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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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하운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공님.”
“오랜만이오.”
그들 중에는 카밀라의 아버지인 재무 대신도 함께였다. 그는 다른 자들보다 더욱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켰다. 하운은 가볍게 그들의 인사를 받고는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갔다. 하운의 모습이 모퉁이를 돌며 사라지자 대신들이 고개를 들고는 수군거렸다.
“요즘 대공께서 왕궁에 오래 머물러 계시는군요.”
“예전에는 제발 더 오래 있어 달라 빌어도 칼같이 다시 돌아가셨던 분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슨 공작의 보석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하십니다. 아마 오늘도 보석의 방을 열기 위해서 왕실 보석술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실 것 같군요. 그러니 여전히 저리 무거운 표정이시겠지요.”
그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 저편에서 봤을 때부터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특히나 하운이 가깝게 다가오면 그 체격에 한 번 더 눌리고 그 기백에 두 번 눌린다. 대신들 사이에서 사실 드래곤이나 마물을 때려잡는 게 아니냐 하는 농담이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저런 분 옆에서 누가 농담 한마디나 하겠습니까. 농담이 다 뭡니까.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힘들 겁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하운 대공에게는 부탁 하나 하기 힘드시다던데요.”
“하긴, 저런 얼굴로 서 있으면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전 옆에서 숨도 못 쉴 겁니다.”
대신들이 하운에 대해서 떠들어 대는 동안 재무 대신은 하운이 사라진 곳을 보며 생각했다. 이상하다. 내 눈에는 어쩐지 즐거운 것 같아 보였는데.
***
다음 날 새벽 이른 시각.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하운은 작업실의 구석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런 하운의 모습에 리엘라가 말했다.
“대공님은 안 해도 된다고 전 분명 말씀드렸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굳이 안 하셔도 된다고 했는데 끝까지 자신도 하겠다 하며 오신 분은 대공님 아닙니까? 심지어 보석까지 대여해 오시면서요. 하기 싫으시면 저 주십시오. 제가 사용할 테니.”
리엘라의 곁에서 루시안도 그녀의 편을 들었다.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보석을 이런 일에 쓰는 건 처음이라서 그래. 게다가 자네는 이 보석 써 본 적이 없어서 제어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몇 번 써 본 내가 다루는 것이 맞지 않겠나.”
하운은 제 손에 들려 있는 보석을 바라보았다. 반지에 박혀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그의 손 위에 있었다.
사람들에게 꽤 유명한 왕실의 보석인 투명의 다이아몬드였다. 효과는 이름이 말해 주듯 대상자를 투명하게 만들어 사람과 짐승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 주는 힘을 갖고 있는 보석이었다.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힘인 탓인지 이 보석은 오래전부터 온갖 소설과 연극에 등장했다.
어쨌거나 카르디아 왕실의 중요한 보석이라는 소리다.
“좋게 생각하십시오, 대공님. 마지막으로 쓰인 게 7년 전이니 다이아몬드도 심심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라도 움직이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루시안은 하운을 위로하듯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보석은 오랜만에 힘을 쓰는 게 신나는 모양인지 유난히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침 지금 리엘라의 눈동자처럼.
“이런 일 책에서만 봤었는데 진짜로 하려니 두근거리네요.”
리엘라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작업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의 노트가 있었다. 그사이 달라진 점이라면 앞으로 만들 새로운 장식을 가득 그려 놓았다는 것.
“어쨌든 두 분 다 잘 아셨죠? 제가 나가면 마틴이 들어올 거예요. 그 사람이 제 노트를 가져가거나 베껴 그린다면 그 모습을 잔영의 크리스털로 전부 다 저장해 두셔야 해요. 절대 놓치시면 안 돼요!”
“어제부터 수십 번 들어서 잘 외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어서 나가 보도록.”
하운이 어서 나가 보라 손짓을 하자 리엘라가 작업실을 나가려다 다시 돌아왔다.
“잔영의 크리스털 좀 줘 보세요.”
“왜?”
“부탁하려구요.”
“…부탁?”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하운은 제가 준비해 두었던 잔영의 크리스털을 꺼냈다. 꽤 큰 크기에 무척이나 투명한 보라색의 크리스털은 잔영의 크리스털 중에서도 제일 고급으로 치는 크리스털이었다. 왕실의 기록이나 귀족가의 중요한 기념일 또는 계약을 할 때 쓰이는 이 크리스털은 어제 보석의 방에 쌓인 것 중에서 들고 나온 것이었다.
‘좀 더 평범한 것을 사용하려 했지만….’
호슨 공작이 어찌나 좋은 것만 모아 놨었는지 그중에 가장 값어치가 떨어지는 걸 찾고 찾았지만 이것 밑으로 떨어지는 보석이 없었기에 이것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하운에게 크리스털을 건네받은 리엘라는 그것을 손에 꼭 쥐고 속삭였다.
“잘 기억해야 해. 알았지?”
보석이 듣기라도 하는 듯 속삭이는 모습에 하운이 피식 웃었다. 그의 비웃음을 알아차린 리엘라가 멋쩍은 얼굴로 쏘아붙였다.
“왜요, 사람들하고 함께 오래 있으면 힘도 더 강해지고 그런다면서요.”
리엘라는 들고 있던 크리스털을 하운에게 돌려준 다음 민망함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누르며 작업실을 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들어오기 좋으라는 듯 활짝 문을 열고.
“우리도 준비하지요.”
루시안의 말에 하운은 투명의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었다. 잠들지 않은 채 힘을 갖고 있는 보석이라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보석들은 상하기 쉬워 맨손으로 잡을 수 없으니까.
하운의 부름에 투명의 다이아몬드는 기다렸다는 듯 힘을 썼다. 그러자 하운과 루시안의 모습이 작업실에서 사라졌다.
루시안은 제 손을 펴 보았다. 당연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걸 잘도 쓰시는군.’
투명의 다이아몬드는 사용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힘이 적용되는 대상과 범위를 지정하는 건 꽤 까다로운 보석이었다.
오래전 왕실의 누군가가 처음 투명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했을 때, 왕궁 전체에 힘이 미쳤던 탓에 수도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왕궁의 모습에 경악한 사건이 있었다. 건물뿐만이 아니라 안에 있던 사람들도 죄다 투명해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다쳤었다.
어쨌든 그렇게 제어가 힘든 보석인데 하운은 아주 깔끔하게 자신과 루시안만을 지운 채 작업실의 그 어떤 것에도 힘이 미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었다.
‘…이러니 혼자서 쓸 수 없도록 한 것이겠지.’
이렇게 제어를 잘해도 하운은 혼자서 이 보석을 쓸 수 없다. 그가 이것을 사용하려면 왕실에서 인정한 몇 안 되는 강한 보석술사와 동행할 때만 가능하다. 혹시나 하운이 이것을 이용해 위험한 짓을 하려 하면 그의 발목을 잠시라도 붙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제약이 붙어 있기에 하운이 이 보석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쓴 적이라고는 7년 전 그가 네이판타의 레어를 탐색하러 갔을 때뿐이다. 그런 보석인데….
‘이런 일에 써도 되나?’
루시안도 하운과 같은 생각을 하며 숨을 죽였다.
리엘라가 작업실을 나가고 시간이 지나자 복도에 기웃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왔군.’
리엘라의 말대로였다. 족제비처럼 생긴 건들거리는 남자가 작업실 안을 살펴보더니 슬그머니 들어왔다.
어제 리엘라는 루시안에게 부탁을 했었다. 물건을 훔치는 장면을 크리스털에 기록할 수 있겠냐고.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어리둥절하는 루시안에게 리엘라는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먼저 마틴에 대한 이야기. 모리스 경과 클로에의 사이에 대해서도.
리엘라의 설명을 들은 루시안은 흔쾌히 그녀의 제안에 응했다.
“아버지와 클로에 양 사이의 일에 뭐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끼어든 것이 하운이었다. 잔영의 크리스털이 기록을 할 수 있는 보석이긴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기록을 하려면 보석술사가 그 자리에서 크리스털을 들고 있는 편이 좋다고 했다.
“숨어서 해야 할 텐데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면 될 것 아닌가.”
“그게 가능… 아, 그런 보석 있었죠!”
리엘라도 몇 번 소설에서 본 보석이 있었다. 모든 걸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보석.
“그 보석 갖고 있으세요? 아니, 그것보다 굳이 대공님께서 하실 필요는 없으니 루시안님께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그 말에 하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직접 하면 되는데 왜 루시안에게 그걸 맡겨야 하지?”
“바쁘시잖아요?”
“좀도둑 잡을 시간은 있어. 그리고 그것은 왕실의 보석의 방에 있으니 가져와야 하는데 내가 직접 가서 가져오는 게 빠르지. 그렇지 않나, 루시안?”
“확실히 대공님께서 직접 가시는 게 빨리 가져올 수 있긴 하지요.”
원탁회의의 의장이라고 해도 왕실과는 결국 다른 집단이다. 요청을 하면 들어주긴 하겠지만 서류를 통과받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터이니 하운이 가는 편이 낫다. 그래도 며칠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에 잠시 사라졌던 하운은 오후 왕실의 보석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오늘이 된 것이다.
루시안은 숨을 삼켰다. 보석이 모습을 지워 줄지는 몰라도 소리마저 지워 주는 것은 아니다. 혹시나 마틴이 이상함을 느끼고 그냥 가 버린다면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작업실과 복도를 번갈아 살피던 마틴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작업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리엘라가 멀리 갔음을 한 번 더 확인한 그는 제가 가져온 작은 노트를 꺼내더니 리엘라의 노트에 적혀 있는 것을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크리스털을 준비하길 다행이었군.’
처음에 리엘라가 이 일에 대해 말했을 때 그냥 잡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그녀가 마틴이 이번에는 노트를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따로 종이를 준비해 와서 베껴 적어 가면 물건을 가져간 것도 아니니 추궁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운과 루시안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마틴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열심히 리엘라의 노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전부 다 베꼈는지 노트를 주머니에 넣었다.
“멍청한 계집애. 내가 가져가고 있다는 거 눈치도 못 챘겠지.”
그는 노트를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
루시안은 조용히 옆을 돌아 보였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서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저 마틴이라는 놈, 이런 것도 못 느끼나? 난 소름이 돋는데?
그때 다시 마틴이 중얼거렸다.
“얼굴은 괜찮은데 머리는 빈 것 같아서 더 취향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