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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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지?
하운은 제가 걸음을 잘못해 온실 안으로 들어온 건가 싶었다. 하지만 저기 이파리 넒은 나무 뒤로 보이는 조각상은 분명 현관에 있는 것이었고 계단 역시 현관에 있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침과 다르게 이렇게 풀밭이 되어 버린 거지? 누가 식물을 자라게 하는 보석이라도 이 안에서 사용했단 말인가?
그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켜, 비켜요!”
다급한 리엘라의 목소리에 하운은 옆으로 비켜서면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 얼굴만 한 화분을 용케도 든 채 리엘라는 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네아는 제 몸의 다섯 배가 넘을 듯한 화분을 들고 같이 뛰고 있었고.
달려온 리엘라는 옆으로 물러선 하운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들고 있던 화분을 한쪽에 놔두고 이리저리 돌려서 자리를 잡았다.
“아가씨, 이건 어디에 둘까요?”
“그건 이쪽으로!”
그러더니 네아를 데리고 다시 현관의 안쪽으로 들어가 큰 화분의 자리를 잡았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리엘라와 네아뿐만이 아니었다. 뒤이어 저택의 하인들이 저마다 온갖 화분을 들고 오더니 리엘라의 지시에 맞춰 내려놓았다.
다들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멍하니 보고 있던 하운은 리엘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꽃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었지.’
그래서 당분간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꽃 축제라는 게 이렇게 무지막지한 규모의 연습이 필요한 행사였던가?
리엘라를 불러 뭐 하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하인들에게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다. 결국 하운은 화분을 놓고 다시 나가려던 하녀를 불러 질문했다.
“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왜 온실의 화분들이 전부 여기에 나와 있는 건가?”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준비 중이었습니다.”
하녀의 대답에 하운은 더욱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손님이라니. 무슨 손님?”
“글쎄요. 저희는 아가씨께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
결국 리엘라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하운은 현관 구석에 있던 의자에 앉아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리엘라를 구경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리엘라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갔다. 그쪽이 아니에요. 좀 더 옆으로. 네, 조금만, 조금만 더. 좋아요, 거기! 조금만 돌려 주세요! 그래야 꽃이 더 예쁘게 보이니까.
‘도대체 누가 오길래 이렇게 난리야?’
왜 이렇게 저택의 모습을 바꾸고 저리 꽃의 위치에 신경을 쓰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기다려도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리엘라가 한가해지지 않기에 하운은 결국 지나가던 네아를 불렀다.
“누가 오는 거지? 이런 대단한 방문에 대해서 들은 게 없는데.”
“신경 꺼. 네게 보고할 필요는 없는 분이야.”
바빠 죽겠는데 얼굴 앞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는 듯한 얼굴로 네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이나 해. 누가 오는 건가.”
“모리스 경.”
“모리스 경?”
“그래. 왕실 수석 플로리스트인 윌리엄 모리스 경. 루시안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그 사람이 왜 여기에 와?”
“그건 나도 몰라. 방문하겠다는 연락만 왔거든. 어쨌든 그래서 아가씨가 저렇게 바쁘신 거고. 여하튼 비켜라. 시간 별로 안 남았으니까. 넌 보석의 방 들어가서 하던 일이나 해. 아직도 두 번째 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거 같은데 그래서야 유언장 찾겠냐?”
네아는 낄낄 비웃더니 세상 다정한 표정으로 바꾸고 리엘라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이제 그만하고 올라가셔야 해요. 그런 모습으로 뵐 순 없잖아요? 빨리 씻고 머리도 옷도 새로 준비해야죠.”
“헉,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럼 나머지는 부탁드릴게요, 관리자님들!”
네아의 말에 시계를 본 리엘라는 펄쩍 뛰더니 앞치마를 벗고 허둥지둥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한참 후 말끔하게 차려입고는 내려왔다. 하운은 그런 리엘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연인을 만나러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운이 이 저택으로 온 이래 리엘라는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막대한 재산의 상속인 같은 모습이랄까. 흰색과 차분한 녹색이 섞인 드레스는 적당한 프릴과 리본이 달려 있었다. 네아가 화장을 해 줬는지 평소보다 더 생기가 돌아 보이는 얼굴에 꽃 모양의 장신구까지 하고 눈을 반짝이며 서 있는 리엘라는 그야말로….
거기까지 생각한 하운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가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붉어진 목덜미를 누르고 있을 때 멀리서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는 곧 현관 앞에 부드럽게 멈췄다.
집사가 내려가 문을 열자 안에서 노신사 한 명이 내렸다. 리엘라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리스 경.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갑작스럽게 편지를 보낸 늙은이를 이렇게 맞이해 주다니 감사합니다. 윌리엄 모리스라고 합니다, 레이디 리엘라. 바쁜 가운데 제 방문이 폐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리엘라의 인사에 모리스 경 또한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화답했다.
“폐라니요! 편지를 받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뵐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에요.”
지금 리엘라를 보면 누구라도 그녀가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열광적인 신도가 제가 모시는 신을 만난 것처럼 흥분과 기쁨이 리엘라의 주변에서 몽실몽실한 구름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전염이라도 되는 것인지 리엘라의 옆에 서 있던 네아와 다른 하인들은 물론 모리스 경과 함께 온 그의 사람들까지 다들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보게들, 가져온 것을 내리게나.”
모리스 경이 명령하자 함께 온 사람들이 뒤에 있던 짐마차에서 큰 화분을 내렸다. 흔들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단단하게 묶은 탓에 풀어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줄에서 풀린 화분이 조심스레 들려 저택의 현관에 놓였다.
“설마… 이건….”
한참 동안 화분을 바라보던 리엘라는 갑자기 입을 틀어막더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화분을 보았다. 하운 역시 도대체 뭔가 싶어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고급스러운 화분과 그 안에 심어져 있는 나무였다. 정확히는 관목(灌木)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그 관목이 무엇인지는 줄기에 붙은 뾰쪽한 가시 덕분에 쉽게 알 수 있었다.
‘장미?’
장미는 공작저의 정원에도 수백 종이 있다. 그런데 꽃이라고는 분홍색 꽃이 두세 송이 피어 있는 대강 자라난 것 같은 저 관목에 왜 저렇게 감격하는 건지.
“에르첼라의 영광! 맞나요? 정말 에르첼라의 영광인가요?”
“그렇습니다. 빈손으로 올 수 없어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기쁘군요.”
“작은 선물이라니요. 에르첼라의 영광은 경께서 만들어 내신 품종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미인걸요. 이게 있는 곳은 왕궁과 경의 정원, 그리고 꽃 축제의 정원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걸 저에게?”
리엘라는 당장 모리스 경의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에르첼라의 영광은 엘피안만큼 희귀한 것도 아니고 꽃 축제에서 매번 보는 꽃이었다. 하지만 엘피안보다 더 얻기 어려운 꽃이기도 했다. 이 품종을 만들어 낸 모리스 경이 제가 허가한 곳 외에서 기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으니까.
에르첼라의 영광 말고도 다른 장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리스 경은 자신이 만들어 낸 새로운 종의 장미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직접 삽목(꺾꽂이. 가지를 잘라 땅에 직접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하는 번식 방법)을 해서 적어도 3년 이상을 길러 장미가 튼튼해졌을 때 판매했다.
그렇게 1년에 판매하는 장미가 기껏해야 100그루. 모리스 경의 장미를 사기 위해서는 1년 전에 신청을 해야 했고 추첨을 해서 뽑힌 사람만이 살 수 있었다. 당연히 리엘라는 계속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모리스 경의 장미와 인연이 없다 생각하고 단념한지 오래인데 이렇게 얻게 되다니. 그중에서도 유명한 에르첼라의 영광을! 심지어 이건 적어도 5년 이상 기른 장미였다!
“아가씨, 진정하시고 숨 좀 쉬세요.”
“네아, 전 오늘 죽어도 좋아요….”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하운 혼자였다.
‘저렇게 좋나?’
저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경매에서 산 엘피안 꽃을 받았을 때 저렇게 웃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때보다 더욱 행복해 보였다.
‘유명한 사람인 건 알고 있지만….’
하운도 모리스 경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권한과 직무에 대해서만 기억하고 있지 그가 왕실의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는 하운의 관심 밖이었다.
‘누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지? 왕실 어느 쪽과?’
하운은 모리스 경을 의심스런 눈으로 보았다. 리엘라의 환심을 사기 완벽한 조건의 사람이 뜬금없이 찾아오다니.
‘게다가 루시안의 아버지고.’
그 능구렁이 같은 놈이 제 아버지를 이용한 것인가? 그렇다면 역시 목적은 보석이겠지? 부자가 손잡고 노리는 건가?
하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보석을 노리고 찾아온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화분 다시 싣고 돌아가라고 하고 싶은데 저에게는 그럴 권한도 없는 데다가 지금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리엘라가 제 멱살을 잡고 ‘대공님이나 나가세요!’라고 끌어낼 것 같았다.
‘일단은 그의 목적을 알아봐야겠군.’
하운은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갔다. 먼저 알아본 사람은 모리스 경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운 대공님. 왕실의 수석 플로리스트인 윌리엄 모리스라고 합니다.”
“하운 아렐 팬드래건이다. 현재 공작저에서 호슨 공작의 유언장을 확인하는 감사관을 맡고 있으며 리엘라 양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지. 그러니 자네와 리엘라 양의 대화에 동석을 해야겠군.”
그 말에 리엘라가 휙 고개를 돌리더니 하운을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눈치 없어요? 좀 빠져요!
리엘라가 눈빛으로 나가라고 천 번을 말했지만 하운은 그 시선을 싹 무시한 채 결국 두 사람의 대화에 동석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네아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멜다 부인의 과자와 차를 내었고 방 안은 금세 차 향기로 가득 찼다.
“그래, 이제 온 이유를 설명해도 될 것 같군.”
하운이 먼저 입을 열어 모리스 경을 재촉했다. 누가 보아도 얼른 할 말 하고 돌아가라는 태도였다. 모리스 경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오늘 이 곳에 찾아온 이유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래. 원하는 보석이 뭔가?”
“대공님은 좀 빠져 주실래요? 모리스 경, 신경 쓰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어떤 보석을 원하시는 건가요?”
리엘라는 모리스 경이 말만 하면 무엇이라도 가져다줄 태세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모리스 경은 뜻밖의 것을 말했다.
“아니, 제가 원하는 건 보석이 아닙니다.”
“네? 보석이 아니라구요? 그럼 뭘 원하시는지….”
리엘라가 의아해하자 그는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레이디 리엘라,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네?”
이 집안은 아들이나 아버지나 갑작스러운 고백을 하는 것이 가풍인가. 하운이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보자 모리스 경이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왕실에서 저와 함께 일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