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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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의 손은 여전히 리엘라를 붙잡고 있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들어간 힘에 리엘라는 아직 그가 저를 보내 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더 하려고….
다시 하운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잡아먹을 것처럼 거칠게 굴었던 입술이 마치 조금 전의 그건 제가 아니었다는 듯 가볍고 부드럽게 리엘라의 이마 위에 내려앉았다. 동그란 이마 위에 입술이 닿자 리엘라의 몸이 떨렸다. 서로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아 간지러웠다.
리엘라의 이마 위를 지분거리던 하운의 입술은 이제 눈썹 사이를 지나 눈꺼풀 위에 내렸다. 더운 숨이 얼굴의 솜털을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리엘라는 흠칫 몸을 떨었다.
조금 전의 입맞춤은 너무도 강렬해 벼락에 맞은 듯 정신이 새하얗게 변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하운이 느리게 움직이는 탓에 다른 모든 것들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볼 위를 스친 그의 입술이 귓바퀴의 위쪽을 입술로 살짝 물었을 때.
“아….”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면서 몸을 떨고 말았다. 귀가 이렇게 예민한 곳이었나? 입술만큼이나 강렬한 감각이 몸을 타고 흐르며 다리에 힘이 풀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하운이 단단히 끌어안고 있던 탓에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에 완전히 기대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하운은 손에 힘을 주어 리엘라를 안아 들었다. 어찌나 쉽게 안아 드는지 리엘라는 잠시 제가 지푸라기 인형이라도 된 줄 알았다.
하운의 머리 한참 아래에 있던 그녀의 얼굴이 올라와 같은 높이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하운은 의도가 다분한 웃음을 지으며 리엘라에게 물었다.
“누굴 만난다고?”
리엘라의 본능이 소리쳤다. 안 만난다고 해! 그러지 않으면 진짜 위험할 거야!
리엘라는 제 본능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기로 했다. 지금 하운의 시선은 다정하면서도 위험했다.
“아, 안 만나요!”
“내가 오랫동안 안 돌아오면 다른 사람 만날 거라고 했잖아.”
“안 만난다니까요!”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못 만난다니까.”
하운은 다시 리엘라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조금 전에 그대의 말을 듣고 알았는데, 난 엄청나게 질투가 많은 사람인 것 같아. 그대 옆에 얼씬거리는 벌레가 있으면 네이판타보다 그 인간을 먼저 없앨 것 같거든.”
진심이었다. 만약 제가 이곳을 떠나 있는 사이에 그녀를 노리는 벌레, 특히 수컷이 얼쩡거리면 전쟁이고 뭐고 와서 그놈부터 먼저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하운의 입맞춤이 쏟아지자 리엘라는 간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그가 계속하자 결국 하운의 목을 끌어안은 채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리엘라의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이 등을 쓸어내리다가 천천히 긴 갈색의 머리카락 타래 속으로 들어왔다. 하운은 제 손에 부드럽게 감기는 머리카락을 욕심껏 한 움큼 쥐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제 품 안에 안겨 있는 작은 몸도, 그가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도 모르고 어깨에 더운 숨을 내쉬고 있는 입술도, 가득 쥐었음에도 더 많은 것을 쥐고 싶어지게 만드는 머리카락도.
아니 어떻게 사람이 머리카락까지 예쁘지?
리엘라가 알았으면 작작 하라고 했을 생각을 하면서 하운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조용한 밤하늘 아래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얼굴을 묻고 상대의 향을 가득 가슴에 품었다.
한참 후, 리엘라가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고 있는데… 안 가면 좋겠어요.”
“…….”
“지금까지 살면서 아는 사람들이 북부 전선으로 가는 걸 많이 봤는데…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플레노트와의 전쟁은 몇 년이나 이어진 긴 전쟁이었다. 리엘라가 머물던 브릭스 거리에서도 몇 명이 그곳으로 떠났다. 기사가 되어 떠난 자들도 있었고, 군대의 후방에서 일을 도와주는 직업을 얻어 떠난 이도 있었다. 다행히 많은 수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은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가야 한다는 거 알고 있는데… 그래도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어요.”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다시 젖어 들었다. 오늘 도대체 몇 번을 우는 건지. 하운은 말없이 리엘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큰일이네.”
“…뭐가요?”
“그대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자꾸만 헛된 상상을 하게 되거든. 북부 전선이고 네이판타고 다 내팽개치고… 계속해서 당신과 함께 이 저택에 머무르고 싶다고 말이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올 미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물론 영원히는 아니다. 북부 전선에 가는 대로 네이판타를 제압할 것이고, 이번에야말로 그 저주받은 드래곤을 부활조차 꿈꿀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니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는 성공할 것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조금 늦춰진 미래를 다시 손에 넣을 것이고.
“아마 당신이 엄청나게 귀찮아질 거야. 저택 안에서는 혼자 둘 생각이 없으니까. 어딜 가나 졸졸 따라다니면서 손도 놓아주지 않을 거고.”
“그거… 마음에… 드네요. 흑….”
리엘라는 훌쩍이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야. 씻으러 들어가면 내가 따라 들어갈지도 몰라.”
일부러 한 농담이었다. 리엘라가 우는 걸 멈추고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어깨를 때릴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알았어요.”
“뭐?”
“…한 번은 봐줄게요.”
예상외의 대답에 하운이 더듬거리자 리엘라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말했다.
“음… 세 번까지도 봐줄게요.”
하운은 제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맙소사. 무슨 일이 있어도 네이판타를 죽이고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잠깐, 크리스털 어디 있어. 아무거나 상관없어. 조금 전 약속은 기록해 놔야….”
“하지 말아요!”하운의 진심 어린 주접에 그제야 리엘라가 고개를 들고 소리를 빽 질렀다. 울다가 웃다가 화를 내다가. 엉망이 되어 버린 리엘라의 얼굴에 하운은 다시 입술을 맞췄다.
가지 말라고…. 그녀가 바라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기나 할는지.
하운은 리엘라를 안은 채 성큼성큼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울어 열이 올라왔던 탓인지 밤바람을 맞는 리엘라의 몸이 그의 품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하운은 계단을 올라 망설임 없이 그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하인들이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방이 보였다. 하운은 리엘라는 제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그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무 짓도 안 해. 아니… 손은 잡을게. 그 정도는 허락해 줘. 그냥 가기 전까지 계속 보고 싶어서 그래.”
“싫어요.”
바로 나오는 리엘라의 대답에 하운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왜?”
“저 자고 일어나면 엄청나게 못생겨진단 말이에요. 눈은 퉁퉁 붓고 머리카락도 엉망이고, 가끔은 침도 흘리고… 그 꼴을 어떻게 보여 줘요. 안 돼요.”
그 대답에 하운은 슬금슬금 리엘라의 곁으로 가 다시 그녀를 폭 끌어안았다. 사실 그런 모습이 보고 싶은 건데. 제 옆에서 편히 잠든 그녀의 모습이.
결국 하운은 원하던 것을 보지 못했다. 리엘라가 밤새 계속해서 잠들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손은 어찌나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있지 못하던지. 처음에는 붙잡은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다 그녀 혼자서 손바닥을 쫙 펴서 제 손에 그의 손을 대어 크기를 비교하며 놀라질 않나, 그다음에는 팔을 품에 꼭 끌어안질 않나, 손을 올려 이마 위의 머리카락을 살살 잡아당기질 않나.
리엘라의 손이 닿을 때마다 하운은 마음속으로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기도했다. 제발 제가 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각자의 괴로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 올 때 두 사람은 한숨도 잠들지 못한 얼굴로 준비를 시작했다. 하운은 떠날 준비를, 리엘라는 그를 보낼 준비를.
밤사이 주방장이 잠시 다녀갔었는지, 주방으로 내려가자 먹음직스러운 수프가 준비되어 있었고, 둘은 그것을 데워 함께 식사를 했다.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 테이블 위에 있는 크리스털이 반짝거렸다.
리엘라가 왜 이런 걸 기록하냐고 했더니 하운은 그냥 이런 순간이 제일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리엘라는 책에서 봤던 크리스털의 특성을 떠올렸다. 보통은 열 번 정도 다시 기억을 꺼내 보면 흐려지면서 사라진다고 했었지.
그러는 사이 하운은 다시 리엘라의 뺨과 입술에 입을 맞췄다. 리엘라는 이걸 기록하는 건 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열 번 정도만 보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으니. 사라지는 게 싫으면 안 보겠지, 뭐.
하운은 흘긋 크리스털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리엘라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건 상급 중에서도 최상급 크리스털인지라 백 번을 돌려 봐도 기록이 흐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전투가 계속되다 보면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밤이 있다.
어제까지 곁에 있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어두운 밤에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아침 해가 다시 떠오르기 전까지 혼자서 무한한 어둠을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밤이.
하운은 크리스털을 그 어떤 보석보다 소중히 품에 넣었다. 이것은 그가 혼자 외로이 표류하는 밤에 그를 붙잡아 줄 유일한 불빛이 될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하운은 보석술사의 예복을 챙겨 입었다. 리엘라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의 옷매무시를 좀 더 정리해 주었다. 별거 아닌 손길 몇 번인데도 하운은 그게 좋아 웃음이 나왔다. 오늘이 떠나는 날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현관으로 내려오자 집사가 그가 타고 갈 말을 준비해 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하운은 리엘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편지 자주 보낼게. 공작저가 아니라 이쪽으로. 그러니까 여기에 자주 들러 줘.”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아직 온실 덜 채웠잖아요. 그리고….”
리엘라가 하운의 귓가에 속삭였다.
“엘피안 꽃도 보살펴야 하구요.”
새벽에 두 사람은 온실로 가서 빛나는 엘피안 꽃을 꺾었다. 한 송이만을 남겨 두고 전부 거둬들인 다음, 그것을 단단한 잠금장치가 있는 나무 상자에 넣었다. 이제 저것은 하운과 함께 북부로 가서 그와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게 될 것이다.
하운이 말에 올라타기 위해서 몸을 돌리려 할 때, 리엘라가 그를 붙잡았다.
“왜?”
“잠깐만….”
할 말이 있다는 듯 리엘라가 그에게 얼굴을 내려 보라 손짓했다. 하운은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숙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리엘라는 때마침 집사가 다른 일을 보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두 손으로 하운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제 입술을 그의 입술에 대었다.
“……!”
갑작스러운 도둑 키스를 당한 하운의 눈이 커졌다. 리엘라는 누가 볼세라 잽싸게 얼굴을 떼어 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내린 채 말했다.
“잘 다녀오세요.”
“…….”
하운은 멍한 얼굴로 손을 들어 제 입술을 만졌다. 어젯밤에도 잔뜩 한 입맞춤인데 리엘라가 먼저 한 것만으로 이렇게 더 아찔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니.
그는 마음속으로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면 할 일의 목록 제일 위에 하나를 추가했다. 제 욕심껏 잔뜩 입 맞추기 전에 그녀에게 잔뜩 받아 내는 것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백 번은 해 달라고 해야겠어.
더 긴 이별의 말은 없었다. 말에 올라탄 하운은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다 말했고, 리엘라는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말의 울음소리가 새벽하늘에 울리고 하운의 모습이 빠르게 멀어졌다. 리엘라는 울지 않았다. 그러면 저 뒷모습을 흐리게 봐야 할 테니까.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면 울어야지.
그리고 하운의 모습이 언덕 너머로 사라졌을 때, 리엘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큰 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