.
그리고 녀석의 전화는 그 뒤로도 이따금 걸려왔다.
퍼블리싱 업체와 계약을 해서 점점 많은 곡을 팔기 시작할 때에도, 그리고 몬스터 뮤직과 전속 계약을 맺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를 치고 최고의 프로듀서로 성장하고 있을 때에도.
김인혁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 안부를 묻고, 자기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마치.
‘이거 봐. 너는 그렇게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지만 나는 이만큼 성공했어.’
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듯이.
그렇기에 이 녀석의 전화는 반갑지 않았다.
‘예전에는 네가 조금 더 앞섰지만 이제는 비교가 되질 않잖아?’
* * *
그러다가 나에게 몬스터 뮤직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한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나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고, 나를 이기고 싶은 것이라면 왜 그런 제안을 한 것인지. 가까운 곳에 두고 자신의 승리감을 확실하게 느끼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지난날의 열등감 같은 것은 모두 잊어버린 것인지.
어쨌든 나는 이 녀석 덕에 몬스터 뮤직에 들어올 수 있었고 보컬 트레이너로 일을 하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 있게 된 이후로, 녀석은 종종 나를 찾아와 언제 술 한잔하자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지만, 아직까지 이 녀석과 술자리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요. 차성우 선생님은 진짜 변태예요.”
“변태?”
“진짜 좀 이상해요.”
그리고 내가 여기서 일을 하게 된 지 이제 한 달. 애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레슨을 할 때 나에게 별별 얘기를 다 한다.
“우리한테는 영민 쌤이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김다은이었다.
“그분이 왜 변태야?”
“레슨할 때 말이에요. 몸을 막 만져요.”
“뭐? 너네 몸을?”
“예. 진짜예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맞아. 나 진짜 그거 싫었는데.”
그리고 같이 레슨을 받는 애들도 동의하는 것이었다.
“아니, 몸을 만진다고? 이건 좀 심각한 건데.”
차성우 이 인간.
그랬던 거냐?
“막 여기를 만지고…… 이렇게.”
다은이는 눈을 번쩍 뜨며 엄청난 것을 폭로하겠다는 듯이 말했지만 정작 가리키는 곳은 배였다. 배를 꾹꾹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배?”
“예. 배요. 여길 막 만진다니까요.”
“노래 부를 때 말이지?”
“맞아요! 쌤도 보셨구나.”
하지만 이건 변태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 것이다.
발성을 할 때 배로 힘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목으로 꽥꽥 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목에 들어가는 힘을 분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몸 안의 압력을 배로 버텨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발성을 가르치며 배를 꾹꾹 누르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주먹으로 배를 마구 때리는 트레이너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어떨 때는 배를 손바닥으로 쓰다듬다가 손이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그러면서 다은이는 가슴과 배의 경계선을 가리켰다.
“남자 손이 여기까지 닿으면 진짜 소름 끼쳐요. 이건 안 당해보면 모르죠.”
아마도 이건 아랫배를 당기면서 늑골을 팽창시키라는 내용이었을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이때다 싶었는지 다른 애들의 폭로도 계속 이어졌다.
“나는 차 선생님 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니까.”
“아, 맞아. 봤어.”
“여기를 울리라면서 손가락을 입안으로 쑥 집어넣는데…… 진짜…… 나 울 뻔했어, 그때.”
모두들 차성우에게 당한 것이 있는지 그렇게 한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하긴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이 몸을 만지면 나라도 겁이 났을 거야.
“그래서 박 쌤 와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차 쌤한테는 말 한마디 함부로 하기가 힘들어서, 맨날 혼내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그래. 그건 뭔지 알겠다. 나도 그 양반 레슨하는 걸 가서 본 적이 있거든.
하여튼 김다은은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나는 혹시나 다은이가 이번 월말 평가에서 좋은 평을 듣게 되고, 그래서 데뷔조로 올라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얘는 그런 기대가 애초에 없었던 모양이다.
-저는 그냥 이런 게 좋아요. 실컷 배울 수 있고 좋은 음악 들을 수 있고.
레슨 때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기한 녀석이다.
다른 애들은 이렇게 연습생 생활만 하다가 인생을 망치지는 않을지,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을 텐데.
어쨌든 몬스터 뮤직이 새로운 4인조 걸그룹을 런칭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남짓. 아무래도 당장 다은이를 거기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겠지. 기회는 이번뿐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 또한 이렇게 애들을 발전시킨다면 3달 뒤에도 이 회사에 내 자리가 있지 않을까? 어제처럼 손동하 사장에게 인정을 계속 받는다면.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애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연습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어? 안녕하세요!”
애들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들어온 사람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손동하 사장이다. 이 회사의 우두머리가 이 초라한 연습실을 방문해 준 것이었다.
“나 들어가도 되지?”
“예, 그럼요.”
“전에 말했었잖아. 레슨하는 거 구경 좀 하고 싶다고.”
예고도 없었던 방문에 놀란 건 애들뿐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박영민 씨.”
“예.”
“이번 타임 끝나고 시간 있지?”
“예. 괜찮습니다.”
“그럼 내 방으로 가자. 할 얘기가 좀 있어.”
“하실 말씀이요?”
“일 좀 더 시키게.”
“일이요?”
“능력이 있으면 능력이 있는 만큼 일을 많이 떠안게 되는 거야.”
두 번째 기회가 나에게 왔다. 내 존재감을 알릴 기회가.
“그저께 델리아 콘서트 왜 안 왔어?”
델리아라면 몬스터 뮤직에 소속된 듀엣
그리고 콘서트라면 지난 주말에 있었던 소극장 콘서트를 말한다.
그런데 왜 안 왔냐니? 갔어야 하는 건가. 이제 소속사 아티스트의 콘서트는 다 따라다녀야 하는 건가.
“올 줄 알았는데. 같이 술이나 한잔하려고 했거든.”
술 한 잔? 주말에 콘서트 끌려 나가서 회사 사장하고 술을 마셔야 한다니. 이것도 나름대로 고된 일이군. 하기야 다른 회사는 주말에 등산을 하기도 한다는데. 그것보다야.
“바빴다며? 애인 만난 거야?”
바빴다고? 내가? 아하, 설마 그거 말하는 건가.
본부장이 갑자기 나를 불러서 주말에 시간 있냐고 물어보길래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바쁘다고 그랬었는데. 이제 보니 그거였군.
“아뇨. 그냥 가족들하고 일이 있어서.”
“애인 만난 건 아니고?”
“예?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밀어 저었다.
애인이라니.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하지만 드래곤볼 계왕신을 닮은 손동하 사장은 여전히 동그란 선글라스를 쓰고서, 뭔가를 꼭 알고 있는 사람 마냥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
임원실.
이 건물의 2층, 햇빛 잘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로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어서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전에 한 번 김인혁이 나를 불러서 찾아온 적이 있었다. 커피나 한잔 같이하자는 얘기였다.
임원실이라길래, 이렇게 작은 회사에 무슨 독실이 있는 건가 했지만 막상 와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사장, 전무, 이사들이 같이 모여 있는 사무실. 게다가 다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커다란 믹서와 콘솔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하자면 임원실이라기보다는 작업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
“그래도 시간 좀 내주지 그랬어? 그저께 델리아 콘서트는 진짜였어. 간만에 귀가 호강했거든.”
한때 몬스터라고 불렸던 남자. 손동하 사장. 그리고 그가 만지는 장비들. 또 그 옆에는 이 시대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김인혁이 작업을 하는 곳. 하지만 다른 임원들은 밖에서 일을 보는지 임원실에는 손동하 사장과 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불러주시면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좋은 공연이 있으면 부를 테니까 같이 보자구.”
손동하 사장은 계왕처럼 활짝 웃었다.
본부장. 좀 자세히 말해줄 것이지. 사장을 만나는 자리인 줄 알았다면 갔을 텐데.
“콘서트를 같이 보면서 얘기했다면 좀 쉽게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예?”
“아니다, 자네한테는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겠군. 그러니까 말이야.”
주말에 같이 소속 아티스트 콘서트를 보자고 했던 사장, 그리고 연습실에 불쑥 나타나서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던 것.
사장은 나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 * *
“델리아 그 친구들, 요즘 애들 같지가 않아. 노래를 할 줄 안다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노래를 한다고. 그냥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진짜 노래를.”
사장은 델리아에 대한 칭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뷔 6년 차의 여성 듀오. 서정적인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를 주무기로 삼고 있는, 음악적인 색깔이 뚜렷한 팀. 비주얼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서 고정팬이 꽤 있는 편이다.
방송 쪽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음원에서는 성적이 꽤 괜찮다고 알고 있다.
“그저께 공연도 기가 막혔어. 두 시간 반 동안 그런 퀄리티의 콘서트를 해낼 수 있는 팀은 이제 몇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아, 그걸 보면서 얘길 했어야 하는데.”
사장은 못내 아쉬운지 빙긋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살짝 저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사장은 뜸 들이지 않고, 그리고 우회적으로 돌리지도 않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꽂아 넣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말이야. 그런 보컬이 성장하기 어려운 시스템이야. 노래는 그냥 적당히…… 그럭저럭 소스를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손을 대서 듣기 좋게 만들어낼 수가 있거든. 그러니까 보컬이란 게 말이야, 뭐랄까……. 밑그림 같은 거에 불과한 거 아니겠어? 요즘엔?”
하지만 델리아는 그렇지 않다고. 노래에 무언가를 담아 두 시간 반 동안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진짜 보컬이라는 칭찬이 계속 이어졌다. 그걸 나하고 같이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왜 그걸 나하고?
“김다은 말이야. 걔도 잘 키우면 그런 보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야?”
사장이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이었다.
“그런 보컬을 만들어보고 싶어도 요즘에는 쉽지 않아. 옛날 방식이라는 얘기거든. 내가 옛날에 음악했을 때에나 그랬다는 얘기야. 요즘에는 안 그렇다고, 특히 그렇게 팀으로 만들 거면 너무 튀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말도 마. 내가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듣는지.”
이렇게 서론을 꺼내는가 싶었는데. 손동하 사장은 본론을 건너뛰고 갑자기 결론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 또 만들어보자고. 들을 만한 보컬을.”
“예?”
“황유미 알지?”
“황유미요?”
황유미.
알고 있다. 전에 무슨 걸그룹에 있던 메인 보컬인데. 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폭삭 망해서 소리도 없이 사라진 팀이거든.
“지난달에 우리 회사랑 계약했어.”
“아…….”
“솔로로 내보낼 거야.”
그리고 사장은 뜸 들이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자네가 황유미의 디렉팅을 맡아봐.”
“예?”
“디지털 싱글을 하나 낼 거야. 그거 디렉팅 좀 해보라고.”
“제가요?”
“물론 연습생 애들 가르치는 것도 계속하면서 말이야.”
내가 황유미의 디렉터로?
“내가 보기엔 말이야. 그러니까 남들은 이게 옛날 방식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황유미 걔는 괜찮은 보컬이야. 키워보고 싶어. 그래서 데리고 온 거야.”
황유미. 노래는 확실히 잘한다. 어떤 팀에 있었는지 팀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이름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한 번 들었을 때 ‘이게 누구야?’ 싶었을 정도로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보컬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어. 김다은 고 녀석…… 어느 정도인지 첫 소절 부르는 것만 들어도 다 파악되거든. 자네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왕년에는 노래 좀 한다는 애들 한두 명 겪어본 게 아니야.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을 겪어봤지.”
내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니. 당연히 안다. 이 사람은 그 무렵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었던 몬스터였으니까. 그걸 모를 리가.
“물론 갑자기 확 트여서 소리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 그런 것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야. 자기도 모르게 그런 걸 터득하는 사람도 가끔은 있거든. 뭐, 천재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김다은은 내가 알어. 지난 1년 동안 눈여겨보고 있었어. 걔가 한 달 만에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 그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지.”
동그란 선글라스 너머로 숨어 있는 눈빛이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차성우 선생도 훌륭한 트레이너지만 그 양반은 적당한 소스를 만들어내는 것에 치중하는 편이고…….”
미지근하게 식어버려서 단맛이 강해진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오만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네의 능력을 한 번 접한 것으로 신뢰하겠다는 건 아니고…… 한 번 더 보여달라는 거야. 황유미의 디렉터를 맡아서, 한 번 더 근사한 소리를 만들어보자고.”
* * *
비너스 캐슬. 팀 이름이 이거였군. 황유미가 있었던 곳.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있었다. 프로필을 찾아보려고 해도 나오는 게 별로 없을 만큼 비너스 캐슬은 폭삭 망했다.
데뷔하고 나서 공중파 방송 딱 두 번, 그리고 케이블과 라디오를 떠돌다가 사라져 버린 팀.
언제 해체했다고 기사도 안 나올 정도로 사람들에겐 잊혀진 팀이었다. 아니, 잊혀졌다고 하기엔 애초에 기억하고 있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황유미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더라?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우연히 곡을 들었다가 보컬이 괜찮았고 그때 찾아본 것이겠지. ‘아, 이 황유미라는 애는 노래를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황유미는 지난달에 몬스터 뮤직과 계약했고 음원을 하나 내려고 한다. 그리고 사장은 나를 따로 불러서 황유미를 트레이닝시킨 뒤 디렉팅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기회다. 이건 정말 제대로 된 기회였다.
이걸 제대로 해낸다면 석 달 뒤 내 거취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 분명했다. 사장 눈에 제대로 들어간다면 내 자리는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디렉팅 트레이너? 우리 회사에? 꽤 있지. 차 선생이 맡기도 하고, 아니면 아티스트가 따로 원하는 트레이너가 있으면 외부에서 데려오기도 하고.”
“그러니까 티오가 더 있는 거죠?”
“티오? 자리가 있냐고?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본부장에게 물으니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보컬 트레이너는 크게 발성 트레이너와 디렉터로 나뉜다. 보컬 실력을 키우기 위해 발성 자체를 잡아주는 발성 트레이너, 그리고 레코딩을 할 때 보컬이 그 곡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디테일하게 분석해 주는 디렉터.
둘 중 하나만 하는 트레이너가 있고 둘 다 겸하는 트레이너도 있다.
어쨌든 그 두 가지는 모두 보컬 트레이닝에 속해 있는 분야다.
“황유미 디렉터를? 오오! 정말이야?”
“그러니까요. 제가 그거 한다니까요. 발성 트레이닝도 맡아서 하고, 레코딩할 때 디렉팅까지 저보고 해보래요.”
본부장이랑은 예전에 안면이 있었던 사이고, 둘이 말도 잘 통해서 이런 식으로 이따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권위의식 같은 것이 없어서 이 회사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내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였다.
물론 큰 회사였다면 감히 계약직 트레이너 따위가 A&R 본부장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아, 그런데! 왜 주말에 콘서트 보러 간다는 거 말씀 안 하셨어요?”
“뭔 소리야?”
“사장님이 저보고 왜 안 왔냐고 뭐라고 하시잖아요.”
“너 바쁘다며?”
“아니,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면 제가 시간 내서 갔죠.”
다 지난 일이지만…… 손동하 사장이 왜 그저께 안 왔냐는 말을 할 때마다 괜히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구.
“그런데 영민아.”
“예?”
“손 사장이 따로 불렀다며. 너를?”
“그러셨죠.”
맨들맨들한 대머리를 반짝이며 사람 좋게 웃고 있었던 본부장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한 빛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눈썹을 살짝 구기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김 이사도 알어?”
“김 이사요?”
“인혁이 말이야. 이거 인혁이도 알고 있는 내용이냐고.”
어? 뭐가 잘못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본부장의 얼굴은 심각했다.
김인혁이 왜? 그 녀석이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인가.
그리고 마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김인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민아. 너 나 좀 잠깐 보자.
이제까지와 달리 그 녀석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영민아. 너답지 않게. 왜 그런 실수를 한 거야?”
김인혁이 꺼낸 첫마디였다.
잔뜩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인위적인 미소를 입안 가득 머금고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친구로서 묻고 싶은 거야.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하지만 나는 도무지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실수를 했다고?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스튜디오. 몬스터 뮤직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튜디오였다.
레코딩 부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뭇결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깨끗한 스튜디오 안에는 오직 김인혁과 나, 둘뿐이었다.
“실수라니?”
도대체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실수?
연습생 애들을 가르치는 일은 지난 한 달 동안 해왔던 그대로 했다.
이걸 가지고 실수라고 하는 건 아닐 테다. 그렇다면…… 아까 사장을 만난 거? 그게 왜?
“일단 여기 앉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김인혁이 손으로 가리키는 의자에 앉으니 이 녀석과 나의 거리가 좁혀졌다.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그러니까 원래 이 자리에는 엔지니어, 프로듀서 등이 앉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깝게 앉아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만들어내는…… 뭐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먼저 얘기를 했어야지.”
그런 일.
이 녀석이 그런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은 아까 손동하 사장을 만난 것.
그것밖엔 없을 것이다.
“사장님이 날 부르셨어. 그래서 올라간 것뿐이야.”
“그러니까 내 얘기가 그거야. 사장이 너를 불렀으면 왜 불렀겠냐?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 녀석의 입가는 애써 미소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불편함이 가득 서려 있는 눈가는 차마 숨기지 못하는 듯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여간 날카롭지 않았다.
내가 실수를 했다? 사장이 나를 부른 건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나를 이렇게 부른 거다? 따지기 위해서?
정확한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감이 왔다. 왜 이 녀석의 눈가가 이렇게 불만으로 가득한지.
“여기도 회사야. 아무리 우리가 작아도 절차란 게 있는 거야. 오더가 내려가는 라인이 엄연하게 있는데 이건 아니잖아? 영민아,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 나는 네가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하지만 실수는 실수인 거야. 최고 오너가 말단 직원을 불러서 직접 업무를 지시하는 게 어디 있겠어? 이건 아니지.”
녀석은 웃으면서, 그리고 ‘영민아’ 하고 말을 할 때는 내 어깨를 툭 두드리면서 말을 했다.
“그러니까 너한테 말을 안 한 게 내 실수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녀석은 활짝 웃었다.
마인 부우 같은 녀석. 활짝 웃으니까 영락없는 마인 부우군.
“친구니까 하는 말이야. 이거 큰 실수야. 물론 너는 내가 데려온 사람이니까 너한테 피해가 가는 건 내가 막아주겠지만, 평범한 트레이너가 이랬다면 좀 난감해지는 상황이지.”
그리고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튜디오의 문이 활짝 열렸다.
“김 이사님?”
매니지먼트팀의 정영수 팀장.
“아…… 왔어요? 그래요. 여기로 와요.”
김인혁이 나를 부른 건 내 실수를 언급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정 팀장과 나를 불러서 따로 지시를 내릴 것이 있었던 것이다.
* * *
“정 팀장 팀에서 황유미 맡고 있다면서요?”
“예.”
“그래서 그 얘기 좀 하려고 불렀습니다.”
정 팀장이 자리에 앉았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사무실에서 자주 보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 황유미를 솔로로 내보내기 위해서 싱글을 하나 낸다. 맞습니까? 정 팀장?”
“예? 아…… 예.”
“난 몰랐거든요. 조금 전에 알았어요.”
정 팀장은 살며시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조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페셜 오더인가 보죠? 아니, 이 회사에서 내가 모르게 막 그런 오더가 내려가면 나는 어쩌라고. 이거 나보고 나가란 소리 아닌가 모르겠어요.”
김인혁은 여전히 미소를 활짝 지으며 말을 했지만…… 이건 뭐 ‘죄송합니다’ 하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아니, 그런데 죄송할 게 뭐 있나. 절차가 잘못된 거면 그 지시를 내린 사람이 잘못이잖아?
“그러니까 내 생각은 그래요. 속해 있는 집단의 크기가 달라지면 그거에 걸맞게 비전 또한 달라져야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 팀장? 아직도 옛날 구멍가게식으로 일단 오더 내리고 나면 알아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이런 건 좀 버려야 돼요. 그럼 절차란 게 왜 있겠습니까?”
여기도 참 피곤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조용히 애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면 다 잘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이번에 황유미 싱글 내는 거, 우리 프로듀싱팀에서는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예?”
“그럴 여력이 안 돼요. 애들 날밤 까면서 일하는데 그거까지 맡을 순 없습니다.”
“김 이사님. 그러면?”
“사장이 두 사람한테 지시를 내렸잖아요. 스페셜 오더. 그래서 두 사람을 부른 겁니다. 둘이서 알아서 해보세요.”
“예?”
정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나와 김인혁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게 뭐야? 하는 눈빛으로.
“아니, 그러면 어떻게 일을 합니까?”
“정 팀장. 나는 걔가 우리 회사랑 계약한 것도 몰랐습니다.”
“모르셨다고요?”
“알 수가 있나요? 오더가 중간 과정 다 생략하고 실무자들에게 곧바로 내려가는데.”
정 팀장은 다시 내 쪽을 살며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그럼 프로듀싱팀 로드가 줄었을 때 해주세요. 급하진 않습니다.”
“급하진 않겠죠. 기획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간 거니까.”
“그럼 나중에 하실 수 있을 때…….”
“어쨌든 저희는 그거 못 합니다. 두 사람이 알아서 하세요.”
“예?”
“정 팀장 능력 있잖아요. 이 정도 못 하겠습니까? 저희 애들은 바빠서 못 하니까 두 사람이 알아서 하세요. 알겠습니까?”
* * *
스튜디오를 나온 나와 정 팀장은 할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이따 얘기하기로 하죠. 영민 선생님은 언제 시간 비어요?”
나는 곧바로 레슨 들어가야 하고, 정 팀장도 그쪽 일을 할 게 많아서 업무를 봐야 하고…… 결국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으며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뭐야 이거. 두 사람이 사이 안 좋은 거였어? 사장하고 인혁이가?
월말 평가할 때는 둘이 농담 주고받으며 좋아 보였는데.
“얘들아. 그런데 있잖아.”
“예.”
“내가 뭐 궁금한 게 있는데. 김 이사있잖아. 김인혁 프로듀서. 그 사람하고 사장님하고 사이 안 좋니?”
내가 그렇게 묻자 애들은 커다란 눈을 꿈뻑꿈뻑하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김 이사님이요?”
그렇게 되묻더니.
“모르겠는데요.”
하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얘네들은 연습생 B조. 그러니까 3군 애들. 게다가 나한테 ‘모르겠는데요’ 하고 대답한 애는 이제 중학교 2학년. 얘들한테 이런 걸 물어보는 내가 바보지.
“아니야. 아무것도.”
“두 분이 친구라면서요?”
“어?”
“김 이사님하고 선생님.”
“아, 그렇지.”
친구는 친구지. 좀 이상한 친구.
“미안하다. 쓸데없는 얘기해서. 자, 계속해 보자. 그러니까 후두를 내리라는 게 어떤 느낌의 소리를 말하는 거냐면…….”
사장이 나를 따로 불러서 일을 내리길래 이제야 잘 풀리는 건 줄 알았다. 석 달 뒤에 당당하게 살아남아 이 회사의 일원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군.
그나마 다행인 건 정영수 팀장이라는 사람과 한배를 타고 있다는 것. 이게 위안거리였다.
이 사람 매니지먼트팀에선 꽤나 인정받고 있던데.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 * *
정영수 팀장.
매니지먼트 3팀의 팀장이다. 올해 2년 차.
2년 만에 팀장 자리를 꿰찼을 정도로 능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나이는 서른한 살이라고 하던가? 아마 그럴 거다.
키가 작고(165 정도? 좀 작다.)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친근감 가득한 얼굴.
짙은 눈썹에 커다란 입, 그리고 항상 웃고 있어서 사무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것이 기분 좋았던 사람.
“아이고, 이거 난처하게 됐네요. 영민 선생님하고 저.”
우리가 선택한 저녁 메뉴는 삼겹살. 둘이서 뭘 먹을까 하다가 만만한 걸 고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좁은 매장은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지글거리며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 소리와 그 사이를 비집고 폭탄처럼 터지고 있는 손님들의 말소리가 예민한 내 귀를 한껏 자극하고 있었다.
“고기는 제가 구울게요. 제가 고기 잘 굽는 걸론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겁니다. 영민 선생님은 가만히 드시기만 하시면 돼요.”
“아, 예.”
“소주도 한잔하실 거죠?”
“그럴까요?”
어쩌다 보니 술자리가 되어버렸다.
정 팀장은 능숙하게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고기 굽는 거에 정말 소질이 있는지 집게를 잡고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동작에 절도가 있는 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 이 회사 들어와서 처음으로 가지는 술자리구나. 회사 생활을 하면 자주 술을 마실 줄 알았는데.
“김 이사님 같은 분이 저렇게 한 번 화나면 무서워요. 오래 갈 것 같아요.”
서로의 소주잔이 채워졌을 때 정 팀장은 문득 그렇게 말을 꺼냈다.
저 녀석이 화나면?
그래. 예전에도 그랬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숨긴 채 늘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내 파트를 탐내고 있었고…… 내내 그걸 드러내지 않았지만 한 번 드러낸 이후에는 아주 노골적이었지.
전형적인 뒤끝 있는 스타일.
“제가 언제 김 이사님하고 한잔하면서 풀어볼게요. 제가 잘하는 게 그거거든요. 눈치 빠른 거랑 이빨 털면서 일 해결하는 거.”
2년 만에 팀장을 승진할 정도로 매니저 쪽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 하긴 그쪽은 눈치가 엄청나게 빨라야 할 거다. 이빨 터는 것도 사람 가지고 놀 정도가 되어야 할 테고.
“그런데 말이죠.”
나는 줄곧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다.
“인혁이, 그러니까 김 이사하고 사장님하고 사이 안 좋아요?”
내가 그렇게 묻자 오히려 정 팀장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셨어요?”
“저야 모르죠. 이제 이 회사에 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었잖아요.”
“두 분이 친구라고 하셔서…… 아, 그렇군요.”
그러더니 정 팀장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주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회사 사정을.
“사장님하고 김 이사님은, 그러니까 스타일이 좀 맞지 않는달까요. 사장님은 저희 회사가 직원 몇 명밖에 없을 때부터 이끌어 오셨으니까 자기 방식이란 게 있는 거구요. 예를 들면 이번 일처럼 자기 느낌이 꽂히면 그걸 앞뒤 안 보고 밀어붙이는 그런 게 좀 있으세요. 그런데 김 이사님은 FM이죠. 철저하게 계산해서 그걸 절차대로 처리하시구요.”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2년밖에 안 돼서 많이 겪은 건 아니지만 그런 걸 가지고 일적으로는 마찰이 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거죠. 사장님은 자기가 황유미를 데리고 오고 싶으니까 회사에 알리기도 전에 먼저 접촉해서 데리고 오고…… 심지어 이번에는 계약서도 안 썼어요. 얘 탐난다 싶으니까 바로 움직인 거예요. 그런데 김 이사님은 그런 게 싫은 거죠.”
말하자면 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황유미를 데리고 오고, 매니저랑 트레이너를 정하는 일도 회사 절차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실무자 불러서 지시를 내린 게 못마땅하다는 얘기였다. 인혁이 그 녀석이 말이야.
“전에는 적당히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저희들 불러서 저러는 거 보니까 단단히 화난 거 같아요. 제가 눈치는 진짜 빨라요. 이번 일 오래갑니다. 두고 보세요.”
커다란 쌈 하나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말하던 정 팀장은, 소주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끄러운 말소리가 불길처럼 사방에서 타오르고 있는 중에, 곤경에 처한 두 남자는 서로의 소주잔을 부딪혔다.
“친구시잖아요. 영민 선생님을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이 따로 불러서 그런 얘길 했으니…… 김 이사님 성격에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죠. 자기 사람을 빼앗아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고요.”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난 그저 석 달 뒤에도 살아남아 가수가 될 애들을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렇게 골치 아픈 조직이라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이제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 좀 마음에 든다. 맨날 말을 빙빙 돌려 말하는 능구렁이 같은 본부장을 상대하다가 이렇게 있는 그대로 술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니 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능구렁이 본부장이었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을 거야. ‘뭐 저쪽에도 사정이 있고 이쪽에도 사정이 있는데 난들 그걸 알 길이 있나.’ 대충 이런 식으로 빙 둘러 말한 뒤 입을 닫아버리겠지.
“그런데요, 정 팀장님. 제가 궁금한 게 또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이번 일하고는 관계가 없지만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김다은 말이에요. 얘는 왜 데뷔조에서 떨어진 거예요?”
본부장도, 신인개발팀장도 말해주지 않았던 거. 물어보면 어설프게 둘러대기만 했던 거.
하지만 알고 싶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보컬의 기량이라면 연습생 중 탑인데 왜 얘가 안 뽑힌 거야?
“모르셨어요?”
“저야 몰랐죠. 저 오기 전에 다 결정된 거니까.”
“얼마 전 스캔들 있잖아요. 그거 때문이죠, 뭐.”
역시 정 팀장의 입에서는 술술 나온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게.
그런데 뭐? 스캔들?
“스캔들이요?”
“그거 있잖아요. 그 스캔들.”
“그거하고 다은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왜 상관이 없어요?”
그리고 정 팀장의 입에서는 믿지 못할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봤을 때도 연습생 애들 중에 데뷔 0순위는 딱 두 명이었어요. 연화하고 다은이. 둘 다 다른 애들에 비하면 확 튀잖아요. 다은이 같은 경우는 노래 실력이 넘사벽이고.”
내 말이 그 말이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팀을 만들지 몰랐기 때문에, 어쩌면 쟤네 둘을 듀엣으로 묶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죠. 우리 회사가 듀엣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그 스캔들하고 다은이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별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은이가 왜? 좀 엉뚱해서 그렇지 걔만큼 착한 애가 어디 있다고.
아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스캔들? 남자 관계? 도대체 뭐길래?
“수연이랑 다은이랑 친구예요.”
“수연이? 아, 그…….”
“올유어걸. 거기 수연이요.”
누군지 안다. 모를 리가 있나. 이번 그 스캔들의 여자 네 명 중 한 명. 올유어걸이라는 걸그룹의 메인 보컬.
“둘이 친구라구요?”
“다은이가 케이팝보이스에서 우승했잖아요. 수연이가 거기서 3라운드까지 올라갔어요. 그때부터 친했나 봐요.”
“아…….”
“다은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구요.”
그러니까 더러운 애랑 친하니까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거군.
“둘이 친한 걸 대중들이 모르면 상관없는데, 많이들 알아요. 자기들 인스타에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하더군요. 그러니 이런 시기에는 다은이를 낼 수 없는 거죠. 대중들은 끼리끼리 논다고 보고 다은이도 색안경 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이제야 얼핏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메인 보컬 자리를 두고 다은이와 연화 중 누굴 올릴 것인지 그렇게나 치열하게 토론을 했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장일치로 연화를 선택했다는 것.
그 토론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김다은 걔, 은근히 팬이 좀 있어요. 벌써부터 말이죠. 미디어에 몇 번 얼굴을 내밀었으니. 그래서 더 위험해요. 이해 가시죠?”
보컬 파트 기량을 너프시키더라도 안전빵으로 가겠다는 것. 이게 몬스터 뮤직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거 가지고도 말이 좀 있어요. 사장님은 느낌이 꽂히면 그걸 밀어붙이고 싶어하시니까. 지난 월말 평가 말이죠. 거기서 다은이 보컬이 마음에 드셨나 봐요. 은근히 다은이를 올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전무님은 안전하게 가고 싶어 하시고.”
“전무님이요?”
“예. 박 전무님이요.”
박정식 전무.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다. 이 회사에서는 사장 다음으로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박 전무님하고 사장님하고도 사사건건 부딪치죠. 김 이사님은 박 전무님 라인이고.”
“라인이요?”
뭐가 또 이렇게 복잡해?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하고는 딴 세상 얘기 같다.
“아무튼 며칠 내로 제가 자리 만들게요. 김 이사님하고 영민 선생님하고 저. 이렇게 셋이 한 번 모여보죠. 대화로 풀면 안 될 게 없어요. 사람 사는 세상 다 그렇잖아요? 게다가 두 분은 친구고.”
정 팀장은 익어가고 있는 고기를 능숙하게 가위질하며, 넉살 좋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 * *
문제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손 사장과 김인혁은 겉으로 봐선 서로 협력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즉흥적인 손 사장의 방식과 절차를 따르는 김인혁은 일에 있어서 마찰을 종종 일으켰다는 얘기.
게다가 이 조그마한 회사에선 사장 라인과 전무 라인이 있는데, 그중에서 김인혁은 전무 라인에 있어서 그 감정의 골이 더욱 깊다는 것.
그런 와중에 자기 라인을 보강하겠다고 김인혁은 나를 데리고 왔지만, 그런 나를 손 사장이 건드리자 김인혁은 화가 무척 나 있다. 뭐 이런 얘기였다.
황유미의 경우는 손 사장이 데리고 왔으며, 자기 라인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건드려서 맡기려고 하니, 자기 쪽 프로듀싱팀에서는 황유미가 음원을 내는 것에 관여하지 않겠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거야 원. 애들은 데뷔해 보겠다고 땀을 흘리고 있고, 밑에 사람들은 실적을 내겠다고 애쓰고 있는 중에, 윗대가리들은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하고 있었군. 믿고 듣는 몬스터 뮤직이 이래서야.
“영민 선생님. 더 드세요. 편하게 실컷 드세요. 회사 카드 긁을 거예요. 하하.”
“아, 네.”
그래도 정 팀장 덕분에 분위기는 좋았다.
이 사람은 마주 앉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면 끝까지 다 들어주며 적당히 리액션을 해주고,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싶으면 자기가 대화를 이끌며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자랑 같은 얘기가 섞여 나오면 그것에 대해 호응을 해주며 내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말빨로 먹고 산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이러다가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서 ‘아이, 김 이사님 그러지 말고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하면 나도 모르게 ‘그러죠, 뭐’ 하고 대답을 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분위기가 되다 보니 술잔은 자꾸 채워지고 어느새 나도 취기가 뜨겁게 올라오고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내 혀가 꼬였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저기 정 팀장님.”
“예?”
이제 취중 진담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 팀장님 말씀은, 인혁이 불러서 말로 잘 풀어보자, 뭐 그래서 걔네들 바쁜 거 끝났을 때 곡 받아서 해보자, 그런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그거 별로예요. 안 내킵니다.”
안 내킨다. 정말로.
“저 두 달 뒤에는 이 회사에 없을 수 있어요.”
“에이, 김 이사님이 모셔 오셨는데 설마 그러겠어요.”
“정 팀장님도 아까 그랬잖아요. 그 새끼는 더럽게 FM이라고.”
“그래도 안 그럴 거예요. 영민 선생님 실력 있다고 벌써 소문났는데 뭐가 걱정이세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걔가 그랬잖아요. 인혁이 그놈이. 우리 둘이서 알아서 하라고.”
“그랬죠.”
“그럼 우리 둘이 알아서 해보죠.”
“우리가요?”
못 할 게 뭐 있나.
“곡은 업체한테 받고, 보컬 레코딩은 회사 스튜디오에서 하고, 마스터링은 어차피 외주 준다면서요? 그럼 거기 맡기면 되고.”
“아이고, 그게 쉽나요.”
“됩니다. 할 수 있어요. 프로듀싱팀의 이사가 저희보고 하라고 한 거잖아요.”
요즘은 음원 하나 내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반 한 장 내는데 몇억씩 든다고 하지만 그건 제대로 기획을 해서 인력을 투자한 경우에나 그런 거고, 가볍게 홈레코딩으로 작업한 것도 음원으로 발매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작곡가한테 곡 받는 것도 쉽다. 작곡가 집단과 기획사를 연결해 주는 퍼블리싱 업체가 있으니 발품 팔아서 곡 달라고 돌아다니는 것도 옛말이 되었다.
나 이런 이런 곡이 언제까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기성 작곡가부터 신인 작곡가의 작품들까지 전부 들고 오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몬스터 뮤직의 꼬장꼬장한 기준에 부합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저는 잘 모르지만, 정 팀장님은 아시잖아요. 2년 동안 여기서 일해 팀장이 되셨으니. 어떻게 곡 받아서 어떻게 레코딩하는지 뭐 그런 거.”
“알기야 아는데…….”
그렇게 해서 시장에서 먹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괜찮은 보컬 한 번 또 만들어보자고.’ 사장이 나한테 요구한 건 단지 이것뿐이니까.
“제가 그건 진짜 자신 있어요. 황유미 그 사람.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그 사람한테서 기가 막힌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해볼게요.”
“물론 알죠. 영민 선생님 실력이야.”
“정말이에요. 기가 막힌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저 진짜 그건 자신 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근원까지 파악하며 좋은 소리로 잡아주는 것.
물론 이게 내 능력인가 싶기도 하다. 꿈속에서, 그 개꿈 같은 것에서 얻어낸 것이니까.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겁나기도 하고, 진짜 개꿈을 꾼 것에 불과한데 내가 착각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한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그건 믿어지지 않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김다은을 가르쳤고 김다은의 목소리를 변화시켰다. 손동하 사장은 그걸 인정해 주었고 그래서 나에게 또 다른 미션을 내려준 것이다.
이게 참. 기분이 좋더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한테 인정받는 느낌이.
“정 팀장님. 저 진짜 잘할 수 있습니다. 괜찮은 보컬. 이번에 만들어낼 거예요.”
* * *
늦은 시각까지 계속된 술자리에서 내가 얻어낸 것은.
“그래요. 한번 해보죠. 저는 영민 선생님만 믿습니다.”
라는 승낙.
두 달 뒤 내 거취가 불분명한 만큼 나는 그전에 성과를 얻고 싶었다. 회사 파벌 싸움이 어떻고 일하는 방식 가지고 다투는 게 어떻고, 난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
내가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없으니 나를 대신해서 노래할 사람을 키우는 것. 그걸 여기서 해볼 수 있다면 원 없이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두 번째 산. 황유미의 트레이너를 맡아서 그녀의 가창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고, 레코딩할 때 훌륭한 디렉터가 되어주는 것.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해 보이겠다.
‘아, 역시 따로 불러서 일 시키길 잘했어. 역시 영민 씨야. 황유미의 이 목소리…… 정말 기가 막히네!’ 이런 칭찬도 들었으면 좋겠고
‘영민아. 내가 오해해서 미안하다. 이 정도의 결과물을 보여줄 줄이야.’ 그놈도 이랬으면 좋겠고
아니, 모르겠다. 둘이 일 적으로는 대립하고 있다니까 내가 황유미를 업그레이드시키면 김인혁 그놈은 싫어하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면 정 팀장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늦은 시간임에도 톡 하나가 도착한 것이 아닌가.
[영민아. 아까는 미안했다. 꼭 네 실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김인혁.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 이 녀석에게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톡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다 이해한다고 해줬다. 나 술 취해서 기분이 무척 좋았거든.
[황유미 건은 대충 하고 빠져. 회사에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는 애야. 행사나 계속 돌릴 거니까 그런 데 써먹을 만한 거 하나 만들면 되는 거야.]어차피 이렇게 된 거, 경험 삼아서 한 번 해보겠다고 답장했다. 빈말이 아니라,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잘 들어가라.]그리고 저렇게 말을 해주니, 우리가 꼭 친구 같아 보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