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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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들어.”
하운의 중얼거림에 리엘라의 어깨가 축 처졌다.
“죄송해요. 일을 이렇게 키우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
“아니, 그대 말고 저놈 말이야.”
저놈이라 말하는 하운의 시선이 네멘테스를 향했다. 리엘라도 그를 따라 네멘테스를 바라보았다. 보석 앞에 서 있던 네멘테스는 리엘라와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리엘라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어쩔 수 없죠. 세상 모든 게 의심스러울 걸요.”
리엘라는 네멘테스의 앞에 놓여 있는 보석을 보았다. 그것은 카지가 속여서 팔아넘긴, 이제는 힘을 다하고 잠들어 버린 추적의 보석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보석은 빛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저걸 되살려야 하는 거네.’
리엘라는 제 주머니 안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은 물론이며, 단단하고 색이 예쁜 나무로 만들어진 재질 역시 누가 보아도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척이나 귀한 것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나무 상자였다.
리엘라는 슬쩍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무척이나 반짝이는 보석이 들어 있었다. 완벽한 브릴리언트 컷에 중량도 꽤 나가는 투명도까지 좋은 상급의 다이아몬드.
‘하지만 이건 눈속임이지.’
사실 이 다이아몬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저 잘 세공된 예쁜 다이아몬드일 뿐이었다. 이 상자가 진짜 보관하고 있는 것은 이 다이아몬드를 올려 둔 쿠션 아래에 있는 빛나는 꽃잎이었다.
꽃잎을 하나만 가져올까 하다가 보석의 힘을 완전히 돌리는 데 얼마나 필요할지도 모르는 데다가 괜히 몇 장 남겨 두는 것보다 차라리 전부 상자 밑에 숨겨 두는 게 낫겠다는 하운의 의견에 따라 쿠션 아래 넣었다. 아까운 마음에 대사관에 있는 보석들 중 잠들어 있는 보석이 있으면 그것들이라도 깨우는 게 어떠하겠냐 했더니 하운은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야. 고작 아깝다는 이유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하운의 대답에 리엘라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그가 보석들을 되살리는 일보다 제 안위를 더 걱정해 주고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면 그렇게 반대하던 하운이 지금은 사라진 오팔을 되찾기 위해 함께 움직여 주고 있었다. 속으로는 얼마나 이 일을 싫어할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일이기에 아무런 말 없이 도와주고 있는 것이고.
미안함을 느끼며 리엘라는 나무 상자를 닫았다. 그러다 다시 네멘테스와 눈이 마주쳤다.
“……?”
이번에도 네멘테스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계속 날 살피고 있었던 건가?’
역시, 네멘테스의 의심은 쉽게 거둘 수 없을 것 같았다. 리엘라는 상자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다음 여전히 네멘테스를 노려보고 있는 하운에게 말했다.
“얼굴 좀 풀어요. 우리가 네멘테스를 이해하자구요. 지금도 얼마나 정신이 없겠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저 녀석이 그대를….”
그때 복도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네나가 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오팔 원석의 조각! 가져왔어요!”
그 말에 모두가 이네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네나의 손에는 작은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얼핏 보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닐 것 같은 돌멩이다. 하지만 깨끗하게 잘린 절단은 램프 불빛 아래에서 여러 가지 색으로 반짝거렸다. 오팔의 조각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이거 사실 그때 봤던 가방에 숨겨 뒀던 거예요. 잘했죠?”
이네나는 해맑게 웃으며 리엘라에게 오팔 조각을 내밀었다. 처음 오팔 원석을 살펴볼 때 잘라 냈던 조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멘테스가 원석 조각을 받아 들자 이네나는 리엘라의 옆으로 조르르 달려와 그녀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언니, 정말로 찾을 수 있는 거죠?”
어느새 이네나는 친근하게 리엘라를 언니라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네멘테스는 그런 이네나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오팔을 잃어버렸다고 달려왔을 때, 이네나는 펑펑 울고 있었다.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는 당혹스러움도 있었겠지만, 그 보석 자체가 좋아서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도 컸던 것이다.
‘그걸 되찾을 수 있다고 하니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이네나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저렇게 따르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리엘라 테니어가 소르디아에 살았으면 꽤 자주 찾아갔을지도….
“…어?”
거기까지 생각하던 네멘테스는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뭐야. 내가 왜 리엘라 테니어가 소르디아에 사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네멘테스는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흡!”
그곳에는 하운이 그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그냥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무슨 부모의 원수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지만. 도대체 하운이 왜 저를 저렇게 노려보는지 몰라 주춤거리고 있을 때, 리엘라가 말했다.
“그럼 이제 다 준비되었으니 시작해요. 시간 없잖아요?”
“…알았어.”
하운은 네멘테스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리엘라의 옆에 섰다. 리엘라는 들고 있던 나무 상자를 넘기며 하운을 바라보았다.
‘잘… 하시겠지?’
빛나는 꽃을 남들 앞에서 대놓고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빛나는 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무런 힘이 없는 보석을 가져와 이것이 마치 다른 보석을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척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테이블 위에 카지가 팔아넘긴 추적의 보석 그리고 이네나가 가져온 원석 조각, 마지막으로 꽃잎을 숨겨 둔 나무 상자가 올라갔다. 그다음 하운이 그 앞에 섰다. 그는 나무 상자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갑자기 다이아몬드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별생각 없이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셔 모두 고개를 돌렸다.
미리 이럴 것이라 언질을 받긴 했지만 생각보다 밝은 빛에 리엘라도 팔로 눈을 가려야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이에 힘을 회복시킬 거라 했어.’
처음에는 네멘테스에게 추적 보석을 받아 가서 회복시킬까 했는데 그러면 정말로 수상해 보일 것 같아 고민했더니 하운이 다들 못 보는 사이에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며 이 방법을 제안했다. 어떻게 힘을 회복하는 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카르디아 소유의 미공개 보석이라고 적당히 둘러대면 된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감고 있어도 환했던 빛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어? 이거 뭐예요? 예쁘다!”
그때 놀란 이네나의 목소리가 들렸고, 리엘라는 재빨리 눈을 떴다. 그러자 방 안에 반짝이는 빛의 조각들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꽃잎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제가 피워 냈던 꽃의 꽃잎과 똑같은 모양이기도 했다.
‘빛을 만들어 내는 보석을 사용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모양까지 만들어 낼 줄은 몰랐네.’
이 정도면 진짜 빛나는 꽃잎이 섞여 있어도 모를 것 같았다. 다음에도 혹시 쓸 일이 있으면 이런 방법을 쓰면 되겠다 싶어 리엘라가 빛의 꽃잎들을 콕콕 찔러 보고 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휙 돌아보자 곧바로 네멘테스와 눈이 마주쳤다.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리엘라는 멋쩍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어… 예쁘죠?”
제 머리 위로 팔랑팔랑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어색하게 묻자 네멘테스는 우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내가 미쳤나?’
네멘테스는 자신의 상태를 의심했다. 확실히 예쁘긴 예쁘다. 허공을 떠다니는 반짝이는 꽃잎은 봄에 떨어지는 벚꽃 잎을 생각나게 했으니까. 그러니 꽃잎으로 시선이 가는 게 당연한데 왜 자꾸만 저 여자를 보게 되는 거지? 게다가 방금 예쁘다고 생각….
“……!”
네멘테스가 스스로의 생각에 놀라며 고개를 돌린 순간, 리엘라의 뒤로 하운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손을 펴 리엘라의 얼굴을 가렸다.
“하운 님?”
“계속 보면 눈이 아플 거야. 잠시 감고 있어.”
그런가? 어쨌든 리엘라는 시키는 대로 했다. 계속 반짝거리는 것을 봤더니 눈부신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한 손으로 리엘라의 얼굴을 완전히 가린 하운은 고개를 들어 네멘테스를 바라보았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자식이 리엘라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리엘라에게 말하면 웃어 버릴 것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저놈의 눈이 리엘라를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하운은 다른 손을 슬쩍 내밀어 리엘라의 어깨를 감싼 다음 그를 바라보도록 돌려세웠다. 아무런 저항 없이 리엘라가 그와 마주 섰다.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는 행동에 하운은 만족감을 느끼며 네멘테스를 노려보았다.
상인이라 그런지 눈치는 빠른 모양이었다. 그는 그 모습만으로도 리엘라와 하운이 무슨 관계인지 눈치챈 것 같았다. 당황과 민망함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네멘테스의 모습에 하운은 이를 갈았다. 이게 어딜 넘봐?
그리고 네아는 옆에서 그 모든 장면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와, 미친놈. 눈 번뜩이는 거 봐. 다른 일에는 눈치를 발바닥에 붙이고 사는 것 같더니 이런 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네.’
리엘라와 관계되면 예민해지는 하운을 보며 네아는 지독한 놈이라 생각했다. 지금 하운의 꼴을 보니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그대로 네멘테스를 밟은 다음 리엘라를 안아 들고 갈 것 같았다.
“이것 보세요!”
이네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모두 그녀가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카지가 비싸게 팔았던 추적의 보석은 조금 전의 모습과 달리 다시 빛과 색을 되찾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 보석이 이렇게 빨리 회복됐다는 이야긴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카르디아의 미공개 보석이다. 아주 강력한 보석은 회복시킬 수 없어. 특별히 가져온 것이니 함부로 이 사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으면 좋겠군.”
“물론이에요! 어서 빨리 오팔을 찾으러 가요! 빨리!”
네멘테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신난 이네나가 소리쳤다. 하운은 네아에게 눈짓했다. 추적은 네가 하라는 뜻이었다.
“네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착각하지 마.”
하운을 향해, 정확히는 아직도 리엘라의 어깨 위에 있는 그의 손을 보며 눈을 부라린 네아는 추적의 보석과 오팔 조각을 집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네아의 손 위에서 추적의 보석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옆에 있던 오팔 조각을 감쌌다. 잠시 후, 조각에 머물렀던 빛이 허공으로 떠올라 작은 공처럼 변했고, 그것이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적을 시작한 것이다.
“좋았어, 가자!”
“네!”
네아가 빛을 따라가자 옆에 있던 이네나는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세공용 망치를 단단히 움켜쥐며 대답했다. 네멘테스가 가긴 어딜 가냐고 이네나를 뜯어말리고 있을 때, 하운은 리엘라를 보았다. 리엘라는 아무 말 없이 제 손목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저번 사건 이후 몇 알 남지 않았던 아르펠트의 진주가 걸려 있었다. 즉, 크게 위험할 일은 없으니 따라가겠다는 소리였다.
“…알았어. 같이 가. 그러니까 그렇게 노려보는 건 그만둬 줬으면 하는데.”
“네!”
같이 가자는 하운의 말에 리엘라도 신이 나 빛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동원할까도 고민했지만 그러면 오히려 상대가 알아차리고 도망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보석을 추적하는 주 인력은 하운과 네아, 누얀, 셋으로 정해졌다. 어차피 그 셋이 사실 소르디아 안에서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자들이기도 했고.
리엘라와 하운을 포함해 네아, 누얀, 네멘테스, 이네나로 이루어진 일행은 빛을 따라 밤거리를 달렸다. 움직이는 빛은 처음에는 몇 번 망설이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헤매지 않고 곧바로 나아갔다. 오팔 원석이 어디 있는지 확신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후, 망설임 없이 나가던 빛이 벽에 부딪혀 움직임을 멈췄다. 네아가 벽을 넘어가려는 빛을 붙잡은 다음 벽을 바라보고 한숨 쉬었다.
“설마 했는데….”
네아뿐만이 아니라 리엘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한숨을 쉬거나 이를 갈았다.
“왜 그래요? 여기가 어딘데?”
리엘라의 질문에 네아가 대답했다.
“여기… 카지의 저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