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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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빛나는 꽃
아주 화창한 날 오후. 리엘라는 마차 안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쩌지….”
네아가 가져왔던 건 수표뿐만이 아니었다. 신발 가게 주인이 자리를 떠난 후에는 이건 진짜라면서 티 파티의 초대장을 내밀었다. 리엘라는 수표보다 그쪽에 더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정말로 공작이 자신을 초대했다고?
이 초대장 역시 안 받아 주면 돌아갈 수 없다 눈물짓는 네아를 보고 엉겁결에 받아 들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 리엘라는 공작가에서 보내 준 마차를 타고 공작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돌아다니다가 아주 멀리서 공작의 저택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큰 곳인지 정문에서는 나무에 둘러싸인 공작저의 지붕 끝만이 멀리 보였었다. 그 앞을 지나며 우린 평생 이런 곳 들어갈 일 없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들어오다니.
들뜬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차를 타고 한참이나 들어왔는데 또 문을 지났다. 그리고 언덕 세 개를 넘고 나서야 저택이 보였다. 낮은 잔디 언덕들 사이에는 사슴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었고, 멀리 큰 연못에는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분수가 보였다. 그 너머에 호슨 공작의 저택이 있었다.
브릭스 거리 수십 개는 들어갈 것 같은 광대한 영토에 리엘라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공작님이 부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상상을 넘는 규모였다. 리엘라는 제가 기억하고 있는 호슨 공작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호슨 공작은 보석들의 힘을 끌어내는 능력이 천재적인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또한 갖고 있는 보석들 역시 대륙의 그 어떤 보석술사보다 많다고 했다. 꽃을 포장하는 신문에 호슨 공작이 소르디아 보석 경매장에서 구입한 보석 하나가 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 시란의 1년 예산과 같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보석도 공작이 소유하고 있는 보석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왜 이걸 들고 왔지….”
울상을 한 채 리엘라는 제 품의 화분을 바라보았다.
사실 리엘라는 귀족의 티 파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책에서 본 티 파티의 모습은 귀족가의 영애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유명한 파티시에들이 만든 과자와 함께 먼 대륙에서 건너온 홍차를 마시며 우아하게 사교계의 화제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것이었다.
‘언젠가 꼭 한 번 보고 싶었긴 했어.’
그래서 덜컥 초대장을 받아 든 것이 실수였다.
네아가 돌아간 다음 부리나케 서점으로 뛰어가 예법에 대한 책을 사서 티 파티에 대한 것을 보았다. 보통 어떤 옷을 입는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차는 어떻게 마시는 것이며, 다과를 먹을 때 식기 예절 등등….
그러다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티 파티에 초대되었을 때는 초대한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것을 알고 리엘라는 호슨 공작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하루 내내 고민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보통 선물이란 ‘궁금하긴 하지만 내 돈 주고 사기는 어쩐지 조금 아까운 것’을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리엘라를 초대한 상대는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니 대륙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호슨 공작이다. 그런 호슨 공작이 돈 때문에 사기를 망설일 만한 물건이 있을 리가 없었다.
리나와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언을 구해 봤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선물은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고민하는 사이에 오늘이 오고 말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리엘라는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제 방 창문에 놓여 있던 화분을 들어 조심스럽게 포장했다. 그것이 지금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화분이었다.
‘이것도 빛나는 꽃이긴 하지만 아직 덜 피었는데.’
오래전, 처음 가게를 내었을 때 조부모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받았던 화분이었다. 몇십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꽃이었다.
가게 주인은 마지막 꽃이 언제 피었는지 모르겠다며, 운이 좋으면 당장 내년에라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부모는 결국 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했고 몇 년이 지난 올해야 겨우 봉오리를 맺었다.
봉오리의 겉이 노란색으로 물든 것으로 보아 노란 꽃이 필 것이 분명했다. 리엘라는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빛나는 꽃봉오리를 쓰다듬으며 가까워지는 저택을 바라보았다.
***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저택 앞에 멈췄다. 리엘라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집사와 하인들이 나와 마차의 문을 열어 주었을 때, 리엘라는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허둥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집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저택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작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네, 네!”
집사의 말에 리엘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히고 사방이 조용해지자 리엘라는 그제야 움츠린 어깨를 펴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우와….”
귀족의 저택에서 손님들이 기다리는 방은 화려하고 흥미롭게 꾸며져 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손님이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게 함과 동시에 그 가문의 재력과 위세를 자랑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곳은 정말로 완벽한 곳이었다.
아주 먼 나라의 것이 분명한 이국적인 무늬의 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금박의 무늬가 있는 큰 접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표정과 생동감 있는 색깔의 도자기 인형 그리고 도대체 어떤 동물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분명한 다리 여덟 개 달린 동물의 화석까지.
그것을 보고는 리엘라는 제 품에 들려 있는 화분을 다시 보았다. 갑자기 제 품에 들려 있는 화분이 세상에서 제일 초라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이라도 나갔다 오면 안 되려나?”
리엘라는 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이 화분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제가 기른 백합을 보고 가치에 정당한 지불을 하겠다 말하며 많은 돈을 지불한 호슨 공작이다. 게다가 남은 꽃들도 보냈더니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또 보냈다. 그래서 혹시나… 제게 보이는 것이 공작에게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보이는 게 아니라면….’
리엘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품에 안은 화분을 보았다.
반짝거리는 꽃은 신기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반짝거리고 좀 오래 싱싱하다 뿐이지 다른 꽃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냥 조금 신기한 꽃. 그게 전부다. 그런 것이 선물이 될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아….”
다시 리엘라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되잖아! 네아! 네아는 어디에 있지? 공작님을 만나기 힘들다면 네아라도 불러와!”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졌다.
“아가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곤란해하는 집사의 목소리도 들리자 리엘라는 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이걸 봐. 아직 힘은 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보석이야.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지. 내가 소르디아에서 얼마를 주고 사 왔는지 너희들을 짐작도 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 어서 공작님을 만나게 해 줘! 빨리 이 보석을 드리고 싶단 말이야.”
밖에서 소리를 지르는 여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은 어떤 보석을 호슨 공작에게 바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리엘라는 화분을 끌어안았다.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빨리 공작저 근처에 있던 고급품 상점이라도 다녀오는 것이….
달칵!
그때,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일단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어서 빨리 공작님께 연락을…. 저건 뭐야?”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리엘라를 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녀가 왜 여기 돌아다녀? 게다가 화분까지 들고.”
“카밀라 아가씨, 이분은 오늘 공작님께서 초대하신 손님이십니다. 부디 예의를.”
카밀라가 리엘라를 향해 저것이라 부르자 집사의 목소리가 굳었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끼고 리엘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공작님께서 초대? 손님?”
그렇잖아도 날카로운 카밀라의 목소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녀는 리엘라의 앞으로 다가와 명령했다.
“너, 얼굴을 들어.”
“네, 네!”
리엘라가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에 보라색 눈을 가진 아름다운 카밀라가 서 있었다. 입고 있는 옷과 태도를 보아하니 분명 꽤 세력이 있는 가문의 영애가 분명했다.
“네가 공작님의 손님이라고?”
“네. 오늘 티 파티에 초대 받아서….”
“뭐? 티 파티?”
리엘라의 앞에 선 카밀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럴 리가. 공작님께서는 지난 몇 년간 누군가를 저택으로 초대하신 적이 없어. 그런데 뭐? 티 파티?”
싸늘한 카밀라의 시선에 리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때 카밀라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 후줄근한 화분은 뭐야? 꽃도 달랑 한 송이밖에 없는 게. 너 이거 설마 선물이라고 들고 온 거니? 이게 공작님을 뭘로 보기에 이런 걸 선물이라고 들고 와?”
카밀라는 정말로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을 하며 손에 들려 있던 부채로 리엘라의 손을 가볍게 때렸다.
그 순간 잔뜩 긴장해 있던 리엘라가 놀라 뒤로 물러나려다 손에 들려 있던 화분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떨어진 화분은 바닥에 부딪혀 큰 소리를 내며 깨지고 말았다. 그때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공작님!”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카밀라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의 오만한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아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가슴에 한 손을 올린 채 호슨 공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카밀라 레드버리. 위대하신 수호자이신 호슨 공작님께 인사드립니다.”
카밀라는 고개를 들라는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카밀라의 기대와 달리 호슨 공작은 아무 말이 없었다. 결국 카밀라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
저절로 숨이 멈췄다. 호슨 공작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굳은 얼굴로 카밀라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