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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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다다다닥!
나무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에 하운은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이제 막 산을 넘어온 아침 첫 햇살이 그의 얼굴에 쏟아졌다. 강한 빛에 곧바로 눈을 감았던 하운은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아….”
낯선 천장과 새것들의 냄새를 느끼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맞아, 어제 여기서 잤지….”
그는 제집이건만 아직 낯선 공간을 바라보았다. 이제 파르멜 저택은 대부분의 수리가 끝나 가고 있었다. 곰팡이가 슬고 얼룩이 졌던 벽에는 깔끔한 벽지가 발라지고 밝은 램프가 걸렸다. 천을 뒤집어쓴 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조각상과 그림들은 자신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자리에 놓였다.
새로이 깔린 바닥과 그 위의 카펫 그리고 새로이 들인 가구들까지. 이제 이곳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것 없는 훌륭한 저택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운은 침대에서 내려와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과 어깨의 근육에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제 일한 탓인가.’
아무리 강인한 몸이라고 해도 노동의 여파가 없을 수 없다. 많은 부분을 보석의 힘을 빌려 처리한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이 많았으며, 이곳은 그의 집이었기에 하운은 모든 부분을 점검해야 했다.
사실 어찌 되든 크게 신경 쓰는 편도 아니었고, 봐도 잘 몰라 맡기겠다고 하니 리엘라는 물론 놀러 온 리나까지 “대공님, 이런 일은 꼼꼼하게 하셔야 해요”라면서 반쯤 나무라듯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한 탓에 하운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곳을 점검했다. 그러다 보니 직접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그는 팔과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몸을 살폈다. 다행히 약한 근육통만 남아 있을 뿐 몸의 피로는 없었다.
“생각보다 푹 잔 건가.”
오랜 시간 전쟁터에서 지내며 생긴 습관 중 하나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해 곧바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수도로 돌아오고 나서도 이 습관은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저렇게 새벽부터 나무를 두들겨 대는 딱따구리의 소리에도 한참이나 잘 정도로 깊이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꿈도 한 번 꾸지 않았으며, 중간에 일어난 적도 없었다.
하운은 창문을 열었다. 아침의 태양이 어느새 조금 더 모습을 드러내었고, 밤사이 선선하게 기온이 내려간 공기가 탁한 방 안의 공기와 자리를 바꾸며 아직 졸음이 남아 있던 머릿속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하운은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저택 안이 수리가 끝나 가고 있는 것처럼 정원 역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원의 한 곳을 바라보던 하운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옷을 챙겨 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일어나셨습니까.”
하운이 계단을 내려가자 집사가 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저택이라고 불릴 만큼 큰 집이다. 아무리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하운 혼자서 이 저택을 전부 관리하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혹시라도 자신이 자리를 비울 경우도 생각해야 했고. 그래서 하운은 고민하다 리엘라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저택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했다. 그랬더니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여러 대의 마차와 함께 사람들이 도착했다.
“자네들은….”
“국왕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여기 이 편지도 꼭 전달하라 명령하셨지요.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뵙는군요, 대공님.”
온 사람들은 하운의 기억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과거 자신이 이 저택으로 왔을 때 왕실에서 함께 보냈던 시종들이었으니까.
하운은 레이안이 보낸 편지를 열어 보았다.
네 사람들 데려가.
그들은 완벽하게 수리된 저택을 보더니 감격에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을 줄이야… 그럼 일 시작해도 될까요?”
하운이 놀라 어버버하며 뭐라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웃으며 마차에서 자신들의 짐과 왕궁에서 가져온 도구들을 내린 다음,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빠르게 일을 시작했다.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기쁘답니다, 하운 님.”
어릴 적, 대공이란 소리를 싫어했던 하운에게 사람들의 눈이 없을 때는 언제나 그의 이름을 불러 주던 집사가 주름이 더 짙어진 얼굴로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사람들이 오고 나서 저택은 더욱 완벽하게 모습을 갖췄다. 이제 멜다 부인은 재료 수급을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주방에서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며, 하인들 역시 청소할 구역을 확실하게 나눌 수 있었고,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은 자신이 쉴 방을 배정받고 물건을 보관하는 데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볼 필요 없이 곧바로 집사를 찾아가면 되었다.
그리고 어제, 작업이 대부분 완료되면서 하운은 늦게까지 담당자들과 함께 마지막 점검을 했다. 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가고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하루 종일 온실에 매달려 있던 리엘라가 발코니의 의자에서 깊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야, 난 아가씨 모시고 갈 거다.”
네아는 리엘라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녀를 안아 들더니 하운을 보고 말했다.
“넌 이제 그냥 여기서 자도 되지 않냐? 네 집이잖아.”
“…그렇지.”
그 역시 슬슬 이곳에서 머물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하운은 리엘라를 돌려보낸 다음, 남은 담당자들과 밤늦게까지 일을 마무리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머물렀다. 그게 어제의 일이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맙네.”
하운이 대답하자 그는 잠시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왜 그러나 싶어 잠시 생각을 해 보니 과거 그가 어렸을 때, 집사의 말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감시하러 보냈다고 생각했었으니.’
그런 사람을 좋아했을 리가. 그래서 집사가 하루 종일 그를 챙겨 주었음에도 고맙다는 인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호슨 공작이 교육부터 다시 시켜야겠다며 사정없이 굴렸던 것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대공 님. 어서 앉으세요.”
식탁 앞에 앉자 주방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앞에 음식들을 차렸다.
“어제까지는 마을에서 가져온 식재료만 썼는데 오늘은 온실에서 가져온 채소들도 써 봤답니다.”
“온실에서? 온실에 먹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네. 모르셨어요? 레이디 리엘라께서 잔뜩 가져다 두셨는데요. 후원에도 많습니다. 왕실 농장의 것들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맛있더라고요. 지금 앞에 있는 구운 토마토도 전부 온실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하운은 제 접시 위의 음식들을 보았다. 언젠가 리엘라가 예쁜 것도 좋지만 맛있는 것도 중요하다며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던 것이 생각났다.
***
주방장이 “언제부터 구운 토마토를 그렇게 좋아하셨어요?”라고 놀라는 소리를 뒤로 한 채, 하운은 저택의 후원으로 향했다. 해가 떠올랐지만 아직 새벽이슬이 풀잎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열심히 나무를 두드리는 딱따구리의 소리와 함께 가슴 가득히 나무와 풀의 냄새를 담으며 후원에 도착하자 저 멀리 온실이 보였다.
“여기도 다 끝난 것 같군.”
처음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폐허의 느낌이었는데 녹을 제거한 철골 구조물은 흰색으로 칠해졌고, 그 사이사이마다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가 단단히 끼워졌다. 게다가 하운은 이제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겠다고 하는 루시안을 불러 강화나 보호의 힘을 유리에 영구적으로 부여할 수 있냐고 물었다.
덕분에 루시안은 피곤에 찌든 얼굴로 며칠을 더 저택에서 보내야 했고,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엘라의 온실에 새로이 보석의 힘을 걸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네아가 손가락으로 유리를 툭툭 건드리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후려쳤다. 하지만 온실의 유리는 깨지기는커녕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미친놈… 우박을 막는 게 아니라 운석도 막겠다….”
어찌 되었든 튼튼해졌다는 소리다.
하운은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공작저에서 가져왔음이 분명한 화분들이 온실에 촘촘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주방장이 말했던 토마토가 있는 큰 화분도 보였다. 따로 빼놓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곧 후원의 텃밭으로 옮겨 심을 예정인 것 같았다.
온실을 둘러보던 하운의 얼굴에 살짝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보아하니 공작저에서 가져올 화분은 다 가져온 것 같은데 그가 생각했던 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가 리엘라에게 선물로 주었던 엘피안 꽃이었다.
‘하긴, 여기에 둘 것은 아니긴 하지만….’
잘 알고 있음에도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운은 그 마음을 지우며 리엘라가 빼놓은 토마토 화분을 밖으로 하나씩 들어 옮겼다. 이러면 와서 작업하기 더 편하겠지.
***
“음… 이제 여기만 채우면 되는데 말입니다. 역시 딱 어울릴 만한 것을 찾기가 힘들더군요. 아무래도 새로 만들어서 놓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오후가 되어 정원 담당자는 하운과 함께 정원의 한쪽 구석에 서서 비어 있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정원은 왕실 정원사들까지 와서 작업한 덕분에 거의 완벽하게 조경이 끝나 가는 상태였다. 하지만 정원 장식의 중심이 되는 공간은 아직 비어 있었다.
“두 분 뭐 하세요! 어서 와서 간식 드세요!”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리엘라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은 과일 빙수래요. 남쪽의 새콤한 과일로 담근 청들을 잔뜩 넣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당장 가겠습니다.”
간식 메뉴를 듣자마자 정원 담당자는 먼저 실례하겠다면서 저택으로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멜다 부인이 오후에 만들어 주는 간식을 먹는 시간은 어느새 사람들이 무척이나 기다리는 순간이 되어 있었다. 하운은 리엘라에게 우리도 가자고 말하려다 그녀가 비어 있는 공간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리엘라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하르메아….”
그 순간 하운은 리엘라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꽃 축제 때 그녀가 만들었던 대형 조형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이 자리에는 꽤 어울렸을 것이다. 물론 그대로 놔두면 오래 가지 못할 테니 좀 더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식물들로 다시 꾸며 줘야 하겠지만.
“아, 어서 가요! 늦게 가면 우리 먹을 거 없을지도 몰라요.”
리엘라는 정신을 차린 듯 신이 난 발걸음으로 저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하운은 그녀와 다르게 무거운 걸음으로 조금 떨어져 걸어야 했다. 자신이 죄인이었으니까.
‘그냥 하르메아를 붙잡아다 저기다 둘까….’
하르메아가 들었으면 울며 도망갔을 생각을 하며 하운은 리엘라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기분 좋게 앞에서 과일 빙수를 흥얼거리며 가던 리엘라의 걸음이 멈췄다.
“왜 그래?”
“저, 저거….”
하운은 리엘라가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눈을 끔뻑였다. 뭐지? 왜 여기에….
“…하르메아?”
그리고 동시에 클로에의 목소리가 들렸다.
“멜라니아, 거기 서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