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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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파괴
하운은 언덕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보석술사들의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날아왔다. 보석술사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네이판타의 방어 결계를 파괴할 보석진이었다.
***
과거 호슨 공작이 만들었던 보석진은 어제 아침 드디어 해독이 끝났다. 하운이 보석진을 완성하는 마지막 부분을 그려 루시안에게 넘겼고, 결과물을 확인한 루시안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 옆에 있던 샤를로테도 빼앗듯이 루시안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를 잡아채더니 이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며 그것을 다른 보석술사들에게 넘겨주었다.
종이가 넘어가면서 계속해서 신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종이가 다시 하운의 손에 돌아왔을 때, 회의실로 쓰고 있는 거대한 공간에는 기묘한 공기가 흘렀다.
40년 전 네이판타를 쓰러트리는 데 사용되었지만 사라졌던 보석진은 끔찍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 되니 드래곤을 소멸로 몰아넣을 수 있었겠지.”
하운은 새삼 40년 전 호슨 공작이 얼마나 분노에 차서 이것을 만들어 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무자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보석의 힘을 쥐어짜 내 파괴와 살상의 힘으로 변환시키는 보석진이었다. 오직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
보석술사가 아닌 네멘테스조차도 종이에 적힌 보석의 종류를 보며 혀를 내두르는 사이, 루시안이 흥분으로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한 채 하운에게 말했다.
“어,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지금 당장?”
“아니.”
하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아쉬움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확인한 보석진의 위력에 놀란 것도 잠시, 보석술사들은 다시 이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운의 다음 말이 그들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뿌렸다.
“이대로는 안 돼.”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번에는 샤를로테가 가늘게 눈을 뜨며 하운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어서 이것을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일단 모자란 보석이 있고….”
“그거라면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대체하면 될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대가 드래곤 둘을 잡아먹고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것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샤를로테 대공.”
하운은 침착하게 제가 그린 보석진 종이를 테이블의 가운데에 올려 두더니 펜을 집었다. 그리고 새로운 종이를 가져와 무엇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보석술사들은 이내 하운이 무엇을 적는지 알게 되었다.
“셀비아스와 플레노트의 보석들….”
오래 살아온 드래곤들은 갖고 있는 보석들도 많았다. 대부분 보석을 먹어 치우긴 했지만, 그중에서 유독 강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먹지 않은 채 사용하기도 했다. 하운이 적어 내리는 것은 셀비아스와 플레노트가 갖고 있었던 보석의 이름들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줄에 달하는 보석의 이름이 종이에 적혔다. 옆에서 보던 루시안이 혹시나 하운이 빠트린 것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하운은 완벽하게 모든 보석의 이름을 적었다.
잠시 보석의 이름을 바라보던 하운은 또다시 종이 한 장을 더 가져와 보석진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하운이 그리는 것은 플레노트가 만들어 낸 방어 결계였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는 하운이 펜을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가 그려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 하운이 손을 멈추자 그것을 보고 있던 보석술사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네이판타고, 만약 다른 드래곤들에게 빼앗은 보석을 먹지 않았다면 이렇게 강화했을 것 같은데.”
“…그럴 것 같군요.”
루시안이 턱을 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판타는 바보가 아니다. 과거 호슨 공작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결계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이제 대공께서는 어쩌실 생각인지?”
샤를로테 역시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하운이 예상한 대로 새로운 보석을 써서 방어 결계를 강화했다면 호슨 공작이 만든 보석진으로는 깨기 힘들 가능성이 컸다.
“네이판타만 강해진 건 아니지.”
“그럼…?”
“우리 역시 호슨 공작의 보석진을 더욱 강화하고 보완해야 해. 그때와 달리 지금은 없는 보석이 있긴 하지만 더 강한 보석들이 새로 손에 들어왔는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
“더 강한 보석들이라니….”
루시안이 중얼거리다 흠칫 놀라며 하운을 바라보았다. 하운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루시안과 샤를로테 그리고 네멘테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갖고 있는 보석을 새로 만드는 보석진에 투입하는 데 전부 다 협조해 주길 바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하운의 눈빛에 세 사람은 주춤거리며 물러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운은 드래곤보다 더욱더 무자비하게 그들이 갖고 있는 보석을 탈탈 털어 목록을 새로 만들었다. 세 사람뿐만이 아니다. 왕실에 연락해 다시 공간 이동의 보석 사용을 허가해 달라 요청하더니 루시안과 샤를로테를 끌고 공작저로 가서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에서 나온 보석들을 죄다 쓸어 왔다.
“일이 다 끝나고 리엘라가 무사히 돌아오면 원하는 걸 대여할 수 있도록 해 주지.”
하운의 말에 갖고 있던 보석을 털려 울상이던 두 사람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반나절 만에 더욱 많은 보석을 긁어모은 하운은 회의실 가운데 거대한 종이를 펼쳐 두고 호슨 공작의 보석진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보석들을 추가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원래 보석진을 짤 때는 수백, 수천 번의 계산을 새로 해야 한다. 보석들끼리의 상성이 맞는지, 각각의 힘이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고 제대로 위력을 다 끌어낼 수 있는지.
그렇기에 보석술사 한 명이 새로운 보석진을 만들어 내는 데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호슨 공작이 만들어 낸 것 같은 경우에는 수십 년이 걸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복잡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걸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고 했어.’
동료들이 네이판타에게 잔인하게 당하는 것을 보고 말 그대로 호슨 공작이 눈이 뒤집혀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하운은 쉬지 않고 펜을 움직였다. 호슨 공작은 천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시대의 천재 소리를 듣는 보석술사였다.
‘자신보다 못난 제자를 키우는 취미는 없다고 했지.’
어릴 적, 호슨 공작은 어린 하운을 굴리면서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
어린 시절의 하운에게 호슨 공작은 너무나 높은 산이었다. 제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보석을 무척이나 쉽게 제압하고, 수십 개의 보석을 한꺼번에 사용하면서 보석에 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던 자신의 스승.
아쉽게도 하운과 호슨 공작의 사이에는 긴 시간의 간극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나이 차가 컸기에 스승과 제자는 한 번도 전력으로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서로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지금 하운은 제가 호슨 공작을 넘어설 때가 왔음을 알았다. 그녀가 전쟁 중, 일주일 만에 만들었던 보석진이다.
하운은 하루 만에 그녀가 만든 것을 넘어서기로 했다.
***
어제의 일을 떠올리던 하운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 완성되어 가고 있는 보석진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전 떠오른 태양이 보석진이 있는 땅 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듣고 계십니까, 대공!”
밑에서 루시안이 볼멘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배치가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습니다. 준비하세요!”
“알겠네!”
하운은 정신을 차리고 보석진을 바라보았다. 탐색의 보석을 사용해 네이판타가 잠들어 있는 위치를 찾아냈다. 그 위에 있는 숲을 전부 밀어 버린 다음, 만들기 시작한 보석진에는 복잡한 글씨와 그림 그리고 고대의 문양과 함께 정해진 자리에 보석들이 놓였다.
지금 확인하는 것은 구하지 못한 보석의 자리에 대신 들어갈 보석들이었다.
‘다른 건 어떻게든 대체할 수 있었지만….’
하운은 가운데에 그려진 원을 보았다. 이 보석진의 모든 힘을 버텨 낼 기간이 될 보석.
“레이디 이블린의 다이아몬드….”
이블린은 호슨 공작의 오른팔로 언제나 호슨 공작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보석술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을 병으로 잃었고, 그 연인은 그녀에게 언제나 자신이 갖고 있던 보석을 남겼다. 그 다이아몬드는 당시 어떤 보석들보다 강하고 단단하여 이름을 날렸다고 했다. 오직 이블린의 말만 듣는 데다가 모든 힘을 그녀를 지키는 데만 사용하는 보석이었기에 이름조차도 이블린의 다이아몬드였다.
그리고 그 보석은 호슨 공작이 만들어 낸 보석진의 중심이 되었다. 모든 보석의 힘을 모은 그것을 들고 레이디 이블린이 직접 네이판타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던가.
“네이판타를 쓰러트린 건 이블린인데…. 그녀가 그 명성을 원치 않았지요. 그래서 그것은 내 업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을 마친 호슨 공작의 목소리에는 먹먹함이 배어 있었다.
그 다이아몬드는 네이판타의 입 안에서 응집되어 있던 모든 보석의 힘을 터트림과 동시에 이블린을 지켜 냈다. 이블린은 사람들을 구했지만 보석으로나마 남았던 제 연인을 영원히 잃고 말았다. 그 후로 이블린은 모든 기록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부탁한 다음, 수도의 작은 저택에서 평생을 칩거한 채로 조용히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하운은 제 옆에 놓인 상자를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서 있는 보석술사들에게 말했다.
“시험 가동을 할 테니 모두 자기 자리로.”
그러자 보석술사들이 조용히 지정된 자리로 가서 섰다. 하운은 보석진의 가운데에 선 다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에르첼라 컬렉션이 들어 있었다.
‘마땅한 게 없어.’
블랙 오팔은 아직 연락이 없으니 지금 남아 있는 보석들 중 가장 강한 것은 에르첼라의 보석들이었다. 하운이 가운데 그려진 원에서 에르첼라 컬렉션을 꺼내 들자 동시에 보석진 안의 모든 원 위에 놓여 있던 보석들 역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중에서 가장 빛을 내는 내고 있는 것은 프레이가 복원한 에르첼라의 목걸이였다.
“전원 준비!”
하운이 소리치자 보석술사들은 긴장된 얼굴로 자신들의 앞에 떠 있는 보석들을 보았다.
“시험 가동이니, 보석의 힘이 개방되기 직전에 힘을 거둔다. 시작!”
하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석술사들은 모두 자신들이 다루어야 할 보석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내 보석진을 구성하는 선이 빛나기 시작하면서 힘이 가운데로 보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이것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호슨 공작이 쓸 때도 그러하였으니까. 하지만 루시안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그만! 모두 중지!”
하운에 이어 두 번째로 지휘권을 갖고 있는 루시안이었다. 보석술사들이 루시안의 말에 따라 힘을 거두자 다시 땅은 조용해졌다.
“무슨 짓인가?”
하운이 루시안에게 짜증스럽게 말하자 루시안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흔들림이 너무 심해요! 어딘가 문제가….”
“아니, 문제는 없어. 계산한 대로야.”
“그럴 리가요. 너무 강한 진동인데… 설마….”
“보석진을 봤으면 알잖아.”
하운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 배나 더 강하게 만든 거야.”
“…….”
“이제 제대로 가동된다는 걸 알았으니…….”
하운은 다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에르첼라의 보석들을 보았다.
“내일 아침, 네이판타의 방어 결계 파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