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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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클로에 베넷
아침부터 공작저는 소란스러웠다. 오늘 처음으로 왕궁에 가게 되는 리엘라를 위해 네아가 바쁘게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왕궁 들어갈 때 규칙이 조금 까다롭거든요. 호슨 공작님의 경우에는 사실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어요. 국왕 전하와 왕비 전하를 제외하고 공작님께 뭐라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아, 하운도 있긴 했는데 공작님이 그는 별로 신경 안 쓰시더라구요.”
네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리엘라의 차림새를 살폈다. 리엘라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왕궁에 들어간다고 해서 대단히 준비해야 할 것은 없었다. 다만 소소하고 이상한 예법을 지켜야 할 뿐이었다. 옷의 단추가 열다섯 개를 넘어가면 안 된다거나 붉은색의 구두는 안 된다거나 하는 그런 예법들.
소소한 부분에서 까다롭긴 하지만 지키는 데 어려운 것들은 아니었기에 평소에 입던 옷에서 최대한 단정한 옷을 입는 것으로 충분했다.
“좀 더 예쁜 옷 입고 가셔야 하는데….”
리엘라의 머리를 다 묶은 네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빗을 든 채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네아의 눈에는 리엘라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어른거렸다.
“꽃 꽂으러 가는데 무슨 예쁜 옷이에요. 앞치마랑 장화, 장갑만 잘 챙기면 되는 거지.”
“그래도….”
이럴 줄 알았으면 장화와 장갑을 제일 예쁜 걸로 사 둘 걸 그랬다고 네아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다른 하녀가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루시안 님께서 오셨어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리엘라는 시계를 본 다음 재빨리 현관으로 갔다. 그 앞에는 왕궁용 예복을 입은 루시안이 서 있었다. 그는 내려오는 리엘라에게 반갑게 손을 들었다.
“잘 잤습니까?”
“네, 이렇게 도와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원탁회의에 대여해 주신 보석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준비 끝났으면 서둘러 갈까요? 왕궁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일찍 가는 게 좋습니다. 첫날이니 좀 더 바쁠 것도 생각해야 하겠지요.”
루시안이 마차에 오르는 리엘라의 손을 잡았다. 필요할 물건들이 제대로 다 실렸는지 점검한 네아가 루시안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가씨를 잘 부탁드려요. 오는 길에 다른 곳 가지 마시고 곧바로 공작저로 오시는 것 알고 계시죠?”
루시안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리엘라를 잘 모시라 당부하는 네아를 보았다. 예전 네아는 호슨 공작과 함께 자주 왕궁에 드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함께 가겠거니 싶었는데 호슨 공작이 죽고 나서 네아에 대해서는 입궁 불허 명령이 떨어졌다. 게다가 되도록 왕궁 근처에 오는 것도 삼가 달라는 요청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원탁회의 의장이 되었을 때 받은 극비 서류에는 네아에 대한 것도 있었다.
호슨 공작의 하녀. 공작이 있는 한 그녀는 안전하다. 하지만 ‘공작의 사후에는 보는 즉시 말살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외 추가 사항은 네아와 관계된 문제가 생기면 하운 대공의 판단에 따라 처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제거해야 하는 존재인가 싶었더니 리엘라의 가게에서 네아와 하운은 서로의 샌드위치를 뺏어 먹고 있었다.
‘문제없다는 뜻이겠지만….’
이 저택에는 그대로 두면서 왕궁에는 출입을 불허하다니. 도대체 네아가 무엇이길래?
“루시안 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그의 시선을 느낀 네아가 다가오자 루시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있어야 할 분이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을 뿐이야.”
“아, 하운 대공이요?”
“대공님은 새벽부터 보석의 방으로 가셨어요. 아마 지금도 두 번째 문을 보고 계시겠지요.”
대답은 네아가 아닌 리엘라에게서 나왔다.
“위험하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얼씬도 못 하게 하니, 혼자서 열심히 하시게 두고 저희들은 응원이나 하죠.”
***
우우웅!
하운의 손바닥에서 붉은색 보석 하나가 떠오르더니 잘게 떨렸다. 파동음을 내던 보석이 다시 손 위로 툭 떨어지자 하운은 조심스레 두 번째 문을 손으로 밀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거대한 나무 문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하운은 보석을 상자에 넣고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밤새 자지 못한 채 문 앞에 있었더니 뻑뻑한 눈이 피로를 호소했다. 힘든 것은 눈뿐만이 아니다. 멍한 머리도 그의 피로함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문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거지, 호슨 공작.”
하운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온갖 속성의 보석들은 전부 다 사용해 봤는데 이 문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남은 시간을 헤아리던 하운은 인상을 찡그렸다. 모든 게 짜증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유언장도, 열리지 않는 두 번째 문도, 제 말을 듣지 않고 가 버린 리엘라도.
“…아니, 그건 나랑 상관없지.”
생각에 잠겼던 하운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해 보면 리엘라가 왕궁에 가건 말건 자신과 관계없다. 그녀가 보석의 방에 출입을 허가하지 않고 갔으면 모를까 ‘네, 네. 마음대로 하세요.’라면서 자신이 뭘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생각을 그만하고 문을 여는 일에나 더욱 집중해야 했다.
일어선 하운은 고개를 돌리다 시계를 보았다.
“출발했겠군.”
시각을 보니 이미 왕궁으로 출발했으리라. 왕궁에 간다고 들떠 있던 리엘라의 모습이 생각났다.
“거기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하운은 왕궁의 정원을 떠올렸다.
수도에 많은 귀족들의 정원과 평민들을 위한 공원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종류의 식물이 사는 곳은 역시 왕궁의 정원이었다. 각각 계절에 따라 꾸며진 큰 네 개의 중앙 정원과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작은 정원이 열다섯 개. 종류별로 식물들을 나눠 기르는 온실이 세 개에 꽃만 중점적으로 기르는 화원이 두 개.
모리스 경은 플로리스트라고 해서 단지 왕궁 내부에 둘 장식용 꽃만 담당하지는 않았다. 왕실의 정원 중 여름의 중앙 정원과 작은 정원 두 개, 온실 하나, 화원 한 곳이 그의 담당이었다. 리엘라는 그곳들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것이다.
‘그것 말고도 좋아할 게 많겠군.’
모리스 경은 왕궁의 정원에 많은 것들을 심어 두었다. 그중에는 희귀하거나 아직 개량이 끝나지 않아 이름이 붙지 않는 장미도 많았다. 그것들은 단지 관상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선물로 주는 것들 중에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보나 마나 어떻게 하고 있을지 뻔하군.’
보석의 방에서는 태연했으면서 그곳에서는 꽃과 나무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없겠지만….’
정말로 안전이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왕궁 안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위험한 자들은 바쁜 왕의 눈을 피했을지는 몰라도 왕비 레티시아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제로 왕궁 내 침입을 시도하는 모든 위험을 그녀가 전부 걸러 내고 있다. 결혼 전에도 특수부서에서 일하던 실력은 왕비가 되고 나서 더욱 향상되었다.
레티시아를 떠올리자 그녀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레티시아는 하운에게 리엘라와 결혼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리엘라에게 순순히 입궁 허가를 내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안 하겠다고 하면….’
그러면 레티시아는 리엘라를 붙잡아 둘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어차피 유언장을 찾고 보석을 다 회수하면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는 다시 문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은 문을 여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래야 하는데…. 여전히 리엘라의 일이 거슬렸다. 왕궁이 안전하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레티시아도 사람이니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루시안 놈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그렇다면 역시 리엘라의 주변을 지킬 사람은 한 명 정도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경비병이 출입증을 돌려주며 고개를 숙였다. 마차는 다리를 건너 성문 밑을 천천히 지났다.
“와….”
리엘라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왕궁의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도의 북쪽에 자리 잡은 왕궁은 워낙에 큰 곳이라 수도 어디에서도 높은 성벽과 그 성벽 위로 올라온 본궁의 윗부분을 볼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봐 온 익숙한 곳이었지만 한 번도 그 너머를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저번에 네아와 함께 근처까지 왔을 때도 밖에서만 둘러보았다.
왕궁의 안쪽은 신문의 기사나 소설에 나오는 묘사를 통해 상상해야 했다. 특히 리나는 왕궁이나 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많이 사 모았고, 리엘라는 그중에서 왕궁을 설명하는 책을 빌린 적이 있었다.
‘여기가 정문이니까 쭉 뻗은 길이 에르첼라 대로야.’
왕궁이라고 하지만 안쪽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와 같았다. 큰길은 물론 왕궁 안을 따로 돌아다니는 마차가 있으며 곳곳에는 간단한 음식과 물건을 파는 가게까지 있었다.
책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모습도 보였다. 리엘라가 보이는 모든 것에 감격하고 있을 때, 마차는 본궁을 멀리 돌아 왕궁의 정원으로 향했다. 이윽고 마차는 정원의 외곽에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다 왔습니다. 여기가 정원사들과 플로리스트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사계의 영광’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만 보통 정원 관리부라고 부릅니다. 워낙에 영광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이 많다 보니 이렇게 부르지 않으면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루시안의 말을 머릿속에 잘 새겨 넣으며 리엘라는 마차에서 내려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제 당분간 이곳을 드나들며 모리스 경을 도와야 한다.
‘내가 왕궁에서 모리스 경 밑에서 일을 하게 되다니….’
너무 허황된 일이라 상상조차 못 해 본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리엘라는 감격에 젖었다. 오늘 밤 공작저에 돌아가면 아주 긴 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들어가지요.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네!”
루시안의 안내에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안쪽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리엘라가 물러섰을 때 나오던 사람들 중 제일 앞에서 있던 여자가 루시안을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루시안 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클로에 양.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클로에가 알겠다는 듯 웃으며 리엘라에게 말을 걸었다.
“이 분이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시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클로에 베넷. 모리스 경의 ‘옛’제자랍니다.”
클로에는 ‘옛’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