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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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폭발에 리엘라가 겨우 비명을 누르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구친 물기둥이 그대로 아이디얼 컷 위로 쏟아지나 싶더니…!
“…사라졌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물기둥은 다시 아이디얼 컷 안으로 들어갔다. 뚫렸던 천장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깨진 흔적 하나 없이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헛것을 본 것은 아닐 텐데.
리엘라가 눈을 비비고 다시 아이디얼 컷을 보자 옆에서 네아가 태연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꽤 힘이 폭주하는 보석이 들어왔나 보네요. 저기쯤이 아마 아이디얼 컷의 감정실일 거예요. 경매를 하기 전에 보석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얼마나 강한지 감정을 하는 곳인데 가끔 강한 보석들이 들어오면 저런 식으로 폭주하곤 하지요. 복구가 된 건… 공작저의 손님방 기억하시죠? 복원의 러다이트요.”
“아.”
손님방이라는 말에 리엘라는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카밀라가 찾아와 네아와 싸웠을 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방은 엉망이 되었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에 돌아가 봤더니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말끔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처음에는 공작저의 하인들이 치운 것인가 했는데 복원의 러다이트라는 보석이 그 방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고 했다.
“저기에도 그런 보석들이 있는 거군요?”
“그렇죠. 소르디아는 가장 역사가 깊은 보석 경매장이에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보석이 여기에 모였죠. 그래서 호슨 공작님도 자주 이곳에 오셔서 보석을 구매하셨고요. 여긴 개인의 소유가 아닐 뿐,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보석이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 희귀한 힘을 가진 보석들도 이곳에서는 꽤 자주 만날 수 있어요.”
네아의 설명을 들으면서 리엘라는 자신이 정말로 멋진 곳에 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벽을 타고 발코니까지 올라온 덩굴을 향했다. 따뜻한 곳임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큰 꽃이 짙은 향기를 내고 있었다. 리엘라는 그 꽃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보다가 예전 일들이 생각났다.
처음 자신의 힘을 알았을 때는 보석술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혹시나 누가 알아차리는 게 아닐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보석술사들이 가득한 소르디아에 와 있으면서도 두려움이 들지 않다니.
‘예전에는 혼자서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리엘라는 신난 얼굴로 소르디아에 대해 계속 설명하는 네아의 팔을 잡았다.
“아가씨?”
네아가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리엘라는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서요.”
“네? 뭐가요?”
“네아도, 하운 님도 다 고맙고 좋아서요.”
“으익. 왜 그러시는지 묻지 않을 테니 그놈과 같이 묶이는 건 사양할게요!”
네아는 하운의 이름에 속이 거북하단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리엘라는 그런 네아의 팔을 놓지 않은 채 웃었다. 지금 이런 곳에 와 있어도 두려운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이 자신을 지켜 주기 때문이니까.
***
“자 버렸다….”
리엘라는 아직은 낯선 방의 모습을 보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마차도 그리 오래 타지 않았고, 보석의 힘으로 이동한 덕분에 크게 피곤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낯선 곳이라고 지친 모양이었다.
네아가 해 주는 설명을 들으며 밖을 보다가 누얀이 가져다준 처음 보는 과자와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수를 먹고는 넓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그런데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벌써 어두워졌네.”
생각보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된 리엘라는 방을 나섰다. 공작저보다 훨씬 조용한 곳이다. 바깥의 소음이 작게 들려오는 것을 제외하면 복도는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얀이나 네아를 찾아볼까 싶어 아래로 내려갔던 리엘라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하운을 보았다.
어딜 가냐고 물어보려던 리엘라는 말을 삼켰다.
‘아마도 임무 때문에 나가시는 거겠지.’
리엘라는 멀리 보이는 정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소르디아는 밤이 되어도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오히려 화려한 조명들이 잔뜩 켜져 낮보다 더 어지러운 모습이었지만 그 소란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밤까지 활기찬 풍경이 신기했다.
‘재미있겠다.’
하운은 임무 때문에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은 플라워 컷 안에 있는 것이 좋으면서도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그때 생각에 잠긴 리엘라를 발견한 하운이 말했다.
“나가 보고 싶어?”
그 질문에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머리가 떨어질 것처럼 격렬하게 끄덕거리고 말았다. 마침 누얀이 둘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머, 리엘라 님. 일어나셨군요. 밖에 나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럼 네아 씨에게 지금 당장 준비하라고….”
누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운이 갑자기 리엘라의 손목을 잡더니 말했다.
“다녀오겠다. 네아에게는 알리지 말… 아니, 나중에 알리도록.”
그러고는 곧바로 리엘라를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마치 당장 뒤에서 네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급한 걸음이었다.
하운은 정문과 멀리 떨어진 다른 문을 통해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밖으로 나간 다음 플라워 컷에서 한참 떨어지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그러다 제가 여전히 리엘라의 손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놓을까? 생각하던 하운은 마음을 바꿨다. 드디어 네아의 감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엘라가 여전히 제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놓을 이유가 있을까? 당연히 없다!
하운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리엘라의 손을 잡고 걸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뻣뻣한 걸음걸이였지만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어? 일단 세공사들의 거리로 가야 해. 그보다….”
하운은 리엘라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급한 마음에 그냥 붙잡고 나왔더니 겉옷을 챙겨 오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다. 아무리 따뜻한 소르디아라지만 해가 저물면 저녁 공기에 쌀쌀함을 느낄 터였다. 하운은 근처에 있던 옷 가게로 가 리엘라가 입고 있는 옷과 어울리는 색의 겉옷을 샀다. 겉옷이라고 해도 얇은 숄에 가까운 것이라 몇 번 감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리엘라는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하운이 사 준 옷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두 사람은 다른 길보다 훨씬 더 밝게 불이 켜져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소르디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길이라는 것을. 리엘라는 하운을 붙잡고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뭘 하는 곳이에요?”
“‘첫 번째 빛’이라는 길이야. 소르디아에서 제일 처음 생겼던 상점가이기도 하고, 제일 유명한 보석상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해.”
거기까지 설명한 하운은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그것은 소르디아의 지도였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여기. 빛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들은 대부분 보석상들이 있는 길인데, 소르디아에는 열네 번째 빛까지 있어. 그리고 지금부터 이쪽으로 갈 건데… 시간이 있으니까 좀 둘러보고 갈 생각이야.”
하운은 왕의 명령으로 보석을 구하기 위해 소르디아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대사관에 머물다 경매가 있을 때, 아이디얼 컷에만 들른 후 곧바로 카르디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소르디아의 골목길과 유명한 곳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호슨 공작 때문이었지.’
하운이 어릴 적, 그녀는 견문을 넓히라면서 갑자기 그를 소르디아로 끌고 오더니 어딘지도 모르는 길에 던져두고서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 사람의 집을 찾아오라고 했다. 돈도 보석도 전부 빼앗고서.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기에 울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울고 싶을 정도로 막막한 기분이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여기저기 소르디아를 다 뒤지고 나서야 호슨 공작이 말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호슨 공작이 뭐라고 했더라? 빠르게 소르디아의 명소와 길을 외우게 되었으니 감사하라고 했던가?
‘그때는 이를 벅벅 갈 정도로 화가 났었는데….’
하운은 정말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호슨 공작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급하게 나왔음에도 리엘라를 안내할 수 있었으니까.
***
리엘라는 하운과 함께 소르디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워낙에 반짝이고 화려한 곳이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리엘라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여기저기 장식된 화려한 꽃들이었다.
창세 신화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빛은 보석과 꽃으로 변했다. 그렇기에 소르디아에서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보석상일수록 그 신화를 기억하라는 뜻에서 더욱 많은 꽃으로 가게 앞을 장식해 두었다.
‘책에서 읽어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 보니 더 대단하다….’
책에서 소르디아는 카르디아 이상으로 꽃을 좋아하는 곳이라고 하더니 거짓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소르디아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지금쯤 이곳에서 일하고 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꽃뿐만이 아니었다. 리엘라는 제 손에 들려 있는 종이를 보았다. 종이에는 온갖 종류의 보석 그림과 함께 색, 크기, 갖고 있는 힘 그리고 가격이 쓰여 있었다.
리엘라가 들고 있는 것은 사설 경매장의 광고지였다. 길 곳곳에 놓여 있는 종이가 무엇인가 궁금해서 집어 들었더니 하운이 설명해 주었다.
“아이디얼 컷의 경매는 최고 수준의 경매야. 그곳에 나오는 보석들은 엄격한 감정 과정을 통과해야 해. 아이디얼 컷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가치가 있는 보석들은 바깥의 사설 경매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져. 사실 아이디얼 컷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보다 사설 경매장에서 이루어지는 경매의 규모가 훨씬 크지.”
모든 보석술사들이 강한 보석을 얻을 수는 없다고 했다. 능력의 문제도 있지만, 그 전에 좋은 보석을 구할 돈이 충분치 않다고. 그래서 이제 막 보석술사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런 광고지를 보고 제 힘과 맞겠다 싶은 보석들을 싸게 구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제는 보석술사들에 대해서 꽤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 리엘라는 그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다 왔어.”
“여긴 무슨 가게들이 있는 길인가요?”
“여긴 가게라기보다는 세공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보석상에 소속된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유명한 사람들은 아예 따로 전문적인 세공점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호슨 공작과 자주 거래하던 세공사에게 연락을 해 뒀으니 일단 그 사람부터 찾아가 보긴 할 건데….”
“가넷과 헤마타이트 때문이군요.”
“응. 사실 세공을 맡길 게 아니라 그것들이 힘을 완전히 쓰지 못하게 조각을 내도록 해야 하는데 이건 세공보다 더 힘든 일이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아야 하니…. 게다가 다들 자존심이 강해서 부른다고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일이 찾아가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오늘은 그대도 있으니 한 명만 만나고 돌아갈 생각이긴 한데….”
하운의 말이 이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어느 가게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정확히는 어느 한 사람과 그 사람을 호위하려는 사람들의 무리였다.
척 보기에도 그 위세가 대단한지라 리엘라는 하운의 손을 붙잡은 채 뒤로 조금 물러났다. 저들이 간 다음에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호위를 받으며 나온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외쳤다.
“당신은 하운 아렐 팬드래건님?”
“젠장….”
이름이 불리자 하운이 한숨을 쉬었다. 귀찮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하운을 반갑게 부른 남자의 시선이 이번에는 리엘라를 향하더니 아주 잘 되었다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면 옆에 있는 여자는 수치와 염치를 모르는 그 잔악무도한 호슨 공작의 상속인인 리엘라 테니어겠군!”
사람은 정확히 본 것 같은데, 제 이름을 수식하는 말에 리엘라는 하운과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은 누구길래 이렇게 호슨 공작을 싫어하는 걸까. 드래곤이라도 되나?
“나는 라자르 컷의 주인인 네멘테스라고 한다!”
“…….”
그 말에 리엘라는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자신을 싫어할 만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