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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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배가 고프니까 헛것이 보이나? 그러면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보여야 하는데 왜 대공이 보인단 말인가? 게다가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어? 그리고 ‘식사 가져왔다’? 언제부터 대공이 식사를 배달해 주는 사람이 된 거지?
리엘라는 장갑을 낀 손등으로 눈을 쓱쓱 비볐다. 하지만 하운은 멀쩡하게 문 앞에 서 있었다.
심지어 그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는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풀풀 풍겼다. 환상이 아니었다.
***
하운이 가져온 바구니를 열자 그 안에서 먹을 것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멜다 부인이 자신을 한 네 명 정도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리엘라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펼쳤다. 원래 자주 먹는 샌드위치에는 삶아 으깬 계란과 썰은 아보카도를 올리고,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그리고 다른 통을 열자 패스트리지를 감싸 익혀 낸 다음 얇게 썬 소고기와 소스 그리고 구운 야채가 있었다. 거기에 허브와 소금을 넣고, 올리브 기름에 볶아 낸 감자 요리에 버섯과 시금치, 토마토가 가득 들어간 프리타타….
“좋아하는 걸로만 만들어 주셨네.”
돌아가면 사랑한다고 다시 붙들고 늘어져야지. 제 안에 멜다 부인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짐을 느끼며 리엘라는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멜다 부인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멜다 부인을 위한 짧은 기도가 끝나자 리엘라는 이것을 갖고 와 준 하운을 보았다. 그는 리엘라의 맞은편에 앉아 풀어도 풀어도 끝없이 나오는 음식을 놀랍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샌드위치를 집자 리엘라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드실 거예요?”
“…먹으면 안 되나? 이렇게 많은데.”
하운은 리엘라의 말에 잡았던 것을 놓았다.
“그게 아니라 왕궁이잖아요.”
“그런데?”
리엘라는 창문 너머의 본궁을 보았다. 지금 당장 저기에 가면 하운은 왕궁의 요리사들이 막 만든 호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셔서 굳이 저랑 같이 식사하시게요?”
요즘 계속 반쯤 시비 걸듯 말하며 저를 피하는 하운이었다. 그런데 굳이 왕궁까지 와서 저와 함께 앉아 식사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본궁에 가면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
그 말에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많은 대신들이 노리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능력 있는 보석술사이니 그와 조금이라도 인연을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이런 구석의 건물, 그것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꽃줄기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작업대 위에서 식사를 하고 싶나?
리엘라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하운은 황급히 덧붙였다.
“그리고 이런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것은 무척이나 낭비라고 생각하고.”
대공이 뭘 그런 것까지 신경 쓰냐고 물으려다 그가 대공이라기보다는 군인에 가깝다는 것이 생각났다. 북부 전선 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몬스터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굶는 데다가 식량 역시 마른 빵이나 고기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멜다 부인의 음식을 남길 수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리엘라가 겨우 납득한 것 같자 하운은 재빨리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모리스 경이 안 보이는군. 어디 갔지?”
“아침에 루시안 님께 들었는데 몸이 안 좋으시대요. 아직 연락은 받지 못했지만 오늘 못 오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 그대 혼자 계속 일해야 하는 거야?”
올라간 하운의 목소리에 리엘라는 귀를 막았다. 깜짝이야.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어쩌겠어요. 사람이 없는데.”
“여긴 왕궁의 정원 관리부야.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음, 그게….”
하운에게 모리스 경과 클로에 베넷의 이야기를 해도 될까 고민하던 리엘라는 적당히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다들 좀 더 급한 정원 일에 매달려 있으니까요. 그쪽에 삽목한 장미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전부 다 죽을 위기인걸요. 그리고 제때 작업 못 해서 꽃을 피우지 못할 처지인 식물들도 많구요. 그리고 제가 맡은 일은 혼자서 못 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아직 왕실 교본을 다 못 외워서 혹시나 예법에 어긋나는 게 있진 않을까, 하는 게 문제지….”
“그럼 다른 플로리스트들은 뭐 하고?”
“그쪽은 그쪽의 일이 다 있지요.”
“그래도 도와줄 사람은….”
“다른 곳에서 사람들 마구 데려오면 모리스 경 평판도 나빠지고 곤란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죠.”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문 다음 리엘라는 손을 털었다. 몇 입 먹었더니 허기가 가셨다. 이 정도 먹었으면 저택에 돌아갈 때까지는 문제없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전 다시 일해야 할 것 같으니 편하게 드세요. 전 다른 쪽 테이블 쓸게요.”
리엘라가 일어나서 다시 꽃을 챙기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하운이 망설이다 말했다.
“…도와주지.”
“네에?”
그의 말에 리엘라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서 드시고 가 보세요. 왕궁에 일이 있어 오시는 김에 바구니 가져다주신 거잖아요. 약속한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괜찮아. 생각해 보니 약속 시간까지 한참 남았군.”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 여기 있으려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그냥, 이라는 말로는 절대 그냥 물러설 것 같지 않은 그녀의 태도에 하운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 대답했다.
“우려스러운 점이 있어 확인하고 싶은 거야. 모리스 경을 통해 누군가가 그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려 든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모리스 경께서 직원들을 불러 부당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당부까지 하셨어요. 모리스 경은 정말로 제가 필요해서 부탁하신 거라니까요.”
“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도 신경 쓰여. 만약 여기서… 빛나는 꽃이라도 길러 내면 문제가 생기니까.”
하운은 목소리를 낮추어 빛나는 꽃을 말했다. 그의 말에 리엘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그거 쉽게 길러 낼 수 있는 것 아니라니까요. 지금까지 처음 공작님께 드렸던 백합과 지금 제 방에 있는 노란 꽃 외에는 아직 없어요. 며칠로는 어림도 없고 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한다구요. 엘피안 꽃이 아직도 반짝이지 않는 거 보면 아시잖아요.”
“정성을 들이고 있긴 하군.”
“당연하죠. 그게 어떤 꽃인데요! 근데 왜 그런 표정이세요?”
리엘라는 웃다 찌그러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하운을 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건 도대체 무슨 표정이야?
“어쨌든 엘피안은 정말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빛나게 되면 절반은 드릴게요. 어디 보자, 절반이면….”
“세 송이지. 확실하게 여섯 송이 피어 있는 거 봤으니까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말도록.”
“…어떻게 아세요?”
“응? 무슨 소리야?
“엘피안 꽃이 여섯 송이인 거 어떻게 아시냐구요.”
“그거야 온실에 갔을 때 봤으…!”
하운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리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하운은 등을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거대한 바위만 한 플레노트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았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온실에 오셨다구요? 언제 오셨죠?”
“그, 그게….”
“제가 기억하기로 봉오리가 하나 더 늘어난 이후로 분명히 대공님께서 온실에 오신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엘피안 꽃이 워낙에 귀한 것이다 보니 온실에 낯선 사람은 절대로 안 들이는 거 아시죠?”
“아니,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엘피안 꽃이 멋대로 다른 자리에 있었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이 언제인지 떠올린 리엘라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석의 방 열기 전날이었는데, 그날 저택에 오셨던 거예요?”
“아니, 난….”
“오셨어요, 안 오셨어요?”
답을 알고 있으니 너는 대답이나 하라는 단호한 목소리에 하운은 대답하고 말았다.
“그날 가긴 갔어.”
“왜요?”
“그게….”
왜 갔더라? 하운 본인도 그날 왜 갑자기 저택으로 향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신 차리니 공작저 옆이었고…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대답에 설득력이 없는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괜찮은 대답을 찾던 그는 결국 그럴싸한 대답을 찾아냈다.
“보석의 방을 열기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저택 대비는 완벽했어요. 그럼 제가 들어갔을 때 온실 안에 계셨어요?”
“…있었어.”
그 말에 리엘라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 안에서 엘피안 꽃을 끌어안고 미친 사람처럼 쪽쪽 입을 맞추고 주접을 떨었는데 그 꼴을 다 봤구나 싶었다. 민망함에 붉어진 뺨을 손등으로 식히다 고개를 돌리니 하운의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져 있었다. 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지만 대공님은 왜 저러는데?
둘 다 다른 이유로 말을 잃고 서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리엘라는 놀라 테이블을 후다닥 다른 천으로 덮어 두고, 하운에게 잠시 뒤쪽에 서 있으라 말한 다음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문을 열어 보니 마틴이 서 있었다. 그가 안쪽에 누가 있는지 살피듯 흘끔거리자 리엘라는 그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몸으로 쓱 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오늘 세 시까지 꽃들 전부 다 준비해야 하는 거 기억하고 있습니까? 혹시 힘들면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마틴이 들어오려고 하자 리엘라는 그를 막아섰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전 괜찮아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그쪽 작업실로 찾아갈게요. 그럼 이만….”
필요없다는 듯 문을 쾅 닫아 버리자 한참 후 밖에서 서성이던 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후우….”
“왜 숨기는 거지?”
언제 다가온 것일까. 하운이 그녀의 앞에서 못마땅하다는 듯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바로 대꾸했다.
“아니, 그럼 지금 다른 사람에게 제가 대공님을 바구니 심부름꾼으로 썼다고 알리고 다녀야겠어요? 게다가 저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왕실에서 저랑 대공님이랑 엮으려고 압박할 수 있다면서요? 그런데 여길 찾아왔다고 소문나면 어떻게 해요? 그럼 다들 오해할 것 아닌가요?”
리엘라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런데도 그 말이 왜 이렇게 짜증 나는지 하운은 알 수 없었다. 하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말건 리엘라는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보자… 세 시면 두 시간 반 정도 남았는데….’
작업실의 테이블에는 마무리를 기다리는 장식이 스무 개 정도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움직이면 세 시 전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끝낼 수 있으리라. 리엘라는 제가 먹고 남은 흔적을 재빠르게 치웠다. 하운도 어느새 다 먹었는지 대부분의 통이 비었길래 전부 바구니에 밀어 넣듯이 정리했다.
“저 지금부터 정말로 집중해서 작업해야 하니까 이만 가 보세요.”
리엘라가 등을 떠밀었지만 하운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아직 줄기에 잎이 붙어 있는 장미와 날카로운 짧은 칼에 닿았다.
“저건 뭐지?”
“다른 장미들 먼저 손질하다 아직 다 못 끝낸 것들이에요. 꽃 칼로 손질해야 해서 놔뒀어요.”
마틴이 맡겼던 것을 먼저 하느라 제가 쓸 것은 잠시 내버려 두었었다.
‘쓸 만큼만 빨리 끝내야겠어.’
보인 김에 처리할 생각으로 리엘라는 꽃 칼을 들고 빠르게 장미를 쳐 냈다. 그러면서 하운에게 말했다.
“안 가세요?”
하운은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남아 있던 장미와 한 개 더 있던 꽃 칼을 들었다. 여기에 좀 더 남아 있을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