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10
220
고개를 든 하운과 샤를로테의 표정이 굳었다. 하늘에 빛의 원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원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다른 곳과 연결된 구멍을 허공에 만들어 냈다.
“이건 공간 이동의…? 카르디아 왕실의 보석 아닌가요?”
샤를로테는 말로만 들었던 보석의 힘을 처음 보는 것이 흥미로운지 눈을 빛내며 하늘에 생겨난 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운은 곧바로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카르디아의 것이 아닙니다.”
일견 비슷해 보이나 원이 생겨나는 형태도, 빛의 색도 달랐다. 게다가 카르디아의 공간 이동 보석은 무척이나 엄격하게 관리되며, 사용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왕실과 미리 연락을 취해 장소와 시간을 정해 둔 다음 열리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운은 뒤에 있는 보석술사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내가 쓰러진 사이 왕실에서 이쪽으로 연결한다는 말이 있었나!”
“어, 없었습니다!”
그럴 것이다. 그런 연락이 있었으면 루시안이나 일람이 가장 먼저 그 사실부터 알려 주고 뻗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지?’
그사이에도 빛의 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운은 물론 샤를로테 그리고 모든 보석술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빛의 원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것을 네이판타가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원 안의 빛이 햇빛을 받은 수면처럼 일렁거리더니 곧 건너편의 모습을 드러냈다. 서서히 드러나는 풍경이 어쩐지 익숙했다. 저기는 분명….
“…아이디얼 컷?”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원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분명 소르디아였다. 하운이 중얼거리는 사이 원 너머에서 누군가 폴짝 뛰어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북쪽은 생각보다 춥네요.”
공간을 건너온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얇은 천 하나만 입고 있는 제 팔을 쓸며 말했다. 그러고는 하운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밥벌… 아니, 하운 대공님.”
“…누얀?”
모습을 나타낸 건 플라워 컷을 관리하던 누얀이었다.
“네, 그보다 이쪽 공간 좀 잠시 비워 주시겠어요? 건너올 물건들이 많아서 놔둘 공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건너올 물건이라니? 아니, 그 전에 자네가 왜 여기에 온 건가! 그리고 저건 어떻게 연 거야? 이건 동의 없는 침략 행위….”
“아, 이쪽을 쓰면 되겠네요. 네네, 좀 비켜 주세요. 감사합니다.”
하운이 당황해 허둥지둥 말하는데도 누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을 정리하더니
빛의 원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건너오세요! 공간 있어요!”
그러자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의 원이 더욱 커졌다. 그 모습에 하운은 정말로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껏 그는 카르디아에서 소유한 보석만이 현존하는 공간 이동의 힘을 지닌 유일한 보석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겨난 공간 이동의 문을 보니 아무래도 그것은 카르디아의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잠시 후, 소르디아 쪽에서 사람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들은 큰 나무 상자를 들고 건너오더니 차곡차곡 쌓고는 다시 소르디아로 돌아갔다. 북쪽은 왜 이렇게 춥냐며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내 광장 한 곳에는 나무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아무래도 이 일의 주범인 것으로 보이는 자가 걸어 나왔다.
“네멘테스….”
라자르 컷의 주인인 그는 언제나 데리고 다니던 호위들과 가문의 보석술사들이 다 넘어온 것을 확인하더니 빛의 원 너머를 향해 이만 닫으라 소리쳤다. 그러자 곧 공간을 연결하던 원이 사라지고 광장에는 네멘테스의 일행과 누얀, 그리고 산더미 같은 나무 상자만 남았다.
“이게… 도대체….”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라 하운이 말을 잇지 못하자 네멘테스가 척척 걸어와 하운의 앞에 서더니 그에게 말린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했습니다.”
“뭐? 설마 이건….”
“뭐긴 뭡니까. 그쪽이 보낸 목록이지.”
“…….”
하운은 아파 오기 시작한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일람이 빼돌린 보석의 목록이 어디까지 전해졌단 말인가?
“조금 전 공간 이동은….”
“아, 그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숨겨 두고 있었던 보석이니까. 물어봐도 더 이상 대답 안 할 겁니다.”
“…….”
카르디아가 소유한 것보다 더 강한 공간 이동의 보석을 소르디아가 갖고 있었다는 것은 평소라면 당장 국무 회의가 열려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논의를 했을 만한 사안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르디아가 이런 보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지금 알려졌다는 것은….
“…리엘라를 위해서 비밀에 붙이던 보석을 움직인 건가?”
“쓸데없는 건 물어보지 말고 가져온 보석들이나 확인했으면 합니다.”
네멘테스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렸다.
***
사흘 전, 원탁회의의 연락책을 통해 하운이 구하고 있다는 보석의 목록을 받아 들었을 때 네멘테스는 잠시 고민했었다.
리엘라 테니어가 네이판타에게 잡혀갔다. 아직도 자주 꿈속에 나오는 그녀가. 그는 목록을 보자마자 알았다. 소르디아의 모든 인맥을 이용하면 이 보석들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온 가문의 부를 한 번에 날릴 뻔한 그였다. 그런데 겨우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이때 다시 위험한 짓을 하려 하다니. 누가 생각해도 가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네멘테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은인인 리엘라 테니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느냐. 아니면 모른 척하고 가문의 안위를 살피느냐. 한참 후 그는 결론을 내렸다.
“리엘라 테니어를 구해야지.”
벌떡 일어나면서 그가 중얼거리자 목록을 들고 온 이네나가 시계를 흘끔 보더니 말했다.
“오빠, 딱 10초 고민했어.”
“…….”
이상하다? 10분은 고민한 것 같은데?
“어쨌든 움직이자. 난 보석상과 세공소를 돌 테니까 오빠는 가문 사람들과 소르디아 의회에 가 줘. 보니까 거기에서 구입한 보석들도 있더라.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나 말릴 생각은 없는 거냐?”
“사람이 염치가 있고 도리가 있지. 우릴 살려 준 사람이 위험하다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듯 이네나는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만약 오빠가 리엘라 언니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무 상자로 찍어 버리고 내가 가주 하려고 했어!”
흉악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 이네나는 몸을 돌리고 손을 흔들었다.
“그럼 수고해, 오빠! 빨리 움직이자고!”
“너 목록 안 가져가냐!”
“이미 베꼈어!”
“저게!”
대담하게도 가주에게 온 편지를 먼저 열어 봤다는 것을 고백한 이네나는 재빠르게 달려 나가버렸다. 게다가 라자르 컷의 경비들은 어서 도망가라는 듯이 이네나에게 길을 터 주었다. 저 녀석들을 묶어서 혼낼까 고민하던 네멘테스는 한숨을 쉰 다음 목록을 보았다. 그는 가문의 보석 담당자들을 불러 재빨리 목록을 검토하도록 명령했다.
“어때? 소르디아 쪽에 거래 기록이 있나?”
“네. 그사이에 이곳에서 거래된 것이 약 110개 정도 되는 듯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잠시 생각에 잠긴 네멘테스는 결심했다. 110개. 죄다 소유주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겠지만 가문을 걸고 사들이면 못할 것도 아니다.
“사흘 내로 전부 다 구해 보도록 하지. 소르디아 의회에도 연락을 넣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하나라도 더 찾아오도록!”
소르디아는 경매로 큰 나라답게 모든 기록들 또한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인이 밝혀진 보석들은 곧바로 사람을 보냈고, 정체를 밝히길 원하지 않는 자들은 소르디아 의회를 거쳐 연락을 취했다. 팔지 않겠다는 자들에게는 아낌없이 높은 금액을 불렀다. 물론 그냥 낸 것은 아니었다. 이쪽에서 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자 원래 가격보다 열 배를 넘게 부르는 자들도 있었다. 네멘테스는 그런 자들은 일단 무시했다.
‘어차피 구입하려 든다는 소문은 다 퍼질 테지.’
아무리 숨겨 본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소문이 퍼지면 다들 너 나 할 것 없이 값을 올려 받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네멘테스는 다른 소문 하나를 같이 냈다. 가문의 돈이 다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을.
덕분에 거래는 쉽게 끝났다.
“한 번 망하는 꼴을 봐서 그런지 다들 참 빨리도 넘어오네….”
네멘테스의 가문이 저번과 같은 꼴이 나면 지금 부른 값으로 팔 기회가 사라질 테니 모두가 지체 없이 달려와 제 것을 사 달라 한 것이다.
보석의 구매를 가문의 가신들에게 맡긴 채 네멘테스는 고민에 빠졌다.
소르디아에서 북부 전선까지는 아무리 빠르게 간다 해도 2주일이 넘는 거리다. 보석술사는 아니지만 네이판타의 악명은 네멘테스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2주일이 지난 후에 보석이 도착하면 그때까지 리엘라가 살아 있을 확률은… 무척이나 낮았다.
그래서 결국 네멘테스는 라자르 컷의 지하 창고로 갔다. 그리고 카지도 찾을 수 없었던 비밀 공간을 열었다. 가문이 망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보석이 거기에 있었다.
‘할아버님도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셨는데.’
소르디아가 멸망할 위기정도가 닥쳐야 쓰라고 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그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카르디아가 갖고 있는 공간 이동의 보석보다 더 강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석을 네멘테스는 소르디아 의회의 보석술사들에게 말해 결국 그것을 발동시켰다. 물론 소르디아 의회도 일이 끝난 다음에는 따로 길게 이야기 하자고 말하긴 했다.
***
‘그 결과가 이거지.’
네멘테스는 광장에 쌓인 상자들을 보았다. 110개의 보석 중 105개를 찾았다. 다섯 개는 주인들이 끝까지 판매, 혹은 대여를 거부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멍하게 있을 겁니까?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카르디아에 입국 허가 없이 왔으니 이건 대공께서 알아서 처리 부탁합니다.”
네멘테스는 카르디아 역사상 처음으로 카르디아 내부 침입에 성공한 외국인이 되었다. 그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네멘테스는 하운에게 눈짓했다. 다행히 하운은 그의 뜻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한적한 곳을 찾아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곧 네멘테스가 그를 뒤따라왔다.
“무슨 일이지.”
“블랙 오팔 때문입니다.”
“아, 그것.”
오래전 소르디아에 있을 때 리엘라가 네멘테스에게서 구입했던 오팔의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2, 3주 정도면 기본 세공이 다 끝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소르디아로부터 좀 더 시간을 줄 수 없냐는 연락이 왔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생각보다 오팔 원석의 형태가 복잡해 안에 있는 블랙 오팔을 손상 없이 꺼내려면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저는 상관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리엘라가 하운에게 물어보았고 하운은 별일이 없다면 최대한 공을 들여 오팔의 세공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답했었다. 그 후로도 소르디아에서 몇 번 더 연락이 왔었다. 안에 있는 블랙 오팔이 꽤 까다롭게 굴어 작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보석이 그럴 수도… 아, 에르첼라 컬렉션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네요.”
“에르첼라의 보석들보다 더 대단한 거지. 원석 상태에서 그만큼 자아가 강한 보석은 거의 없거든. 정말 얼마나 대단한 게 나오려고 하는지.”
결국 리엘라는 하운의 조언을 듣고 소르디아에 시간은 얼마든지 줄 테니, 그쪽이 만족할 만한 작업을 하라고 완전히 일임했다. 덕분에 소르디아 쪽에서는 미안하다며 나중에 장신구를 만들 때 들어가는 비용은 전부 무상으로 해 주겠다는 답장이 왔었고.
‘그 후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정도로 자아가 강한 보석이라면 꺼내는 데만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터라 하운도 잠시 잊고 있던 보석이었다.
“오팔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문제라기보다는… 며칠 전부터 반응을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처럼 나오기를 거부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꺼내 보는 것을 시도하는 게 어떻겠냐고 프레이도 말을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리엘라 양과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것이다. 이 난리가 났는데 누가 그 연락에 답을 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할까요.”
“…….”
하운은 잠시 고민했다. 그 블랙 오팔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평범한 힘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블랙 오팔들은 지금까지 곱게 말을 들은 역사가 없으니.’
가장 희귀하고 가장 강하며 가장 까다로운 보석이다. 자칫하다 인간이 아닌 네이판타의 부름에 반응할 위험도 지금은 고려해야 했다. 잠시 생각하던 하운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꺼내고… 소르디아에서 먼저 그 블랙 오팔이 갖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아봐 주었으면 한다 전하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네멘테스를 보며 하운은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그것에 지금 이 상황에 도움 되는 힘이 있기를.
***
리엘라는 화분 안에 심어진 꽃을 보았다. 네아가 네이판타의 명령으로 지상에서 가져온 꽃은 수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이 지역의 야생화였다.
‘하기 싫지만….’
제힘을 네이판타에게 확인시켜서 좋을 일이라곤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게다가 빛나는 꽃으로 네이판타가 좋은 일을 할 리도 없었다. 분명 사람들을 죽이는 데 쓰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리엘라는 더더욱 우울해졌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운이 말했던 대로 온실 안에 있었으면 자신은 무사했을 것이며, 네이판타의 계획에 제가 힘을 더하는 일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엘라는 한참 전에 방을 나간 네아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네아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선택했다.
이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