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s out I was a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
1장 두 번째 능력을 개방함(2)
아이즈 컴퍼니의 김우진 실장은 연습실을 찾았다. 플라지아의 일곱 멤버는 한쪽 면이 거울로 되어 있는 넓은 연습실 안에서 안무를 맞춰보고 있었다.
멤버 한 명이 교체되었기에 호흡을 좀 더 맞춰볼 필요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맥없는 인사가 실오라기처럼 김우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플라지아는 이제 4년 차.
인사 소리부터가 달라졌다. 데뷔 전, 멤버를 선발할 때만 해도 애들은 김우진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인사받는 사람이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허리를 꾸벅 숙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래서 인성도 좀 봤어야 했는데.
각기 다른 일곱 가지의 매력을 조합한다는 컨셉이었기에, 애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에만 집착했었다. 조금 결함이 있다고 해도 남들과 다른 색깔을 가질 수 있는 아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선발했다. 때로는 그 결함이 인성일 때도 있어서 곤란했지만.
“너희들 안 좋은 소문이 좀 돌고 있어.”
“왜요?”
하지만 인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 바닥에 오래 있으면서 깨달은 것이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모자란 부분을 대중들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상품은 계속 팔아 댈 수 있다.
어차피 밖으로 보이는 부분만 잘 다듬어서 내보내면 되니까.
“너네 요즘도 후배들 기죽이냐?”
“뭘요?”
“신인 팀들 너네 대기실로 불러서 갈군다면서?”
그랬더니 플라지아 애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뭐라고 해야 돼? 하는 눈빛으로.
“그냥…… 선배로서 후배들을 좀 봐준 거예요. 잘하라고.”
“너네한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자 곧바로 불편한 기색이 애들 얼굴에 나타난다. ‘또 시작이군. 이 꼰대는’ 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만약에 그 애들이 그걸 까발리면 어떡할 거야? 천사처럼 포장하고 있는 플라지아가 사실은 싸가지 없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걸 밝혀 버리면?”
“그럼 우리 팬들이 가만히 안 있을 걸요.”
“너희 팬들이야 너희를 쉴드 치겠지. 하지만 경쟁 팬덤에서 좋다고 이걸 물어버리면?.”
“…….”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른다. 김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전 그 끔찍한 스캔들을 겪은 걸 벌써 잊어버린 건가. 오히려 그걸 쉽게 넘겼으니 세상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신인 팀이 SNS에서라도 그걸 까발리면 어떡할래? 플라지아한테 인사하러 갔더니 노래시키고 춤 시키고, 그리고 그걸 폄하하고 조롱하면서 자기들을 모욕했다. 이런 말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
“만약에 그런 글이 올라오면 너네는 절대 대응하지 마. 보이는 즉시 회사에 연락하고 너희는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알았어?”
“네.”
“대신 회사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는 지금 말해줄 거니까 숙지하고 있어. 어디 가서 말실수는 하지 말라는 얘기야.”
“…….”
“우선 그 후배 팀이 인사를 하기 위해서 너네 대기실을 찾은 것까지는 맞아. 하지만 열심히 인사를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 너네는, 아까 리허설 때 봤는데 곡이 매력적이어서 분명히 성공할 거라는 덕담을 건넨 거지. 그랬더니 신인 팀은 신이 나서 너네 앞에서 자기들 곡의 한 소절을 부른 거야. 대기실 안에서.”
“알았어요.”
“오히려 신인 쪽에서 조금 나댔다는 느낌을 줘버리는 거지. 노래를 시킨 적은 없고 춤도 시킨 적이 없다. 그 애들의 기분이 너무 업된 것처럼 보이더니 오바를 하면서 너네 대기실에서 노래를 한 거다. 그러는 동안 너희는 살짝 당황했던 거야. 그게 표정으로 드러나자 상대방은 불쾌하게 여겼고, 그 때문에 있지도 않은 얘기를 지어낸 거야. 이런 프레임으로 가자고.”
플라지아의 몇몇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김우진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너네들이 직접 대응하지 마. 우리 홍보팀에서 가이드대로 대응할 거니까. 알고만 있으라는 거야. 어디 가서 잘못 떠벌리지 말고.”
“예.”
그런 다음에 상대방이 반박을 한다면, 김우진은 역으로 공격을 취할 생각이었다. 댓글 부대를 동원해서 상대방이 플라지아를 물어뜯는 것으로 자기들의 지명도를 높이려고 하는 짓이라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팬덤은 편을 들어줄 것이고, 상대방은 알아서 풀이 죽을 것이다.
“나 원 참…… 이런 것까지 너희들한테 얘기하고 있어야 되니…….”
인성이 개판이라도 상품을 팔아댈 수는 있다. 하지만 관리자는 피곤해진다. 김우진 실장처럼.
얼마 전 스캔들도 그랬다. 새벽에 전화를 받았을 때 김우진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김우진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해당 멤버를 팀에서 탈퇴시킨 후 외국으로 보내 버린 것이었다. 회사에서 퇴출시키진 않았다. 경비까지 모두 회사에서 부담해서 가족들까지 함께 외국으로 보내주었다.
행여나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회사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가능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보내서 마음을 추스르게 해주는 것이다. 온 국민이 그 스캔들을 알고 있는 한국에 남아 있다가는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그런 뒤에는 멤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노골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면 오히려 대중들의 반감을 살 테니까.
그래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새로운 멤버를 선발해야 했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그렇게 대중들의 시선을 참가자들에게 돌리게 했고, 그 중간중간 멤버들의 따뜻한 모습을 끼워 넣어서 이미지의 반전을 노렸다.
성격 까칠한 플라지아 멤버들에게 그런 모습을 연기하게 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괜찮았고, 이 모든 걸 기획한 김우진은 회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즈 컴퍼니 A&R 3본부의 실장.
처음에는 작곡가로 회사에 입사했지만 아티스트들을 관리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쪽으로 더욱 힘을 쓰게 되었다.
“그럼 알아서 주의해.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SNS 할 때는 특히 조심해. 내가 뭐만 올리라고 했지?”
“글은 쓰지 않고 사진만 올린다.”
“써도 되는 글은?”
“앨범 홍보와 팬들에게 감사합니다 라는 글.”
“사진은 어떤 걸 주의하라고 했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귀에 못 박히도록 잔소리를 들은 플라지아 멤버들은 무슨 계명처럼 그걸 외우고 있었다.
“알았으면 연습 계속하고, 연습 끝나면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
* * *
애들을 관리하는 건 언제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활동을 하고 있을 때나 아닐 때나 늘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무슨 안 좋은 뉴스라도 뜨지 않았는지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회사에서 연락 온 것이라도 있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순항 중이다. 이 정도면 스캔들도 이겨냈다.
남은 일은 플라지아를 역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만든 뒤 미국 시장으로 진출시키는 것.
김우진 실장은 그것을 해내고 싶었다.
올해를 플라지아의 해로 만들어버린 뒤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차트에서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록을 만들어내고, 연말 시상식에서도 플라지아의 이름 만을 가장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이번 정규 앨범의 초동 판매량도 벌써 기록을 경신했다.
이대로 가면 앨범 판매량에서부터 아이돌 역대 최고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게다가 차트에서도 컴백 이후 꾸준히 1위. 주요 4개 차트 모두.
아직 1위의 자리를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았다.
연말까지, 그 누구도 1이라는 숫자를 만져볼 수 없을 것이다. 올해는 플라지아의 해다.
“나 외근 나갔다 올게.”
“김 실장님. 본부장님께서 아까 찾으셨습니다.”
“무슨 일로?”
“그건 모르겠습니다.”
“급한 거면 전화했었겠지. 아…… 그리고 오늘 애들 연습 일찍 끝날 거야.”
“네.”
“로드 한 명 더 붙여서 남자 못 만나게 감시해.”
“알겠습니다.”
김우진은 다시 한번 스튜디오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플라지아의 스페셜 앨범이 한창 마스터링 중이었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애들의 분위기를 바꾸어 리패키지 앨범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도 지기 싫은 김우진은 스튜디오의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결과물을 직접 검토한 뒤에야 음원을 발매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박영민을 처음 만난 것도 그 스튜디오에서였군.
원석을 발굴해낼 수 있는 그의 예민한 감각이 이상한 쪽으로 발동되었던 그때.
김우진은 자신의 감각을 믿고 있었다. 전혀 꾸미지 않은 연습생의 모습에서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매력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스타가 될 수 있는 애들을 발견해냈고, 그것은 지금까지 모두 적중했다.
그런데 그 사람…… 김우진의 촉은 서른이 넘어 보이는 그 남자에게서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보컬 트레이너라고? 그런데 제작 쪽에 손을 대고 있다고?
하필이면 몬스터 뮤직에서도 걸그룹을 내보낸다고 했다. 그런 회사에서 무슨 아이돌인가 싶었지만 프로필 사진을 얼핏 보니 애들 와꾸가 예사롭지 않았다.
비주얼 에이스의 모습은 김우진의 시선을 한참 동안 붙잡아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멤버 한 명만 주목받는 팀은 오래 갈 수 없어.
상대가 되진 않을 것 같지만, 경계는 하고 있어야 되나.
그런 생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며 김우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황유미 ‘그리고 다시 사랑’.
멜론 차트 실시간 29위
또 낸 건가? 이번에도 편곡은 박영민.
곧바로 들어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차 안에 도착한 뒤…… 그는 황유미의 노래를 들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머뭇거렸다.
듣지 말자. 혹시 모르니까.
박영민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이상한 촉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차트에서는 22위.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새로 업데이트되는 실시간 차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을 뿐이지만 소폭 올라 있었다.
* * *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에는 17위.
왜 이런 거지? 상승 추이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재기? 조작? 하지만 지표를 보면 그건 아니었다. 사재기를 한 것은 지표에서부터 티가 난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 거 다 됐다면서요?”
“예.”
“들어보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와서도 주머니 속 핸드폰이 자꾸 신경 쓰였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손으론 핸드폰을 꺼내고 있었다.
또 한 시간이 지났으니까 차트가 업데이트됐을 텐데.
모니터링 스피커에서 울리고 있는 음악을 뒤로하고 김우진은 또다시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9위?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순위가 상승한다고?
여전히 1위와 2위는 플라지아의 곡이었다. 두 곡 모두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그 위치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점유율은 각각 41%, 32%.
“김 실장님?”
“아, 네…… 죄송합니다. 다시 들어보죠.”
김우진은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어버렸다. 다시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 봤자 실패한 아이돌.
플라지아의 벽을 뚫고 올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이곳. 바로 이 자리에서.
오묘한 느낌을 풍기던 박영민이라는 그 사람이 자꾸 떠오르기는 했지만.
* * *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저희도 확인 중입니다.
“내가 사무실 도착할 때까지 전부 대기하고 있어. 애들도 들여보내지 말고 계속 연습시켜.”
-알겠습니다.
1위와 2위를 지키던 플라지아의 곡이 한 단계씩 내려왔다.
그리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해 버린 건 황유미의 그리고 다시 사랑.
시동이 걸려 있는 차는 출발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게 1위를 한다고?
우리 애들의 곡을 내려 버렸어?
들어볼까? 들어봐야 하나. 도대체 무슨 곡이길래.
얼마나 대단한 곡이길래 자신의 앞길을 가리고 있는 건지.
왜 재를 뿌려놓는 건지.
아까부터 끈질기게 참고 있었던 손가락이 마침내 황유미의 이름을 터치했다.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는 카오디오가 작은 종소리를 울리며 인트로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 * *
시동이 걸려 있는 차는 30분째 그 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새카만 밴의 배기구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차 안의 이 공간은 황유미의 목소리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곡조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선율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와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 버린 것 같았다.
그 세상에서 김우진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자신이 아이즈 컴퍼니의 실장이라는 것과 그와 엮여 있는 현실은 깨끗하게 지워 버릴 수 있었다.
오직 음악을 느끼고 소리에만 젖어 들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를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그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이별을 겪은 뒤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지난 사랑에게 안녕을 고하며 새로운 인연을 향해 떠나고 있다. 그는 감정이라는 것을 잊었고 그의 감정은 애절한 멜로디가 대신 표현해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면 견딜 수 없이 허기가 느껴졌고, 자제할 수 없는 손가락이 다시 음악을 찾아 헤맸다.
그러기를 30분.
김우진은 패배했다.
1이라는 숫자를 아무에게도 내어주지 않으려고 했다.
올해를 플라지아의 해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건 싸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대적할 수 없는 엄청난 명곡이라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게 일어서 있는 조각상 앞에서, 그는 작은 소년의 몸집으로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벌써 밤 열한 시 반. 그럼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사무실로 돌아오니 직원들은 대낮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합창을 하듯이 사무실을 울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저녁 드셔야죠.”
“아뇨. 생각 없습니다.”
밥 생각이 날 리가 있나. 1위를 했다는데.
“도시락이라도 좀 드세요. 몇 개 여분으로 사온 거 남아 있을 거예요.”
“아, 예.”
잠에서 덜 깬 건 아닌데 이상하게 현실감은 없었다. 기껏해야 30위 정도, 만약 20위 안에만 들어올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 참.
“할 얘기가 참 많은데…… 저 이것만 송부하구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홍보팀장은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마도 보도 자료를 직접 작성하는 듯했다.
나는 내 책상으로 돌아와 PC로 웹에 접속했다. 핸드폰이 나를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들어서.
그런데 1위다. 1위가 맞다.
게다가 커다란 PC 모니터로 보니까 그래프도 분명하게 보였다. 오른쪽을 향해 가파르게 등산하고 있는 근사한 녹색 그래프가.
“1위 한 거 맞죠?”
“네. 11시 정각 차트를 기준으로 1위에 올라왔어요.”
“와…….”
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입에서는.
“휴…… 이제 됐습니다. 기사 좀 고쳐달라고 메일 보냈어요. 이제 어뷰징 기사들이 막 따라오고 있어서.”
“그래요?”
“그 전까지는 하나도 없었는데 1위를 찍은 이후로 어뷰징이 따라붙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문구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수정 좀 해달라고 했죠.”
안 그래도 포털에서 검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발라드 여제의 귀환’ 이런 기사는 내가 보기에도 낯부끄럽기는 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1위를 하다니.”
“그건 제가 영민 선생님한테 묻고 싶은 거예요.”
“예?”
“어떻게 하셨길래 이런 곡을 만들어내신 거예요?”
하하하.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프로듀싱팀도 뒤집어졌어요. 막내가 일 저질렀다고요. 그런데 막내라는 그분…… 이정인 씨가 하는 말 들어보니까 영민 선생님이 곡을 다 뜯어고쳤다면서요?”
“저야 뭐 유미한테 잘 맞출 수 있도록 조금 손을 댄 것뿐이었죠.”
“정인 씨 얘기 들으니까 영민 선생님이 곡을 새롭게 만들어내신 수준이라던데.”
또다시 하하하. 그저 웃는 수밖에.
“곡이 너무 좋아요. 저도 듣자마자 삘이 딱 오더라구요. 이건 되겠구나 하고.”
“유미가 열심히 불렀죠.”
“곡이 좋으니까 밀어주는 만큼 힘을 잘 받는 것 같아요. 여기 이거 댓글 좀 읽어보세요. 이런 반응이 대세예요.”
홍보팀장은 모니터를 손가락을 가리켰다. 어느 사이트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에는 댓글이 한 가득이었다.
-멍 때리면서 계속 반복하면서 듣고 있었더니 벌써 잘 시간이네.
-이 정도는 돼야 1위지.
-멜로디가 너무 좋아요. 너무…… 진짜 너무.
-노래 잘못 들었네요. 그 사람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었는데…….
호평 일색이었다.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사재기 아니냐는 의심도 많습니다. 아니, 댓글 따라가다 보면 꼭 몇 개씩 있어요. 그런 말이.”
몇 개씩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댓글 페이지를 조금 넘겨보니 전부 그런 얘기였다. 사재기, 사재기…… 게다가 그런 댓글은 공감까지 꽤 얻고 있었다.
“신경 쓰진 마세요. 우린 떳떳하니까 상관없어요. 저런 의견에 반박하는 내용도 곧 기사로 나갈 겁니다.”
그러면서 홍보팀장은 지표에서 전혀 문제없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런 사재기 음원들과 상승 추이만 엇비슷할 뿐, 의심을 키우는 정황 같은 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특정 차트에서만 힘을 쓴다든가,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고 있는 곡이 유튜브에서는 죽 쑤고 있다든가, 그렇게 이상한 정황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황유미의 곡은 유튜브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의 결과를 내고 있었다.
“피곤한 줄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일해보는 게 얼마 만인지…… 좋은 음악을 만들어서 그걸 홍보하는 게 말이에요. 간만에 몬스터 뮤직답게 일하고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비츠걸스의 실패로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컴컴했던 사무실에 무지개라도 환하게 피어오른 듯싶었다.
“아 참, 그리고 정 팀장이 계속 찾았어요. 지금 주무시는 중이라고 핸드폰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했었어요.”
“정영수 팀장님이요?”
“예. 전화 한번 해보세요.”
“그럼 방송은 어떻게 된 건가요? 잘 됐어요?”
오늘은 황유미의 방송 출연이 있는 날이었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음원 출시일을 오늘로 맞춘 것이다. 홍보 효과 좀 얻으려고.
황유미는 보름 전에도 방송에 출연했다. 공중파 산하의 어느 음악 전문 채널에.
그런데 거기서는 분량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처음 나와서 인사하는 장면 5초 정도, 중간에 리액션 하는 장면 조금씩. 그게 전부였다. 그저 병풍으로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뮤지션들이 여럿 출연하는 종편 프로그램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은 제발 분량 좀 확보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분량 많이 따냈어요. 이번에는.”
“정말이에요?”
“신곡 홍보까지 확실했습니다. 몰랐는데 애가 말도 또박또박 잘하더라구요. 노골적으로 홍보를 하는 건데 밉게 보이지 않게 잘 대처하고, MC들 멘트도 재치있게 받아치고, 그런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나왔어요.”
유미가 말은 참 잘하지. 혼자 벽 보고 떠드는 거나 다름없는 유튜브 방송도 그렇게나 열심히 해왔으니.
“덕분에 차트에 바로 진입했죠. 정 팀장이 애썼어요. 일주일 내내 피디 붙잡고 그렇게나 사정했다고 하던데.”
모든 것이 착착 잘 맞아떨어졌다.
능력 있는 매니지먼트가 판을 잘 깔아주었고 아티스트는 그 위에서 자기가 할 만큼 잘 해내었다.
아무리 그래도 1위를 했다는 건 믿겨지지가 않는데…… 곡이 좋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느낀 대중성이라는 게 그대로 먹힌 것인가. 사람들을 중독적으로 빨아들이는 그런 것이.
“그나저나…… 제작 쪽으로 계속 해보시는 게 어때요?”
“저요?”
“이렇게 할 맛 나는 일을 계속 맡아보고 싶어서요. 이참에 작곡도 해보시지 그래요. 워낙 다재다능하셔서 잘하실 것 같은데.”
“에이, 작곡은 안 돼요.”
“얘기 들어보니까 이 곡은 영민 선생님이 다 쓰신 거라던데요. 그러면서 편곡에만 이름 올린 건 대인배라고.”
“해봤는데 그건 안 되더군요. 어떤 느낌으로 가야 하는지는 뚜렷하게 보이는 게 있어도 그걸 사운드로 표현하는 건 잘 안 돼요.”
나도 시도는 많이 해봤지. 이정인에게 요구를 하면서 내가 직접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툴을 만지면서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내 귀가 더욱 예민해졌기 때문인지,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어린애가 억지를 쓰는 느낌에 불과했다.
내가 원하는 건 뚜렷한 영감을 바탕으로 창작을 해내는 것이지, 머리를 굴려서 그려놓은 설계도 같은 것이 아니었다.
“기술적인 문제 아닐까요? 계속 해보시면 잘하실 것 같은데.”
그렇게 홍보팀장과 떠드는 동안 시간은 또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제 12시 정각. 차트가 리프레시되었다.
황유미의 그리고 또 사랑은 여전히 1위.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하고 있는 황유미의 재킷 사진이 차트의 최상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전속 작곡가들이 모여 있는 작업실은 늦은 시간에도 활발하게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
창작을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밤낮이 바뀐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이날 이정인 또한 선배 작곡가의 어시를 맡고 있어서 이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어? 귀하신 분이 오셨네.”
작업실에는 네 사람이 남아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있던 그들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영민 선생님. 축하해요.”
“제가 축하를 하러 온 건데요? 곡은 여기 정인 씨가 다 쓰신 거니.”
“에이, 막내한테 들어보니까 영민 선생님이 다 잡아주신 거더구만.”
여기 처음 들렀을 때만 해도 내가 들어온 건 안중에 없는 채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있던 이들이, 이번에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올해 첫 1위예요.”
“그런가요?”
“안 그래도 내일 전무님 오신다고 했는데…… 이 곡 아니었으면 얼굴 들고 있을 수도 없었을 뻔했습니다.”
사실 음원 차트 1위를 한다고 해서 회사에 큰 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음원 수익이라고 해봤자 유명세에 비해서는 초라할 뿐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기에 부가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고 봐야 했다.
“전무님 내일 오신대요?”
“그런답니다. 우린 다 죽었죠, 뭐.”
요 며칠, 음원 낸다고 바쁘게 움직였더니 이런 소식도 모르고 있었다.
“정인 씨는 바빠요? 1위 찍은 기념으로 맥주나 한 잔 할까 하는데.”
“저, 저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매니저 정 팀장님하고 유미도 부를 거예요. 빨리 끝내고 오세요.”
이정인은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덩치는 산만 한 사람이 혀가 보일 정도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네.
“그거 드럼 찍는 것만 끝내고 나가 봐. 영민 선생님 돈 쓰게 하지 말고 네가 사라.”
“아…… 예.”
그러면서 그들은 나를 향해 여전히 흐뭇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해내셨네요. 대단합니다. 이런 뜻이 담겨 있는 미소를.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서 이정인 씨가 좋은 선배들 덕분에 곡을 잘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작업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어둠 가득한 풍경마저 환한 빛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되는구나. 이게.
다음에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면 절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 * *
하지만 사무실을 나서는 동안, 나는 우중충한 얼굴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비츠걸스 네 명이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가는 거니?”
“네.”
대답에도 기운이 없었다.
“수고했어.”
“내일 뵙겠습니다.”
한창 활동 중인 애들을 내일 또 본다는 것.
얘네들은 내일도 스케줄이 없었다.
“피곤하지? 내가 마실 것 좀 사줄까?”
“쌤. 진짜요?”
“아뇨. 괜찮습니다.”
죄인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애들은 거절의 의사로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러지 말고, 매니저 아직 안 온 것 같으니까 잠깐 편의점에 갔다 오자.”
“아뇨. 정말 괜찮아요.”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애들이 조금만 더 컸다면 맥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는데.
애들은 한사코 거절했다.
두 번째 싱글도 시장에서의 반응은 차가웠다.
차트에 들어가는 건 바랄 수도 없었고, 데뷔했다는 이유로 간신히 잡아내던 방송 일정도 이제는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요즘 들어 어깨가 축 처져 있는 애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 와중에.
회사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박정식 전무가 간만에 회사를 찾아온다고 한다.
주로 밖에서 일을 보느라 회사 안에서는 마주치기도 힘들었던 그 사람이.
보나 마나 비츠걸스의 초반 부진을 질책하기 위해 오는 것이 뻔했다.
이 프로젝트로 투자받은 돈이 한두 푼은 아니었고, 그게 다 박정식 전무의 영업력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그는 회사에 커다란 변화를 요구했다.
이대로 계속 지지부진하게 있을 수는 없다고.
아마도 그런 얘기를 하겠지.
이런 상황에서 때마침 황유미를 차트 1위로 올린 것은 참으로 시기적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정교한 톱네가 설계해 놓은 대로 딱 맞물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