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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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가 없더라도 당연히 네아는 함께 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관에 준비된 것은 자신과 하운의 말 두 필뿐이었다. 왜 네아의 말은 없냐고 물으니 네아는 우물거리며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하운이 ‘아직 모르고 있었나 보군. 네아는 수도 밖으로 나갈 때 왕궁의 허가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네아가 몇 번이고 ‘과거의 일’ 때문에 하운과 그녀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거나, 그때의 일 덕분에 호슨 공작님을 만날 수 있었다거나 하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 과거의 일이 무엇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네아가 수도 밖을 나서려면 왕궁의 허가까지 필요한 건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어쨌거나 결국 리엘라는 하운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
네아는 마지막까지 하운에게 ‘아가씨가 손끝 하나라도 다치면 널 밟았다 펴서 뭉친 다음 바다 한가운데에 집어 던져 주겠다.’라는 진심 어린 배웅을 했다. 리엘라는 그런 네아에게 몇 번이고 몸을 돌려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실 제발 그만하라는 의미의 몸짓에 가까웠지만.
수도의 성벽을 벗어나 한참이나 천천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큰길을 벗어나 작은 길로 들어섰다. 이제 슬슬 길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왕래가 많지 않은 지역으로 향하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
“…….”
그때까지 리엘라와 하운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리엘라는 하운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를 보고 있던 그와 곧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
어쩐지 훔쳐보다 들킨 것 같은 기분에 리엘라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잠시 본 하운의 얼굴이 여전히 좋지 못했다. 그때 길 가운데 지난밤에 생긴 것 같은 큰 물웅덩이가 보였다. 리엘라는 능숙하게 고삐를 잡아당겨 말이 가볍게 그것을 뛰어넘도록 했다.
“읏차!”
조금 물이 튀긴 했지만 완벽한 착지였다. 뿌듯함에 리엘라가 말의 목을 쓰다듬을 때 하운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말 타는 법은 누구에게 배웠지?”
“어릴 적, 둘째 언니가 알려 줬어요. 수도의 조부모님 댁으로 오기 전에는 매일같이 말을 탔어요. 집에 언니가 기르는 말이 있었거든요.”
덕분에 리엘라와 언니들은 말을 다루는 데 능숙해졌다.
“언니가 있었군.”
“네. 제 위로 두 명 있어요.”
“그러고 보니 언니들은 어디에 머물고 있나? 저택에 오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언니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리엘라는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두 사람 다 멀리 있어요. 첫째 언니는 먼 곳에서 자리를 비우기가 힘든 일을 하고 있고 둘째 언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탓에 연락이 잘 닿지 않아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집에 돌아오죠. 첫째 언니에게서 큰일에 고생이 많다며 올해는 집에 한 번 들르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둘째 언니는 아직도 답장이 없는 걸 봐서 제 편지를 받지 못한 것 같지만요.”
리엘라가 말하는 사이 하운은 슬쩍 조금 더 가까이 리엘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언니들의 이야기에 신난 리엘라는 그런 그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택을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겨우 시작된 대화였다.
가는 길 내내 리엘라는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두 언니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릴 적에 세 자매가 마을에서 알아주는 말썽꾸러기들이었다는 것도. 그래도 자매간의 우애는 두터워서 한 명이 누군가에게 당하고 오면 다른 두 명이 무슨 일이 있어도 갚아 주었다는 이야기 등등.
“언니들이 그립지 않나?”
“당연히 보고 싶지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걸요. 첫째 언니가 만약 그 섬을 나오면 그 섬에는 의사가 한 명도 없게 되니까요. 그래서 첫째 언니는 다른 의사가 며칠간 대신 섬에 올 때 말고는 그 섬을 나올 수 없어요. 그리고 둘째 언니는 양 떼 관리를 한 번 맡으면 1년 정도는 양들과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요. 중간중간 들르는 마을에서 가끔 연락을 해 올 뿐이지요. 어디로 향했을지 모르니 제 쪽에서 먼저 연락을 넣을 수도 없구요. 사실 찾으려면 찾겠지만… 둘째 언니 성격에 찾아 봤자 그 이야기 전하려고 찾았냐며 타박할 게 분명한지라. 언니가 돌아오면 알려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거기까지 말한 리엘라는 몸을 돌려 말의 뒤쪽에 걸린 바구니에 손을 뻗었다. 계속 떠들다 보니 목이 말랐다.
‘어쩐지 계속 나만 떠든 것 같은데?’
리엘라가 손을 뒤로 뻗어서 바구니 옆에 있는 물병을 집어 들려고 할 때, 말이 훌쩍 뭔가를 뛰어넘었다.
“으악!”
그 탓에 리엘라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손에 들려 있던 유리병을 놓치자 곧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다.
“리엘라!”
“내 물!”
서로가 서로에게 급한 것을 외쳤다. 하운이 휘청이는 리엘라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하운의 손은 리엘라에게 닿기 직전에 멈췄다. 다행히 몸이 휘청거리기만 했을 뿐, 리엘라는 재빨리 중심을 잡았다.
“…젠장.”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워낙 주변에 뭐가 없었던 탓에 하운의 중얼거림은 리엘라의 귀에 정확히 들렸다. 뭐야? 왜 저러는 건데?
리엘라는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하운을 본 다음 훌쩍 말 위에서 내려 땅에 떨어진 유리병을 보았다.
“완전히 박살 났네.”
리엘라는 풀밭 위에 반짝거리는 유리의 파편을 보았다. 그냥 땅에 떨어졌다면 멀쩡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운이 없는지 튀어나와 있던 바위 위에 정확히 부딪힌 것 같았다.
리엘라는 바구니를 뒤져 천 조각을 꺼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깨진 유리를 이렇게 놔두는 것은 위험하니 치워야 했다. 허리를 숙이고 반짝거리는 파편들을 찾았다. 곧 리엘라는 이 풀밭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깨진 유리뿐만이 아님을 알았다.
리엘라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투명해 보이는 결정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돌멩이였다. 그것이 풀밭 곳곳에서 햇빛을 받아 유리와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투명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모양새에 리엘라가 중얼거렸다.
“설마 크리스털… 인가?”
“맞아. 이 지역은 크리스털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지.”
어느새 내렸는지 하운이 리엘라가 집어 든 돌을 보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허리를 숙여 다른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가 집어 든 돌멩이에는 좀 더 많은 크리스털의 결정이 박혀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리엘라가 물었다.
“이런 것들도 힘을 갖고 있나요?”
“갖고 있긴 하지만 그 힘이 약해.”
하운은 그렇게 말한 다음 그 돌멩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운의 손바닥에 있던 돌멩이가 미약한 소리와 진동했다. 리엘라는 신기해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의 앞에 양 여러 마리가 나타났다. 한눈에 보아도 그것이 허상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양들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보여 주더니 곧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이 크리스털이 갖고 있던 최근의 기억인가 보군.”
그렇게 말한 하운은 리엘라가 놀란 눈으로 양의 허상이 나타났던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신기해서요. 이렇게 가까이서 제대로 보석의 힘을 보는 건 처음인걸요.”
“호슨 공작이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나?”
“그건 아니지만… 상황들이 좀 정신없었거든요. 얼마 전 보석의 방 때도 그랬고요.”
그때가 생각난다는 듯 리엘라는 몸을 떨었다.
처음 보석의 힘을 보았던 건 저택에 왔던 날이었다. 네아와 카밀라가 싸우면서 처참하게 박살이 났던 것도 무서웠지만 나중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방은 더 무서웠다. 게다가 얼마 전, 카밀라가 보석의 방을 열었을 때는 더욱 처참했다. 저택의 하인들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직도 그날의 흔적이 저택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리엘라가 기억하는 보석의 힘은 전부 두려운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거라면….’
리엘라는 바닥에서 크리스털이 붙은 다른 돌멩이를 주워 조심스럽게 하운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보여 주시면 안 돼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선물 상자를 보는 아이처럼 기대 가득한 눈빛이었다. 하운은 즉시 대답했다.
“원한다면 이 들판에 있는 모든 크리스털의 기억을 한 번에 떠올리는 것도 가능해.”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한 번만 더 보여 주시면 돼요!”
하운은 망설임 없이 다시 크리스털이 갖고 있는 기억을 불러내었다.
그 순간, 세상이 빛 한 점 없는 암흑으로 뒤덮였다.
“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에 놀라 리엘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옆에 하운이 보였다. 하지만 하운의 뒤로 보이는 것들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수십, 수백 가지의 빛이 멀리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화원처럼 보이기도 했고 보석 가득한 바구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이 밝아졌다.
“이, 이건 뭔가요?”
분명 하운은 똑같이 땅바닥에서 주워 든 크리스털을 사용했다. 그런데 하나는 양을 보여 주더니 하나는 아득한 어둠과 알 수 없는 색색의 빛을 보여 주었다.
아무리 보석에 대해서 별 지식이 없는 리엘라지만 두 번째 크리스털이 보여 준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님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창세 시대의 기억이 강했던 보석이었던 것 같군.”
“창세 시대의 기억이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에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창세 신화는 알고 있나?”
하운의 물음에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라, 아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창세 시대의 전설을 알았다.
숫자를 붙여 세기도 까마득한 과거에 이 땅이 생겨났다. 그리고 생겨난 땅에는 숨이 붙은 것들이 있었지만 빛이 없어 서로가 누구인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갔다. 그때 먼 곳에서 이 땅 위로 빛이 떨어졌다. 땅에 닿은 빛의 절반은 땅속으로, 남은 절반은 땅 위에 남았다. 땅속으로 들어간 빛들은 보석이 되었고, 땅 위에 남은 빛들은 꽃이 되었다.
이것이 모두가 알고 있는 창세 신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