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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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듯한 아버지의 행동에 루시안은 조금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최근 어머니의 말로는 요즘 아버지가 매사에 의욕도 없고 어느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아 일부러 여기저기를 같이 다닌다고 들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그러기는커녕 눈이 아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거요? 리엘라 테니어 양이 선물로 준 것입니다.”
“리엘라 테니어? 잠깐, 그 사람이라면… 호슨 공작의 상속인?”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아가씨지요.”
루시안의 대답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모리스 경이 잠시 신기하다는 듯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별일이구나. 네가 남에게 그런 말 하는 건 처음 본다.”
아버지의 말에 루시안은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제가 리엘라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처음에 보았을 때는 솔직히 무척이나 쉽고 만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평범하게 살다가 공작저를 드나든 인연으로 갑자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여자. 호슨 공작을 생각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갑자기 이런 거금을 얻게 된 사람은 들뜨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새로운 일을 하자며 설득하는 것은 쉽다.
일단은 자신을 편안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청혼 같은 소리를 했다. 그런 다음 그건 내 진심이 아니고 어쩔 수 없었다, 무례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며 다가갔다. 그것도 충분히 성공적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하운이 정신 나간 청혼을 한 덕분에 리엘라는 저를 대공보다는 몇 백 배 더 상식적이고 점잖은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쉽게 생각했는데….’
보석의 방을 열고 난 후, 그 안에서 나온 보석들을 처리하는 리엘라의 모습을 보며 루시안은 제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리엘라는 친구에게 약하고, 네아에게도 약하다. 저택의 하인들에게도. 그러니 보석을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무르게 굴 것이라 생각했다. 루시안은 적당히 그때를 노릴 참이었다. 리엘라가 곤란해하면 대신 나서서 사람들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좀 더 저를 믿고 보석의 관리를 넘겨줄 것을 기대했다.
당연히 하운 대공이 펄펄 뛰겠지만 보석은 리엘라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보석의 방 안에서 나온 보석들 중에 가장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히 균열의 아게이트였다. 하운과 함께 살펴보니 수면기도 아니라 힘을 완전히 잃어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것만 있어도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운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건드리면 죽인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아게이트를 일찌감치 포기한 대신에 루시안은 다른 보석들을 욕심껏 제 마음에 담았다. 리엘라를 잘 구슬리면 이 정도는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착각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건 안 돼요, 루시안 님.”
제가 웃으면서 부탁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리엘라는 딱 잘라 말했다.
“보석들은 전부 갈 곳을 정해 놓았거든요. 물론 원탁회의로 다시 갈 보석들도요. 그리고 이건 제가 원탁회의에 의뢰하는 내용이에요. 이 보석들의 운반과 전달을 부탁드립니다.”
리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두툼한 종이 뭉치를 그에게 건넸다. 빠르게 그것을 읽어 나가던 루시안은 신음을 삼켰다.
리엘라는 안에서 나온 보석들 중, 세상에 발표하지 않기로 한 보석들과 저택에 남겨 둘 보석을 제외한 약 250개의 보석들을 어디에 어떻게 대여할 것인지 완벽하게 정리해 가져온 것이었다.
“대부분은 호슨 공작님께서 대여했던 금액 그대로 책정했어요. 몇 군데는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이 책정한 것도 있구요. 다만 계약 기간들은 전부 변경했어요. 전부 1년 단위로.”
1년이라는 말에 루시안은 다시 문서를 보았다. 확실히 리엘라의 말대로 보석들의 대여 기간은 전부 1년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짧아졌죠?”
“그렇군요. 보통은 3년에서 5년. 10년 단위도 있으니까요. 왜 이렇게 줄였습니까?”
“이래야 제가 좀 더 주인 같을 수 있어서요.”
“무슨 의미입니까?”
리엘라는 일어나 책상 한쪽에 쌓여 있는 문서 더미를 가리켰다. 그것은 전부 리엘라에게 쏟아진 애원의 편지였다. 루시안도 그 편지의 내용을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호슨 공작의 보석을 빌려 쓰던 자들이 다시 한번 그것을 누리기 위해 리엘라를 잡고 늘어지고 있을 터이니.
“공작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보석을 회수하셨다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 탓에 원탁회의도 빌려 쓰던 모든 보석을 돌려주었고 지금 제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공작님께서는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으셨어요. 하지만 하셨다면 목적이 있으셨던 거지요. 그게 뭘까 생각하다가 편지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다들 저에게 과거 공작님과 어떠한 인연이 있었는지 말하며 보석을 다시 빌려 달라 부탁하시더군요. 하지만 부탁이라고 하기에는… 아시죠? 점잖고 예쁜 말로 적혀 있어도 강요는 강요인 것을요. 다들 저에게 명령을 하고 계시더군요. 그걸 보고 생각했죠. 이대로, 다시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리엘라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이분들은 바뀐 기간을 보고 생각하실 거예요. 1년 후에 저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어쩌면 1년이었던 기간이 6개월로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아니면 그럴 기회조차 없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아직 보석의 방은 두 개나 남았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지만 첫 번째 방에서 나왔던 보석들에 비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보석들이 안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보석이 아닌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이번에는 리엘라가 보석들을 다시 대여해 주었지만 과연 다음에도 그럴까? 대여 기간까지도 줄여 버린 그녀가?
루시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문서를 바라보았다. 이 보석들이 도착하면 그들은 제가 누구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깨달을 것이다. 루시안의 쓴웃음을 본 리엘라가 민망한 듯 말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네요. 어쨌든 이 보석들을 가야 할 곳으로 가져다주세요. 이런 일은 원탁회의에 맡기는 게 제일 좋다고 들었거든요.”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대공님께서요.”
“단순하고 귀찮은 일들은 알아서 너희들이 하라는 말로 들리는군요. 그래서. 보수는 무엇입니까?”
그의 말에 리엘라는 따로 준비해 두었던 종이를 내밀었다.
“호슨 공작님께서 원탁회의에 대여해 주셨던 보석들은 그대로 다시 대여해 드릴 거예요.”
거기까지 말한 리엘라는 눈을 찡긋했다.
“대여 기간은 10년. 원하신다면 연장 가능. 어떠세요?”
제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밀던 리엘라를 생각하자 루시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보석의 방 안에서 어떻게 하운을 놓고 가냐며 저를 밀치고 뛰었을 때 알았어야 했다. 이 아가씨가 생각보다 겁이 없고 할 때는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루시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모리스 경은 더욱 날카롭게 꽃바구니를 살피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표정이 풀리며 얼굴에 만족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리엘라 양이라고 했지. 알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모리스 경은 꽃바구니를 들고 모자를 썼다.
“나는 이만 가 봐야겠구나. 저녁은 혼자 먹거라.”
“저녁 먹자고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방금 급한 일이 생겼어. 저녁 혼자 먹는 게 싫으면 연애라도 하든가.”
“이야기가 왜 또 그쪽으로 갑니까.”
부모에게 연애와 결혼을 재촉받는 자식답게 루시안의 얼굴에 짜증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을 나서는 모리스 경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
“하아….”
하운은 거대한 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두 번째 방의 문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하운은 초조해졌다. 호슨 공작이 말했던 6개월 중 벌써 두 달이 조금 더 지났다.
‘빠듯하군.’
절반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첫 번째 문밖에 열지 못했다. 게다가 두 번째 문이 첫 번째 문보다 쉽게 열리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생각이 맞다고 하는 듯 두 번째 문은 첫 번째 문과 다른 방법으로 하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아예 열지도 못하다니.’
그나마 첫 번째 문은 열렸었고 안이 보였기에 무슨 보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운은 두 번째 문은 첫 번째 문과 비슷하되 더 강한 보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두 번째 문은 그에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니?’라고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고약한 노인네 같으니.”
다시금 제 안에서 호슨 공작을 향한 원망의 불길이 넘실거리는 것을 느낀 하운은 밀려오는 짜증을 누를 수 없었다. 참으로 창의적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싶었다. 그는 문 위에 손을 올렸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걸작이며 명작인 문이었다. 광활한 벽 전체가 하나의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붙인 것이 아닌 통으로 된 목재이니 아마도 이것은 대륙에서 가장 큰 나무들이 자라는 메아닌 산맥의 고목을 이용해 만든 문일 것이다.
‘그 나무들, 보석의 힘을 잘 견디는 특성이 있었지.’
그렇다면 호슨 공작은 이 문 자체에 어떤 보석의 힘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하운은 문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힘껏 밀어 보았다. 당연히 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 힘을 주던 하운은 짜증을 섞어 문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쾅! 큰 소리가 났지만 여전히 문은 미동도 없었고 그저 제 손만 아파 올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나마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이 문에 수십, 수백 가지 보석의 힘이 쓰였다는 것 정도였다. 이 문을 열려면 그 힘이 어떤 것인지 하나씩 알아내며 풀어 가야 한다. 그건 몇 개월, 아니 어쩌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작업이다.
‘그런데 석 달 안에 찾아보라고?’
하운은 다시 감정을 실어 손바닥으로 문을 두들겼다. 당연히 문은 처음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
제풀에 지친 하운은 주변을 정리하고 몸을 돌렸다. 오늘도 아침부터 이곳에서 계속 있었다. 보석의 방을 나오니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저택의 하인들이 가져다 놓은 바구니가 있었다. 그것을 본 하운은 평소와 다른 점을 알아차렸다.
‘오늘은 안 왔군.’
툭하면 들어와 아직도 알아낸 것이 없냐 물으며 얼굴을 비추던 리엘라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아침부터 한 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한 번쯤은 식사했냐며 물으면서 보석들 이야기를 했을 그녀가 오늘은 정말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저를 찾아왔을 텐데 조용한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니고.
방에서 나오고 나서야 허기를 느낀 하운은 바구니 안에 들어 있던 샌드위치를 든 채 저택의 본채로 향했다. 본채로 한 걸음 들어온 순간 그는 눈을 깜박거렸다.
“이게 다 뭐야?”
어젯밤에 봤던 것과 전혀 다른 저택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