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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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온다!”
리엘라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사람들이 물러선 가운데를 걸어 모리스 경과 클로에 베넷의 앞에 섰다.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서로를, 그리고 마틴과 꽃 장식들을 노려보다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모리스 경이었다.
“레이디 리엘라, 지금… 좀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불렀습니다.”
“당황스러운 이야기라니 무엇일까요?”
“그게….”
모리스 경이 머뭇거리자 클로에가 답답하다는 듯 나섰다.
“당신이 마틴에게 모리스 경의 디자인을 넘겨줬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제가 누구에게 무엇을요?”
리엘라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마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리엘라. 네가 나에게 모리스 경의 디자인을 줬잖아! 이거라면 클로에 양이 별말 없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고 가져다 쓰라고!”
마틴의 말에 리엘라는 그를 한 번 바라본 다음 말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작업 중에 갑자기 불려 온 터라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상황인지 잘 모르겠는데 누가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그러자 모리스 경과 클로에가 나서기도 전에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리엘라에게 너나 할 것 없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설명했다. 그들의 말을 다 들은 리엘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네요. 그래서 지금 제가 확인 차 오게 된 거군요.”
“그래요. 그러니 빨리 대답을 해 주면 좋겠네요. 난 지금 이런 오해를 받는 게 정말 어이도 없고…. 정말 사람을 뭘로 보는 건지.”
리엘라는 모리스 경을 보았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을 의심하기는 싫습니다만… 내 방은 보안이 철저한 편이고 내가 디자인을 남에게 보인 적은 며칠 전 설명을 하면서 레이디 리엘라께 보여 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보여 주었을 확률이 높다?”
“…….”
모리스 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리엘라는 이번에 마틴을 바라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리엘라, 네가 줬잖아. 그래서 내가 만든 거고…. 네가 잘못했으니까….”
도대체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는 마틴의 모습에 리엘라는 한숨이 나왔다. 모리스 경과 클로에 양은 생각한 대로지만 저 사람이 갑자기 친한 척 제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뒤집어씌우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리엘라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끼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모리스 경?”
“뭐, 뭐요?”
“혼자만 보라 저에게 알려 주셨던 당신의 디자인을 사실 저 사람이 아닌 클로에 양을 위해 줬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리엘라의 말에 클로에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잘 생각해 보세요, 모리스 경. 클로에 양이 왕비 전하께 수석 플로리스트를 바꿀 생각이 없으시냐며 찾아갔던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아직 어떻게 될지 내려온 명령은 없다지만 그 후에 클로에 양이 왕궁의 다른 건물의 담당을 맡게 되었고요. 그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를 보고 왕비 전하께서 결정하실 거고…. 그러면 클로에 양이 마음이 좀 급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슨 헛소리야! 난 그런 짓 안 해도 잘하거든!”
리엘라의 말에 클로에가 진심으로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다들 움찔할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리엘라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럼 클로에 양, 다른 생각 혹시 안 해 봤나요?”
“다른 생각?”
“모리스 경께서 일부러 이런 일을 꾸며서 클로에 양의 이름을 더럽힐 거라는 생각이요.”
“…일부러 이름을 더럽혀?”
“그래요. 들어보니 왕비 전하께서는 무척 엄격하신 분이라 들었어요. 그런데 새로 왕실 수석 플로리스트를 노리는 사람이 사실은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의 것을 도용하는 사람이라면? 증거가 너무 명확한데 끝까지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왕비 전하께서 그 사람을 과연 임명하실까요? 어쩌면 왕실에서 나가도록 할지도….”
리엘라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을 말하자 클로에는 입을 뻐끔거리며 모리스 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겁니까? 그런 짓까지 해서 날 내보내려 하셨어요?”
클로에가 바라보자 모리스 경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리엘라에게 말했다.
“아니오! 내가 원망 좀 했기로서니 제자에게 그런 치졸한 짓은 하지 않소!”
“나도 마찬가지야! 그 밑을 나왔다고 해도 스승이었던 사람의 것을 훔쳐 가는 일을 할 것 같아? 망할 영감… 아니 어쨌든 그래도 스승이거든!”
“방금 영감탱이라고 하려 한 거지!”
“따지지 마요!”
리엘라에게 소리치던 두 사람은 갑자기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때 다시 리엘라가 말했다.
“모르죠. 이렇게 갈라져서 엉망인 정원 관리부인데. 스승은 무슨 스승. 제자라는 사람도 이렇고.”
누가 봐도 명백한 비아냥에 다시 모리스 경과 클로에가 소리쳤다.
“말이 너무 심하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정원 관리부의 모두가 이제 리엘라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날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유대감이 그들에게 흘렀다. 원래 하나였던 팀이다. 비록 지금은 갈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이렇게 비웃는 것을 모른 척할 만큼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직원들은 슬금슬금 모리스 경과 클로에 주변을 에워싸며 리엘라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그들의 모습에 리엘라는 가슴에 손을 얹고 다행이라는 듯 크게 숨을 쉰 다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해명부터 할게요.”
그다음 리엘라는 손가락으로 마틴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멋대로 훔쳐 간 거예요. 전 제 노트에만 적었을 뿐 그 누구에게도 모리스 경의 디자인을 주지 않았습니다.”
리엘라의 말에 마틴이 소리쳤다.
“거짓말이야! 증거! 내가 했다는 증거 있어? 네가 준 거잖아!”
발악하듯 외치는 마틴을 보며 리엘라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으로 몰렸다.
“…보석?”
반짝거리는 보라색의 물체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사람들은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리엘라 테니어. 대륙 최고의 보석술사였던 호슨 공작의 상속인.
“잔영의 크리스털이라고 하는 보석이에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건 주변의 모습을 기억하는 힘을 갖고 있답니다. 여기에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까요.”
“……!”
리엘라의 말에 마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틴도 잔영의 크리스털이 어떤 보석인지는 알고 있었다. 몇 번은 보석이 기억하고 있는 영상을 본 적도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분명…제가 한 일들을 저 보석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빼앗아야 해!’
단순히 디자인만 훔쳐 온 게 아니다. 꽃 가위와 칼도 일부러 망가트렸고 꽃도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것까지 보게 되면 저를 향한 시선이 얼마나 더 날카로워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이미 자신을 향한 의심이 짙어졌지만 증거가 없다면 끝까지 발뺌할 수 있다.
마틴은 곧바로 팔을 휘두르면서 리엘라에게 달려들었다.
“내놔!”
일단 한 대 강하게 때리면 저도 어쩔 수 없이 내놓을 게 분명….
퍽!
마틴은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멀리 별이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휘청이더니 점점 시야가 어두워졌다.
‘왜…?’
그는 필사적으로 앞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갑자기 리엘라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키가 큰 남자가 있었다. 저번에 바구니를 들고 왔던 그 남자가 분명했다. 아득히 리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님!”
대공? 하운 대공? 저 남자가?
마틴은 기절하는 중에도 알 수 있었다.
난 이제 끝났다.
***
마틴은 리엘라의 뒤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하운의 일격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가 깨어난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난 후였다. 그사이 그는 왕궁 정원 관리부에서 해고되었다. 그냥 해고로 끝나지 않았다.
왕궁 관리부서에서 그의 이름 옆에 검은색의 엑스 자 표시를 했다. 이제 마틴은 두 번 다시 왕궁 안의 어떤 자리로도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모리스 경과 클로에 베넷이 원예 협회에도 마틴의 이름을 등록했다. 그 말은 이제 수도에서 그가 원예 관련으로 어떤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사실 그가 디자인을 훔치고, 동료의 도구와 왕궁의 꽃을 훼손한 죗값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더 큰 일이 남아 있었다.
“수도에서 아주 멀리 떠났으면 좋겠군. 되도록 평생 눈에 보이지 않도록 말이야.”
하운 대공은 자신이 지키고 있던 리엘라 테니어를 위협한 죗값에 대해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날지는 자유이지만 마틴은 정신이 드는 즉시 수도를 떠나야 하고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몇 시간 만에 마틴에 대한 처벌을 끝낸 정원 관리부는 다시 조용해졌다. 큰일이었건만 알려지면 부서의 수치인 탓에 직원들은 쉬쉬하며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모든 것이 큰 소란 없이 조용히 처리되었다.
“하아….”
하루 만에 10년은 늙어 버린 듯한 기분에 모리스 경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가 신음 소리를 삼키며 소파에 앉아 있는 사이 문이 열리고 클로에가 들어왔다. 그녀는 모리스 경의 맞은편에 앉아 말 그대로 널브러졌다. 그녀의 얼굴에도 피곤이 가득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가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모리스 경이었다.
“내가 잘못했다.”
“…….”
“솔직히 뭘 잘못했는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내가 큰 잘못을 하긴 했겠지.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고치고 용서를 비마. 그러니까….”
모리스 경이 머리를 숙이자 클로에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당장 다시 심어요.”
“뭐?”
“여름 정원. 거기에서 뽑아낸 것들 다시 심으라고요!”
“아니, 여름 정원 때문에 화가 났던 거냐? 거기에 무슨 일이 있다고….”
“장미 말고 다 뽑으라 시킨 거 당신이잖아, 이 영감탱이야!”
클로에는 벌떡 일어났다. 한 대 때리고 싶은데 망할 노인 공경의 정신 때문에 다행히 주먹은 나가지 않았다.
“맨날 장미가 꽃 중의 꽃이네, 꽃의 왕이네 하더니 다른 꽃들을 전부 뽑고 장미만 남기겠다고? 내가 그 꼴 그냥 보고 있을 것 같아요?”
“너, 설마… 장미 때문에 이러는 거냐?”
“그래요! 장미 말고 다른 꽃은 필요 없다고 했다고 말하셨죠. 그리고 여름 정원에서 장미 말고 다른 꽃들을 다 치워 버리려고 했고요. 좋아하는 거야 취향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여름 정원에 있던 내 작약들을 전부 쓸어 버리겠다고? 웃기지 말아요. 여름꽃이 장미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순간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죄다 밖에서 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던 정원 관리부의 직원들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묻기도 전에 그들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렇습니다! 모리스 경께서는 해바라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르십니다! 내 해바라기는 키도 커!”
“키만 크면 다가 아니지. 툭 하면 병 걸려 죽는 장미보다 뽑아도 안 죽는 카네이션이 진짜 예쁘거든요? 여름 정원은 카네이션으로 깔아야 해요!”
“여름은 수국의 계절이지. 다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아니야, 역시 장미가 최고다!”
“달리아 피는 거 안 봤으면 말을 마!”
외쳐 대는 직원들의 모습에 모리스 경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들을 회유해 데려갔나 했더니 하나같이 다들 장미보다 다른 꽃을 더 좋아하는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서로 제가 좋아하는 꽃이 최고다, 외치는 직원들을 보며 모리스 경은 크게 외쳤다.
“그래도 장미가 최고일세, 무지한 자들아!”
“이 영감탱이가! 끝까지!”
해가 질 때까지 정원 관리부는 서로가 좋아하는 꽃이 최고라 외쳐 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