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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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에르첼라의 말에 하운은 아주 잠시 그녀를 바라본 다음 곧바로 몸을 돌렸다. 네아가 왔던 곳으로 달리면서 하운은 보석진 위에 굴러다니던 보석들을 닥치는 대로 집었다. 무엇이든지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다면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하운은 곤경에 빠졌다. 네이판타의 공격으로 워낙에 땅이 흔들리고 파헤쳐진 탓에 네아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하운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쪽으로!”
“아일리?”
아일리가 하운을 지나쳐 달리며 어서 오라는 듯이 소리쳤다.
“어떻게 여기에!”
“네아의 흔적을 쫓다 보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저런 괴물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진 못했지만!”
수도에서 곧바로 네아를 뒤쫓아 간 이후로 소식을 듣지 못했던 그녀였다. 아일리는 달리면서도 눈을 땅에서 떼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하운은 그녀가 왕실이 따로 고용할 정도의 능력 있는 레인저라는 것을 떠올렸다. 언제나 국경 지대를 돌아다니는 그들의 특기는 바로 흔적을 찾는 것. 국경을 넘어오는 자들이나 몬스터의 움직임을 쫓으려면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아일리는 그저 파헤쳐진 것으로만 보이는 엉망이 된 땅 위에서 잘도 네아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하운은 이내 수정의 기억이 끊겼던 곳의 풍경을 보았다. 그 순간 콱콱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센 폭풍이 불어왔다.
갑작스러운 압력에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하운이 왔던 쪽에서 에르첼라가 끌어낸 보석의 힘과 네이판타가 정신없이 부딪히고 있었다.
‘10분이라고.’
하운은 재빨리 다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렸다. 뒤늦게 일어난 아일리가 그를 따라 달려가려고 했으나 그녀의 바로 앞에 네이판타의 찢긴 날개가 떨어져 그녀의 길을 막았다.
“젠장!”
아일리는 불타 녹고 있는 드래곤의 날개를 분노를 담아 걷어찼다. 그러다 제 발이 푹 꺼지는 것을 느꼈다. 놀라 아래를 바라보자 딛고 있는 땅이 진창이 된 것이 보였다.
“아래쪽에 전부 물이 찬 거야….”
아일리도 언덕에서 수도의 모습을 보았다. 땅속에서 핏빛의 물이 솟구쳐 오르는 모습에 이곳까지 오는 길에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들었던 땅굴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네이판타가 만든 것. 그러니 이곳이 그 땅굴의 시작이다. 아일리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며 마른 땅을 찾았다. 땅이 아래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분명 얼마 있지 않아 아르펠트의 바닷물이 솟구칠 것이다. 그녀는 급히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하운을 찾으려 했지만 하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
하운 역시 땅이 이상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단순히 바다의 냄새라기엔 너무 비릿했다. 네이판타가 아르펠트해와 연결한 공간이 계속해서 이곳으로 아르펠트해의 바닷물을 끌어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네이판타가 머물러 있었던, 그리고 리엘라가 잡혀 있던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우고 땅 위로 올라오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운의 손이 떨렸다. 이미 지하에….
그 순간 하운은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지점을 찾았다. 분명 수정의 영상에서 본, 네아가 기어 올라온 틈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틈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밀려 나오는 물이 하운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 가로막았다.
“제발….”
아르펠트해의 바닷물이 입과 눈으로 들어오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하운은 틈 사이로 제 몸을 집어넣었지만 다시 밀려 나올 뿐이었다.
“리엘라! 리엘라!”
하운은 미친 듯이 소리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제가 이 틈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보석의 힘으로 지반을 완전히 부숴 버리는 것. 하운은 제가 갖고 있던 것과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을 전부 바닥에 집어 던졌다.
“제발… 제발….”
무엇이라도 좋았다. 리엘라를 가두고 있을 이 땅을 부술 수 있는 보석이 무엇 하나라도 있기를. 하지만 하운의 기대와 다르게 그가 집은 것은 불이나 물을 부르는 보석뿐, 지금의 그에게 도움 되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하운은 아직 제 품 안에 얇고 넓은 보석이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손이 급히 그것을 꺼냈다.
균열의 아게이트.
보석의 방을 열었을 때 나온, 호슨 공작이 숨겨 두었던 강한 무기. 이미 힘을 완전히 소진해 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 죽은 보석이나 다름이 없던 것이다. 보석진을 완성하기 위해 공작저에 남은 보석을 정신없이 집어 왔을 때 같이 딸려 왔다가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도 곤란할 것 같아 그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 가장 필요한 보석이었지만 남아 있는 힘이 없었다.
“젠장!”
하운은 거칠게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겨우 찾았는데, 이 아래에 리엘라가 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는 균열의 아게이트를 움켜쥔 채로 쏟아져 나오는 붉은 바닷물을 바라보았다. 자꾸만 리엘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정에서 보았던, 엉망인 꼴을 하고서도 제가 볼 것을 알고 웃어 주던 모습이.
이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하운의 얼굴을 따라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허겁지겁 손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리엘라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 미친 듯이 움직였다. 절대로, 절대로 저 어둡고 차가운 곳에 리엘라를 혼자 둘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리엘라!”
그가 모든 힘을 다해 소리친 순간이었다.
“……!”
갑자기 환한 빛이 옆에 보였다.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에는 이 계절에 절대 피어나지 않을 꽃이 피어 빛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하운이 놀라는 사이 다시 다른 쪽이 환해졌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바랜 갈색으로 말라붙어 있는 땅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바람에도 바스러지며 마른 소리를 내던 잎들이 싱그러움을 되찾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커다란 꽃을 피워 냈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불었을 때, 세상 모든 곳에 꽃향기가 가득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색으로 가득 찬 들판 가운데서 하운은 창세 신화를 떠올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이 땅에 떨어진 순간 수만 가지의 색으로 가득 덮였다던 태초의 순간을.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하운은 손에 들고 있던 균열의 아게이트를 빛나는 꽃에 대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피어 있는 꽃들의 빛이 순식간에 아게이트로 몰려들었다. 마치 제가 가득 갖고 있는 빛을 나누어 주겠다는 듯이. 이미 죽음에 떨어졌던 아게이트가 하운의 손에서 빛을 되찾아 갔다. 겹겹이 층을 이룬 세월의 흔적이 선명해지며 층마다 다른 빛이 선명해졌다.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하운은 아게이트를 제 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아게이트의 힘을 끌어냈다.
제발. 리엘라를 찾게 해 줘. 제발….
그가 기도한 순간 아게이트는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자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빛이 떨어진 자리라고 오해받는 거대한 협곡을 만들어 낸 힘이다. 그 힘은 그대로 땅을 깊게 파고 들어가 사정없이 갈랐다.
땅 아래가 갈라지고 터지며 귀가 잠시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소리가 났다. 하운은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지도 않은 채, 아게이트의 힘을 똑바로 보았다. 땅속을 가득 채웠던 물이 폭발하듯 땅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피어난 꽃 위로 떨어졌다. 그 속에서 하운은 자신의 꽃을 찾았다. 이 빛나는 들판 위에서 그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를.
“리엘라!”
길게 갈라진 땅의 끝에 축 늘어져 있는 몸이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던 갈색의 머리카락이 물에 흠뻑 젖어 헝클어진 채로 리엘라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리엘라! 리엘라!”
하운은 미친 듯이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품 안의 몸이 너무나 차가웠다. 그는 리엘라를 흔들며 계속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하운은 피가 흘러내리는 리엘라의 손목을 보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일부러 낸 것이 틀림없는, 엉망으로 찢긴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하운은 이 들판의 빛나는 꽃들이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리엘라가 위에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일부러 제 몸에 상처를 낸 것이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이럴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치유의 보석을 찾아 리엘라를 치료해야 했다.
하운이 그녀를 안고 일어난 순간 리엘라의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축 처진 손을 타고 핏방울이 하나씩 뚝뚝 떨어졌다.
하운은 전장에서 살아오면서 많은 죽음을 보았다. 그렇기에 사람이 죽는 순간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조금씩 흘러내리는 피, 차가워진 몸, 핏기 없는 얼굴, 힘없이 떨어지는 팔 그리고 조용히 감긴 눈. 모든 것이 한 가지 사실을 가리켰다.
하운은 고개를 숙여 리엘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리엘라가 그 고백을 받아 준 이후로 하운은 가끔 공작저에서 이렇게 리엘라와 닿을 때가 있었다. 딱히 은밀한 곳이 닿은 것도 아니건만 너무나 가깝게 다가온 얼굴에 리엘라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하운은 그것이 재미있어서 리엘라가 슬쩍 몸을 물리려고 하면 일부러 더 힘을 주어 이마를 맞대었다.
그럴 때면 리엘라는 물러서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버텼다. 그렇게 한참이나 가까이에서 서로를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보이곤 했다. 긴 속눈썹 아래 맑고 투명한 눈동자. 그 안에 어린 여러 가지 감정. 눈 아래에 있는 작은 점, 볼에 피어난 주근깨, 조밀하게 잡힌 붉은 입술까지.
한참을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다 보면 맞닿은 이마가 점점 뜨거워졌다. 그러다 결국 동시에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별것 아닌 장난임에도 하운은 그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결국은 웃으면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이 언제나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가 아무리 이마를 맞대어도 리엘라는 눈을 뜨지 않았다.
“리엘라.”
울음 섞인 목소리가 리엘라를 불렀다. 아무래도 리엘라가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다. 지켜 주겠다고 큰소리를 쳐 놓고 이런 모습이 될 때까지 찾지 못했으니 그녀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리엘라.”
턱 아래로 떨어진 물방울이 리엘라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평소라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놀라면서 허둥지둥 그의 얼굴을 닦았을 텐데 리엘라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면 좋을 텐데.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니냐면서 화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서 돌아서도 상관없는데.
하운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작은 숨결 하나도, 작은 맥박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운의 이성이 그에게 속삭였다.
리엘라 테니어가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