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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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라니?
네아가 가리킨 곳을 보던 하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아, 저것.”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었다. 정확히는 돌과 바위의 중간 정도 크기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큰 곰 인형만 한 크기의 돌이 홀의 한구석에 있었다.
“호슨 공작의 선물.”
“저렇게 못생긴 게?”
못생겼다는 네아의 말에 리엘라는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하운보다 먼저 이 저택에 도착해 안에 남아 있는 물건들이 무엇이 있나 네아와 살펴보던 사이에 발견한 돌이었다. 겉이 마치 모닥불에 넣었다가 깜빡한 감자처럼 홀랑 타 버린 모양새였다. 돌을 구웠을 리는 없으니 이건 무엇일까, 하다가 사람들이 부르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다. 그동안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네아가 고민한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말했지만, 호슨 공작이 사람 성의를 그런 말로 무시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저기 두고 가더군. 그 후로 계속 저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런 게 있으면 좀 치우지?”
네아의 빈정거림에 하운이 코웃음을 쳤다.
“치울 수 있으면 치워 보든가.”
네아는 곧바로 돌에게 다가갔다. 동작을 보아하니 저것을 그대로 집어서 하운을 향해 집어 던지려고 함이 분명했다.
‘말려야 하나? 저걸 던지면 저택 안이 상할 것 같은데?’
이제 리엘라는 네아와 하운에게 익숙해져 더 이상 두 사람이 다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리석 바닥이 혹시 깨지기라도 할까 봐 네아를 말리려 했다. 그사이 네아는 돌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피아노도 번쩍번쩍 드는 네아다. 저런 돌쯤은 작은 공 던지듯 던질 것이 분명한데….
“어?, 이거 뭐야?”
네아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가볍게 들어 정확히 하운의 머리를 노리려고 했는데, 돌은 바닥에 붙여 놓기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아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드래곤의 피가 섞인 그녀였다. 수면기로 추측되는 기간 외에는 잠들지 않고, 빛이 없어도 환하게 볼 수 있으며,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힘과 민첩함 등 그녀는 비범한 능력을 여럿 가졌으나 그중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 물리적인 힘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힘에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들 수 없다니?
“이럴 리가… 없는데….”
집채만 한 바위도 아니고 겨우 자신의 절반만 한 것을 들 수 없다는 사실에 네아는 그 어느 때보다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러다 다시 기합을 넣고 있는 힘껏 들어 올려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운은 그 모습을 너도 별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거 뭐야?”
“빛이 아닌 것.”
네아의 질문에 하운은 뜬금없는 대답을 했다.
“뭐?”
“‘하늘에서 떨어졌으되 빛이 아닌 것’… 이라고 호슨 공작이 말하더군.”
그 말에 리엘라가 크게 소리쳤다.
“운석!”
창세 신화에서 말하길, 아득히 먼 곳에서 가장 먼저 이 땅에 떨어진 것이 빛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세계가 빛과 색을 얻은 후에도 먼 곳에서 가끔 이 세계로 떨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별똥별들은 이따금 하늘에 길게 빛의 꼬리를 그리면서 떨어지곤 했지만, 대부분 빛만 남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번쩍거리는 빛, 땅이 울릴 정도의 폭음 그리고 진동과 함께 땅으로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소란이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가 보면 거대한 구덩이와 함께 그 가운데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돌멩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거 엄청나게 희귀한 것 아니었어요? 그게 왜 여기에 있어요?”
“호슨 공작이 어떻게 손에 넣긴 했던 모양인데… 필요 없어지니 선물이랍시고 주더군.”
“음… 희귀한 거니까 하운 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주셨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이 저택으로 온 지 2년이 지나서야 뜬금없이 이사 축하한다며 주고 갔는데? 내가 보기에는 버리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저택에 두기는 싫어서 두고 간 것 같아.
“…….”
그 말에 리엘라는 더 이상 호슨 공작을 변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네아는 끝까지 호슨 공작의 편을 들었다.
“공작님이 주고 가셨으면 다 뜻이 있는 거겠지. 네가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고!”
“그럼 네가 그 깊은 뜻이 뭔지 좀 알아내 보는 게 어때?”
다시금 네아와 하운 사이에 불꽃이 튀려고 할 때 밖에서 하운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운은 리엘라의 손을 슬쩍 붙잡고 네아에게 말했다.
“옮기지도 못하는 거 붙잡고 있지 말고 다른 일이나 하지 그래?”
“누가 못 옮긴대?”
자신을 도발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네아는 불이 붙고 말았다. 다시금 운석을 붙들고 끙끙거리는 네아를 보며 하운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리엘라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 네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운석을 노려보았다.
“난 들 수도 없는데…. 공작님 이걸 어떻게 옮기신 거지?”
***
밖에 있던 사람들이 하운에게 물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하운은 오래되고 값진 것이나 추억이 담긴 몇 안 되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 달라 부탁했다. 덕분에 저택은 가구가 몇 남지 않아 휑한 모습이 되었다. 리엘라는 주위를 둘러보며 근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부 새로 사셔야겠네요.”
그 중얼거림에 하운은 슬쩍 미소 지었다. 그걸 노렸으니까. 이런 물건을 고르는 것은 잘 모르겠다는 핑계로 리엘라와 함께 수도를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소르디아에서 제대로 같이 있지도 못했으니….’
이번에는 방해받지 않고 제대로 즐길 생각이다. 그리고 리엘라와 집 안을 꾸밀 가구를 보러 다니는 것은 어쩐지….
하운은 혼자 즐겁고도 민망한 상상을 하면서 남은 가구들이 옮겨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일이 끝나자 이번에는 리엘라가 그를 이끌었다.
“나온 김에 정원 좀 살펴보게요.”
사실 하운은 이 저택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우울함에 바깥을 잘 나가지도 않을 때 이곳으로 왔다. 그러다 호슨 공작을 만나고 나서는 아침이 되면 끌려 나가서 밤이 되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 할 정도로 지쳐서 들어와 쓰러져 잤다. 무슨 노인이 그리도 힘이 좋은지 호슨 공작은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쳐들어와 자고 있는 하운을 연습할 시간이라고 질질 끌고 나갔었다.
그러다 보니 저택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 물론 자신이 살았던 곳이기에 어디에 식당이 있고, 침실이 있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큰 가구가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도. 하지만 정원의 어디에 무슨 꽃이 피었었는지, 분수대에 조각되어 있던 동물이 무엇이었는지 같은 것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운은 풀이 뽑혀 드러난 정원의 모습이 낯설었다.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라고?’
처음 든 감상은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정원이 좁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저택을 좁다고 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누가 대공 아니랄까 봐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기준을 갖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수도에서 이 저택보다 큰 저택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니.
하운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날이 떠올랐다. 부모 형제와 함께 살던 왕궁에서 하루아침에 혼자 이곳으로 와야 했다. 하운이 날 때부터 그를 돌봤던 시종들도 함께 왔지만 어렸던 당시의 하운은 갑자기 자기가 알던 세상에서 쫓겨나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밤에 도착했던 이 저택은 그에게 왕궁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이곳은 아담한 시골의 저택으로 보일 뿐이었다.
“풀을 다 뽑고 나니까 예전의 정원이 어떤 형태였는지 확실하게 보이더라고요. 짐작했던 것보다 좀 더 오래된 형태던데…. 이 저택은 언제 지어진 건가요?”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180년 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왕실에 기록이 있을 거야. 알아볼까?”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정원의 입구에 도착한 리엘라는 바닥에 깔린 자갈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꽤 고풍스러운 형태의 정원 구성이에요. 조금 단조로워 보인다는 게 단점일 수 있지만, 장점이라면 유행을 타지 않고, 구역이 확실하게 나눠 있어서 정돈된 느낌을 내기 쉬운 스타일인데…. 어떻게 하실래요?”
“뭘?”
“정원의 형태요. 이 형태 그대로 작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최근 유행하는 형태의 정원으로 할 것인지 골라야지요.”
리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정원 한쪽에 놓인 작업대로 향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려는지 공작저에서 아예 야외에 놓고 쓰는 큰 작업 테이블을 들고 온 모양이었다. 그곳으로 다가가자 테이블 위에는 여러 권의 책과 함께 수북이 쌓인 종이가 보였다.
“공작저의 도서관에서 가져온 것들이에요. 음… 카르디아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정원에 관한 자료들을 가져온 건데 혹시 원하는 양식이 있어요?”
그 말에 하운은 펼쳐져 있는 책들의 페이지와 종이 위에 그려진 것들이 전부 정원을 꾸미는 특정 양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만 적으면 그가 어떤 양식의 정원인지 알지 못하리라 생각했는지 리엘라는 양식의 이름 아래 그에 관련된 정원의 풍경화와 장식 그리고 사용되는 식물까지 전부 정리해 두었다. 덕분에 하운은 한눈에 모든 정원의 양식을 알 수 있었다.
“음, 그냥 이것만 보면 알기 힘들 것 같아서 여기 저택의 그림도 그려 봤어요. 여기 이렇게 겹쳐서 보면 좀 더 상상하기 쉬울 거예요.”
리엘라가 가리킨 곳을 봤더니 정말로 저택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직접 그렸어?”
“네, 역시 좀 서투르죠? 전문가분들 오시면 이건 버리고 새로 그릴 테니까 지금은 참고만 해 주세요.”
리엘라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하운에게 서둘러 다른 그림들을 보여 주었다.
“‘일단은 이게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양식을 정해 주면 사람들이 그 양식대로 여러 장의 예상도를 그려 올 거예요. 원하는 장식이나 계절별로 원하는 나무, 꽃의 색들은 그때 정하면 되고요.”
그러면서 리엘라는 수백 장은 될 것 같은 장식물과 식물의 그림을 꺼내 두었다. 그때 멀리서 두 사람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리엘라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예요!”
그사이 하운의 시선이 잠시 테이블 위를 머물더니 그의 손이 리엘라가 그렸던 그림을 슬쩍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예쁘기만 한 그림인데 이걸 왜 버리겠다고 하는 거람.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
레이디라는 말에 리엘라는 손으로 닭살이 돋은 제 손등을 슥슥 문지르더니 서로를 소개했다. 도착한 사람들은 조경업체의 사장과 직원들이라고 했다.
“저희가 큰 회사는 아니지만 믿고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에 하운은 조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어차피 돈이라면 문제없다. 게다가 이런 저택의 정원을 담당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이름난 정원사가 차리거나 소속되어 있는 큰 규모의 회사가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하운의 당황을 눈치챘는지 리엘라가 그를 슬쩍 옆으로 데려가더니 속삭였다.
“큰 회사들이 양심 없는 금액을 부른 탓도 있지만, 이 회사의 정원사분들이 정말 경력도 오래되셨고,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농원도 있는데 거기 나무들이 정말….”
리엘라가 슬쩍 엄지를 올렸다.
“…끝내줘요.”
리엘라는 몇 년 전 꽃 축제 때 그들이 가져온 큰 화분들을 보고 감탄했었다. 희귀 품종이 많기도 했지만 어쩌면 하나같이 그렇게 튼튼한지. 두껍고 반짝이는 짙은 녹색의 잎마다 ‘열심히 길렀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농원의 나무들은 전부 정원수들이었기에 리엘라는 구경만 하고 사들이진 않았다. 이번 꽃 축제에서 봤을 때도 여전히 잘 관리된 정원수의 모습에 언젠가 공작저에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사진 않았다.
그런데 그 나무들을! 당당하게! 마구 사서 심을 수 있다니!
“행복해….”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렇게 좋아?”
헤실헤실 웃는 리엘라의 모습에 하운이 따라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조경 회사의 사장은 좋을 때라는 듯한 눈빛으로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가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후원에 망가진 온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