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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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생각하는 마음
“아가씨?”
“으아아아악!”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네아의 목소리에 리엘라는 놀라 펄쩍 뛰었다. 격렬한 그녀의 반응에 더 놀란 사람은 오히려 네아였다.
“무, 무슨 일이에요?”
“멜다 부인께서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와서 한번 맛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놀라긴 무슨… 어, 어서 가요!”
네아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리엘라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그 시선을 거두고 밑으로 달려갔다. 멜다 부인이 “늦게 오면 남은 거 없어요!”라고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리엘라 역시 네아의 뒤를 따라 재빨리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오늘 멜다 부인이 만든 디저트는 리엘라가 따로 부탁을 한 것이다.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뜻으로 만들어서 먹는다고 적혀 있었지.’
책을 읽고 혼자서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정작 책에는 그림과 유래 그리고 대강의 재료만 적혀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책이 잘못된 건가 싶어 다시 제목을 보니 요리책이 아니라 먼 나라의 풍습 책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시무룩해지려던 찰나, 때마침 다과를 가져온 멜다 부인이 “어릴 적에 만들었던 건데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요.”라고 말했다.
리엘라가 그녀를 붙들고 제발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멜다 부인은 잠시 책을 보더니 일단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한번 만들어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고, 그것이 몇 시간 전의 일이다.
‘성공하셨나 봐.’
그렇다면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겠지!
신나서 아래로 내려가던 리엘라는 쏟아지는 햇살에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 어둡고 눅눅했던 더운 날이 오래전 일이었던 것처럼 새하얀 조각구름 몇 개만 떠 있는 하늘은 마냥 푸르렀다. 공기 또한 시원하고 상쾌해서 사람들은 순식간에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리엘라는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제 마음과는 다르게 맑고 높은 하늘을 보다 보면 하운과 다른 병사들이 떠나는 데 있어서 힘들지는 않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다가도 수도에 벌써 이렇게 가을이 찾아왔다는 것은 북부 전선에는 이미 겨울이 한 걸음 성큼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가씨! 안 오세요? 제가 다 먹을지도 몰라요?”
“지금 가요!”
밑에서 네아가 부르는 소리에 리엘라는 허겁지겁 내려갔다. 거실의 테이블 위로 다가가자 큰 쟁반에 놓인 거대한 사각형의 케이크 같은 것이 보였다.
멜다 부인은 리엘라에게 설명했다.
“이제 이걸 조각내서 접시에 두면 아가씨께서 보신 그림과 같은 형태가 된답니다. 그럼 잘라 볼게요.”
멜다 부인이 큰 칼을 들어 자르기 시작했고, 윗부분의 크럼블이 바스러지며 케이크가 잘렸다. 부인이 칼을 살짝 옆으로 밀면서 단면을 보여 주자 정말로 리엘라가 책에서 보았던 대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른 것이라면 케이크의 밑에 깔린 견과류의 종류였다.
책에 그려져 있던 재료들이 공작저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다른 것을 넣었을까 싶어 바라보았더니 멜다 부인이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원래 이것은 서쪽 지방의 음식이랍니다. 그곳 사람들은 멀리 떠나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을 기억하라면서 자신들의 지역에서 제일 많이 나는 견과류를 가득 넣어 만들었죠. 그래서 이건 일부러 수도 근처에서 많이 나는 것들로 만들어 보았어요. 이렇게 만든 다음에….”
멜다 부인은 눈을 찡긋거리며 리엘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파르멜 저택의 과일로 만든 콩피를 올리면 훨씬 맛있을 거예요.”
“어, 음. 그, 그렇군요.”
요리법을 배운 다음에 파르멜 저택에 가서 하운에게 만들어 주려던 계획을 순식간에 들켜 버린 리엘라는 당황해 더듬거리며 대답하면서도 멜다 부인이 건네주는 레시피를 재빨리 눈으로 훑었다.
‘좋아, 대부분의 재료들은 파르멜 저택에 있을 것 같고, 견과류만 몇 종류 더 챙겨 가면 되겠다.’
리엘라가 공작저에서 챙겨 갈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 멜다 부인이 다시 속삭였다.
“짐마차에 넣어 뒀으니 따로 안 챙기셔도 된답니다.”
“멜다 부인…!”
리엘라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역시 멜다 부인이 최고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하운과 아일리가 들으면 ‘나는?’이라고 되물어 볼 말을 속으로 생각하며 리엘라는 흘깃 네아를 살펴보았다.
“이거 맛있긴 한데 좀 특이한 맛이 나네요. 과자인데 향신료를 많이 써서 그런가? 앗, 아가씨 저 세 개밖에 안 먹었어요!”
리엘라가 바라보는 것이 혹 자신이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인가 싶었던 네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자 리엘라가 네아의 손을 가리켰다. 어느새 네아의 손에는 케이크 다섯 조각이 올려진 접시가 들려 있었다.
“손에 들린 건요?”
“아직 안 먹었으니까 무효입니다!”
네아는 그렇게 대답해 놓고서는 혹시나 누가 더 달라고 할세라 쌩하니 밖으로 도망가 버렸다. 아무래도 새 디저트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리엘라 역시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한 번 구운 뒤 부스러트린 쿠키 크럼블 아래 조금은 두꺼운 아이싱이 보였다. 그 밑으로는 레몬 향이 나는 시트, 다시 그 밑으로는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간 부드러운 층이.
“맛이 좀 특이하긴 하네요.”
신기하게도 크림치즈 층에서 정말로 향신료의 맛이 났다.
“어? 이거 뭐야? 먹어도 되나요?”
그때 아일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냅다 테이블에 앉아 멜다 부인이 건네주는 케이크를 포크로 크게 잘라 먹더니 리엘라에게 말했다.
“맞다, 나 오늘 오후에 잠시 왕궁 들어간다.”
“왜? 별일 없다고 했잖아.”
“몰라. 갑자기 부르네.”
“언니도 설마 선발대로 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응? 그건 아닐 거야. 선발대에는 나 말고 내 동료 둘이 먼저 가기로 했어.”
아일리의 말에 리엘라의 어깨가 축 처졌다. 도대체 양치기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자꾸 왕궁에서 아일리를 불러 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하튼 나 이것만 먹고 들어갔다 올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먼저 먹어.”
“어? 으응. 알겠어.”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일리가 왕궁에 들어가서 서운한 건 사실이지만 제 계획대로 움직이기에는 다행이었다. 만약 그녀가 왕궁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분명 파르멜 저택에 따라가겠다며 같이 마차에 올라탔을 거야.’
리엘라는 멜다 부인의 디저트를 마저 먹으며 며칠 전, 하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가 출정하기 전에 파르멜 저택에서 하루만 머물러 달라고 했다.
‘자고 가라고 말하긴 했지만….’
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왜 이렇게 민망하게 들리는 건지.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리엘라는 아일리가 왕궁으로 들어가는 대로 곧바로 파르멜 저택으로 출발해야겠다 생각했다.
***
다행히 리엘라는 파르멜 저택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가 공작저에서 출발할 때 네아가 눈을 빛내며 “거기에 뭐 더 손볼 게 있다고 그러세요? 저녁에는 들어오시는 거죠?”라고 물어보는 것은 조금 무서웠지만.
파르멜 저택에 도착하니 그곳의 하인들이 반가이 리엘라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공작저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린다고요. 기껏해야 마차로 두 시간 정도인데. 아, 그보다 혹시 주방을 좀 쓸 수 있을까요?”
리엘라의 질문에 하인들은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듯 재빨리 주방을 정리해 비워 주었다. 마치 리엘라가 그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혼자 남게 된 리엘라는 재빨리 멜다 부인이 적어 준 레시피를 보며 재료를 준비했다.
‘내일 떠나니까….’
그동안 하운은 공작저는 물론이고 파르멜 저택에도 돌아오지 못했다. 선발대로 가기 전,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갈 보석술사들과의 회의는 물론, 가져갈 보석들의 점검까지. 그가 해야 할 일은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돌아온다고 했지.’
오늘 밤은 하운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될 것이다. 파르멜 저택의 주방에는 저녁을 위한 재료들이 손질되어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식재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이곳 사람들도 하운이 떠나기 전에 잘 먹이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것 같았다.
리엘라는 재빨리 움직였다. 하운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그 전에 전부 만들어 놔야 하니까.
밀가루를 가져와 체에 한 번 거르고 거기에 버터와 설탕, 계란을 넣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다음엔 아까보다 덜 촘촘한 체에 반죽을 넣어 마치 면을 만들 듯 꾹 눌러 빠져나온 것들을 철판 위에 모아 오븐에 넣어 돌렸다.
아무리 멜다 부인이 자세하게 적어 주었어도 역시 과정을 보지 않은 채 무언가를 처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참이나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리엘라는 반죽에 넣을 향신료를 정리하다 손을 멈췄다.
“카다멈은 빼야겠다.”
무엇이든지 주는 대로 잘 먹는 하운이었다. 하지만 식사할 때 그를 자세히 보면 가끔 그의 손이 느려질 때가 있었다. 얼마 후 리엘라는 그가 먹기를 살짝 주저하는 음식들이 전부 다 카다멈이 들어간 것임을 알았다.
“생강이랑 비슷한데… 싫어해요?”
리엘라가 카다멈을 가리키며 말하자 하운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제가 가리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이상하게 그건 향이 강하게 느껴져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던 리엘라는 하운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른 것들을 떠올렸다. 아직 파르멜 저택의 하인들은 그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준비된 것들을 보고 그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슬쩍 빼 둘 생각이었다.
물론 그 나이가 되어서 음식을 가린다는 게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떠나기 전날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물론 아일리라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다 가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싫어하는 것까지 해야 해? 그러니까 난 당근 안 먹을 거야.”이라고 말하며 싫어하는 것을 죄다 빼내었겠지만.
준비된 재료들을 둘러보던 리엘라는 새삼 제가 이제 하운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씩 하운을 알아 가는 게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볼 때 살짝 풀어지는 눈매라든지, 내키지 않는 것을 할 때 짧게 내쉬는 한숨이라든지.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뭔가를 읽으며 종이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는 것을 즐겨 한다든지.
남들이 모르는 모습을 많이 알고 있음에도 리엘라는 여전히 하운을 볼 때마다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어….”
생각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리엘라는 놀라 손등으로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렀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하운은 북부 전선으로 떠나야 한다.
아직 더 알고 싶은 것이 많은데.
리엘라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큰 팔이 다가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왜 여기서 울고 있어?”
곤란해하는 하운의 목소리가 리엘라의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