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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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테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리나에게 소르디아에서 있었던 일을 추궁당하고 있던 리엘라는 갑자기 왜 아일리가 제 이름을 부르며 미친 들소처럼 복도를 달려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일리는 발로 걷어찬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칠게 문을 열더니 그대로 리엘라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언니가 날 언제 키웠어? 키운 건 레베카 언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냐! 왜! 왜 하운 대공과 네가…!”
아일리의 입에서 하운의 이름이 나오자 리엘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뭐야! 하운 대공님이 벌써 말했어?”
“뭐어? 그럼 그놈이 한 말이 진짜야?”
아일리는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더니 중얼거렸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레베카 언니에게 편지를 써야 해.”
“무슨 소리야? 레베카 언니가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
리엘라는 제 첫째 언니를 떠올렸다. 테니어가 세 자매 중 가장 첫째인 레베카. 언제나 칼같은 성격의 레베카. 그녀는 동생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 뭐라고 하기 전에 직접 응징하는 공포 그 자체였다.
툭하면 마을 아이들과 쌈박질을 벌이며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아일리도 레베카 앞에서는 뱀 앞의 개구리에 불과했다.
“할 말은 그게 전부니, 아일리 테니어? 그럼 이제 그 입을 다물고 작은 머리로 반성할 시간이구나.”
레베카는 세 자매 중 키도 제일 작았지만 그녀가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름을 부를 때는 부모님조차 “내 딸이지만 정말 무섭다….”라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어쨌거나 아일리나 리엘라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레베카의 앞에 무릎을 꿇은 다음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에 대해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언니의 고견을 들을 수 있을까요?”라며 꾸벅 고개를 숙일 정도로.
그런 레베카에게 편지를 쓰겠다니. 잘못한 일은 없는데도 갑자기 목에 밧줄이 걸린 기분이었다.
리엘라가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묻자 아일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막내가 갑자기 남자랑 동거를 하겠다는데 그럼 내가 가만히 있겠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하운 대공이 그랬어! 내일부터 너와 같이 살 집 꾸민다고.”
“뭐…?”
아일리의 말에 리엘라는 지금 제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냐는 표정이 되었다. 그때 문 앞에 뒤늦게 하운이 나타났다.
“하운 님! 지금 우리 언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곧이어 복도에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네아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운 아렐 펜드래거어어어어언!”
퍽! 하운이 간발의 차로 피한 네아의 발이 벽에 꽂혔다. 그걸 시작으로 네아와 하운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주먹을 교환했다. 아일리는 그 옆에서 주머니를 뒤적이며 “곰도 한 방에 쓰러트리던 독침이 어디 있더라….”라며 중얼거리고 있었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방에서 리엘라는 그나마 상식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리나를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야….”
그녀는 어느새 소파 위에 앉아 옥수수 과자를 잔뜩 입에 물며 이 모든 광경을 너무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리엘라는 소리쳤다.
“모두 그마아아아아아안!”
***
“아, 머리 아파….”
리엘라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며 한숨을 쉬었다. 멜다 부인이 가져다준 허브차의 향기가 그나마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금 편하게 만들었다. 리엘라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
“겨우 사람이 한 명 늘어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정신이 없을 일인가….”
아일리가 온 것만으로도 낮의 저택은 시장 바닥이 된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던 사람은 그녀를 포함해서 다섯 명인데 그중에 네 명이 동시에 말하고 있었으니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또 듣고 있었던 거지?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적당히 닦아 낸 리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갔다.
“여기에 뒀는데….”
책장을 뒤적이던 그녀는 곧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아, 여기 있다.”
리엘라는 책 크기의 종이 박스를 들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종이 박스를 열자 그 안에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잔뜩 들어 있었다. 예전에 파르멜 저택을 떠올리면서 자신이라면 어떻게 꾸밀지 상상하며 그려 보았던 것들이었다.
“그때 그렸던 것들을 진짜 써먹게 될 줄은 몰랐네….”
리엘라는 그중 마음에 드는 조감도를 몇 장 추렸다.
“흐음….”
그때는 꽤나 자신 있게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여러모로 모자란 점이 많았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단 말이야….”
리엘라는 꽃 축제에서 보았던 정원 관리 업체들의 조감도를 떠올려 보았다. 물론 그 사람들은 프로 중의 프로고, 조감도를 그리는 전문 화가들을 따로 고용했으니 멋지게 그려진 게 당연했다. 하지만 하운이 자신에게 부탁한 이상 그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완벽하게 만들어 하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어쨌거나 내가 처음 맡게 된 조경인걸.’
물론 혼자서 다 맡을 수는 없다. 공작저 정원사들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며 필요한 돌과 나무, 꽃을 얻기 위해 많은 회사와 화원들을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리엘라는 다시 일어나 이번에는 서랍장 밑의 서랍을 열었다. 무엇인가 가득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들고 일어난 리엘라는 침대로 가서 봉투 안에 있는 것들을 이불 위에 우르르 쏟았다.
이불 위로 떨어진 것은 명함들이었다. 명함 구석구석에는 ‘꽃이 싱싱한 집’, ‘희귀 식물이 많은 집’, ‘질이 좋은 대리석을 소량으로도 판매’, ‘직접 벽돌을 구워 내는 곳. 주문 제작 가능’이라고 그녀의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리나와 함께 꽃 축제 전시관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뜨이는 가게가 있을 때마다 받아 놓은 명함들이었다. 받으면서 스스로도 이걸 쓸 일이 언제쯤 올까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이용하게 될 줄이야.
리엘라는 제가 그렸던 조감도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파는 곳들을 추려 보았다. 명함을 보고 있던 눈이 슬슬 감길 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엘라, 들어가도 되냐?”
“응.”
아일리는 한 손에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누워서 뭐 하냐? 이건 다 뭐야?”
“꽃 축제에서 받아 왔던 명함들이야. 하운 님 저택 공사할 때 필요한 것들을 사려면 지금부터 업체들을 미리 좀 골라 놔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에 아일리는 접시를 테이블 위에 두고 침대 위로 올라와 앉더니 말했다.
“리엘라야.”
“왜애?”
“너 꼭 하운 대공이랑 사귀어야겠냐?”
“…안 돼?”
“너 말이야.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공작과 사귄다고 하면 뭐라고 할래?”
“그 공작님 불쌍해….”
“야! 이게, 정말!”
아일리는 누워 있는 리엘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러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탓에 손에 물이 묻자 옆에 있는 수건을 확 집더니 누워 있는 리엘라의 머리카락을 툭툭 털어 주기 시작했다.
“좀 진지하게 대답하라고. 하운 대공의 어디가 좋은 거야?”
“어, 음… 솔직히 하운 님이 어디 부족한 점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카르디아의 1등 신랑감 후보인 그다. 얼굴이면 얼굴, 키면 키, 부, 명예, 능력 등등…. 점수를 놓고 보자면 카르디아 미혼 남자 중에 그를 뛰어넘을 사람이 있을까?
리엘라의 대답에 아일리는 한숨을 푹 쉬며 되물었다.
“저 싸가지도?”
“…….”
갑자기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 리엘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후 눈동자를 굴리며 리엘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보다 보면 매력 있어.”
“어이구, 단단히 빠졌네.”
리엘라의 머리카락에서 마저 물기를 털어 낸 아일리는 자신도 피곤하다는 듯 벌렁 침대에 누웠다. 아일리가 누운 채로 한숨을 푹푹 쉬자 리엘라는 꼬물꼬물 이불 위를 기어 아일리의 옆에 누웠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왕실의 사촌이 되게 생겼는데 지금 내가 걱정 안 하게 생겼냐?”
“왜 생각이 벌써 거기까지 가?”
“같이 살 거라며.”
“아니, 그건 그러니까 하운님이 그냥 말한 거라니까! 애초에 네아가 그러라고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구.”
“그래, 하운 대공과 비등하게 싸우는 것을 보니 책임지고 잘 막아 내겠더라. 호슨 공작님께서 큰 은인을 남겨 주고 가셨네.”
확실히 오늘 네아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격보다 더욱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날렸고, 덕분에 공작저 벽 한쪽에 자국이 움푹 팰 정도의 피해가 있었다. 하운도 평소보다는 조금 힘겹게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오늘의 네아는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상태였다. 아니,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상태였나?
리엘라는 한숨을 쉬었다.
“난 그냥 정원을 만들고 싶은 것뿐인데 이렇게 난리 날 일인가….”
“너에게는 단순히 정원 꾸미기겠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냐.”
아일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둘이서 함께 집을 꾸미고 정원을 돌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릴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미래를 조금도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냥 같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인데….
“난 그냥 예쁜 정원을 만들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중얼거리던 리엘라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침부터 소르디아를 떠나 바쁘게 움직인 데다가 아일리까지 돌아와 시끄러웠던 탓에 피로가 쌓였다. 리엘라는 손을 옆으로 뻗어 ‘대리석 분수 전문. 정원용 대형 분수대 주문 제작 가능’이라고 적힌 명함을 제 얼굴 위에 올린 다음 파르멜 영지의 저택을 떠올렸다.
방치되어 있어 어디가 정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풀이 가득하고, 분수대는 보이지도 않았으며, 바닥의 돌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는 곳. 그곳을 아름다웠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나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런 형태의 저택이면 후원에 온실을 둬도 예쁘겠다.’
꽃 축제에서 본 유리온실들을 떠올리던 리엘라의 의식이 스르륵 어둠 밑으로 잠겼다.
아일리는 고개를 돌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세 자매 중 막내로 어찌 보면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동생이었다. 사실 아일리는 리엘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탓에 자신들보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적은 리엘라였다.
의사가 된 레베카가 대륙에서 떨어진 머나먼 섬에서 일을 하고, 일찌감치 수도를 떠난 아일리가 국경을 돌며 자신의 일을 시작했을 때, 리엘라는 수도에 조부모와 남아 그들을 돌보며 함께 생활했다. 미안한 마음에 버는 돈 대부분을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엘라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는 유독 언니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잠시라도 안 보이면 곧바로 울먹거리던 아이였는데, 언제 이렇게 혼자 커서 연애까지 하게 된 건지.
어릴 적 한 침대에서 같이 굴러다니던 동생이 혼자 훌쩍 커 버린 것 같아 아일리는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갈까….”
이야기나 좀 하려고 왔는데 잠들어 버렸으니 손님은 이제 물러가야 할 시간이다. 아일리는 일어나 널브러진 명함을 정리했다. 리엘라는 깊이 잠들었는지 미동도 않았다. 아일리는 방을 나가기 전 리엘라에게 이불을 덮어 주려 다시 침대에 올라갔다. 그때 리엘라가 부스스 눈을 뜨더니 아일리를 보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끌어안았다.
“언니다, 언니.”
너무 작아 들리지도 않을 말을 중얼거리던 리엘라가 다시 웃으며 쿨쿨 잠들자 아일리는 피식 웃으며 리엘라의 옆에 누웠다.
어릴 적, 책이 많은 레베카는 혼자 방을 쓰고 아일리와 리엘라가 함께 방을 썼다. 그때 둘은 매일 이렇게 같이 침대에서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었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일리는 잠든 리엘라에게 이불을 잘 덮어 준 다음 자신도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랜만에 두 자매가 만난 날이었다.
***
다음 날, 하운은 의외의 곳에서 아일리를 만났다.
“어, 하운 왔냐. 여긴 아일리 테니어. 그 리엘라 테니어 양의 언니래. 나도 ‘양치기’의 이름을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라 이제 알았지 뭐야.”
아일리는 국왕의 앞에 앉아 하운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