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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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짐마차들이 줄지어 수도를 빠져나갔다. 짐마차 위에는 짐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이판타를 피해 수도로 왔던 사람들은 얼마 없던 짐을 다시 꾸려 올라탔다. 여전히 가진 것은 없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얼굴은 봄의 햇살만큼이나 밝았다.
“자, 한 명씩 받아 가세요.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께서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공작저의 하인들은 수도의 북쪽 입구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품에 커다란 꾸러미를 안겼다.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세간살이의 꾸러미보다 더 큰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감사하다 말하며 그것을 받아 들고는 하인들에게 말했다.
“레이디 리엘라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번 겨울 덕분에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인사에 공작저의 하인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귀환 행렬에 구호품을 아낌없이 전달한 하인들은 마차를 정리해 공작저로 돌아왔다. 그들이 도착하자 정문에 있던 경비들이 인사하며 문을 열었다.
“어? 하르메아 님은?”
안으로 들어가려던 하인들은 언제나 공작저 정원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하르메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놀랐다.
“지금은 인간의 모습으로 계시네. 본채로 가 봐.”
“아, 그 음식 잘 만드는 리엘라 아가씨의 친구분이 오신 모양이군. 그럼 수고하게!”
정문을 지나 마차를 천천히 달려 본채에 도착한 하인들이 보고를 하기 위해 내리자 안에서 집사가 나왔다. 몇 달 전, 계단에서 크게 굴러 의식을 잃었었던 집사는 다시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회복되긴 했지만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럼에도 집사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잘 다녀왔나?”
“네. 전부 전달하고 왔습니다.”
“아가씨께서도 마음이 놓이시겠군. 어제부터 걱정하셨거든. 그럼 내가 보고할 테니 들어가서 쉬게.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물품을 건네주었던 하인들이 짐마차를 몰고 돌아가자 집사는 다시 본채 안으로 들어갔다. 일 층의 식당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나 이거 더 줘!”
“그만 좀 먹어요! 이러다 우리 리엘라 재산 거덜 나겠네!”
“리엘라가 나 성장기랬어! 그래서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는걸.”
“그게 하루에 돼지랑 소 10마리를 먹으라는 소리는 아니었을 거라구요.”
이제는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하르메아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아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오늘 리나가 온다는 말에 하루 종일 침을 삼키며 기다리더니 아주 끝장을 볼 생각인 것 같았다. 리나는 “내가 샌드위치 만드는 노예냐!”라며 툴툴대면서도 하르메아를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내가 리엘라를 구했다구! 피망이랑 양파 싫어. 고기만 넣어 줘. 아, 토마토는 좋아.”
양손에 샌드위치 두 개씩을 든 하르메아가 녹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뿌듯하게 웃자 리나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다시 하르메아가 먹고 싶다는 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이 먹보 드래곤이 리엘라의 생명의 은인만 아니었으면 가만 안 뒀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집사는 2층 리엘라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가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 복도 맞은편에서 아일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문을 두드리려는 집사에게 하지 말라고 손짓을 하더니 잠시 문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으응….”
그러자 안쪽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일리는 곧바로 걷어차듯 문을 열었다.
“이 늑대 새끼, 당장 리엘라에게서 떨어지지 못해!
“언니?”
소파에 앉아 있던 리엘라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리엘라는 한쪽 손을 옆에 앉은 하운에게 내민 상태였다. 그리고 하운은 리엘라가 내민 손의 끝을 제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있었고.
“갑자기 왜 그래? 그리고 늑대 새끼라니….”
“뭐, 뭐야. 내가 분명 신음 소리 들었는데!”
그 말에 리엘라는 아일리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알겠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언니. 나가.
아일리는 차가운 리엘라의 표정에 훌쩍이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하운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운은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일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머쓱해진 아일리가 “저녁 먹으러 내려와!”라고 말하고 방을 나가자 집사는 웃으면서 리엘라에게 보고했다.
“구호품은 모두 무사히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내일 나눠 줄 것들도 잘 도착했다고 하구요.”
“그렇군요. 크레이튼 씨에게 부탁했던 명단은 혹시 도착했을까요?”
“내일 아침에 방문할 때 함께 가져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해 줘서 고마워요.”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집사는 쓱 고개를 돌리다 하운을 보고는 슬쩍 손가락으로 턱의 옆쪽을 톡톡 치는 시늉을 하고 방을 나갔다. 집사가 나가자마자 리엘라는 후다닥 하운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입술에 발랐던 화장품의 자국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들켰어….”
아니, 레인저인 아일리도 못 본 것을 어떻게 집사는 봤지? 리엘라가 새빨개진 얼굴을 쿠션에 묻자 하운이 다시 가까이 다가와 리엘라의 손을 붙잡았다.
“뭐, 어때. 아일리에게 안 들켰으니 다행이지.”
“그렇지만!”
사실 손을 잡기 전까지 하운이 워낙에 지분대는 탓에 몇 번 얼굴에 입을 맞췄었다. 그걸 들켰으니…. 부끄러운 리엘라가 쿠션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하운은 아일리가 나간 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네아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군.”
“…….”
네아의 이름이 나오자 리엘라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은 침울해진 그녀의 표정에 하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벌써 네이판타가 소멸한 지 반년이 지났다. 겨울을 맞이하고 있던 북부 전선은 이제 뒤처리가 모두 끝나고 다시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던 사람들도 네이판타의 완전한 소멸이 확인되자 재빠르게 짐을 꾸렸다.
네이판타는 빛 속에서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사라졌다. 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이판타가 있던 자리에는 블랙 오팔의 작은 조각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저 흔적만이 남은 작은 조각.
리엘라는 제 옷 아래에 있는 목걸이를 더듬었다. 수정과 블랙 오팔의 조각 두 개를 걸어 놓은 아주 단순한 목걸이였다. 하지만 리엘라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네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하운은 말이 없어진 리엘라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내일 파르멜 저택에 가는 것, 괜찮겠어?”
“으응, 난 괜찮아요. 그보다 당신은요? 내일 오전에는 왕궁에 가야 하지 않아요?”
이제는 하운 님이라는 호칭보다 당신이라는 호칭이 제법 익숙해진 리엘라의 머리에 하운은 입을 맞추었다.
“일찍 끝내고 점심 전에 돌아올 테니까 같이 가자.”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아가 모두를 죽였던 탓에 파르멜 저택은 그 처분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저택이니 불길하다,는 둥 악령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돌아 한동안 그곳에는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곳을 다시 채운 것은 공작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묵묵히 참혹했던 흔적을 지워 나갔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공작저의 사람이었던 네아의 짓이었으니까. 공작저의 하인들은 함께 저택을 수리하면서 친해졌던 이들의 추모비를 세우고, 열심히 청소하고 닦으며 매일 새로운 꽃을 놓았다.
그럼에도 하운은 리엘라가 이곳을 꺼림칙해할까 봐 한동안 그녀를 데려오지 않고 혼자 머물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리엘라가 찾아와 곧바로 하운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그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
“안 무서운 건 아닌데… 우리마저 없으면 진짜로 외로워질 수 있잖아요. 겨우 모든 것을 가꿔 놨는데 그들의 노력을 없던 일로 돌리기는 싫어요.”
모두 저택의 복원에 한마음으로 힘썼던 사람들이었다. 이곳이 찝찝하다고 다시 버리고 방치해 버리면 그들의 노력도 다시 사라지는 것 같았기에 리엘라는 계속해서 파르멜 저택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악령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가끔 주방의 하인이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피곤에 젖어 잠들어 버렸다가 일어났을 때 설거지가 깔끔하게 되어 있다거나, 가시가 튀어나와 있던 잡목이 정원사가 가위를 들고 오기도 전에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다거나 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다음 날, 하운은 아침 일찍 왕궁으로 향했다. 본궁으로 들어간 그는 거침없이 왕의 집무실로 들어가 레이안에게 인사했다.
“얼굴 뵈었으니 이만 갑니다.”
“야! 하운!”
레이안은 곧바로 돌아서려는 하운을 붙잡아 세웠다.
네이판타의 일이 끝난 이후로 하운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레티시아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 다 레이안이 지금까지 자신들을 속였다는 사실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었으니까. 하지만 레이안은 레이안대로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문스톤밖에 못 쓴다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레이안의 능력은 하운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문제라면 문스톤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문스톤의 활용에 있어서 레이안은 에르첼라도 뛰어넘을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 그렇기에 이번에 수도 내의 모든 문스톤들의 힘을 끌어모아 아르펠트해의 바닷물이 덮치는 것을 막아 낸 것이었지만. 게다가 문스톤이 만들어 내는 방어막의 특성을 이용해 땅을 완전히 적신 바닷물을 전부 다 들어내어 다시 아르펠트해로 돌려놓기까지 했다.
왜 그 사실을 숨겼냐는 레티시아와 하운의 추궁에 레이안은 긴 설명을 해야만 했다. 너무나 한정된 능력이니 차라리 없는 것으로 발표한 다음, 만일의 사태에 그 힘을 쓰는 것이 낫다는 선왕 부부의 결정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 외에도 많은 사정이 뒤따랐다.
하운은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는 납득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형이 자신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분했다. 레이안만 자신을 속인 게 아니라 왕실의 고위 보석술사들도 레이안과 입을 맞추고 모른 척했으니까.
하운은 오늘 온 원래 목적인 보석들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보석진의 운용을 위해 끌어왔던 많은 보석들이 잠들었다. 잠든 것은 그 보석들뿐만이 아니었다. 북부 전선에 오지 않았던 보석들도 블랙 오팔이 빛을 거둬들일 때 자신들의 빛을 넘겨주는 바람에 전부 다 잠들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소르디아는 난리고.’
보석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보석들이 죄다 힘을 잃고 잠들어 버렸으니 거래할 수 있는 것은 힘이 없는 평범한 보석들뿐이었다. 네멘테스가 그 일로 징징거리면서 리엘라에게 연락을 했던 것을 하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부 전선에서 네멘테스의 공이 컸음은 인정해야 했기에 리엘라는 물론이고 하운 역시 소르디아가 카르디아의 원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하운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정말 갑니다.”
“식사 안 하고?”
“리엘라와 먹기로 했습니다. 오후에 파르멜 저택에 갈 거라서.”
“거기 유령 나온다며?”
“믿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니 괜찮습니다.”
하운은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확히 언제부터 보석을 쓸 수 있었던 겁니까?”
“응?”
“보통 태어나면서부터 발현하는 자는 잘 없지 않습니까. 언제 능력이 발현했던 겁니까?”
“아, 그거.”
레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거짓말은 더 하지 않기로 했으니 그냥 비밀로 해야겠다. 안 알려 줄 거야. 가 봐.”
“…….”
“정말 알고 싶으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뭡니까.”
“세상을 뒤덮었던 꽃.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너 알고 있지?”
“…….”
하운은 입을 다물었다. 알고 있지만 말은 못 하겠다는 뜻이었다.
“거봐. 너도 말 못 하는 거 있으면서 왜 나에게만 알려 달라고 난리냐. 됐으니까 어서 가 봐.”
하운은 손을 휘휘 내젓는 레이안을 보면서 한숨을 삼켰다. 도대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비밀로 하겠다는 건지. 더 물어보기에는 시간이 없었기에 하운은 적당히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하운이 나간 집무실에서 레이안은 펜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언제 알게 되었느냐고….”
제 입으로 그걸 어떻게 말할까. 어릴 적 레이안은 정말로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운을 미워했었다. 왜 나는 왕실의 장자인데도 재능이 없지? 왜 내 동생은 가장 강하지? 어린 레이안은 곁에서 떠들어 대던 자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에게 왔어야 할 재능을 하운이 다 가져간 것이라고.
그래서 어린 시절의 레이안은 진심으로 하운을 미워했다.
그러다 레이안이 없어지면 하운이 왕이 될 것이라 믿었던 자들이 왕궁을 나간 레이안이 왕실의 별장에 들렀을 때, 습격을 해 왔다. 그때 레이안을 구해 준 것은 형과 놀고 싶어 몰래 왕궁을 따라 나온 하운이었다. 하운이 홀로 암살자들을 모조리 죽였던 날, 레이안의 능력이 각성됐다.
동생을 향한 두려움이 불러온 각성이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레이안의 능력은 오직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문스톤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왕은 그것을 하운에게 숨기기로 했다. 부모와 형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지만 나중에 크면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에르첼라의 뒤를 이을 강한 보석술사인 친자식을 왕실의 안녕을 위한다는 말로 죽일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 레이안에게 당부했다. 절대로 하운을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 보석을 다루는 힘이 있음을 알리지 말라고. 그가 힘이 없다고 믿어야 가장 위험한 순간에 그 힘이 레이안을 구할 것이라고.
“아… 부끄러워 죽겠네.”
레이안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 당시 귀족들이 반으로 갈려 밤낮없이 싸워 댔으니 부모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쟨 그냥 내 동생이잖아.”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레이안의 눈에 하운은 여전히 숙맥이고 어리바리한 제 동생이었다. 절대로 그를 죽일 리 없는, 형을 좋아하는 동생.
그렇기에 레이안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하운에게는 그를 걱정하던 형으로 남고 싶었으니까.
한참을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레이안은 하운이 보던 시계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네이판타는 죽었지만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북부 전선의 일도 그렇고, 드래곤 로드가 사라진 아르펠트해의 일과 셀비아스, 플레노트가 사라진 곳도 살펴봐야 했다. 아마도 몇 년은 걸릴 터였다. 결국 계속해서 바쁘다는 소리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레티시아도.
레이안은 특수부의 문을 벌컥 열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레이안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슬슬 눈치를 보더니 방을 나섰다.
벌써 반년째, 국왕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었다. 남편에게 분노한 왕비가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레이안은 안쪽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레티시아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하운은 인사라도 해 주는데 레티시아는 반년간 꼭 필요할 때 말고는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하운만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레티시아도 믿지 않았으니까. 레티시아는 자신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레이안을 보더니 눈꼬리를 올리며 소리쳤다.
“나가요!”
“…….”
아무래도 반년은 더 빌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