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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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컷의 주인을 뵙습니다. 저는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집사 누얀이라고 합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인사를 하는 누얀에게 리엘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리엘라 테니어라고 합니다. 2주일간 잘 부탁….”
“오, 아닙니다. 아니에요. 레이디 리엘라께서는 저희들의 주인이시니 부디 편하게 하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누얀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여성은 리엘라의 말에 어찌 감히 제가 그럴 수 있겠냐는 듯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리더니 이마를 땅에 대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행동에 리엘라가 놀라 그녀를 일으키려 하자 누얀은 “오오, 다정하신 분!”이라면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누얀, 적당히 하세요. 리엘라 아가씨께서는 당신의 예법이 부담스러우실 거예요.”
보다 못한 네아가 누얀을 일으켰다. 누얀은 네아의 양쪽 뺨에 제 뺨을 두 번씩 가져다 대며 인사했다.
“네아도 잘 있었나요? 공작님의 소식을 들었지만 갈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해 주세요.”
“괜찮아요. 누얀은 여길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보다 우리 일행이 머물 준비는 끝났죠?”
“오, 그럼요. 물론이지요. 당신의 편지를 받자마자 플라워 컷 전체를 깔끔하게 다시 꾸몄답니다. 그런데 편지에 레이디 리엘라와 카르디아 왕실 관계자 여덟 명 그리고 밥벌레 한 명이라고 적혀 있던데….”
“네, 정확해요.”
또 밥벌레라 불린 하운은 얼굴을 굳혔지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왕실 소유의 건물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에 신세를 져야 하니….’
평소 그가 소르디아를 방문할 때는 카르디아 왕실의 대사관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곳은 플라워 컷과 달리 아이디얼 컷으로부터 세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주변의 건물과 붙어 있는 탓에 이곳보다는 보안이 취약했다.
카르디아 왕실도 그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르디아 내 건물은 거의 매물이 나오지 않는 데다가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현재 왕실이 소유한 건물보다 더 나은 게 없었다. 그나마 카르디아 정도니 5층이 넘고 정원이 딸려 있는 대사관을 소유한 것이지 다른 왕국의 대사관은 건물의 한 층을 빌려 들어가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플라워 컷에서 지내기로 한 건데….’
솔직히 꼭 그 이유 때문이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하운은 입을 다물었다. 어쩌겠나. 밥벌레 소리를 들어도 리엘라와 같이 있는 게 더 좋은데.
리엘라는 네아와 누얀의 대화를 듣지 못한 채 어쩔 줄 모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소르디아의 건물을 구경했다. 대륙에서 제일 비싼 땅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소르디아의 건물은 죄다 폭이 좁고 높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물의 일 층은 휘황찬란한 보석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위쪽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듯 햇살 아래 빨래들이 펄럭였다. 가끔은 화분도 놓여 있었고.
카르디아에서는 본 적 없는 건물의 형태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인파로 붐비는 길을 헤치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디얼 컷에 도착했을 때 리엘라는 카르디아의 왕궁과는 또 다른 위압감을 주는 건물의 모습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리엘라와 다르게 하운과 네아는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아이디얼 컷을 한번 보더니 옆으로 향했다.
아이디얼 컷과 길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건물.
“여기가 아가씨의 소유인 플라워 컷이라는 건물이에요. 소르디아가 생기면서 아이디얼 컷과 같이 만들어진 건물이랍니다.”
태연한 네아의 설명에 리엘라는 ‘이 정도면 사실상 소르디아의 왕궁이 아니냐고!’라며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건물을 호슨 공작님께서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아, 이거요? 대가로 받으신 거예요.”
“대가요? 무슨 대가?”
“음, 저기 저쪽에 건물 보이시죠? 여기만큼이나 화려한 건물. 저건 라자르 컷이라고 하는 건물인데요, 소르디아가 왕은 없어도 에르만이라는 오래된 가문은 있거든요? 소르디아 경매장을 세운 가문인데 오래전, 플라워 컷도, 저기 라자르 컷도 그 가문의 소유였어요. 그런데 드래곤의 식사가 될 뻔했던 저곳의 주인을 호슨 공작님이 살려 주시고, 목숨값으로 받으신 거죠. 지금은 그분의 손자가 라자르 컷에 살고 있을걸요?”
“음… 그분이 자의로 주신 거 맞죠?”
리엘라의 질문에 네아는 씩 웃었다.
“이제 아가씨도 너무 많이 알고 계신다니까. 드래곤의 입 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 사람에게 공작님이 자신은 플라워 컷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셨다더라고요. 호호호.”
“…….”
네아의 웃음소리에 리엘라와 하운은 알 수 있었다. 이 건물… 호슨 공작이 뺏은 것 같은데?
“그리고 누얀 씨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노예 제도가 남아 있는 북해 출신이라 그런 거예요. 호슨 공작님께서 고쳐 보려고 했는데 저런 방식이 더 편하다며 우는 바람에 그럼 그냥 편한 대로 살라고 놔두셨거든요. 어쨌든 누얀 씨는 일은 완벽하게 하시니까요.”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을 보면서 리엘라는 그 말이 진짜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여기 플라워 컷은 정말 먼지 한 톨 없이 관리되고 있었으니까.
“일단 아가씨 방으로 먼저 안내할게요. 누얀 씨!”
“이쪽입니다.”
누얀은 기다렸다는 듯 일행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누얀을 따라가는 내내 리엘라는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부 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
수도의 공작저와 왕궁을 오가며 세상 모든 화려함은 다 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플라워 컷이라는 이 건물은 기둥을 황금으로 세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곳곳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단지 금이라서 놀라운 것이 아니다. 고대어로 보이는 신기한 글자들이 금 기둥에 빼곡히 조각되어 있었고, 바닥은 아름다운 문양의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다. 건물 안 정원은 카르디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어릴 적 책으로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게 된 소르디아의 모습은 리엘라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이국적이었다.
한참을 걸어 문부터 ‘여기가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방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곳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하인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헉….”
“아가씨? 왜 그러세요? 마음에 드시지 않는 부분이라도?”
“아니요. 눈이 부셔서.”
밖도 화려했는데 방 안은 더욱 대단했다. 일단 공작저의 침대보다 세 배는 더 큰 것 같은, 이것을 정말 침대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침대와 붉은 양탄자,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진 쿠션에 테이블 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차려져 있는 과일과 음료수.
하운마저도 그 화려함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얀 씨, 힘 좀 주셨네요.”
“물론이지요. 처음 주인님을 모시는 자리에 부족함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푹 쉬세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네아 씨나 밖의 시종들에게 일러 주세요.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다른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지요. 머물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숙소보다 먼저 이곳에 있는 보석의 방을 보고 싶군.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 맞나?”
“물론이지요.”
“호슨 공작이 없었던 사이 관리가 소홀했을지도 모르니 일단….”
“그건 걱정 마십시오.”
누얀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거대한 불기둥들이 생겨났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기둥은 누가 보아도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제가 아주 잘 관리하고 있었답니다.”
리엘라는 누얀 역시 강한 보석술사임을 깨달았다.
***
“이래서 네아가 짐을 많이 싸지 않았던 거군요….”
옷장을 연 리엘라는 질렸다는 얼굴로 다시 옷장 문을 닫았다. 자신의 방 옆에 있는 커다란 방이 옷만 보관하는 곳이라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옷장 안에 미어터질 듯이 꽉 찬 옷들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조금 질리고 말았다.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는데 언젠가 올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라니?
“네, 소르디아는 카르디아와 날씨도 많이 다르고 입는 옷의 형태도 다르니까요. 그리고 누얀 씨가 완벽하게 준비해 둘 것이 분명하니까 굳이 우리가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었어요. 일단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네아는 신난다는 듯 실내복이 들어 있는 옷장을 열고 미친 듯이 안에 있는 옷들을 꺼냈다. 그러고는 리엘라의 몸에 어떤 옷이 제일 잘 어울리는지 보려는 듯 이것저것을 대 보더니 그중에 몇 벌을 다시 추려 앞에 놓았다.
“어떤 거로 입으시겠어요?”
“음… 저 흰색 옷?”
“좋아요. 그럼 이것으로. 일단 그 숄부터 좀 풀어야겠어요. 덥지 않으세요?”
“조금 덥긴 하지만 그래도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가려야 하잖아요.”
리엘라는 숄을 벗은 다음 목에 걸려 있던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풀었다. 그러자 싫다는 듯 목걸이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자꾸 그러면 하운 불러올 겁니다?”
네아가 목걸이를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하자 목걸이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운을 불러오면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네아의 도움을 받아 소르디아의 옷으로 갈아입은 리엘라는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얇은 천이 사락거리며 스치는 소리와 감촉이 무척이나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다른 나라의 옷을 입는다는 것도 즐거웠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리엘라는 발코니로 나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준비하고 오는 길 내내, 국왕이 명령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었는데 이렇게 소르디아의 모습을 보니 다시 마음이 들떴다.
외국이다. 그것도 신기한 것이 너무도 많은. 리엘라는 오는 길에 보았던 시장의 모습이 생각났다.
‘여기도 꽃이 많았어.’
소르디아의 꽃은 카르디아보다 훨씬 더 색이 짙고 화려했으며 잎도 더 크고 넓었다. 더운 지방 식물들의 특징이었다. 시장에서 봤던 꽃들을 떠올리던 리엘라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정원사들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부탁해 두었던 화분 두 개를 떠올렸다.
호슨 공작에게 주었던 것은 이미 꽃을 꺾어 다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당분간은 꽃이 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하운이 주었던 엘피안 꽃이었다.
‘조금만 더 기르면 완전히 빛을 머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가져올까 싶었는데 소르디아에는 워낙 많은 보석술사들이 있는 데다가 이제 공작저에는 하르메아도 없으니 차라리 공작저의 온실 안쪽에 두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고 판단해서 두고 왔다. 빛이 보이지 않더라도 귀한 꽃이니 정원사들이 애지중지하며 잘 돌보고 있을 터였다.
‘돌아갈 때쯤에는 다 피었으려나.’
그 즉시 하운에게 선물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리엘라는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경매가 열린다는 아이디얼 컷을 구경하고 있던 순간.
퍼버벙!
큰 소리와 함께 아이디얼 컷의 한 곳에서 엄청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