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42
44
하운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 날, 그는 레이안에게 정식으로 왕실이 소유한 보석들의 대여를 신청했다. 대여 목적은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 안정화. 다르게 말하면 보석의 방을 열어 그 안에 있는 보석들을 죄다 꺼내겠다는 소리였다.
그 소식이 왕궁 전체로 퍼지는 데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왕궁 곳곳에서 대신들은 하운과 보석의 방 이야기를 수군거렸고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왕실 소석의 보석술사들이 입궁해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을 듣기 위해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하운이 조언을 얻기 위해 몇몇 보석술사들을 왕궁으로 소환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보석의 방에 쏠렸다.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은 이 시대 보석술사들에게 보물 상자나 다름없었다. 진귀한 것이 가득하면서도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열기 무척이나 힘든 것.
그렇지 않아도 보석들에 관심이 많은 자들인데 그런 대단한 게 열린다고 하니 이목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오랜만에 그것들을 볼 수 있겠군.”
나이 든 보석술사들은 오래전 호슨 공작과 함께했던 전투를 떠올리면서 추억 속의 보석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들떠 어쩔 줄 몰라 했다. 반대로 호슨 공작의 보석들을 본 적 없는 젊은 보석술사들은 드디어 그 전설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여기저기서 제가 보고 싶어 했던 보석들에 대해 떠들었다.
전설이 되살아난다는 것은 그만큼 모두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보석술사들은 물론 왕궁의 시종들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호슨 공작의 보석에 대해서 떠들었다. 놀라운 점은 이야기를 해도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보석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들떠 있을 때 하운은 조용한 왕궁의 복도를 걸었다.
“이쪽입니다.”
하운의 앞에 서서 가는 왕실의 보석술사들이 정중히 그를 안내했다. 하운이 그들과 함께 걷고 있는 곳은 왕궁 내 보석의 방이었다.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이 그 규모로 손꼽을 정도라지만 카르디아 왕실의 보석의 방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르디아 왕가는 그 시초부터 보석술사의 피가 흐르는 왕가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왕부터 보석술사였고 세 번째 왕이었던 에르첼라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대륙 구석의 소국이었던 카르디아가 드넓은 평야와 자원이 넘치는 산맥, 풍요로운 바다를 손에 넣게 된 것은 모두 에르첼라 덕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손에 넣은 보석들로 거침없이 드래곤들을 몰아냈다. 그때 에르첼라의 기세에 밀려 멀리 떠난 드래곤이 두 손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보석술사의 미덕은 탐욕이야.”
보석술사들이 마음에 품고 사는 그 말도 에르첼라가 한 말이었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드래곤 토벌에 앞장섰던 이유가 겉으로는 영토 확장이었지만 사실은 드래곤의 보석을 빼앗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랬던 에르첼라였기에 드래곤 로드 사르지안과의 전투는 예견된 일이었다.
“지독한 인간이로다.”
네가 가진 보석들을 뱉으라며 미친 듯이 밀어붙이는 에르첼라에게 사르지안이 남긴 말이었다. 에르첼라의 공격을 받고 사르지안은 에르펠트해에 잠들었고, 에르첼라는 사르지안의 레어에서 보석들을 남김없이 긁어 왔다.
하지만 그 전투에서 크게 몸이 상한 탓에 에르첼라는 급격하게 쇠약해져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았다.
“내 보석들, 전부 나랑 같이 묻어 줘.”
그 유언을 들은 에르첼라의 딸이 ‘전하께서 가시는 길에 정신이 약간 혼미하셨던 듯하니 마지막 줄은 지우도록 하게.’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 보석들은 지금쯤 전부 땅에 묻혔을 것이었다. 하지만 카르디아 왕가는 그녀의 유언을 깔끔하게 무시했고 덕분에 왕실은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보석을 소유한 상태였다.
하운은 벽에 그려진 에르첼라 왕의 전설적인 업적을 보며 보석술사들을 따라갔다. 복도 옆에 늘어선 장식장 안에는 그녀가 모으고, 또 후대 왕들이 모았던 보석들이 가득했다. 끝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하운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자 하운 역시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오랜만에 보는군.”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모두 왕실의 보석술사들이었다.
“내가 신청한 보석들은 모두 준비되어 있나?”
“아,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에르첼라의 보석들은 대출을 불허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겠네.”
제가 신청한 보석들을 거부당했다 하는데도 하운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짐작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에르첼라는 제가 애용하던 보석들을 전부 장신구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중 즐겨 사용했던 것들은 따로 에르첼라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 보석은 국왕만이 사용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나 워낙에 ‘에르첼라’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 때문에 어느새 불문율이 되었다. 그리고 하운은 이 불문율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왕궁 보석술사에게 자신이 제출했던 서류를 돌려받아 살펴보자 거부란에 큼직하게 레티시아의 서명이 있었다. 역시나 그녀였다. 서명 옆에는 큰 글씨로 ‘미쳤습니까?’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하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서류를 품에 넣었다.
‘에르첼라의 보석을 사용할 수 없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지.’
하운이 눈짓을 하자 보석술사들은 꺼내 두었던 보석들을 들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테이블 위에 많은 보석들이 놓였다. 하운은 가장 먼저 꼭 필요한 보석을 찾았다.
“스피넬은 어디에 있나?”
“여기 있습니다.”
끝에 서 있던 보석술사가 작은 나무 상자를 조심히 들고 와 하운에게 건넸다. 하운은 상자를 열었다. 부드러운 천 위에 짙은 보라색의 스타스피넬이 들어 있었다.
힘은 있으나 이름이 없는 보석이며 무한의 스피넬과 같은 원석에서 나온 보석. 보석술사들은 이런 보석을 형제석이라고 불렀다.
하운은 스타스피넬을 집었다.
“이건 반대의 성격을 가졌었던가.”
“그렇습니다. 무한의 스피넬 옆에 있을 때 그 힘을 감소시키는 능력이 있지요.”
형제석은 이것이 문제였다. 이름이 있는 보석들처럼 혼자서 고유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저와 함께 태어난 보석 옆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힘은 완전히 같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르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기록상 발동률은?”
“마지막 기록은 27년 전 호슨 공작이 실험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기본 실험 조건을 기준으로 사용 시 약 13.51%의 발동률을 보입니다.”
“…낮군.”
생각한 것보다 더 낮았다.
‘이래서 에르첼라의 보석을 원했던 건데.’
무한의 스피넬이 힘을 사용해 한 번 공간을 확장하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형제석의 힘이 약해 무한의 스피넬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면 에르첼라의 보석이 답이었다. 에르첼라 컬렉션에는 확장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보석이 있었는데 지금으로선 쓸 수 없었다.
“파괴시켜야 하나.”
하운은 제가 사용하는 징벌의 오닉스를 떠올렸다. 기록을 보면 징벌의 오닉스가 무한의 스피넬보다는 상위의 보석이다. 힘으로 부딪힌다면 제압할 확률이 있었다. 하운은 가득 놓여 있는 보석들을 보았다. 지금부터 이 중에서 제가 갖고 들어갈 것들을 골라내야 했다. 호슨 공작의 보석에 맞설 만한 보석들을.
***
하운이 왕궁으로 가고 나서 일주일이 흘렀다. 저번의 일을 확실히 교훈으로 삼았는지 이번에는 며칠이나 어떤 이유로 저택을 비울 것인지 무척이나 상세히 말하고 떠났다. 덕분에 리엘라는 그의 걱정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운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그가 보석의 방을 열 것임을 알리는 기사가 나자 갑자기 사람들이 리엘라의 가게로 몰려든 것이다. 지금까지는 왜 조용했다가 이렇게 갑자기 몰려들었나 네아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하운이 무서워서 못 오고 있었던 것이라 말했다.
“좀 비켜요! 레이디 리엘라, 접니다! 어제도 왔던 데번입니다!”
“다리 밟지 마! 레이디 리엘라, 저 기억하시죠? 어제 케이크 사 왔던 뮤엘이에요.”
“레이디 리엘라! 제발 그 자리에 저도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 탓에 가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가게를 빼곡 채우고도 넘칠 만큼 몰려든 탓에 밖에 세워 둔 석판이 넘어지고 꽃이 들어 있던 양동이가 바닥을 굴렀다.
“다들 그만!”
결국 참다못한 리엘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네아, 이분들 모두 가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부탁드려요!”
“그 명령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아가씨.”
사실 사람들이 몰려들 때부터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움찔거리던 네아는 리엘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네아의 손에 들려 있던 보석에서 채찍과도 같은 빛이 나타나더니 서 있던 사람들을 한 번에 묶어 밖으로 내던졌다.
우당탕. 쨍그랑. 으악. 꽥!
온갖 소리가 섞여 브릭스 거리에 울렸다.
“어머,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했는데 힘이 너무 셌나 봐요.”
네아는 제 손에 들려 있던 보석을 뒤로 휙 감추고 멋쩍게 웃었다. 하운에게 받았던 보석을 공작저 안에서 몇 번 사용해 본 적은 있었는데 실제로 사람들에게 쓰는 게 처음이었던지라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상처를 치료하는 보석들도 있었기에 네아는 다친 사람들을 재빨리 치료해 주고 그들에게 다시 오지 마라 단단히 일렀다. 하지만 그들은 다친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 다음 날이 되면 또 나타났다.
결국 리엘라는 가게 문을 잠시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전에 꽃 축제 개최국의 담당자가 가게를 찾아왔다. 담당자에게 예전의 사정과 현재의 사정을 설명하며 그동안 제대로 영업했다는 증거인 영수증들도 전부 보여 주었다. 그것을 꼼꼼하게 확인한 담당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도구들도 관리가 잘되어 있고 꽃 보관 상태도 좋네요. 앞으로 축제 때까지 더 점검은 나오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에 리엘라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제 더 이상 점검도 나오지 않겠다, 이런 소란도 벌어지겠다 리엘라는 다시 가게를 쉬기로 했다. 계속 이래서야 브릭스 거리의 사람들에게도 민폐였다.
하운이 돌아올 때까지 공작저 안에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심심하다.”
온실을 돌아다니던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심심하다. 아니, 정말 심심한가?
할 일은 많았다. 언제나 그렇듯 식물을 기르는 일은 쉴 틈 따위 없으니까. 온실을 돕는 것만으로도 하루해는 훌쩍 넘어간다. 하지만 리엘라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뭐지? 뭐가 없는 거지? 그러다 뭐가 없어졌는지 깨달았다.
‘대공님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