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9
4장 Two Voice(2)
[2020 Lacie World Tour]저메인 존스의 새 앨범 발매 기념으로 월드 투어가 확정되었다.
이번에는 내한 공연도 잡혀 있었다. 무려 8년 만이었다.
앨범 제작을 통해 우리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이번 투어의 내한 공연도 우리가 주최하게 되었고 3천 석 규모의 라이브홀을 잡아 일정 조율을 마무리 지었다.
[3달 뒤야. Part.IV는 한국에서만 부르기로 했어. 영민을 투어에 데리고 다닐 수 없으니까.] [알았어요.]비록 빌보드 차트인에는 실패했지만 저메인 존스라는 이름값은 투어에서 아직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지금은 저무는 태양이라고 해도 전성기 때에는 화려했으니까.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곡만 추려도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리고, 여기에 신곡을 섞으면 세트 리스트는 쉽게 완성된다.
몇만 석이 되는 종합경기장 급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3천 석 정도의 중간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충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기대해 줘. 무대에서 정말로 열심히 할 거야.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겠지.]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투어는 처음 한 달 동안 미국 12개 공연장에서 펼쳐지고, 그다음으로는 독일, 체코, 이탈리아 등의 유럽 투어, 마지막 세 번째 달에는 일본, 싱가폴, 태국, 한국을 도는 아시아 투어로 잡혀 있었다.
[지금처럼 영민과 대화할 수 없을지도 몰라. 나도 이제부턴 바빠지는 거야.] [알았어요.]올해로 데뷔한 지 22년이 되는 세계적인 가수,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적이 있어서 아직까지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전 세계를 돌면서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가수.
하지만 음악산업계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기에 새 앨범의 차트 성적을 기대할 수는 저메인 존스는, 그렇게 새 앨범 투어를 시작했다.
* * *
모든 일이 그렇지만, 바닥에 있는 것을 위로 밀어 올리는 것보다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것을 다시 올리는 것이 몇 배는 힘들다.
중력에 의해 가속도가 붙으며 점점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것을 일단 멈추게 하는 것부터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추락하는 동안 몸집이 불어나 버린 것을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은 그보다 더욱 힘들다.
특히 요즘처럼 SNS와 유튜브가 주요 홍보 수단일 때에는, 저메인처럼 이미지가 식상한 가수는 기회조차 잡기가 어려웠다.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신인이라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주목이라도 받을 수 있겠지만.
“어때?”
“처음 들었을 때도 그렇지만 정말 훌륭해요.”
예음이는 눈썹을 꾸긴 얼굴로 음악을 감상하더니 그런 소감을 들려주었다.
“그냥 훌륭하다고 하지 말고. 네 느낌을 말해보라고.”
“그러니까…… 이거 여섯 곡 진짜 많이 들었어요. 선생님 곡이기도 하지만 제 취향하고도 잘 맞아서.”
그런 말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잘 연결이 되는 느낌이에요. 여섯 개의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뮤지컬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어요. 아! 그리고 네 번째 곡. 거기서 갑자기 선생님 목소리 나오는 거 진짜 괜찮아요. 되게 신비한 존재 같아요.”
“신비해?”
“그런 거 있잖아요. 저메인 이분은 기교가 너무 뛰어나서 계속 들으면 좀 느끼해요. 노래는 엄청나게 잘하지만 세 곡을 연속으로 듣고 있으면 질린다는 느낌도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네 번째 곡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나오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니까 앨범 전체의 밸런스가 훨씬 잘 잡히는 거 같았어요.”
예음이는 아주 천천히, 단어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르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만드신 음악 중에선 제일 귀에 잘 들어와요. 그냥 제 취향에는 그렇다는 말이에요.”
“네 취향은 특이하잖아.”
“아니에요! 곡을 만들 때나 특이한 취향이 발동하는 거지 평소에 음악 들을 때는 안 그렇다고요.”
하지만 발매 2주차, 차트 성적은 지난주보다 더 안 좋아졌다.
Adult Pop Songs에서는 차트아웃해버려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고, R&B/Hip-Hop Digital Song에서는 두 계단 하락한 99위.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건 투어 뿐이었다.
열두 개의 도시를 도는 미국 투어.
여기서 신곡에 감동을 받은 관객들이 이번 앨범을 들어준다면.
그리고 입소문을 내준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 감각은 언제나 같은 대답을 내리고 있었다. 이것만큼 흡입력이 강한 곡은 없을 거라고.
“알았어. 그건 됐고. 이제 네가 만든 것 좀 들어보자.”
“네.”
우리 회사의 두 걸그룹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동안 챙겨주지 못했던 예음이의 곡을 들어보기로 했다.
얘는 지금 작곡팀으로 가서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기초부터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전까지 팀의 막내였던 이정인 씨는 자기 밑으로 사람이 들어왔다고 그렇게나 기뻐한다고 한다.
이후 세 달이 지났는데, 그 성과가 어떨지 살펴보고 싶어서 예음이를 따로 부른 것이었다.
예음이는 부끄러운 듯이 혀를 낼름 내밀며 나에게 USB 메모리를 건네었고, 나는 곧바로 PC에 연결했다.
“가이드는 진짜 대충 부른 거예요.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시면 안 돼요.”
“알았어.”
“그리고 가사도 아직 다듬는 중이라서 최종 완성 버전은 아니에요. 이것도 감안해 주세요.”
“알았다고. 구구절절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그러면서 예음이는 두 팔을 비비 꼬면서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선생님께 들려드리는 건 좀 그래요.” 하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어쩐지 얼굴까지 화끈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일단 들어보고 얘기하자.”
“네.”
그렇게 해서 예음이의 습작품을 듣기 시작했다.
인트로부터 신스 사운드가 전면에 나오더니 뚜렷한 하우스 스타일로 곡이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드럼 트랙이 계속 변화하며 새로운 리듬을 들려주고 있었고, 그 때문에 심심한 사운드에서도 곡의 굴곡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인 건 후렴의 멜로디였다.
단순하면서 쉬웠고, 단 한 번 들었을 뿐이지만 곧바로 외워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거, 혼자 만든 거야?”
“그럼요.”
“누구 도움받은 거 아니고?”
“저 혼자 만들었어요. 남한테 들려주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고요. 몰래 작업하던 곡이라서.”
한 번 더 플레이.
그리고 두 번째 들었을 때에는 새로운 게 귀에 들어왔다.
예음이의 목소리로 들어간 가이드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분명하게 보였다.
“잠깐만. 이거 혹시……”
자기 음역대를 넘어선 멜로디를 부를 때에는 가성이 갈라지며 소리가 예쁘게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런 것에서조차 곡의 의도가 읽혔다.
“너 이거 레드애플 주려고 쓴 거지?”
“역시! 선생님은 바로 이해하시네요.”
곡 안에 네 가지 목소리가 들어가 있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지도를 보는 것처럼 훤히 보였다.
채아가 어딜 불러야 하고, 지윤이가 어딜 부르는 건지.
가이드로 들어간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멜로디 자체가, 그리고 그 멜로디를 받쳐주고 있는 리듬 트랙도 누가 주인인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물론 제 수준에서 지금 당장 걔네들한테 곡을 줄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우리 애들 목소리를 생각하면서 곡을 썼어요.”
내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느낀 것인지 예음이는 긴장 어린 얼굴을 지우고 밝은 눈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가 댄스 음악을 잘 몰랐잖아요. 하지만 몇 달 동안 애들 노래를 바로 옆에서 들었어요. 그래서 걔네들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노래를 잘하는지 저도 모르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냥 딱 떠올라요. 네 명의 색깔이.”
아직 이 곡이 완성됐다고는 할 수 없었다. 부족한 점이 빤히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방향을 잡고서 계속 곡을 쓴다면…….
“그리고 이 곡 만들면서 진짜 즐거웠어요. 사실 레드애플 애들은 저를 좌절시킨 장본인들이잖아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애들 만큼 노래를 잘할 순 없을 것 같았는데…… 대신 그 애들이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어준다면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는 거예요. 그렇죠? 제가 옆에서 노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음악은 같이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 회사에서 나 말고 레드애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작곡가는 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곡 말고 또 없어?”
“작업하고 있는 게 있긴 있지만…… 선생님께 들려드릴 수준은 못 돼요.”
“그것도 레드애플 애들에게 맞춘 곡이야?”
“그렇죠 뭐. 제가 아는 목소리라면 그 애들밖에 없잖아요.”
“가져와 봐.”
그리고 레드애플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디션 때 느꼈던 예음이의 개성 있는 스타일도 곡에 녹아 있었다.
그것도 불분명하게 보일 듯 말 듯했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뚜렷한 색깔을 어느 정도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가져와.”
“아…… 수요일이요?”
“그리고 매주 한 곡씩. 수요일마다 네 곡을 들어볼 거야.”
“일주일에 한 곡……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해요.”
“될 것 같은 게 아니고 무조건 해와. 이건 내 수업이야.”
어쩌면 레드애플의 다음 앨범 작업은 무척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다는 기대가 들기도 했다.
“그럼 선생님…… 드디어 저 인정해 주신 거예요?”
“뭘 인정해?”
“인정해 주신 거잖아요.”
예음이는 깍지 낀 두 손을 가슴팍에 가져다 대며 환하게 웃었다.
“애들하고 어울리는 동안 이상한 걸 배웠나, 뭘 인정받으려는 거야. 꼭 누구처럼.”
“아니에요. 아무튼…… 다음 주에 꼭 곡 만들어서 가져올게요.”
이 정도 수준으로만. 아니, 얘는 분명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준으로 계속 곡을 뽑아낼 수만 있어도.
내 일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새로운 작곡가가 탄생하는 것과 동시에.
이날 들려준 곡은 그런 기대를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 * *
저메인 존스는 열심히 투어를 돌고 있는 듯했다.
이따금 나에게 도착하던 그의 메시지도 뚝 끊겨 버렸다.
그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오는 트윗의 숫자도 그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별별 잡다한 일까지 꼬박꼬박 올리곤 했던 그가, 투어를 돌고 있는 내용만을 간략하게 올릴 뿐이었다.
공연장 사진, 공연을 마친 소감 정도.
이렇게 투어를 계속 돌면서 새 앨범을 홍보하면 그래도 그 효과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트위터에 올라온 공연장 사진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소극장 정도의 규모, 객석이 보이지 않아서 과연 관객이 얼마나 들어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나에게 무대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 그리고 영민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어.
그리고 누구보다 이 현실에 직면한 사람은 저메인 본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음악을 하는 것을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으니.
동양의 작은 나라로 굳이 찾아와서 프로듀서를 발굴하겠다며 강한 열정을 보일 정도로.
그리고 , 그의 최고 히트곡은 그런 열정을 기반으로 지금도 공연장을 뜨겁게 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고 있을 무렵,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을 저메인과 함께 제작했던 브라이언 러셀.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기적 같은 그 흐름은 최고의 프로듀서로 인정받는 브라이언 러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마치 회고록을 쓰듯이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11년 전의 나는 트럭을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음악을 만들어서 우리 동네의 작은 클럽에 연주하곤 했었죠.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 빌어먹을 클럽에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저 시끄럽게 술이나 마시는 그런 곳이었죠.] [하지만 11년 전의 저메인은, 당신들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미국 어디를 가도 모두가 알아보는 대단한 스타였어요.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해줄게요. 그는 그때 를 부르고 있었어요. 빌보드 탑100에서 6주 동안 1위를 했던 그 노래 말입니다.]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뮤지션으로서의 나는 그의 앞에서 꼬마나 다름없었어요. 나는 다음 주에 음악을 계속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술주정뱅이 트럭기사일 뿐이었고, 그는 내 앞에 마세라티를 몰고 온 대스타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전혀 거들먹거리지 않았어요. 맥주에 취해서 그 빌어먹을 클럽에서 함께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내 트럭에 올라 타서 11시간 동안 함께 달린 적도 있어요. 그때 그는 내 옆에 앉아서 쉬지 않고 여자에 대해서 떠들어 댔습니다. 그게 저메인이에요.]두 사람의 만남은 저메인 존스의 최고 명반이라고 평가받는 을 완성시켰고, 브라이언 러셀은 그해 그래미에서 최고의 프로듀서상을 거머쥐었다.
브라이언은 순식간에 대중음악계의 천재로 스타덤에 올랐고, 수많은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제작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혔다.
11년의 활동 기간 동안 미국 음악 저작권 협회(ASCAP)가 선정한 올해의 작곡가상을 3번 수상,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래미에서 프로듀서 상을 한 번 더 수상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프로듀서였다.
[그때 우리는 나의 낡은 창고 안에서 오직 음악 만드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순수하게 음악만 했어요. 나는 그에게 익숙해졌고 그는 나에게 익숙해졌습니다. 아마도 팝 음악 역사에 있어서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이 정도로 서로를 신뢰하며 음악을 했던 케이스는 없을 겁니다. 내가 장담해요.] [하지만 그 이후 뮤직 비즈니스를 둘러싼 이곳이 얼마나 추악한지 알게 됐어요. 이곳이 내가 있었던 그 빌어먹을 클럽보다 못한 곳이라는 걸 깨닫는 것에는 시간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장사를 해야 했고, 음악을 가지고 장사하는 건 사실 사기꾼들이나 할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힘들게 보컬 트랙을 채워 넣었는데 그만 길가의 자동차 소리가 들어가 버려서 배꼽을 붙잡고 웃어 댔던 그 창고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우리는 그때 순수하게 음악을 했어요. 그래서 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나는 11년 만에 그 친구에게서 같은 종류의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그랬듯이 저메인 또한 이 삭막한 뮤직 비즈니스 세상에서 지친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던 그때 창고 뒤를 어슬렁거리던 동네 강아지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친구는 또다시 엄청난 걸 가지고 나왔어요.] [미안합니다. 오늘 밤 그의 새 앨범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서 주절거려 봅니다. Y.M.Park, 나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이 사람과 저메인 사이에서 위대한 교감이 있었고, 이것은 대중음악 역사에서 손에 꼽힐 발자취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시도가 곳곳에 숨어 있고, 그 안에서 저메인은 놀랍도록 섹시한 보컬을 들려줍니다. 당신들은 Y.M.Park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장담합니다. 앞으로 대중음악계는 이 사람이 장악하게 될 겁니다. 이제 천재라는 호칭은 오직 그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할 겁니다.] [특히 이 앨범의 네 번째 트랙을 주목해 보세요. 순수한 열정으로 뭉쳐 있는 두 사람의 하모니가 기막힙니다. 이 시대의 모차르트가 최고의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떠들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이 앨범을 듣고서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아마도 저메인의 이번 앨범이 과거를 향한 그의 향수를 건드린 것 같았다. 그는 무엇엔가 취한 사람처럼 두서없는 말을 계속 주절거렸다.
그리고 이렇게 장문의 트윗을 연달아 쓰면서, 브라이언 러셀은 중간중간 의 뮤직비디오를 링크해 주었다.
10만이 넘는 팔로워를 지닌 명 프로듀서 덕분에 뮤비의 유튜브 조회 수는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들어보세요. 천재적인 영감을 지닌 작곡가와 장인의 경지에 오른 보컬의 믿을 수 없는 콜라보입니다.]브라이언 러셀은 한 번 더 이렇게 언급하며 우리의 음악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 * *
[맙소사!]브라이언 러셀이 쏘아 올린 흐름을 이어받은 사람은 ‘아멜리아 로즈’ (Amelia Rose)라는 가수였다.
[당신의 일상에서 음악을 통한 신선한 자극을 받고 싶다면, 나는 이 곡을 들어보길 권합니다.]그녀는 정중한 어투로 저메인 존스의 을 소개해 주었다.
아멜리아 로즈는 현재 앨범 판매량과 투어에 있어서는 여성 가수들 중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와 있는 월드스타였다.
4개의 정규 앨범 모두를 300만 장 이상 판매한 엄청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고, 그래미와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거물이었다.
사실 그녀와 브라이언 러셀과는 별로 접점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멜리아 로즈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모두 스스로 만들어내는 싱어송라이터였고, 브라이언과는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음악계에서 오래 활동을 했으니 교류가 아예 없지는 않았나 본데, 그 때문에 서로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브라이언 러셀의 트윗을 그대로 리트윗해서 을 알려주었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올려주었다.
그야말로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멜리아 로즈와 저메인 존스는 활동 시기가 다르고 활동하는 무대가 달랐고, 소속 음반사도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7시간째 한 앨범을 반복해서 듣는 중이에요. Just Like That도 좋지만 그다음 트랙 Two Voice도 함께 들어보세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내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떨림이 멈추지 않습니다.]그녀는 우리의 음악에 매료되었는지 그러한 감상을 보여주었다.
5천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와, 8천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반복해서 우리의 앨범을 높게 평가하자, 그 효과는 브라이언 때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음악이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런 음악은 올드한 스타일인데 막상 들으면 그런 게 안 느껴져. 신기할 정도로 곡을 세련되게 잘 만들었어. Y.M.Park? 누구지? 나도 이 사람한테 곡을 써 달라고 해야겠네.] [다들 호들갑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JJ! 이 사람이 이런 음악을 하다니. 다들 한 번씩 들어봐. 듣자마자 내 입에서 Oh! Shit!이라는 말이 나와 버렸어.]그리고 우리의 음악은 여러 유명 뮤지션들의 입에 오르며 점점 더 세상에 퍼지고 있었다.
* * *
투어를 돈다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저메인 존스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니까 왜요?] [비디오를 만들어야지. 영민과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 [그거 때문이에요?] [비디오에 영민이 꼭 나와야 한대. 지금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봐. 도대체 Y.M.Park이 누구냐고.]SNS를 통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저메인의 이번 앨범에서, 놀랍게도 보다 가 더 주목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 정서에서는 발라드보다는 리드미컬한 알앤비 넘버가 더 잘 먹히는 듯싶었다.
[뮤직비디오에 꼭 내 얼굴이 나와야 한다는 거네요.] [나는 잘 모르겠어. 회사에서 그래. 사람들이 영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 이용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나를 이용하겠다. 즉, 나를 띄워서 장사를 해보겠다?
[저야 뭐…… 근데 투어 중에 여기 올 수 있어요?] [이번 주 투어는 연기했어. 그거보다 이게 더 중요하다고 해서.]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보자는 건 여기나 거기나 똑같았다.
[알았어요. 일정 정해지면 말해줘요. 시간 비워놓을게요.]프로듀서가 스타덤에 오른다? 그것도 자기가 노래한 곡을 통해서.
그게 나에게 부담되는가 하는 점을 떠나서, 일단 유의미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비츠걸스가 일본 런칭을 앞두고 있고, 레드애플이 이제 막 데뷔한 시점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프로듀서가 스타덤에 오르는 것이 우리 같은 회사에서는 바람직한 성공 모델이 될 거예요.’ 라고 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 홍보팀장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의논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홍보팀장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살며시 목례만 할 뿐 정신이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이럴 때는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자기가 직접 무언가 홍보할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바빠요? 이따 올까요?”
“아뇨. 금방 끝나요. 아니, 그것보다 본부장님이 옆에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혹시…… 제 기사 쓰는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러면서 나는 그녀의 테이블 안쪽으로 들어가서 무슨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바라봤다.
“사람들이 이걸 많이 찾아본대요.”
“이게 뭐예요?”
“위키피디아의 박영민 문서.”
그녀는 소리를 크게 내며 웃었다.
“어제 처음 생성된 문서예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이 부실해서 제가 채워 넣고 있어요. 이 사람이 얼마나 한국에서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인지, 이걸 세계의 음악팬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잖아요.”
Young Min Park
Record Producer, Songwriter, Singer
문서는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기사는 아까 나갔어요. 아직 안 보셨나 봐요.”
“보긴 봤어요.”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미친 듯이 전화가 걸려오고 있어요. 지금 저기 보세요.”
그녀가 턱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우리 직원들이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욕심 같아선, 차트 성적하고 수상 실적도 빽빽하게 채우고 싶은데 말이죠. 수상 실적이야 기다려봐야겠지만, 차트 성적은 잘하면 다음 주에 알 수 있겠죠?”
빌보드는 주간지이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차트를 공개했다. SNS를 통해 이렇게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차트에서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는 아직 기다려봐야 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아직 얼떨떨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우상처럼 느껴졌던 괴물 뮤지션들이 제 얘기를 하고 있고…… 저메인하고 일을 하게 되면서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기대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일어나니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다음 주가 되면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글쎄요.”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그다음 주, 결과는 숫자로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7월 4주차 빌보드 차트
HOT100 싱글 차트
7위 Jermaine Jones ‘Two Voice’
16위 Jermaine Jones ‘Just Like That’
빌보드200 앨범 차트
48위 Jermaine Jones ‘Lacie’
지난주까지는 온라인에서 잡지를 유료 구매한 뒤에 세부 차트를 살펴봐야 저메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JJ의 곡은 메인 페이지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본부장님! 본부장님! 이것 좀 보세요.”
“벌써 확인했습니다.”
홍보팀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내 모습이 보이자마자 직원들은 난리였다.
“축하합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셨어요.”
“본부장님이라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홍보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칭찬 세례를 받아야 했다.
홍보팀장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타이핑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축하해요.”
“그것보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기사 낼 때 제 위주로 내지 마시고 저메인 존스를 중심으로 해주세요. 저는 저메인을 서포트해 주었다는 걸 강조하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이거 어쩌죠.”
“벌써 내보냈어요?”
“아뇨. 저희 쪽에선 가만히 있었는데 이번 일은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얘기를 들어보니 내 기사는 벌써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었다. 차트가 발표되자마자 발 빠른 기자들이 이 내용을 보도한 것이었다.
[몬스터 뮤직의 박영민 프로듀서, 이번에는 美 빌보드 습격.] [박영민 프로듀서, 빌보드 핫100 7위 한국 뮤지션 다섯 번째 차트 진입.] [뮤지션들의 뮤지션, SNS 입소문 타고 핫100 7위까지.] [몬스터 뮤직의 박영민, 가수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점령.]“어뷰징 기사까지 합치면 오늘 아침에 올라온 것만 200개가 넘어요. 확인 안 해보셨나 보네요?”
축하 전화를 받느라 인터넷엔 들어갈 시간도 없었다.
“알았어요.”
“검색어 순위도 1위세요. 1위가 박영민, 2위가 빌보드, 3위가 몬스터 박영민.”
찾아보니 정말로 그랬다.
“6위에 박영민 시대, 이건 뭐예요?”
“갑자기 유행어가 됐어요. ‘지금 우리는 박영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거요.”
“이것 참……”
검색을 해보니 여기저기서 그런 말들이 밈처럼 쓰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 * *
데뷔 싱글 발매 후 8주째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레드애플의 은 결국 2위로 하락하고 말았다.
우리 애들을 2위로 밀어버린 장본인은 ‘박영민&존스’의 .
이게 국내 차트에서까지 1위로 올라가며 우리 애들의 기록을 막아버렸다.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SNS라는 것이 미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 빌보드 핫100에서는 7위로 진입.
영국의 오피설 싱글 차트에서는 19위.
애플의 글로벌 뮤직 차트에서는 6위.
아이튠즈 송차트에는 10위.
트위터로는 일일이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멘션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계정은 저메인 존스와 소통을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라서 저메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계정이었다.
우리 애들이나 몬스터 직원들에게 슬쩍 말을 해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트위터가 한물가버려서 그런 거 안 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오직 저메인 한 명만을 팔로잉하고 있었고, 내 팔로워라고 해봤자 저메인을 포함해서 광고 계정 서너 개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날 접속을 하자마자 수백 개의 멘션과 수천 명의 팔로워들과 직면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프로듀서, 위대한 작곡가, 위대한 보컬인 Y.M.Park @ympark123456 이 사람 덕분입니다.]저메인 존스의 이 트윗은 브라이언 러셀과 아멜리아 로즈를 비롯해서 몇몇 네임드 뮤지션들에게 리트윗되었고, 그리고 이를 통해 수천 명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일일이 답장을 주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Thank you.]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아무 트윗이 없는 내 계정에 이 말 한마디만을 띄워놓았다.
그리고 알파벳 여덟 글자의 이 짧은 말도 순식간에 수십 번의 리트윗이 이루어지며 SNS의 세상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다. 새삼스럽게 그 말이 떠올랐다. 자고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기는 했지만.
* * *
그다음 주 차트에서도 는 7위를 유지했다.
국내 뮤지션들의 빌보드 핫100 진입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중 절반 정도는 반짝 한 주만 높은 순위를 기록한 뒤 하락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에 비해 싱글 차트에서는 순위를 지키고 앨범 차트에서는 소폭 상승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저메인 존스는 그다음 주에 한국을 찾아왔다. 뮤직비디오 촬영팀도 함께 우리 회사를 찾아왔다.
뮤비의 촬영 때문이었다.
뮤비에서 저메인의 파트너로 나오는 여성이 이번에도 그대로 출연하며, 그녀와 저메인이 사랑을 두고 고민하는 장면을 메인으로 다루었다. 여기까진 이미 미국에서 촬영이 끝났다고 한다.
그 사이사이, 나와 저메인이 스튜디오의 컨덴서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촬영 장소는 우리 회사의 스튜디오였고, 내용은 단순했기에 작업은 하루 만에 끝났다.
한국을 떠나가는 날 저메인은 그 커다란 덩치로 나를 꼭 끌어안으며.
“모든 게 당신 덕분이야. 영민! 당신을 찾아낸 게 나한테는 행운이었어.”
이런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JJ, 당신이 멋진 목소리로 노래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아. 위대한 감독이 우리의 앨범을 제작했기 때문이야. 세상 모두가 이걸 알고 있어.”
그는 억센 완력으로 나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투어가 아시아를 향했을 때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아시아 투어에서는 그가 를 부를 때 내가 함께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그 외의 지역에서는 다른 가수를 게스트로 섭외해서 그 곡을 소화하기로 한 것 같았다.
“연습을 해봤지만 아무도 영민처럼 부를 수 없었어. 그만큼 못하겠으면 흉내라도 내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없더라고.”
저메인은 그런 말을 한 뒤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금까지 그가 한국을 다녀간 것은 계약 때 한 번, 레코딩 때 두 번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다녀간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손을 흔들고, 우리 직원이 공항까지 데려다주면 그는 자신의 길로 돌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많은 기자진들에게 둘러싸여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나는 회사 앞에서 그와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에 인터뷰 장면은 나중에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 속에서 그는 까만 얼굴 속에서 하얀 눈동자를 커다랗게 뜨며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영민 덕분에. 정말로 영민 덕분에.”
그는 그런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 * *
원래 2천 석 규모의 라이브홀로 예정되었던 저메인 존스의 내한 공연은, 공연이 있기 두 달 전 급하게 장소를 변경했다.
서울의 한 경기장에서 4천 석 규모로 공연장을 건설한 것이었다.
과연 이 정도로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
그리고 JJ의 콘서트 당일 날.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이거 지금 방송하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바버체어에 앉아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중에 유미가 찾아왔다.
유미는 이날 오프닝 공연을 맡기로 했다.
얼마 전 발표한 발라드곡 가 주요 차트 1위를 거머쥐며 그녀의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유미는 이쪽 분야에 있어서 대적할 사람이 없는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회사로 들어오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드라마 OST, 영화 OST 등등.
아마 한동안은 유미에게 줄 곡을 만들어야 할 듯싶었다. 덕분에 연습생들 보컬 트레이닝은 내 몫까지 얘가 다 가져가 버렸다.
“잘 안 보이신다고요? 그럼 이렇게……”
유미는 손에 들고 있는 거치대를 능숙하게 만지며 핸드폰 카메라의 앵글이 나를 향하게 했다.
이번 덕분에 구독자가 더 늘었다고 하던가.
유미는 이날도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었다.
“자, 이분이 바로 박영민 프로듀서입니다. 다들 잘 아시죠? 저는 오늘 공연의 오프닝을 맡기로 했고 박 피디님은 그 곡 있잖아요 이걸 부르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십니다. 이제 소감 좀 말씀해 주세요.”
“무슨 소감?”
“오늘 무대에 오르면서 공식적으로 가수 컴백을 하시는 건데, 그 소감은요?”
“그렇다고 무슨 소감이야.”
“아 참,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면, 여기 박영민 피디님은 원래 가수셨어요. 포보이스…… 아시나요? 우리 회사의 김인혁 사장님도 그 팀을 하셨죠. 아는 사람만 아는 엄청난 팀이에요. 최고의 프로듀서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팀이었잖아요.”
브러시가 내 눈가를 간지럽히고 있어서 눈을 꾹 감고 있을 때에도 유미는 계속 떠들고 있었다. 저렇게 떠들 수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나가는 것이겠지만.
“소감 좀 말씀해 달라니까요.”
“뭐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
“실감이 안 나요?”
“그런 것도 있고. 리허설이 잘 되어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저한테 예전에 하셨던 얘기 기억나요? 나는 이제 가수로 끝났으니까 무대에 오를 수 없을 거다. 나 대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가수를 키워내고 싶다. 그런 얘기 하셨잖아요.”
“아, 그때……”
“여러분 여기 박 피디님이 맨날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에요. 내가 가수를 못하니까 너네가 대신해라.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 글쎄, 자기가 키워낸 레드애플이 연속 1위하고 있는 거 막아버리고 자기 노래를 1위에 올려놨잖아요. 그때 레드애플 애들이 저한테 와서 막 속상하다고 하소연하고……”
“그랬어? 걔네들이 하소연을 해?”
나한테는 축하한다면서, 부담스럽게 어깨 주물러주고 난리였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내가 그다음 곡으로 또 1위 하게 해줬는데 이 녀석들……”
“어쨌든 소감은, 그냥 덤덤하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누군데? 이런 건가요? 내가 사실 예전부터 제대로 노래를 불렀으면 이 정도 무대는 그냥 뭐 아무것도 아니다?”
“한 곡 부르고 내려오는 거잖아. 그리고 이 무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메인 존스지. 포커스를 나한테 맞추지 말라고.”
“그럼 이게 시작인가요? 보컬과 프로듀서를 겸하는 거요.”
“아직은 모르겠어. 계획은 없어.”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노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죠? 아, 그런데 여기 댓글창 보이세요? 비츠걸스 언제 한국 오냐는데요. 빨리 데리고 오라고 난리예요.”
“그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한국에서도 곧 앨범이 나옵니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도 한국어 버전으로 수록될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비츠걸스의 일본 앨범 타이틀곡 는 일본 차트를 휩쓸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려주었다.
“그래도 여러분들 너무 비츠걸스에게만 관심 가지지 마시고 여기 박 피디님도 주목해 주세요. 오늘은 박 피디님이 노래하시는 날이잖아요.”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저메인 존스라니까.”
그리고 다시 내 눈가를 건드리는 브러시 때문에 나는 눈을 꾹 감고 있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미는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다.
* * *
는 1부의 마지막 곡이었다.
백스테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저메인의 멘트가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 나의 동반자, 위대한 프로듀서, 위대한 보컬, 이런 수식어를 말하는 동안 관객들은 열렬하게 호응을 해주었다.
“박. 영. 민!”
그리고 내가 무대 위로 나가자 이곳에 모여 있는 4천 명의 함성 소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었다.
눈이 따갑게 나를 비추는 조명을 받으며, 나는 스탠드 위에 꼽혀 있는 마이크를 향해 걸어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니 그것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 눈이 조명에 익숙해질 무렵 객석의 관객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함성은 계속되었다.
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이마 위로 촉촉한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저메인의 노래가 먼저 시작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커다란 앰프를 타고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무대.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가. 이 느낌.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겨졌다. 그리고 캄캄해진 곳에서 나의 지난날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노래를 하고 싶어서 무대를 찾아간 일, 인혁이와 함께 노래를 불렀던 일, 실패 속에서 좌절했던 일, 그리고 몬스터 뮤직에 들어와 지금까지 음악을 했던 것.
마치 내가 살아온 일을 소리에 담아보겠다는 듯이.
내 노래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커다란 목소리로 따라 불러주었다.
앰프를 통해 울리는 소리들이 귓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가깝게 들려왔다. 내 목소리도.
살며시 눈을 뜨니 4천 명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고, 우리는 음악을 통해 하나의 호흡을 가져가고 있었다.
오랜만의 무대였지만 어제까지 함께했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었다.
돌아와야 할 곳에 돌아온 것처럼. 누군가 나를 반겨주는 것처럼. 그런 열기 속에서 나는 무대를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돌아오니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두툼한 공간감을 뽐내며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부우 녀석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바쁠 텐데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네가 노래하는 무대인데 그걸 놓치면 안 되지.”
녀석은 끝끝내 혼자 일어나지 못하고 내 손을 붙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하마터면 나도 소파 쪽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그 옆에서는 연화가 스트라이프 원피스를 다소곳이 입은 채로 서 있었다.
“선생님. 잘 봤어요.”
“언제 왔어?”
“저도 인증샷 드려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연화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연보라색의 스토크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꽃다발이었다.
고작 노래 한 곡 부르고 받기에는 어색했지만, 은은한 향기 덕분에 비로소 긴장감을 씻어낼 수 있었다. 무대에서부터 나는 지독한 긴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 둘 다 고맙다.”
콘서트가 끝난 후에는 저메인 존스와, 그리고 스탭들과 함께 뒤풀이를 가졌다. 그동안 JJ는 술 마시자고 수없이 졸라댔지만 이제야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다는 감격 때문인지 나는 금방 취해 버렸다. 자리가 소란스러워졌을 때에는 머리가 핑핑 돌아서 주변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기억나는 건 새카만 얼굴에 홍조를 가득 띄운 저메인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술병을 마구 흔들었던 장면뿐이었다.
기다란 술병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장난스럽게 흔들어 대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웃어 댔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술이 들어간 저메인 존스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 * *
그의 콘서트에서 내가 노래를 부른 무대는, 몬스터 뮤직에서 영상으로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의 퀄리티는 폰카로 찍은 수준이었지만 음질은 제법 괜찮았다.
모니터링 시스템이 잡아낸 것에 별도로 믹싱을 거친 것이라서 공연 실황치고는 제법 선명한 음질이 담겨 있었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금방 조회 수가 올라갔다. 그리고 댓글 또한 차곡차곡 쌓였다.
-우와 이분 목소리 살살 녹는다
-아니, 이건 프로듀서가 노래를 좀 한다는 수준이 아닌데.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다가 소름 돋아버림.
-5분 16초짜리 영상인데 왜 난 30분 넘게 들은 걸까. 좋은 곳 또 보고 또 보고 박영민 나오는 부분 계속 반복해서 들으니까 시간 순삭이네. 나만 그런 건가?
전반적으로 호평이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 왜 가수를 안 하고 있었던 거지? 제작하는 게 돈을 더 벌어서 그런건가.
└가수했었어요 포보이스로 검색하면 나와요.
└그럼 왜 가수를 하다가 그만뒀을까요? 이 정도면 가창력으로 남자 가수 중에서 역대급으로 놀아야 할 수준인데.
└어린 여자애들하고 티키타카하면서 제작하는 게 더 재밌겠죠 뭐.
-이런 분이 가수로 성공하지 못했던 건 우리나라 가요계 시스템의 문제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댓글을 넘겨봤다. 누군가에게 있어선 지나가듯 가볍게 내뱉은 한 마디겠지만 나에게는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손길 같았다.
그리고 가슴을 쿵 때릴 정도로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댓글에는 내 시선이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다.
-13년 전에 박영민 씨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코엑스 앞에서 하는 무슨 길거리 공연이었는데 포보이스라는 팀으로 나오셨죠. 길 가다가 박영민 씨의 노래를 듣고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공연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수많은 공연을 봤지만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날 곧바로 저는 박영민 씨의 팬이 됐습니다. 이 정도로 훌륭한 가창력이라면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인 가수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날 같은 무대에 올랐던 최인환 씨도 정말 잘했지만 박영민 씨에게는 못 미쳤습니다. 그만큼 박영민 씨의 노래는 특별했습니다. 목소리가 듣는 사람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박영민 씨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찾아다녔지만 포보이스는 해체하고 사라졌더군요. 아쉬웠지만 그 정도의 노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반등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박영민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봤지만 드라마 주제곡 하나를 부른 게 전부였습니다. 왜 이런 사람이 묻혀 있는 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포보이스라는 그 팀의 서브보컬이었던 사람이 사장으로 있는 몬스터 뮤직에서 박영민이라는 프로듀서가 맹활약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사람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왜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 의아할 뿐이었죠. 그러다가 이 영상을 보고서 제가 그토록 기다리던 박영민이 돌아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노래 잘 들었습니다. 십 년 넘게 기다렸기 때문인지 노래를 듣는 내내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목소리를 계속 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이라면 모두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일까, 언제 나를 봤던 걸까, 감사하다는 대답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에 휩싸여 계속 그분의 글을 지켜보다가, 나는 이걸 놓치기 싫어서 스크린샷으로 담아보았다.
아마도 다시 마음이 허전해지면 그때마다 이분의 글을 꺼내어볼 것 같았다.
* * *
“본부장님은 왜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회의시간보다 일찍 회의실 안에 들어와 있었더니, 함께 기다리고 있었던 직원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말이죠?”
“예. 처음에 음악하기로 결심하신 건 어떤 이유에선지 궁금해서요.”
“갑자기 그건 왜요?”
“그냥요.”
처음이라면…… 열아홉 살 때의 얘기를 해줘야 하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수험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아무래도 난 이 길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거.
그러다가 먼저 붙은 곳에 들어가서 인혁이를 만나게 되었던 이야기. 이걸 말해줘야 할까.
아니다.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중학생이었을 때 겁 없이 고등학교 축제에 나가서 노래 불렀던 일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서보는 무대에서의 떨림, 그리고 환호성, 거기에 도취되어서 나는 앞으로 영원히 노래를 부르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시절의 추억.
“오래전 일이라서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요.”
아니면 피아노를 배웠을 때? ‘영민이는 음악 해야겠네.’ 하고 피아노 선생님이 내 소질을 인정해 주었던 그때, 처음으로 들어보는 칭찬이 어린 내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해주었다.
나는 음악을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이걸 하기 위해서 태어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계기가 되어준 특별한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이었나 보네요. 하긴 본부장님 같은 분은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확 나타내셨을 테니.”
“그런데 그게 그렇게 궁금하셨어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하나둘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인혁이도, 볼 때마다 언제나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는 대머리 이사님도, 입술을 삐쭉 내밀며 한결같이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1팀장도, 그리고 항상 진지한 얼굴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정영수 팀장도.
“다 모인 거 같으니까 시작하죠.”
인혁이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준비한 문서를 테이블 위에 펼치며 회의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 * *
가장 먼저, 일본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츠걸스의 국내 컴백을 조금 늦추자는 얘기가 나왔다.
“레드애플 활동하고 겹치지 않으려면 2월 말로 컴백 시점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당연한 소리라는 듯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불만스러웠다.
“겹치면 왜 안 되는데요? 두 팀이 붙는 것도 보고 싶지 않으세요?”
“영민아!”
“왜? 이참에 누가 최고인지 확실하게 정하는 거야.”
“너는 또…….”
레드애플은 이번 3집 앨범을 통해 정상급 걸그룹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레드, 비츠, 에피아, 데이바이데이, 크게 보면 4파전이었지만 실적을 자세히 분석하면 비츠와 레드가 다른 둘에 비해 확연히 앞섰다.
한 지붕 두 가족. 지금까지는 겉으로 볼 때 사이 좋게 지내온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난 것이다.
“너 한 번 나 한 번, 이런 식으로 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어. 두 팀은 컨셉과 스타일이 달라서 팬덤이 확 갈리는 만큼 어느 쪽이 우위인지 이번에 분명하게 확인하는 거야. 특히 이번 레드 3집은 심예음이가 다 만들었으니까 걔하고 나 둘 중에서 누가 최고의 걸그룹 프로듀서인가 붙어볼 필요가 있어.”
“예음이는 네가 밀어준 거잖아.”
“그래서 더욱 그렇지. 스승과 제자의 대결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도 한 바가지 뽑아낼 수 있잖아.”
후우, 하는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본부장님이 이런 거 좋아하시는 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무리입니다.”
“그래요. 언제나 무리라고 하셨죠. 하지만 매번 성공했잖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무리입니다. 비츠걸스는 이번에 복귀할 수 없어요. 왜냐면 본부장님하고 연화의 스캔들 때문입니다.”
“아, 그건…….”
일본의 어느 호텔 라운지에서 나와 연화가 함께 있는 장면을 파파라치가 찍어서 공개한 사건이었다.
그 파파라치는 사진을 공개하기 전에 우리 회사로 거액을 요구해 왔지만 우리 쪽에서는 대응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건 해명 다 끝난 일입니다. 문제 될 것도 없어요. 연화도 이제 나이가 몇 살인데, 술 한 잔 못 하나요.”
“우리 팬덤에서만 그렇죠. 지금 컴백하면 물어 뜯기기 딱 좋아요. 특히 사진 몇 장은 구도가…… 아무튼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건은 반대 의견이 너무 많아서 무산되었다. 비츠 애들은 컴백 시점을 약간 미루는 걸로.
“그다음으로 지난주에 결정짓지 못한 ‘엄지공주’ 타이틀 OST의 가창자를 정하는 건인데요, 본부장님 그동안 생각해 보셨나요?”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엄지공주 II’의 메인 타이틀곡을 누가 부르는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였다.
‘엄지 공주’는 당시 전 세계의 박스 오피스를 깨부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흥행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전작의 성공 때문에 후속작 ‘엄지 공주 II’ 또한 엄청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특히 ‘엄지 공주’는 박스 오피스를 부신 것 외에 OST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엄지 공주 II’의 음악 또한 누가 맡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엄지공주 II’의 음악 감독 클레이튼 파머는 JJ 앨범에 감명을 받아 타이틀곡을 나에게 의뢰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 우리 회사의 가수가 부르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클레이튼 파머는,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지만 조사를 해보니 우리 회사에는 뛰어난 싱어들이 여럿 있었고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지난주에 얘기가 나온 최인환 씨는, 물론 가창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스타성이 부족한 관계로 제외했으면 합니다. 이 영화에서 타이틀을 부른 사람은 무조건 떠요. 한순간에 세계적인 가수가 되는 겁니다. 아무래도 최인환 씨는 그걸 감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연화 밀어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요. 연화 비주얼은 세계적으로도 먹혀요. 이건 기회입니다.”
“아니죠. OST는 황유미죠.”
“그냥, 본부장님이 듀엣 곡 만들어서 두 명 내보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요.”
이번 건에 대해선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만약 타이틀곡의 가창자로 픽스된다면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니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뮤비에서 노출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만약 클레이튼 파머가 승인해 주지 않아서 아시아 버전, 작게는 한국 버전에서 부르는 것으로 축소된다고 해도 그 또한 흥행은 보장된 것이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지공주’는 한때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었을 정도여서.
“곡은 정했습니다. 어느 정도 뼈대를 완성했어요.”
“벌써요?”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엄지공주의 지난 OST보다 훨씬 더 괜찮은 곡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통할 만큼 강력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동안 이 곡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지닌 곡입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해요.”
“가수도 정하셨습니까?”
“그럼요. 사실 오늘 모이라고 한 것은 이를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창자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주목했다.
“제가 부를 겁니다.”
“네?”
“이 곡은 제가 불러야 해요. 이 감성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아…….”
이번에는 깊은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의 있으십니까? 이의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옆에 앉아 있던 인혁이는 갑자기 회의록을 둥글게 말더니, 그걸로 내 머리를 툭 때리면서 일어났다.
“결정됐으니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리고 인혁이를 따라서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럼 이렇게 합니다. 진짜로 해요.”
“하고 싶으면 하셔야죠. 우리는 박영민의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어째 그저께부터 노래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하시더니.”
이날도 이렇게, 몬스터 뮤직의 회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칠 수 있었다.
에필로그
그녀가 내 꿈에서 사라진 후 시간이 꽤 흘렀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아주 오래전부터?
인혁이가 보컬 트레이너가 필요하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그 날,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학원이 문을 닫았던 그 날 나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인혁이의 전화를 받았다면 내가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 뻔한 일이었다.
사람이 점점 바닥으로 추락하면 쓸데없는 자존심만 가슴 속에 키우게 된다. 그리고 그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아니, 나는 그런 회사에 갈 마음이 없어.’ 나에게 준비된 대답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맞추어 나타난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깊은 울림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 인혁이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마세요. 전화를 받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세요.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 * *
그녀는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들려주었다.
반짝 히트했던 보컬 그룹의 멤버,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OST를 불렀던 경력.
그 뒤로 동네 음악 학원에서 생활비를 벌며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꽉 붙잡고 있었던 나에게 그녀가 해준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당신에게는 천재적인 음악 재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재능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당신에게 조금만 운이 따라주었다면 그 재능은 깨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 실패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이었다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재능이 넘치는 뮤지션이고, 단지 운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라고.
그런 말과 함께 그녀는 나에게 하나의 재능을 일으켜 주었다.
소리가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그녀로 인한 것이 아니라도 곧 깨어날 능력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났을 때 그녀는 또 하나의 재능을 깨워주었다.
음악의 대중성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 재능은 내가 타고난 것이며, 나에게 운이 따라주었다면 진작에 발현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다면 당신은 정상급 프로듀서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내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문화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즉, 영원히 감을 잃지 않고 정상을 지킬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내가 타고난 능력이 아니지만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없으면 지난 프로그램에서 김우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럼에도 이 사람과의 대결에서는 이겼지만.
“변수가 발생했잖아요. 물론 변수까지 감안하고 있어야 했지만 너무 큰 변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진 거예요.”
김우지는 푸념을 하듯이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시상식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고, 김우진은 테이블에 비치된 레몬티로 목을 축인 후 계속 말을 이었다.
“정예 멤버 네 명을 추린 후 하드한 트레이닝을 거쳐서 영민 피디님의 팀과 맞붙는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틀어졌어요. 변수가 너무 발생해서요.”
그가 말하는 변수란 예상치 못했던 멤버가 튀어나와서 시청자들의 감성을 건드렸다는 것이었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동정표를 얻을 수 있어서 네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해버린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거기서 흔들렸다고 한다.
7인조나 8인조였다면 적당히 묻혀 있을 수 있는 수준, 하지만 4인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던 실력이었다.
“그 변수가 결국은 행운으로 이어진 거 아닙니까?”
“그거야…….”
-댄스 퍼포먼스상의 수상자는…… ‘데이바이데이’입니다!
우리의 바로 앞에 앉아 있었던 데바데 멤버들은 감격 어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에는 서아리도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행운 맞아요. 결국 아리는 김 실장님 팀의 메인 댄서 포지션을 굳혔잖아요. 만약 그 변수가 발생하지 않아서 묻혀 버렸다면, 그 길로 음악을 포기했을 수 있고 우리는 위대한 댄서 서아리를 볼 수 없게 되었겠죠.”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한 것인지 아리를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제는 여돌 중에서 손꼽히는 댄서가 되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변수였죠.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제가 졌던 겁니다. 영민 피디님한테요.”
그는 다시 한번 레몬티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이제서야 하는 얘기지만 저는 영민 피디님한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라요. 아니, 확실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플라지아가 황유미라는 신인 발라드 가수에게 패배했을 때, 그래서 영민 피디님이 만드신 황유미의 곡을 듣고 커다란 좌절감을 느꼈을 때,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좌절감이라뇨.”
“그때는 정말 그랬어요. 차 안에서 그 곡을 혼자 듣는데…… 커다란 벽을 앞에 마주한 심정이었죠. 4인조는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영민 피디님은 보란듯이 4인조 걸그룹을 성공시켰어요. 그것도 이전 프로듀서가 실패한 것을 이어받아서 말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데이바이데이의 멤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저도 4인조 팀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것, 그리고 그 팀을 영민 피디님의 팀과 대결시키겠다고 한 것도 그런 심정 때문이었죠. 최고가 되기 위해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그래서 대결을 제안했다는 것부터 제가 졌다는 의미였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에요.”
하지만 그녀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음악 하나로 덤비기에 아이즈 컴퍼니라는 곳은 너무나 큰 곳이었고, 우리의 싸움은 무모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요. 다 지나간 일이죠.”
그렇게 우리 둘이 떠들고 있는 틈으로 엠씨가 불쑥 찾아왔다.
-여기 두 프로듀서님들이 사이 좋게 앉아 계시네요. 두 분의 관계는 예전에 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보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는데요, 오늘도 변함없이 두 분이 나란히 앉아서 친분을 과시하고 계십니다. 근데 궁금한 게 좀 있어서 그런데요, 두 분께 감히 여쭤보겠습니다. 오늘…….
장난스럽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엠씨 때문에 김우진과의 대화는 거기서 끊길 수밖에 없었다.
* * *
-대상은…… 레드! 애플!
또다시 우리 애들이 호명되었다.
인기상, 본상, 최고 음원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상까지.
올해는 레드애플의 해라고 할 수 있었다.
열두 번의 월간 순위 중에서 4번이나 1위를 거머쥐었다. 사실상 대적할 만한 라이벌도 없이 레드애플은 올 한 해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비츠걸스가 잠잠했던 건 아니다. 승연이의 드라마 출연을 시작으로 연화와 다은이의 솔로 활동이 이어지며 개별 활동을 한 탓에 팀으로의 활동이 미진했던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시상식을 휩쓸었던 것은 레드애플이 아니라 비츠걸스였다.
-가장 먼저 저희 박영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이 자리에 절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길바닥에 버려진 강아지 같았던 저희를…….
마이크를 붙잡고 있는 채아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정말로 강아지 같았었어요. 길바닥에 버려진…… 저는 가수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쪽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단념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서 트레이닝시켜 주시고, 좋은 곡을 써주시고…….
하지만 더 이상 지난 아픔을 들추어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레드애플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내가 없어도 충분히 자기 위치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혁이가 어느 순간 감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히트곡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었듯이. 그 이전에 손동하 사장도 왕성했던 창작열이 갑자기 내리막을 걸었듯이.
나 또한 늦은 나이에 타올라 짧은 시간에 커다란 불길을 만들어냈으니 언젠가는 차갑게 식어갈 날이 올 것이고 생각보다 빨리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작곡을 할 수 있는 건 누구에게 받은 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적어도 곡을 만들어내는 것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준 것은 대중성을 가늠하는 것뿐이었고, 그것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만든 수많은 곡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곡을 선택하는 식이었다.
소스가 충분히 있었기에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저히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곡을 만들기 힘든 날이 올 것이고,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작곡가 이정인 씨와 예음이를 불러서 팀을 만들었다. 셋으로 구성된 작곡팀을 결성한 것이었다.
이정인 씨와 예음이가 천재적인 감각으로 곡을 만들어내고, 나는 감별사가 되어서 그중 가장 나은 것을 골라내거나, 곡을 다듬어서 더 나은 수준으로 만들어내게 된다.
올해의 레드애플은 그러한 작업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고, 그 결과는 이 시상식에서 보이는 그대로였다.
“또 졌네요.”
옆에 앉아 있는 김우진은 이번에도 심드렁한 소리를 내뱉었다.
“17 대 9. 그래도 점수 차이는 그대로예요.”
“김 실장님은 갑자기 왜 한 점 늘었어요? 원래 8점이잖아요.”
“아까 댄스 퍼포먼스상.”
“아아…….”
그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앞에 앉아 있는 데이바이데이를 가리켰다.
* * *
[저 오늘 어땠어요?] [뭐가?] [수상소감이요.] [괜찮았어.] [그렇게 대충 말씀하시지 마시구요. 길바닥에 버려진 강아지, 이거 비유 괜찮았죠?]늦은 밤, 채아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또 시작이었다.
대형 기획사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음에도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쫓아서 파인애플 엔터테인먼트라는 작은 곳을 선택한 아이였다. 인정받고 싶어서. 주목받고 싶고 계속 칭찬을 듣고 싶어서.
나에게 선택을 받은 이후에 유난히 나에게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나는 누구보다 자기를 인정해 준 사람이고, 부담을 안고서 자기를 데려와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정을 받고 싶고, 칭찬을 듣고 싶고, 언제나 화려하게 빛나고 싶은…….
[관종.] [네?] [아, 미안. 오타였어.]실수로 속마음을 타이핑해 버렸다.
[저한테 하신 말씀이에요?] [아니, 자동완성으로 나가 버린 거야. 그게 아니고…… 관심을 가지고 네 수상소감을 봤다고.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아주 훌륭했어. 길바닥에 버려진, 이 부분을 들을 때에는 나도 울컥했다고.] [그렇죠?ㅋㅋ]평범한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는 성격이었지만, 연예인으로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 관종기질을 밉지 않게 잘 포장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걸 잘해내는 채아는 음악 무대를 비롯해서 각종 예능에서도 끼를 뽐내며 맹활약하고 있었다.
[선생님. 근데 그게 진짜 진심이었어요. 선생님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심각하게 방황하고 있었을 거예요.]물론 나에게도 전혀 밉지는 않았다.
나머지 세 멤버를 잘 이끌고 있는 든든한 리더였고, 지금까지 구설수 하나 없이 레드애플은 순항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 했다.
* * *
모든 것은 그녀가 내 꿈에 나타나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 번째 능력을 거절당한 이후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다시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신의 정체는 뭐야? 왜 내 꿈에 나타나는 거야?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능력을 나에게 줄 수 있는 거야?’
수없이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처럼 내 앞에서 살며시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내 삶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그녀를 향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구였길래. 도대체 어떤 존재였길래.
로버트 존슨에게 신비한 능력을 전해준 십자로의 악마 같은 존재라도 되었던 건가?
때로는 호기심이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 * *
이제 몬스터 뮤직은 이전과 전혀 다른 회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유아연 한 명에게 모든 포커스가 맞추어졌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아이돌 세 팀과 여성 솔로 가수 두 명이 소속된 연예기획사가 되었다.
그리고 느지막한 나이에 프로듀서와 가수를 병행하고 있는 어떤 이상한 사람도 있고…….
어쨌든 유성 LPS의 투자를 받아 자금이 돌아가는 것도 원활해졌고, 소속 가수들이 모두 맹활약하고 있으니 갑자기 커진 규모에서도 회사는 충분히 안정적이었다.
이 정도라면 이제…… 4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최상위 그룹을 바짝 쫓아왔다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몬스터 뮤직은 꾸준히 신입 사원들과 경력직 직원들을 채용해왔다.
넓은 사무실 하나를 잡고서, 이 부서 저 부서 모두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일하는 분위기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사무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누가 자리에 없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직원들끼리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사무직 직원들과 현장 매니저들을 대거 채용하여 회사는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이제는 매뉴얼에 의해 업무가 진행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절차’를 그렇게나 중시하는 뚱뚱이가 대표로 있는 회사이니, 이런 변화 속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녀석의 공이 크다고 할 수도 있었다.
“본부장님.”
“왜?”
“이것 좀…….”
그리고 배민혁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다음 빅픽쳐 앨범의 기획안이었다.
“목소리가 그게 뭐야? 누가 너 잡아먹어?”
“죄송합니다.”
이 녀석은 나를 대할 때마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실컷 갈굼당한 이등병 같은 얼굴.
“죄송합니다.”
“한 번만 말해.”
“네.”
물론 내 쪽에서 나가는 목소리가 퉁명스러우니 이 녀석이 기가 바짝 죽어버렸지만.
직원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회사 내부는 복잡해졌다.
그래도 몬스터 뮤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설립 당시에도 그랬고 그러한 기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원 없이 음악을 할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력은, 그리고 가장 필요한 인력은 작곡가들이었다.
외부에서 곡을 사오는 다른 회사와는 달리, 우리는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다.
“미니앨범, 수록곡은 네 곡…… 곡은 네가 다 쓸 거야?”
“넵.”
“준비 다 됐어?”
“세 곡은 다 만들었고 나머지 한 곡도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그럼에도 음악을 제작하는 쪽에 인력을 추가하지 않는 것은, 이 녀석을 비롯한 젊은 작곡가들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외부 인력의 보강 없이, 우리가 키워낸 인재들로 음악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이었다.
“준비가 다 되지도 않았는데 나한테 덜컥 이거 가져오면 어쩌자는 거야? 난 이렇게 할 테니까 넌 그냥 승인해 줘라, 이런 건가?”
“아뇨.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본부장님 허락 맡으면 미팅 잡아서 구체적으로 컨셉을 잡아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딱딱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배민혁은 혀를 자꾸 내밀며 초조한 심정을 내비쳤다.
“알았으니까 나가 봐.”
“네.”
그래도 그동안 배민혁은 꾸준히 성장했다. 빅픽쳐가 전체 보이그룹 중에서 2티어 정도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이 바로 배민혁의 프로듀싱 능력 덕분이었다.
힙합적인 거친 느낌은 부족했지만 배민혁이 만든 정교한 음악을 통해 멤버들의 뛰어난 보컬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빅픽쳐의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은 동남아권에서도 제법 팬덤을 형성하며 빅픽쳐를 몬스터 뮤직의 효자그룹으로 만들어주었다.
“본부장님.”
“왜?”
“이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본부장님 존경합니다.”
“갑자기 그건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본부장님께서 도와주신 그 곡…… 가 없었으면 아마 빅픽쳐는 그때 망했을 거예요.”
“…….”
“본부장님은 저한테 은인 같은 분이세요. 제발 저 좀 그만 미워해 주세요.”
“누가 널 미워한대?”
좀 더 갈굴까 고민을 해봤지만, 다 큰 녀석의 눈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곤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약해 빠져가지고.”
“네?”
“곡 쓴 거 세 개 가지고 와 봐. 오늘은 내가 바빠서 안 되고, 내일 오후 정도에.”
“예? 아…… 알겠습니다!”
“시간 비워놓을 테니까 그때 같이 작업해 보자.”
툭 건드리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던 녀석은, 갑자기 화색이 도는 얼굴로 살며시 웃고 있었다.
“야, 그런데 너 말이야.”
“옙.”
“연화가 그렇게 좋냐?”
“아, 그거요.”
조금 전까지는 실컷 갈굼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녀석이, 이제는 초코파이 하나 얻은 이등병 같은 얼굴로 배시시 웃고 있었다.
맨날 짬밥만 먹어서 미각을 잃어가고 있는 중에 달콤한 초코파이를 입안 가득 머금은 것처럼.
“근데 누나는 저 싫대요.”
“뭐야? 너 또 들이댔던 거야?”
“아뇨. 그건 진짜 아닙니다. 말 안 건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요.”
“그런데?”
“그냥 보면 알아요. 어쩔 수 없죠. 덕분에 곡은 쫙쫙 잘 써진다고요. 가슴에 뻥 하고 구멍이 하나 뚫릴 때마다 곡 하나가 훌쩍 나와줘요.”
“걔가 그렇게 좋냐?”
하지만 입안에 넣어버린 초코파이는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라 쓰디쓴 카카오인지 배민혁은 얼굴을 조금 구겼다.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그냥 멀리서 지켜보고…… 애타는 가슴을 곡으로 쓰고, 이런 걸로 만족하려고요. 누나 마음속에는 이미 어떤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아니, 이건 말씀드리기 좀 그렇구요, 아무튼 그래요. 정리할 겁니다.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을 테니까 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 * *
“애 좀 그만 잡아. 나는 쟤 볼 때마다 불쌍해서 못 쳐다보겠더라. 네 앞에만 가면 기가 팍 죽어서…….”
대머리 상무님은 나하고 배민혁이 주고받은 대화를 옆에서 듣고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대머리 상무님, 그러니까 내가 이 회사에 처음 왔을 때에는 본부장이었다가 이사를 거쳐서, 이제는 상무로 승진한 분이.
“제가 뭘 잡는다고 그래요?”
“내가 너를 쭉 지켜봤는데, 너는 남자 애들 대할 때랑 여자 애들 대할 때가 완전히 딴판이야. 다른 사람 같다니까. 이중인격, 뭐 이런 거.”
“또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이분은 이 회사에서, 내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인혁이와 함께 포보이스를 하고 있었을 때, 그 회사에서도 함께 있었던 분이다.
내가 열아홉 살의 연습생이었을 때 이분을 처음 만났다. 그때 상무님은 서른 몇 살 정도 되었을 텐데…… 그런데 내 기억 속에선 그때 또한 대머리였던 걸로 떠오르니, 생각해 보면 아주 불쌍한 사람이기도 했다.
“쟤 기 좀 살려줘. 그래도 앞으로 몬스터 뮤직을 이끌고 갈 인재 아니냐.”
“기 살려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쟤도 꼬박꼬박 저를 찾아오는 거잖아요.”
그 말을 딱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듯이 대머리 상무님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쟤하고, 걔 있잖아. 예음이? 얘네 둘이 나중에 우리 회사를 이끌게 되겠지. 둘 다 어디서 그런 애들이 왔는지 몰라. 하나는 인혁이가 데려오고, 또 하나는 네가 데려오고.”
대머리 상무는 테이블 건너편 빈 공간에 예음이가 있기라도 하듯이 그곳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예음이 쟤 말이야. 이제 스물다섯 정도 됐나? 쟤 보면 꼭 걔가 생각나. 은진이 말이야.”
“누구요?”
“은진이 몰라? 강은진. 난 예음이 처음 봤을 때도 은진이가 생각났다니까. 당돌한 모습이나, 딱 부러지는 말투,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기가 막히게 곡을 잘 쓰는 것도 닮았고.”
강은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그게 누구죠?”
“너 벌써 까먹었냐. 진짜 은진이 기억 안 나?”
“뭐 하는 사람인데요?”
“모아 엔터에서 같이 있었잖아. 진짜 기억 안 나냐? 나보다 젊은 놈이 뭐 이렇게 기억력이 안 좋아?”
모아 엔터테인먼트란 대머리 상무, 그리고 나와 인혁이가 포보이스로 함께 있었던 그 회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강은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나? 하긴 거기 직원 이름이 모두 기억날 만큼 내 기억력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음이 볼 때마다 기분이 참 그래. 은진이 생각나고…… 은진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고.”
돌아가신 분인가, 하고 생각했다. 얘길 들어보면 나이가 많은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저는 정말로 기억이 안 나요. 누구셨죠?”
“야 인마, 너네 담당했던 프로듀서 이름도 까먹었어?”
“강은진…… 이라는 분이요?”
“어떻게 그걸 잊어먹냐.”
나를 담당했던 프로듀서였다고?
* * *
내 기억 속에서 포보이스를 담당했던 프로듀서라면, 깡패인지 뮤지션인지 도대체 구분이 되지 않는 그 험악한 아저씨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를 맡자마자 파트 분배를 자기 마음대로 해버려서 인혁이가 발끈해서 대든 적이 있었고…….
후속곡까지 그 사람이 담당했고, 그 이후에는 앨범을 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른 프로듀서란 없었다. 그리고 험악한 아저씨의 이름은 전혀 강은진이 아니었다.
-어, 그래. 영민아, 왜?
“바쁘냐?”
-아니, 괜찮아.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나 보지. 이렇게 생각하고 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이 주는 울림이 남달랐다.
게다가 죽었다고?
“이게 진짜 별건 아닌데, 너무 궁금해서 말이야.”
나는 인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인혁이가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너 혹시 강은진이라는 사람 알고 있냐?”
-강은진?
“어. 모아 엔터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 왜 또 그때 얘기야.
“누군지 알겠어? 난 기억이 안 나서.”
-몰라. 그때 있었던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해.
나는 대머리 상무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우리 프로듀서였다고? 우리 프로듀서는 그 꼰대 새끼 한 명이었잖아.
“그렇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런 사람은 없더라고.”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인혁이가 기억하는 것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강은진이라는 사람이 포보이스의 프로듀서였다? 어린 나이에 곡을 잘 쓰는 사람,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인혁이와 나, 그리고 대머리 상무님이 모아 엔터에 있었던 것은 거의 20년 전의 일이었다.
-그 양반, 기억이 꼬였나 보네. 엄청나게 오래된 일이잖아.
20년 전의 일. ‘아, 맞다. 내가 좀 헷갈렸어.’ 하고 말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20년 전의 어떤 보컬 그룹 프로듀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익숙한 이름이지?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봤는데.
* * *
그 뒤로 한동안 잊고 있었다.
대머리 상무는 무언가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고, 예음이를 보면서 지난 기억을 엉뚱하게 꺼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에 내 신경을 소비하기에는 너무나 바빴고, 그러는 사이 그때 나누었던 대화는 내 의식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기억이 떠오르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왜 강은진이라는 이름이 익숙한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 곡을 작사, 작곡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 능력을 얻은 뒤, 나는 이 세상 모든 음악을 들어보고 분석해 보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음악을 들어봤다.
지나간 음악들, 그리고 인혁이에 대해서, 김우진에 대해서 감탄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언제나 내가 찾아간 도착지에는 그 두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
그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사람들은 더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강은진이었다.
19년 전의 곡. 인혁이와 김우진만큼 완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어서 따로 메모해 두었던 사람.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남긴 곡은 한 곡뿐이어서 그 이상의 분석은 할 수 없었다.
이런 케이스는 생각 외로 많았다.
번뜩이는 영감으로 훌륭한 곡을 하나 남긴 사람, 하지만 그 영감이 지속되지 않아서 그 이후의 활동은 없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따로 메모해 두었고 그중에 강은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익숙한 이름이었던 거구나.
오래전에, 나와 인연이 닿았던 것은 아니고.
이것으로 결론은 대머리 상무가 무언가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쪽으로 쏠렸다. 그 사람이 이 사람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는 쪽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
그 양반이 이 바닥에서 경력이 길었던 만큼, 어디에선가 강은진 씨와 일을 한 적이 있었고, 그것을 포보이스의 프로듀서로 잘못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말이 되는 얘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검색 결과가 나와 있는 페이지를 닫기 직전, 나는 이미지 검색 결과에 섞여 있는 작은 사진 한 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걸 클릭해서 사진을 크게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