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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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하운과 리엘라는 파르멜 저택으로 향했다. 눈치 없는 하르메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리엘라와 함께 마차에 냉큼 올라타더니 리엘라의 옆에 앉아 어리광을 부리려 들었다. 하운은 하르메아의 멱살을 잡아당겨 제 옆에 앉혔다.
“왜 그래!”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어디 그 꼴로 리엘라에게 들러붙어.”
“내가 왜! 뭐!”
몸이 큰 탓일까. 이제 하르메아는 인간으로 변해도 더 이상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닌 청소년과 청년의 중간쯤 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운과 하르메아가 서로를 노려보며 아웅다웅하는 사이 마차는 파르멜 저택에 도착했다.
하르메아는 새로운 곳에 온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놀러 간다면서 정원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고, 리엘라는 하운과 함께 저택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다 두 사람은 천천히 후원의 온실로 향했다.
“…….”
리엘라는 네아의 팔이 잘렸던 자리에 서서 바닥을 보았다. 하운에게 물어보니 왕실 기사단이 증거용으로 수거해 두었던 네아의 팔도 네이판타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그것만이라도 따로 호슨 공작의 무덤 옆에 묻을까 했던 리엘라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한참이나 네아의 팔이 떨어져 있던 자리를 보던 리엘라는 걸음을 옮겨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하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랐다.
그날 이후 하운은 리엘라의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다. 처음 한 달간은 리엘라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었다. 아직도 숨을 쉬지 않고 차가웠던 리엘라의 감촉이 그의 손에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리엘라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벌벌 떨면서 매달리는 하운의 모습에 오히려 리엘라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하운과 아일리의 걱정과 달리 리엘라는 제 죽음을 덤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워낙에 크게 다쳤던 탓이었는지 사실 죽었던 순간은 고통조차 느끼지 않았다. 다만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환한 빛을 보고 제 피가 꽃들을 무사히 피워 냈구나, 하는 안도감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리엘라도 하운과 같은 것을 경험했다. 끝없는 시간 속을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만 걷고 서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호슨 공작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어쩌면 하운이나 네아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확실한 것은 무서운 목소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엘라는 어둠 속에서 혼자 서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계속 기다렸었다.
그러다 자신이 있던 어둠 속에 빛이 가득 찼을 때, 걱정이 되었다. 누가 자신을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들 속에서 자신을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자신의 손을 잡고 이름을 불러 주었다.
“리엘라.”
그 순간 리엘라는 제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엉망인 꼴로 울고 있는 하운이 보였다. 하운이 그 빛 속에서 저를 찾아냈던 것이다.
***
온실 안으로 들어간 리엘라는 엉망인 꼴에 한숨을 쉬었다. 사실상 반년 넘게 방치되어 겨울을 보냈으니 어쩌면 이 정도만 망가진 것이 다행인지도 몰랐다. 리엘라가 안에 있는 화분을 정리하다 아직 푸른 기가 남아 있는 화분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네아가 박살 냈던 흔적을 살피던 하운은 갑자기 리엘라가 조용해지자 걱정스러운 듯 다가왔다.
“이거, 살릴 수 있을까 싶어서요.”
리엘라는 거의 다 죽어 가는 이파리를 매만졌다.
되살아난 후,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딱 하나 변한 것이 있었다.
‘힘이 사라졌어.’
이제 리엘라는 빛나는 꽃을 볼 수도, 기를 수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시험해 보았더니 리엘라의 피도 더 이상 꽃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 리엘라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호슨 공작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두려움에 떨었었다. 다시 그 예쁜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데다가 오히려 힘이 없어졌다 하니 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굳이 아쉬움을 찾는다면 이럴 때였다. 예전이었다면 단 몇 시간이라도 정성을 쏟아 살피고 돌봐 주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음 날 식물들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런다고 해도 원래의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지라 여전히 식물을 잘 가꾸긴 했지만.
“안으로 옮겨 놓을까?”
잠시 저택을 보던 리엘라는 하늘과 온실을 확인한 후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여기에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차피 금방 봄이 올 테니까.”
맑은 날이 계속되면서 해가 길어지면 온실이 제일 따뜻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좀 더 자주 머물 생각이니 돌볼 시간도 있을 것이고.
한참 동안 하운과 더 온실 내부를 정리하던 리엘라는 석양이 지고 나서야 그곳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2층의 테라스로 나가 하인들이 가져다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해가 지는 풍경을 보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반년 전의 일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던 리엘라는 멀리서 다가오는 어둠을 보았다. 두려움의 색이었지만 리엘라에게는 그리운 색이기도 했다.
하운은 그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리엘라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리엘라가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사람의 목숨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건 없다지만 유독 가슴이 아픈 이별은 있는 법이었다.
정작 자신이 죽었던 이야기를 할 때도 멀쩡하던 리엘라는 네아의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이 흐려졌다. 주황빛 석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하늘에 별이 뜰 때까지 리엘라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저택 안에서 리엘라가 덮을 것을 갖고 나온 하운은 아예 리엘라를 안아 들어 제 위에 앉힌 다음 담요를 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이제 리엘라는 자연스럽게 하운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그의 품에 안겼다.
두 사람은 다가오는 초여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 사실을 알리자 아일리는 펄펄 날뛰었고, 공작저의 사람들은 축하를 해 주었으며, 왕실은 미리 식을 올릴 날짜의 앞뒤로 3일씩 공휴일로 잡았다. 그리고 리나는 부케는 자신의 것이라면서 제가 좋아하는 꽃의 이름을 알려 주더니 그것들로 골라 만들자며 리엘라를 꼬드겼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결혼식에 난리가 난 것은 정작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운은 제 품에 기댄 리엘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날 이후로 하운은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어떻게 끝도 없이 계속 깊어질 수 있는지 신기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면 또다시 그녀에게 반했다. 하운은 그 마음을 리엘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얼굴이 빨개진 리엘라는 그런 말 들으니 기분은 좋다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게 어제 아일리에게 들킬 뻔했던 입맞춤이었지만.
리엘라를 품에 안고서 하운 역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오래전 호슨 공작에게 받았던 편지가 생각났다. ‘여자 친구 있습니까?’라며 뜬금없이 보냈던 그 편지가. 그 이후로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호슨 공작의 죽음과 리엘라와의 만남, 보석의 방, 꽃 축제에 소르디아. 마지막으로 네이판타의 일까지.
그 모든 일이 지나가고 나니 언제나 혼자서 전장의 간이침대에서 잠들었던 그의 옆에는 이제 언제나 함께할 사람이 있었다.
하운은 리엘라를 고쳐 안았다. 그가 둘러 준 담요를 돌돌 말아 덮은 채 리엘라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 해?”
“…네아요.”
리엘라의 대답에 하운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많이 보고 싶어?”
“음… 보고 싶긴 한데. 좀 달라요. 그러니까… 허튼 생각이라고 할까 봐 말 못 했는데….”
리엘라는 우물거리더니 힘겹게 말했다.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냥 언젠가… 돌아올 것 같아서.”
리엘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던 네아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안녕은 정말로 이별의 안녕이었을까. 리엘라의 말에 하운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올 거면 초여름이 지나고 오면 좋겠어. 그 전에 오면 아주 시끄러워질 것 같거든.”
네아가 있다면 결혼식 날 아침부터 ‘아가씨, 저놈이랑 정말로 결혼을 하셔야겠어요?’라며 엉엉 울 것이다. 리엘라는 곤란한 웃음을 짓겠지.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은 결혼식을 올릴 거지만.
“물론 그런다고 내가 당신을 놔줄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하운은 리엘라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었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와 가슴이 간질거렸다.
오팔의 안, 창세 시대의 무한의 공간 속에서 하운은 깨달았다.
꽃과 보석. 원래 하나였던 것들.
처음부터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그리고 이제 겨우 함께 있게 되었으니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
대륙의 끝, 아무도 오지 않고 존재조차 모르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이제 막 태어난 그것은 조금씩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태어났다고 하지만 어미도, 아비도 없었다.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당연한 생명이었다.
바닥에 깔린 어둠이 조금씩 뭉치는 것 같더니 곧 동그란 형태를 띠었다. 그리고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며 동굴의 입구를 셀 수 없이 비추는 동안 그것의 형체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윽고 그것이 눈을 떴다. 새카만 몸에 새카만 눈동자. 세상 사람들이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생명은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린 생명은 열심히 동굴을 기어 나왔다. 그리고 별이 총총히 떠오른 밤하늘을 보던 그것은 손바닥만 한 날개를 퍼덕이다 날아오를 수 없음을 깨닫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보았다. 아직은 말도, 글자도 모르고, 어떠한 지식도 없는 무지에 가까운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말을 떠올렸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알려 준 것도 아닐 텐데, 풀벌레 소리 가득한 땅 위에서 그것은 또렷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아.”
태어나기도 전부터 제게 주어져 있던 이름.
네아는 눈을 감았다. 날개가 자라고 다리가 튼튼해져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게 되면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불러 줄 존재들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게다가 어쩐지 꼭 초여름이 되기 전에 찾아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잠든 존재에게는 세상을 향한 어떠한 적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
아주 오래전,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빛이 떨어졌다.
땅에 부딪혀 빛은 찬란한 색으로 변했다.
땅 위로 퍼진 빛은 꽃으로.
땅속으로 퍼진 빛은 보석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영원한 빛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