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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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어떻게!”
허공에 울려 퍼지는 네이판타의 경악을 듣는 순간 북부 전선의 보석술사들은 몰려오는 안도감에 눈물을 글썽였다. 빛의 원 너머로 보이는 수도의 모습에 모두가 좌절했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었는가. 카르디아의 사람들과 도시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런데 그들이 사라지면, 자신들은 무엇을 위해 네이판타와 싸워야 한단 말인가. 피의 파도가 수도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몇몇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고, 다른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음박질했다.
마침내 파도가 수도를 덮치는 순간, 폭발하듯 터진 환한 빛에 모두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 지금 빛으로 뒤덮인 수도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누가….”
하운은 수도를 덮은 문스톤의 힘에 경악했다.
왕궁을 중심으로 거대한 문스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왜 정원의 한구석, 뜬금없는 곳에 문스톤이 놓여 있나 싶었겠지만, 그것은 왕궁 지하까지 포함한 과거의 강력한 보석진의 일부였다.
‘도대체 누가 저것을 발동시킨 거지?’
자신과 루시안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어지간한 보석술사들 역시 전부 북부 전선에 와 있는데 누가 저 엄청난 힘을 끌어내 저렇게 완벽하게 수도를 지키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하운은 궁금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제 회심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간 네이판타가 분노 가득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네이판타의 시선이 북부 전선에 있는 보석술사들을 향했다. 지금은 수도가 아닌 자신들을 걱정할 때였다.
하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모든 것이 처참했다. 브레스를 간신히 막아 내긴 했지만,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보석술사들과 깨어 있음에도 더 이상 힘을 쓰기가 힘든 보석술사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보석들 역시 힘을 죄다 끌어낸 탓에 바로 다시 사용하기란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하르메아도 한쪽에 축 늘어져 있었다.
싸울 수 있는 보석술사는 채 몇 명도 되지 않는데 네이판타는 건재했다. 전력을 다해서 싸워도 불리한 싸움이다.
이제 하운은 코앞으로 다가온 자신들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막아야 하는데. 저것을 쓰러트리고 어서 리엘라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하운은 품 안에 있던 헤마타이트를 꺼냈다. 상자 안에 있던 그것은 위험한 검은색의 광택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네이판타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실험을 하고 ‘만들어 낸’ 보석이었다. 그렇기에 저 헤마타이트는 다른 보석들과 달리 신체의 일부라는 대가가 있어야만 힘을 발휘하는 보석이었다.
“되살려 내었구나. 그래서, 너를 더 만들어 낼 생각인가.”
네이판타는 하운을 비웃었다. 보석진을 가동하는 데 대부분의 보석들이 힘을 다하고 말았다. 그러니 하운이 한 명 더 생긴다 한들 네이판타에게는 결국 먹어 치울 인간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에 불과할 터였다.
그리고 네이판타가 인지한 사실을 하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운은 다시 품을 뒤졌다. 리엘라가 남겨 놓고 갔던 엘피안 꽃은 한 송이뿐.
꽃에 붙은 꽃잎 다섯 장 중, 네 장은 브레스를 막아 내기 위해 문스톤의 힘을 되살릴 때 전부 사용했다. 정신없이 잡히는 대로 쓰다 보니 거의 다 사용해 버린 것이다. 하운은 제 주변에 있는 보석들을 보았다. 이 중에 네이판타를 상대할 수 있는 보석은 아무리 보아도 하나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떨어져 있던 에르첼라 컬렉션 중 목걸이를 집었다.
에르첼라 컬렉션의 팔찌, 반지, 브로치 등등 장신구에 있는 보석들 모두가 강했지만, 그중에서도 목걸이의 보석이 제일 강력했다. 하운은 이미 잔뜩 실금이 가 있는 보석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목걸이와 함께 움켜쥐었다.
의미 없는 발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리고 보석이 꽃의 빛을 삼키기 시작했다. 보석 위에 가 있던 금이 조금씩 사라지며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다시 빛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파열음이 울렸다. 그리고 하운의 손에서 부서진 보석의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하운이 허겁지겁 그러모았으나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던 조각은 그의 손길에 완전히 부서져 가루가 되고 말았다. 꽃의 빛을 흡수하며 다시 복원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깨져 버린 것 같았다. 하운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제 손에 남은 목걸이의 줄과 장식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네이판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지금 하운의 표정이 그녀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인간들의 저런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 희망을 잃고 끝없는 절망 속으로 떨어지는 저 표정이.
“이제 너희들이 끝을 맞이하겠구나.”
네이판타는 거대한 입을 벌렸다. 입 안에 가득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눌려 도망가지 못한 채, 네이판타의 입을 바라보았다. 이제 네이판타가 집어삼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하운은 절망에 젖은 채 고개를 떨궜다.
여기서 이렇게 끝일까. 리엘라가 아직 이 밑에 있을 텐데. 누군가 자신을 구해 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렇게 구하지 못한 채로….
“……!”
그 순간, 하운은 제 손에 들려 있던 목걸이의 장식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
쿵!
리엘라를 한 팔로 안은 채, 벽을 오르려던 네아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첨벙, 물에 빠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이제 바닥에는 아르펠트의 해수가 무릎 높이만큼 차올라 있었다.
“으….”
리엘라는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네아는 리엘라를 붙잡고 올라가기 위해 수십 번을 노력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이제 천장에선 더욱 세차게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올라가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
그렇다면….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네아를 붙잡아 일으켰다. 너덜너덜해진 네아의 팔이 보였다. 바닷물에 이런 상처가 닿았으니 불에 덴 것처럼 쓰라릴 텐데도 네아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리엘라는 계속해서 차오르는 물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아가씨?”
어디로 향하냐는 질문이었다. 리엘라는 얼굴을 타고 흘러 시야를 가리는 핏물을 닦아 내며 동굴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 안쪽이 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네아가 돕고 나서야 문이 힘겹게 열렸다. 그러자 아직 물이 덜 차오른 동굴 안쪽으로 핏물이 콸콸 쏟아져 흘러내려 갔다.
“이쪽으로!”
리엘라는 네아를 잡아 이끌었다.
방이 있던 공간에 비해 덜할 뿐, 동굴 안 역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고르지 못했던 바닥인 데다가 이제는 빛도 없었기에 동굴 안을 걷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리엘라가 다른 곳으로 가려 하는 것을 알아차린 네아가 리엘라의 손을 힘겹게 붙잡고 외쳤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다행히 네아의 눈은 이 어둠 속을 볼 수 있었다. 둘은 어둡고 험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리엘라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며 지하 호숫가로 가는 길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몇 번이고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그럴 때마다 네아는 재빨리 리엘라를 붙잡았다. 그렇게나 무서웠던 네아의 비늘 돋은 손과 발톱은 어둠 속에서 리엘라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점점 동굴 안도 두 사람의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방이 있었던 곳에서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보아 이제 그곳은 거의 잠겼을 것이 분명했다.
한참 후, 두 사람은 겨우 호숫가에 도착했다. 그곳도 이미 물이 가득 차올라 원래 리엘라가 보았던 호수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리엘라가 찾는 것은 남아 있었다.
“저기!”
리엘라는 갈라진 틈으로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가리켰다. 이 난리 속에서도 그곳엔 여전히 갈라진 틈이 남아 있었다. 몇 걸음 내딛자 발이 쑥 빠졌다. 원래 호수였던 곳이 시작된 것이다. 둘은 힘겹게 헤엄쳐 빛이 들어오는 자리로 다가갔다. 고개를 들자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네이판타의 몸이 태양을 가린 탓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리엘라는 목에 걸고 있던 것을 빼냈다. 오래전에 소르디아에서 하운과 함께 뽑았던 수정의 절반이었다. 리엘라는 그것을 강하게 쥐며 중얼거렸다.
“이곳을 기억해. 계속 기억해야 해.”
그리고 마치 수정에게 보란 듯이 동굴 안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보석은 마치 리엘라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잠시 약하게 빛났다.
“아가씨…?”
네아는 리엘라가 갑자기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위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커졌다. 이윽고 큰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 탓에 리엘라와 네아가 왔던 곳의 입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리엘라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닦아 낸 다음 수정을 향해 웃었다. 마치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러더니 그것을 네아의 목에 걸어 주었다.
“왜 이걸….”
“네아, 위로 올라가요.”
리엘라는 갈라진 틈을 바라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네아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하자 리엘라는 네아의 손을 밀어냈다.
“아가씨?”
“같이 갈 순 없어요.”
저곳으로 네아가 자신을 안고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네아 혼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네아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야 리엘라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아, 안 가요….”
“네아.”
“전 못 가요.”
“가야 해요.”
리엘라는 다시 위를 바라보았다. 큰 소리와 함께 땅은 계속 흔들렸고, 간간이 네이판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네이판타는 인간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하운이 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대로 이곳에 둘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차오르기 시작한 물이 천장에 닿을 때까지 버텨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자신도, 네아도 그럴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같이 죽게 될 뿐이었다. 그러니….
리엘라는 네아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요.”
“……!”
리엘라의 말에 네아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네아는 계속해서 리엘라에게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정신 지배를 당했다 하더라도 리엘라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게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리엘라는 네아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과 함께 견디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가서 이곳으로 사람들을… 하운 님을 데려와 줘요. 네아 혼자라면 갈 수 있을 거예요.”
네아도 알고 있었다. 혼자서라면 어떻게든 저 위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리엘라를 놓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아가씨는요?”
네아의 말에 리엘라는 살짝 웃으며 손목을 보였다. 원래라면 거의 광택을 잃었을 아르펠트의 진주가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진주는 조금이지만 빛을 되찾은 상태였다. 원래 아르펠트해의 바닷속에서 자라던 것이, 오랜만에 드래곤 로드의 피를 다시 삼킨 덕분이지 미약하나마 힘을 되찾은 것이었다.
“이게 있으면 그래도 버틸 수 있을 거예요.”
“…….”
그사이 다시 땅이 흔들리며 무너졌던 부분이 연이어 붕괴되기 시작했다. 네아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리엘라의 죽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임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죽게 될 것임을.
이성은 리엘라의 말이 맞다고 외치고 있었다. 가만히 둘의 죽음을 기다리느니 자신이라도 나가서 하운을 데려오면 둘 다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리엘라를 혼자 이곳에 두고 갈 수 있을까. 자신이 데려왔는데. 자신만 이곳을 나가야 하다니.
망설이는 네아의 손을 꼭 붙잡으며 리엘라는 힘주어 말했다.
“살려 줘요.”
네아는 더 이상 리엘라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