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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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갑자기 사방이 흔들리면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에 리엘라는 놀라 머리를 감싸 쥐고는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땅이 진동하면서 그 아래의 어두운 동굴 쪽에서는 바위가 구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천장이 무너지면 깔려 죽을 거라는 두려움에 리엘라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몸을 웅크렸다.
다행히 진동은 곧 멈췄다. 하지만 천장에선 한참이나 더 모래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쿨럭! 쿨럭!”
흙먼지에 손을 내저으며 기침을 한 리엘라는 더 이상 떨어지는 것이 없음을 알고 조심스럽게 테이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동굴로 연결되는 문을 슬쩍 열었다.
“어?”
언제나 잘 열리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리엘라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문을 밀었다. 그러자 문 뒤에서 뭔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세상에….”
동굴 안은 엉망이었다. 부서진 동굴의 잔해가 바닥을 굴렀고, 천장에선 아직도 투둑투둑 소리를 내며 자갈과 모래가 떨어졌다. 동굴에 비해 리엘라가 있는 곳은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 안은 좀 더 안전하도록 네이판타가 뭔가 손을 써 둔 모양이었다.
‘호수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며칠간 동굴 안을 열심히 돌아다녀 보았지만 처음 발견한 호수를 제외하면 동굴은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뿐이었다. 결국 리엘라는 다른 출구를 찾으려는 생각을 단념하고 호수가 있는 쪽을 더욱 살폈다.
동굴을 보던 리엘라는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진동이 시작되기 전에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몬스터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이제 남은 몬스터는 한 마리. 대략 하루의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다.
‘네아도 여전히 오지 않아.’
도대체 왜 네아를 보내 주지 않는 것일까. 리엘라는 계속해서 네아가 걱정되었다. 팔도 잘리고 귀도 잘렸다. 인간이 아니라고는 해도 치료는 해야 할 텐데, 도대체 네아를 어디에 이용하고 있기에 네이판타가 그녀를 보내 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절대 좋은 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엘라는 마른 빵을 챙겨 찢은 천으로 만든 가방 안에 넣고는 네이판타가 새로이 놓고 간 화분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었다. 저번의 꽃과 다른 점이라면 꽃이 훨씬 크다는 것.
처음 화분을 받았을 때, 리엘라는 재빨리 덜 피어난 꽃봉오리들의 아래를 잘라 물을 넣은 병에 따로 꽂아 두어 침대 아래 두었다. 그리고는 하루에 하나씩 그것들에 피를 먹여 램프 대신으로 사용했다.
리엘라는 침대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꽃봉오리를 꺼냈다.
‘이게 마지막이야.’
어차피 남은 시간도 하루뿐이다. 리엘라는 꽃봉오리를 챙겨 들고 동굴로 향했다. 피를 먹이자 꽃이 활짝 피어났고, 환한 빛이 주변을 비추었다. 하지만 어제까지와 다르게 자욱한 흙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리엘라는 천으로 코와 입을 막고 떨어진 바위를 피해 호숫가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숫가까지 가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천장에서 바위 하나가 떨어지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가야 했다.
‘혹시나….’
리엘라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바삐 걸음을 옮겼다.
쌓인 바위들을 피하고 갈라진 길을 뛰어넘으면서 리엘라는 힘겹게 호숫가로 향했다.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남겨 둔 표식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호숫가로 향하는 동굴의 길은 잘 외우고 있었기에 크게 헤매지 않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순간.
“……!”
제가 들고 있는 꽃이 아닌 다른 빛이 있었다. 호수의 건너편의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이.
리엘라는 들고 있던 꽃을 가방에 넣고 미친 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첨벙!
평소에는 너무 차가워 들어가는 것을 꺼려 하던 호수에 리엘라는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물이 흐르는 호수다. 그렇기에 리엘라는 몇 번이고 허우적거리며 물을 먹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호수의 건너편으로 헤엄쳐 갔다.
“허억… 허억….”
리엘라는 삼킨 물을 내뱉은 다음 비틀거리며 빛이 쏟아지는 자리로 갔다. 그곳에서 고개를 들어 보니 천장이 갈라진 틈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늘을 본 순간 리엘라는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납치된 이후 어둠 속에서 지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다. 그 후에 꽃을 피워 내라던 네이판타 덕에 겨우 빛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지만 리엘라는 제가 있는 곳이 땅속임을 매 순간 느껴야 했다. 썩기 시작한 듯 축축한 흙의 냄새. 지하 특유의 서늘한 습기. 그리고 동굴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동굴 안의 바람 소리.
그것들을 느끼며 잠이 들 때마다 리엘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대로 이곳에 평생 있게 되는 것일까. 나는 이 땅속에서 죽는 것일까.
괜찮다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았지만 결국은 훌쩍이며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하늘이 보고 싶다고. 매일같이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었던 하늘이 그리웠다.
그리고 지금, 지난 몇 주간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푸른 하늘이 보였다.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리엘라는 미친 듯이 벽을 기어올랐다. 하지만 흙으로 된 벽은 리엘라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리엘라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벽을 기어올랐다. 손끝이 쓸려 벗겨져도 아픔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졌다. 수십 번 다시 도전했지만 리엘라는 올라갈 수 없었다. 더 이상 기어 올라갈 힘이 없어진 리엘라는 위를 향해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온 힘을 다해 외친 목소리가 호수가 있는 공간에 울렸다.
큰 소리를 내면 네이판타가 눈치를 챌 것이 분명했지만 리엘라에게는 그것을 생각할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가고 싶어.
리엘라의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이곳은 춥고, 배고프고, 외로우며 무섭다. 그래서 리엘라는 지금까지 제가 누리던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따뜻한 집, 언제나 맛있게 차려지던 음식 그리고 저택 안에 가득한 사람들. 모든 것이 안전하고 편안한 곳.
모두가 보고 싶었다. 저택의 하인들도, 리나도, 아일리 언니도. 그리고… 하운도.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자 리엘라의 눈이 붉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보고 싶어.
모두가 보고 싶어.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리엘라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자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살려 주세요….”
리엘라는 울면서 다시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나가고 싶어! 여기 있기 싫어! 싫다고! 살려 줘!”
리엘라는 미친 듯이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와 턱 아래로 툭툭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리엘라는 미친 듯이 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제발, 누구라도 좋아. 근처에 사람이 있다면… 제발 내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와 준다면….
하지만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리엘라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며 소리쳤다.
집에 가고 싶어.
보석이고 꽃이고 드래곤이고 모든 게 싫었다. 대단한 꿈을 가진 것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꽃 시장에 들러 향기로운 아침을 열고 브릭스 거리에서 꽃을 팔며 리나의 가게에서 식사를 하는 하루.
휴일에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보며 차 한 잔을 마시고, 집 안의 화분들을 돌보다가 놀러 온 친구들과 함께 큰 거리에 물건을 사러 나가면서 수다를 떠는 그런 하루. 그러다 언니들이 돌아오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고 밤이 되면 넓은 침대에서 다 같이 수다를 떨다 잠이 드는 그런 날들.
그 이상의 것을 바란 적이 없는데. 왜, 어째서….
리엘라는 엎드린 채 울었다. 제가 한 행동들이 모두 후회스러웠다. 왜 온실을 나왔을까, 왜 왕궁을 나왔을까.
후회는 점점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왜 감당도 하지 못할 재산을 상속받겠다 했을까, 왜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이 빛나는 꽃을 알아봐 주길 바라며 백합을 꺼내 놓았을까.
제가 한 모든 일이 끔찍하게 후회스러웠다. 후회는 이내 원망이 되었다. 리엘라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를 원망했다. 하운. 그는 내가 지금 이런 상태임을 알고 있는 걸까? 이미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제일 강한 보석술사라면서 왜 아직도 나를 찾지 못하는 건데? 이렇게 하늘이 보이는 곳에 있는데,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는데. 왜 어째서….
결국 리엘라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세상 모든 것이 미웠다. 파랗던 하늘은 어느새 점점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더니 어두워지면서 별이 떠올랐다. 리엘라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울다 정신을 잃었다.
***
“아….”
다시 눈을 떴을 때, 리엘라는 지독한 갈증과 함께 온몸이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잔뜩 쉰 목에서는 숨을 들이마시자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얼마나 부은 것인지 눈은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잠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하던 리엘라는 정신을 잃기 전의 일들이 생각났다.
“헉!”
놀란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킨 다음 고개를 들었다. 아플 정도로 눈 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이 보였다. 겨울의 아침 햇살이었다.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것이 밤하늘이었으니 아침이 될 때까지 꼬박 이곳에서 잠들었던 것이다.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한 순간 리엘라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오늘이야….”
네이판타는 다시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방을 떠나오기 전, 목이 남아 있던 몬스터는 한 마리였다. 리엘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퉁퉁 부은 눈 때문에 시야가 흐렸지만 리엘라는 망설임 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첨벙!
차가운 물이 닿자 빠르게 정신이 깨어났다. 그리고 어제 자신이 한 모든 일이 생각났다. 리엘라는 입술을 물며 미친 듯이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헤엄쳤다.
‘내가 무슨 생각을….’
분명 자신은 쓰러지기 전 모두를 원망했다. 네아를, 호슨 공작을 그리고 하운을.
‘어떻게….’
부은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어떻게 자신이 그들을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그녀 스스로였다. 그들이 주는 사랑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어떻게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며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하면 안 되는 생각이었다. 리엘라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끼면서 미친 듯이 호수를 건넜다. 다행히 가방 속에 집어넣었던 꽃봉오리는 반쯤 망가졌지만 아직 빛나고 있었다.
리엘라는 미친 듯이 달려 자신이 있던 방으로 향했다. 만약 그 전에 네이판타가 자신을 찾았다면, 그래서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그 즉시 네아의 목을 벨 것 같았다.
신발이 벗겨져 발이 엉망이 되는 것도 모른 채 리엘라는 동굴을 뛰었다. 곧, 방으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네아!”
네아를 외치며 안으로 들어갔지만, 방 안은 그녀가 나왔을 때와 똑같았다. 리엘라는 손에 쥐고 있던 꽃봉오리를 짓이겨 가방 안에 넣은 다음 몬스터를 두었던 곳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 목이 붙어 있는 마지막 몬스터 한 마리가 보였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하아….”
그것을 확인한 순간 리엘라는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어둠이 깔렸다.
툭.
그리고 무엇인가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구르는 소리가 멈추고, 어둠이 깔렸다. 그 속에서 번뜩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네이판타가 꽃을 찾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