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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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르메아는 입을 다물고 리엘라의 방문과 그 앞에 서 있는 하운, 네아를 바라보았다.
‘리엘라가 인사도 안 하고 들어가 버렸어.’
늦은 밤, 갑자기 나가더니 한참 후 돌아온 리엘라는 반갑게 다가가는 하르메아를 보지도 않은 채, 빠르게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아가 그 뒷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보았고, 곧이어 홀로 도착한 하운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위로 올라가더니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다.
“…….”
하르메아는 눈치라는 것을 챙길 줄 아는 드래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놀아 달라고 조르는 것도, 하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런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은 처음이었기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 보석 돌려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 말에 하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르메아를 보았다. 마치, 이제야 하르메아가 옆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처럼.
하운은 아무 말 없이 제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가져갔던 녹색 원석을 꺼내어 하르메아에게 돌려주었다.
“어?”
보석을 돌려받은 하르메아의 눈이 커졌다. 분명 힘을 다 써 버린 탓에 잠들었던 보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되살아난 듯 밝은 빛이 반짝였다.
‘그럴 리가?’
하르메아도 보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보석이 한번 빛을 잃으면 다시 힘이 회복될 때까지는 그저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 만에 힘을 회복한 건데?
제가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분명 제가 준 것이 맞았다.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왜 보석이 다시 힘을 찾… 읍! 으읍!”
하르메아의 입을 틀어막은 네아는 고개를 돌리다 마침 이쪽으로 오고 있는 멜다 부인을 보았다.
“마침 잘 오셨어요. 하르메아 님 데려가서 좀 전까지 끓이던 토마토 스튜 좀 주세요.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전부 다.”
멜다 부인은 어서 빨리 이 새끼 드래곤을 여기서 치우는 데 협조해 달라는 네아의 간절한 눈빛을 알아차리고는 하르메아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하르메아 님. 저번에 조금밖에 못 먹었다고 서운해하셨죠? 오늘은 아주 많이 끓였으니 배부르게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아침이라서 배도 고프실 테니 빵에 버터도 가득 발라서 많이 드릴게요.”
“계란도!”
“네네, 드릴게요. 어서 식당으로 가시지요.”
다들 새벽의 일로 우왕좌왕했던 탓에 평소보다 식사 시간이 늦어지고 있긴 했다. 배고픔을 느낀 하르메아는 보석의 일과 토마토 스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일일까 고민하다가 멜다 부인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가 버렸다.
하르메아가 떠나자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네아와 하운 둘 중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리엘라의 방 안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운은 그 침묵이 더욱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출입증을 주고 사람들에게 다시 고개를 숙이던 리엘라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리엘라가 그걸 받고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드디어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비록 실력을 겨룰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돌려주어야 했다. 그것도 제가 한 짓 때문에, 모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뒤집어쓴 채로.
하운이 가만히 있자 네아가 그에게 말했다.
“너, 돌아가.”
평소처럼 짜증 섞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들어 본 적 없는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네아는 쓰레기를 버리듯 무심하게 말했다.
“여기서 나가라고.”
***
공작저를 나온 하운은 그대로 멈춰 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 주지 않는 주인에 그의 말 역시 걸음을 멈추고 지시를 기다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네아는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하운은 제가 수도로 돌아오면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호슨 공작의 영지와 붙어 있던 저택에 스스로 못질을 하고 닫아 버렸을 때, 그를 따르던 하인들 중 딱히 돌아갈 곳이 없었던 나이 든 하인들을 위해 수도에 작은 집 하나를 구했었다. 가끔 전선에서 수도로 돌아왔을 때 왕궁의 행사 기간이거나 외국에서 방문한 손님으로 시끄러울 때면 소란스러움과 시선을 피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하운은 한 번도 그곳을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소란을 피해 잠시 눈을 붙이는 곳. 그곳은 하운에게 있어서 수도 곳곳에 있는 숙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왕궁이 그의 집인 건 아니었다. 그곳은 레이안의 거처이며,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는 순간 누군가 반역을 의심할 것이다.
해가 뜨면서 점점 길에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공작저 문 앞에 서 있는 하운을 흘끔거리며 바라보았다. 새벽부터 공작저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고 있는 큰 남자가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운은 그들의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남자가 쏟아지는 비에 젖은 옷을 털며 투덜대었다.
“진짜 이놈의 비는 언제 그칠는지.”
“그러게. 지긋지긋하다니까. 부모님을 모시고 꽃 축제 가기로 했는데 이래서야 아무래도 집에 그냥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가 봤자 제대로 보기도 힘들 것 같고.”
“사실 볼 것도 없을 것 같긴 해. 축제에 참여하려던 상인들 중에 포기하고 일찍 돌아가 버린 사람들도 많다더라고. 지금까지 열렸던 축제 중 가장 볼 것 없는 축제가 되겠군.”
“사실상 망한 축제지, 뭐. 내년이나 기대하자고.”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며 멀어졌다.
하운은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고개를 들자 여전히 수도 위에 떠 있는 시커먼 먹구름과 쏟아지는 빗줄기가 보였다. 공작저를 나올 때 리엘라의 방 창문을 바라보았으나 평소와 달리 두꺼운 커튼이 쳐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리엘라는 거짓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며 고개를 숙였었다. 그것은 꽃 축제가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지나간 사람들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가장 볼 것 없는. 망해 버린.
리엘라가 지키고 싶어 했던 축제가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눈을 감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하운은 리엘라가 언제 가장 즐거워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크게 웃었을 때가 언제였지? 혼자서 콧노래를 부르던 때는?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었기에 하운은 많은 기억 속에서 그 순간들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언제나 주변에 꽃들이 있었다는 것.
하운은 말고삐를 붙잡았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많고 자신의 목적지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하운이 도착한 곳은 왕궁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보석의 방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예고 없이 아침부터 갑자기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찾아온 하운을 본 담당 보석술사들이 급히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대공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지만 하운은 그들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급히 하운을 뒤따른 보석술사들은 그가 어느 보석 앞에 멈춰 선 것을 보고 하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저건….”
하운이 손대는 것이 금지된 보석은 아니었다. 그런 보석들 대부분은 에르첼라의 컬렉션처럼 아주 깊숙한 곳에 따로 보관이 되어 있다. 하운이 서 있는 곳은 학자들도 빌려 갈 수 있는 보석을 모아 둔 곳이었다.
대부분 힘을 잃어버린 보석들이었지만 그중 몇 개는 보석 자체의 힘이 너무도 강대해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하운은 지금 그런 보석의 앞에 서 있었다.
“가져가겠다.”
“네?”
보석술사가 놀라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하운은 장식대 위에 있던 목걸이를 낚아채듯 쥐어 뒤돌아 나갔다.
“아, 아니. 대공님! 자, 잠시만…!”
보석술사들이 그를 애타게 불렀지만 하운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들 중 나이 어린 보석술사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설마 하운 대공님께서 저걸 쓰려고 하시는 걸까요? 저건 사실상 장식품에 가까운 것 아니었나요?”
어린 보석술사의 말에 선배 보석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걸이가 있던 자리 아래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보았다.
창천(蒼天)의 토르말린
토르말린은 원래 그 색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보석이다. 갈색을 띤 것은 드라바이트, 투명한 것은 아크로아이트, 자줏빛은 시베라이트 등등.
그중에는 다른 두 가지 색이 공존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붉은색과 녹색이 같이 들어 있는 토르말린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수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창천의 토르말린 역시 다른 색 두 개가 함께 있는 보석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색에 따른 이름이 아닌 그 모든 종류를 포함하는 토르말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이유는 계속해서 색이 변하기 때문이었다.
창천이라는 이름대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담은 보석은 가장 아름다운 하늘의 색을 담은 보석이었다.
때로는 한낮의 새파란 하늘의 색으로, 때로는 석양이 지는 주황빛 으로. 마치 보석 안에 어딘가의 맑은 하늘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처럼 색이 변하는 보석. 그것이 창천의 토르말린이었다.
단지 색 때문에 창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었다.
“맑은 하늘을 불러오는 보석인데….”
선배 보석술사는 말을 흐렸다. 사실 창천의 토르말린은 역사상 딱 두 번 쓰였다.
역사서에 따르면 처음 쓴 사람은 이것을 처음 손에 넣었던 에르첼라였다. 힘을 갖고 있긴 한데 무슨 힘인지 모르겠다는 말에 ‘그럼 알아보면 되는 거지!’라며 보석의 힘을 끌어내려던 에르첼라는 경악하고 말았다. 아무리 힘을 써도 보석의 힘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무 힘이 없는 것이 이 보석의 힘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 내가 못 쓰는 보석이 있다는 게 말이 돼?”
온 힘을 쏟아도 보석의 힘이 나타나지 않자 에르첼라는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그녀는 제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다. 그러다 드디어 보석이 반응한 순간, 왕궁 위의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하늘은 창천의 토르말린이 띠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이 보석의 경이로운 힘을 자신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 궁금했던 에르첼라가 4일 후, 탈진해 쓰러졌을 때까지 하늘은 계속 맑았다.
일주일 동안 자리를 보전하다 일어난 에르첼라는 곧바로 토르말린을 집어 던지며 짜증을 냈다.
“이거 창고에 넣어 둬. 뭐 이런 미친 보석이 다 있어?”
그리고 100년 후, 카르디아에 고대의 대홍수를 연상케 할 만큼 엄청난 비가 내렸을 때 카르디아에 있는 강한 보석술사 스무 명이 모여 창천의 토르말린을 사용했다. 스무 명이 모였건만 버틴 것은 3일뿐이었고,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기운을 모두 소진해서 보석술사로서의 힘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 후 창천의 토르말린은 존재하되 아무도 쓰지 않는 보석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왕궁 보석의 방 한편에 장식처럼 놓여 있는, 학자들이나 신경 쓰는 보석. 그런데 하운이 그걸 가져갔다니. 보석술사들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셀비아스 때문에 시작된 비가 계속 내리는 하늘.
“설마… 그걸 진짜 쓰겠다고 가져가신 건 아니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