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7
238
네아는 땅에 엎드린 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서 루시안이 얼굴을 찌푸린 채 치유의 힘을 가진 보석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하지만 항상 하운보다는 능력이 조금 뒤떨어지는 보석술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꼴의 자신에게 다가와 무려 치료를 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하운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컥!”
보석의 힘이 몸을 휘감자 네아는 크게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거대한 입은 많은 양의 피를 토해 냈다. 근처에 있던 보석술사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네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켰다. 리엘라를 찾아야 했다.
“움직이지 마, 네아.”
루시안의 목소리는 걱정이 아닌 경고를 담고 있었다. 이 이상으로 제가 움직이면 분명히 주변으로부터 공격이 쏟아질 터였다. 그 목소리에 네아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리엘라를 찾으러 가다니. 제가 무엇이라고.
네아는 멀리 있는 리엘라와 하운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떠 있는 크고 아름다운 보석도.
“아가씨….”
하운과 함께 손을 잡고 서 있는 리엘라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네아는 눈물이 흘렀다. 다행이다. 무사하시구나. 하운이 구해 냈구나. 저 자식, 한 번만 더 저놈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제는 하운 님이라고 불러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리엘라와 하운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모든 빛을 흡수했던 오팔에서는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생겨나더니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너무도 강한 빛이었기에 잠시 세상이 어둠 속에 잠기고, 빛이라고는 오직 그 기둥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면서 뻗어 올라가는 기둥의 끝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날아간 네이판타를 휘감더니 땅으로 끌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멀어졌던 네이판타가 다시 땅으로 추락했다. 대지 위에 육중한 몸이 굴렀다.
땅이 갈라지고 무너지면서 과거 플레노트가 지었던 지하의 레어 역시 무너졌다. 아르펠트해의 바닷물이 남아 있어 거대한 진흙의 늪이 되어 버린 땅 위에서 네이판타는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오팔의 빛은 네이판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네이판타의 몸이 점점 오팔이 있는 쪽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네이판타가 그랬던 것처럼 오팔이 네이판타를 삼키려 한다는 것을. 그렇게 되면 네이판타는 더 이상 이 세계에서 되살아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모든 게 너희들의 마음대로 될 것 같나!”
자꾸만 끌려가는 제 몸에 네이판타는 거칠게 포효하며 발버둥 쳤다. 네이판타의 몸을 휘감고 있던 빛이 끊긴 밧줄처럼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대로라면 네이판타는 얼마 있지 않아 삼켜질 터였다.
지금까지 동족은 물론 강한 인간들까지 죄다 삼킨 주제에 네이판타는 그것이 두려웠다. 먹힌다니. 제가 다른 것에게 먹힌다니. 생명의 본능 깊이 깔려 있는 공포가 날을 세웠다. 처음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네이판타는 필사적으로 도망갈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이내, 제가 먹어 치운 드래곤 로드의 기억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떠올렸다. 저를 휘감고 있는 빛을 물어뜯어 낸 네이판타의 주변에 어둠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네이판타를 감쌌다. 보석술사들 중에서 오랫동안 드래곤 로드의 수면을 연구하던 이가 그것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드래곤 로드의 결계다!”
드래곤 로드는 에르첼라와의 전투 끝에 상처를 입고 잠이 들기 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단단한 결계를 쳤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드래곤 로드를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했던 것. 시간이 지나면서 그 힘이 자연스레 약해져 있던 탓에 보석진의 발동으로 결계의 균형이 깨지긴 했지만 네이판타가 그렇게 머리를 굴려도 결국 깨트리지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다시금 드래곤 로드의 결계가 완성되자 오팔에게서 나온 빛은 네이판타를 휘감을 뿐, 더 이상 안으로 끌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한 네이판타는 결계의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기다리거라. 내가 다시 잠들고 깨어났을 때, 너희 모두를 삼킬 것이니.”
인간들도 네이판타도 알고 있었다. 한번 모든 힘을 다 써 버린 보석들은 쉽사리 그 힘을 되찾지 못할 것이며, 오팔 역시 그때까지 계속 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인간들은 그 보석보다 더 빨리 사라질 것도. 적당한 때에 네이판타는 눈을 떠 다시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네이판타는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수면기에 들어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이 몸을 회복시키면 분명 기회는 있었다. 바닥에 엎드린 네이판타의 몸을 돔 형태의 어둠이 감쌌다. 짙은 어둠 속에서 네이판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이 땅의 공포로 남으려 하는 네이판타의 모습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남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편안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이 어둠 속의 괴물이 언제 다시 눈을 뜰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그때 뒤쪽에서 기회를 엿보던 하르메아가 날아와 있는 힘껏 꼬리로 드래곤 로드의 결계를 후려쳤다. 하지만 결계가 그리 쉽게 깨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하르메아가 부딪힌 부분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얇아진 것이 보였다.
제 공격이 먹힘에 하르메아는 의기양양해하며 다시 결계에 몸을 부딪쳤다. 더욱 강하게 부딪히자 하르메아의 몸 어딘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의 몸이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조금 갈라진 틈으로 결계의 안을 가득 채운 어둠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땅에 닿자마자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생명을 잃고 썩어 들어갔다. 네이판타가 가졌던 고유한 힘이었다. 그렇다면… 이 결계를 깬다고 해도 문제였다.
“아파!”
다친 하르메아는 의욕을 잃고 날개를 축 늘어트렸다.
어떻게든 지금, 오팔이 네이판타를 삼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어….”
그 모습에 네아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은….
“네아!”
루시안이 다급히 외쳤으나 네아는 땅을 박차고 일어나 곧바로 오팔을 향해 달렸다. 하운이 리엘라의 앞을 가리며 네아를 막아섰다.
네아는 하운을 보면서 씩 웃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더없이 정중하게, 그리고 공손하게 네아는 하운에게 허리를 숙였다. 뜻밖의 행동에 놀란 하운의 입이 벌어졌다. 네아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갑자기 자신에게 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고개를 숙인 채 네아는 괴물이 되어 버린 입을 움직여 말했다.
“리엘라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운 님.”
“너…!”
‘하운 님’이라는 말에 그가 놀라 소리쳤다. 네아는 힘주어 말했다.
“만약 아가씨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치면 다시 만났을 때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하운을 향한 고마움은 한 번으로 끝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수 없던 놈. 마지막까지 역시 재수 없다. 네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가 이런 모습임에도 리엘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네아, 갑자기 왜….”
“전 공작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은 알고 있다. 그러니….
“제가 약속을 깨트리게 만든 자에게 그 값을 치르게 할 생각이랍니다.”
네아는 두 사람의 앞에 떠 있는 오팔을 잡았다. 그리고 네아도 하운이 보았던 무한의 공간을 볼 수 보았다. 아득한 공간, 시간, 빛. 그리고 이것의 힘까지도. 네아는 오팔을 들고 누워 있는 어둠 속으로 그대로 달렸다.
“네아!”
리엘라가 그녀를 불렀다. 결계에 닿기 직전 네아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웃었다. 끔찍해진 몰골이었지만 누구나 다 네아가 아주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
“…네아.”
“안녕, 리엘라.”
네아는 처음으로 리엘라를 ‘아가씨’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며 웃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결계에 제 몸을 던졌다.
모든 것을 막아 내는 결계였으나 네아는 막아 내지 못했다. 네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결계를 뚫고 들어갔다. 무겁고 진득한 어둠이 네아를 짓눌렀다. 그러나 그것은 네아를 썩게 만들지도 못했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날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실험했지.”
리엘라가 방에 잡혀 있을 때, 네이판타는 네아를 제 앞으로 불러들여 이것저것을 실험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몰골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삼킬 징그러운 입은 네이판타에게도, 네아에게도 달려 있다. 네이판타의 피를 이어받은 것도 모자라 그녀의 의지를 대행하며 움직였기에 이미 네아는 네이판타의 일부였다.
“그걸 무척이나 즐거워했고.”
오팔을 든 채 네아는 거침없이 걸었다. 이윽고 네아는 누워 있는 네이판타에 닿았다. 네아의 손에 들려 있는 오팔이 주변을 휘감고 있는 어둠과 싸우듯 계속해서 빛을 흘려 내었다.
“네이판타, 너는 내가 무엇을 듣고 자랐는지 몰라.”
호슨 공작은 인간의 언어를 깨우친 네아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옛이야기를 잔뜩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네아가 가장 좋아했던 건 네이판타를 쓰러트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호슨 공작의 친우이자 부관인 레이디 이블린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네이판타의 거대한 입 안으로 들어갔던 그 이야기를.
왕궁에서 극비 사항으로 처리한 데다가 이블린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기에 호슨 공작은 친우의 무용담을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딸에게만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그래서 네아는 생각했다. 언젠가 자신도 그 레이디 이블린처럼 영웅적인 일을 해 보고 싶다고. 그러면 호슨 공작이 무척이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네아가 처음으로 그렸던 그림은 호슨 공작이며, 그 그림의 옆에는 네이판타에게 달려가는 이블린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은 오직 네아와 호슨 공작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네아는 두 손으로 든 오팔을 품에 끌어안았다. 역겨운 숨결을 뱉어 내는 네이판타의 입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네아는 힘차게 두려움을 향해 돌진했다.
호슨 공작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꽃이 가득한 들판에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흘러넘치고 또 넘치는 빛이 북부 전선을, 카르디아를, 대륙 전역을 덮었다. 숨이 있고 눈이 있는 생명들은 모두 오래전 이 땅에 떨어진 빛을 다시 마주하였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