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
6장 알고 보니 천재 보컬 트레이너
예전에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김다은은 어깨에 피로를 업고 있는 느낌이었다.
데뷔팀 일정이 끝난 것은 밤 10시 반. 김다은은 묵직한 피로를 업은 채로 자신의 보컬트레이너인 박영민을 찾아갔다.
꼭 레슨을 받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자기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오늘은 안 돼. 빨리 숙소 들어가서 쉬어라.”
“쌤…….”
“안 된다고.”
김다은이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박영민 선생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성대가 벌어지잖아.”
“괜찮아요. 저 할 수 있어요.”
“지쳤다는 거야. 소리가 확 새고 있어.”
“잠깐만 쉬면 돼요.”
“내가 너랑 하루 이틀 해봤냐. 니 컨디션 내가 모를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돌아왔다. 그럼 보컬 레슨은 다음에 하고 잠깐만 대화라도 할 수 있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평소와 달리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박영민의 태도에 그녀는 기가 눌려 버렸다.
김다은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박영민 또한 눈이 시뻘겠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하루 이틀 함께한 사이가 아니기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쌤. 그러면 내일…….”
“안 돼.”
“왜요?”
“네 목소리를 아끼려는 거야. 마음 같아선 지금도 너네 스케줄을 반으로 줄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애들을 얼마나 굴리길래 이 정도로 목이 피곤해진 건지…….”
하는 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김다은은 인사를 한 뒤 연습실을 나섰다.
생각도 하지 못했던 데뷔. 집에 연락했더니 난리가 났다. 몬스터 거기 들어가길 잘했다고.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핸드폰은 빼앗겼다. 부모님 목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변해 버린 환경. 아무리 인생의 청사진이 제시되었다고 해도 열아홉 살 어린 나이로 받아들이기엔 변화의 폭이 너무 컸다.
죽은 친구가 생각났다. 이런 걸 그 애도 겪었겠지. 그리고 결국엔 죽음을 선택한 것이겠지.
죽기 사흘 전이었나. 통화를 했을 때 마지막으로 들려주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혐오하는 것 같아. 나를 더러운 벌레로 보고 있어. 그때 뭐라고 답해줬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은아. 왜?”
“레슨 취소돼서요.”
“그래? 그럼 잘됐네. 같이 들어가자.”
시동이 걸려 있는 밴에선 매캐한 기름 냄새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덜덜덜덜 진동하고 있는 차 안에선 먼저 데뷔 멤버로 뽑힌 두 명이 실내등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다지…… 데뷔하고 싶진 않았다.
정상까지 올라간 친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걸 봐서인지. 아니면 이 바닥의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에 겁을 먹은 것인지.
그래도 노래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했던 건…….
“어서 들어와. 뭐 해?”
레슨이 취소되어 버리니 어깨에 매달려 있는 피로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 * *
“너, 보컬 선생님 좋아하지?”
“네?”
“맞지?”
“전혀 아닌데요.”
숙소. 옷가지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지저분한 투룸이었다.
“에이, 맞는 거 같은데. 너, 선생님 볼 때마다 눈이 하트로 변하더라고.”
“진짜 아니에요. 진짜로!”
김다은은 한 손으로는 모자라다는 듯이 두 손을 내밀어 휘휘 저었다.
“저한테는…… 고마운 분이에요. 노래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셨거든요.”
“그래?”
“신기했어요. 매일매일, 레슨을 받을 때마다 제 목에서 새로운 소리가 나오고…….”
“진짜 그게 전부야?”
“그럼요. 제가 존경하는 분이에요.”
비츠걸스의 서브 보컬을 맡고 있는 남승연. 그녀는 입술을 빼쭉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그럼 이건 패쓰.”
스무 살이라고 하지만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 그리고 한연화만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표정이 풍부해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마스크.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해맑은 아이였다. 찡그리는 모습조차 익살스럽게 보일 정도로.
“그럼 다른 건 재미있는 거 없어?”
“다른 거요?”
“그 선생님하고 있었던 일 중에서.”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시니 생각이 안 나요.”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직 숙소가 어색한 김다은은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남승연은 팔을 쭉 펴고 그걸 베개 삼아 엎드려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노트를 들고서.
“또 메모하려고?”
리더를 맡고 있는 윤선하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재미없어.”
“뭐가?”
“쓸 게 없다구. 하나도.”
남승연은 노트를 휙휙 넘기며 투정을 부렸다.
“얘 요즘 썰 풀 거 적고 있거든.”
윤선하가 다은이를 바라보며 설명해 줬다.
“썰이요?”
“예능 나가면 썰 풀 거 미리 준비해 놓겠대.”
“아아…….”
그러자 승연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김다은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야, 들어봐봐.”
“……?”
“나한테 남동생이 있거든. 그런데 얘가 하루는 급식으로 나온 소시지가 맛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알아? 그걸 집에 와서 또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왔어. 세상에! 그걸 주머니에 넣었다고. 케찹 범벅인 그 소시지를. 이거 웃기지?”
그러자 다은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야, 하나도 안 웃겨. 그게 뭐냐. 지저분하게.”
“아, 언니는 가만히 있어 봐. 야, 웃기지 이거?”
김다은은 키득키득 소리까지 내며 웃기 시작했다.
“넌 이게 웃기다고? 이게? 야, 그리고 너는 이런 것 좀 하지 마. 하나도 안 웃기다니까.”
“가만히 좀 있어 보라고! 언니 취향이 이상한 거야. 얘는 웃잖아.”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웃겨서 터진 웃음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그리고 진짜로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한 살 위의 언니가 우스워 보여서.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다고. 다은이는 그런 마음이었다.
“야, 그러면 이것도 들어봐봐. 안 웃기면 정색해도 돼. 방금 말한 남동생 있잖아. 또 이 녀석 이야긴데.”
“너 그거. 똥 싸는 얘기 하려는 거지?”
“언니는 가만히 있어 보라니까!”
“다은아. 얘기 듣지 마. 이거 더러운 얘기야. 빨리 들어가서 자자.”
팀의 리더인 윤선하. 올해 스물두 살. 몬스터 뮤직의 연습생치고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댄스팀 소속으로 있다가 캐스팅 매니저에게 발탁되어 몬스터 뮤직의 연습생으로 입사. 가창력은 평균 이하지만 댄스 실력만큼은 비슷한 나잇대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출중했다.
몬뮤에서 아이돌을 기획하면서 캐스팅한 인재로, 연습 기간은 짧은 편이었다. 팀에서 맡고 있는 포지션도 메인 댄서 겸 래퍼.
“진짜 언니는 개그를 모른다니까. 두고 봐. 예능 나가면 빵빵 터질 거니까.”
“더러운 똥 이야기하는데 잘도 터지겠다.”
윤선하는 댄서답게 몸매의 선이 아주 예뻤고, 팔과 다리가 늘씬한 체형이었다. 나머지 세 멤버가 보컬 라인을 맡고 있어서 퍼포먼스 쪽으로는 약하지 않겠나 싶었지만 윤선하 한 명의 존재로 안무의 퀄리티가 몇 단계는 올라갔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팀에서는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에 리더를 맡고 있었다. 마인드도 비교적 진중한 편이어서 회사에서는 윤선하를 충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연화 씨는 안 오시나요?”
“한연화 씨? 너희 동갑 아니니?”
“맞아요. 열아홉 살이요.”
“동갑인데 무슨…… 걔는 우리 자면 들어올 거야. 맨날 한 시까지 연습하다가 들어오거든.”
“아…….”
“괜히 독종이라고 불리겠냐. 하루도 안 쉬고 저러는 거야.”
“저도 연습 많이 할 수 있는데.”
“됐어. 쉴 때는 쉬어야 되는 거야. 그러다 아프기라도 하면 무슨 소리 듣는지 알아? 우리도 저렇게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픈 것도 죄야. 감기라도 걸려봐라. 위에서 얼마나 난리인지.”
그러자 함께 숙식하고 있는 매니저가 신경질적인 투로 “빨리 자라!” 하고 소리를 높였다.
방은 두 개. 하나는 연장자 라인인 윤선하와 남승연이 함께 쓰고, 나머지 방 하나는 막내 라인인 다은이와 연화가 쓰기로 했다. 매니저는 그냥 거실에서 자고.
“다은아. 너 잠 안 오지? 연화 올 때까지 내가 같이 있어줄게.”
“아, 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게. 너 웃겨서 오늘 잠 못 잘 거야.”
김다은이 팀에 합류한 지 이틀째. 그래도 멤버들은 그녀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단 한 명만 빼고.
* * *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신경 쓰였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 사람. 아이즈 컴퍼니의 김우진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
4인조는 안 된다는 얘기. 뭐 이건 우리 회사에서도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를 했다고 하니까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것일 테고.
누굴 좀 빼 오려고 하다가 들은 얘기다? 이건 걸리는군. 누굴 빼오려고 했길래. 연습생? 직원? 아니면 가수를?
아이즈 컴퍼니라고 하면 현재 엔터 업계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거대 업체.
빅4라고 불리는 회사 중 하나다. 그리고 걸그룹 기회에 특출난 장점이 있어서 매번 내놓는 걸그룹마다 정상권으로 올려보냈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
몬스터 뮤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소속된 아티스트 수에서부터 상대가 되질 않았고, 아이즈에서는 연기와 예능 쪽으로도 매니지먼트 체계가 확실해서 다방면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면…… 흔들리긴 할 거다. 나부터가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심각하게 고민을 해볼 테니까.
단지 지나가는 한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그 말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마치 내 가슴에다 대고 글자로 새겨놓은 듯이.
만약 김다은이나 한연화 같은 우리 쪽 유망주에게 손을 대려고 한다면…… 에이,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일반 연습생들도 아니고 회사랑 계약을 한 애들을 건드린다는 건 상도덕이 없는 거지.
그래도.
만약 비츠걸스가 실패하고 애들이 공중에 붕 떠버린다면.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회사에서는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해서 애들을 돈 되는 곳으로만 값싸게 굴리려고 한다면.
애들 또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저에게 보다 많은 걸 준다면, 저도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이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애들의 보컬 능력을 좀 더 올려주는 것뿐. 다른 것은 할 수 없다.
애들을 정상으로 올려서 보란 듯이 스타로 만드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게 하는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단지 노래 선생님일 뿐이니까.
-언젠가는 또 다른 것이 필요하게 될 거예요. 원래 가져야 할 능력을 빠르게 가진 것을 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한계까지 이끌어내야 할 때가.
내 잠재력을 한계까지 이끌어내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
애들의 보컬 능력을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로 이끌 수 있다는 것? 아니, 이런 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노래에 관해서만큼은 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트레이너라는 서포터 입장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이 필요할 때도 있겠죠.
또 다른 능력이 나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예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내 재능을 한계까지 이끌어냈을 때는 어떤 일이 생길 것이고
그 한계를 넘어선 것까지 가능했을 때에는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물론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이 필요하게 되기까지, 아직은 내가 머물러 있는 스테이지를 아직 클리어하지 않았다는 느낌만이 어렴풋이 느껴질 뿐이었다.
* * *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스터링을 마친 최종 음원이 나왔고, 나는 한 번 더 스튜디오를 찾아 모니터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승인.
그리고 몬스터의 퍼블리싱팀은 방송 심의를 신청했고 저작권을 등록해 주었다.
편곡자에는 내 이름도 등록이 되었다. 맙소사. 내가 뭐 한 거 있다고.
하지만 뭐가 뿌듯하다. 12년 만인가. 내 이름이 이런 곳에 오르는 게.
“음…… 사운드는 딱 내 취향이야. 스트링이 쫙 깔리면서 드라마틱해지는 게.”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말은 한 번 들어보자는 것이었지만 평가나 다름없이 뭐.
“곡을 자네가 골랐다면서?”
“사정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잘 골랐어. 감각 있네.”
“감사합니다.”
임원실. 손동하 사장은 음원 사이트에 올라온 황유미의 첫 싱글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모니터링 스피커가 충분한 음량으로 이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그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애먹었겠어.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이걸 만들어냈으니.”
“정 팀장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정 팀장? 그래. 그 친구도 일 잘하지. 그런데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프로듀싱팀이 요즘 바빠. 자네도 알잖아. 다음 달까지는 잠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재생. 황유미의 목소리가 다시 이곳 공간을 가득 메운다.
벌써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음원 사이트에 등록이 되자마자 사장은 나를 불렀고, 같이 들어보자는 말을 한 지 벌써 30분 가까이 지났다. 30분 내내 우리는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애를 썼어. 자네가 우리 회사 들어온 지 두 달 정도 됐지?”
“예.”
“아직 돌아가는 걸 모를 텐데 잘 만들어냈네.”
곡이 한 번 끝날 때마다 손동하 사장은 빙긋 웃으며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칭찬 같은 말. 잘 해냈다는 그런 말.
하지만 하나도 와닿지가 않았다. 왜 보컬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 거지?
나에게 요구한 게 그거였잖아. 또 한 번 근사한 목소리를 만들어보자고. 자신이 픽업한 황유미의 목소리를 근사하게 만들어 보라고.
하지만 지독하게도 사장은 말을 아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좀처럼 해주질 않는다.
“어때? 자네 생각은 어떤 거야? 이 곡, 차트에서는 힘 좀 쓸 것 같아?”
“차트요?”
“고생해서 냈으니까 기대 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차트?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차트인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공들여 기획을 하고 홍보에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한 곡도 차트에는 쉽사리 오르지 못한다. 아무런 홍보 없는 이런 곡이 차트에 오른다? 이게 된다면 그건 기적이지 기적.
“결과물이 내 기대 이상이어서…… 욕심이 좀 나네. 성적도 괜찮게 나왔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기대 이상이야. 정말로.”
“…….”
“황유미 이 친구. 가능성이 보여서 내가 데리고 왔지만…… 노래 진짜 잘하네. 이것 참…… 나처럼 나이 먹는 늙은 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자꾸 옛날 생각이 나. 나도 이런 감정을 품을 수 있었던 옛날이 말이야. 이 친구 목소리가 나를 그런 곳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아.”
“…….”
“아…… 이건 참…… 또 듣고 싶어지네.”
그리고 손동하 사장은 다시 한번 재생.
그제야 내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자네 참 대단해. 왜 자네 같은 인재가 이제까지 무명으로 있었던 건지.”
“아닙니다. 유미가 열심히 했어요.”
“아니야. 내가 알아. 내가 우리나라에서 노래로 날고 긴다고 하는 사람들 한두 명 만나본 게 아니야. 이건 가르치는 사람의 능력이야. 제아무리 재능이 넘친다고 해도 좋은 선생을 만나야 이런 경지가 가능하거든.”
“…….”
“일 좀 더 시켜야겠어. 자네한테는.”
“고맙습니다.”
“바쁘면 이제 가 봐도 돼. 난 이것 좀 더 들을게.”
동그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손 사장은, 노래에 흠뻑 빠졌다는 듯이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임원실을 나왔다.
문을 닫으면서 슬쩍 엿보니, 손 사장은 손수건을 선글라스 안으로 넣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계왕처럼 생긴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진짜 좋아요. 역시 박 팀장님이 최고예요!
짱짱하게 울리는 황유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들떠 있다. 자신의 첫 번째 싱글이 발매되었으니 들뜨지 않을 수가 없겠지.
-부를 때는 몰랐는데 이게 이런 곡일 줄이야. 와…….
그리고 이날 밤에는 ‘여러분. 이것 좀 들어주세요.’ 하는 제목의 영상이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다.
우여곡절 끝에 이게 발매되었다는 썰을 한참 풀더니, 한 번 들어보라고 음악을 틀어놓고 거기에 맞춰서 즉석에서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물론 이 곡이 당장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황유미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평가만 받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 언젠가 그녀가 날아오르게 되었을 때 다시 조명받을 수 있다면. 역시 노래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니 여유가 생겨서 비츠걸스에게는 더욱 신경을 써줄 수 있었다.
애들 연습실에 지박령처럼 붙어서 멤버들의 컨디션을 점검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발성을 교정해 주고, 격한 퍼포먼스와 함께하느라 목소리가 흔들리면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그러면서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어느덧 애들은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남자 연습생들의 무리가 내 앞에 멈추어서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면서.
“어, 그래. 수고한다.”
“감사합니다!”
몬스터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따로 구분해서 연습을 시키느라 나와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애들이었다.
하지만 ‘저게 누구야?’ 하고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덧 90도 인사로 바뀌었다.
회사에 점점 적응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이곳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얘네들의 우렁찬 인사 소리만큼.
“박영민 씨. 나중에 제 목소리도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요?”
“실력 있으시다는 소문이 엄청나게 퍼져 있더라구요.”
얼마 전까지도 지나가다 마주치면 고개만 까닥하고 인사를 나누었던 기성 아티스트 또한 이렇게 나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 종종 생겼고.
“톤을 그렇게나 잘 잡아주신다면서요. 저도 좀 배우고 싶어요. 이번 활동 끝나면 박 선생님 옆에서 붙어살 겁니다. 각오하세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예전부터 팬이었어요. 포보이스의 그 노래…… 저 옛날에 축제 때 앞에 나가서 그거 불렀었는데. 와, 그런데…… 박영민 선생님 파트는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더라구요. 어떻게 그런 느낌을 내시는지.”
팬은 무슨.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이제까지 고생하지도 않았겠지.
물론 소문이 나 봤자 얼마나 나겠으며, 고작 두어 달 회사에서 일한 걸 가지고 내 지위가 올라가 봤자 아는 사람들이나 인정해 주는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빈말이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치레로 나누곤 하는 그런 말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 회사의 일원으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 나를 둘러싼 것들이 모두 순조롭게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니까 저런 인사치레도 들을 수가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연화 씨. 물 이거 마셔요. 안 뜯은 거예요.”
“아, 네.”
얘네 둘. 아직도 이러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같은 팀을 하고 있는 열아홉 살 동갑내기들이 뭐뭐 씨, 뭐뭐 씨 하면서 서로를 부르는 게.
얘네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면 할 얘기가 좀 있다.
순조롭게 풀릴 리가 없잖아.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했던 사람이 저기에 있고, 둘 사이에는 어떠한 긴밀한 기류가 흐르지 않은 채 서로 예의만 갖추고 있는 수준이니.
이 얘기를 하려면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한참 풀어내야 하는데.
하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열한 시 어때? 그때면 일정 다 끝나지 않아?”
“그래. 열한 시로 하자.”
“그럼 그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라. 내 차 타고 이동하자고.”
이 회사 들어와서 처음으로 가진 김인혁과의 술자리.
레코딩 가이드를 잡기 위해 이 녀석과 늦은 시간까지 논의를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잔하자는 얘기가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얘하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봐야겠다.
이날이 내 커리어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걸,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어렴풋이 느낌 같은 것은 있었다. 이렇게 잘 풀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것 같은 그런 예감이.
* * *
평소에도 김인혁 이 녀석을 접하면서, 입고 있는 옷이라든지 시계 같은 것에 돈 좀 처바르고 다닌다는 걸 느끼곤 있었다.
하지만 별로 신경은 쓰지 않았지. 마인부우처럼 뚱뚱한 놈이 그러고 다녀봤자 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어쩌면 내 쪽에서 일부러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상급 프로듀서. 지금은 비츠걸스 데뷔 때문에 쉬고 있다지만 얼마 전까지는 방송에도 자주 나왔던 놈.
이제 전 국민이 아는 셀럽이 되어버렸다. 음악을 잘 만드는 천재 예술인 같은 이미지로.
그게 부러워서 그런 건지, 출발점은 나와 같았지만 너무나 크게 벌어진 처지 때문에 그런 건지, 내 쪽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 보니.
“좀 불편하지? 비닐을 안 뜯어서.”
“아니. 뭐 괜찮아.”
“이게 지난주에 나온 거라서.”
차를 바꿨다고 한다. 지난주에.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좀 정숙한 걸로 골랐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 이렇게 뻥 뚫려 있을 때는 밀고 나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게 없더라고.”
차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게 얼마짜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아파트 한 채 값은 나갈 것 같은 고급 세단.
여기에 앉아 있으니까 체감이 된다. 이 녀석과 나의 차이가.
“예전 차 봤었나? 5,000CC 터보였거든. 여기서 밟아주면 그냥 쭉 달릴 수 있었는데.”
나는 아직 차가 없었다. 회사도 지하철 타고 다니고 있었다.
“아무튼 좀 마시자. 오늘은. 요즘 스트레스 쌓여서 미치는 줄 알았어.”
자기가 잘 아는 곳으로 가겠다고, 이렇게 나를 태워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자주 마시는 곳이 있다면서.
“일 얘기는 하지 말자고. 아니, 옛날얘기나 할까. 야, 그런데 우리가 같이 술 마시는 게 얼마 만이냐.”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날 나에겐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 * *
성공한 만큼 부를 축적한 이 녀석. 조용하고 아주 스무스하게 달리고 있는 이 자동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차가 아주 고급스럽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시트에 몸을 기대면 잠이 들 것 같을 정도로 편안했다.
그럼 술은 어디서 마시려나. 고급스러운 곳? 아무나 갈 수 없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 난 그냥 고기나 먹으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소고기.
아니, 혹시…… 퇴폐적인 곳을 가진 않겠지? 있는 놈들은 이러고 논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섹시한 여자들이 나타나서 내 옆에 바싹 붙어 있는 그런 곳…… 안 된다. 그건. 난 그런 곳은 질색이라고.
“인혁아.”
“어?”
“어디 갈 거야?”
“아…… 내가 자주 가는 곳 있어. 둘이서 조용히 얘기하기 좋은 곳.”
조용한 곳…… 그럼 그런 곳은 아니려나.
“치킨이나 먹자고.”
“어?”
“내가 다이어트를 못하는 게 이래서라니까. 치킨을 못 끊어.”
“…….”
“금요일은 치킨이야. 안 먹으면 주말 내내 짜증이 나서…….”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이 녀석 집 앞에 있는 치킨집.
유명 메이커의 체인점도 아니었다. 게다가 후미진 곳에 있어서 굳이 찾아올 필요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 괜찮아 보이지 않냐?”
정말로 조용히 얘기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손님이 우리 말고는 없었거든.
부부로 보이는 주인 내외는 주문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따금 배달 아르바이트생들이 드나드는 그런 곳이었다.
후라이드 한 마리를 가운데에 두고, 각자의 앞에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것 같은 차가운 맥주잔이 놓여 있고.
12년 만인가. 이 녀석과의 술자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 *
“여기 맛있지 않냐? 한 마리 더 먹자.”
맥주를 마시다가 소주로 넘어가고. 뜨끈뜨끈한 취기가 뒷목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눈 대화라고는 주로 옛날이야기. 우리가 포보이스라는 팀으로 활동했을 때의 얘기였다.
예전 소속사에서 연습했던 일이나 나머지 두 멤버에 대한 얘기 등등.
“그거 기억나냐. 대기실에서 인사 안 했다고 우리한테 갑질했던 새끼 있잖아. 지가 선배라고 우리 네 명 일렬로 세워놓고 한참 동안 설교했던 그 새끼.”
“아, 그…….”
“얼마 전에 또 만났잖아. 나한테 먼저 와서 굽신거리며 인사하더라고.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노래는 관뒀고 연기한다면서 어디 단역이나 하는 것 같더군.”
은근히 재미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이제야 이 녀석이 친구처럼 느껴지는군.
“야, 그런데 있잖아.”
회사에 있을 땐 함부로 말 꺼내기도 힘든 얘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너 사장님하고는 좀 그런 관계냐?”
“손 사장?”
“어.”
“그건 왜?”
“나도 알고 있어야 회사 생활을 제대로 할 거 아냐.”
“아니, 별로. 누가 그런 얘기 해? 나 그 양반이랑 관계 괜찮아. 어제도 같이 밥 먹었어. 점심에.”
점심 같이 먹는 거야 같은 회사에 있으면 당연한 일이고.
“아…… 너 혹시 내가 전에 했던 얘기 때문에 그러냐? 사장이 너한테 지시한 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 그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거야 뭐…… 액션 치는 거지. 어쨌든 그래서 잘됐잖아. 그렇게 안 하면 황유미 걔가 여기서 싱글이라도 내 볼 수 있었겠어? 그거 들어보니까 괜찮더라. 너도 경험 쌓았고,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야.”
그러면서 녀석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두툼한 살덩이를 들고서 그걸 우걱우걱 먹어댔다.
바사삭 튀김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어왔지만 이제는 군침이 돌지 않았다. 뱃속이 기름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래도 녀석은 잘도 먹어대는군.
“그런데 이런 건 있어.”
건배를 한 번 하고, 소주잔을 훌쩍 들이킨 녀석은 말을 계속 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분 자체는 아직도 존경하고 있지. 나한테 많은 걸 가르쳐준 사람이고 뒤에서 푸쉬도 많이 해줬으니까. 그런데 그 양반 방식이 너무 낡았어. 너 우리 회사에 소속된 가수들 명단을 봐봐. 두 가지로 딱 나뉘어. 몬스터가 처음 설립될 때 사장이 데리고 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 뒤로 내가 발굴해서 키워낸 애들.”
녀석은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봐. 옛날부터 데리고 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요즘 경쟁력이 있겠냐고. 시장성이 없어. 그 사람들 앨범 내준다고 회삿돈만 축내고 있는 거지. 이제 회사가 커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거야. 쓸데없이 그런 사람들 앨범 내준다고 들어가는 돈만 아껴도 신인 애들을 훨씬 더 크게 키워줄 수 있다고.”
우리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하긴. 옛날 사람들…… 20년 전에 활동하던 사람들도 아직 지원해 주고 있더군. 그 사람들이 얼마를 벌어오고 그 사람한테 얼마가 나가는지 내 위치에서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그러는 거야. 회사가 커지면 비전도 달라져야지. 자기 멋대로 아무나 막 데리고 와서 앨범 내주겠다고 하면 회사가 돌아가겠어? 그러니까 너도 그런 건 알아야 되는 거야. 사장이 너한테 일 준다고 덥석 받지 말고, 이건 좀 아니라는 얘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누군가 김인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매장 밖에 시동 걸려 있는 오토바이를 두고 안으로 들어온 배달 알바였다. 아직 치킨이 다 튀겨지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는 우리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불쑥 다가온 것이었다.
“저기 혹시…… 작곡가 김인혁 님 아니세요?”
“아, 예.”
그러고는 팬입니다.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면 싸인 좀. 아 네 종이 있나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튀김 껍질이나 꽉 꽉 씹고 있었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니까. 요즘에.”
녀석은 너스레를 떨더니
“함부로 할 수도 없어. 내가 잘못해서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 회사 가수들한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이런 게 피곤하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너도 이렇게 될지 몰라. 요즘에 그렇잖아.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데에 보컬 트레이너들도 참여하니까. 혹시 아냐. 우리 회사에서 계속 일하면 너도 그런 데 나가게 될지.”
별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아직은 미숙한 보컬을 공들여 손봐준 뒤 무대로 올려보내는 것뿐. 방송에서 요구하는 대로 하나의 기믹을 가지고 이미지가 소비되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가 직접 연습생을 발굴해서 키우는 것도.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애를 직접 찾아내서 훌륭한 가수로 키워내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오직 이런 것이었다.
* * *
“그러니까 지난번처럼 실수는 하지 말자고. 사장이 너 불러서 일 준다고 덥석 받아 물지 말라는 얘기야. 그 사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회사가 안 돌아가.”
둘 다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졌다. 뚱뚱한 마인부우의 모습이 흔들흔들, 마치 잔상권을 쓰는 것처럼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
취했군. 이만 일어서야겠어.
“너를 누가 여기에 데려왔냐. 사장이 데려온 거냐. 내가 데려온 거 아니야. 그런데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나 아니면 솔직히 네가 이런 회사에 들어올 수나 있었겠냐.”
“인마. 말을 또 왜 그렇게 해.”
“가만히 내 말만 잘 들으면 내가 알아서 챙겨주겠다는 얘기야. 알겠냐.”
이래서 이 회사에 오는 것을 고민했었다.
몬스터 뮤직의 보컬 트레이너로 들어오라는 이 녀석의 전화. 만약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것이다. 갈 곳이 있어서 그러진 못하겠다고. 왜냐면 분명히 이런 상황이 올 것 같았거든.
포보이스를 할 때부터 나에게 내비쳤던 열등감을, 후에 작곡가로 성공한 뒤에 전화를 걸어와 갚아주더군.
자기는 이만큼 성공한 작곡가이며 너는 한낱 음악학원의 강사일 뿐이라고.
이 녀석은 자기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은연중에 과시를 했고, 나는 그런 상업적인 음악에는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애써 자기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장은 흘러가게 내비 두자고. 그런 사람이 자꾸 실무에 끼어들면 우리만 피곤해. 앞으로 사장이 너 불러서 일 시키면 내 허락 맡고 해야 된다고 말해.”
그러니 한 회사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다는 것은…… 게다가 자기는 성공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셔로 이 회사의 중심인물이며 나는 신입 트레이너에 불과하니.
나를 깔보는 시선이 있을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꿈에 나타난 그 여자가 자존심을 죽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이 주문처럼 내 가슴에 남아 있었기에 덥석 수락해 버린 것이었지만.
“야, 너 말이 좀 그렇다.”
“내가 뭐?”
“내가 왜 네 허락을 맡고 움직여야 되는데?”
내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회사의 사정을 잘 모르고 일을 받아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거 봐. 결과가 괜찮잖아. 너도 들어봤을 거 아니야.”
“황유미 그거?”
“그래. 너도 그랬잖아. 들어보니까 괜찮다며. 그거 내가 곡을 골라서 내가 레코딩한 거야.”
“알아. 아는데.”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더니.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네 덕에 내가 이 회사 들어온 건 맞지만, 나도 하려고 했으면 이 정도 회사는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다고.”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져서 조금 날카롭게 말이 뱉어졌다.
“그런데 그 곡…… 들어보니까 괜찮기는 한데. 시장성이 없어. 나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야.”
“……?”
“황유미 걔가 완전히 꺾인 앤데, 그런 철 지난 곡을 부르라고 하면 뭐가 되겠냐. 너야 뭐 보컬 기량 쪽으로만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나는 전체적인 걸 본다고. 보는 눈높이가 다른 거야.”
술이 얼큰하게 몸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뜨끈뜨끈하게 몸이 데워진다.
“그거야 너는 상업적인 음악만 해서 그렇지. 이런 것도 먹혀.”
“먹히긴 무슨…….”
“두고 봐라. 황유미 얘는 목소리 하나로 대중들을 휘어잡을 애야. 내가 제작자였다면 분명히 얘를 붙잡았어.”
“그거야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고.”
“두고 보라니까. 이 곡 나중에 차트에 오를 거다.”
“차트는…… 그게 애들 장난처럼 그냥 되는 줄 아냐.”
“된다니까.”
“그게 되면 기적이지. 황유미 걔는 돈 쏟아부어서 밀어줘도 차트에 오를 정도는 아니라고.”
“된다고. 두고 봐.”
나한테는 오기밖에 없었고. 그런 말들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술에 취해 속이 거북한 사람이 먹은 걸 다 토해내듯이.
“알았어. 영민아. 너 그럼 이렇게 하자. 황유미 그 곡이 차트에 오르면 내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준다. 잔소리도 안 할게.”
“어, 그래.”
“대신 못 오르면 넌 이 회사에 있는 동안 무조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하는 거다.”
“알았어. 하자고. 그렇게 해보자고.”
“기간은 석 달.”
“석 달?”
아직 내 안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술에 취하지 않은 자아가 나를 뜯어말리고 있었다. 하지 마. 그런 거 하면 너만 손해야! 이렇게 외치면서.
“알았어. 하자고. 석 달 안에 차트에 오르면 내가 이기는 거야.”
“너 분명히 말했다. 딴소리하지 말자.”
그게 될 리가 있나. 그렇게나 차트인이 어려우니 조작질을 하는 사람도 나오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이 녀석한테는 지기가 싫었다. 어린 애처럼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당장 비츠걸스 얘네들도 차트에 오를 거란 보장이 없어. 너 음원이 하루에 몇 개나 나오는 줄 아냐. 그리고 그중에 몇 개나 차트에 오르는 건지 알어?”
그러면서 나는 녀석의 거들먹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핸드폰을 열고 멜론에 접속했다. 도대체 얼마나 잘나신 분들의 곡이 거기에 올라 있는지 구경하려고.
“나름대로 팬덤을 가지고 있는 아이돌 그룹도 수록곡 중에 한 곡이라도 차트에 올려보내면 성공한 거라고. 몰랐지 너? 팬덤이 집단적으로 스밍하고 난리를 쳐도 100위 안에를 못 들어. 이게 현실이라니까.”
그리고 그 잘난 사람들 명단에
“있는데?”
“뭐가?”
“있다고.”
“……?”
“우리 유미 여기에 있네. 89위.”
“뭐?”
“실시간 차트. 89위.”
있었다. 정말로.
김인혁은 무슨 헛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자기도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했고.
거기에는 정말로 있었다. 실시간 차트 89위. 황유미의 처음 만난 그 날에.
“잠깐만. 이거…….”
“있다니까 그러네.”
녀석의 얼굴이 굳어지며 시뻘겋게 취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얘 진짜로 여기에 오른 거야?”
“그렇다니까.”
“맙소사…….”
석 달까지 걸릴 것도 없었다.
“뭐야. 너 알고 있었던 거냐.”
“아니, 나도 방금 봤어.”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술이 제법 올라와서 그만 마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더 취해도 좋을 것 같았다.
질퍽하게 술에 적셔졌던 정신이 점점 바짝 마르고 있었다. 이게 되다니.
“이제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냐. 네 간섭 안 받고.”
그리고 김인혁은 어디론가 다급하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쉴 새 없이 통화를 했다.
“박 팀장님…… 제가요…….”
황유미는 엉엉 우는 소리를 냈고.
10분 넘게 통화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집에 도착한 새벽 4시에는 한 계단 올라서 88위.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트에 오르게 된 것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 * *
다음 날, 몬스터 뮤직의 사무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유미의 차트 순위는 소폭 상승했다. 멜론 71위, 벅스 93위, 그리고 지난 새벽에는 차트에 오르지 못했던 플래폼에서도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니 88위, 소리바다 95위.
하나의 음원을 차트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이건 기적에 가까웠다. 아무런 지원 없이, 아무런 투자 없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몬스터 뮤직의 중견급 아티스트들도 앨범을 새로 낼 때마다 차트인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 심지어는 차트에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활동을 접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거 박영민 선생이 프로듀싱했다면서요?”
“프로듀싱이요? 아, 네.”
“10분 뒤에 회의할 거니까 참석해 주세요.”
덕분에 나도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마셨던 술 냄새가 아직도 입가를 씁쓸하게 맴돌고 있었다. 머리는 띵-하고, 잠을 별로 못 자서 눈이 시큰했다.
그래도 황유미의 ‘처음 만난 그날에’를 선곡하고 레코딩 디렉팅을 했으며 마스터링에까지 관여했다는 이유로 나는 이번 일에 계속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가 공석이었으니 내가 그 자격으로.
“이 영상이에요?”
“그런 거 같네요. 이거밖에 없어요.”
황유미의 곡이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은 유튜브 영상 덕분이었다.
행사를 돌고 있던 어느 날, 비교적 조용한 무대에서 황유미는 ‘처음 만난 그날에’를 불렀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로드 매니저가 무대 영상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그리고 그걸 자기 유튜브 계정에 올린 것이었다.
“화질은 그렇다고 쳐도, 사운드가 너무 조악하네요.”
“이건 보정해도 안 되겠는데요.”
각 팀의 팀장급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살려보려고 했다.
“얘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돼요?”
“안성에서 행사가 있어요. 오후 4시에.”
매니지먼트팀의 정영수 팀장도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럼 한 시간 내로 회사에 나오라고 하세요. 보컬 트랙 다시 레코딩하게. 지금 영상에서 보컬 죽이고 새로 레코딩해서 오버레이시키죠.”
“그것보다는 스튜디오에서 새로 영상 하나 따는 게 어떨까요?”
“안 돼요. 그 영상 링크가 돌아다니고 있대요. 이걸 먼저 듣고서 멜론에서 찾아 듣는 거죠.”
그렇다고 유튜브의 영상이 화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구독자 만 명 남짓, 평균 조회 수 4천 정도의 황유미 계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건 만 명 중에 한 명, 그러니까 구독자 중에 네임드 BJ가 있었다는 것.
사건의 발생은 단순했다.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네임드 BJ가 인터넷 생방송 중에 황유미의 곡을 들려준 것이었다. 배경음악처럼 자신의 목소리 뒤로 깔아둔 채로.
-이 곡 뭐냐구요? 이거 괜찮죠? 유튜브에서 발견한 건데 곡이 좋더라구요. 간만에 괜찮은 발라드를 찾아낸 거 같아요. 목소리도 좋고…… 계속 듣게 돼요.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곡이에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련한 추억에 푹 빠지게 만드는 곡인 거 같아요.
그 BJ는 방송 중에 음악을 틀어놓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 날도 생방송 중에 여러 곡이 지나갔고 황유미의 곡은 그중 하나였다.
-또 들어볼래요? 괜찮죠?
이게 3일 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BJ의 수많은 팔로워 중 곡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묻혀 버렸던 곡이 재발굴되어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일은 이따금 일어난다. 오래전에 발표한 곡이지만, 어쩌면 충분한 대중성을 갖춘 곡이지만 시류를 타지 못해서 묻혀 버린 곡들이.
입소문을 타는 경우도 있고, 뜬금없이 방송에 한 번 나왔던 것에 임팩트가 있어서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 리메이크를 해서 원곡이 새삼 주목을 받거나.
하지만 그런 케이스의 대부분은 발매 후 완전히 묻혀 버린 뒤에야 일어난다. 황유미는 싱글을 발매한 지 고작 3주 정도 지났을 뿐이다.
“영민 선생님 의견은 어때요? 이렇게 갈까요?”
그리고 이들은 나에게 묻는다. 내가 이 곡을 만들어냈다는 듯이.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뮤비를 갑자기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그렇게 가죠, 흐름을 타기 시작한 지금 확실하게 잡아야 하니까요.”
“그럼 이대로 하겠습니다.”
이윽고 홍보팀에서는 보도 자료를 급하게 만들어내어 언론사로 뿌렸다. 걸그룹에서 실패를 경험한 보컬리스트가 몬스터 뮤직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를 한다는 낯간지러운 문장들로 가득한 기사였다.
그리고 몬스터 뮤직의 웹페이지와 공식 SNS 계정들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
[천재 보컬리스트의 화려한 재기. 몬스터 뮤직을 통해 홀로서기에 나섰다.] [심금을 울리는 가창력. 이 노래 뭐지?]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는 목소리. 몬뮤의 발라드 계보를 잇는 대작.]잠시 후 황유미가 레코딩을 위해 회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멜론 차트에서는 56위까지 상승.
밤새 잠을 못 잤는지, 혹은 눈물을 잔뜩 쏟아냈기에 그런 건지, 눈이 퉁퉁 부은 황유미와 마주쳤을 때는 둘 다 얼떨떨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 * *
아마도 56위가 최고점인 것 같았다. 황유미의 곡은 이날 하루 종일 56위와 58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대중들이 기억도 못 하는 전직 아이돌 출신의 보컬을 솔로로 데뷔시켜서 차트 56위에 알박기해 놓는 것. 그것도 회사의 지원이라곤 하나도 없이 혼자서 이리 뛰며 저리 뛰며 이룩해낸 성과.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축제처럼 요란하지도 않았다.
“야, 그거 차트에 올랐다면서? 축하한다.”
지나가다 마주친 본부장은 그런 인사를 건네주었고
“보컬 트레이닝만 하실 실력이 아닌 것 같네요.”
어떤 직원은 이런 말을 건네주기도 했다.
소소하게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만 떠들썩할 만큼 대단한 일로 쳐주지는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저 내 가슴에 간직하고 있어야 되는 일 같았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이 일을 계기로 내 커리어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아직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이번 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김다은 씨. 자꾸 5분씩 늦으시네요.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죄송해요.”
“우리 셋은 맨날 김다은 씨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 건가요?”
“다음부턴 안 늦을게요.”
내 커리어가 바뀌는 이야기도 해야겠지만, 그보다는 얘네 둘의 이야기를 좀 더 해봐야겠다.
다은이가 팀에 합류한 이후 분위기는 이따금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잠시, 내가 맡고 있는 얘네들을 모른 척 지나칠 수는 없었다.
* * *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는 연화가 다은이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을 회사에선 정말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나 보다.
다은이가 팀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을 때에야 그런 얘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팀은 데뷔를 앞두고 있었고, 이제 와서 손을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황유미에게 물어봤을 때도 그런 대답이 돌아왔었다. 아마도 회사에서는 모르고 있을 거라고. 연화가 그런 감정을 남한테 표출한 건 내가 처음이었을 거라는 말. 그건 사실인 듯했다.
“쟤네 둘 때문에 미치겠어요. 우리가 쟤네 눈치를 보고 있어야 된다니까요.”
팀의 리더인 윤선하는 투정 섞인 투로 그런 말을 하곤 했다.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상한 기류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니 불안한 마음은 누구보다 더할 것이다.
“숙소에서도 저래?”
“아뇨. 숙소에서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잖아요. 연화는 우리 잠든 뒤에야 들어오니까.”
“네가 언니니까 둘 데리고 풀어보지 그랬어.”
“그럴 시간이 없어요. 낮에는 데뷔 준비한다고 정신없고, 밤에 숙소에 들어가면 바로 뻗어버리거든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기를
“다은이 오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안 이랬는데…….”
문제는 심각했다.
하지만 몬스터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몬스터의 어떤 팀은, 이건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팀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팀이라면 이 정도 마찰은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고.
게다가 아이돌 그룹을 키워내는 것에 노하우가 없었던 몬스터는 이런 사소한 마찰이 나중에 커다란 화살이 되어 돌아와 우리 쪽에 상처를 낼 것이란 걸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앞서 말한 불화를 겪고 있는 팀은 아이돌이 아니고 콘서트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팀이었다. 이건 얘기가 다르다. 만약 비츠걸스가 인기를 얻고 팬덤을 얻게 되면 얘네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팬덤의 시야 아래 놓이게 되고 멤버들의 감정선까지 낱낱이 까발려지게 된다. 표정 한 번 이상하게 지었다고 엉뚱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판국이니.
그래서 이런 건 사전에 해결을 해야 되는데.
“안 그래도 이따가 애들 불러놓고 혼 좀 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매니저에게 말해봤자 이런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애들이 무슨 일로 사이가 안 좋은지는 아세요?”
“뭐 뻔하죠. 저 나잇대 여자애들이라면 다 저러잖아요.”
얼마 전 새로 배정된 매니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대화 좀 해보시지 그러세요. 연화하고 다은이 둘을 불러서 무슨 일로 그러는지 얘기를 해보세요. 둘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속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줘도…….”
“에이, 괜찮아요. 쟤네들 데뷔하고 나면 스케줄 소화하느라 싸우고 싶어도 못 싸워요.”
“저도 예전에 팀 활동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쌓인 감정은 바로 풀어버릴 수 있게 해줘야 돼요.”
“별거 아니라니까요. 다은이가 좀 유명한 애니까 텃세 부리는 거죠. 영민 선생님은 노래만 잘 가르치시면 돼요. 이런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노래 쪽은 영민 선생님이 전문가, 이쪽 일은 제가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하하.”
비츠걸스는 데뷔가 확정되었기에 매니지먼트팀에서 정식 매니저를 붙였다.
매니저는 총 세 명. 팀장급 한 명과 로드 두 명. 이 사람은 로드 중 한 명이었다. 현장에서 애들과 계속 붙어 다니는.
“우리 팀에서 맡고 있는 애들 중에 델리아라고 있거든요. 여자 애들 두 명. 얘네 둘도 맨날 싸워요. 스케줄 없으면 둘이 연락도 절대 안 하죠. 그런데 이런 거 모르셨죠? 방송 나가면 친자매처럼 아주 딱 붙어 살잖아요. 그러니까 프로 의식이라는 게…… 자기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그걸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만 조심하면 되거든요. 쟤네들은 제가 나중에 따로 불러서 한 번 혼쭐을 내줄 겁니다.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데 프로가 되면 그런 게 필요한 거예요.”
애들을 관리하는 건 이 사람의 역할,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애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 사람 말대로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나. 적어도 둘 사이가 왜 저런 것인지, 이 회사에서 그 사정을 알고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
* * *
밤 열한 시. 지하 연습실. 이날도 연화는 혼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예전 같은 활기는 느끼기 어려웠다. 땀으로 짙게 젖어버린 트레이닝복을 입고서 연화는 차가운 마루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두 팔이 힘없이 축 처져 있었고 가쁜 호흡으로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서, 그리고 고통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아직 연습하고 있니?”
내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힘겹게 몸을 세워 바닥에 앉았다.
“아냐, 편하게 있어.”
데뷔 일이 가까워져 올수록 연화는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매일 새벽 한 시까지 하던 연습도 점점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나야 회사 안에서 애들을 봐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막상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하는 얘네들 입장에서는 버겁게 느껴지는 강행군일 것이다.
“안 그래도 선생님이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안무하고 같이하니까 몸에 힘이 들어가서 소리가 불안하게 나와요. 호흡이 흐트러져서.”
이런 강행군 속에서도 얘는 더욱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데뷔하자마자 라이브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신인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 훌륭한 무대를 팬들에게 보여줄 거라면서, 나를 붙잡고 따로 가르쳐달라고 매달리는 일이 빈번했다.
10년 동안 준비한 것이 바로 이날을 위한 것이니 무리를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알았어. 내가 잡아줄 수 있는 건 전부 잡아줄게.”
내 말을 듣더니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 얘기도 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10년의 시간을 보상받으려면 팀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도 얘한테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 * *
22살의 김인혁은 지금처럼 뚱뚱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도대체 저 허리 사이즈가 몇일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퍼져 버렸지만.
예전에는 약간 통통한 정도. 그것도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열아홉 살 때에 비해선 조금 살이 불은 것이었다.
“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야?”
“그렇다니까.”
그때부터 녀석은 작곡에 능숙했었다.
지금이야 회사에서 연습생들에게 따로 작곡 레슨을 해주곤 한다. 다은이하고 연화도 프로듀싱팀으로 가서 장비들을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전속 작곡가들에게 이론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때에는 그런 게 없었다.
인혁이가 곡을 쓴다는 걸 회사에서 알았을 때에,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제법 괜찮다는 것을 알았을 때 회사는 작곡가에게 나갈 돈이 굳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뿐이었다.
“이 부분 있잖아. 여기 라인이 좀 약한 거 같거든. 너는 뭐 떠오르는 거 없냐.”
이따금 이런 식으로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나는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멜로디를 들려주기도 했다.
말하자면 공동 작곡. 트랙 메이커와 탑 라이너. 우리가 나중에 성공하면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기가 막힌 작곡 듀오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그런 소리를 잘도 하고 다녔다.
그래서 우리의 데뷔곡에는 내 이름도 올라가게 되었다. 멜로디의 일부를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나에게 작곡 재능은 없었기에 그거 한 곡 작업했던 게 전부였지만.
“여기는 내가 부르고, 여기는 네가 부르고. 오케이?”
“좋아.”
하지만 팀이 만들어지고 데뷔가 정해진 뒤 모든 걸 프로듀서의 손에 움직이게 되자,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는 약간의 경쟁심이 있었을 뿐 그렇게 대립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제가 이런 거 부르려고 여기서 연습생 생활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예?”
언제나 고압적이었던 프로듀서에게 녀석이 대들었던 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었던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곡은 프로듀서의 의해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김인혁의 파트는 대부분이 줄어버렸다.
팀은 메인 보컬인 나를 중심으로 편성되고, 이따금 베이스를 맡고 있는 멤버가 굵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레이션을 할 뿐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주 조금의 단독 파트와 코러스만을 담당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프로듀서가 옳았다. 그 곡은 성공했고, 후에 김인혁이 외부의 개입 없이 만들었던 후속곡은 쫄딱 망해 버렸다.
프로듀서의 손에 의해 곡이 세련되게 탈바꿈되지 않았다면, 데뷔곡 또한 처절하게 망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그 개입으로 인해서, 팀워크는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 * *
“신기하지?”
“예. 진짜…… 대단하네요.”
연화를 사무실로 데려왔다. 함께 보고 싶은 영상이 있었다.
“여기 이 부분. 이렇게 큰 동작을 하면서도 호흡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걸 봐봐. 난 처음에 이 영상을 보고서 립싱크하는 건 줄 알았다니까.”
우리는 셀레나 화이트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재작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라이브 영상. 백댄서 여섯 명과 함께하는 단출한 무대였지만 완벽에 가까운 셀레나의 퍼포먼스 때문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무대였다.
“이 느낌을 잘 익혀봐. 안무 때문에 힘이 계속 분산되지만 중심은 잘 잡혀 있는 거야.”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퇴근해 버린 사무실이었다. 오직 내 책상 부근만을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연화와 나는 PC 모니터의 영상을 함께 보기 위해 바짝 붙어 있었다.
코끝으로 흘러들어오는 그녀의 땀 냄새마저 어쩐지 포근하게 느껴지곤 했다.
한참 동안 영상을 분석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회사에서 너네 팀에 대해서 안 좋은 얘기가 좀 돌고 있더라.”
“알아요.”
아직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연화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선생님, 아까부터 이 얘기 하려고 하셨던 거죠?”
“그래.”
“안 그래도 매니저 아저씨한테 혼났어요. 저녁 먹을 때.”
땀이 말라서 이마 위로 붙어버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연화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는 잘 해보려고 그래요.”
“잘해본다고?”
“같은 팀이니까…… 제 커리어를 망치지 않으려면 김다은 그 사람하고 잘 지내보도록 해야겠죠.”
어라…… 그 매니저 말대로 그냥 혼내기만 하면 잘 풀리는 거였나.
“매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사람하고 사이가 안 좋아 봤자 손해 보는 건 저니까. 겉으로라도 안 그런 척해야겠다고.”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아까도 보니까 다은이한테 짜증 내던데.”
“잘 안 돼요. 그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팀을 위해서는 제가 참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부딪히면 그게 잘 안 돼요. 화가 나고, 짜증도 나고…… 숙소에 들어갔을 때 먼저 자고 있는 거 보면 또 그렇게 돼요.”
무슨 말을 해줘야 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그냥 싫어하는 건데.
“저는 새벽까지 연습을 하면서 저를 계속 발전시키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쉴 거 다 쉬고 잠잘 거 다 자면서 하는 게 좋게 보이지는 않아요. 저는 10년 동안 해서 간신히 이 자리에 왔는데, 그 사람은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서 즐길 거 다 즐기면서 자기 생활을 했잖아요. 그러면서도 노래는 짜증 나게 잘 부르고…….”
“그럼 이런 얘길 진즉에 하질 그랬어.”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선생님한테.”
“나한테 말고. 너희들 관리하는 사람들한테. 그러면 다은이가 팀에 뽑히지도 않았을 거야. 일찌감치 네 의사를 표현했다면 말이야.”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왜?”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제가 그 사람을 신경 쓴다는 게 자존심 상했어요. 티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그럼 다은이를 불러서 같이 새벽까지 연습을 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셋이 모여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건 그렇게 해서 풀 수 있는 갈등이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얘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도 얘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열 살 때부터 친구 하나 없이 연습만 해왔다고 하던데. 이렇게 자기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긍정적인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얘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얘길 하는 거지? 가만 보니까 회사 내의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얘기를 한 마디도 안 하는 것 같던데. 왜 하필 나한테…….
“죄송해요. 이런 얘길 해서.”
“괜찮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흘려들으세요.”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냐. 난 너희들 가르치는 사람인데.”
“노래만 가르쳐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그거 말고는 관여 안 하셔도 돼요. 만약 이러다가 팀이 잘못돼도 선생님한테는 책임이 없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저 때문에 선생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봐 걱정되는 거예요. 만약 팀이 잘못됐는데 거기에 선생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아마도 안 좋게 되겠죠. 안 그런가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참. 어린 애가 그런 말을 내뱉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은 아마 크게 되실 거예요. 제 감에 의하면 그래요.”
“네 감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여기서 10년 동안 연습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어요. 그리고 저는 꼬맹이일 때부터 눈치를 보는 것에 익숙했죠. 오디션에 합격하고 나서 바로 데뷔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었고…… 하지만 1년, 2년, 3년 시간이 계속 지나도 회사에서는 저를 데뷔시켜 주지 않으려고 했고…… 이 회사에서는 나이가 어려도 실력이 있으면 데뷔시키던데 왜 저는 계속 묵혀두고 있는지 속이 상했어요. 그러는 동안 이 회사에 있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신경을 잔뜩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러다가 감이 좋아졌다는 얘기야?”
“누가 성공하는지 누가 실패하는지 계속 지켜봤고, 프로듀서들, 작곡가들, 매니저들, 트레이너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되고 어디까지 가는 건지…… 10년 동안 지켜봤어요.”
그러면서 연화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빛이 잠시 교차했을 때 내 앞에 어른거렸던 투명한 눈동자는 유난히 또렷한 빛을 품고 있었다.
“선생님 처음 봤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되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겠구나 하고.”
“내가 무슨…….”
“그냥 제 감이에요. 틀릴 때도 많아요.”
또다시 나는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선생님은 저희 팀 문제에 너무 관여하지 마세요. 선생님 앞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을 풀고 있던 중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연화 여기 있었니?”
매니저였다. 숙소에서 함께 지낸다는 여자 매니저.
“제가 좀…… 영상 보여줄 게 있어서 여기로 데리고 왔습니다.”
“아, 네. 그럼 좀 더 기다릴까요?”
“아니에요.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연화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매니저를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아까 틀어놓았던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보았다.
머리가 좀 복잡했다.
보내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쟤는 꼭 자기 팀이 실패할 것처럼 말을 했던 거잖아.
관여하지 말라고.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지 말라면서. 자기는 마치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타고 있다는 듯이.
* * *
그럼에도 스케줄은 폭주하는 자동차처럼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애들을 한 명씩 따로 불러서 레코딩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팀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인혁과는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 얘기를 할 시간도 부족했기에 지난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쉬면서 노가리 깔 때도 꽤 있었지만 엔지니어가 같이 있어서 그런 얘기를 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하다가 짬을 내서 나머지 연습생들 레슨을 해주고, 다시 늦은 밤까지 반복되는 레코딩 작업.
피로가 잔뜩 뭉쳐서 쇳덩어리처럼 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뻐근해서 기지개를 켜는 것도 힘들더군.
“확실히 애들을 영민이가 봐주니까 달라지네.”
“그래?”
“연화 목소리도 훨씬 좋아졌어. 감정이 하나도 안 실린 딱딱한 소리였는데 네가 봐주니까 완급조절하는 것부터 달라졌네.”
레코딩된 보컬 트랙을 모니터하는 중에 김인혁은 불쑥 그런 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놨다…… 이 녀석 속은 진짜 알 수가 없다.
“이 곡에 맞게 트레이닝시킨 거야.”
타이틀곡 Open Your Eyes는 발랄한 느낌을 품고 있는 곡이었지만, 포인트는 후반부에 연화가 내지르는 고음이 코러스 위로 얹히는 파트였다. 나머지 세 명이 반복되는 후렴을 부르고 있을 때 애드립을 하듯이 내지르는 고음.
연화를 따로 레슨해 줄 때는 이 파트를 킬링 포인트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세밀하게 목소리를 다듬어주었다.
결과는 괜찮았다. 다은이처럼 천재적으로 요구하는 걸 그 즉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연화는 혼자서 연습을 반복하며 내가 리드하는 것을 잘 따라와 주었다.
“진짜 괜찮아. 메인 보컬 안 바꿔도 되겠네. 전부터 이 파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은이한테 여길 부르게 할지 고민했었는데.”
메인 보컬을 바꿔? 그랬다간 큰일 나지.
“여기 노이즈 들어간 부분만 다시 하고 보컬 트랙은 마무리하죠.”
그리고 그렇게 비츠걸스의 데뷔곡 레코딩은 마무리가 되었다.
* * *
하지만 정신없는 일정 속에서도 얘네들의 팀워크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는 다음 날부터 잘해보려고 한다면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둘은 계속 존댓말을 쓰면서, 그리고 옆에서 보기에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 있었는데.
둘이 좀 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동갑이니까 친구처럼 반말도 하면서. 그렇게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야,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게 얼굴 반반하다고 세상 다 가진 줄 아는 건가.”
“너……? 지금 너라고 했냐?”
“그럼 너라고 하면 안 돼? 네가 그렇게 잘났어?”
둘이선 마침내 반말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 * *
애들이 마침내 반말로 말을 트기 시작했던 그 날, 아니, 그 전날.
오랜만에 그 여자가 꿈에 나타나 주었다.
이게 얼마 만인지…… 하도 보이지 않아서 그만 잊고 있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바쁘기도 했고.
“요즘 많이 바쁘시죠?”
커다란 호수가 보기 좋게 자리 잡은 공원이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느껴질 정도로 화창한 날씨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옆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네.”
“바쁘신 것 같아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른한 휴일 같은 분위기였다. 이대로 벤치에 누워서 낮잠이나 실컷 자고 싶었다.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고, 피로가 꽤 쌓인 것 같아서 이런 장소로 준비했어요. 괜찮나요?”
호수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어린애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소리가 시원한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피곤하시면 제 무릎 베고 주무셔도 돼요.”
“됐어. 무슨.”
엉뚱한 소리나 하는군.
“그나저나 왜 나타난 거지? 당신이 내 꿈속에 나타났다는 건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는 거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번째 능력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그런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요.”
“두 번째 능력이 뭔데?”
“때가 되면 아실 수 있어요.”
그런 시기가 다가온다…… 지금 내 상황에서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싸우는 애들 화해시키는 거?”
그런 말을 했더니 그녀는 풋 하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크게 웃었다.
“왜? 그런 거 아니야?”
“저는 당신에게 잠재된 능력만 개방해 주는 겁니다. 당신에게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럼 뭔데?”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미로 당신 앞에 나타난 겁니다. 곧 그럴 상황이 올 거예요.”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이 여자 앞에서는 그저 풍경 속에 녹아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공원. 여기서 영원히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지금 나는 일이 잘 풀리고 있어. 보컬 트레이너로 이 회사에 들어왔지만, 인력이 부족한 곳이라서 그런지 다른 일도 맡게 되었지. 알고 있지? 싱글 하나 내서 차트에 진입시킨 거.”
“알아요. 운이 좋았죠.”
“운이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황유미가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자기를 알리려고 영상을 꾸준히 올린 덕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거지. 단지 운 때문만은 아니었어.”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운 좋게 팔로워 중에 네임드 BJ가 있었다지만 그런 운도 황유미 본인이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상을 꾸준히 올렸고, 자기가 노래 부르는 것도 빠짐없이 올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맞아요. 그게 중요합니다.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회를 자기가 붙잡아야 돼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면이 부족했죠. 당신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결코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훨씬 높은 위치에 있었을 겁니다.”
또 그 소리군. 마치 나를 혼내는 듯이.
“당신은 좋은 목소리와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기회를 찾아내서 훌륭한 가수가 되었을 겁니다.”
“언제는 나한테 운이 없어서 그랬다면서.”
“그렇기도 합니다. 당신은 유난히 운이 없었어요.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이 곧 데뷔할 팀 멤버들이나 황유미를 이끌어주는 것처럼 누군가 당신을 끌어주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겠죠.”
이랬다저랬다 하는군. 언제는 내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언제는 나한테 운이 없어서.
“중요한 건 당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능력, 음악을 깊은 곳까지 들어내는 능력은 좀 더 빨리 찾아왔을 거예요. 제 도움 없이, 당신 스스로 그걸 깨우쳤을 겁니다. 그건 원래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예민해진 귀를 가지고 계속 음악을 했다면 또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제가 두 번째로 주려는 건 바로 이것입니다. 원래 당신에게 있어야 할 능력을 되찾아주는 겁니다.”
그게 뭔데? 그걸 가지게 되면 내가 어떻게 되는 건데?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점차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뛰어노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드넓은 호수도 점차 희미해졌다.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리들도 점점 아늑한 곳으로 멀어지고 있는 듯했다.
* * *
잠재력이고 뭐고, 당장은 내 눈앞에 있는 문제가 시급했다.
다은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쌤. 저 힘들어요. 그만두고 싶어요.”
지나가는 말로 푸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풀이 죽은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얘가 이렇게 한숨을 자주 내쉬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다은이는 정말로 그만두고 싶어 했다.
“본부장님이 팀에 들어가라고 하셨을 때 결정을 못 내리겠더라구요. 그래서 쌤하고 상의하려고 했는데 스튜디오에 들어가셔서 연락은 안 되고…… 괜히 한다고 했어요. 다시 되돌리고 싶어요.”
다은이는 그런 말을 하면서 의자에서 털썩 주저앉아 어깨를 늘어뜨렸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의자를 좌우로 조금씩 돌리면서.
“레코딩은 다 끝났고. 내일부터 뮤비 촬영한다고?”
“그런다네요. 며칠 걸릴지 몰라요. 밤새워서 할 수도 있다는데…….”
그렇게 뮤비가 완성되면 음원과 뮤비를 공개하고 동시에 데뷔 쇼케이스 무대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세 곡을 부르기로 되어 있는데 요즘 그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때 안 한다고 말을 했어야 하는데…… 저 그때 진짜로 내키지 않았거든요. 쌤. 그런데 만약에 제가 그때 물어봤으면 뭐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하라고 하셨겠죠? 맨날 그런 얘기 했었으니까.”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서 다은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때는 귀여운 여고생이면서 똘망똘망한 눈매로 열정을 빛내고 있는 아이였다.
따로 남게 해서 레슨을 해주었을 때에도 자기 목소리가 발전한다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곤 했었다.
물론 그때도 ‘저는 이렇게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하고 말을 하며 데뷔에 강한 열망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친구가 죽고 나서, 아마도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네가 나한테 물어봤으면? 글쎄.”
가수가 되었다가 험악한 스캔들에 휘말려 결국 자살한 친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는 이제 가수가 되고 싶지 않고 나처럼 노래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싶다고.
“하라고 했겠죠. 뭐. 쌤은 맨날 저한테 그랬잖아요. ‘나는 가수로 실패했지만 네가 대신 성공하면 만족스러울 거야.’ 이러면서.”
갑자기 굵은 목소리를 내며 내 흉내를 내길래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걸 보면서 다은이도 함께 웃었고.
“그리고 또 뭐라더라. ‘나는 이제 너 같은 애를 무대로 올려보내는 일에 전념할 거야.’ 막 이러고.”
“알았어. 그만해.”
축 처진 분위기였지만 내 흉내를 내는 게 우스워서 계속 입가에 미소를 걸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때 네가 나한테 물어봤으면? 글쎄.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을 거야. 과연 팀으로 데뷔하는 게 좋을지 여러 사정을 고려해 봐야겠지.”
게다가 너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멤버가 있는 팀이니까.
“그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을 수도 있는 거예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다은이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노골적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는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내일모레가 데뷔인데.”
“그러니까 말이에요. 소원 이루셨네요, 몇 달 잘 키워서 결국 무대로 올려보내셨으니.”
“그나저나 연습시간에 늦지는 마. 왜 자꾸 5분씩 늦게 들어오는 거냐?”
“그게…… 들어가기 싫어서 계속 뜸 들이다가…… 알았어요. 이제부터 안 늦을게요.”
그러더니 이제는 허리를 세워서 의자에 앉은 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이 360도로 돌면서.
낡아빠진 의자는 삐걱삐걱 듣기 싫은 소음을 내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열심히 해볼게요. 쌤이 원하는 게 이거였다고 하니까 한번 해보죠.”
“그래.”
“두고 봐요. 나중에 진짜 유명해져서 싸인해 달라고 해도 안 해줘야지.”
* * *
연화는 잘 지내보겠다고 말을 했고, 다은이도 그런 식으로 말했지만…… 문제는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레코딩을 마치고, 이제 쇼케이스 때 보여줄 곡을 맞춰보기 위해 모인 날.
보컬 트레이너인 나도 참석했고, 안무 트레이너도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데뷔곡 외에 두 곡을 더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것까지 봐줘야 했다.
데뷔 전부터 팬덤이 형성되고 있는 그룹의 경우는 쇼케이스가 시끌벅적하다. 팬들이 잔뜩 몰려와서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무대가 펼쳐지곤 한다.
하지만 비츠걸스처럼 아직 팬이 모이지 않은 팀의 경우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쇼케이스 무대를 선보인다. 관계자들, 그러니까 기자나 방송국, 그리고 음악 쪽 관계자들.
그러니 무대의 완성도를 한껏 높일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얘네들은 몬스터 뮤직에서 처음 내보내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고지식하게 음악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회사에서 아이돌을 내보내는 것이다.
멤버 개개인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 그리고 그 조화도 음악적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제작자인 김인혁도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모여 있음에도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늘 그랬듯이 다은이가 좀 늦었다.
“죄송합니다.”
다은이는 분주한 걸음으로 들어와 고개를 푹 숙였다.
또 지각인가. 5분까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모두들 제시간에 모여 있음에도 얘 혼자 늦은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한소리 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다은이를 혼내려고 했는데.
“우리 팀 잘 안 될 것 같아요. 맨날 늦고…… 나중에 음방 같은 거 나가면 리허설 때도 늦고, 녹화 때도 늦고…… 이러다가 누구 때문에 지각돌이라는 소리 듣겠네.”
혼잣말을 하듯이 다른 곳을 보며 내뱉은 말이었지만 연화의 목소리는 연습실 끝에 있어도 다 들릴 만큼 분명했다.
또 시작이다. 쟤네 둘 저러는 거.
그런데 잘 지내보겠다고 했잖아. 그 날 밤, 나한테 분명히.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갑자기 연화한테 서운한 감정과 함께 분노가 벌컥 일어났다.
다은이를 겨냥하고 있었던 화살촉이 뜬금없이 그쪽을 향하게 된 것이었다.
“너는…… 같은 팀원을 챙겨주지는 못하면서 그렇게 비꼬고 있냐? 그러면서 너네가 팀이야? 이럴 거면 뭐하러 팀으로 나가. 그냥 넷이 각자 혼자 나가.”
그러자 연화는 눈에 불을 켜고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관여하시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왜 그러세요?”
대든다기보다는 원망이 섞인 눈빛이었다. 건드리면 눈물을 툭 쏟아낼 것 같은 눈.
“왜 저 사람만 챙겨주시고 저한테만 참으라고 하세요? 그냥 참견하지 마시라구요. 선생님은 노래만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그냥 노래만 가르쳐 주세요. 이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그때까지만 해도 둘 사이가 안 좋다고 하지만 티격태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은 공격만 했고 다른 한쪽은 그걸 그대로 맞고만 있었을 뿐이지.
“한연화…… 지금 선생님한테 무슨 말을…….”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전투를 앞두고 있는 무사처럼 적대심이 눈가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야,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게 얼굴 반반하다고 세상 다 가진 줄 아는 건가.”
“너……? 지금 너라고 했냐?”
“그럼 너라고 하면 안 돼? 네가 그렇게 잘났어? 어떻게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이대로 진행되었으면 아마도 내 쪽에서 소리를 버럭 내질렀을 것이다.
“어머…… 너네 지금 싸우니? 우리 앞에서?”
안무 트레이너가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하기에 나는 간신히 참고 있을 수 있었다.
“아니…… 얘가 선생님한테 막말을 하길래…….”
그러자 안무 트레이너는 애들 앞으로 걸어나갔다. 뚜벅뚜벅 연습실 바닥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냉랭하게 이곳을 울렸다.
“너네 팀워크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 아주 갈 데까지 갔네. 그리고 한연화. 너 지금 당장 영민 선생님한테 사과해.”
“죄송합니다. 저는 그게 아니고…….”
“내가 사과하라고 했지, 언제 핑계 대라고 했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연습실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영민 선생님. 얘네들 어떡하죠? 다른 회사 같으면 데뷔 미뤄 버리고 얘네 둘 아웃시켜 버리는데 이 회사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다른 회사는 그렇게 해요?”
“잘못 데뷔시켜서 투자한 돈 다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미루는 게 차라리 나으니까요.”
하지만 몬스터 뮤직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네 명으로 내보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날은 본격적으로 빨간불이 들어온 날이었다.
억지로 연습을 마쳤지만 앞으로 얘네 둘 사이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