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0
5장 세 번째 능력(1)
방송을 잘 봤다고,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문자로 보냈더니 김우진은 전화를 걸어왔다. 마지막 방송은 생방이었기에, 그는 뒤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영민 피디님한테 전화를 걸까 말까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술에 좀 취했어요.
“그래요? 제가 괜히 문자 보낸 것 같네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문자 보고 정말 반가웠어요.
그래도 술 마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방송 보셨죠?
“그럼요.”
-그 발언…… 제가 지워 달라고 한 겁니다.
“발언이요?”
-그쪽 연습생 한 명이 말실수한 거요.
말실수라고 하니까 나도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춤은 별론데, 라고 말한 거 있잖아요.
“예, 알아요.”
-그게 나갔다면 안 좋은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었습니다. 편집 쪽에선 그냥 넣자고 했어요. 이런 걸로 이슈를 만들고 싶은 거죠. 몬스터 뮤직의 팀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선역과 악역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발언 자체가 방송국 쪽에서 유도한 것이었다.
우리 애들이 아이즈 컴퍼니 연습생들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 계속 하자, 좀 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요청했던 것이다.
‘노래는 너희가 훨씬 잘하는 것 같더라. 아까 연습하는 거 봤어. 역시 몬스터 뮤직이야.’
‘아이즈 컴퍼니 애들은 너무 정형화되어 있지? 딱딱 규격에 맞추어서 나온 애들처럼.’
‘쟤는 현장에서 얼마나 시끄러운지 몰라. 왜 그런 애들 있잖아. 실력은 없는데 입으로만 떠벌리는 타입 말이야. 이런 사람 겪어본 적 있어?’
방송 경험이 없었던 우리 애들은, 가볍게 오가는 이런 대화 중에도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주의를 주긴 했지만 이런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진 못했다.
다행인 건은 리더인 채아가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다른 애들이 대답하지 못하도록 얼른 자기가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저희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볼 때마다 기가 죽어요.’
‘아뇨. 오히려 체계적으로 배운 흔적이 보여서 늘 감탄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니까요. 저는 저런 스타일도 매력 있는데요?’
녹화 현장에 있던 나는 그런 대답이 나올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하지만 문제의 발언. ‘춤은 별론데’라는 말이 지민이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춤은 별론데 몸매가 너무 예뻐서 멋이 나는 것 같아요. 진짜 저분 부럽다.’
우려했던 대로 앞의 다섯 글자만 쏙 빼어서 써먹으려고 했나 보다.
-너무 티 낸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저 진짜 많이 싸웠습니다. 그런 거 하나 내보내면 몬스터 뮤직 이미지가 뭐가 되는 거냐고 난리를 쳤어요.
고맙다고 말했다. 빚을 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쨌든…… 어떻게 보셨나요? 이만하면 빌드업은 제대로 된 것 같나요?
“괜찮았어요. 특히 서아리…… 저까지 그 애한테 몰입했다니까요.”
-음…… 아리요?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진실성이 보여서 그런지 이번에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아이고, 쟤 어떡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불우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심사위원은 냉정한 기준으로 탈락시켜 버리고, 하지만 극적으로 부활해서 우승을 거머쥔다는 전형적인 해피 엔딩.
도 그 포맷을 그대로 따라 한 셈이었다.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프로그램을 하기 전까지 아리에 대해서 전혀 몰랐어요.
“그래요?”
-저희 연습생 중에서 낮은 조에 속해 있던 애였고, 제가 프로필을 자세히 확인할 일도 없었던 애였습니다. 연습생 중에서 스물서너 번째 위치에 있는 애였는데, 참가자 스무 명을 맞추느라 간신히 방송에 합류한 거였죠. 연습생 중 몇 명은 이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겠다고 빠졌거든요.
행운이 따라준 것이었다. 참가를 거부한 연습생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을 바꾸어서 이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결정했다면 아리는 여기에 있을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에도 참가자 스무 명 중 20위가 예상되는 참가자였다. 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서 계속 살아남다가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6회차에서 걔를 탈락시켰는데, 사실 그때에도 아리는 합격선에 간신히 걸치고 있었어요. 조금 다르게 본다면 탈락시키지 않고 한 번 더 지켜봐도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런 동정표를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과감하게 탈락시켰던 겁니다.
“의외네요. 저는 김 실장님이 이번 드라마를 계획하신 건 줄 알았어요.”
-전혀 아니에요. 저는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라면 정상에서 장수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동정표를 받아 일시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은 이 바닥에서 장수할 수 없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이 사람에게서 나오고 있는 서늘한 한기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이번 프로그램만 하고 말 거면 저도 아리를 밀었을 겁니다. 일회성으로는 최고의 카드잖아요. 하지만 모든 걸 다 내어줄 것 같은 대중들의 마음도, 작은 실수 한 번에 180도 변합니다. 그렇게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도 하루아침에 죽일 년을 만들 수도 있는 곳이 이곳이잖아요. 저희 회사 내부적으로도 아리를 잘 사용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양날의 검입니다. 커다란 위험 요소를 안고 가는 셈이에요.
“그래도 애가 착해 보이던데요?”
-착합니다. 방송에 나간 그대로예요. 과장한 것은 없고 거짓을 말한 것도 없습니다. 프로필을 나중에 확인하고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럼에도 애가 참 밝고…….
“저도 하루 종일 연습생들하고 부딪히면서 살아서 잘 압니다. 애가 꾸밈없어 보였어요.”
-그렇죠. 하지만 저희하고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걔를 그 세상에서 꺼내줄 수 없다면 가만히 지켜보는 게 최선입니다. 제가 그 아이의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개인사를 밝히지 말라고 조언했을 겁니다. 그래도 이제 알려져 버렸으니…… 그걸 잘 살려보려고 해야겠죠. 그래서 마지막에 합류시킨 겁니다.
* * *
하품을 수시로 내뿜으면서 마우스를 붙잡고 있었다. 이제 잠들어야 한다고 내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걸 억지로 무시하면서 곡을 만지고 있었다. 이것만 끝내고 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컴퓨터를 바꿀 때가 된 건지, 아니면 깔아놓은 것이 많아서 그런 건지, 가상 악기를 하나 불러들이는데 한참을 버벅였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기타, 저 기타 하나씩 불러내서 만져보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런 게 없어서 어설픈 솜씨로 연주한 걸 마이크로 잡아서 넣어보곤 했었는데, 그냥 잠이나 잘까 나머지는 내일 작업할까, 통장에 돈은 계속 쌓여가고 있으니까 이참에 내 방을 근사한 작업실로 꾸밀까, 이런 공상들을 하며 졸음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등 뒤에 있는 침대가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하고 내 위로 누워서 잠드는 거야, 하고.
“괜찮은 생각이에요.”
“어?”
“집에 작업실을 꾸미는 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뭐지? 침대가 말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봤는데.
“이제 좀 누리고 사세요. 집도 넓은 곳으로 옮기고, 방금 생각한 것처럼 방 안을 작업실로 꾸며도 좋고.”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위화감이 들지도 않았다.
“뭐야.”
잘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벌써 잠들었구나. 꿈속인 걸 보니까.
“왜 아직도 이 집에 살고 있어요?”
“여기가 편해.”
“앞으로도 계속 돈을 많이 벌 거잖아요. 집도 장만하고, 그러면서 결혼 준비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잔소리하지 마. 그런 말은 어머니한테 지겹게 듣고 있다고.”
“차도 새 걸로 바꾸고.”
“차 산 지 일 년도 안 됐어.”
“누리고 살라는 얘기예요. 일만 하고 사는 게 안타까워 보여서요.”
이 여자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 튀어나온 건가. 초장부터 이래라저래라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방긋 웃는 얼굴로 조잘조잘 계속 떠들어 대고 있었다.
“슬슬 결혼도 생각해야죠. 당신 좋다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많기는.”
“가정을 꾸리고, 애기를 낳아서 당신의 재능을 물려주기도 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전부 애들이야. 그 애들이 나하고 몇 살이나 차이 나는지 알아?”
“하여튼 고지식하기는.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그 말이 한동안 억누르고 있던 것을 끄집어냈다고 해야 하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것이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나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리다고. 내가 인혁이랑 술 마시고 다닐 때 걔는 어린이집 다니고 있었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랬더니 그녀는 크큭 하는 소리를 내면서 한참 웃었다.
“이런 쪽으로는 둔한 줄 알았더니 의외네요?”
“잘은 모르지만…… 오랫동안 그 또래 애들을 상대하면서 살아왔으니까.”
예전에 학원에서 일을 할 때에도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 애들을 이따금 접해왔다.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장문의 메시지를 나에게 던져놓고 애타게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애들도.
지난번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아차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연화 얘기한 거 아니었는데.”
“그럼 뭐야?”
“아무튼 쉬엄쉬엄하라는 거예요. 실력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넘치니까 그 사람들을 잘 활용하고,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걸 나누어 가지세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는 중이야.”
보컬 트레이닝은 유미가 잘하고 있었다. 애들하고 소통하고 있는 걸로 본다면 나보다 나았다. 그리고 작곡가 이정인 씨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고, 예음이를 팀에 합류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싱어송라이터로 키우려고 마음먹었다.
뭐 이 정도라면 나도 할 만큼 하고 있는 것이긴 한데.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거예요. 그리고 누리고 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분에 넘치는 능력을 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쉬지도 않고 그렇게 일만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여요. 누누이 말하지만…… 그건 원래 당신의 능력이고, 당신이 타고난 재능입니다.”
맞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런 말을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 하지만…….
“제가 꿈에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무슨 말이야?”
“제가 당신에게 나타나는 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 꿈에서 깨어나면, 이제 다시는 저를 만날 수 없게 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마지막 능력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죠. 이걸 당신에게 드린 후 저는 사라질 겁니다.”
그녀는 지저분한 이 방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새카만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다.
고급스러운 바 안에서 그녀는 얼음이 담긴 잔을 들고서, 그리고 지금처럼 새카만 드레스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났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숨겨 두었던 것을 열어 보여준다는 듯이, 새로운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알고 보니 천재 뮤지션
7권
이돌구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이돌구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0-11-04
정가 : 3,200원
제 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31길 38-9, 401호
ISBN 979-11-293-67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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