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49
52
“이제 다 끝나 가는 건가요?”
긴장으로 굳었던 네아의 표정을 리엘라는 빠르게 알아차렸다.
“네. 그렇긴 한데….”
“한데?”
“스피넬이 걸리네요.”
“그게 왜요?”
“옵시디언은 저렇게 처맞고 있고 파이로프는 사실 다른 두 보석에 비하면 약한 데다가 눈치도 빠른 편이라 더 저항하지는 않을 거예요.”
말을 듣고 보니 바람은 그사이 더욱 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스피넬이 잠잠해요. 이렇게 그냥 물러설 보석이 아닌데…. 뭐어, 그래도 다시 힘을 쓴다면 우리는 별로 신경 안 쓰고 하운에게만 집중할 것 같지만요.”
“그래도 크게 문제없는 것 아닌가요? 아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벌어졌던 거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었잖아요.”
“아, 그건 두 번은 힘들 겁니다.”
리엘라의 말을 듣고 있던 루시안이 끼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던 건 대공님이 스피넬의 형제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무한의 스피넬과 전혀 반대되는 힘을 가진 보석인데…. 그거 거의 힘이 남지 않아서 두 번은 사용이 힘들거든요. 조금 전에 한 번 발동에 성공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 스피넬이 다시 힘을 쓰면 어떻게 되나요?”
“큰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대공님이 좀 멀어지겠지요.”
“얼마나요?”
“확실하진 않지만 돌아오는 데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요? 운이 없으면… 한 달?”
“그럼 큰일이잖아요!”
리엘라가 놀라 몸을 돌리는 순간 다시 공간이 일렁였다. 스피넬이 마지막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
아마도 보석의 방은 곧 열릴 것이다. 어둠은 걷혔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이제 잡을 보석은 하나였다.
‘빨리 끝내야겠군.’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운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고 징벌의 오닉스 또한 한계가 있는 보석이다. 그리고 잠잠한 스피넬이 걸렸다. 두 보석이 완전히 당하기 전에 스피넬은 반격을 가해 올 게 분명했다. 하운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제는 완전히 힘을 잃었을 스피넬의 형제석이 만져졌다. 운 좋게 힘이 남아 있을 때 한 번의 발동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두 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운의 바람과는 다르게 멀리 공간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보석들이 내는 소리도 섞였다. 공간이 변하고 있다는 징조였다.
‘젠장.’
아마도 스피넬은 자신만 노릴 것이다. 리엘라가 있는 쪽은 문과 가깝기도 하고 셋은 크게 위협이 되지 않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일부러 보석들이 리엘라가 있는 쪽에는 적의를 품지 않도록 저 혼자 공격을 도맡아 했다.
하운은 허공을 향해 마지막으로 오닉스의 힘을 휘둘렀다. 콰쾅! 큰 폭음과 함께 남아 있던 흐릿한 어둠도 완전히 사라지고 바람 또한 멈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공중에 둥둥 뜬 채 모습을 드러내는 두 보석이 보였다. 하운은 재빨리 다가가 심야의 옵시디언과 질풍의 파이로프를 붙잡았다.
파지직!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보석을 잡은 손이 따가웠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두 보석이 뭐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거 안 놔, 인마?
‘이놈들이나 하우윈이나.’
말을 안 듣는 보석들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며 하운은 한숨을 쉬었다. 하운은 이제 멀어졌을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공간이 어느 정도 확장되었는지를 가늠해야 했다. 문이 있을 곳을 바라보던 하운의 눈이 커졌다.
“리엘라!”
문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그런데 그와 문 사이에 달리고 있는 리엘라가 보였다.
‘왜?’
도대체 왜 리엘라가 네아와 루시안에게서 멀어진 거지?
일단은 그걸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스피넬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듯 제 힘을 사용해 댔고, 그사이에도 리엘라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하운은 이제는 그다지 힘이 남지 않은 오닉스를 휘둘러 바닥을 내려쳤다. 쿵쿵.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공간의 확장이 멈췄다. 하운은 재빨리 리엘라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스피넬이 어찌나 열심히 공간을 늘려 놓았는지 눈 깜빡 할 사이에 둘 사이에 완만한 언덕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대공님!”
하운이 언덕 위에 올라서자 밑에서 끙끙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리엘라가 보였다. 그 모습에 하운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미쳤나! 도대체 왜 네아에게서 떨어진 거야!”
소리를 지른 다음 하운은 아차 싶었다. 그렇잖아도 이런 공간에서 무서울 텐데 자신까지 윽박지르고 있으니. 그가 제 실수를 깨닫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리엘라가 소리쳤다.
“미친 건 대공님 쪽이죠! 뭘 믿고 혼자 떨어져요!”
“뭐?”
“루시안 님에게 들었어요! 그 형제석인지 뭔지 하는 거 한 번밖에 못 쓴다면서요? 그래서 이번에 멀어지면 돌아오는 데 한 참 걸릴 거라던데요!”
“그 자식 쓸데없는 소리를…!”
하운이 루시안에게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다시 공간이 뒤틀렸다. 하운은 곧바로 팔을 뻗어 리엘라를 끌어안았다. 서로 붙잡고 있는 상태라면 함께 이동하지만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거리는 가늠할 수 없이 멀어진다.
‘나는 괜찮지만.’
그는 보석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런 상황에 익숙하기에 문제가 없지만 만약 리엘라가 이런 공간에 홀로 떨어지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도 며칠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 방을 나서기 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그가 리엘라를 안은 순간 그들 아래에 있던 언덕이 기이하게 늘어났다.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문이 빠르게 멀어지며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지러움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공간이 급격한 확장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3만 배 정도가 아니었다. 어쩌면 스피넬은 지금까지 한 것 중에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공간의 일그러짐이 멈췄고 두 사람은 보석의 방 안이었지만 전혀 낯선 풍경 속에 서 있게 되었다.
하운은 문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소리도 안 들리는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보관한 다른 보석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스피넬이 움직임을 멈춘 것을 확인한 하운은 리엘라에게 소리쳤다.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해서 사람을 귀찮게 하지? 혼자라면 돌아가는데 문제없었을 텐데 그대가 있는 탓에 힘들게 되었어! 잘못하면 몇 달이 걸릴지도 몰라!”
“몇 달은 무슨 몇 달이요! 저녁에 멜다 부인께서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어 주신다 하셨으니 돌아가서 그거 먹어야 하거든요? 사람 수 대로 맞춰서 만들어 두셨다 했으니 대공님도 드셔야 해요. 멜다 부인은 음식 남기면 슬퍼하니까.”
“뭐?”
이게 무슨 어이없는 소리야? 하운은 덜컥 겁이 났다. 리엘라가 공포에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에서 저녁 식사에 먹을 디저트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됐고 어서 그 보석 꺼내 보세요. 스피넬의 힘을 무력화시킨다는 똑같이 생긴 보석요!”
리엘라가 다그치자 하운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스피넬의 형제석을 꺼냈다. 여섯 갈래로 갈라진 무늬가 완전히 광택을 잃었다. 누가 보아도 깊게 잠들어 버린 보석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마…!”
“네. 가져왔어요.”
리엘라가 무엇을 가져왔는지 알아차린 하운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절대로 가져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하운은 왕궁으로 떠나기 전, 리엘라에게 다녀오겠다 말을 하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날에는 다른 보석술사들이 올 테니 화분을 잘 숨겨 두고 혹시라도 저번처럼 꽃잎을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그런데 가져왔다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하운의 고함에 리엘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래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말 안 했던 건데.
“만약을 위해 대비를 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떨어진 꽃잎이 시들어 썩으면 빛이 사라지지만 이렇게 잘 말리면 살아 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빛이 남는 걸 보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루시안이 봤으면 어쩔 뻔했어!”
“루시안 님에게는 줄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조금 전에도 안 꺼냈죠! 옆에 루시안 님 있었으면 이런 상황이어도 절대 안 꺼냈을 거라구요. 게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천에 감싸고 또 감싼 데다가 주머니 역시 절대 안 풀어지게 잘 묶었어요!”
그 말을 증명하려는 듯 리엘라는 끙끙거리며 주머니를 풀었다. 확실히 말한 대로 어찌나 단단히 묶은 건지 꽤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리엘라는 겨우 주머니를 풀 수 있었다.
“떨어트릴까 봐 옷 안쪽에 깊은 주머니를 만들고 단추까지 달았어요! 잡아 뜯으려고 해도 힘들었을 거라구요! 일단 손 좀 줘 보세요.”
하운은 어쩔 수 없이 리엘라를 안고 있던 한쪽 팔을 풀고 그녀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가벼운 것이 떨어졌다. 노란색의 마른 꽃잎 세 개가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화분 안에서 살아 있는 꽃잎과는 달리 반짝이는 빛이 연한 꽃잎이었다.
“떨어진 꽃잎은 오래 버틴다 하더라도 결국은 썩어요. 그러면 빛도 사라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걸 잘 말려 봤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연하긴 하지만 빛이 남아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드릴게요.”
“뭐?”
“대공님 드린다구요. 이렇게 만들면 멀리 떠나실 때도 가져가는 데 문제없을 거예요. 혹시 위험해질 때 쓰세요.”
“…….”
“일단 이거 사용하세요. 돌아가면 꽃잎 떨어지는 대로 만들어서 드릴게요. 그러니 화 좀 그만 내시고.”
하운은 리엘라와 손 위의 꽃잎을 번갈아 보았다. 제 말을 어기고 꽃잎을 가져온 것은 화가 났다. 하지만 리엘라는 이걸 숨기려면 얼마든지 끝까지 숨길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모두들 위험했을 때에도 리엘라는 이것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혼자 떨어지게 되니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에서 멀어져 자신에게 왔다.
“하….”
복잡한 감정이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나가서 다시 이야기하지.”
하운은 마른 꽃잎을 스피넬의 형제석 옆에 두었다. 꽃잎에 머물렀던 빛들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보석을 감쌌다. 잠시 후, 그곳에는 광택과 빛을 되찾은 보석이 있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이 보석의 발동률은 무척 낮아. 아마도 세 번 정도 더 시도할 수 있고 그 시도가 전부 실패로 돌아가면 문으로 돌아가기까지 무척 시간이 걸릴 테니 각오하도록.”
하운은 스피넬의 형제석을 붙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손끝에 모였던 힘이 파스스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실패한 것이다. 한 번의 실패에 되찾은 빛이 줄어든 것이 확연히 보였다.
‘한 번 더.’
그러나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보석은 처음 가지고 왔을 때와 비슷하게 탁해져 있었다.
‘이제 한 번 남았군.’
이번에 실패하면 무척이나 힘들어질 것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곳에서 쉬지 않고 걸어야겠지. 하운은 모든 정신력을 다 긁어모아 집중했다.
‘돌아가서 멜다 부인의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고.’
그 정도면 당장 돌아가야할 이유로 충분한 것 같았다.
하운이 마지막으로 보석을 잡는 순간 공간이 일렁였다.
그날 밤, 리엘라는 행복한 얼굴로 멜다 부인이 심혈을 기울인 새로운 디저트를 맛볼 수 있었다. 네아는 기쁜 얼굴로, 루시안은 지친 얼굴로. 하운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