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45
47
“침입이다!”
경비병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들어 있던 보석술사들이 놀라 허둥지둥 일어났다. 왕궁은 수많은 보석들의 힘으로 지켜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한 이런 식의 침입은 어느 얼빠진 보석술사가 실수를 했을 때 외에는 없었다.
“대공님!”
위험하니 자리를 피하십시오! 라고 말하려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누구에게 그 말을 하려 했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운은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허둥지둥하는 보석술사들에게 말했다.
“확인되기 전까지 피해 있도록.”
“네!”
하운의 명령에 다들 우르르 뛰어 방을 나갔고 하운은 경비병들이 소란스럽게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경비를 담당하는 보석술사들도 몰려와 주변을 살폈다.
‘정찰의 재스퍼를 사용하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그렇잖아도 에르첼라의 보석을 빌려 달라고 한 탓에 레티시아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왕을 지키는 귀족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런데 왕에게만 허락된 보석을 제가 사용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시끄러워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운이 다가가자 경비병들이 뒤로 물러섰다. 안쪽으로 깨진 유리창의 파편과 작은 동전 하나가 바닥 위에 굴러다녔다.
“이 동전을 던진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만….”
병사는 말끝을 흐렸다. 왕궁 주변의 해자는 무척이나 깊고 폭이 넓다. 사람들이 다가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라고 해도 여기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저기서 이 작은 동전을 던져 강화의 힘이 걸린 왕궁의 유리창을 깼다고?
하운은 동전을 집었다. 보석의 힘을 사용하면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동전을 아무리 만져 보아도 힘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오직 완력만으로 이것을 던져 유리창을 깼다는 소리인데 하운이 아는 한 그게 가능한 사람은 수도에 한 명뿐이었다.
“이걸 그냥….”
그렇지 않아도 잠이 모자라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리엘라를 지키고 있으랬더니 여기에 온 이유가 뭐지? 게다가 이런 짓을 해?’
당장 공작저로 가서 네아를 잡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에 몰려든 보석술사들이 하운에게 말했다.
“대공님, 혹시 짐작 가시는 자라도 있으십니까?”
하운은 대답 대신 품을 뒤졌다.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어 열자 그 안에 노란색의 동그란 보석이 반짝였다. 하운은 그것을 들고 깨진 창문으로 다가가 힘을 사용했다. 그러자 번쩍이는 빛과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유리 조각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깨졌던 유리창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 시끄럽게 들리던 소리도 어느새 멈췄다.
“이건 내가 따로 전하께 보고할 테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도록.”
“…하지만.”
“알아, 기록은 해야겠지. 그냥 오작동이라고 써 주면 좋겠어. 그것도 전하께 말씀드릴 터이니 신경 쓰이면 나중에 확인하던가.”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대공이 직접 왕에게 보고한다는데 자신들이 이래라저래라 말하기가 곤란했다. 게다가 하운의 모습을 보아하니 심각하다기보다는 어쩐지 짜증을 내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대공이 뭔가 실수를 한 게 아닐까? 경비들이 서로 눈치만 살피며 슬금슬금 물러가자 하운은 동전을 들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보석술사들이 물러간 회의실은 여기저기 물건들이 어지럽게 쌓여 엉망이었다. 탁한 공기에 식어 버린 음식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을 안 하운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해자의 물을 스친 시원한 밤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하운은 팔짱을 낀 채로 창가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왕궁의 소란에 놀라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조용해지자 금세 흥미를 잃고 발걸음을 돌렸다. 시간이 늦어진 탓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조금 전보다 훨씬 줄어 있었다.
“이 시간까지 여기서 무슨 일로 온 거지?”
네아가 왔다는 것은 옆에 리엘라도 있었다는 소리다. 네아가 그녀를 두고 혼자서 공작저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잘도 따르는군.’
아무리 호슨 공작이 부탁했다지만 네아는 정말 열심히 리엘라를 따라다니며 지켰다.
호슨 공작을 충심으로 섬기는 하녀처럼 살아가던 네아였다. 호슨 공작을 따르는 것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을 향해서는 아니었다. 수십 년간 호슨 공작의 밑에서 일하던 집사조차도 네아는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공작의 옆에 서서 잠들지 않고 감시의 눈을 번뜩이지 않았던가.
그런 네아가 호슨 공작이 아닌 사람을 따르다니.
‘이유가 뭐지?’
몇 번이고 네아의 속을 떠보는 질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네아는 도대체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네아가 이런 식으로 따른 사람은 호슨 공작 외에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분명 리엘라를 알게 된 것은 채 1년이 넘지 않는데,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던 호슨 공작만큼이나 따른다고?
깊게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것은 네아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하운은 조금 전에 쓰려고 했던 정찰의 재스퍼를 꺼냈다. 레이안에게 받은 이후 남들이 있을 때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보석이다.
‘그런데….’
이걸 사용했다. 심지어 보여 주며 무엇인지 설명까지 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보고 싶다고 해서 크리스털의 기억을 불러내고 청염의 사파이어에 폭우의 하우윈까지 사용했다. 자기가 했던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하운은 당황스러웠다.
단지 누군가 보고 싶다고 말해서 힘을 사용한 적이 있었나? 게다가 지킨다는 이유가 있긴 했지만 매일 리엘라를 따라 꽃 시장에 가고 가게에 따라갔다. 심지어 가게에 있을 때는 전장에서의 이야기를 계속했고. 네아가 지나가는 것처럼 ‘너 이렇게 말이 많았냐?’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니다. 레이안조차도 네 목소리 잊어버릴 것 같다며 대답 외에 다른 말 좀 해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갑자기 호슨 공작의 영상이 생각났다. 자신과 네아가 무척 비슷하다는 말. 그래서 확신을 얻었다고 했었다.
‘리엘라에게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건가?’
물론 힘이 있긴 하다. 빛나는 꽃을 길러 낼 수 있는 능력이. 설마 그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설명이 가능하다. 호슨 공작이 지키겠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것도, 네아가 그녀를 따르는 것도, 자신도.
보석들은 꽃을 원한다. 그래서 보석술사들이 그녀에게 끌리는 것이라면….
하운은 턱을 괸 채로 리엘라를 떠올려 보았다. 평범한 여자다. 처음 만났을 때 울고 있어서 놀랐던 것뿐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리엘라의 모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매일 아침 아직 졸음이 남은 얼굴로 잘 잤냐 인사하는 모습, 꽃 시장에 도착하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해 눈을 반짝거리며 신나게 달려가는 모습, 사 온 꽃들을 정리하며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 찾아오는 거리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꽃다발을 만들어 내는 모습.
‘이야기도 꽤 열심히 듣는 편이고.’
도대체 뭐가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보석과 드래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 열심히 듣는다. 호슨 공작의 이야기는 더더욱 열심히 듣고.
또 어떤 모습들이 있더라?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비어 있던 저택, 쏟아지는 비, 장작이 타는 모닥불 소리 그리고 잠이 든 사람의 조용한 숨소리. 그러다 옷을 벗고 눈이 마주쳤을 때….
“……!”
하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머리는 계속해서 그날의 모습들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그러면서 몰려오는 감정에 하운은 당황했다. 그리웠다. 그날이.
‘지금 내가 도대체 그 여자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렸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그날이 떠오르지 않을 만한 다른 생각을. 그렇지 않으면 상상 속의 자신이 있지도 않았던 일을 할 것 같았다.
일부러 큰 발소리를 내며 테이블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하운은 그 위에 펼쳐진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며칠째 많은 보석술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안에 있을 보석들을 예상하고 그 힘을 어떻게 차단하며 제압할 것인가. 사실 뭘 해도 결론은 결국 하운이 더 강한 보석들로 눌러 버려야 한다는 결론만이 나왔다. 혼자라면 나쁜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네아와 리엘라도 함께 방 안에 있어야 하니 일단 두 사람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세 보석이 상성이 좋은 건 아니니 분명 그것들도 힘이 부딪칠 텐데…. 아니면 따로 움직이거나….’
심야의 옵시디언이 힘을 쓰면 어둠 속에서 무엇이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때 하운의 손끝에 느껴지는 게 있었다.
“아.”
조금 전에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던 동전이었다. 그것을 보던 하운이 중얼거렸다.
“쉬운 방법이 있었군.”
***
리엘라는 네아와 부리나케 왕궁에서 도망친 후로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는지 왕궁에서 공작저에 병사를 보내 ‘침입자를 끌고 가라!’라고 소리치는 일은 없었다.
그사이 저택은 보석의 방을 열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보석의 방 주변에 있던 물건들은 전부 저택의 본채로 옮겼다. 창문 역시 떼어 내어 창고로 옮겼다. 이러면 다시 바람이 몰아쳐도 깨지거나 날아가는 물건은 없을 것이다.
준비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드디어 내일이네.’
내일은 드디어 첫 번째 방을 여는 날이다.
왕실은 물론 원탁회의에서도 참석을 알려왔다. 그들은 혹시의 상황을 대비하며 보석의 방 밖에 대기한다고 했다. 그들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기에 저택은 여전히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리엘라가 뭔가 도울 게 없나 물어보았지만 모두 다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예전에 보았던 위력 때문에 다칠까 걱정했는데 네아는 지금 갖고 있는 보석들이라면 다칠 일은 없을 것 같다 대답했다. 그런 네아도 마지막으로 문스톤들을 점검하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리엘라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기분을 달랠 겸 온실로 향했다.
‘내일 온실에 올 사람은 없겠지.’
빛나는 꽃은 여전히 제 방 안에 잘 숨겨 두었고 이곳에 누가 온다 해도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온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리엘라는 낮에 찾아온 루시안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대공님께서 왜 이렇게 서둘러 보석의 방을 열려는지 모르겠군요.”
“안에 있는 보석들이 나오게 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내일 당장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공님께서 유난히 서두르고 있어서요. 때문에 왕궁과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들이 매일 죽는 소리를 냅니다.”
그 말에 왕궁으로 가기 전 유독 저를 피하던 하운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공작저에 있는 게 역시 좀 불편한가?’
아니면 저를 매일 보다 보니 역시 보석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리엘라는 폭우에 젖었던 날이 생각났다. 그가 옷을 말리려고 벗었던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꾸 그때 하운의 모습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변태 아닌데!’
그런데 왜 자꾸 남의 벗은 몸을 떠올리는 건지. 리엘라는 제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온실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빛나는 꽃은 안으로 들여놓았지만 엘피안은 아직 여기에 있었다.
‘그것도 열심히 기르면 빛나려나?’
그러면 그건 또 어떻게 숨겨야 하나 고민하며 걷던 리엘라의 걸음이 멈췄다.
“어?”
엘피안 꽃이 있었다. 어제 놓았던 곳과 다른 자리에.
‘누군가 손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