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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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린 보석 샘플들에 리엘라는 즐거웠다.
‘재미있다!’
원래 브릭스 거리에서 꽃을 팔던 리엘라였다. 꽃집에서는 꽃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꽃집 안에 전시용으로 두는 각종 화초의 화분을 시작으로 꽃 포장에 필요한 부자재들까지. 생각보다 리엘라가 사야 할 것은 다양했다.
매달 내야 하는 가게 월세는 물론이고, 따로 나가는 세금도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게를 낼 때 빌렸던 돈도 갚아 나가는 중이었고. 그래서 도매 시장에 가면 리엘라는 열심히 값을 흥정했다.
예쁜 화분을 보면 어디서 만드는지 주소를 확인해서 직접 공장에 가서 사 왔고, 포장재 같은 부자재를 살 때는 최대한 많은 변주가 가능한 기본 타입들을 한꺼번에 많이 사서 돈을 아꼈다. 그리고 흠집이 있으면 주인과 흥정을 해서 최대한 값을 깎았고.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하면 할수록 리엘라는 흥정이 재미있었다. 그 재미를 호슨 공작의 재산을 물려받은 다음에는 한동안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직원들에게 설명을 듣고 보석을 살펴보며 가격을 듣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본능이 깨어났다. 싸게 사야 해! 온 힘을 다해서!
리엘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직원들은 열심히 설명했다. 만약 상대가 보석술사였다면 그들도 조금은 경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리엘라는 보석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어린 아가씨일 뿐이었다. 그래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너무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실수를.
어떤 보석이 값진 것인지를 들은 리엘라는 그러면 보석의 어떤 점이 하자가 되는지를 질문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착실하게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리엘라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건 굳이 살 필요가 없겠군요. 갖고 있어 봤자 힘이 커지는 것도 아니고….”
“네? 그,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조금 전부터 생각했는데요, 여기 카탈로그의 예상 가격보다 조금씩 더 비싼 것 같은데… 여기 보세요. 예상가는 15만 길더인데 조금 전에 22만 길더라고 하셨잖아요.”
“이것은 예상가일 뿐, 원래 이것보다 조금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게 보통….”
“그게 좀 이해가 안 되네요. 경매로 넘어가면 경매 수수료도 있고 감정가도 붙으니 값이 오르는 게 이해가 되지만, 왜 여기서 사는 게 더 비싼 건가요?”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는 리엘라의 말을 들으며 직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보석술사들은 어느 정도 품질이 보증된 보석의 값을 크게 흥정하려 들지 않았다. 자신들이 상식선의 가격을 제시한 것도 있지만 보석이 더 비쌀수록 나중에 되팔기도 쉽고, 자신들의 명성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비싼 보석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일부러 퍼트리기 위해 보석술사들은 자신들이 돈을 주고 신문에 광고까지 올렸으니까. 소르디아에서 출판되고 있는 잡지 수백 종의 절반은 그런 소식을 돈을 받고 올려 주는 광고지나 다름없었다.
어쨌거나 흥정의 기술로는 카르디아에서 손꼽힐 게 분명한 리나에게도 밀리지 않는 리엘라였다. 그런 리엘라에게 자신들의 약점까지 다 드러냈으니 세공소의 패배는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리엘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다섯 개 14.5만 길더. 더 이상은 무리예요.”
***
밤길을 걷는 리엘라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녀의 손에는 세공소에서 써 준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리엘라가 골랐던 다섯 개의 보석을 판매했다는 내용이었다. 리엘라는 뿌듯한 얼굴로 밑의 숫자를 바라보았다. 14.5만. 그들이 처음 제시했던 가격은 19만이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14만 길더까지 깎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러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었다.
뭘 하고 왔는지는 몰라도 어쩐지 지쳐 보이는 그의 얼굴에 리엘라는 결국 14.5만에 타협을 봤다. 처음 세공소 직원들은 가슴이 미어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섯 개의 보석을 “내일까지 플라워 컷으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라고 말하며 포장할 때 보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세상에 믿으면 안 되는 대표적인 말 중의 하나가 손해 보고 파는 거랬지.’
당장에 자신부터 원가 이하인 가격이다 싶으면 팔지 않는데, 오랜 세월 보석을 팔아 온 그들이 아무리 자신이 호슨 공작의 상속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해도 밑지는 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들고 있던 영수증을 받은 종이봉투에 넣고 고개를 돌리니 하운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리엘라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응?”
“돌아오셨을 때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거야 갈 때는 이랬던 눈이….”
리엘라는 두 손으로 제 눈꼬리를 밀어 올렸다.
“이렇게 올라갔으니까요.”
“…….”
리엘라의 행동에 자신이 저렇게까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돌아온 건가 싶어 할 말이 없었다. 분명 표정을 잘 숨기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저렇게까지 드러내 놓고 있었다고?
“힘든 일이셨나 봐요?”
“…응.”
아니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하운이 순순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리엘라는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힘드냐고 물어볼 때마다 언제나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던 하운이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큰일들도 그저 귀찮다고만 했던 그가 힘들다고 말할 정도의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리엘라는 그가 따로 사람을 만나러 갔던 것이 단지 보석의 파괴 때문만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런다고 내가 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하운이 하는 일에 자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빛나는 꽃을 길러 줄 수 있지만 그게 쉽게 건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리엘라는 몇 번 망설이다 슬쩍 하운의 손을 붙잡았다.
“……!”
하운이 놀라서 돌아보았지만 리엘라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더 강하게 손을 잡았다.
사실 카르디아에서 그녀가 먼저 하운의 손을 잡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번뜩이는 네아의 시선이 가장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하운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왕실은 자신과 하운을 결혼시키려 할 것이라고 했다. 하운이 그 말을 자신에게 한 것은 ‘너도 싫지?’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땐 정말 싫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말이 도는 것이 싫어 더더욱 벽을 치고 대했었는데….
리엘라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맞잡은 손을 보았다. 하운은 놀랄 뿐, 손을 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제 손을 붙잡았다. 다시 고개를 들자 내심 기쁜 듯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날카로워졌던 눈매가 어느새 부드럽게 변했고, 딱딱하게 굳었던 입매도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운은 당황하면서도 손은 놓지 않은 채 더듬거렸다.
“어, 그게… 그러니까….”
“오는 길에 봤던 가게에 들렀다 가요. 이것저것 사 가야 할 것 같으니까요.”
다른 손에 들려 있는 종이봉투를 흔들며 리엘라는 힘차게 앞서 걸었다.
하운은 자신을 끌고 가는 리엘라의 뒷모습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헤마타이트의 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지금은 그런 고민보다 제 손을 잡아 주는 리엘라의 손이 그의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혹여나 놓칠세라 그녀의 손을 더 꽉 붙든 하운은 웃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뭘 살 거야?”
무엇이 되었든 원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잔뜩 사 주고 싶었다.
“네아 선물이요. 혼자 놔두고 나왔다고 지금쯤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있을 것 같으니까요.”
“…….”
하운은 아무도 몰래 조금 전 제 결심을 취소했다.
***
“으아아아아!”
라자르 컷의 하인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네멘테스의 비명 소리에 자신들의 가슴이 미어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계약을 파기하다니!”
네멘테스는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은 기세로 손에 들린 계약 파기서를 노려보았다. 종이 위에는 소르디아 법에 따른 공증을 받았다는 도장이 크게 찍혀 있었다. 한마디로 이미 법적인 자문은 끝났고, 계약은 문제없이 파기되었다는 소리였다.
네멘테스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있던 꽃병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보물 소리를 들을 정도의 귀한 것임을 알고는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다음 종이를 고정하는 문진을 집어 들었지만, 그것 역시 귀한 보석들로 가득 장식된 것을 보고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그의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귀했던 탓이다.
당연한 일이다. 소르디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또한 부유한 가문의 수장인 네멘테스다. 그런 그의 방에는 언제나 최고의 것들만이 있었으니까.
결국 아무것도 집어 던지지 못한 네멘테스가 기둥에 팔을 기대며 탄식했다.
“내 마음대로 물건 하나 던질 수 없는 삶이라니….”
진심으로 불행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네멘테스의 목소리에 뒤에 서 있던 하인들은 이제 눈물을 찍어 낼 기세였다. 불쌍한 우리 주인님을 위해 돌멩이라도 좀 갖다 놓아야 하는 것일까.
한참 동안 비싼 대리석 기둥에 의지해 비련의 주인공을 연기하던 네멘테스는 겨우 숨을 고르고 나서 제 손에 들린 계약 파기서를 보았다.
파기 사유를 보는 네멘테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령에 따른 지병의 악화로 부득이하게 계약을 진행할 수 없음을 통보한다…? 장난해! 저번에 보니 맨주먹으로도 원석을 조갤 정도로 정정하더만!”
설마 이런 이유로 프레이가 계약을 파기할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 이 사항은 빼 두었던 것이 실수였다.
네멘테스는 계약 파기서를 찢어 버리려 종이를 잡았다가 잠시 후 테이블 위에 도로 내려 두었다. 제가 힘을 주어 잡는 바람에 구겨진 부분을 잘 편 그는 책장에서 서류철을 가져와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집사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눈물을 훔쳤다. 우리 도련님, 아무리 흥분하셨어도 서류를 저리도 중요하게 다루시는 저 자세라니.
네멘테스는 하인들의 따스한 시선을 받으며 서류철을 책장에 넣은 다음 다시 대리석 기둥을 주먹으로 쳤다.
“…둘 다 일부러 이러는 것이 틀림없어! 나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것이지! 소르디아에 오자마자 날 찾아오다니. 어지간히도 내가 신경 쓰이나 보군. 하긴 소르디아에 내가 아니면 그들을 상대할 만한 자가 없긴 해.”
하운과 리엘라가 들었다면 대단한 자의식 과잉이라 말했을 소리를 하며 네멘테스는 계속해서 말했다.
“호슨 공작의 상속인에 제자라니. 정말이지 끔찍하고 지독한 조합이야. 게다가 지금까지 소르디아에는 관심 한번 보이지 않더니 하필 내가 프레이를 찾아갔을 때 딱 맞춰 찾아와? 그게 우연일 리가 있나.”
정말 우연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네멘테스는 이를 갈며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둘 다 아이디얼 컷의 경매에 참여하겠지. 하운 대공은 에르첼라의 보석이 나왔다는 것을 확인하러 왔을 테고….”
네멘테스는 재빨리 책상으로 돌아가 앉아 쌓여 있는 장부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번에는 저번 달에 팔았던 보석들의 대금도 들어왔겠다, 자금도 넉넉해. 게다가 호슨 공작이 사망하면서 그녀의 재산 중에 묶여 있는 것도 많은 데다가 상속인이 아직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 같으니….”
네멘테스는 가지런하게 서류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경매에서 있는 힘껏 방해해 주지.”
은혜는 배로, 원한은 곱절로 갚아 주라던 가훈을 떠올리며 네멘테스는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