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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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카르디아의 왕비가 머무는 방은 왕의 방 못지않게 호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시녀와 하녀들이 재빨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겉옷을 벗기고 머리 장식을 풀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소파로 다가가 몸을 묻었다.
오늘도 복잡한 일들이 많았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벽난로 위에 크고 풍성한 꽃 장식이 놓여 있었다. 레티시아의 시선이 잠시 꽃에 닿았다. 그러더니 옆에 서 있던 시녀장을 불렀다.
“시녀장.”
“네, 전하.”
“저 꽃 장식 말인데….”
거기까지 말하고 레티시아가 다시 한참이나 바라보자 잠시 당황하던 시녀장이 먼저 말했다.
“조금 전에 하운 대공님께서 가져오셨습니다.”
“하운 대공이? 저것을? 다른 말은 없었고?”
“네.”
레티시아는 몸을 일으켜 꽃 장식으로 다가갔다. 왕과 왕비의 방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은 엄격한 규칙을 따른다. 꽃 장식들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 이것에 눈이 갔던 이유는 평소와 다른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티시아는 그런 작은 변화를 절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꽃을 살핀 다음 아래까지 살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꽃도 문제가 없었고. 한참이나 장식을 살피던 레티시아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리엘라 테니어가 들어왔지.’
레티시아는 당돌하게 저를 찾아와 모리스 경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말한 클로에 베넷을 떠올렸다. 그녀는 모리스 경의 사람들도 다 빼돌렸다고 했다. 그리고 모리스 경이 빈자리에 새로 들인 사람이 리엘라 테니어다.
리엘라 테니어. 골치 아픈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신경이 쓰였다. 그녀에게 물려 있는 호슨 공작의 재산이 너무도 많다. 어떻게든 유언장의 허점을 파고들어 보석들을 왕실이 확보하려 했으나 호슨 공작은 철저하게 그것을 막았다. 변호사들을 회유해 보려고도 했는데 전부 다 호슨 공작에게 목숨을 빚진 사람들인지라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죽고 나면 하운이 전부 다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그거대로 꽤 문제라서 손을 쓸 작정이었는데 리엘라 테니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날 줄이야.
눈을 감은 레티시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것이든 왕실에, 정확히는 레이안과 하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그녀가 어릴 적 왕궁으로 들어와 만난 서로를 아끼는 형제는 처음 봤을 때, 둘 중의 하나가 죽겠다 싶었다. 그래서 레이안이 제게 고백했을 때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이쪽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시체와 결혼하는 취미는 없었기에 레티시아는 이 두 형제의 사이를 조율해야 했다. 균형을 지키고 대립을 막아야 했다. 그러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 왕비의 자리인데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정말로 피곤한 자리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유지해 왔다. 그런데.
“…리엘라 테니어.”
보석 때문이라 하기에는 하운의 변화가 너무 컸다. 어떤 관계로든 하운과 계속 얽힐 가능성이 높은 여자였다. 그렇다면 이 여자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하운과 계속 접촉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좋을까? 아니면 떨어트려 두는 게 좋을까?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정보가 부족해.’
조금 더 지켜보아야 확실해질 것이다. 사실, 공작저 안에 있는 그녀를 감시하기가 불편했기에 왕궁에 들어오겠다고 했을 때 재빨리 허가를 내어 주었다. 이 안에 있으면 제 사람들이 편하게 리엘라 테니어에 대한 것들을 알아 올 수 있으니까.
‘조금 건드려 볼까.’
레티시아는 감았던 눈을 뜨고 꽃 장식을 보았다. 평소와 다른 미묘함에 트집을 잡아 리엘라 테니어를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징계를 가하는 쪽으로. 그럼 하운은 어떻게 나오려나.
레티시아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레티시아의 곁에 있던 시녀장이 허리를 숙이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누가 들어온 것인지는 뻔했다.
“레티시아, 피곤해?”
다정한 레이안의 목소리에 그녀는 팔을 뻗었다. 어서 와서 안아달라는 뜻이었다. 레이안은 제 부인의 요구에 기쁜 마음으로 몸을 맡겼다. 조용한 방에 쪽쪽 서로의 입술을 찾는 소리가 울렸다. 누가 보면 몇 년은 만나지 못한 사람처럼 서로를 탐한 부부는 함께 넓은 소파 위에 누워 시선을 마주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당신이 나에게 고백했던 때요. 펑펑 울면서 좋아한다고 하길래 무슨 벌칙을 받는 줄 알았지.”
레티시아가 오래전의 일을 말하자 레이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게다가 ‘좋아한다’ 다음에 한 말이 ‘하운 좀 살려 달라’였잖아요.”
“…그때는 좀 절박했거든.”
선 왕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왕 역시 몇 달 후 따라가듯 숨을 거두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의 레이안은 갑작스레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겁고 중요한 짐이 자신의 동생인 하운이었다. 레이안은 알아차렸다. 가만히 있으면 하운이 죽거나 제가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예정보다 좀 더 빨리 레티시아에게 고백했다. 그녀라면 자신을 도와 하운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명망 있는 가문의 영애들을 제치고 갑작스레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된 레티시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하운을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보내 버린 것이었다.
다시 제 부인이 생각에 잠기자 레이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제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오늘 꽃 장식 말이야. 하운이 가져다주었대.”
그 말에 레티시아는 손가락으로 제 방에 있는 장식을 가리켰다.
“마음에 들어요?”
“응. 평소보다 더 싱싱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레티시아는 제 남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당신이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좋네요.”
얼굴 이곳저곳에 쏟아지는 아내의 키스에 만족스러워하던 레이안은 레티시아를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레티시아는 그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생각했다.
남편이 좋아하니 지금은 그대로 놔둬야겠다고.
***
모리스 경이 오지 않았던 날, 하운은 루시안에게 리엘라가 돌아가는 길은 제가 함께할 테니 오지 않아도 된다 연락했다. 그러면서 모리스 경이 좀 더 연락을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는 말도 함께 보냈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 모리스 경은 리엘라에게 연신 미안하다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편지까지 적어서 함께 보냈는데 전달이 안 되었을 줄이야…. 어제저녁에 루시안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지 뭡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갈 것을….”
“아니에요. 이제 몸은 좀 괜찮으세요?”
“잠시 근육이 놀랐던 것뿐이라 이제는 괜찮습니다. 세상에, 그 일을 혼자 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혹시 왕궁에서 별다른 연락을 받은 건 없었습니까?”
모리스 경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눈치챈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별다른 연락은 없었어요. 교본을 보고 최대한 주의 사항을 지키려고 노력했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나 봐요.”
“그렇군요. 허, 참. 물어보니 모자를 쓴 파블로라는 사람이 받았다 하는데 그런 이름은 정원 관리부에 없단 말입니다. 지나가던 다른 부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받았으면 전달해 줘야지 원….”
그 말에 리엘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분명 어제 꽃을 찾으러 왔던 마틴의 주머니에 모자 같은 게 꽂혀 있었는데.
리엘라는 작업실로 가 손질해 둔 꽃들을 보았다. 어제도 마틴은 손질할 꽃들을 잔뜩 주고 갔다. 조금 기다리자 역시나 그가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그는 대충 인사한 다음 꽃이 담겨 있는 통을 들며 말했다.
“어제 보니 손질 잘해 놨더군요. 그래도 좀 모자란 점이 있으니 더 신경 쓰기를 바라요. 왕궁에서 기초적인 것을 하나씩 알려 줄 순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할게요.”
“그보다… 어제 바구니 들고 그쪽 찾아온 사람 있었는데 누굽니까?”
누구긴 누구야. 왕의 동생이고 공작저에서 먹고 자는 하운 대공이지. 리엘라는 필사적으로 그 말을 삼켰다. 다행히 마틴은 하운이 누구인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희 집에 계시는 기사분이세요.”
“그래요? 무척 태도가 별로던데 주의 좀 하라고 전해요. 게다가 그런 식으로 외부 사람을 멋대로 들어오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주의를 주지도 못했네요. 앞으로 조심해요.”
“네, 죄송합니다.”
리엘라가 별다른 말 없이 고분고분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보고 마틴은 만족스러웠다. 어제는 조금 까칠하게 굴더니 하루가 지나니 얌전하게 군다. 역시 어제 제가 일을 던져 주며 강하게 나간 것이 먹힌 모양이라 그는 생각했다.
“오늘도 오후에 손질할 꽃들 갖다 줄 테니 작업 잘 끝내고 가도록 해요.”
“물론이죠. 걱정 마시고 맡겨 주세요.”
리엘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
“마틴, 미안하지만 어제 만든 장식 두 개 다 쓸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는 클로에의 얼굴에는 미안한 빛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마틴 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말을 이어 갔다.
“며칠 전에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던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교본에 있는 기본 상식조차 틀리면 어떻게 하나요? 외무부의 회의실에 들어가는 장식에는 절대로 흰색 수선화를 쓰면 안 된다는 걸 몰랐나요? 그것도 문제지만 배치도 전부 엉망이에요.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은 오히려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무겁게 마틴의 어깨를 짓눌렀다.
“내가 아직 마틴을 믿는 이유는 아침 일찍 누구보다도 먼저 와 준비하는 데다가 꽃 손질도 완벽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해요.”
“…….”
“이번 주까지 단 한 개도 제 기준을 통과 못 할 경우에는 다른 쪽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 말은 자신의 밑에서 나가라는 소리였다.
마틴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클로에의 작업실에서 나왔다.
“젠장….”
이제 어떻게 하지? 모리스 경 밑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그 영감은 이미 내가 클로에에게 붙었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마틴은 짜증 섞인 발걸음으로 쿵쿵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 리엘라가 일하는 작업실을 지나치려 하다 발걸음을 멈췄다.
“…….”
열린 문 사이로 작업대 테이블 위에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