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69
176
“내 보석이라니?”
리엘라의 말에 카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여자가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제가 가져온 것들은 전부 네멘테스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신문에서 본 호슨 공작의 보석들도 죄다 제 것으로 하고 싶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망상일 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나 하는 소리가 제 보석을 내놓으라니? 자신이 언제 가져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때 리엘라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가져간 네멘테스의 오팔 원석! 나는 그 권리서를 네멘테스에게서 샀어. 그러니 이제 그것은 내 소유야.”
그 말에 카지는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에 오팔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추적의 보석은 분명 잠들었다. 제가 알기로 다른 추적의 보석들 역시 아주 먼 곳에 있거나 잠들어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알아낸 것일까. 어쨌거나 일단은 잡아떼야 했다.
카지는 놀라움을 노련하게 감추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얼굴로 리엘라와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다 같이 술이라도 마셨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남의 집에 침입을 하다니. 카르디아의 사람이라 이곳의 법이 만만하게 보인 모양인데 아주 엄중하게 처벌받을 거야! 그리고 내가 오팔을 가져갔다니? 증거라도 있나!”
억울하다는 듯 뻔뻔하게 크게 소리친 카지는 더욱 목에 핏대를 세웠다.
“증거 하나 없이 이렇게 다짜고짜 들어와 난동을 부리다니!”
카지의 외침에도 리엘라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증거? 네아, 보여 주세요!”
“네, 아가씨!”
네아는 리엘라의 명령에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와 보란 듯이 제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네아의 손에는 힘을 되찾은 추적의 보석이 들려 있었다.
“저건…!”
제가 팔았던 보석임을 알아차린 카지의 눈이 커졌다. 분명 네멘테스에게 넘겼을 때는 빛을 잃어버리고 잠들었던 보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아의 손에 들려 있는 그것은 태양의 조각이라도 된 듯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지는 고개를 들었다. 추적의 보석이 만들어 낸 빛 덩어리가 자신의 저택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찾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평온했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잠든 보석이!”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신이 난 얼굴로 외친 네아는 다른 한 손도 들어 올린 다음 쫙 펼쳤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마다 투명한 보석이 끼워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모든 순간이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
네아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것들은 크리스털이었다. 시간을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게 기록할 수 있는 최고급 크리스털.
“젠장!”
이제 카지는 더 이상 표정을 꾸며 내지 않았다.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리엘라의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경비병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해! 어서 죽여!”
이제 잡아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모두 여기에 묻어 버리는 것.
명령을 했지만 그 누구도 달려 나가지 않았다. 이미 네아와 누얀이 신나게 동료들을 두들겨 패서 던져 버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선뜻 나서는 이가 없자 카지가 다시 외쳤다.
“한 놈당 10만 길더를 주겠다! 어서!”
그러자 금액에 홀려 주춤주춤 앞으로 나오는 자들이 있었다. 네아는 그 모습을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와… 자존심 상하네. 10만? 10만? 나는 그렇다고 치는데 어떻게 우리 아가씨에게 10만 길더 같은 푼돈을 부를 수가 있어?”
네아의 넋두리에 누얀이 맞장구를 쳤다.
“세상에, 어떻게 플라워 컷의 주인에게 그런 모욕적인 금액을 걸 수 있지요?”
누얀은 아예 한술 더 떠 눈물을 닦아 내는 시늉까지 했다.
“그러게요! 우리 오빠한테 10만 길더가 뭐냐!”
심지어 뒤에 서 있던 이네나까지. 몸값이 너무 적다며 항의하는 당황스러운 광경에 경비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카지를 노려보던 네아는 손가락으로 하운을 가리켰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이 자식을 별로 안 좋아하긴 하는데 카르디아의 하운 대공에게 10만 길더라니! 야, 너! 이렇게 싸구려였냐?”
갑작스레 지목당한 하운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왜 갑자기 나에게 난리야…?”
그때 네아의 말을 들은 경비병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운 대공?”
“플레노트와 대적했다는 그 보석술사?”
“저 사람, 기사인 줄 알았더니… 호슨 공작의 제자라는 그 대공이야?”
네아와 누얀이 신나서 경비병들을 때려눕히는 동안 하운은 가만히 서 있었기에 그들은 하운이 두 사람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기사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운은 경비병들이 물러서는 모습을 보더니 앞으로 나섰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으면….”
“100만! 저놈을 잡으면 100만 길더를 주마!”
“으아아!”
카지가 하운의 말을 자르며 소리치자 순간 그 액수에 눈이 먼 경비병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하운에게 달려들었다. 하운은 저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운이 움직이지 않자 남자는 더욱 큰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이대로 한 번만 찌르면.
한 걸음 앞까지 다다른 경비병은 제 승리를 확신하며 검을 내질렀다. 그 순간 하운이 움직였다. 퍽! 큰 주먹이 경비병의 배에 정확하게 꽂혔다.
“크억!”
거짓말처럼 경비병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 순간 하운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생겨나며 당황하여 버둥대는 경비병의 몸을 채찍으로 갈기듯 후려쳤다.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경비병의 몸이 정원에 있던 관목의 위로 처박혔다. 모두가 그 갑작스러운 장면에 넋을 놓은 사이 하운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제는 소르디아를 휘감을 것 같은 거대한 불기둥이 생겨났다.
“도, 도망가!”
“으아악!”
놀라 도망치던 경비병들은 곧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생겨난 투명한 빛의 벽이 카지의 저택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의 벽은 그들이 몸을 던져도, 칼로 내려쳐도 금 하나 가지 않은 채 그들을 막았다. 즉, 도망갈 길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리였다.
경비병들의 뒤에서 하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터의 방식대로 너희들을 정리하겠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오만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아무도 굴욕을 느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자였다. 그들은 왜 하운이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그가 나서는 것은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가장 날카로운 검을 꺼내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넘실거리는 불과 물의 앞에서 하운은 카지와 경비병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텐가?”
툭.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경비병들이 하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카지가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야! 싸워 보지도 않고!”
하지만 아무리 그가 외쳐도 일어나는 이는 없었다. 경비병들에게 더 이상 저항의 의지가 없음을 확인한 하운은 몸을 돌려 카지를 향했다.
“이, 이익…!”
제 경비병들이 너무도 무력하게 제압당하는 모습을 보자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하운 대공이라 할지라도 소르디아 안에서 허가받지 않고 보석의 힘을 사사로이 쓰면 처벌을 받아! 그런데 이런 힘을 멋대로 휘두르고도 무사할 줄 아나!”
카지의 외침에 하운은 조소를 흘렸다.“나는 과거 호슨 공작과 함께 비밀리에 소르디아 의회의 일을 도운 적이 있지.”
“그게 무슨 상관….”
“그 대가로 소르디아 의회는 나에게 어떤 일이든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면책권을 주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대단히 할 일도 없었기에 평생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운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카지는 제 목을 붙잡고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목을 죈 것이다. 카지의 몸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운은 바르작거리는 카지를 보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벌레 한 마리를 죽이는 데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사이에도 카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제 목을 조르는 힘은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지는 자신을 보는 하운과 시선이 마주쳤다.
“……!”
그곳에는 끔찍할 정도의 무심함이 담긴 시선이 있었다. 그 순간 카지는 알 수 있었다. 하운 공작이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겠다 마음먹으면 자신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동안 카지는 강한 보석술사들을 피해 가며 일을 꾸몄다. 그리고 언제나 교묘하게 법의 허점 사이로 빠져나갔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너무나 압도적인 힘에 카지는 빠져나갈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협박도, 제 재산도, 경비병들의 무력도, 언제나 멍청한 것들만 지키는 것이라 비웃던 소르디아의 법도. 그 어느 것 하나 하운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사, 살려…!”
하운에게 애원이 통하지 않을 것을 눈치챈 카지는 리엘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운 대공은 단지 리엘라 테니어와 함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내걸어 그를 움직이게 했는지는 몰라도 하운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그녀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리엘라 테니어는 호슨 공작의 재산을 상속받기 전에는 꽃집을 했던 평범한 여자라고 했다. 그러니 최대한 고통스러워하며 애원하면 놀라서라도 하운을 말려 줄 것이 분명했다.
“살려… 리, 리엘라 양 …제발….”
일부러 더욱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카지는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리엘라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겠다는 듯 눈을 꾹 감고 귀를 막은 채 서 있었던 것이다.
제가 빌어야 할 사람이 사라진 카지는 덜덜 떨며 다시 하운을 보았다.
하운은 들고 있던 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카지가 그의 손짓에 그대로 땅으로 처박혔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어깨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이 카지를 덮쳤다.
“흐, 흐악! 살려 줘! 사, 살려 줘!”
카지는 아직 다치지 않은 다른 팔로 바닥을 기었다. 이제 보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그를 지배했다. 하운은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가는 카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리엘라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제가 보석의 힘을 쓰기 시작하면 눈을 감고 귀도 막으라고.
그는 오랜 시간을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그렇기에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폭력성이 강하게 표출될 때가 있었다. 하운은 혹시라도 저의 그런 모습을 리엘라가 보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 생각에 네아도 동감했는지 네아는 아예 리엘라의 앞을 가로막고는 카지의 비명 소리 따위 들리지 않게 리엘라에게 계속해서 시끄럽게 말을 걸어 대고 있었다.
하운은 다시 몸을 돌렸다.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끝내야 했다. 그는 발을 들어 기어가는 카지의 어깨를 밟았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운은 어깨를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끄르륵. 카지는 입에 거품을 물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소르디아의 가장 큰 벌레가 잡힌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