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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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 정확히는 보석의 방 안에 긴장감이 돌았다. 보석술사들이 하르메아와 함께 방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대치 중… 이라고 해야 하려나.’
루시안은 자신들 앞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하르메아를 보았다. 표정만 불만인 게 아니었다. 분명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머리색과 눈 색을 제외하면 예쁘게 생긴 사람의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마 위에 뿔이 나 있고, 눈은 세로로 길게 갈라졌으며 날름거리는 혀는 뱀보다 길었다. 게다가 옷 밖으로는 비늘 가득한 두툼한 꼬리가 삐져나와 짜증 난다는 듯 바닥을 탁탁 치고 있다.
루시안은 저를 노려보는 하르메아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주고서는 앞에 놓인 보고서를 읽었다. 하르메아를 맡은 이후로 하운이 매일 왕궁으로 보냈던 보고서였다.
‘바쁜 것 같더니 할 일은 다 하셨군.’
하운의 보고서는 글씨도, 형식도 마치 군인의 보고서와 같았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저택 내에서 있었던 일이 시간의 순서대로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하르메아가 먹은 것들의 종류와 그 양까지 자세하게. 루시안이 다 읽고 나서 그것을 뒤에 있던 학자들에게 넘기자 그들은 더없이 귀한 보물을 얻은 사람처럼 공손하게 받아 들더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 이것을 보십시오. 날것의 고기를 하루에 50인분 이상 먹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몸보다 더 많은 양의 고기를 먹고도 멀쩡하다는 것은 역시 변신을 했어도 생체 활동은 본체와 똑같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인간의 모습으로 섭취한 그 고기들은 다 어디에 존재하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날것만 먹는 게 아닙니다. 여기 보십시오. 버터를 큰 나무통으로 하루에 세 통 이상 섭취했다고 합니다.”
“계란도 하루에 100개 이상 먹는다는데요?”
카르디아를 대표하는 유명한 생물학자들은 하운이 썼던 보고서와 하르메아를 번갈아 보며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토론을 계속했다.
생물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미지의 존재인 드래곤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는다. 하지만 드래곤에게 접근하는 순간 그들의 간식이 되어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인 데다가 그나마 겨우 접근할 수 있는 드래곤 하르메아는 메아닌 산맥의 깊숙한 곳에 살고, 허가된 자들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하르메아가 이렇게 카르디아의 수도에 떡하니 나타나 무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까지 알게 되니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사건이라며 하르메아의 발자국까지 연구할 기세였다.
문제라면, 지금까지 무척이나 인간에게 호의적이라고 했던 하르메아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찢어발길 테다!’라는 분위기로 앉아 있다는 것이다.
‘호슨 공작님은 잘도 이런 드래곤에게서 보석을 강탈하셨군.’
루시안은 과거 호슨 공작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녀가 하르메아를 만나고 왔을 때, 하르메아는 어떤 드래곤이냐 물었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었다.
“어리고 맹한 것이 놀려 먹기 좋더군. 게다가 꼬맹이 주제에 무척이나 좋은 걸 갖고 있더라고. 어린애가 갖고 있으면 위험하니까 어른이 대신 맡아 줘야 할 것 같았네.”
300살 넘은 드래곤을 동네 꼬맹이 취급하는 것이 어이없었다. 그래서 대신 맡아 줘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그 후로 별다른 말도 없기에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게 엄청난 힘을 가진 보석이었을 줄이야.
‘어쨌거나 그걸 찾으러 왔다고….’
루시안은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문도 아닌 벽이다. 아직도 저것을 부숴야 할지 말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결정할 문제도 아니었다. 리엘라가 결정하고 하운이 이행할 뿐. 그래도 일단 끝까지 해 보기로 한 것 같은데….
‘그대로네.’
벽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했다.
그때 네아가 보석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뭐 좀 진척된 건 있나요?”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 며칠간 하운 대공님과 하르메아가 같이 있었는데 왜 벽이 저렇게 멀쩡해?”
루시안의 말에 네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둘이 온갖 짓을 다 해도 공작님께서 만드신 벽 하나 쓰러트리지 못했다는 거죠. 역시 호슨 공작님의 위대함에는 드래곤도 감히 범접할 수 없다… 그런 것 아닐까요?”
“아니야!”
두 사람의 말을 듣다 제가 호슨 공작보다 능력이 달린다는 소리에 하르메아가 소리쳤다.
“놀고만 있었던 거 아니야! 여기! 여기 보라고!”
하르메아는 쿵쾅거리며 벽으로 다가가더니 테이블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로 움푹 팬 곳이 있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퍼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짓을 해도 금 가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움푹 팬 상태가 유지되다니?
네아는 파인 곳 주변을 바라보다 벽이 녹아내린 것 같이 변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그 아래의 바닥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네아와 루시안이 놀라서 벽을 살피자 하르메아는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연습하니까 되더라고. 그래서 뿜어 봤지.”
“뭐가요?”
“브레스.”
“……!”
브레스라는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두가 놀라 눈이 커졌다. 그것은 오직 드래곤만이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자연의 법칙과 섭리를 완전히 무시한 강한 힘.
“인간의 모습으로 썼다는 겁니까?”
루시안이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하르메아는 그 표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듯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모습으로도 쓰는 법을 알아냈다. 엄청난 연습이 필요했지.”
“보,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뒤에 서 있던 생물학자들이 달려와 루시안을 밀치고 하르메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는 일은 전쟁터에서도 흔치 않다. 게다가 그걸 맞고 살아난 사람도 드물었고. 그나마 하운이 플레노트와 긴 시간 대치하면서 최근에야 드래곤의 브레스에 대한 기록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안전하게 볼 수 있다니!
학자들이 엎드려 매달리자 하르메아의 콧대는 더욱 높아졌다. 그동안 하운은 자신을 귀찮은 짐승 보듯 대하며 아무리 떼를 써도 눈 깜짝하지 않았는데 새로 온 인간들은 제 말 한마디에 벌벌 떨며 엎드린다. 오랜만에 드래곤의 위엄을 되찾은 하르메아는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그렇게 보고 싶어?”
“물론입니다! 제발 그 귀한 장면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저희에게 내려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애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기다려 봐.”
하르메아는 당당한 걸음으로 보석의 방 안에 있는 꽃병을 향해 걸어갔다.
“……?”
브레스를 내뿜는 것을 보여 준다더니 갑자기 왜 꽃병 쪽으로 걸어가는 거지? 모두가 의아해하며 하르메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하르메아는 꽃을 뒤적거리더니 곧 그 사이에 있던 것을 뽑아 들었다.
“강아지풀?”
브레스와 강아지풀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하르메아는 움푹 파인 곳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가져온 강아지풀을 제 코에 대고 흔들며 간지럽혔다. 곧 하르메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 에….”
하르메아의 고개가 한껏 뒤로 젖혀지더니.
“에취!”
큰 재채기 소리와 함께 하르메아의 입에서 번쩍이는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구멍이 파여 있던 벽에 닿더니 마치 용암처럼 천천히 흘러내리다 곧 사라졌다.
“설마, 지금 그게….”
“…브레스?”
처음으로 보는 브레스는 놀라운 광경이긴 했다. 하지만 그걸 쓰는 방법이 재채기라니….
어딘지 맥이 빠진 학자들의 표정을 읽지 못한 채 하르메아는 으쓱거리며 자신에게 올 찬사를 기다렸다. 루시안이 재빨리 그것을 알아차리고 손뼉을 쳤다.
“영광입니다! 살면서 드래곤의 브레스를 이리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루시안의 호들갑에 신난 하르메아가 신난다는 듯 방방 뛰었다. 하지만 이내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브레스는 한 번 쓸 때마다 체력을 무척이나 많이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벽은 좀 전의 브레스에 녹아 더욱 깊이 파였다. 루시안은 구멍에 제 팔을 넣어 보았다. 거의 팔꿈치까지 들어갈 만큼 깊은 구멍이었다.
“이거…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적어도 안을 볼 순 있겠는데요?”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크게 뚫는 것은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안을 볼 수 있을 정도로만 뚫려도 벽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비켜 봐. 나도 볼래.”
헐떡거리던 하르메아는 비척거리며 다가와 루시안을 밀어내더니 구멍 안을 살펴보았다.
“어?”
갑자기 하르메아가 눈을 깜박이더니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조용히 하라는 몸짓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슥. 스슥.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르메아는 구멍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스윽. 탁. 탁.
그러자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소리가 들렸다. 분명 벽 너머의 소리였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저도 좀 들어 보겠습니다.”
“저도요!”
루시안과 네아가 서로 제가 먼저라며 구멍에 달려들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하르메아의 말대로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문제라면 그것의 소리는 무척이나 제멋대로이고, 불규칙적인 움직임에서 기인한 것 같다는 것이다.
“기계가 아니야.”
루시안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규칙적인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익숙한 소리였다. 살면서 매일 듣는 누군가가 움직이고 생활할 때 나는 자연스러운 소음들.
“이건….”
루시안이 경악의 눈으로 벽을 바라보았다.
이 벽 너머에 무엇인가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
“흐아암….”
리엘라는 길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몸 이곳저곳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바닥에서부터 통증이 느껴졌다. 덕분에 리엘라는 어제 제가 리나와 함께 얼마나 열심히 행사장을 돌아다녔는지 기억해 냈다.
“힘들었다아….”
리나의 가게에 쓰일 것이니 대강 살펴볼 수 없었다. 게다가 리나가 워낙 까다롭기도 했고. 덕분에 두 사람은 화원에서 판매용으로 놔두었던 수천 개의 화분을 일일이 살피며 그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골랐다.
수많은 화원이 참가해 식물들을 판매하고 있었기에 해가 질 때까지 돌았음에도 생각했던 것만큼 많이 살 수 없었다. 게다가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했다. 그래서 리나와 내일 다시 돌아보자고 약속한 다음 공작저로 돌아와 겨우 씻기만 하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잠을 잔 건지 기절을 한 건지 모르겠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잔 덕분일까. 다행히 피곤함은 좀 사라진 것 같았다.
리엘라는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밝은 햇살이 방 안에 가득 쏟아졌다.
“오늘도 날씨 좋네.”
맑은 하늘을 확인한 후 리엘라는 씻고 밑으로 내려갔다. 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현관에 변호사들의 대표인 크레이튼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크레이튼 씨!”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크레이튼은 리엘라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한동안 저택에 머물렀던 그는 공작의 유언 집행이 끝나 가자 멀리 떨어진 곳들의 재산을 점검하고 오겠다며 길게 출장을 갔었다.
“서부 쪽 일은 잘 마무리하셨어요?”
“네. 좀 더 일찍 돌아올 수 있었는데 칼레논 대교가 붕괴되는 바람에 좀 더 지체되어 버렸습니다.”
“맞다. 칼레논 대교는 어떻게 되었나요?”
“수도에서 온 보석술사들이 빠르게 복구 작업을 하긴 했지만 아직도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 탓에 늪지대의 물이 더 불어날 것 같아 걱정이군요.”
“비요? 다 그친 것 아니었어요?”
리엘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계절에는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온다. 그러니 이곳이 이렇게 맑다면 서쪽도 맑을 터였다.
리엘라의 말에 크레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서쪽은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 근처의 콜른 산맥을 넘는 순간 거짓말처럼 날이 맑아지더군요.”
크레이튼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누가 다 구름을 지워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리엘라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도만 맑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