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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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하운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리엘라의 외침에 놀란 네아가 일 층에 있던 의사를 그대로 들고 달려왔고, 살면서 처음으로 누구에게 들린 채 계단을 올라와 본 의사는 하운을 진찰하고 별다른 문제는 없다 말했다.
“다시 기절하기도 쉽지 않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의사가 농담처럼 허허 웃으며 말하자 하운과 리엘라가 동시에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없었네!”
“없었어요!”
…있었군. 의사와 네아는 그냥 모르는 척해 주기로 했다. 물론 네아는 의사와 리엘라의 눈을 피해서 하운에게 ‘네 허리를 이렇게 접었다 폈다 해 줄 거야’라는 제스처를 보여 주긴 했지만. 의사 다음으로 하운을 찾아온 사람은 보석술사들이었다. 그들은 혹시나 하운의 힘에 이상이 생겼을까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치였다. 동시에 창천의 토르말린을 사용했을 때의 상황에 대해 기록하기 위해 그에게 계속 질문을 쏟아 냈다.
그 대화가 길어질 것을 짐작한 리엘라는 제가 바닥에 던졌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운은 보석술사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눈으로 리엘라의 행동을 쫓았다. 어디서 뭘 사 왔길래 저렇게 많은 봉투들이 있는 걸까.
리엘라가 테이블 위의 종이봉투를 부스럭거리다 꺼낸 것은 옷이었다. 그것도 꽤 컸다. 아무리 봐도 리엘라의 옷은 아니었다.
‘왜 저렇게 커?’
리엘라가 두 명은 들어갈 것 같은 큰 셔츠, 카디건, 게다가 긴 바지까지. 게다가 상자에서 나온 구두까지 전부 컸다. 누가 봐도 리엘라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것?’
리엘라는 하운이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사 온 것들을 열심히 정리했다. 전부 다 왕궁에서 나온 다음 산 것들이었다. 왕궁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리엘라는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야.’
국왕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는 발밑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설마 국왕도 빛나는 꽃을 알고 있나? 어떻게 알았지? 설마 하운이 말한 건가? 아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는데? 그나저나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국왕은 어디까지 알고 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 순간, 또 한 번 노크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왕은 여기 있는데 감히 누가? 리엘라가 몸을 돌렸을 때 그녀의 앞으로 무엇인가가 휙 날아들었다.
“뭐, 뭐가…!”
갑자기 덤벼드는 것에 놀라 팔을 들어 올렸으나 다행히 그것은 리엘라를 덮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리엘라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 고갤 돌려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았다.
“어?”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것은 그녀의 기억에도 있는 것이었다. 왕궁에서 보았던 에르첼라의 목걸이였다. 그것은 제가 강아지라도 되는 듯 리엘라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레이안! 그거 잡아요!”
목걸이를 뒤따라온 목소리의 주인에 리엘라는 몸을 움츠렸다. 그날 하운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던 레티시아 왕비의 목소리였으니까. 목걸이도 레티시아가 무서운 것일까. 갑자기 허둥지둥하더니 리엘라의 뒤로 숨으려 했다.
“어딜 도망가요!”
레이안이 손을 뻗자 그 손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려던 목걸이는 레티시아가 재빠르게 뻗은 손에 잡히고 말았다. 목걸이를 붙잡고 열려 있던 문을 발로 차 닫아 버린 왕비는 제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용을 쓰고 있는 목걸이를 향해 말했다.
“이 미친 보석이! 사람들을 다 물려 놔서 본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들키면 어쩌려고 했어요? 보물이고 뭐고 너도 루비랑 같이 소르디아로 콱 보내 버린다!”
평소의 레티시아답지 않게 진중함은 내던져 버리고 목걸이를 잡아 짤짤 흔들어 대는 모습에 레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연회 이후로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하루도 쉬지 않고 레티시아의 신경을 긁어 댔다. 상자 안에 넣어 두었더니 툭하면 안에서 덜그럭거렸고, 꺼내 놨더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대로라면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무언가를 찾는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왕의 보석이다. 자칫하다가는 왕의 보석이 진정한 주인을 찾네 어쩌네 같은 소문이 퍼질 것이었다. 그래서 레티시아는 더욱 철저히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감시했다. 그러다 레이안이 하운 때문에 리엘라를 만나고 돌아왔던 날, 목걸이는 또 상자를 탈출해 레이안에게 가더니 레이안의 손 주변을 빙빙 돌았다.
마치 맛있는 간식의 냄새를 맡은 강아지 같았다. 그 모습에 결국 레이안과 레티시아는 마음을 정했다. 저 목걸이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리엘라 테니어를 왕궁으로 한번 불러야겠다고.
레이안은 레티시아의 손에 잡혀 있던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넘겨받은 다음 리엘라에게 손을 펴 보라는 시늉을 했다. 시키는 대로 손을 펴자 그는 리엘라의 손 위에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놓았다. 리엘라가 감히 들고 있기 황송한 전설적인 보석의 모습에 무릎을 꿇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목걸이가 리엘라의 손바닥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어쩐지 이거 꼭… 하르메아랑 똑같네.
공작저에 있는 멍멍이, 아니 드래곤 한 마리가 생각나는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레이안이 말을 걸었다.
“이것 봐. 그대가 왔다 간 날 이후로 지금까지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계속 이런 상태야. 역사상 한 번도 목걸이가 이런 적은 없었어. 그러니 어서 말해 봐. 어떻게 한 거지? 뭘 숨기고 있는 거야?”
“휴….”
레이안이 했던 말을 떠올린 리엘라는 옷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들킨 줄 알았네!’
국왕이 추궁하는 것이 빛나는 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에르첼라의 목걸이에 대해서라는 것을 안 순간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진짜 모르는 일이었기에 양심의 가책 없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말했다.
물론 짐작이 가는 건 있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리엘라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목걸이가 자신에게 가지 말라고, 같이 놀자고 매달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표정으로 국왕 부부를 바라보니 그냥 손에 들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덕분에 리엘라는 두 시간이나 넘게 목걸이를 쥐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왕실의 보물을 함부로 다뤄도 되나 싶었는데 계속 정신 사납게 손안에서 돌아다니길래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보물이고 뭐고 그냥 잡아당겼다. 그 탓에 목걸이의 줄을 잡았던 손가락과 손바닥이 아직도 얼얼했다.
그렇게 한참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툭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마치 신나게 놀다 잠든 것처럼.
그것으로 리엘라가 할 일은 끝났다.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나서 다행이다….’
사실 하르메아나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자신에게 달라붙는 게 아무래도 빛나는 꽃을 피워 내는 힘 때문일 거라 짐작은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고 들통난 것도 아니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하운 님이 비밀 잘 지켜 주고 있었네.’
사실 국왕 부부에게는 말한 게 아닐까 싶어 등골이 서늘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 후로 국왕은 마치 자기 일처럼 동생의 변호를 하며 내다 버리지 말아 달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하운의 어릴 적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와 어느새 리엘라는 긴장도 잊고 레이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파르멜 영지 근처에서 보았던 하운의 저택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에 간 적이 있다며 리엘라가 그때의 일을 말하자 레이안은 갑자기 말을 뚝 멈추고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움츠러들자 레이안은 잠시간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더니 말했다.
“돌아가 보게.”
“네?”
“하운 깨어날 때까지 잘 부탁하고.”
“네, 넵!”
혹시나 국왕이 갑자기 다시 붙잡을까 봐 리엘라는 번개같이 대답한 다음 꾸벅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닥치는 대로 하운의 옷을 샀던 것이고. 어쨌든 긴장했던 일이 무탈하게 끝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꽃 축제도 끝났으니 남은 일은 보석의 방뿐이다. 루시안과 하르메아가 별말 없는 것으로 보아 진척은 없지만 큰 문제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 한번 가 보긴 해야겠다.”
저녁을 먹은 후에 한번 들러야겠다 생각하며 리엘라는 하운의 옷을 마저 정리했다. 오늘 산 것만 수십 벌이다. 그에게 잘 어울릴 거 같은 것들로 골라 골라 샀으니 전부 다 꼭 한 번씩 입혀 봐야지.
***
리엘라가 돌아간 다음 레이안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허, 참… 파르멜 영지에 있는 저택에 갔다고? 심지어 들어갔어?”
계속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을 뱉던 레이안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곧 그의 손에 여전히 반짝이는 창천의 토르말린이 들려 나왔다.
“호슨 공작이 싸고돌 때부터 뭔가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 후로 일어난 일들을 보며 레이안은 리엘라 테니어가 단순한 상속인이 아님을 알았다. 하운이 순식간에 빠져 버린 것도, 폭우의 하우윈이 힘을 되찾은 것도, 에르첼라의 목걸이와 하르메아가 들러붙는 것도, 창천의 토르말린이 더욱 강해진 것도.
분명 리엘라 테니어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불러들였다. 하운이 쓰러진 사이에 제대로 그녀를 취조해 볼 생각이었다. 자신은 웃으며 임하겠지만 그녀는 웃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말이다. 하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슬슬 제대로 유도 신문을 시작해 볼까 하다 파르멜 저택의 이야기가 나온 순간, 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하운이 거길 갔었다고? 심지어 리엘라 테니어를 데리고 들어갔었어?
그곳에서 잠시 보냈던 시간을 재미있는 추억처럼 말하는 리엘라의 모습에 레이안은 그녀를 추궁하기 위해 꺼내려던 창천의 토르말린을 슬그머니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어 버렸다.
“하아….”
레이안이 길게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다시 상자에 넣고 온 레티시아가 문을 열었다. 그는 레티시아를 보자마자 물었다.
“여보, 대공의 결혼식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해?”
빠를수록 좋나?
***
루시안은 심각한 표정으로 벽을 노려보았다.
“보고를 하긴 해야겠는데….”
하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기력이 약해진 것뿐, 힘에는 문제가 없으니 며칠 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사실 평소라면 하운이 좀 더 누워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쨌거나 같은 보석술사고, 그는 왕실 소속, 자신은 원탁회의 소속이다. 즉, 라이벌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하운이 누워 있는 동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 번째 보석의 방을 열어 제가 먼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루시안은 제가 정리한 보고서를 보았다. 그사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게 어떤 소리인지, 언제 들려오는지 정리하면 할수록 루시안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는 하르메아가 뚫어 놓은 구멍 앞으로 다가갔다. 시계를 보니 곧 있으면 저녁을 먹을 시각이었다. 그렇다면 또 안에서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나무 바닥을 걷는 사람의 발소리였다. 그 발소리가 들리기 전에는 탁. 탁. 바닥을 내려찍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안은 그 소리가 지팡이가 내는 소리임을 알아챘다.
생전 호슨 공작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이가 든 이후로 지팡이를 짚었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그녀가 걸어 다닐 때 나던 소리와 똑같았다.
‘그럴 리 없어.’
루시안은 떨리는 손으로 보고서를 움켜쥐었다. 소리가 들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확실해 질수록 루시안은 호슨 공작의 모습을 더욱 또렷이 머릿속에 그려 냈다.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이는 것 같은 소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루시안은 입술을 문 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 음식을 먹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 다음, 다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안에 있는 것이 접시를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루시안은 잠시 펜을 바닥에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결심한 듯 구멍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가 입을 열었다.
“호슨 공작님, 거기 계십니까? 접니다, 루시안.”
멍청한 짓이고,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벽 너머에 호슨 공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걸고 있다니.
“…….”
그가 벽에 말을 건 순간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뚝 끊겼다. 건너편에 있는 루시안의 존재를 인지한 것처럼. 루시안은 소름이 돋았다. 안에 있는 것이 드디어 밖을 의식한 것이다. 땀이 차오르는 손을 옷에 문지르며 루시안은 돌아올 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
결국 루시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제 망상이 심해졌던 모양이다. 이미 죽어 땅에 묻혀 있을 호슨 공작이 벽 너머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아무래도 잠시 보석의 방을 벗어나서 밖을 돌아다녀야겠다 생각하며 그가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루시안, 자네인가?”
벽 너머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