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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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녹색 머리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물론 염색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잠들어 있는 아이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반짝거리며 부드럽게 출렁이는 긴 머리카락은 햇살이 나뭇잎 위에 부딪혀 만들어진 것 같은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녹색이었다.
“설마… 하르메아?”
네아의 중얼거림에 리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엘라는 끙끙거리며 하르메아를 고쳐 안았다. 아무리 아이의 모습이라고 해도 리엘라가 쉽게 안을 수 있을 만큼 작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하르메아를 안고 있는 리엘라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리 줘.”
리엘라가 힘겨워하는 것을 안 하운이 팔을 뻗어 그녀의 품 안에 있던 하르메아를 받아 안으려 했다. 그러자 그 사이 잠이 깬 하르메아가 졸린 눈을 한 채 리엘라에게 매달렸다.
“하운은 싫어, 리엘라랑 갈래.”
하르메아가 목을 붙잡으며 매달리자 리엘라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르, 좀 무거운데요….”
“싫어. 안아 줘.”
하르메아는 칭얼거리며 리엘라에게 더욱 매달렸다. 그 모습에 네아는 어이가 없었다. 어딜 봐서 저게 드래곤이란 말인가.
하르메아가 어떤 드래곤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적대적이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누가 보면 리엘라가 제 엄마인 줄 알 것이다.
네아가 ‘이게 뭐야?’라는 얼굴로 하르메아를 노려보고 있자 리엘라가 설명하려 했다.
“네아, 이 쪽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알 것 같아요. 이게 하르메아인가요? 그리고 하르라니? 그건 설마 애칭?”
“네, 그렇긴 한데….”
“아니 그보다 어쩌다 이런걸 주워 오시는 건가요? 군식구는 저거 하나만으로도 신경 쓰이는데.”
네아가 하운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리엘라에게 다가가자 하르메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처럼 동그랗던 눈동자가 갑자기 세로로 길어지더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뭐야? 왜 여기에 드래고니….”
“너, 이리 와.”
그때 하운이 손을 뻗더니 하르메아의 뒷덜미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 탓에 하르메아는 말을 끝내지 못한 채 하운의 손에 들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야 했다. 아무리 아이의 모습이라고 해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덩치는 아니었는데 하운은 마치 새끼고양이를 잡아들 듯 무척이나 쉽게 잡아 올렸다.
“올 때 했던 말 기억 안 나나? 어서 빨리 보석들을 확인해 본 다음 없으면 네 레어로 돌아가.”
“싫어! 벨라리아가 되살아 날 때 까지 기다릴 거야!”
“인간은 드래곤과 달라.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래도 기다리면 살아날지 몰라!”
“불가능하다니까.”
“이거 놔! 그러면 벨라리아가 묻힌 곳에 가서 시체라도 뜯어먹을 거야!”
버둥거리는 모습이나 인간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거라 생각하는 것까지는 귀여웠는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귀엽지 못했다.
하운은 시끄럽다고 말한 다음 밀가루 포대를 옮기듯 하르메아를 어깨에 얹은 다음 재빨리 보석의 방을 향해 가 버렸다. 멀리서 여기서 드래곤으로 변신하면 정말로 가만 두지 않을 거라 윽박지르는 하운의 목소리와 누가 너 따위 무서워할 것 같냐며 소리치는 하르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르메아가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리엘라는 네아에게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하르메아가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찾은 이야기. 왕궁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아르펠트의 진주와 하운이 힘을 쓴 탓에 제가 던진 돌에 제가 맞아 다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인간의 모습이 된 하르메아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면서 매달렸다는 이야기까지.
“그래서 일단 계속 왕궁에 있을 이유도 없고 하르메아가 말한 보석도 찾아 줘야 할 것 같아서 저택으로 데리고 왔어요. 과정이 좀 험난하긴 했지만 하운 님과 레티시아 왕비님께서 처리해 주신 덕분에 바로 올 수 있었고요. 그러고 보니 네아는 공작님께 하르메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 없어요?”
“예전에 이야기를 하긴 하셨어요. 설득하느라 고생했다고 하셨네요. 한참 후에야 이상한 걸 눈치 챌 거라고도 이야기하셨고요. 보석을 심으면 보석이 자란다는 말을 믿다니…. 멍청한 걸까요?”
네아의 말에 리엘라의 표정이 굳었다.
“아직 어린 드래곤이잖아요. 메아닌 산맥에서 계속 자랐으니 주변에서 씨앗이 떨어지면 그 곳에서 새로운 싹이 나는걸 보았을 거고 무언가를 심으면 그게 자라난다고 당연히 생각했겠지요. 그리고 공작님이 속였다면 공작님이 잘못하신거지 속은 하르메아가 나쁜 건 아니잖아요?”
드물게 강하게 말하는 리엘라의 모습에 네아는 고개를 숙였다. 리엘라의 말이 맞았다. 속은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속인 사람이 나쁜 것이다.
네아가 아무 말도 못하자 리엘라는 더 말하지 않고 하운과 하르메아가 간 곳을 바라보았다.
주먹만 한 녹색의 에메랄드. 힘이 있긴 한데 무슨 힘인지는 하르메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힘이 느껴져서 산을 파고 들어갔다고 한다. 도중에 땅이 무너져 그 안에서 갇혔지만 계속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고.
여하튼 그렇게 찾아낸 것이 그 에메랄드였다고 했다. 돌 사이에 원석이 끼어 있는 채였기에 혼자서 열심히 이리저리 두들겨 안의 원석을 빼냈다고 했다.
하운은 그 말을 듣더니 그러면 보석이 힘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그 힘이 드러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세공을 하면 힘이 더 강해진다고 했었지.’
그래서 보석을 얻은 자들이 소르디아로 보내 세공사들의 손을 거쳐 보석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상태였어도 하르메아가 소중히 갖고 있었기에 보석은 더 힘이 강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찾아 주고 싶은데….’
하지만 분명 그런 보석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이곳에 없거나 아니면 세 번째 방 안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하운님께서 하르메아에게 보석의 방에서 나온 보석들을 보여 주기로 했어요. 다 찾아보고 없으면….”
“세 번째 문… 아니 벽일까요? 거기를 열려고 하겠군요.”
네아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렇죠. 그럼 잘 부탁해요. 하운 님께도 전 먼저 돌아갔다고 전해 주시고요.”
“네? 어딜 가시는데요?”
“행사장에 돌아가 봐야죠. 하르메아 때문에 갑자기 왕궁으로 불려가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왔어요.”
네아는 시계를 보았다. 이미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슬슬 일을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을 터 였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 보겠다니.
“행사장에 가면 바로 돌아오실 시간이 될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오늘은 밤늦게 올 것 같아요. 행사 전까지는 잠 잘 생각도 하지 말라고 모리스 경이 소리치시던데요. 클로에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행사 직전에는 먹을 시간도 없대요.”
리엘라는 자신이 작업하던 부분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드래곤들 중에서 하르메아를 맡았다.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거짓말처럼 본인이 나타나 모습을 보여 줄 줄이야.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알 것 같아.’
리엘라는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 다시 마차로 향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꽃 축제와 관련된 일에 리엘라를 막을 순 없었다. 그래서 네아는 그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 하며 리엘라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저러다 쓰러지시는 건 아닌지 몰라.”
어떻게든 참가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 한껏 들뜬 리엘라였다. 제가 피곤한 건 신경 쓰지도 않고 일에 매달릴 것이 분명했다. 멀어지는 마차를 보다 네아는 몸을 돌렸다. 조금 전 하운의 행동이 생각났다. 하르메아가 자신을 보고 드래고니안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곧바로 끌고 갔던 것이.
“별일도 다 보겠네.”
하운이 남을 신경 쓰다니. 그것도 자신을.
1년 전만 하더라도 호슨 공작이 없다면 진심으로 서로를 죽이려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 그런데 호슨 공작도 없는 지금, 죽이기는커녕 리엘라의 일에 관련해서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다.
네아는 리엘라가 하운과 함께 움직인다면 안심이 되었고 하운 역시 다른 자들이 아닌 네아를 데려가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호슨 공작도 하지 못했던 일이 리엘라 덕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운이 다른 사람 생각을 한다는 게 제일 놀랍단 말이지. 게다가 적절하게 행동까지 하고.’
애매한 기분을 느끼면서 네아는 다시 보석의 방을 바라보았다.
사실 하르메아가 수도에 온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족… 이라서 그런 걸까?’
자신의 절반은 인간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드래곤이다.
인간이라면 계속 만나 왔었다. 자신이 하나의 생명체고 세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옆에는 아버지라고 추정되는 인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네이판타의 정신 지배에 당해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보석을 사용하는 방법과 인간의 언어를 가르쳐 주었었다.
‘네이판타는 이미 레어를 떠나 있었고….’
그렇기에 한 번도 네아는 드래곤을 본 적이 없었다.
네아는 보석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엘라가 하운에게 말을 전달해라 했으니 가서 말을 해야 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서 네아는 쿵쿵 뛰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하르메아는 자신을 신기하게 보았을 뿐,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좀 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 본 적 없는 절반의 동족을 만난다는 사실에 네아는 손이 떨렸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일로 흥분된 적이 얼마만일까. 그러다 네아는 문득 호슨 공작이 두 번째 문을 하운을 위해 만들어 두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혹시 세 번째 문은….
“…저를 위해서인가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렇다고 말하는 호슨 공작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
밤이 찾아오자 행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남아 움직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내일을 위해 대부분은 돌아갔다. 하지만 리엘라는 계속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진행 속도가 비슷하긴 해야 하는데….’
리엘라는 어느새 완성되어 가고 있는 네이판타를 바라보았다. 네이판타는 클로에가 맡은 부분이었다.
창세 신화에서는 땅 위로 퍼진 빛이 색으로 변해 꽃에 스며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의 꽃이 다양한 색을 갖게 되었다고. 그렇기에 검은색 꽃은 없었다. 빛이 스며든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블랙 드래곤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해 했는데 클로에는 짙은 붉은색과 보라색의 꽃들을 이용했다. 다양한 꽃들로 색의 채도를 단계적으로 조절해 가면서 검은색을 표현했고 거기에 과감하게 흰색 꽃으로 비늘의 반짝임을 나타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네이판타는 검은색이 하나도 없음에도 블랙 드래곤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역시 클로에의 실력은 대단하다 생각하면서 리엘라는 마차에 남아있던 녹색 계열의 마저 가지러 행사장을 나왔다.
짐마차에서 소재를 심은 화분을 들었을 때였다.
투둑.
차가운 물방울이 리엘라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어?”
하늘을 바라보자 언제 몰려왔는지 모를 구름이 밝은 달을 슬금슬금 덮어가고 있었다. 리엘라는 행사장 가운데에 있는 높은 꽃의 탑을 바라보았다. 그 탑의 위에는 큰 빛의 덩어리가 있었다. 장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색깔에 따라서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는 것인데….’
분명 조금 전까지는 흐림을 나타내는 노란색으로 빛나던 빛의 덩어리가 어느새 흰색으로 색이 바뀌어 있었다.
“내일 비 와?”
축제의 가장 큰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