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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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기사의 말을 듣고,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하운과 레이안은 회의실을 빠져나와 국왕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골치 아프게 되었네.”
레이안은 한숨을 쉬며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하운은 그런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왜? 네가 봐도 심각해 보이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건 어떻게 보아도….”
“최소 와이번이다. 아니면 그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의 다른 몬스터이거나.”
레이안은 지쳤다는 듯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의 목소리에는 심각함이 가득했다.
와이번은 드래곤과 비슷한 몬스터였다. 물론 드래곤만큼 크지도 않으며 브레스를 뿜을 수도 없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비늘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우습게 볼 수 있는 몬스터도 아니다.
드래곤보다는 약해도 정신 지배가 가능했으며 드래곤과는 다르게 무리를 이루며 사는 몬스터였기에 어찌 보면 드래곤보다 까다롭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운은 레이안의 말에 자신이 본 오크의 시체를 떠올렸다. 목 부분이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뜯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빨의 자국 하나가 하운의 손바닥보다도 컸다.
하운은 오크의 목을 물어뜯었을 몬스터의 크기를 짐작해 보았다. 이 정도 크기의 이빨을 가진 몬스터라면 최소 와이번. 그 이상이라면….
“드래곤이라 하기에는 위치가 너무 뜬금없습니다.”
“그게 문제야. 일단 발견된 위치가 수도와 너무 가깝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플레노트는 수면기에 들어갔어. 근처에 남은 드래곤이 뭐가 있지? 늪 아래 잠들어 있을 셀비아스? 셀비아스의 수면 주기는 270년이야. 아직도 깨어나려면 100년이나 남았다고. 혹시 셀비아스가 깨어났다고 해도 말이 안 되지. 너 드래곤이 제 레어를 떠나는 거, 들어 본 적 있냐?”
“없습니다.”
“그래, 그거야. 저 사체가 발견된 위치에는 드래곤의 레어가 없어.”
레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제 손에 들려 있던 펜을 벽에 붙어 있는 지도에 던졌다. 휙 날아간 펜이 한 지점을 찍고 바닥을 굴렀다. 점이 찍힌 부분은 왕국의 북동쪽이었다.
그곳에서는 어떠한 드래곤의 레어도 보고된 적이 없었다.
“혹시….”
“네이판타가 부활한 거 아니냐 하는 거? 아니. 너무 빨라. 네이판타는… 호슨 공작이 쓰러트렸지.”
그렇게 말하던 레이안은 곧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정확히는 호슨 공작의 휘하에 있던 이블린과 그녀의 다이아몬드가 쓰러트린 거지만. 아, 그 다이아몬드도 남아 있었으면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보석이 되었을 텐데 네이판타랑 같이 사라져서…. 어쨌거나 정확하지는 않아도 당시의 기록 영상을 보았을 때 네이판타가 그 처참함에서 부활하려면 100년은 더 걸릴 거야.”
거기까지 말한 레이안은 소파 위에 있던 쿠션을 집어 고개를 묻었다.
“아, 말하고 나니까 암담하네. 100년 후에는 셀비아스가 깨어나고 네이판타가 어디선가 부활할 거 아냐? 아, 몰라! 그건 100년 후의 후손이 알아서 하라고 해.”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에 다시 소파에 얼굴을 묻고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제의 심각성만 아니면 마치 투정을 부리는 아이와도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대로 누워 있던 레이안이 하운에게 다가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하운이 다가가자 레이안이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은 다음 말했다.
“국왕의 명이다. 하운 아렐 펜드래건. 지금 즉시 오크의 시체가 발견된 지역 주변의 수색을 명하는 바이다. 기사와 보석술사는 그대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동원해도 좋다.”
조금 전까지 아이 같은 행동을 한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하운은 고개를 숙였다.
“뭐 해? 가 봐. 다치지는 말고.”
“감사합니다.”
레이안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온 하운은 곧바로 기사단으로 향했다.
기사단으로 향하며 하운은 생각해 보았다.
저 지역으로 가서 주변을 수색하고 다시 수도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수색은 플레노트의 레어 주변을 돌아다니는 데 익숙한 하운에게는 크게 문제 되는 일은 아니었으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며칠이나 걸릴까 생각하던 하운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들 신나겠군.’
하운은 루시안과 신나게 떠들어대던 리엘라를 떠올렸다. 그가 옆에 있으면 언제나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으니 없으면 훨씬 편하게 있겠지. 자신이 없는 사이에 그녀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닌가?’
네아가 항상 붙어 다닐 것이고 루시안 역시 당분간은 계속해서 리엘라를 찾아올 모양이었다. 아마 그 셋은 사이좋게 꽃집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루시안 놈은 하는 꼴을 보니 더욱 찰싹 붙어 있을 것 같고.
“하아.”
하운은 호슨 공작의 저택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부재를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까? 머뭇거리던 하운은 곧 고개를 저었다. 누가 궁금해하기나 한다고.
그렇게 하운은 연락을 남기지 않은 채, 기사단과 함께 수도를 떠났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운 대공님.”
하운은 지금까지 들었던 중 가장 차가운 목소리로 인사하는 리엘라를 볼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보는 하운의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피곤함이 묻어났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와 달리 조금 흐트러진 옷과 머리카락이 그를 더욱 지쳐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리엘라와 시선을 마주친 다음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다시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무슨 일? 그 말에 리엘라는 주먹을 꾹 쥐었다.
일주일 전, 왕궁에서 전령이 와 그를 찾자 하운은 곧바로 왕궁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혹시 알고 있는지 루시안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는 심각한 얼굴로 모든 보석을 갖고 오라고 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곤란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했다.
그날 가게를 정리하고 저택으로 돌아오는 길에 리엘라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자 네아는 별일 아닐 거다, 원래 보석술사들은 자주 불려 간다 말하며 리엘라는 안심시켰다. 특히 하운같이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보석술사라면 자주 임무를 맡게 된다고 했다.
“임무요?”
“어쨌거나 하운 대공은 나라에 소속된 보석술사니까요.”
“오래 걸리는 일일까요?”
“아닐걸요? 이제 겨우 안정된 북부 전선에서 돌아왔고 일단 공작님 유언의 감사관을 맡고 있으니까요. 왕궁에서 그가 갖고 있는 보석의 힘이 필요해서 불렀을 것 같아요.”
네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리엘라는 하운이 곧 돌아오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리엘라는 평소처럼 꽃 시장을 가는 마차를 타러 내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 있었던 하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리엘라가 하운이 돌아오지 않았냐고 묻자 네아는 ‘시간이 좀 더 걸리나 보네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도, 그다음 날 밤도 하운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집사에게 하운에게서 온 연락이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 연락도 없었다는 대답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다시 가게에 온 루시안은 꽃다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리엘라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리엘라는 퍼뜩 놀라며 들고 있던 가위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때문에 가위가 떨어진 양철 바구니 안의 물이 튀어 올라 얼굴을 덮쳤다.
“으앗!”
“괜찮습니까? 아, 여기 제 손수건이라도.”
“아, 감사합니다.”
리엘라는 루시안이 건네는 손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물과 함께 튀어 오른 꽃의 이파리가 손에 잡혔다.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는 건지. 그나마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하운 대공님이 걱정이 되어서요.”
“별일 없을 겁니다. 평소보다 좀 더 기사들이 동원된 탐색이긴 하지만 대공님이 가신 그 지역은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는 지역이니….”
“대공님이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루시안의 말을 듣던 리엘라가 놀라 묻자 루시안이 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모르고 있었습니까?”
“네. 그날 그렇게 가신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었거든요.”
“연락이 없으셨다구요?”
그렇게 되묻는 루시안의 말에 리엘라는 어쩐지 움츠러들었다. 물론 그런 의도가 아님을 알면서도 어쩐지 그의 말이 ‘그 정도의 연락도 못 받는 입장입니까?’라는 의미로 들렸으니까.
그리고 지금 루시안의 태도를 보아하니 하운이 어디로 갔는지 어지간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사람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
“이야, 우리 저택에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자면서 어디로 가는지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이거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루시안의 말에 네아가 한껏 비아냥을 담아 말했다. 리엘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급하게 떠나서 그러려니 했는데. 자신들에게만 연락이 없었다니.
‘별로 이쪽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너무하잖아?’
저택으로 돌아온 리엘라는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온실로 갔다. 안쪽에 들어가자 가운데에 있는 꽃이 보였다. 하운이 선물한 엘피안이었다.
엘피안을 들고 왔던 날 리엘라는 변호사들에게 이걸 어떻게 하냐면서 도움을 청했다.
아무리 선물이라지만 이렇게 비싼 것을 왜 받아 왔냐고 혼날 줄 알았는데. 정작 변호사들은 금액을 듣고도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말했다.
“귀한 선물이군요. 잘 기르십시오.”
“이렇게 비싼 거 받아도 되는 걸까요? 법적으로 문제 있거나 하는 거 아니죠?”
“뭐, 좀 비싸긴 하지만…. 하운 대공이 그 정도 선물을 못 할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변호사들은 10만 길더짜리 선물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의 선물은 하운 대공에게 전혀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니까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변호사들의 말과, 연락이 없었냐는 루시안의 말에 리엘라는 힘이 빠졌다.
‘그래도 어디 가는지 정도는 말하고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멜다 부인이 신경 써서 식사도 준비했었는데.’
하운이 오지 않은 탓에 남은 음식은 전부 네아가 먹어서 버린 건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입술이 삐죽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