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7
2장 Butterfly Wing
의 마지막 날. 생방에 들어가기 전에 세 번의 리허설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방송국을 찾았다.
“어?”
“이게 뭐야.”
레드애플의 멤버 네 명은 대기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기실 앞에 붙어 있는 A4 용지 한 장 때문에.
[출연자 대기실 03데이바이데이
레드애플
(관계자 외 출입금지)]
“설마…….”
“오늘 대기실 같이 쓰는 거였어?”
“난 몰랐는데.”
대기실 03. 가장 큰 대형 대기실이었다. 지금까지 한 달 동안은 대기실05와 06을 양 팀이 나누어 썼다.
“선배님들 오신다고 해서 그런 건가.”
이날은 마지막 주라서 소속사 선배들의 축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똑같이 당황스러운 눈을 하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가 오가고, 천장과 측면에 부착되어 있는 카메라는 이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모두 잡아내고 있었다.
“…….”
“…….”
침묵이 계속 이어졌다. 스탭들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어색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듯이.
“일찍 오셨네요.”
“아…….”
“…….”
“저희도 방금 왔어요. 5분 전에.”
“아…….”
이제 열두 시간 후면 두 팀 중 한 팀은 환호성을 지르게 될 것이다. 다른 한 팀은 절망 속으로 빠질 것이고.
그럼에도 상대를 바라보는 감정은 오묘했다. 경쟁하는 상대, 밟고 올라가야 하는 대상,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불쌍하다.
쟤네들이나 우리나.
같은 내용의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 같은 것이 앞섰다.
특히 이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곧 재판을 받을 죄수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이거 드실래요?”
불편할 정도로 계속되는 침묵을 먼저 깨버린 사람은 채아였다. 채아는 숙소에서부터 가져온 빵을 내밀었다.
“우유도 있는데.”
“이거 드시는 거예요?”
“아뇨. 저희는 다 먹었어요.”
“아…… 저희는 이런 거 먹으면 안 돼서…….”
데이바이데이는 지난 프로그램에서 데뷔조가 정해진 이후 끔찍할 정도로 강도 높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렌치 토스트와 롤케익…… 데이바이데이 멤버들은 침이 꿀꺽 넘어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몰래 먹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눈은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먹자. 그냥 이번만 먹으면 안 될까? 데바데 멤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 * *
“두 분은 본 녹화 때까지 여기에만 계셔야 합니다.”
아이즈 프로덕션의 조 팀장은 매우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이걸 어기면 절대 안 된다는 듯이.
“리허설 보지 말라는 거잖아?”
“그렇죠.”
“안 본다니까.”
“두 분 다 연기는 빵점이라서 리액션 잡으려면 이렇게 해야 돼요. 상대 팀의 곡을 먼저 들으면 안 된다는 얘기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인터뷰룸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애들 보러 대기실 가는 것도 안 돼요?”
“예. 그것도 안 됩니다. 지금 거기선 두 팀을 한 곳에 몰아넣고 그거 찍고 있어요.”
“아…….”
“바로 편집해서 오늘 저녁에 내보낼 거예요. 분량 안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벌써부터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고 있네요.”
“애들 뭐하는데요?”
“사이 좋게 모여서 빵 먹고 있어요.”
사이 좋게?
그러자 김우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뭐? 뭐를 먹는다고?”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 하루만 봐줘요. 마지막 날이잖아요.”
“안 돼. 한 번 풀어지면 계속 풀어지게 돼. 이래도 되는 줄 안다고.”
“그래도 가끔은 먹이지 그랬어요. 지금 완전히 걸신들린 듯이 입으로 쑤셔 넣고 있던데.”
“뭐?”
김우진의 얼굴은 한층 더 사나워졌다.
“몬스터는 식단 조절 안 하시나 봐요?”
“저희도 하긴 하는데 오늘 아침은 풀어줬어요.”
“그거 조심해야 됩니다. 습관 돼요.”
그러자 조 팀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지금 보기 좋아요. 애들끼리 신경전 벌이면 그거대로 괜찮을 거 같아서 잡아보려는 거였는데 반대의 상황이 돼버렸잖아요. 김 실장님 그거 아세요? 팬들 중에선 저렇게 여덟 명을 모아서 팀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게 쉬운 줄 알아?”
“잠깐 동안 활동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라도.”
“여기 박 피디님한테 물어봐라. 그게 어디 쉽게 되는 건지.”
그렇다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키지 않아서 하지 않을 뿐이지.
“근데 김 실장님은, 만약 쟤네들이 진다면…… 진짜로 버릴 거예요?”
“뭘 버려? 다시 원점으로 돌린다는 거지.”
“그게 그거죠.”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나는 팀을 또다시 만들 거고, 거기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는 똑같이 주어질 거야. 대신 한 번 노출됐기 때문에 신선도가 낮아진 건 감안해야겠지.”
“그럼 그저께 하신 말씀은 뭐예요? 잘못은 전부 김 실장님한테 있고 애들은 잘못 없으니까…….”
“그건 그냥 취해서 한 말이잖아!”
김우진은 유난히 소리를 높이며 조 팀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조 팀장은 싱긋 웃으며 내 쪽을 바라본 뒤 인터뷰룸을 빠져나갔다.
스탭들이 세트를 꾸미고 있느라 이곳은 분주했다. 김우진과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그 어떤 때보다 어려웠다. 아마 김우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들은 빵을 나눠 먹고 있다고…… 그 얘기에 웃음이 픽 터졌지만, 정작 이곳에 있는 그와 나는 냉랭한 긴장감 속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 손에 빵이라도 있다면 하나 먹으라고 건넬 순 있겠지만.
* * *
김우진은 일을 보고 오겠다고 나갔다가 방송 한 시간 전에 돌아왔고, 나는 새벽까지 작업을 하느라 잠이 모자라서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잤다.
툭툭,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깨어보니 방송 시작 시간이 되었다.
의 마지막 방송.
처음 30분은 지난주의 승자였던 우리 애들의 연습 장면으로만 구성되었다.
배경은 연습실과 숙소였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장면과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뤘다. 연습하는 장면에선 이 낮은 음량으로 살짝 노출되기도 했다.
늦은 밤 숙소로 복귀하는 장면에서는 아이들이 느끼는 중압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절한 편집으로 강조되기도 했고, 이를 설명해 주듯 나레이션이 뒤를 이었다.
그런 뒤에 오늘 대기실에서의 모습, 어색하게 침묵을 버티고 있는 양 팀의 멤버들이 한 명 한 명 클로즈업되었고, 그러다가 빵을 나눠 먹으면서 말문이 트이는 것까지를 재미있게 보여주었다.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모습이 유난히 강조되었다.
생방송 무대는 그런 뒤에 이어졌다.
엠씨가 생방 무대에서 이번 주 경연 내용을 설명했고, 시끄러운 관객들의 소리가 마이크에 그대로 담겨서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백스테이지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파묻혀 있는 양 팀의 실루엣이 이따금 지나갔고, 지미집을 높게 들어 올려 객석을 잡을 때에는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그대로 화면에 잡혔다.
-아마도 여덟 명의 멤버들은 오늘의 무대를 잊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에겐 꿈을 이루는 시작점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절망을 안겨준 시간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여러분이 결정하시게 됩니다. 지금 TV를 보고 계신 시청자들,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해 주시는 관객들이 두 팀의 운명을 가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비로소 다가왔다.
-첫 번째 무대는…… 데이바이데이입니다.
* * *
곡의 제목은 .
참여한 작곡가들을 보면 김우진이 이끌고 있는 프로듀싱팀의 멤버들이었다.
작곡 : 김우진, 신봉근, BRADIO, DT
작사 : 김우진, 윤하린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BRADIO라는 활동명을 사용하고 있는 작곡가였다.
멜로디를 만드는 탑라이너인 그는 요즘 들어 유난히 내 귀에 쏙 들어오는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어디 소속인지 알고 싶어서 찾아봤을 때 김우진 밑에 있는 걸 보고 놀라긴 했었는데.
이윽고 무대에서는 속도감이 느껴지는 투스텝(2step) 비트와 함께 라인이 뚜렷한 베이스가 곡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신스의 아르페지오가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면서 아늑하면서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보컬 파트는 이례적으로 메인 보컬인 장세은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까만 시쓰루 드레스와 베이지색 하이부츠로 스타일을 맞춘 세은이는 조금은 어두운 무대 속에서 음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티팝이라고 해야 하나. 멜로디가 슬프면서도 예쁘게 만들어져서, 스무드 재즈와 같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었다.
김우진의 팀에 합류한 BRADIO 때문인지 곡의 시작부터 후렴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멜로디가 뚜렷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빠른 템포 속에서 신나는 느낌을 잘 간직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듯한 선율로.
“곡 진짜 괜찮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김우진은 내 쪽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미소를 보여주었다.
특이한 점은 장세은이 파트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장세은과 아이들이라는 식으로.
보컬 파트뿐만 아니라, 댄스 브레이크 타임이 되었을 때 무대의 앞으로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세은이었다.
킥이 비트를 잘게 쪼개고 있는 난이도 높은 리듬 속에서 세은이는 어깨로 능숙한 쉐이크 동작을 소화하며 실력을 뽐내었다.
이제까지 데이바이데이가 보여준 무대와는 전혀 달랐다.
당연히 마지막 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고, 그전에는 가지고 있는 기량의 백 퍼센트를 발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런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그 이상의 무대였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지닌 한 사람이 무대를 이끌고, 나머지 셋이 그것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되니 이제까지 엉성해 보였던 점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셋 또한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아이즈 연습생들이니 지난주에 비해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슬픈듯한 멜로디가 후반부에 가서는 폭발하듯 터졌고, 여기서 세은이의 가창력은 높은 수준의 보컬을 들려주었다.
무대가 끝났을 때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이 현장을 가득 채웠고, 나는 손바닥이 터질 정도로 힘차게 박수를 쳤다.
김우진은 내 옆에서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시나리오는 이랬을 것이다. 부터 세은이를 전면에 내세워서 주목을 받게 하고, 그것이 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
또한 초중반에는 상대 팀에게 밀리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다가 마지막 주에 세은이의 맹활약으로 판을 엎어버리는 것.
아마도 이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도무지 이런 무대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명이 가져가게 하고, 그 한 명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의 퍼포먼스로 무대를 장악하는 것. 김우진이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어쨌든 데이바이데이의 무대를 본 내 소감은 이랬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소속사의 파워, 팬덤의 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흐름, 이 모든 것들을 음악 하나로 역전시키고 싶었는데.
상대는 음악으로도 나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번 무대는…… 레드애플입니다.
그런 가운데 내가 모집하고 내가 키워낸 네 명은 캄캄한 무대 위에서 가녀린 실루엣을 보이며 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는 클럽 페스티벌 사운드에 기반한 EDM 트랩의 곡이다.
EDM이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사운드가 꽉 채워져서 파워풀하게 밀고 나가는 음악. 이건 몇몇 아이돌 그룹들이 시도하고 있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또 하나는 의도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는 스타일. 절제의 미를 강조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잘못하면 너무 심심해질 수 있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감상자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건 장점이었다.
는 둘 중 후자의 스타일이다. 애매하지도 않게 완전히 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인트로에선 125 BPM으로 그다지 빠르지 않은 비트가 날카로우면서 공격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쏟아져 나온다.
그동안 레드애플의 네 명은 클럽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리가 나왔어.’
라는 것을 알리는 구간이다.
왜 이 팀이 존재해야 하는지,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이기에 이 팀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짧은 인트로 속에 넣어서 들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운드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네 명의 멤버들을 지켜보라는 뜻으로.
그런 뒤 무대가 밝혀지며 그 비트 위에서 네 명의 멤버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안무는 격하지 않게 만들었다. 몸 전체를 활용한다기보다는 왑(wop)을 연상시키듯 근사한 라인을 만들면서 손동작으로 포인트를 가져가는 식이었다.
동선이 크지 않았고 제자리에서 손끝이 만들어내는 라인으로 이 곡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마치 클럽에서 춤을 추듯이.
의상 또한 이에 맞추었다. 네 명의 의상을 통일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랩미니스커트와 블라우스로 세련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가 급변하며 어쿠스틱 피아노 사운드 위에 몽롱한 전자 악기의 소리가 입혀지며 감성적인 보컬 라인이 시작된다.
이 파트는 지윤이가 맡았다. 다른 사람은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감이 느껴지는 지윤이의 톤에 맞추어진 멜로디였다. 몽롱하면서도 환각적인 곡의 분위기가 지윤이의 목소리를 완성되었다.
지윤이는 다은이와 더불어서 내가 가장 처음 맡은 연습생이었고, 이 소리는 내 능력을 통해 오랜 시간 다듬어낸 결과물이었다.
청명한 톤 하나만으로도 매혹적인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이 파트를 통해서 그녀는 자신을 버린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런 나를 왜 버렸던 거야? 나는 이런 소리를 만들어낼 줄 아는 보컬인데.’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실제로 지윤이를 버리기도 했던 김우진 쪽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 그는 이 곡에 빠져들고 있을 것이다.
* * *
후렴은 세 번 반복된다.
인트로에서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이어지는 벌스에서는 피아노 위주의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반면 후렴은 그와 대비되게 공격적인 전자 악기 소리로만 채워서 몰아쳤다.
세 번의 후렴은 똑같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강렬한 사운드로 들려준다.
그래서 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 번째 후렴에서는 지진이 일어날 것 같은 파괴적인 사운드로 채아의 목소리를 빛내주게 된다.
후렴의 음역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찌를듯한 고음이 장점인 채아의 능력을 일정 부분 제한한 것이었다. 절제하면서 곡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그렇지만 그 결과, 메인 보컬이 이 곡에서 가지는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 사람 노래 잘부르네’ 하고 감탄하면서 듣기보다는,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조화 속에서 독특한 음색과 특유의 감성이 잘 드러나도록 트레이닝을 해왔다.
이날의 무대에서 또한 채아는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 수준을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은 아이돌 중에서 몇 없을 것이다.
무대가 끝났지만 김우진은 마치 조각상처럼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오히려 촬영 기사들과 스탭들의 박수 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려왔다.
무대가 정리되고 엠씨가 나타날 때까지도 김우진은 그대로 있었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는 채로 모니터 스크린을 그대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쩐지 싸늘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다가가서 만져보면 내 손까지 얼어붙어버릴 정도로.
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작자의 목록은 아이즈와 비교했을 때 초라하면서도 단순했다.
작곡 : 박영민
작사 : 박영민
편곡 : 박영민
이 곡은 레드애플에게 주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곡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듬어낸 결과물이었다. 그 모든 것은 오늘의 무대를 위한 것이었다.
* * *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무대였습니다. 저 동작이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네 명이 정확하게 맞추기 어려운 동작이거든요. 차라리 동작이 크다면 쉽게 맞출 수 있는데 제가 말하고 있는 그 부분은 네 명 중 한 명에 손을 5센티만 낮게 올려도 어긋난 게 눈에 들어오는 동작입니다. 그런 것까지 디테일하게 딱딱 맞춘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 땀을 흘려온 만큼 그 결실이 잘 맺어지길 바랍니다.”
김우진의 심사평을 끝으로 우리 두 사람의 역할도 끝이 났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김우진과 나는 관객석 가운데에 마련된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관객들의 시끄러운 함성이 그대로 귀에 날아와 꽂혔다. 수백 명의 함성이 일제히 터질 때에는 가벼운 현기증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객석 하단에는 조금 전 공연을 마친 선배 그룹 두 팀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비츠걸스 네 명과 플라지아의 유닛 그룹 세 명.
후배들을 격려한다는 식으로 이날 무대를 빛내주었다.
이날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여덟 명의 연습생들은 진행자의 양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아이들의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는 눈빛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김우진 피디님.”
“네.”
“오늘 이 자리에서 패배한다면 데이바이데이라는 팀은 데뷔하지 못하는 겁니까?”
“네?”
객석의 중앙은 너무 시끄러워서 엠씨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다시 묻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패배한다면 이 연습생 네 명은 데뷔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 질문에 김우진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잡으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요?”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우리의 주변으로 가벼운 야유가 일어났다. 그 야유는 점점 커져서 객석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옆에 계신 박영민 피디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도 물었다.
“네.”
나의 대답도 같았다.
“그렇게 할 겁니다.”
또다시 야유가 휘몰아쳤다.
-우리는 욕을 좀 먹어도 괜찮잖아요. 아무리 욕을 많이 먹어도 상관없어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봤자 몇 달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실적은 영원히 남게 되는 거죠.
* * *
“누가 이길 거 같으세요?”
“몰라. 지켜봐야지.”
김인혁과 배민혁은 사이 좋게 모여서 를 지켜보고 있었다. 빅픽쳐의 다른 멤버들도 함께.
“곡은 우리 본부장님 거가 훨씬 좋았는데.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냐?”
“아이즈 거 들었을 땐 이번에 음악에서도 지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곡 진짜 잘 빠진 거 같아요. 와. 역시 김우진이다. 우리 뚱뚱사장님 라이벌답구나. 이런 생각 했는데…… 그다음에 우리 본부장님 거 인트로 듣는 순간부터 ‘그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오더라고요.”
방송은 이제 점수를 공개하려고 하고 있었다.
“너…… 영민이 곡이 뭘 레퍼런스로 삼았는지 들렸어?”
“레퍼런스요?”
“모르겠지?”
“아, 그게…….”
배민혁은 애꿎은 머리를 긁어 댔다.
“릴존(Lil Jon).”
“네?”
“그리고 플로스트라다무스(Flosstradamus).”
“라다무스…… 그거 예언자 이름 아니에요?”
“무식한 놈아! 음악 좀 폭넓게 들어보라고 했지?”
“듣고는 있는데 요즘 바빠서.”
“나도 지나치듯이 몇 번 들어본 게 전분데 영민이는 그걸 분석하고 연구해서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었어. 그래서 저런 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지.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거야. 그런 마이너한 전자 음악까지 다 찾아서 연구할 정도니까.”
두 팀의 멤버들 머리 위로 커다란 스크린이 준비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이제 점수가 표시되려고 했다.
“김우진 씨가 이번에 애를 썼어. 아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량과 인력을 동원해서 대작을 만들어보려고 했을 거야. 그런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 거겠지. 마지막에 웃는 건 자기일 줄 알았을 거니까. 근데 음악에서 승부가 크게 갈려 버렸어. 영민이가 그사이 몇 단계나 스텝업할 줄 누가 알았겠어.”
“곡 진짜 좋더라고요. 뿜뿌뿜뿌하는 소리도 좋고, 저 섹시한 누나도 노래 잘 부르고.”
“아이돌 음악 중에서 이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음악은 내가 이 판에 있으면서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 단 한 번 들었지만 아직도 곡이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니.”
“사장님도 처음 들어본 거예요?”
그리고 사전투표 점수부터 공개되었다.
레드애플 7점, 데이바이데이 13점.
“음…… 처음엔 밀리네요.”
“인기는 저쪽이 훨씬 많잖아. 요즘 서아리 모르는 사람 없던데.”
“그럼 짜릿한 역전승?”
“곡이 좋았고 무대 연출도 좋았으니 기대를 해봐야겠지만.”
“이기면 쿨하게 허락해 주시는 게 어때요? 제가 어제 말씀드린 거.”
“그건 영민이한테 허락 맡고 오라니까!”
무대 위에선 두 번째 점수가 공개되려고 하고 있었다.
* * *
스크린에 숫자가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가슴 밑으로 묵직한 것이 쿵 쿵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빽빽 질러대는 소리까지 귀를 따갑게 하고 있으니 어서 빨리 결과를 듣고 이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15점! 무려 15점입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15라는 숫자가 스크린에 나타나자마자 내 가슴 속으로 무거운 추가 쿵 하고 떨어져 내렸고, 주변에서는 귀를 찌를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방청객 점수에서 15점.
우리 애들이 차지한 점수였다.
“레드애플이 15점, 데이바이데이가 5점. 방청객 점수에서는 꽤 벌어졌습니다.”
무대 위의 여덟 명은 가슴을 졸이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멤버도 있었다.
마지막 시청자 점수를 공개할 듯 애를 태우다가 60초 뒤에 공개하겠다는 멘트에는 힘찬 야유가 쏟아졌지만, 덕분에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김우진도 옆에서 다 들릴 정도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웅성웅성, 객석은 시장판처럼 시끄러웠다.
60초는 금방 지나가 버렸고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이곳을 가득 메웠다.
“현재 점수는 레드애플이 22점, 데이바이데이가 18점입니다. 시청자 점수는 40점을 나눠 가지는 것이니까 데이바이데이가 승리하려면 여기서 24점 이상을 가져가야 합니다. 만약 동점이면 추가 투표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결과표를 보니까 승부는 이번 점수에서 갈렸습니다.”
시끄러웠던 객석이 신기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시청자 점수를 통해서 이번에 데뷔할 수 있는 팀이 결정됩니다. 그럼 레드애플의 점수부터 공개하겠습니다. 레드애플이 16점 이상을 가져가면 이번 대결에서 이기게 되고 그대로 데뷔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레드애플의 점수는요…….”
요란할 정도로 흔들리는 조명, 귀가 아플 정도로 고막을 때리고 있는 효과음, 이곳에 모여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우리 애들이 서 있는 위로 점수가 나타났다.
[31]31이라는 숫자가 표기되었다. 그리고 장내는 곧 커다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 * *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아까 박 피디님 곡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이기기 어려울 것을 그때 짐작하고 있었죠.”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계속 대화를 나누는 건 어려웠다.
무대 위의 여덟 명은 서로를 꼭 안아주며 축하와 위로를 동시에 나누고 있었다. 누가 이겼는지 누가 졌는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울음바다였다.
퇴장하기 시작한 객석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누군가 김우진에게 무슨 말을 건넨 것 같았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들려오진 않았지만 김우진의 대답을 들으니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대략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대 위에선 그의 뮤즈라고 할 수 있는 세은이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허탈한 듯 넋이 나간 얼굴 위로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눈물이 유난히 눈에 잘 들어왔다.
* * *
가수는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 관심을 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연예인은 관심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가수는 유독 그런 면이 심한 편이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일상이고, 언제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모여 있는 모든 관객들이 자기만을 바라보고 있고, 그런 가운데 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
세트장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자신을 향한 눈빛을 바로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 관심들을 그 자리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무대란 그런 곳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무대라면 가수에게 있어서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도 재작년부터 일 년 반 동안 정상권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었던 비츠걸스라면 더욱 불편할 것이다.
외면받는 것이 일상이기에 무대가 주어진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처지라면 다르겠지만.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선생님. 축하드려요.”
“그래. 너희들도 수고했어. 오늘 높은 점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너희 역할도 컸을 거야. 정말 고맙다.”
그렇기에 이날 후배 그룹을 위해 무대에 오른 비츠걸스는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희생을 감수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동안에는 주인공이었다.
‘우와! 비츠걸스다!’
무대에 있는 동안 관객들은 그런 눈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비츠걸스가 온 것이다.
얼마 전 열렸던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본상에 올랐고, 서울가요대상에서도 본상과 인기상을 휩쓸었다.
걸그룹 중에서 본상을 받은 팀은 에피아와 비츠걸스뿐이었고, 다른 수상 내역까지 감안하면 걸그룹 중에선 1인자의 위치를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팀이 온 것이다. 이날의 무대 또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뜨거웠다.
하지만 주인공은…….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하여 데뷔가 확정된 후배 그룹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그들이었다.
“그래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네? 소감이요?”
연화는 잠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누구였지? 기자라고 했나? 조금 전 소개하는 걸 듣긴 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듣질 못했다.
“오늘 승리한 후배 팀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아, 네.”
앳된 얼굴의 여성 기자가 연화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지금까지 땀과 눈물을 흘려온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서 저도 점수가 발표되는 그 순간 울컥했어요.”
이렇게 자기 마음속에 있지도 않은 감정을 억지로 지어내서 말을 하긴 했는데…… 연화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말실수를 한 걸까? 상대 팀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지만 오늘 패배하고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는 분들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아요. 저도 그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비록 결과가 좋지 못했지만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서 나중에 더 좋은 기회로 데뷔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정도면 됐나? 그녀는 방금 자기 입에서 내보냈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기자를 대할 때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이 사람들은 말 속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곤 한다.
때로는 없는 걸 지어내서 말 속에 숨겨져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 이제 몬스터 뮤직에서는 걸그룹이 두 팀인 셈인데요, 경쟁심이 생기지는 않나요?”
그리고 이걸 한 번 물어보라고 대놓고 떡밥을 던지기도 한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물고기처럼 이걸 덥석 물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랬다간…….
“아뇨. 같이 무대에 서게 된 거잖아요. 저는 함께 무대에 서는 사람들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연화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 전 드라마에 출연했던 것이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미소가 부자연스럽다고 감독한테 싫은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는데…… 그때는 가수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 또한 가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일본에 진출하신다고 하던데요?”
“네. 맞습니다.”
“아…… 그러면 비츠걸스하고 레드애플이 일본과 한국으로 나누어서 활동하시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회사에서도 이렇게 잡고 있었다.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를 세계적인 걸그룹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런데 실패하면…… 이곳으로 돌아와서 저 애들이랑 경쟁해야 한다면. 그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연화 씨, 고마워요.”
시무룩한 얼굴이 드러났으려나.
아직 이 사람이 앞에 있는 걸 깨닫고 연화는 다시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어떻게 시무룩하지 않을 수 있나. 저기서 저렇게 좋아하고 있는 저 사람을 보고 있으면.
자기가 팀을 만들어서 데뷔시켰다고 저렇게나 기뻐하고 있는 저 사람을 보고 있으면.
시무룩한 정도가 아니라 불덩이라도 삼킨 듯 속이 쓰라렸다.
* * *
데이바이데이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지면 데뷔 안 시킬 겁니다.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하고 냉정하게 말했던 김우진은 술에 취하니까 딴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박 피디님. 제가 걔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십니까? 이대로 끝낼 수 없어요. 그냥 가는 겁니다! 욕은 제가 다 먹으면 돼요!”
잔뜩 혀가 꼬부라져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게 다 박 피디님 때문이에요. 과실을 따지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 와서 저하고 손잡고 같이 팀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럼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건데.”
“뭘 정복한다고요?”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한 김우진은, 심지어 그 자리에서 노래까지 불러 댔다. 시끄럽게 꽥꽥 대는 목소리로.
나도 참 어지간히 마시긴 했는데.
“뭐? 피자?”
“네!”
“딴거 먹으면 안 되겠냐?”
다음 날 점심, 레드애플 애들에게 먹고 싶은 걸 말해보라고 했더니 당장 나오는 대답이 피자였다.
“국물 있는 거 좋지 않아?”
“국물이요?”
“해장국 같은 거.”
“아, 이럴 땐 진짜 아재 같아요. 선생님, 무슨 해장국이에요.”
나는 속이 쓰려 죽겠는데.
“그럼 설렁탕은 어때?”
“싫은데요.”
“라면은?”
“라면이요?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고 하셨으면서 고작 라면?”
애들은 단호했다. “저희는 피자로 합의를 봤어요.”라면서.
따뜻한 국물 한 모금만…… 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하고 있을 때, 그래도 팀의 리더이자 평소에도 나에게 늘 호의적이었던 채아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속 쓰려서 그러세요?”
“어. 좀.”
“어제 술 많이 드셨죠?”
“꽤 마셨지.”
“술 냄새 장난 아니에요.”
채아는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면서 눈을 찌푸렸다.
“라면이라도 괜찮으면 제가 끓여드려요?”
“그러면 고맙고.”
“컵라면 괜찮죠? 제가 나가서 사올게요.”
“그래…… 아니, 안 돼!”
“네?”
“어딜 나가겠다는 거야! 이제 너 연습생 아니야. 함부로 밖에 나가서 뭐 사고 그러지 마. 그럴 일 있으면 매니저 시켜.”
“이건 제가 해드리고 싶어서…….”
“됐다고.”
하는 수 없이 애들은 피자를 시켜주고 나는 매니저가 사다 준 컵라면을 불리고 있었다.
애들 놔두고 나는 따로 밖에 나갔다 와도 되는 일이긴 했지만, 이날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정오에 음원이 공개되었다. 레드애플의 .
그리고 오후 1시, 우리는 함께 모여서 차트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쓰린 속을 간신히 붙잡고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몇 위 예상하세요?”
“몇 위라고?”
“네. 순위요.”
“너 차트에는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거처럼 말한다.”
“아…….”
“100위 안에 들어가는 거 쉬운 일 아니야.”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고.”
하지만 나도 기대는 하고 있었다.
는 4주차까지 평균 3.5 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의 시청률은 마지막 회였기에 4.9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4.9퍼센트라는 건 아주 높은 수치였다.
게다가 비드라마 부분 화제성 순위에서는 당당히 1위, 출연자 화제성에서도 아이즈의 서아리가 1위, 장세은이 8위, 그리고 우리 팀에서는 은설이가 10위에 올라 있었다.
시청자 반응을 봐도 은설이 예쁘다는 반응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두 번이나 노출되었다.
차트 산정 방식 때문에 음원이 바로 공개되지 않은 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진짜 100위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좋겠다. 여기에 우리 이름 나와 있으면 나 울 거 같아.”
“어제랑 얘기가 너무 다른데?”
“뭐가?”
“1위 못 하면 안 된다면서?”
“아니, 그건…… 손 대는 거마다 매번 1위를 만드는 우리 선생님 때문에.”
애들은 속이 쓰려서 배를 붙잡고 코를 찡그리고 있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전부 다 1위 만드셨는데 우리만 못 하면 안 되잖아.”
“그래도 우린 처음이니까.”
“일단 처음은 차트인이 목표!”
사실 손대는 거마다 1위를 만들진 못했다.
인환이 형은 중상위권, 빅픽쳐는 9위까지였지. 그러고 보니 맡은 가수들 중에서 남자들만 유독…….
피자 두 판을 휴게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콜라를 나눠 따르고 있을 때 한 시가 되어버렸다.
“선생님, 한 시예요, 한 시!”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은 나를 재촉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목 좀 축이고.”
느긋한 척하면서 콜라로 속을 달래고 있었지만 실은 나도 애가 타고 있었다.
피자를 옆으로 치워놓고 테이블 한가운데 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화면을 보기 위해 네 명의 아이들과 나, 그리고 매니저가 테이블 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파! 좀 비켜.”
애들은 지들끼리 머리를 쿵쿵 부딪히며 난리였다.
“조용히 하고…… 100위부터 천천히 위로 올릴 거야. 51위까지 보고 페이지 넘길 때는 손으로 가리고 있을 거니까 시끄럽게 떠들지 마.”
“꼭 그렇게 해야 돼요?”
“이렇게 해야지 재미있잖아.”
늘 해왔듯이 그렇게 밑에서부터 올라가다가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51-100 페이지를 찾고 있었는데…… 이게 어디 갔지?
“1위다!”
“1위!”
“1위 맞죠? 제일 위에 있으면 1위인 거 맞는 거죠?”
나는 “다들 조용히 해봐!”라고 소리를 높였지만 애들은 이미 화면을 전부 봐버렸다.
차트의 제일 상단에는 ‘Red Apple ’가 자랑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래프의 곡선은 하늘을 날고 있듯이 높게 위치해 있었다.
“1위다! 1위!”
애들은 두 손을 위로 뻗은 채 골반을 좌우로 흔드는 춤을 추면서 “1위, 1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실 아침부터 높은 순위로 차트인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를 마치자마자 공개한 우리 애들의 경연 영상이 유튜브에서 50만 조회 수를 달성하며 벌써 기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땅한 차트 강자가 없어서 높은 순위로 진입하는 건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의 흥행 덕분에. 그리고 이것을 기획한 김우진의 능력도 한몫했다.
아마 두 팀이 각각 단독으로 나왔다면 이런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서 한 팀에게 몰아주자는 것이었으니까.
“선생님, 또 1위를 만드셨어요.”
“너희들이 고생했지.”
“역시 영민 파워! 이럴 줄 알았으면 해장국 먹으러 갈걸.”
“맞아, 맞아.”
애들은 피자를 손에 든 채로 어깨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 * *
한 가지 일을 끝낸 셈이었다.
애들은 오늘부터 지옥 같은 일정에 돌입한다. 경연 준비만을 했지, 데뷔를 위한 준비는 없었으므로 이제부터 그걸 몰아서 해야 한다.
아직 프로모션을 위한 뮤직비디오조차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내가 붙잡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로서는 오랜만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제 저메인의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해서 이쪽 일도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영민아. 잠깐만 시간 좀 내줘라.
인혁이가 나를 찾았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고.
“뭔데?”
-배민혁 일로 좀 할 얘기가 있어.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보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 * *
어떤 음악이 상업적으로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해서 내 개인적인 취향까지 그쪽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따로 있을 수도 있다.
요리사가 잘 팔릴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별개로,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은 따로 있을 수 있듯이.
내가 만든 곡 중에서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곡은 비츠걸스에게 준 였다.
알앤비의 흑인음악 느낌이 진하게 묻어 있으면서도 보컬은 소녀처럼 예쁘게 소리를 만들어서 불렀던 곡이었다.
내 입맛만을 생각한다면 그 앨범에서 가장 밀어주고 싶은 곡이었다.
상업적인 가능성은 쪽이 더 높았기 때문에 2순위로 밀려 버렸지만.
“호흡이 끌고 가질 못해. 연습 좀 더 해보고, 안 되겠으면 바꾸자.”
“아뇨.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비츠걸스의 이번 콘서트 준비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관여하진 않으면서도 연화의 솔로 무대에서 보여줄 에는 꽤 신경을 쓰고 있었다.
원래 연화의 파트가 많은 곡이었지만 그래도 네 명이 불렀던 걸 혼자서 할 수 있도록 편곡하고, 그렇게 했을 때에도 허전해 보이지 않도록 사운드를 더 채워주었다.
안무가 들어갈 것을 감안해 리듬을 강조했던 원곡에 비해, 이번에 새로 편곡한 버전은 보컬 라인을 더욱 돋보이도록 했다.
“그 부분에서 호흡을 끌고 가지 못하겠으면 코러스로 넘기자고. 그렇게 해도 괜찮아.”
문제는 네 명이 불렀던 곡을 아무리 솔로 버전으로 바꾼다고 해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보컬 라인을 혼자서 소화하기에는 버거운 듯했다.
한 소절씩 번갈아 부르는 것을 감안해서 호흡을 할 수 있는 포인트를 없애 버린 구간이 있었기에.
“계속 연습하면 될 거예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요. 될 때까지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돼요.”
그리고 연화와 나는 연습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보컬 연습실에 함께 있었다.
“될 때까지 계속? 또 밤새 연습하고 그러려고? 그거 더 이상은 안 돼. 소리에서 피로감이 느껴지고 있어.”
“그런 건 제가 조절할 수 있어요.”
될 때까지 계속.
내버려 두면 얘는 정말로 될 때까지 계속한다. 미친 사람처럼 벽만 보고 연습하고, 이번에 안 되면 다음번에, 또 안 되면 그다음번에, 또 안 되면 그다음…….
얘는 뭘 해도 성공했을 거다. 이 정도의 집념이라면.
“선생님. 근데 그 노래 들려주시면 안 돼요?”
“무슨 노래?”
“선생님이 그 흑인 아저씨하고 같이 부르는 노래요.”
“그거 들려줬잖아.”
“또 듣고 싶어서요.”
보컬 레슨을 위해 디지털 키보드 앞에 앉아 있었던 나는 멜로디의 일부분을 연주했다.
“여기에 없어. 그거 들으려면 내 사무실로 올라가야 돼.”
“그게 아니고 지금요.”
“…….”
“노래하시는 거 듣고 싶어요.”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연주하다가 왼손으로 코드 아르페지오를 입혀보았다. 풍성해진 피아노 소리는 이제 내 노래만 들어오면 되겠다면서 문을 열어주고 있는 듯했는데.
“듀엣이잖아. 그 곡.”
“선생님이 부르는 파트만이라도 듣고 싶어요.”
“야, 갑자기 무슨.”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진짜…… 뭐라고 해야 하나…… 레슨할 때 노래하시는 걸 늘 들어왔지만 자기 목소리로 제대로 노래하시는 건 그때 처음 들었어요.”
“그랬겠지. 레슨할 때야 뭐…….”
“또 듣고 싶어요. 남자의 목소리가 그렇게 아름답게 들린 건 처음이었어요.”
그 말 때문에 피아노 연주를 계속할 순 없었고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알았어. 그럼 조금만.”
연화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로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긴 원래 저메인하고 둘이 앙상블을 이루는 파트인데, 내 거만 불러볼게.”
그러면서 피아노로 반주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인혁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잠깐만.”
전화를 조금 이따가 받으려고 해도 벨소리가 너무 커서 그럴 수 없었다.
-영민아. 잠깐만 시간 좀 내줘라.
딱딱하면서도 조금 상기된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고.
“뭔데?”
-배민혁 일로 좀 할 얘기가 있어.
* * *
부우 녀석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회의실? 왜 거기로 불렀는지 의아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에는 인혁이와 배민혁, 빅픽쳐의 매니저, 그리고 비츠걸스의 선하와 매니저도 함께 있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모여 있는 거야?”
그렇게 물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는 듯이 저마다 굳은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오 대리, 네가 얘기해 봐.”
인혁이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제가요?”
“그럼 누가 얘기하라고? 내가 말해?”
“아뇨, 그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박본한테 보고해.”
인혁이가 누구를 노려보는 듯한 싸늘한 눈빛을 보인 적은 몇 번 없었다. 회사를 옮긴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빅픽처의 매니저 오 대리는 내 얼굴을 흘깃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머뭇거린 끝에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민혁이가 사고를 쳐서요.”
“무슨 사고 말입니까?”
“아무래도 애가 어리고 혈기왕성하다 보니까 가끔 생각 없이 행동할 때가 있어요.”
“말 자꾸 돌리지 말고, 있는 사실만 나한테 말해주세요.”
똑바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오 대리가 답답해서 나도 그만 짜증 섞인 말을 내뱉어버렸다.
“한창 여자에 관심 많을 때인데 우리가 제한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민혁이도 답답했나 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인혁이도 참다못해 “오 대리, 너 똑바로 말해!” 하고 소리를 높였고.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선하가 “제가 말할게요.” 하고 끼어들었다.
차라리 선하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도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배민혁 쟤가 자꾸 우리 숙소에 찾아와요.”
“뭐?”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새벽에 갑자기 찾아와서 현관문을 툭툭 두드리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눈을 찌푸리며 배민혁을 바라보자 녀석은 죄수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확히 네 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새벽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우리 애들은 전부 깨버리고, 누가 저러는 건지 모르니까 겁에 질려서 울려고 하는 애까지 있었죠. 이제는 누군지 알아서 그런 소리가 들리면 한심하게 여기지만.”
“네 번이라고? 그럼 꽤 되었다는 거 아니야. 나한테 왜 말 안 했어?”
“선생님은 바쁘셨고…… 이런 일로 신경 쓰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매니저 오빠를 통해서 얘기하면 잘 해결될 줄 알았으니까요.”
비츠걸스의 숙소 위치는 회사 내에서도 보안 사항이었다.
엄격하게 보안을 지키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난번에 사생팬 사건도 있고 해서 회사 안에서도 관련된 몇 명을 빼고는 위치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를 옮긴 이후 별 탈 없이 지내왔는데.
하지만 매니저를 통해서 얘기하면 잘 해결될 줄 알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런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배민혁 저게…… 어제도 찾아왔어요. 현관 두드리면 신경도 안 쓰는 걸 아니까 이제는 창문으로.”
“아니, 누나.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뭔데?”
“아니, 진짜 본부장님, 그런 게 아니에요.”
싸늘한 눈빛과 함께 “넌 좀 조용히 있어.”라고 소리를 친 후에야 배민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다들 여기에 모인 거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의논해 보려고?”
“저희는 이거 그냥 못 넘어가요. 쟤가 우리 숙소에 왔다는 건 누가 우리 숙소 위치를 알려줬다는 거고, 자기네 숙소에서 다섯 번이나 빠져나왔다는 건 매니저의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다는 거겠죠. 그래서 회사에 요청하는 겁니다. 회사 차원에서 징계를 내려주세요.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 대리로 향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오 대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회피했다.
“배민혁, 이게 다 사실이야?”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정확하게 말해봐.”
배민혁은 억울하다는 듯이 손바닥을 딱딱 마주친 뒤에야 말을 이었다.
“저희가 핸드폰도 없잖아요.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회사에 있을 때에도 눈치가 보여서 함부로 말을 걸 수 없고. 그런데 진짜 누나들하고 제가 옛날에는 친했어요. 같이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그래서 무단으로 숙소를 이탈해서 그쪽으로 간 거고, 무작정 문을 열어 달라고 현관문을 두드린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요. 본부장님, 진짜 제 입장이 되면 이해해 주실 거예요. 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 꽉 막혀 버렸는데 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인혁이는 배민혁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시끄러워, 이 새끼야!”라고 호통을 쳤다.
평소에도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이상할 놈일 줄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선하야. 나한테 처음부터 얘기를 해주지 그랬어.”
나는 같은 말을 또 반복했다.
하지만 애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 준 것일 테다.
그동안 레드애플을 데리고 방송에 나가느라, 그리고 저메인과 작업을 하느라 잠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빴으니까. 내 걱정을 덜어주려고 그런 것일 텐데.
그래도 연화는 방금까지 나와 같이 있었으면서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게 참.
“배민혁 말고 다른 애들이 찾아온 적은 없었고?”
“저희야 모르죠. 문 두드리는 거 열어준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럼 평소에는 어땠어? 회사에서 가끔 마주쳤을 거 아냐.”
“회사에서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
숙소까지 찾아오는 녀석이 연습실로 쳐들어오진 않았다? 이건 이거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유 대리.”
“예.”
이곳에 비츠걸스 매니저 자격으로 와 있는 사람은 정 팀장 밑에 있는 유 대리였다.
“유 대리 선에서 이게 어떻게 안 됐어요?”
“죄송합니다.”
“이게 이렇게 사람들 모여 있을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가수들끼리 트러블이 생긴 거나 다름없는 일인데, 이게 유 대리 선에서 해결이 안 되고 회사의 간부들이 여기까지 와야 하는 일입니까?”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 대리는 뭐한 겁니까?”
“…….”
“애들 관리 똑바로 못 합니까?”
오 대리는 정 팀장과 동기면서 진급은 느린 직원이었다.
내가 이 회사에 처음 왔을 때 은근히 텃세를 부렸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고, 내가 자리를 잡자 나를 피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곤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잠깐 생각을 해봤을 때, 일단 아티스트 관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오 대리에게 책임을 물리고, 이참에 이 사람과 나의 상하관계도 분명하게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 저 배민혁 녀석도……
“잠깐만…… 배민혁 너.”
숙소로 찾아왔다…… 할 말이 있어서…… 그렇다면 누구에게?
여기 선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선하와 배민혁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었다.
“너 누구 보려고 얘네들 숙소에 찾아간 거야? 어?”
“아뇨, 그게.”
“빨리 말해, 인마.”
한참을 재촉해도 이 녀석은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대답은 선하에게서 듣게 되었다.
“쟤가 연습생 때부터 연화 쫓아다녔잖아요. 연화한테 할 말 있다고 자꾸 찾아오는 거예요. 요즘 들어서 특히.”
선하는 짜증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 * *
블루아이. 파란 눈? 이게 무슨 뜻인데?
‘파란 눈으로 세상을 지켜본다는 의미예요.’
‘그게 뭐야?’
‘여기서 파랗다는 건 몰래 지켜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네가 모르게 파란 눈으로 너를 지켜보고 있어. 가사 중에도 이런 구절이 있었다.
‘스토킹?’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게 스토킹이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걸 뜻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잖아.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파란 눈을 하고 있어, 이게?’
곡의 제목을 로 정했다고 했을 때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몰래 파란 눈으로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 그녀 모르게.
대놓고 스토킹을 노래한 것이었는데.
그리고 나와 함께 작업해서 음원 차트 9위에 올랐던 .
‘가사를 벌써 다 썼어?’
‘전에 써둔 걸 붙여봤어요.’
그날 배민혁은 파란 눈이 아니라 밤새 작업을 했다면서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해서 나를 찾아왔다.
‘너무 흔한 제목 아니야? TOP이라는 곡이 열 개는 넘을걸.’
‘그래도 이 제목 말고 다른 걸 붙일 순 없었어요.’
가사의 내용은 단순했다. 최고가 되겠다. 아니, 이미 나는 최고다.
‘보이그룹 중에서 내가 최고다? 뭐 이런 내용이야? 내가 최고니까 그런 말 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거?’
‘그렇기도 한데…… 그것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에요. 너를 위해서 나는 최고가 되겠다, 이런 의미죠.’
‘유치한데.’
‘이상해요?’
‘아니, 그게 네 감성이라면 그대로 가도 좋고.’
‘저는 진짜 진지하게 가서 쓴 건데. 사랑하는 여자가 저를 거들떠도 안 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한테 전하는 말인 거죠. 내가 너를 위해 최고가 된다면 나를 받아주겠니?’
지난 일들이 머리를 스쳐 가며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눈치를 못 챘을까.
-1년만 단축시켜 주세요. 1년이면 돼요.
하긴 연화와 저 녀석의 데뷔 시점 차이는 딱 1년이 난다. 1년을 줄이면 둘이 같아진다는 건데……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는 배민혁과 매니저 오 대리에게 내리는 징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해 보자는 것일 테다. 그래서 나도 상황을 파악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오 대리에게는 강한 징계를 내려서 회사를 떠날 거면 떠나라는 식으로 나가고, 그래도 붙어 있겠다면 내 앞에서는 찍소리 못 할 정도로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배민혁에게는 1차로 경고를 준 뒤 한 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다시는 가수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인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식으로 나가려고 했다.
숙소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도록 매니저를 붙여서 붙잡아두려는 생각도 있다.
그런데…… 누구 한 명을 마음에 두고 있어서 그랬다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하필.
* * *
“본부장님. 입이 열 개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처 부탁드립니다. 거길 가서 무슨 짓을 하겠다는 게 아니고 얘가 핸드폰을 쓸 수 없게 되니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찾아간 겁니다. 그냥 몇 마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돌아오겠다면서요.”
“오 대리.”
“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 노려보자 오 대리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나한테 묻겠다는 거 아냐.”
인혁이에게 그렇게 묻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것도 없어. 내 의견은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어. 오 대리는 자기가 맡은 아티스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돼.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뻔뻔하게 다시 회사를 나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게…… 오 대리 말이야, 올해 6월에 결혼해.”
“그래서?”
“사정은 좀 봐줘야지 않겠냐. 아직까진 한 식구인데.”
“그런 게 어딨어? 그랬으면 더욱 일을 분명하게 처리했어야지.”
그러자 오 대리는 마른 입술을 훑으며 “본부장님……”이라며 나를 불렀다.
매니저야 어떤 엔터 회사라도 늘 부족한 실정이니 여기서 잘린다고 해도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치프급 경력직 매니저를 잘못 데려왔다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무슨 일로 그만둔 건지 전 직장에 물어봤을 때에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받아주는 곳이 없지야 않겠지만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무직인 신세로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한 번만 선처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하는 중에 끼어들지 마세요. 아직 말 안 끝났으니까.”
“죄송합니다.”
“그리고 배민혁.”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 이따금 나에게 희망의 눈길을 보내곤 했던 배민혁 녀석은, 일그러진 내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며 테이블 위로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김우진이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는 아침에 일어날 때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알람이 울리면 그 순간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고.
만약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와 있다면, 그날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가 아이즈 컴퍼니의 프로듀서로 일을 하는 동안 그런 지옥은 종종 찾아왔다고 했다.
특히 그 예전의 스캔들이 터져 버린 날의 아침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수백 통 와 있는 것을 보고서.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 회사의 아이들은 순한 편이었다. 스캔들 하나 없었고 어디 가서 사고 친 적도 없었다. 그런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난 이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저 녀석이 지금까지 우리 애들에게 했던 짓은 분명히 더 있을 거고, 그걸 조사하는 팀을 따로 만들어줘. 그래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게 발견되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겠지.”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그래? 그러면 그냥 깔끔하게 징계를 내려.”
“어……?”
“내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서 여기 부른 거잖아. 그래서 말해주는 거야. 오 대리하고 배민혁한테는 징계를 내려. 여기 있는 선하를 비롯해서 비츠걸스 애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렇게 말했더니 인혁이 녀석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김인혁이 저 녀석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분신처럼 생각하며 지금까지 키워왔다는 것도.
“그게 안 된다면 내가 이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어.”
“영민아.”
“내가 담당하는 애들을 건드렸어. 이걸 참고 있으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내 생각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야. 어설프게 넘어가게 하지 말고 분명하게 징계를 내려. 그게 안 된다면 내가 나간다.”
“이게 그럴 만한 일은 아니잖아.”
“왜 아니야? 내 애들을 건드렸어. 나도 함부로 찾아가지 않는 숙소로 찾아가? 이게 어딜 봐서 그럴 만한 일이 아니야.”
“영민아. 네가 나갈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거야. 너 없으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냐.”
“누가 지금 나간다고 했냐고. 일 똑바로 처리하면 나도 가만히 있을 거야. 애매하게 봐주려고 하니까 그러는 거지. 마음 같아선 바로 잘라버리라고 하고 싶어. 나도 거기까지 바라진 않을 테니까 우리 애들 서운하지 않게 똑바로 처리해 줘.”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인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나는 뿌리치고 벗어났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니 그곳에는 연화가 서 있었다.
복도의 하얀 조명을 받고 있어서인지 촉촉한 두 눈이 유난히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넌 뭐야? 여기에 왜 있어?”
하지만 연화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레슨하시다가 갑자기 나가셨잖아요.”
회의실의 문을 닫고 함께 복도를 걸고 있을 때 연화는 입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연화는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듯이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았다. 살며시 허리를 숙이고 올려다보는 자세로.
“뭐하냐.”
“그냥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연화는 이런 말을 했다.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뭐가?”
“쟤 말이에요. 진짜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게 뭐?”
“신경 쓰지 마시라고요. 남자로 보인 적이 한순간도 없었던 애니까.”
어쩐지 연화는 아까 전 연습실에서 함께 있었을 때보다 더욱 차분해진 얼굴이었다. 알 수 없는 미소까지 입가에 걸치고 있었다.
“어디까지 하셨는지 기억나시죠?”
“응?”
“노래하시려고 하셨는데.”
“아…….”
“마저 들려주셔야죠. 숨소리까지밖에 안 들었어요. 막 시작하시려고 호흡 가다듬는 그때 전화가 와서.”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하자 연화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냐고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한 손에 쥐고도 남을 것 같은 가녀린 팔목이 힘차게 앞을 젓는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 * *
[어때요? 잘 지내고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잘 지낼 수 없잖아. 내 옆에 영민이 없는데.]저메인 존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장난스럽게 답장을 보내왔다.
[영민! 이긴 거 맞지?] [아, 그거요?] [내가 찾아봤어. 엄청난 그 곡도 들었지. 영민은 스펙트럼이 상상 이상을 넓은 것 같아. 어떻게 이런 곡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그냥 한 거예요.] [어쨌든 이긴 거지?] [이겼어요.] [역시. 내가 계속 기도하고 있었어. 쉬지 않고 계속.] [파티한다면서 기도는 무슨.] [술에 취해서도 기도했지. 나이스한 걸들에게도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이길 수 있었던 거야.]나는 준비해 둔 파일들을 그에게 전송했다.
[방금 메일 보냈으니까 들어봐요.] [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곡이에요.] [벌써 만들었어?]그는 곧바로 메일을 확인했는지 수신확인 페이지에서 그가 읽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이번 앨범은 이렇게 여섯 곡만 수록하는 걸로 하죠. 일곱 번째 곡을 쓰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언제나 영민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할 거라니까. 이 앨범의 선장은 당신이야.]그리고 그는 곡을 듣고 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비슷한 스타일로 쭉 이어가겠다는 거네. 내가 듣기에는 아주 만족스러워.] [다 들었어요?] [한 번씩 듣고 지금 두 번째 듣는 중이야.] [가사는 아직 쓰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가이드에 입혀놓은 건 신경 쓰지 마세요.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막 지껄인 거니까.] [알았어.]저메인 존스의 앨범은 이렇게 여섯 곡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으로 치면 EP 앨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싱글과 정규 앨범의 중간 단계, 대여섯 곡 정도를 수록하는 앨범의 형식이다. 요즘엔 디지털 음원으로 나오게 되어서 사라져 버린 형식이지만.
[그럼 가사는 어떤 내용이야?] [가사는 말이에요, Part.IV에서 갈등을 하잖아요. 자신의 두 자아가 서로 다투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거였어요. 이건 이해했을 테고.] [알고 있지.] [그다음에 Part.V는 결정을 내리는 단계예요. 내 마음이 그쪽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없는 거죠.] [오!] [그리고 마지막 Part.VI에서는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러 가는 겁니다.] [괜찮아. 좋은 내용이야.] [하지만 그다음은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건 왜 노래를 안 하는 거야?] [여섯 개의 곡이 이어가는 감성으로 그걸 표현하기는 힘들어요.] [그럼 그 걸들에게 주었던 전자음악으로 표현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중간에 신음 소리도 좀 넣고. 그걸 원한다면 진짜 나이스한 신음 소리도 넣을 수 있어. 그런 사람을 얼마 전 만났거든.] [아니, 그건 됐고…… 하여튼 여기까집니다. 준비 다 되면 일정 맞추자고요.]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