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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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레이안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왕을 기다리고 있던 하운, 루시안, 왕실 보석술사단의 단장, 왕궁 근위대장, 수도 경비 기사단의 단장 그리고 드래곤 로드의 감시를 맡았던 아르펠트 기사단의 단장까지, 카르디아에서 가장 그 지위와 책임이 무거운 자들이 모두 일어나 국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레이안은 인사는 그 정도면 되었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의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 많지만 길게 인사할 상황이 아니군. 왕비는 특수 부서를 비상 체제로 전환 중이라 오지 못했으니 이해하도록. 일단 오늘 소집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 서부의 블루 드래곤 셀비아스의 소멸이 오늘 오전 정식으로 확인되었다.”
“아….”
이미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국왕의 입을 통해 확실해진 순간, 막중한 책임감이 더욱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모두 오래전, 호슨 공작이 네이판타를 쓰러트렸던 일은 알고 있겠지. 그때 비공식적으로 대륙 보석술사의 절반 이상이 동원되었다. 전투가 끝났을때는 완전히 부서지거나 힘이 사라진 보석은 그 수를 셀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야 겨우 소멸시킨 네이판타였는데…. 플레노트가 하운 대공에 의해 수면기에 들어간 것을 마지막으로 최근 몇 개월간 대륙은 조용했어. 즉, 셀비아스를 쓰러트릴 만한 병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단 소리야.”
손도 대지 않았는데 드래곤이 소멸했으니 좋은 일이 아닌니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카르디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재앙을 맞이한 꼴이었다.
셀비아스는 하르메아를 제외한 드래곤들 중에서는 무척이나 온순한 편이었다. 왕국 역사상 셀비아스 때문에 죽은 인간의 숫자가 세 자리를 넘어가지 않으니 이쯤 되면 평화주의자라는 별명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사실 카르디아 입장에서 셀비아스는 그냥 이대로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했던 드래곤이었다. 적당히 먹을 것과 보석을 던져 준 다음 그가 잠들 수 있을 정도의 땅을 비워 주면 알아서 그곳에 가 잠들었으니까. 이번에 잠든 곳이 곡창 지대의 근처라 일부분이 늪지대가 되어 피해가 있긴 했지만 다른 드래곤들의 피해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레이안은 숨을 삼켰다. 이다음에 나올 말이 가장 중요한, 그리고 문제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조금 전에 도착한 셀비아스의… 잔해를 확인했을 테니 알겠지만, 예전 오크의 사체에서 확인된 것과 같은 잇자국이 발견되었다. 그러니까 셀비아스는… 무엇인가에 의해 잡아먹힌 거야.”
“…….”
더욱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에 깔렸다.
드래곤. 잡아먹혔다.
절대 함께 둘 수 없는 단어가 붙어 문장이 되었다. 그렇기에 회의실의 모두는 지독한 이질감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드래곤을 잡아먹을 수 있지? 그것도 저렇게 갈기갈기 찢어서?”
“…….”
하운은 슬쩍 제 손바닥을 펴 보았다. 그 잇자국 하나의 크기. 처음에는 와이번이라 생각했었다. 이 정도의 잇자국을 남길 수 있는 와이번을 아직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 마리쯤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오크의 사체가 발견된 이후로 한동안 조용했다. 그래서 미확인된 거대한 와이번이 어쩌다 영역을 벗어난 뒤 저지른 짓 정도로 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와이번의 짓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모두들, 드래곤을 잡아먹을 만큼 강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
레이안의 질문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떠오르는 생명체는 하나뿐이다.
드래곤.
하지만 드래곤이 드래곤을 먹었다고? 같은 종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적어도 로드라는 존재 아래에서 상대와 부딪히지 않고 사는 것은 확인되었다. 그런데 잡아먹다니? 이것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었다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것도 잠들어 있는 자를 습격해 갈가리 찢어서.
침묵을 깬 것은 왕실 보석술사의 단장이었다.
“일단, 자료를 펴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레이안에게 허락을 구한 다음 자신이 가져온 대륙 지도를 넓은 테이블 위에 펼쳤다. 지도라고는 하나 아주 상세한 것은 아니었다. 산맥과 도시 그리고 대로 정도가 표시되어 있는 이 지도가 다른 지도와 다른 점이라면 곳곳에 색색의 드래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래곤의 그림 밑에는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운은 메아닌 산맥 깊숙한 곳에 그려진 하르메아를 바라보다 지도 위 드래곤들의 수를 가늠했다.
대륙 전체에 존재하는 드래곤은 대략 스무 마리 정도. 그중에 열 마리 이상이 카르디아의 영토에 살고 있다. 아무래도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왕실의 보석술사는 셀비아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셀비아스는 다른 드래곤들과 떨어져 있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드래곤이다 보니 과거 대홍수 시절에 생겨나 절대 마르지 않는 강을 끼고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설명을 들으며 하운은 지도를 훑어보았다. 셀비아스 주변에 다른 드래곤은 없다. 아직 제 레어에 그다지 집착이 없어 움직일 수 있는 하르메아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드래곤도 마차로 열흘은 넘게 달려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게다가 그 드래곤들은 별 문제 없이 수면기에 들어가 있고.
그래서 하운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그의 눈이 지도 아래를 향했다. 검은 색으로 그려진 드래곤 위에 X 표시가 있었다. 그 밑에는 네이판타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멸되어 다시 태어나려면 몇백 년을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존재가.
***
왕궁에서 온 연락에 하운과 루시안, 하르메아는 곧바로 공작저를 떠났다. 그들뿐만 아니라 저택에 와 있던 보석술사들도 긴급 소집 명령에 모두 돌아갔다. 덕분에 공작저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멜다 부인이 만들어 놓은 빵을 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것을 보며 네아는 주방을 나왔다. 하운과 하르메아가 오늘 내로 공작저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셀비아스가 소멸했다고.’
루시안이 그 말을 한 순간 가슴 한구석에 선뜩함이 스쳤다. 마치 제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왕궁이 발칵 뒤집어졌겠네.’
왕궁뿐만이 아니라 원탁회의도 함께 뒤집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이 소식은 곧 일반인들에게도 퍼질 것이니 셀비아스의 소멸을 두고 흉흉한 말들이 퍼지겠지. 형체가 없는 공포가 퍼지면 사람들은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매달릴 것을 찾을 게 분명하다.
“다 좋은데 공작님 이름을 이상한 데 쓰는 자들만 좀 없었으면 좋겠다….”
네아는 인간으로 살면서 인간들의 행동과 습성에 대해 배웠다. 다른 것들은 다 이해가 갔는데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신이라는 존재를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에 가끔 호슨 공작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짜증 났다. 가끔 사이비라 불리는 자들이 호슨 공작을 신으로 섬기며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그자들이 지금 보석의 방에 들어가면 아주 감격해서 눈물 흘리겠네.’
‘호슨 공작님이 부활하셨다! 그분은 역시 위대하다!’ 이런 소리를 하며 울며 엎드릴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 네아는 한숨을 쉰 채 보석의 방으로 향했다.
하운은 왕궁으로 돌아가면서 네아에게 그 누구도 방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누구에 리엘라도 포함되는 거냐 물어봤더니 하운은 잠시 고민한 다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하운이 벽 너머에 있는 것이 리엘라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라고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공작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건가?’
하지만 하운은 저 안에 있는 존재가 마지막 유언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는 것을 짧게 알려 주고 갔다. 그 유언장의 존재는 세상에 오직 세 명만이 알고 있다. 자신도, 하운도 그것을 남에게 말한 적이 없으니 남은 사람은 호슨 공작뿐이다.
네아는 보석의 방문을 열었다. 보석의 힘을 걸어 놓았기에 허가된 사람 아니면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에서 나왔던 보석들이 장식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다른 보석술사들이 드나든 탓에 보석의 힘으로 가려 두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그것들은 오랜만에 제 모습을 드러낸 채 반짝거렸다.
네아는 벽으로 다가갔다. 루시안도, 하운도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네아는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알 수 없었다.
“주인님, 거기 계세요?”
“…….”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셀비아스가 갑자기 소멸했대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어느새 네아는 공작이 바로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고 나서 눈이 침침해지고 체력이 떨어진 탓에 신문 보는 것을 점점 힘들어했던 공작이었다. 그래서 네아는 가끔 제가 그녀 대신 신문을 읽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기사의 내용을 전할 때가 있었다. 그게 아니면 때때로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와서 말하든가.
그러면 호슨 공작은 네아의 말을 들으면서 네아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을 설명하거나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곤 했다.
누가 보면 네아가 호슨 공작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그것은 호슨 공작이 네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공작이 거둔 지 몇 년 되지 않아 자신이 이렇게 다른 인간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섞여 살 수 있게 된 것은 공작이 노력하며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네아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멜다 부인이 네아에게 네가 공작님의 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을 때, 네아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하루 종일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의 절반은 호슨 공작이 준 것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한 네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호슨 공작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드래곤의 피는 네이판타의 것.
오래전 네이판타의 레어 속에 숨어 살면서 인간을 잡아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 네아에게 인간은 다른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발도 느리고 이빨도 약하며 잡아먹기 쉬운, 시끄러운 짐승.
“하아….”
네아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셀비아스가 소멸되었다는 말에 왜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네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벽을 콩콩 때렸다.
“하운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 공작님이 진짜 그곳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보고 싶거든요, 라는 말을 네아가 속으로 삼킨 순간이었다.
“컥!”
갑자기 몰려오는 격통에 네아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몸의 모든 뼈가 조각조각 박살 나는 것 같았다. 거대한 쇳덩이가 자신을 무자비하게 내려찍는 것 같은 통증에 네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인간과 똑같던 눈동자가 전부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바닥을 긁던 손톱이 길어지며 검은색으로 변했다.
한참이나 덜덜 떨던 네아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하지만 곧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 여기에 있나.”
거친 목소리가 네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린 드래곤, 생장의 보석 그리고 그년의 시체.”
목소리의 주인은 제가 찾는 것을 읊었다.
아주 먼 곳에서 길을 가는 인간을 습격했다. 운이 좋았다. 잡은 것은 보석술사였다. 그것도 왕실의 보석술사. 머리를 으깨어 씹기 전에 정신 지배를 걸어 그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아주 좋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제가 찾던 하르메아가 레어를 벗어나 카르디아의 수도에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호슨 공작의 저택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호슨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정신 지배를 받은 채 중얼거리던 인간의 머리를 그대로 뜯었다. 그다음 갈기갈기 찢었다.
“호슨. 호슨.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저를 쓰러트린 인간. 감히. 감히. 감히 인간 주제에.
네아의 몸이 일어나 벽을 더듬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미친 듯이 벽을 긁었지만 벽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대비했다는 듯이.
“널, 널 먹을 것이다.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나는 네이판타. 너를 삼키러 왔다.”
그 순간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이판타, 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