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63
66
‘그럴 줄 알았어.’
짐작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리엘라는 계속해서 마틴을 바라보았다. 왕궁의 시종들이 돌아가고 클로에 쪽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작업실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 건 멋지네요. 마틴이 매일 이렇게만 만들어 주면 좋을 텐데.”
“제가 저번에는 긴장한 탓에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마틴을 너무 긴장하게 만들었던 게 문제일까요? 여하튼 다음 것도 기대할게요. 오늘 다섯 개나 만들어서 다음번에는 다시 못 만드는 거 아닐지 몰라.”
“하하….”
클로에의 말에 마틴은 멋쩍은 웃음소리를 냈다. 리엘라는 그가 왜 그런 웃음을 짓는지 알 것 같았다.
‘노트에 그려진 게 다섯 개였으니까.’
짐작건대 가져간 노트로 만든 것들이 클로에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잘한다 해 주었을 테고 마틴은 신나게 다른 것들도 만들었겠지. 아마도 오늘 가져간 노트에 있는 것을 전부 다 만들었을 것이다.
리엘라가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래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뚝 멈췄다.
‘무슨 일이지?’
다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밑을 보니 모리스 경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단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서로 무슨 말 한마디라도 섞을까 싶었는데 상대를 발견한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
“…….”
그 침묵에 주변의 사람들이 더 눈치를 보며 슬슬 뒤로 물러났다.
모리스 경이 클로에를 보는 시선에는 제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서글픔이 보였다. 하지만 클로에는 그런 모리스 경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싸우게 된 이유가 뭘까.’
며칠 있는 동안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지만 모리스 경이 했다는 ‘그 말’과 ‘그 행동’이 뭔지 아직도 리엘라는 알아내지 못했다.
잠시 후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향했다.
‘이래서야….’
화해하기는커녕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닌데….’
원예 신문에는 왕궁 정원 관리부의 이야기가 자주 올라왔었다. 지난 몇 년간 기사의 내용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모두를 이끄는 모리스 경과 그 밑에서 모리스 경이 미처 다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확실하게 지원하는 클로에 베넷.
두 사람은 언제나 꽃 축제에 왕궁 정원의 명예를 걸고 새로운 품종을 출품했고 새로운 작품을 내었다. 그래서 올해 꽃 축제도 기대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이 올해 함께 참가할 일은 절대로 없다.
올해 드디어 참가권을 얻어 같은 곳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제가 동경하던 두 사람이 빠진 꽃 축제라니. 리엘라는 입술을 물었다. 모리스 경만 도우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다시 화해시키고 말리라. 왕궁 정원 관리부를 위해서, 그리고 내 꽃 축제를 위해서라도.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이 화해하길 바랐던 마음에 목표까지 더해지자 의욕이 솟았다.
‘일단 대화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야기하다 싸우더라도 일단은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둘이 조용히 이야기하게 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리엘라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마틴이 다시 복도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본 리엘라는 숨을 삼켰다. 그의 손에 제 노트가 들려 있었다.
“…….”
리엘라는 조심조심 소리가 나지 않도록 계단을 내려왔다. 벽에 붙어 복도를 슬쩍 보니 복도의 끝에 있는 제 작업실에 마틴이 두리번거리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마틴은 작업실을 나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가까이 오는 것을 본 리엘라는 재빨리 계단 위로 올라갔다. 마틴의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갔다.
“하.”
안을 본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테이블 위에 노트와 펜이 그대로 놓여 있었으니까. 게다가 제가 필기하다 나간 딱 그 부분을 펼쳐 놓은 채, 펜도 그대로 있었다.
‘가져갔던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해 놨네.’
만약 자신이 조금 전에 작업실에 들르지 않았다면 나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 놨다는 건… 또 가져가겠다는 소리인데.’
오늘 가져간 이 디자인들은 이미 다 써 버렸으니 클로에의 마음에 들려면 새로운 것이 필요한 게 분명하다. 그러니 안 가져갔던 척 돌려두고 자신이 새로운 것을 적어 두면 또 가져가려고 했겠지.
‘이걸 어떻게 할까.’
어차피 마틴이 할 일을 떠넘기는 것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 조금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일까지 할 줄이야. 꽃을 맡긴 것은 같은 동료끼리 서로 맡길 수도 있는 일이라 잡아뗄 수 있지만 이건 그냥 넘어가지 못하리라.
‘게다가 모리스 경이 꽤 싫어하는 일이기도 하고.’
모리스 경만 싫어하나. 클로에도 싫어하지.
‘그렇다면….’
리엘라는 테이블에 앉아 조금 전 정원에서 들었던 내용을 노트에 적어 가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이걸 좀 이용할 수 있으려나.’
14. 장미 전쟁
“별일도 다 있다.”
점심의 수프를 뜨던 하운은 레이안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 말이야, 너.”
레이안은 손가락으로 하운을 가리켰다.
“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왕궁에 붙어 있는 게 얼마 만인지 아득해서 그래. 게다가 심지어 나와 식사까지 하고.”
레이안의 말에 하운의 표정이 굳었다. 레이안의 말대로였다. 스스로 수도를 떠나 전장을 돌아다닌 이래 이렇게 오래 왕궁에 드나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가장 오래 머물렀던 것이 플레노트가 깨어났을 때, 주변 지역을 봉쇄하고 플레노트를 막을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보석술사와 기사들과 함께 작전을 짤 때였다.
그때도 중요한 것만 듣고 먼저 북부 전선으로 가 있을 테니 작전이 확정되면 전해 달라 하고 출발했기에 왕궁에 머무른 시간은 길어 봤자 1주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하운은 2주째 계속해서 왕궁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레이안과 함께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하운은 이 사실을 가장 경계의 눈으로 바라볼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왕비 전하께서 싫어하시겠군요.”
“조금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긴 하더라.”
레이안은 딱히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제 동생을 기만하는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신경 쓰진 마. 대신에 내가 매일같이 찾아가 달래고 있으니. 덕분에 일주일 내내 함께 자고 있고.”
제 형의 여전한 아내 사랑에 하운은 조금 질렸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 자리에 레티시아가 있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 중얼거리며 테이블 아래에서 레이안의 다리를 제일 아플 곳만 골라 걷어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과는 좀 있어?”
“성과라면….”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 두 번째 문 말이야. 거기에 꽤나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 걸려 있다며? 여는 것조차 힘들어서 왕실과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들을 만나고 있다고 들었다만.”
“아직 딱히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문에 어떤 보석의 힘이 걸렸는지 몇 개는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걸려 있어 문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조급해할 것 있나. 천천히 알아보도록 해. 첫 번째 문 열었을 때 꽤 위험했다 들었다. 잠시 쉬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
형제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보고에 가까운 내용이긴 했지만. 하운은 첫 번째 보석의 방 안에서 있었던 일과 그 안에서 나온 보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잠시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보석의 방 안에서 나온 보석들 중, 이름을 알리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응? 아아, 알고 있어 300여 종의 보석이라 대강 뭉뚱그려 발표한 것들 말하는 거지?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은 보석 중에 균열의 아게이트가 있을 테고.”
“……!”
레이안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하운은 순간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찍었는데 맞았네. 그거 레티시아가 추적했었는데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거든. 그때 호슨 공작이 개입한 흔적이 있어서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그녀가 가져간 건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리엘라 테니어에게 구입해서 결혼기념일에 선물로 줄까?”
“…….”
“농담처럼 들리나 본데 난 지극히 진심이야. 레티시아가 추적에 실패했던 유일한 보석이거든. 그때 진심으로 분해하면서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몰라. 그러니까 대답해. 보석의 상태는 어땠어?”
“완전히 힘을 잃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활할 가능성은?”
“보석은 드래곤이 아닙니다.”
드래곤은 부활하지만 보석은 그대로 수명을 다한다. 리엘라의 꽃으로도 죽은 보석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없다는 거군. 그럼 됐어. 힘도 없는 걸 줘서 굳이 레티시아의 시간을 잡아먹을 필요는 없지. 그 외 알고 있는 사람은 대강 리텔라 테니어와 루시안 모리스 정도인가. 둘 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포크의 끝으로 푸딩을 쿡쿡 찔러 가면서 하는 소리치고는 심각한 내용이었다.
“이제 식사 다 하면 뭐 할 거냐?”
“다시 왕실 보석술사들을 만나러 갈 겁니다.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들도 함께 참석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문을 열기 위해서 조언을 구한다 하니 다들 만사 제쳐 두고 오더군요. 오늘도 늦게까지 회의가 계속될 것 같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하운의 대답에 레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
“무엇이 말입니까.”
“네가 다른 사람들하고 골치 아플 때까지 이야기하는 거. 넌 사람들을 좀 더 만나야 해. 너무 오랫동안 북부 전선에 처박혀 있었잖아.”
“…….”
“그리고 이제 슬슬 온 용건을 말하지 그래?”
레이안의 말에 하운은 졌다는 듯 팔을 벌리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눈치채셨군요.”
“불러도 안 오는 동생이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자 청하는데 아무 목적도 없으면 그게 더 무섭거든? 그래. 원하는 게 뭐냐?”
“왕비 전하 몰래 보석 하나를 대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에르첼라 컬렉션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시간이 좀 걸려도 레티시아가 허가를 내주긴 할 텐데?”
“급하게 써야 하는 보석이라서요.”
“뭔데? 줘 봐.”
레이안은 하운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보석의 이름을 보고 의아해 했다.
“이게 갑자기 왜 필요해? 무슨 목적으로?”
레이안의 질문에 하운은 덤덤히 대답했다.
“레이디 리엘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