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8
3장 넥스트 유닛(1)
아무래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일까, 김인혁은 안전하게 가자고 했다. 정석대로 사과문을 올리고 양쪽 팬덤에서 부딪히는 일은 막자면서.
오래전, 우리로서는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던 프로듀서 앞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질렀던 패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모처럼 기회가 왔는데 이걸 놓쳐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게 무슨 기회야?”
“내 생각에는 민혁이 저 녀석이 틀린 말 한 건 아니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 자신감은 가지고 있어야지. 애가 어려서 그걸 표출하는 방식이 좀 미숙했지만 말이야.”
“무슨 말 하려는 건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그 회사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건 나도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팬덤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 애들의 순위 상승을 막았던 게 엊그제 일이었다.
“대중들은 걸그룹에게 관대한 면이 있어. 곡이 좋으면 들어주잖아. 하지만 남자애들한테는 안 그런다고. 싸워서 우리가 이득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그런데 그쪽에서 우리하고 안 싸워줄 거 같은데?”
“어?”
“싸울 만한 급으로 우리를 보지 않을 거라고. ‘저런 급하고 우리가 싸워야 돼?’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야.”
비츠걸스는 그때까지 쌓아온 게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같은 체급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빅픽처는 아직 인지도가 한참 모자란 팀이었다.
“그래서 어그로를 더 끌어야 된다는 거야. 어설프게 사과해 봤자 쳐다보지도 않아. 괜히 우리 팬들 자존심만 해치는 일이 되지.”
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은 “그러면 비츠걸스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도 영민 피디님은 어그로를 끄실 거예요?” 하고 물었다.
“비츠걸스는 이제 그럴 급이 아니잖아요. 요즘 잘나가는데 뭐하러.”
“만약에 비츠걸스가 신인이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요?”
“신인이었을 때요? 음…….”
잠깐 생각해 봤지만 답은 한 가지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전 굽히고 들어가지 않게 할 겁니다.”
“정말요?”
“우리 애들은 착해요. 브이앱에서 다른 팀을 씹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본다면 충분히 이해해 줄 만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겠죠.”
다른 직원들과 함께 그런 말을 하며 웃고 있었지만 김인혁은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어쨌든 내 의견은 그렇다는 거야. 선택은 네가 해야지. 빅픽처는 네가 만든 팀이잖아.”
그리고 인혁이가 배민혁을 자기 분신처럼 생각한다는 건 이제 회사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난 말이야,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어그로를 끌고 다닐 거야. ‘보이그룹 중에서 내가 노래 제일 잘함’ 그리고 ‘우리 팀의 김인혁만큼 곡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 이런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닐 거다. 그때 왜 안 그랬나 몰라. 그렇게 했으면 몇 년 더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안티 잔뜩 생겨서 망했을 것 같은데?”
“어차피 망했는데 그냥 망하는 것보단 안티라도 만들어보고 망하는 게 낫지 않냐?”
그런 말을 했더니 심각하게 굳어 있던 녀석의 얼굴이 풀리면서 그제야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고 있었다.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할게.”
* * *
윤정아 기자와의 인터뷰는 그 후의 일이었다. 프로듀서의 인터뷰 따위야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미미한 효과는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인터뷰 기사는 무난하게 나갔다.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한쪽에서만 바라보며 악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다른 그룹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장점을 언급했을 뿐인데 이걸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건 유감스럽다, 하지만 브이앱에서 했던 말은 실언이 맞다, 열심히 하는 다른 팀을 비하해서는 안 된다, 이 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했던 말 중 무난한 말들만 골라서 기사로 나갔다.
윤정아 기자는 내내 우리 회사에 호의적이었다. 우리는 그녀가 속해 있는 미디어 허브 쪽으로 가장 먼저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었고, 그쪽에서는 우리 회사의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는 관계였다.
특히 저메인 존스와의 일에 대해서는 미디어 허브 쪽으로만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이미 구두로 한 바가 있었다.
이번 일로 악역 포지션을 획득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 반 그리고 걱정이 반이었지만 정작 악역을 확실하게 획득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런 건 악역도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 진짜 악독한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대개 이런 순간에는 이렇게 말하겠지? 이번에는 아쉽게 탈락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으니까, 낙심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 솔직히 말할까? 오늘 이 자리에서 탈락한다면, 그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거야. 때로는 제로에 가까워질 수도 있어.
두 번째 주의 방영분이었다.
탈락자를 발표하는 순간, 김우진은 무거운 분이기 속에서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가 걸그룹을 몇 년에 한 번씩 배출할까? 지금까지 우리 회사에서는 세 개의 걸그룹을 데뷔시켰어. 그리고 그 세 팀은 각각 4년과 5년의 텀을 두고 나왔지. 그러니까 오늘 탈락하면, 데뷔할 수 있는 기회는 4년이나 5년 뒤로 미루어진다는 얘기야.
스무 명의 연습생들은 무대 위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똑바로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얼굴에서 그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지금 너희 나이에서 네 살, 다섯 살을 더해봐. 너희가 과연 그 나이에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더 어린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너희가 막아낼 수 있을까? 나는 냉정하게 말할게. 오늘 이 자리에서 탈락한다면, 과연 그럼에도 그 꿈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잘 생각해보길 바래. 내가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김우진과 나는 비슷한 또래지만 살아온 방식은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촉망받는 유망주로 데뷔하여 한 곡 히트시킨 후 더 이상의 활동 없이 접어버렸고, 그래도 그 꿈을 놓지 못해서 계속 이 주변을 떠돌다가 몬스터 뮤직으로 들어와서 제작을 하게 되었다.
김우진도 시작은 나와 같았다.
이 사람도 가수를 꿈꾸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봤을 때 데뷔해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고 보여서 그는 과감하게 꿈을 포기했다. 그런 뒤 대학으로 돌아가서 다른 인생을 위해 학업에 전념했다.
결국은 같은 곳에서 만났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달랐다.
-그럼 탈락자를 발표한다. 이번 주 탈락자는 모두 여섯 명이야.
꼿꼿하게 서 있던 연습생들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여섯 명? 정말이야? 심지어는 서로 바라보며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스무 명 중 여섯 명이 탈락. 이건 예상 밖이었다.
-여기서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해. 탈락자는 매주 발생할 것이고, 그 수는 정해놓은 게 없어. 나는 커트라인을 그었을 뿐이야. 이번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총 7주. 나는 7개의 단계를 정해놓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 주에 탈락시킬 생각이야. 오늘은 첫 번째 단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야.
장엄하고도 무거운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연습생들과 김우진을 번갈아 보여주는 구성 또한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 주 탈락자를 한 명씩 호명할게. 첫 번째 탈락자는…….
* * *
여섯 명을 호명하는 것에 5분이 걸릴 정도로 질질 끄는 구성이었다.
아직 2주차라서 시청자들이 연습생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할 때라서 그다지 이입을 할 여지는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꿈이 꺾이는 장면은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무대 위는 울음바다였다.
탈락을 통보받은 연습생들은 손목으로 눈물을 훔치며 입술을 떨고 있었다. 바닥에 웅크린 채 얼굴을 묻고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연습생도 있었다.
-이렇게 여섯 명이 탈락했고, 남은 열네 명은 다음 미션으로 간다. 처음에는 대부분 생존시키고 싶어서 내가 정해놓은 커트라인도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솔직히 실망스러운 모습이 많았어. 탈락한 여섯 명 외에 합격한 사람들 중에도 그 합격선을 간신히 넘은 사람들이 많아. 다음 주에 살아남기 위해선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어야 할 거야.
안타까워하는 기색도, 자기가 키우고 있었던 연습생들의 울음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일도 없었다. 끝까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 채 그는 담담하게 그런 말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난주에 말했듯이, 이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아 데뷔조가 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야. 이 프로그램은 8주 동안 데뷔조를 선발하는 것까지 진행할 것이고, 거기서 뽑힌 데뷔조는 다른 회사의 데뷔조와 우열을 가릴 거야. 그리고 그 대결에서 살아남는 팀만이 다음 분기에 데뷔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모두 이해하고 있겠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나도 ‘아아, 그만하라고! 그만 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잔혹한 멘트였다.
그리고 김우진의 그런 말이 끝났을 때 카메라는 연습생 한 명을 단독 샷으로 잡았다.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니, 지금 이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도 안심하지 말라는 듯이.
카메라가 잡고 있는 연습생은 이번에 참가한 스무 명 중 가장 돋보이는 한 명이었다.
이름은 장세은. 올해 17살. 몇 달 뒤 새해를 맞으면 18살.
스무 명을 쭉 훑으며 지나가는 화면에서 ‘어?’ 하고 시선이 그쪽으로 멈출 정도로 비주얼은 단연 돋보였다. 예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아기처럼 귀여운 느낌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베이비 페이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동글동글하고 눈이 커다랗고, 표정 하나하나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타입.
프로필에는 신장이 160으로 나와 있었지만 화면에 잡힌 모습으로는 그보다 작은 느낌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이 커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몸매는 하드하게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날씬한 것을 넘어서 너무 말라 보였고, 그래도 그것을 여리여리한 느낌으로 잘 포장해서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 정도면 팀에서 비주얼을 담당하는 멤버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이번 방영분 초반에 보여준 그녀의 단독 무대는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메인 보컬을 맡기에는 톤이 낮은 쪽에 잡혀 있었고,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굵고 섹시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능숙한 듯했다. 그럼에도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는 높았고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룹 안에 속해 있기에는 목소리의 톤이 튀는 편이라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지만, 대신 이 아이를 중심으로 곡을 만든다면 오히려 이 아이의 목소리가 곧 팀의 색깔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잘한다. 아마도 아무런 생각 없이 방송을 봤다면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곧 우리의 적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그저 감탄으로 그칠 수는 없었지만.
-어떡해. 우리 같은 팀으로 데뷔하자고 했잖아.
김우진이 사라지자 무대 위의 연습생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난 괜찮아.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온 거니까.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거 너무 잔인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방송은 이제 2주차. 아직 여섯 번의 분량이 더 남아 있었다.
생존자는 열네 명. 이들 중에 몇 명이나 탈락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김우진은 몇 명을 생존시키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 * *
그 무렵 빅픽처의 숙소에서는 멤버들이 사과문을 가지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가이드는 회사에서 정해주었고 그걸 뼈대로 해서 배민혁의 문장으로 살을 채워 넣었다.
그걸 다시 회사 홍보팀으로 보내고, 거기서 승인을 맡았다. 이제 올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진짜 이렇게 올려도 되는 거야?”
“된다고 하셨어.”
“그래도…….”
배민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공유하기’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꾹 눌렀다.
사과문의 내용은 무난했다. 경솔한 언행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될 만한 문장 몇 개가 끼어들어 있어서 그렇지.
“빨리 잠이나 자자.”
“댓글 보지 마.”
“핸드폰 저기 올려놓고 내일까지 건드리지 말자고.”
빅픽처 멤버들은 핸드폰을 보지 않겠다는 듯이 식탁 위에 올려둔 채 각자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 댓글에 무음으로 설정해둔 알림은 쉬지 않고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배민혁입니다. 어제 저의 경솔한 언행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과문은 무난하게 시작했다.
나는 배민혁에게 몇 가지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음악 외에 다른 것은 절대로 건드려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팀을 비하하지 말 것, 그들의 팬들을 조롱하지 말 것, 이 정도만 주의하라고 했다.
자기 음악에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지만 남을 비하하는 건 스스로를 깎아 먹는 일이 될 테니까.
문제가 커지더라도 ‘자신의 음악적인 능력을 어필하고 싶은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둘러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시각으로 봤을 때 사과문을 퍽 잘 써진 편이었다. 우리 회사가 비록 아이돌을 관리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해도 홍보팀의 직원들이 일을 하는 것은 다른 회사 못지않았다.
브이앱에서 했던 발언에 대해 사과했고, U5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근사한 무대와 그들이 케이팝을 이끌고 있는 것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의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서운했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얼마나 열심히 앨범을 만들었는지도 감정적으로 토로했다.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한 문장만 빼고.
-이번 앨범 작업할 때는 하루 종일 로직 프로그램 붙잡고 아무것도 없는 빈 트랙을 하나하나 채웠구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고작 두세 마디 멜로디 끄적이는 걸로 크레딧에 이름 올려서 그걸로 자기를 포장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취급받는 건 솔직히 서운했습니다.
아니, 한 문장이 더 있긴 했다.
-이번 곡 는 유명한 작곡가들이 만든 곡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듣기에는 제 거가 더 나아요. 저희 회사의 프로듀서님도 인정해 주셨구요, 대중성이 있는 곡이지만 이상하게 순위가 낮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다음 주에 싱글 낼 건데요, 이런 구설수가 아니라 음악으로 제대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들어보고 평가해 주세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다음 싱글은 나하고 같이 작업하기로 했다. 로 역주행을 노리는 건 무리일 듯했고, 나하고 둘이 작업한 신곡 쪽으로 관심을 유도해 보는 것이었다.
-이게 사과문이라고? 기승전홍보인데?
-‘사과문을 올리지만 사과는 하지 않겠다.’
-이 팀은 회사에서 관리 안 하나요? 그냥 내놓은 건가.
-마음고생 하신 게 글에서 보여요ㅜㅜ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세요
-또라이네ㅋㅋ
-저 부분 잘못 읽은 건 줄 알고 세 번 다시 읽었음
-이 새끼 캐릭터 마음에 든다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이쪽에서 이런 식으로 나와도 상대방은 꼼짝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짖는다고 호랑이가 굳이 거기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타돌 언급 금지.’
U5의 팬덤에서는 저 여섯 글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언급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일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타돌 언급 금지.’
‘타돌 언급 시 강퇴.’
‘분란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타돌 언급을 금합니다. 협조해 주세요.’
라이트한 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또 뭔 일 있나 보네, 하고 생각하고 말 뿐.
‘어그로 끌어서 우리 애들의 곡을 조금이라도 더 노출시키기’ 작전은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는가 싶었다. 관심을 가지는 몇몇 사람들이 이따금 언급하곤 했지만, 한쪽에서 조금도 전의를 보이지 않으니 그 흥미도 금방 식어버리는 듯했다.
나이 어린 보이그룹 멤버가 작곡에 부심을 좀 가졌다. 이 정도의 해프닝이었다.
어리니까 뭐 그럴 수 있지, 정도로 용인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리니까 감정적으로 발끈할 수도 있고, 어리니까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고, 어리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어리다는 것이 단지 이쪽의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더럽게 잘난 척하네. 누구는 트랙 만들 줄 몰라서 그런 줄 아나.]U5의 멤버 한 명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저런 글을 올려 버린 것이었다. 그는 앨범 크레딧에 작곡가로 종종 이름을 올리는 멤버였다.
팬덤에서도 회사에서도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럴 수 없었나 보다.
그들 또한 감정적으로 발끈할 수 있고 실수도 할 수 있는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그는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 * *
회사를 새로운 건물로 옮기면서 내 단독 사무실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건 장단점이 너무 뚜렷했다. 장점은 조용하다는 것, 단점은 심심하다는 것.
[아주 좋아. 아름다운 목소리야.]그런 중에 저메인 존스에게서 다이렉트 메시지가 왔다.
[내 목소리가 당신의 앨범을 망칠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오! 아니야.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저메인에게는 이런 식으로 곡을 보내주곤 했다. 요즘 스튜디오에서 내 목소리를 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직원들은 또 가이드를 넣는 줄 알고 있다. 외국 뮤지션에게 보내는 것이라서 데모에 정성을 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저메인과 이런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감독은 당신이야.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목소리를 제외해도 괜찮습니다.]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나는 내 안목을 신뢰하고 있어. 지금까지 내가 될 거라고 점찍었던 건 모두 성공했지. 나의 앨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도 포함해서. 나는 당신이 훌륭한 프로듀서라는 걸 알아봤고 당신의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것도 발견했어. 하나의 감상으로만 여기지 마세요. 나의 안목은 특별합니다. 나는 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걸 구별해낼 수 있는 감각이 있어요.]그 말에 대해 ‘나도 그런 게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 문장을 지워 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이게 전부야?]그렇게 묻길래 일이 바빠서 많은 곡을 준비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일이 바빴다. 여기서는 보이그룹 사이에 사소한 감정 다툼 같은 것이 벌어졌고, 그런 가운데 새로운 곡을 발표해야 한다…… 이런 말도 하고 싶었지만 번역기가 미묘한 뉘앙스까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몰라서 그냥 관두었다.
이슈라는 건 타오를 때 얼른 잡아야 하는 거라서 싱글 발표는 다음 주에 곧바로 하기로 했고, 그래서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했기 때문에 조만간 곡이 나올 겁니다. 내가 생각한 컨셉은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거예요.] [오! 그거 괜찮은데.] [남자 둘이서 듀엣으로 노래를 한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걸 부르기는 좀 그렇잖아요? 난 그런 느낌을 표현할 수 없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 [두 남자는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고, 그걸 다투는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처럼?]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듀엣으로 부른 걸로 유명하다.
가사의 내용은 제목처럼 내가 그녀를 더 사랑하기에 그녀는 내 것이라는 것.
[그것보다는 좀 더 과격한 사운드가 되었으면 하고, 감정적으로 치고받는 내용을 써보려고 해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기대하고 있을게.]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갑자기 을 리트윗하더니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고, 마이클 잭슨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가 없는 세상이 너무나 허전하다는 얘기를 트위터에 올리고 있었다.
아주 산만한 아이를 보는 듯했다.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그러다가 감정적이 되고.
그와의 대화가 끊기니 사무실 안의 소리가 모두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아주 공허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조용해서 좋지만 여전히 심심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이따금 연화가 쳐들어와서 지루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고 해서 연화는 회사로 나오지 않았다.
공허한 공간 속으로 복도를 걷고 있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로 들어오려는 듯 문 앞에서 멈추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곧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다시 걸음 소리가 시작되며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음악을 플레이했다. 여기에 내 목소리가 입혀진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메인의 앨범에 내 목소리가 들어가면,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그걸 듣게 될 텐데.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곳에선 다음 날 일어날 일도 예측하기 어렵다. 정상에 있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추락하기도 하고, 도저히 찾을 수 없이 바닥에 묻혀 있던 사람이 가장 반짝이는 모습으로 떠오르기도 하니까.
1년 전의 나 또한 내가 여기서 곡을 만들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곤.
* * *
김인혁은 친구의 사무실 앞에 멈추었다가, 마음을 바꿔 먹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듣고 싶은 얘기도 있었고, 함께 상의하고 싶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언제였더라. 꽤 취했을 때 나온 말이었는데
‘그때 그 일 때문이냐?’
박영민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니 ‘아니야. 됐어.’ 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김인혁은 미묘한 뉘앙스 속에서 그게 무엇을 묻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파트를 가지고 싸웠던 그 일 때문이냐? 그때 너는 나한테 뒤진다고 생각했고 나한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어. 그걸 이런 식으로 갚으려는 거냐?’
이런 의미인 것이 분명했다. 당사자인 그는 알 수 있었다.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야? 난 잊어버렸어. 그때 너한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팀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어. 학교 다닐 때 성적 좋은 녀석에게 가지는 질투심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고. 너야말로 너무 과거에 얽매여 있는 거 아니야?’
대화가 길어지면 이런 식으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는 묻혀 버렸다.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막상 친구의 사무실로 들어가도 그저 입안에서만 말이 머물고 있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사소한 접촉을 만들려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
비츠걸스를 에피아와 붙였던 것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팀을 아이즈 컴퍼니의 팀과 대결시키겠다는 것, 그리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해서 빅픽처의 싱글을 발매하겠다는 것까지.
지나치게 도박적인 행보였다.
잘되면 그만한 일이 없지만 안 되면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투자자 쪽에서 우려 섞인 전화를 하루에 몇 통씩 걸어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지.
지하로 내려오니 연습실에서는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채아 말이야.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래. 노래 잘하는 거 하나 믿고 이 바닥에 계속 붙어 있었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었잖아. 너는 작곡 쪽으로 금방 풀려서 이런 걸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한테는 특별한 거야.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다른 팀에 있는 애를 무리해서 데려온 거 맞아. 하지만 쟤는 꼭 내 손으로 키워보고 싶었어.’
작곡 쪽으로 금방 풀렸다고? 그건 제대로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이쪽도 과거에 얽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환한 빛이 쏟아지듯 커다란 음악 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 회사의 사장이 모습을 보이자 연습생들은 하던 것을 즉각 멈추고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구경 온 거야.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해.”
멤버 구성은 괜찮게 보였다. 비츠걸스의 후속 그룹 같은 성격을 지닌다지만 비주얼부터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순하고 부드러운 얼굴이 주를 이루는 비츠걸스에 비해, 이쪽은 좀 더 섹시하고 강렬한 느낌이 강했다. 체격 또한 비츠걸스에 비해 평균적으로 5센티미터가 더 크다.
네 명 모두 늘씬하고 팔다리가 길어서, 이렇게 모아놓으니 선이 예쁘게 나왔다.
“다 좋은데 눈빛이 죽어 있어. 너희들의 매력을 좀 더 살려봐. 섹시하고 도발적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내 노래와 춤으로 꼬시겠다는 듯이.”
“네.”
“영민이가 이런 건 안 가르쳐주지?”
“네?”
“그놈은 은근히 막혀 있다니까. 보나 마나 노래 연습이나 계속 시키겠지. 노래 잘하면 뜰 수 있을 거라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농담을 하는 건지 진지한 건지. 하지만 인상 좋고 뚱뚱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개그를 보는 것 같아서 연습생들의 얼굴로 씰룩씰룩 웃음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같은 노래와 같은 안무라도 표정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져 버려. 너희들 방금 한 것처럼 인상만 쓰고 있으면 무섭게 보이기나 하지, 거기서 매력을 찾기는 어렵다고. 다들 내 쪽을 보고 방금 했던 거 다시 해봐. 내가 모니터해 줄 테니까.”
* * *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3회차 방영분의 녹화가 막 끝났을 때였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스탭들은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이날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다음 프로그램에 대해서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김우진의 팀과 내 팀이 대결을 벌이는 그 프로그램.
방송국 프로듀서를 비롯해서 제작을 맡을 아이즈 프로덕션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지기로 했다. 이번이 첫 미팅이었기 때문에 큰 줄기는 여기서부터 잡고 가는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김우진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었다.
무척 지쳐 보였다.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받고 있다는 듯이 전에 봤을 때에 비해 눈가가 어두워져 있었다.
“오셨어요?”
그래도 내가 다가가자 그는 밝은 미소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오늘도 잔인하게 여러 명 떨어뜨리셨나 봐요.”
“그렇게 보이세요?”
“김 실장님 얼굴 보니까 그래요. 진짜 악역 같은 얼굴입니다.”
그런 말을 했더니 그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이번 주에는 몇 명 떨어져요?”
“그건 비밀입니다. 절대로 공개할 수 없어요.”
나는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연습생들이 서 있었을 듯한 무대 위쪽으로 시선을 옮겨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차례 폭풍이 훑고 지나간 듯 오히려 고요하게 느껴졌다.
“영민 피디님. 저희 프로그램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 이거 어떤지 봐주세요.”
“뭔데요?”
“ 이거 어때요?”
“Myth? 신화요?”
“Match of Your Thrilling Heart의 약자입니다.”
Match of…… 뭐라고?
“그냥 Myth를 정해놓고 뜻은 짜맞춘 것 같네요.”
“맞습니다.”
그는 당연한 걸 뭐 새삼스럽게 묻냐는 듯이 쿨하게 인정했다.
“여기서부터 신화 같은 일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뜻은 대충 맞췄어요. 아직 정해진 건 아니니까 다른 좋은 제목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요.”
미팅은 곧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제작진들의 회의가 먼저 있을 거라서, 나보고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번 회차를 마무리하는 회의라서 금방 끝날 것이라면서, 그는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렸다. 방송 세트를 치우느라 사람들이 분주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금방 끝날 거라는 회의는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 *
Match of Your Thrilling Heart
Thrilling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사전을 찾아봤다. 오싹하게 하는. 감격적인. 이런 뜻이었다. 스릴 있다고 할 때 그 스릴이구나.
그럼 ‘당신 안의 감격적인 마음의 대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이었다. 너무 어거지로 짜맞춘 감이 없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사전을 뒤적이며 더 나은 단어가 없나 찾아봤다. 일단 라는 건 괜찮게 느껴졌기에 이걸 유지한 채로.
Thrilling 이 단어가 어색한 듯해서 T로 시작하는 다른 단어를 검색해 봤다.
Thirsty. 목마른. 그렇다면 목이 마른 마음? 이건 땡.
Talented. 재능있는. 연습생 애들에게 쓰기에 괜찮은 단어였지만 Myth 안에 들어가기엔 어색했다.
Terrific 대단한. Trainees 연습생.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쓰면 안 될까. 있어 보이려고 억지로 어려운 단어를 선택하지 않고 누구나 한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의미로. 예를 들면 Truth 같은.
Truth and Hope
그리고 Match라는 노골적인 단어를 피하고 좀 더 순한 말로…….
김우진은 내가 Mind라는 단어를 찾아냈을 때에야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Mind Your Truth and Hope’ 참가하는 연습생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찾아낸 것은 일단 이 정도였다.
“영민 피디님 어떡하죠? 회의가 더 길어지겠어요.”
“아직도요?”
“좀 문제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뭔지는 여기서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을 맡고 있는 아이즈 프로덕션의 팀장이라는 사람이, 이 대기실 안까지 들어와서 회의실에서 있었던 얘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나와 조금 전 명함을 주고 받았던 그는, 대기길 안으로 들어와 내 쪽으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김우진에게 다가갔다.
“그거 안 돼. 그렇게 하면 다 틀어져.”
“고작 한 번 당기자는 건데 안 된다는 거야?”
“계획대로 가도 예산을 살짝 넘어서는데 생방 한 번 더 하면 손실을 감당 못 해. 진짜야.”
둘은 가까운 사이인지 서로 반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생방은 그대로 가. 그럼 되잖아.”
“그걸 시청자들이 납득하겠냐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프로그램의 회차 별 진행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은 총 8회로 편성이 되어 있었고, 6회차부터 생방송으로 진행해서 현장 투표와 시청자 투표를 점수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6회차에 10명은 남겨두기로 한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4명을 남기겠다면서?”
“그래.”
“이러다간 다음 주에 4명 남겠는데?”
4명을 남겨?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4인조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인재풀이 이렇게 넓은 아이즈에서?
“그럼 어쩌라는 거야?”
6주차 생방송에 들어서기 전까지 10명을 남기고 6, 7, 8회차에서 2명씩 탈락시켜서 마지막 남은 네 명을 데뷔조로 정한다는 것, 이것에 이들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늘 김우진은 네 명을 탈락시켰다.
1회는 연습생들을 소개하는 회차였고, 2회에서 6명 탈락, 이번 3회에서 4명 탈락, 벌써 참가한 연습생들의 절반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10명이었다.
“야, 애들 메이크업 지우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그래.”
아이돌 프로덕션의 팀장은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 매니저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다시 찍자. 이번에 두 명 탈락시키고 앞으로도 한 번에 두 명씩만 탈락시켜. 생방은 8명으로 가는 거야.”
“애들 수준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고? 나는 방송을 임하면 내가 정한 커트라인을 가지고 왔고, 이번 무대에선 그 커트라인에 못 미치는 애들이 네 명 나온 거야. 이게 내 플랜이야. 그리고 이 플랜이 흐트러지면 나는 이걸 계속 진행할 수 없어.”
“김 실장…… 너 마지막에 4명 남길 순 있겠어? 그렇게 깐깐해서?”
“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안 되는 거지. 한 명도 통과 못 하면 중도에 전원 탈락으로 처리되는 거야.”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저쪽 팀장에 비해, 김우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초연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몬스터 뮤직의 본부장님은 내가 초대한 분이야. 이분 앞에서 떠드는 건 여기까지 하자.”
“아…….”
그제야 아이즈 프로덕션의 팀장은 내 쪽을 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 잠시 이쪽 지나쳤다.
“영민 피디님. 죄송합니다. 저희끼리 조금만 더 얘기하고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세요.”
Mind Your Truth and Hope! 이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시끄러운 언쟁 속에서 조용하게 숨기고 있어야만 했다.
* * *
“아…….”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깜짝 놀라며 그런 감탄사를 내뱉었다.
혀를 낼름 내밀더니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아마도 이 대기실에 가방을 놓고 간 것 같았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서 소파 쪽으로 가더니 거기에 있는 작은 손가방을 덥석 쥐었다.
현재 아이즈 컴퍼니의 연습생 중에서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장세은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곳에서는 영락없는 열일곱 살의 어린아이였다.
“오늘 안 떨어졌어요?”
“네? 아…… 저요?”
그럼 여기에 너 말고 누가 더 있다고.
“네. 저 이번에도 합격했어요.”
세은이는 그런 말을 하면서 활짝 웃었다. 합격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는 듯이.
화면으로 봤을 때에도 동글동글해서 귀여운 스타일이었는데 직접 보니까 더욱 애기 같았다. 우리 팀의 지민이가 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지민이가 좀 성숙해 보여서 그런지 외모만 보면 얘가 더 앳돼 보였다.
하지만 의상은 어깨가 훤히 보이는 시스루 블라우스에 차마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허벅지가 드러난 미니스커트. 애한테 참…….
“방송 보니까 노래 잘하시던데요.”
“네. 저요? 아뇨. 아직…….”
“언제부터 연습 시작했어요?”
“아, 저…… 열한 살 때부터요.”
열한 살 때부터면 지금 7년 차. 확실히 열일곱 살답지 않게 발성을 세밀하게 다듬은 흔적이 보였다. 이따금 감정 처리를 하는 것이 너무 능숙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나저나 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걸까. 마치 지나가던 사람이 질문을 해도 꼭 대답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듯이, 세은이는 그 자리에 서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서.
“안 힘들어요?”
“네? 아…… 괜찮아요. 힘들진 않은데.”
“……?”
“탈락한 언니들이 많아서.”
노래할 때는 그렇게나 감정을 잘 표현하던 아이였지만, 말을 할 때는 아직 어리숙해 보였다. 지민이도 이러려나. 처음 보는 어른이 갑자기 말을 걸면.
“바쁜 거 같은데 가 봐요. 내가 괜히 붙잡고 있었던 것 같네.”
“네. 안녕히 계세요.”
세은이는 허리까지 숙여 인사를 한 뒤 대기실을 나갔다. 나가면서도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조심스레 닫는 모습을 보니 귀여워서 픽 웃음이 터져 버렸다.
제작진 회의가 끝난 건 그로부터 30분 뒤였다. 얼마나 열띤 회의가 있었던 것인지 회의실을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저마다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영민 피디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에 꼭 술 살게요.”
그러면서 그는 내 팔목을 두 손으로 꾹 붙잡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흡연실로 가려는 듯 손가락에 담배를 하나 끼워놓은 아이즈 프로덕션의 팀장은 “저놈의 고집 진짜……”라고 말하며 김우진을 흘깃 노려보았다.
어떻게 됐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 * *
두 회사에서 내놓는 두 팀의 이야기를 다룰 는 같은 방송국 그리고 같은 제작사에서 맡기로 했다. 조금 전 툴툴대며 담배를 물고 나갔던 아이즈 프로덕션의 팀장이 제작을 이끌 것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에서 내부적으로 논의를 해봤는데, 패배한 팀이 데뷔를 못 한다는 건 너무 잔혹하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대신 이긴 팀에게 혜택을 많이 주도록 하고, 패배한 팀은 일정 시간의 정비 기간을 가진 뒤 데뷔하는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마지막 회차 전까지는 탈락한 팀이 데뷔를 못 하는 것처럼 긴장감을 준 뒤, 다 결정된 뒤에는 그렇게 말해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거죠. 박영민 본부장님 의견은 어떠세요?”
나도 당연히 동의한다고 했다. 우리 팀이 진다고 해서 애들을 다시 연습생으로 내릴 수는 없었다. 김우진 실장이 언젠가 말했듯이 그건 우리 회사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이었다. 패배를 하더라도 한 분기 건너뛰어서 데뷔시키는 쪽으로 가고자 했다.
“이기는 팀에게는 이런 혜택을 주려고요.”
이 방송국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스페셜 데뷔 무대를 가지는 것을 시작으로, 주요 예능 프로그램 몇 곳에 출연시키고, 데뷔 쇼케이스 무대를 방송에 편성해서 내보내는 등 프로모션 조건으로는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내놓았다.
“두 분은 경쟁하는 모양새로 가겠지만 우리 쪽에서는 최대한 두 팀 모두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둘 겁니다. 방송이 나가는 동안 양 팀 모두 팬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합니다. 패배한 팀은 데뷔를 못 하는 것처럼 방송에 내보내겠지만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렇게 매력 있는 애들이 데뷔를 못 하면 어떡해’라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쪽에서는 이미 제작에 대해 상세한 스케치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말해주었다. 멤버들 개개인의 매력이 드러날 수 있는 포맷으로 가자는 것, 나름대로 생각해 봤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제시하기도 했고 연극적인 구성을 통해서 애들 한 명 한 명 캐릭터를 잡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의견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게요.”
는 총 5주 편성. 1회에선 각 팀의 멤버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머지 네 개의 회차에선 경쟁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방영 시기는 2월 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내 팀이 패배한다면 난 정말로 애들을 해체시켜 버릴 거야. 그게 내 플랜이야.”
“너의 잘난 커트라인이기도 하고?”
“어. 이런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팀은 커트라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거야.”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싶어하는 김우진 실장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 * *
사무실로 돌아오니 배민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은 초췌해 보이기까지 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어깨까지 축 늘어뜨리고 있으니 더욱 불쌍해 보였다. 툭 건드리면 픽 쓰러질 것처럼.
“안녕하세요.”
녀석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메일로 보내라니까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피디님 얼굴을 봐야지 안심돼요.”
“내 얼굴?”
“곡을 들으면서 어떤 표정을 지으시는지 실시간으로 봐야 한다고요.”
목소리도 맛이 가 있었다. 피로가 잔뜩 끼어 있는 목소리였다.
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안타까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어린 녀석인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면.
“힘들지?”
“아뇨. 별로.”
“안 힘들긴…… 말 한마디 실수하면 그걸 수습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렇겠죠.”
내 앞에서는 담담한 척하려는 건지, 녀석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인터넷 반응 같은 건 찾아보지 말고.”
“그럴 시간도 없어요.”
“남이 하는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이럴 때일수록 팬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라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새빨간 두 눈이 여전히 안쓰러워 보였다.
일주일 만에 싱글 하나를 낸다는 건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작업은 이 녀석과 내가 함께하기로 했지만, 일단은 만들어놓은 게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했다.
‘남이 만들어놓은 트랙에 멜로디 조금 끄적이는 것’을 대놓고 씹었던 녀석이니, 우선은 배민혁이 최대한 주도권을 잡은 채 작업을 이끌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의 몰골을 보니 그럴 상황은 아닌 듯했다. 차선책으로는 내가 만든 곡을 이번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보이그룹에게 어울릴 만한 곡이 있었다. 박력 있고 강렬한 사운드를 담고 있는 곡.
이 곡에 배민혁의 색깔을 입혀서 내놓는 것이다.
“그래. 곡 들어보자.”
적당히 칭찬을 해주는 걸로 마음을 편하게 한 뒤 돌아가서 쉬라고 할 참이었다.
사람이 우선 잠은 자야 되니까.
“전에 만들어뒀던 곡이야?”
“아뇨.”
“그럼?”
“어제 오늘 만든 건데요.”
“새로 만들었다고?”
“네.”
곡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라고 한 게 어제 점심이었는데 벌써?
“어디까지 작업했는데? 트랙은 다 찍어왔다면 좀 편하겠는데.”
“다요.”
“어?”
“보컬까지 입혀 온 거예요.”
“뭐?”
작업 속도가 원래 이렇게 빠른 녀석이었나.
“그래서 잠을 하나도 못 잤어요. 피디님 들려드리고 나서 전 숙소 가서 뻗을 거예요.”
“밤새 작업한 거야?”
“네.”
“난 또, 이번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꼴을 하고 있는 줄 알았네.”
“그런 걸론 스트레스 없어요. 주목받으니까 재미있는데요?”
“난 또…….”
“근데 그런 꼴이라뇨? 저 이상해요?”
“거지 같아.”
“엥?”
그러면서 배민혁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어서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아무튼 들어보자.”
모니터에 띄우고 있었던 DAW가 USB 안에 들어 있는 파일을 읽기 시작했다. 이윽고 화면이 가득 채워졌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빠른 비트의 신스 리프가 튀어나왔다. 비트를 리드미컬하게 잘 쪼개었고 악기 사용도 무난했다.
배민혁의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를 잡고 나가다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랩이 한 차례 지나갔다. 그리고 후크가 반복될 때까지도 리듬이 지루하지 않게 들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루 만에 이걸 만들었다고?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이 녀석의 초췌한 눈빛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전에 작업 해뒀던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랬다면 이번 앨범에 넣었겠죠.”
“그렇긴 하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만큼의 곡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랩 파트가 참 괜찮네. 네가 쓴 거야?”
“아뇨. 거기는 네이티 형이.”
“어쨌든 전반적으로 괜찮아. 이걸로 가자.”
배민혁은 빨간 눈자위를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사도 다 쓴 거 같네?”
“가사는 전에 써둔 걸 붙여봤어요.”
이 녀석은 제목까지 벌써 정해 놨다고 한다. 곡의 제목은 .
“너무 흔한 제목 아니야? TOP이라는 곡이 열 개는 넘을걸.”
“그래도 이 제목 말고 다른 걸 붙일 순 없었어요.”
가사의 내용은 단순했다. 최고가 되겠다. 아니, 이미 나는 최고다.
“아이돌 중에서 내가 최고다? 뭐 이런 내용이야? 내가 최고니까 그런 말 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거?”
“그렇기도 한데…… 그것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에요. 너를 위해서 나는 최고가 되겠다, 이런 의미죠.”
“유치한데.”
“이상해요?”
“아니, 그게 네 감성이라면 그대로 가도 좋고.”
“저는 진짜 진지하게 가서 쓴 건데. 사랑하는 여자가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한테 전하는 말인 거죠. 내가 너를 위해 최고가 된다면 나를 받아주지 않겠니?”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알았으니까. 이만 가 봐. 얼른 가서 한숨 자고 다시 와.”
“찜찜해요.”
“뭐가?”
“피디님 표정이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이라고요.”
“하루 만에 만든 곡 가지고 나를 만족시켰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내 기준은 까다로워.”
“알아요.”
“내일 아침까지 내가 곡을 다듬어놓을 거야. 그 곡을 가지고 연습에 들어가자고. 시간 없어. 다음 주에 내기로 한 거니까 쉴 틈이 없을 거야.”
“알고 있어요.”
배민혁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뒤, 여전히 내 표정이 걱정스러운지 또 한 번 내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빨리 나가라고 손짓을 한 뒤에야 녀석은 문을 닫고 나갔다.
* * *
의 음원 차트 순위가 약간 상승했다. 그렇다고 상위권으로 진입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뜻일 테다.
[더럽게 잘난 척하네. 누구는 트랙 만들 줄 몰라서 그런 줄 아나.]곧바로 삭제될 줄 알았던 그 포스트는 무려 하루가 지난 뒤에야 사라졌다. ‘타돌 언급 금지’를 그렇게나 외치던 팬덤에서도 ‘뭔데? 무슨 일인데?’ 하는 말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알게 모르게 이번 일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어떤 새끼들인데?’ 하는 마음으로 를 찾아서 듣는 것이겠지.
배민혁이 하루 만에 만들었다는 이라는 곡은 비교적 무난했지만, 이런 전쟁터에 내보낼 곡은 아니었다. 그래서 인트로부터 다시 손 봤다.
이 곡에서는 인트로가 제일 중요하다. ‘무슨 곡인지 한 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곡을 듣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새끼길래 그렇게 큰소리를 친 거야?’ 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열어볼 것이다. 그래 너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하는 식으로.
그렇다면 인트로부터 듣는 이를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오!’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도록.
배민혁이 인트로에 배치한 신스 리프를 조금 수정해서 좀 더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바꾸어봤고, 베이스 라인은 전부 뜯어고쳐서 베이스가 그루브의 중심을 잡고 있도록 만들었다.
이 작업에만 대여섯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삐딱한 자세로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보자’ 하고 다가올 안티 팬들을 고작 3초 만으로 사로잡아야 한다. ‘아이씨, 이 새끼 곡을 잘 만들긴 하네’ 하고 곧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로.
그리고 네이티의 랩을 앞부분에 배치해서 상대에게 잽을 날리듯이 툭툭 건드린 뒤 재희의 목소리가 묵직한 한 방을 날리도록 구성을 바꾸었다.
후렴구의 멜로디는 약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하루 만에 곡을 만들었다고 하니 여기까지 챙길 순 없었을 것이다.
후렴 멜로디를 새로 만들어서 내 목소리로 입혀 보았다.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멜로디를 만들어서 얹어보았고.
내 감각이 OK 사인을 보낼 때까지 이 작업은 계속 반복되었다.
삐딱한 시선으로 이 곡을 듣기 시작한 사람도, 곡을 다 들었을 때에는 만족감을 느끼도록 해야 했다.
‘재수 없게 곡은 좀 만들 줄 아네.’ 하는 정도의 마음을 인상적인 후렴으로 사로잡아야 한다.
결국 곡을 다 들은 후에는 ‘큰소리칠 만했네. 괜찮은데? 또 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후렴의 후크가 중요했다. 인트로가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눈빛 같은 것이라면, 후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따뜻한 체온 같은 것이다.
후렴 작업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내 감각에 고개를 끄덕여준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하나씩 멜로디를 버릴 때마다 파일 명에 숫자를 붙여주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이 TOP(49)라는 파일이었으니, 마흔아홉 개의 멜로디를 만들었다가 마흔여덟 개를 버린 셈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티오피. 그러면 나를 한 번 돌아봐 주겠니.
가사가 유치해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소름이 우수수 올라올 정도였다.
이 가사를 마흔아홉 번이나 부른 것이다. 아무도 없는 내 사무실에서.
* * *
배민혁 일당은 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아왔다.
“피디님 혹시 밤새신 거예요?”
“어.”
“우와…….”
“곡 들어봐. 나름대로 다듬어 봤다.”
“근데 말이에요. 어제 저한테 하신 말씀이 딱 이해되네요.”
“뭐가?”
“거지 같아 보인다는 거요.”
“뭐?”
“지금 피디님 얼굴이…….”
이 녀석은 나한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고서야 입을 다물었다.
곡을 플레이하려고 하자 빅픽처 다섯 명은 내 테이블 옆에 일렬로 서서 뒷짐을 지고 있었다.
“편하게 들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네.”
그리고 곡이 시작되었다.
“오!”
“우와!”
“와…….”
인트로가 나오자마자 딱딱하게 각을 잡고 있던 녀석들이 흐트러지며 탄성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무언가 할 말이 많지만 곡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말할 수 없어, 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곡이 흘러나오는 동안 녀석들은 들썩들썩 가벼운 어깨춤을 추기도 하고, 아마도 자기들끼리 미리 맞추어본 안무를 하는 등 곡의 리듬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후렴 파트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일제히 녀석들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와…….”
“이건.”
감탄 어린 얼굴로 옆에 서 있는 멤버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드는 녀석도 있었다.
곡이 다 끝났을 때 이 녀석들은 박수까지 치며 환호했다.
“완전히 새 곡을 만들어주셨는데요.”
“훨씬 좋다. 진짜 훨씬.”
“나 솔직히 이 새끼가 어제 들려줬을 때 별로였지만 말 못 하고 있었다구. 근데 피디님이 만드신 건 듣자마자 느낌이 딱 왔어.”
“맞아. 앞부분 거기.”
“시작할 때부터 ‘이건 명곡임’ 이렇게 알려주고 시작하는 거 같아.”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뻐하는 놈도 있었다.
“배민혁.”
“네.”
“어때?”
“저요?”
“이 곡은 네가 만든 거고, 네가 이끌고 나가라고. 내가 살짝 손 봐준 거니까 맘에 안 들면 네 스타일로 바꿔도 돼.”
“아뇨. 전혀요.”
“그럼 이대로 가?”
“당연히 그래야죠. 저는 아직 피디님한테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루 만에 곡이 이렇게 바뀌는지…… 블루 아이보다 훨씬 좋네요.”
하지만 그런 가운데 메인 보컬 재희는 표정이 좀 어두웠다.
“넌 왜 그래?”
“피디님께서 직접 부르신 파트요. 그거 제가 불러야 하는 거죠?”
“어.”
아 녀석은 휴우,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왜?”
“피디님만큼 잘 부를 자신이 없어요.”
갑자기 배민혁은 뭔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깐죽대기 시작했다.
“저희 선생님이 얘 보고 피디님 닮았대요.”
“인혁이가?”
“네. 피디님 젊었을 때하고 많이 닮았대요. 목소리가.”
“그래?”
“맨날 그러세요. ‘너는 꼭 영민이 어렸을 때 보는 거 같아.’ 이러시면서…….”
그런 말을 들으며 재희를 바라보자 재희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푹 숙였다. 성격은 나하고 많이 다른 것 같은데.
“그래서 선생님이 맨날 얘 때려요.”
“왜 때려?”
“피디님 닮아서 한 대 때리고 싶다고.”
“뭐?”
“그냥 장난으로 그러시는 거죠.”
그런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다시 한번 배민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왜 그러세요?”
“그냥.”
“…….”
“너도 누구 닮았어.”
어쨌든 곡은 이렇게 결정되었다.
크레딧에 내 이름은 빼기로 했다. 이 곡은 특별한 상황 속에서 발표하는 것이니 이미지 관리를 위해 배민혁의 단독 작업으로 하기로 했다.
“너희들…… 이 곡에 대해서 너무 기대하지 마. 차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고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기만 해도 저쪽에서는 막으려고 나설 테니까.”
“예.”
“너희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곡이라고 생각해. 실력에 있어서는 너희가 위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야. 그러면 하나둘 너희의 팬덤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길 거고, 이게 나중에는 큰 자산으로 작용할 거다. 이 곡은 너희를 알리는 이름표 같은 역할을 해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은 배민혁의 디렉팅 아래 곧바로 레코딩에 들어갔고, 멤버들은 안무를 만들며 연습을 시작했다.
다들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인지 급하게 만든 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음악과 안무 양쪽에서 있어서 퀄리티가 꽤 괜찮게 뽑혔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 월요일이 되었을 때, 그 시끄러운 소란이 발생한 지 6일째 되는 날 빅픽처의 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