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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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아?”
공작저의 집사는 복도의 끝에 서 있는 네아를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요즘 들어 조용한 공작저였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하운이 파르멜 영지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그를 따라 리엘라와 공작저의 많은 사람들이 파르멜 저택의 수리를 돕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그래도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다들 지친 얼굴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느라 시끌벅적한 여름이었는데, 가을이 시작되자 모두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하운은 북부 전선으로 떠났고, 리엘라는 공원에 가서 사람들을 돕거나 정기적으로 파르멜 저택에 가서 그곳을 돌보았다.
이곳을 채우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니 공작저에는 자주 침묵이 흘렀다.
그나마 공작저에서 제일 소란스러운 사람은 네아였다. 저택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이번 기회에 공작저도 크게 한번 재공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매일같이 저택 안과 밖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덕분에 멜다 부인은 오랜만에 주방 전체를 들어내어 청소를 했고, 하인들 역시 여름을 지나며 벽의 구석에 생겼던 누수의 자국을 지우고, 커튼을 새로 갈아 끼우며, 카펫도 세탁하는 등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럼 내일은 겨울용 커튼과 카펫을 꺼내서 먼지 좀 털어야겠네요. 상한 부분이 있으면 수선도 해야 할 거고.”
여름 커튼과 카펫도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 겨울용은 성인 남자 여럿이 달라붙어야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다. 그것들을 정원에 임시로 설치해 둔 장대에 너는 것부터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사실 네아가 없으면 쉽사리 하겠다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네아의 말에 다들 내일은 어깨와 허리 좀 쑤시겠다며 각오를 하고 잠들었는데 정작 네아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침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네아를 찾아 저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집사가 평소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 별관의 위층에서 네아를 찾은 것이다.
“네아, 거기서 뭘 하고 있습니까?”
분명 그가 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네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순간 집사는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오래전의 일이 생각났다. 네아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분명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네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때와는 달리 해가 뜬 시각이었건만 네아의 눈은 그때와 똑같았다. 새카만 검은 구슬이 박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모든 것이 검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가 번뜩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집사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는 숨을 내뱉기만 해도 네아가 그대로 달려와 자신의 목을 비틀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벅저벅.
몸을 돌린 네아는 집사를 향해 걸어왔다. 서두르는 것도 아니고 느린 것도 아닌.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평범한 걸음걸이.
가까이 다가온 네아가 입을 열었다.
[죽여야 하나.]분명 네아의 목소리인데, 네아가 아니었다.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아득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무게가 있었다. 제 몸이 짓눌리는 듯한 거대한 느낌에 집사는 컥컥거리며 괴로운 신음 소리를 흘렸다. 늙은 몸이 바닥으로 쓰러져 살기 위한 본능으로 몸부림쳤다. 네아는 그것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루에도 수백 번 보는 광경인 것처럼.
네아는 손을 뻗어 집사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자 집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대로 집어 던질까.
직접 숨을 끊는 것도 귀찮아 열린 창문을 바라보던 네아가 중얼거렸다.
[감이 좋은 보석들이구나. 에르첼라의 것인가.]왕궁을 향해 고개를 돌린 네아는 귀찮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제 손안에서 축 늘어진 집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더 이상 네아가 아닌 네이판타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긴 세월 많은 인간을 잡아먹고 갖고 놀았기에 네이판타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란 자신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다른 개체의 생각과 고통에 반응하며 민감하게 굴었다. 그중에서도 짝을 맺은 상대에 대한 집착은 무척이나 깊어 그 상대를 끌고 가면 두려움조차 잊은 채 따라오기도 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재미있고 어리석은 것들이었다. 아주 오래전, 인간과 섞인 이것을 만들 때의 일이 생각났다.
인간과의 번식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근처에 있던 보석술사 수컷을 잡아 끌고 왔다. 그러자 그것의 암컷이 미친 듯이 덤벼들더니 레어까지 따라 들어왔다. 덕분에 수고롭지 않게 한 번에 둘을 잡을 수 있었다.
인간 보석술사 중에서도 유독 강했던 그들은 짝을 고문하자 쉽게도 제 보석들을 버렸다. 그 후로 네이판타는 한동안 그 두 인간을 갖고 실험했다. 그러다 암컷이 먼저 죽었다. 그러자 수컷은 완전히 정신을 놓았다. 때마침 인간과의 혼혈을 궁금해하던 네이판타는 암컷의 거죽을 빌려 정신을 놓은 수컷을 덮쳤다.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저를 향해 세상의 모든 저주를 쏟아 내던 것이 울며 매달리는 꼴이란. 덕분에 네이판타는 인간이 섞인 제 부스러기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 그녀가 깃들어 있는 ‘네아’라는 이 몸을.
하지만 그 후,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이 그녀를 쓰러트렸고 한동안 이것에 대해 잊고 지냈는데, 이렇게 훌륭히 제 분신이 되어 움직여 줄 줄이야.
네이판타는 네아의 기억 속에 남은 호슨 공작을 비웃었다.
[잘 봐라,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 네가 길러 낸 것의 본질을.]네이판타는 집사를 들쳐 메었다. 이대로 모든 것을 엎을까 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목표로 했던 꽃을 길러 내는 인간도 없으며, 에르첼라의 보석들이 그녀를 인지했다. 지금은 잠시 어둠 속에 몸을 숨길 때였다. 그래야 더욱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
네이판타는 들쳐 메고 있던 집사를 잠시 바라보았다. 어두운 기운이 집사를 한 번 휘감았다. 이제 이것으로 이 인간은 많은 기억을 잃을 것이다.
기억 조작은 네이판타의 특기였다. 생물의 뇌는 그녀에게 무엇보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아주 작은 부분을 찌른 것만으로도 몸이 어긋나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게다가 기억을 갖고 노는 것은 더욱더 재미있었다. 멋대로 자르고 붙이고, 없는 것을 뒤집어씌우고. 갖고 놀면 갖고 놀수록 그녀의 힘도 강해졌다. 덕분에 네이판타는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정신 지배력을 가진 드래곤이 되었다.
복도의 끝으로 간 네이판타는 계단을 향해 인간을 던졌다. 큰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진 인간의 몸에서 무엇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저를 막아서는 하운 아렐 펜드래건. 그것을 망가트리기 위해서는 그것의 짝이 필요했다. 오래 전 보았던 인간들처럼 하운 역시 제 짝을 따라 달려들 것이 분명했으니까.
네아의 몸 역시 검은 기운이 감쌌다. 그리고 새카맣게 변했던 눈동자가 천천히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
네아는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저택 내에 혹시 남은 카펫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왔던 자신은 집사의 부름에 대답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집사는 계단의 끝에서 발을 헛디뎠고,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너무나 선명한 기억이었다.
“집사님!”
네아는 놀라 아래로 달려갔다. 집사가 계단의 밑에서 신음 소리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급하게 그의 다친 곳을 살핀 다음 본채로 내달렸다. 네아의 머릿속에는 어서 빨리 의사를 불러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멀리 북부 전선에 있을 블랙 드래곤의 존재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여기입니다.”
하운을 안내한 기사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하운은 그가 안내한 동굴의 입구를 보고 그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이미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보니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굳은 피가 역한 냄새를 내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운은 혀를 찼다.
“누군가 다시 파냈군.”
사실 북부에서 이런 동굴의 입구는 흔하게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지하에는 플레노트의 레어인 거대한 지하 미로가 있다. 하운도 그 중심까지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그곳은 플레노트뿐만이 아니라 플레노트의 정신 지배 아래 살아가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플레노트는 다른 드래곤에 비해 정신 지배에 서툰 드래곤이었다. 학자들은 그것이 힘의 시전자인 플레노트가 다른 드래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내놓았었다.
그 탓에 몬스터들은 가끔 지하에서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기도 했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플레노트의 지하 레어에는 땅으로 올라갈 수 있는 수많은 통로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플레노트가 수면기에 들어갔을 때, 하운은 지하에 있는 몬스터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이 모든 입구들을 단단히 막으라 지시했다. 보석술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까지 모두 불러 모아 입구에 흙과 돌을 쏟아붓고, 어지간한 힘으로는 파내지 못할 만큼 단단하게 막았다.
그런데 그것 중 하나가 이렇게 완전히 파헤쳐진 것이다. 동굴 밖으로 쏟아진 흙을 보면 안에서 파낸 것이 분명했다.
하운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동굴의 입구로 들어갔다. 이곳은 그가 직접 막은 곳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그가 잘 기억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운이 보석의 힘으로 동굴 안을 비추자 거대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을 둘러보던 하운이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이렇게 큰 동굴이 아니었어.”
기껏해야 인간형 몬스터 두세 마리 정도가 함께 나올 수 있는 너비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동굴의 지름은 분명 그때보다 더 넓어져 있었다. 하운은 보석의 힘으로 만들어 낸 빛을 띄우고 안을 향해 걸었다. 그의 뒤로 기사들과 다른 보석술사들이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걷던 하운이 발을 멈췄다.
“이건….”
그가 마주한 것은 갈림길이었다. 그럴 리 없었다. 오래전 이 동굴은 레어로 연결되는 작은 길 하나뿐이었다. 하운은 많은 것이 바뀌어 버린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빛으로도 끝을 비추지 못할 만큼 무척이나 길고 깊은 동굴.
“…어디로 연결되는 거지?”
그가 중얼거릴 때 동굴의 입구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님! 네이판타가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