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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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잊고 있던 것
리엘라는 변호사들이 있는 방으로 달렸다.
큰일을 겪은 탓에 잠을 설치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네아에게 ‘왜 깨우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더니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평소에는 찾아온 사람들이 시끄럽게 굴어서라도 일어나곤 했는데 왜 오늘따라 그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급하게 씻고 입고 달려왔지만 문 앞에 선 리엘라는 늦어 민망한 마음에 한참이나 망설이다 살짝 문을 열었다. 방 안에 대화를 나누는 하운과 변호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 부분은 그럼 어떻게 처리되었나?”
“아무래도 매년 조금씩 늘어난 행사 예산이다 보니 그동안의 상승률을 계산해서 중앙은행으로부터….”
“지방의 토지는 그럼 이대로 매각 없이 장기 임대의 형식을 유지할 생각이고?”
“그렇습니다. 이제 플레노트도 수면기에 들어갔으니 다시 그쪽으로 인구 이동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전국적인….”
다들 이야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리엘라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리엘라는 좀 더 하운과 변호사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네.’
자신은 몇 번씩 물어보고, 그래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하운은 한 번도 막힘없이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이해하며 다시 확인했다. 모든 것의 정당한 주인처럼.
‘공작님은 왜 나를 상속인으로 삼으신 걸까?’
하운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나타난 이후로 리엘라가 계속 생각했던 의문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은 보이긴 했지만 누가 보아도 자신보다는 하운 대공이 정당한 상속인이었다. 물론 인성은 제쳐두고. 하지만 그렇다고 제 인성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운이 아니어도 공작의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었다.
하운과 변호사들을 바라보던 리엘라는 조용히 물러선 다음 문을 닫았다. 지금 들어가면 자신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다시 힘없이 복도를 걷고 있을 때 마침 반갑게 자신을 부르는 하녀가 있었다.
“아가씨, 아가씨의 집에 도착한 편지들이에요.”
“감사합니다.”
하녀에게서 편지를 넘겨받은 리엘라는 하나씩 그것들을 확인했다. 역시나 이름도 듣지 못한 친척들의 편지가 대부분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잘 지내냐, 나도 잘 지낸다, 네가 어릴 적 이후로 처음 연락하는구나, 사실 나는 네 조부모님 또는 부모님과 이런 사이였지, 그러니 돈 좀 달라는 말로 끝났다. 적당히 그런 편지들을 넘기던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어? 이건!”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편지가 와 있었다.
“네아!”
리엘라는 곧바로 네아를 부르면서 뛰었다.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
“좋아, 그럼 일단 이것까지 하도록 하지.”
계속해서 설명하는 변호사들을 잠시 멈춘 다음 하운은 문을 바라보았다.
“왜 리엘라 양이 오지 않는 거지?”
왜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써 점심시간인데 왜? 어째서?
“아까 하녀가 전하고 갔는데 못 들으셨나 보군요.”
그거야 당연히 들어온 사람이 리엘라가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네아와 함께 잠시 밖에 다녀온다고 하셨답니다.”
“뭐?”
하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일이라면 곧바로 말했어야지. 위험한데 왜 둘만 밖으로 보냈단 말인가!”
그 말에 변호사들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장 위험하신 분은 저희 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
“세상에,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지.”
마차는 브릭스 거리를 향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 속에서 리엘라는 몇 번이고 손에 들린 편지를 보았다. 편지의 가장 위에는 붉은색으로 크게 써진 글씨가 있었다.
경고장
그 글씨를 본 순간 리엘라는 놀라 편지 봉투의 앞을 보았었다. 발신자는 ‘카르디아 꽃 축제 개최국’이었다. 꽃 축제? 거기서 나에게 무슨 경고장을 보낸 거지? 리엘라는 허겁지겁 봉투를 열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참가 번호 477번
상호명: 리엘라의 꽃집
참가자: 리엘라 테니어
귀하의 업소가 현재 2주일 이상 영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시행되는 검사 일자에 영업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되면 규정에 따라 귀하의 행사 참가 자격이 소멸됨을 알려 드립니다.
거기까지 읽자마자 리엘라는 네아를 불러 당장 가게로로 달려온 것이다.
‘완전히 잊고 있었어.’
꽃 축제에 참가 신청할 때 분명히 주의 사항을 들었었다. 요즘 참가권만을 노려 등록한 사람들이 많아서 개최국에서 사전 통보 없이 정말로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검사를 하러 나온다고 했었다.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상속이다 뭐다 계속 바빠서 가게를 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검사를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아가씨, 도착했어요.”
“네아. 아까 말한 대로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리엘라와 네아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은 공작의 저택으로 들어간 다음 제대로 외출을 하는 첫날이다. 당연히 그날 이후로 브릭스 거리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다.
리엘라는 앞으로 벌어질 모습에 대해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마차가 멈추고 리엘라가 내리자 예상했던 소리가 들렸다.
“리엘라! 오랜만이다!”
“세상에, 이 마차 좀 봐! 이제 진짜 공작님의 상속녀네?”
“얼굴 훤해진 것 봐!”
이럴 줄 알았지. 리엘라는 밝게 웃으면서 마차 주변으로 몰려든 브릭스 거리의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그래, 진짜 오랜만이다! 우리는 네가 다시는 여기 안 돌아올 줄 알았어. 공작님의 저택에서 얼마나 편하게 지냈겠어?”
“그럼 돌아갈까요?”
“얘는 참 무슨 농담을 못 하게 해. 말이 그렇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웃는 모자 가게 주인을 보면서 리엘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들어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평소보다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걸 보니 조금은 비아냥도 분명 섞여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리엘라는 상속을 받고 난 후 계속 저택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변호사들에게 상속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온실과 정원을 돌보긴 했지만 꽃집을 할 때에 비하면 시간은 남아돌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네아가 매일 가져오는 신문을 보았다.
살면서 이렇게 남들에게 주목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 리엘라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자 머리가 아파 왔다.
리엘라가 읽은 것은 자신이 어떻게 호슨 공작의 유산을 받았는가에 대한 추측성 기사였다. 아니, 기사라는 말보다는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내가 호슨 공작님의 숨겨 둔 손녀였다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정정하셨고 우리 부모님 멀쩡하셨는데 무슨 헛소리야?”
차라리 그건 나은 편이었다.
어느 신문에는 리엘라가 수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다른 사람이 예약한 자리를 빼앗고 저녁을 즐겼다는 악의적인 거짓 기사가 적혀 있었다. 거기가 유명한 건 안다. 하지만 당연히 남의 자리를 뺏은 적도, 아니 그곳에 간 적도 없었다. 리엘라는 한숨을 쉬며 네아에게 하소연했다.
“정말 그랬으면 억울하지나 않아요. 저택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못했는데!”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네요, 아가씨.”
칭얼거리는 리엘라의 모습에 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왜 아가씨가 찾아가야 하지요?”
“네?”
“돈 좋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네아는 신난다는 듯 변호사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세상에.”
리엘라는 저택의 정원에 차려진 야외 레스토랑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저기… 이런 일,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리엘라에게 네아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가씨가 드시고 있는 동안에도 공작님의 재산은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
호슨 공작이 갖고 있던 땅과, 저택, 고용인,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권리들이 이 순간에도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자고 나면 늘어 있다고 했던가. 변호사들이 보여 주었던 연도별 수입도 항상 늘어나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리 많은 사업에 투자 중이라고 하더라도 아가씨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이 적지는 않아요. 그러니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원하시는 것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말해 주세요.”
“그럼 저,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은데.”
더 필요한 건 없다 말하고 싶었지만 요즘 인기 있다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긴 했다.
리엘라는 곧바로 서른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탑처럼 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돈이 좋긴 좋았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들이라고 다를까. 솔직히 좋긴 좋았으니 부럽다는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리엘라는 자신의 가게 앞에 섰다.
사실 이곳을 제대로 된 가게라 부르기는 힘들었다. 길모퉁이 가게를 반으로 나누어 한쪽을 받았을 뿐인 가게니까. 그래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다른 가게 하나 값은 줘야 했던 자리였다.
리엘라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뻑뻑한 자물쇠를 돌렸다. 문이 열리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양동이들과 입간판이 보였다. 리엘라는 가져온 앞치마를 묶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리엘라의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 바라보았다.
“리엘라? 뭐 하는 거야?”
“뭐 하긴요. 보면 모르세요? 장사할 준비 해야죠.”
“뭐? 네가 왜? 엄청난 돈을 상속 받았잖아!”
사람들이 말하는 순간 리엘라와 네아의 시선이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리엘라는 일부러 과장되게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호슨 공작님이 길에서 꽃을 파는 제가 불쌍해 보여 전 재산을 상속해 주셨다고 정말 믿으시는 건가요?”
“그럼 아니야?”
“이게 참 말씀드리기 복잡한 건데….”
리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신발 가게 주인을 불러 주변을 살핀 후 귓속말을 했다.
“지금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전 그냥 보여 주기 위한 상속인이에요. 진짜 상속인은 따로 있고요. 아, 그, 뭐랄까…. 아시잖아요. 높으신 분들의 비밀스러운 사정 말이에요. 어쨌거나 제가 좀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산을 막 쓸 수 있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아, 이거 비밀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시면 안 돼요.”
비밀은 무슨 비밀. 신발 가게 주인의 별명은 브릭스 거리의 확성기다. 아마도 내일 아침 정도에는 귀가 들리지 않은 사람 외에 모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정도에는 어딘가의 신문에서 말이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